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인천과의 K리그 14R 경기. 전반 36분 데얀의 페널티킥이 골라인을 통과하자 선수들은 그를 무동 태우며 100호 골을 축하했다. 하지만 데얀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후반 44분 몰리나의 패스를 이어받아 골키퍼까지 제치며 기어이 101호 골까지 만들어 냈다. 173경기 만에 100호골을 만들어낸 데얀은 종전 김도훈이 가지고 있던 기록(220경기 100골)을 갈아 치웠으며, K리그 역대 8번째 100호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2007년 K리그에 입성하며 경기당 0.58골이라는 놀라운 골 결정력을 선보이고 있는 데얀은 이 추세라면 샤샤가 가지고 있는 용병 최다골인 104골 기록도 경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도 23골을 넣으며 득점왕은 물론 경기당 0.79골로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율을 기록한 ‘기록의 사나이’ 데얀. 그의 기록엔 단순한 개인 기록을 넘어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이번엔 그의 기록이 특별한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데얀의 기록이 특별한 이유 중 그 첫 번째는 꾸준함에 있다. 2007년 인천에 입단한 데얀은 첫해 19골 3도움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15골 6도움, 2009년 14골 1도움, 2010년 19골 10도움, 2011년 24골 7도움을 올리며 매 시즌 꾸준하게 득점포를 가동했다. 몇몇 용병들은 초반엔 적응을 이유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팀이나 감독이 바뀌면 바뀐 환경과 달라진 감독의 성향에 애를 먹기도 하지만, 데얀만큼은 예외였다.



2007 시즌 종료 후 인천을 떠나 서울에 입단했고, 귀네슈, 빙가다, 최용수 등 여러 감독들을 거쳤지만 데얀은 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며 팀의 주축 공격수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09년엔 데얀 스스로도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차출되느라 가장 부진했던 시즌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그해 에도 14골을 기록하며 제몫을 해냈다. 또 그는 양발과 머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다양한 득점 분포를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오른발 잡이로 오른발로 넣은 골이 제일 많지만, 그는 왼발로도 23골을 터트렸으며, 다소 약하다고 지적되던 머리로도 18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기록한 101골 중 페널티킥 골은 10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데얀의 골 기록은 순도 높은 필드골 성공률을 자랑한다.











데얀의 골 기록에 또 다른 특별함을 살펴보자면 경기가 끝날 무렵인 후반 30분 이후로 득점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데얀은 후반 30분 이후로 24골을 성공 시키며, 다른 시간대중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다. 이는 데얀이 경기 후반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며, 상대 수비진들이 ‘단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되는 공격수’ 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경기 막판에 터지는 데얀의 골들로 인해 서울은 비길 뻔한 경기를 수차례 극적인 승리로 연결하며, ‘서울 극장’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 4월에 열렸던 강원과의 원정경기, 5월초에 열렸던 경남과의 원정경기 모두 데얀이 후반 막판에 골을 넣으며 승리를 가져왔다.





또 데얀은 K리그 강호들과의 승부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데얀은 포항을 상대로만 9골을 작렬시키며 ‘포항 킬러’로 명성이 자자하고, 전북과 울산을 상대론 각각 7골, 성남을 상대론 6골을 넣고 있다. 데얀의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서울은 강팀들과의 순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고, 데얀이 입단한 2008년부터 올해까지 늘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며 K리그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다.













데얀의 기록을 특별하게 해주는 또 하나는 바로 이타성이다. 엄청난 골 기록을 세웠으니 이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데얀은 자신보단 항상 팀을 위해 플레이하는 선수다. 그는 통산 도움에서도 28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못지 않은 도움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수원과의 홈경기에선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승리에 숨은 공신이 되었고, 작년 최용수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제주전에서 터진 고명진의 역전골도 데얀의 발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또 100호골을 터트린 인천전에서도 몰리나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한것도 데얀이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나의 기록과 팀 우승을 바꿀 수 있다면 100%용의가 있다.”는 말로 늘 자신보다 팀을 앞세우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몇몇 스트라이커들은 간혹 골 욕심이 지나쳐,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데얀에겐 먼나라 이야기다.













또 그는 많은 시련을 딛고,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우뚝 설 수 있었다. K리그에선 늘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데얀에게 시련은 어울리지 않는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는 자국에서 뛰던 시절 내전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다. 1981년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데얀은 그가 10살 때 내전이 일어나며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낯선 베오그라드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 후 FK신데리치에 입단하며 프로축구 선수로 성공하는가 했지만 당시 내전 수습으로 어수선했던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실업자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직폭력배 생활을 했는데 그 중 많을 돈을 번 몇몇 이들이 축구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들은 선수들의 의사는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선수들을 이적시키며 노예 취급하듯 했고, 데얀 역시 그 피해자였다.



데얀은 자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 FK젤레즈니크, FK라스타, FK스렘, FK라드니츠키, FK베자니아등을 거쳤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에도 임대를 다녀오는등,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저니맨 생활을 해야 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새도 없이 너무 많이 팀을 옮겨 다닌 탓에 데얀은 점점 지쳐갔고,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FK베자니아의 사장이 데얀에게 한국행을 권유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데얀은 괌에서 전지훈련중인 인천 팀에 입단 테스트를 거쳐 입단에 성공했다. (만약 데얀이 진짜로 은퇴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데얀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도 데얀은 음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국에서 첫 3개월 동안은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스테이크와 피자, 스파게티로 버텼다 하고 때론 음식에 지겨움을 느껴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도 데얀을 쓰러뜨리진 못했고, 오히려 한층 더 성숙하고 단단한 선수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K리그에서 데얀의 활약은 자국에도 알려져 현재 그는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중이다. 지난 2008년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데얀은 13경기에서 2골을 넣고 있으며, 유로2012 예선전에도 참여했다. 마르코 부치니치, 스테판 요베티치등 유럽에서도 알려진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잉글랜드, 웨일즈등 강팀들과의 경기에도 출전했고 웨일즈를 상대로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는등 데얀은 유럽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서 체코에 밀려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는데 실패했지만, 만약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유로2012에 출전하여,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골 사냥을 노리는 데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데얀.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여전히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샤샤가 가지고 있는 외국인 최다골(104골)과 K리그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었던 득점왕 2연패가 그것이다. 이것마저 성공한다면 데얀은 명실상부 K리그 최고의 킬러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또 어떤 기록을 남기며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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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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