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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이야기/명예기자의시각

[The memorable season] 2008년 FC서울.


 

 










The memorable season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2008년 FC서울이다. 2008년 FC서울은 귀네슈 감독의 화끈한 공격축구, 기성용, 이청용 이라는 스타 탄생,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 인상적인 모습이 많이 나왔던 시즌이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FC서울의 2008년.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의 2008년을 돌아보도록 하자.



2008년 최대의 화두. 공격진 강화!



 FC서울은 2007년 세계적인 명장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7위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무엇보다 공격력 부족이 큰 문제였다. 팀 내 최다 득점을 넣은 선수가 6골(두두, 이상협)을 넣을 정도로 골 기근에 시달렸다. 시즌을 앞두고 서울은 공격진에 메스를 들이댔다. 두두를 내보내는 대신 인천에서 19골을 기록한 공격수 데얀을 영입한 것이다. 또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갈고 출신의 이승렬을 데려오며 공격진을 한층 강화했다.



시즌 시작 전 열린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서울은 울산과의 K리그 개막전에선 1-1로 비겼지만 두 번째 경기인 전북 원정 경기에서 데얀과 박주영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열린 경남과의 컵대회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대구와의 리그 경기를 3-1 승리로 장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서울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 줄 만한 영입이 성사된다. 맨체스터 시티, AZ 알크마르 등 유럽 굴지의 팀에서 뛰었던 무삼파가 FC서울에 합류한 것이다. 4월 16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무삼파는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강력한 슈팅력을 선보이며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날개가 되어줄 듯한 무삼파는 이후 부진에 시달리며 3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6월에 팀을 떠나게 된다. 
 


기성용, 이청용의 급성장! 그리고 마지막 퍼즐조각이 된 김치우



서울은 4월 13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제주를 3-1로 물리쳤다. 이후 서울은 리그 4경기에서 1승3무를 기록하며 A매치 휴식기를 맞았다. 패한 경기는 없었지만 무승부가 많은 탓에 강팀의 면모를 보였어도 리그 4위에 머문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 리그에서도 서울의 흐름은 큰 변화가 없었다. 부산과 포항을 잇달아 잡았지만 울산과 전북과는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비중을 적게 두었던 컵대회에서 수원을 1-0 으로 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변함없이 선두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서울로선 약간 아쉬운 일. 그래서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전력보강을 한다.
 


 







서울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전남에서 김치우를 데려와 측면을 강화했다. 김치우는 데뷔전인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서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1월2일 부산에 0-2로 패하기 전까지 서울은 7승2무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새로 합류한 김치우와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기량이 급성장한 기성용과 이청용. 외인 공격수 데얀의 변함없는 활약은 서울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또 조커로 활약한 이상협과 이승렬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렬은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고, 그 해에 넣은 5골 중 3골이 결승골이었다. 이상협 역시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42분 환상적인 왼발 발리 슈팅으로 1-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승리로 서울은 시즌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이상협은 2008년에 출장한 17경기 중 15경기를 교체 출장하며 귀네슈 감독의 히든 카드로 활약했다. 서울은 부산에 0-2로 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15승 9무 2패 승점 54점으로 수원(17승 3무 6패)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수원 +22, 서울 +19) 2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 했다.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서울의 상대는 울산. 서울은 광대뼈 부상을 당한 정조국을 선발 출장 시키며,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고, 결국 정조국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후반 염기훈에게 실점하긴 했지만 서울은 연장전에서 골 폭풍을 몰아쳤다. 데얀, 김은중이 연속골을 터트렸고, 그 해 군에서 전역한 김승용마저 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4-2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수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서울은 아디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곽희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선 에두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정조국의 페널티킥으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수원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김호준이 송종국의 슛을 선방했지만, 송종국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며 2-1을 만들었다. 결국 서울은 스코어를 뒤집지 못했고,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장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기성용은 팀의 우승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지만, 아쉽게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서울의 2008년은 많은 것을 얻은 해였다. 우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귀네슈 감독의 총애 아래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이어졌다. 기성용은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구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선 이청용의 정확한 크로스를 기성용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또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이청용이 골의 단초가 되는 전진 패스를 내줬고, 기성용이 상대 실수를 틈 타 골을 성공시키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FC서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가 꽃을 피운 것도 고무적이다. 2007년 고작 23골이었던 팀 득점은 1년 만에 50골로 늘었다.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 이청용의 창조적인 드리블, 데얀의 치명적인 마무리, 이상협의 특급 조커 역할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울의 공격은 불을 뿜었다. 귀네슈 감독 특유의 공격 성향도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울산전에서 1-1로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하자 귀네슈 감독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공격수 김은중, 이상협을 투입하며 공격 성향을 잃지 않았고, 결국 이는 대량 득점으로 이어져 4-2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플레이오프 라는 중요한 대회에서도 귀네슈 감독은 특유의 ‘공격 본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이 강해도 수비가 약하다면,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수비라인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레프트백 아디는 귀네슈 감독이 가장 믿는 수비수 중 하나였고, 김치곤과 김진규는 든든한 센터백 듀오였다. 또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한윤의 활약은 기성용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였다. 수비진의 활약덕에 서울은 30실점으로 최소 실점 공동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2001년 준우승 이후 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서울은 준우승을 거두며 다시금 ‘강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 우수한 젊은 선수들의 출현과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했기에 2008년 FC서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