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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의 영상/매치데이인터뷰

[soul인터뷰] 이상협선수








중원의 미래 이상협, 이 남자 정말 잘생겼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속담은 누군가 이상협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구리에 위치한 한 훈련장을 찾은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백 번 듣느니 한 번이라도 경기장을 찾아와서 이상협의 실물을 봐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엔트리에 본인의 자리를 구축하면서 데뷔골까지 터트린 이상협. 서울의 외로운 그 여자들이 꼭 주목해야할 실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한 팔방미인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좌절과 행운이 반복되었던 소년 이상협의 파란만장 히스토리

 

미친 왼발상주 이상협과 부산의 골미남임상협. K리그의 여러 상협들 중에서도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상협이 있었다. 바로 2013년 서울에 새로 입단하게 된 신인 미드필더 이상협이 그 주인공이다. 입단과 동시에 팬들에게 잘생긴 외모로 주목을 받았던 이상협은 최근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며 든든한 중원의 미래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는 화려했던 지난 경기의 활약과는 달리 소년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이런 형식의 인터뷰라는 처음이라며 낯설어하던 그를 보며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지난 행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상협이라는 신인선수의 히스토리를 최초로 물어보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사실 축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형을 따라 축구를 하러 갔지만 형은 그 곳에 없었고 소년 이상협도 더 이상 그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될 성 부를 나무의 떡잎을 알아 본 코치님과 감독님의 열렬한 구애 끝에 그는 결국 그 곳에 남게 되었다. 축구의 자도 모르던 소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뛴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꼈다. 상대편을 한 명, 두 명 제칠 때마다 와닿는 희열이 그 자그마한 소년을 계속해서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스위퍼로 뛰면서 더욱 더 전진을 갈망하던 소년은 제 몸에 맞는 미드필더라는 옷을 찾았고, 이후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가 졸업한 학교는 용인에 위치한 백암고등학교. 축구부로 유명한 백암고는 사실 이상협을 선택하지 않았었다. 입학할 당시에는 테스트에서 떨어져 결국 다른 팀에서 생활했다가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소년에게 뒤늦게 연락을 한 것이다. ‘될 놈은 된다는 말이 그 소년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딱 할 몫만큼은 했다.”라고 말하는 이상협의 말은 모순이 있었다. 주어진 만큼 해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할 만큼 했다는 소년은 결국 노력의 대가로 명문대 축구부를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소년에게 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대학교 형들과 축구를 할 때면 항상 딜레마에 빠졌다. 체격조건도 실력도 거친 경기도 모두 벅찼다. “내가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항상 머리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축구를 관두고 싶기도 했다. 당시의 팀이 6개월이라는 장기간의 징계를 받아서 이상협은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을 견뎌내고 나서야 잡힌 첫 대회 일정. 그러나 축구를 갈망하던 그 소년은 하필이면 대회 전 날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절망을 겪고 만다. 부모님 또한 그의 길을 반대하셨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는 대학교 시절 부상을 입고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자꾸만 그를 말리셨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도 4학년이 되도록 벤치에서 교체로 많이 뛰어봤다는 이상협. 그렇게 수많은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그 소년의 모습이 마치 푸른 잔디와도 같았다.

 

청년이 된 소년, 프로의 세계로 발을 내딛다

 

어디든 오라는 곳만 있으면 가고 싶었다.”. 이상협은 프로 무대를 향해 끝없이 갈망했다. 그리고 청년이 된 소년은 그 꿈을 이뤘다. 서울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이다. 그에게 꿈만 같았던 지난 몇 달 간의 소감을 물었다. 먼저 그는 훈련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에는 추축인 형(주전 선수)들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악물고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형들이 돌아오고 본 훈련이 시작되니까 정말 너무 힘이 들더라. 공을 한 번 한 번 찰 때마다 집중을 해야 하고, 그만큼 또 피로가 쌓였다. 너무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하는 생각을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형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적응할 수 있었다는 이상협의 어투 속에는 아직도 서울의 새내기로서 배워가는 청년의 풋풋함이 묻어났다.

이상협이 데뷔 후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경기는 역시 58일에 열린 연세대와의 FA컵 경기가 아닐까 싶었다. 주장완장에 데뷔골까지 터트린 이상협의 활약이 무궁무진한 경기였다. 이상협은 혹시 언젠가라도 주장완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는 질문에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인터뷰에서 그러했듯 그에게 다시 한 번 그 순간의 소감을 묻자,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차고 교체된 최현태 선수가 나올 때 그 앞에 김현성 선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상협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최현태 선수에게 현성이 형 주세요, 현성이 형 주세요하고 애절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직도 그 당황스러운 기억이 생생한 듯 이상협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듣지 못하곤 완장을 풀면서 나오더라. 완장을 차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걸 내가 가지고 가서 현성이 형한테 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왕 차게 된 거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라면서 중간 중간 한숨을 쉬며 귀엽게 웃던 이상협은 그야말로 평범한 옆집 청년 같았다.

 

상대가 대학시절 라이벌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골이 넣고 싶었다는 이상협은 슛팅 기회를 많이 놓쳐서 속상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결국 찬스를 얻어 데뷔골을 성공하게 된다. 당시 세레모니는 그가 오래전부터 해왔던 팔벌리기세레모니. 이제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는 없는 것 같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인상 깊게 본 것도 없냐는 질문에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승용이가 부리람전에서 했던 슬라이딩 세레모니가 생각난다. 굉장히 멋있더라. 무릎으로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다칠까봐 염려가 돼서.”라고 말하던 이상협은 본인도 민망한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시아 최고의 더비인 수원과의 슈퍼매치는 매우 설렐 것이라며 눈을 반짝이던 이 청년은 보면 볼수록 참 잘생겼고, 알면 알수록 더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스물 넷 인간 이상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상협은 11일생이다. 결코 잊기 쉽지 않은 그의 생일이지만 묻다보니 더욱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태어난 시각조차 ‘000였던 것. 본인 스스로도 믿기 힘들다는 그는 태어나서 생일을 딱 2번 챙겨봤다고 답했다. “생일을 챙길 시간도 없고 명절이라 다들 놀러가기 바빠서 내 생일을 다 까먹는다.”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 이상협. 그를 보며 여성 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앞으로는 매년 행복한 생일을 보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빠른 년생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호칭 정리가 아닌가. 그가 09학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 나이에 학교를 갔느냐고 묻자 처음에 입학할 때는 빠른 년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를 입학하기 이전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대학은 1년이 지체되어 제 나이에 들어갔다.”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호칭에 대해서는 원래 89년생이든 90년생이든 모두 친구였지만 대학을 제 때 들어간 뒤로는 89년생들에게 형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답변에 의아함을 느끼고 그렇다면 김남춘 선수와는 말을 놓던데 이전부터 아는 사이냐고 묻자, 득의양양하게 아니다. 경기도 같이 뛰고 그러니까 당연히 친구로 대한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사실 그것 때문에 이택기 선수와 김남춘 선수가 같이 있을 때는 일부러 호칭을 쓰지 않는다.(두 선수 모두 1989년생)”이라고 답하더니 그 상황이 굉장히 민망하다며 인터뷰실을 폭소에 빠트렸다.

 

이상협은 누나가 한 명 있다. 그의 얼굴만 봐도 짐작되는 미모의 여인을 떠올리며 혹시 서울 선수들 중에 남자친구로 소개해주고 싶은 선수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상협은 여태껏 가장 오랜 시간을 침묵하더니 얘기(꼭 해야 하나).”라며 시선을 피해 또 한 번 웃음을 주었다. 결국 질문의 선로를 변경했다. 딸이나 조카가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선수도 없느냐고 하자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몰리나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경기나 평상시에 딸을 자주 데려오는데 딸에게 굉장히 잘한다. 몰리나를 보면 축구, 가족, 축구, 가족의 반복인 것 같다. 실제로 몰리나의 모든 면모를 보지는 못했지만 딸이나 부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굉장히 가정적인 것 같다.”며 존경의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친구인 박희성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대학시절 환상의 콤비로 뛰다가 같은 팀까지 입단하게 된 박희성 선수는 현재 이상협의 숙소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박희성 선수가 먼저 데뷔골을 넣은 밤에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고 묻자 그는 친구라서 더욱 민망한지 말을 조금 더듬었다. “축하한다고. 고맙다고 하고 잤다. 그 날 배가 좀 아프더라. 어떻게 넣었냐고 하니까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본인의 데뷔골도 축하를 받았냐는 질문에 굉장히 놀라더라.”며 드디어 다시 미소를 찾는 이상협이었다.

 

오랜 친구이지만 박희성 선수와 이상협은 상당히 다른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희성이는 시간이 남으면 항상, 정말 항상 축구를 본다.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냥 침대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하루 종일 누워서 축구만 본다.”라며 폭로 아닌 폭로를 이어가던 이상협은 본인은 축구는 보지 않는 편이지만 컴퓨터도 하고 TV도 보고 외출도 한다며 문화인임을 주장했다. 박희성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그는 굉장히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부끄러워하며 수없이 거절하는 그를 계속해서 설득한 끝에 결국 얻어낸 말은 환기 좀 잘하자라는 것이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감동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으나 지면 상 영상에 담기로 했다. 박희성 선수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대학시절부터 특히 소녀팬이 많이 따르는 것 같은 이상협에게 그에 대한 말을 꺼내자 본인은 소녀팬도 별로 없고 선물도 많이 못 받았다고 대답했다. 매력 포인트를 하나 꼽아달라는 질문에도 역시 진짜로 모르겠다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결국 그렇다면 얼굴인걸로?”라는 말을 건네고 나서야 웃음보가 터진 이상협에게 라는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참고로 소녀팬이 없다던 그 이상협은 인터뷰가 끝난 뒤 훈련소까지 찾아온 소녀팬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얼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상협이 생각하는 서울 미남 TOP3’를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그는 겨우 입술을 떼었다. 선배들이 관련된 질문에는 상당히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대성이 형도 멋있으신 것 같고 명진이 형도 멋있으신 것 같고.”. 본인이 들어가냐는 질문에 재빨리 아니라고 답한 이상협은 마지막으로 두리 형을 꼽았다. 생존을 위한 대답이 감사하다는 농담을 건네자 그는 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시시콜콜한 농담들은 여기서 끝내고, 마지막으로 그의 최종목표를 물었다. 이제껏 딱 스물 네 살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보이던 이상협은 그 질문에 다시금 여느 든든한 축구선수가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축구선수라면 국가대표를 한 번 하는 것이 목표이지 않을까. 꼭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선수. 꼭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야무진 답변을 하는 이상협이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러자 이상협은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시고, 조언해주시고, 때로는 부족한 점에 대해 약이 될 수 있는 쓴 충고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되고 서울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기 위한 걸음을 하겠다. 그 걸음걸음 많이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시고 지켜봐주시면 좋겠다.”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와 함께한 인터뷰는 여기까지이지만 그가 나아갈 화려한 축구 인생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것이다. 당찬 패기와 20대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상협의 앞날을 함께 지켜보자.

 

/=FC서울 명예기자 한원주(hwj1210@naver.com)
/영상=FC서울 명예기자원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