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사진출처-KFA PHOTO)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킬 브라질 월드컵이 코앞이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에서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축구 강국들 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세운 대한민국. 얼핏 보면 대한민국의 월드컵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탈락 위기를 겪기도 하며 치열한 승부 끝에 세운 대기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FC서울 선수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FC서울 선수들의 활약상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최용수는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 (사진출처-KFA)







1997년 당시 차범근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현 FC서울 감독인 최용수였다. 당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최용수는 카자흐스탄과의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 우즈베키스탄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선제골, 한국 축구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 도쿄 대첩에서 2 어시스트로 맹활약한다. 덕분에 대표팀은 4연승을 달리며 프랑스행 티켓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반환점을 돈 이후 첫 경기를 불안하게 출발한다. 카자흐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다음 상대는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보단 한 수 위로 평가받는 팀이었다. 게다가 홈에서 2-1로 진땀승을 거두었고 원정 경기라는 점도 대표팀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최용수의 활약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최용수는 전반 18분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41분엔 하석주의 코너킥을 가슴으로 받은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기록 했다. 덕분에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을 5-1로 대파하며 프랑스 월드컵 출전을 사실상 확정했고 이후 일본이 UAE1-1로 비기면서 프랑스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두 골을 기록했다 (사진출처-KFA PHOTO)






2006 독일 월드컵 진출 당시에도 FC서울 선수의 활약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박주영. 당시 박주영은 청소년대표시절 보여준 엄청난 활약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고 FC서울에서도 변함 없는 활약을 이어가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자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당시 대표팀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 감독은 훅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활약이 이어지자 결국 박주영은 대표팀에 뽑혔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경기에서 후반 18분 막심 샤츠키흐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어렵게 흘러가자 박주영은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막판까지 동점골을 넣지 못하며 패배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주영이 구세주가 되었다. 후반 45분 혼전 상황에서 정경호의 패스를 받은 박주영이 다이렉트 슈팅을 날렸고 이것이 그대로 골망을 가른 것이다. 대표팀은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후 쿠웨이트전에서 박주영은 팀 동료인 김동진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결국 4-0으로 쿠웨이트를 꺾은 대표팀은 독일 월드컵 출전을 확정했다.



이청용은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대한민국의 남아공행에 큰 힘을 보탰다. (사진출처-KFA PHOTO)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선 FC서울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인 이청용과 기성용의 활약이 눈부셨다. 이청용은 요르단과의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했고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성용은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당시 대표팀은 요르단과의 3차 예선 홈경기에서 2-2로 비겼고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홈, 원정 모두 0-0으로 비기며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서도 홍영조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지만 기성용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경기 이후로 대표팀은 확 바뀌었다.




주장 완장은 박지성이 찼고 이청용, 기성용 등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 것이다. 효과는 UAE와의 홈 경기에서 바로 나타났다. 이청용은 정확한 패스로 이근호의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기성용은 골대를 맞추는 슈팅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다. 결국 대표팀은 UAE4-1로 물리치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고 이청용과 기성용은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대표팀은 사우디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뒀고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선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만난 상대는 북한. 늘 북한의 탄탄한 수비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우리나라였지만 남아공행의 8부 능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이 날 경기에서도 우리나라는 북한의 수비에 막혀 고전했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공격 강화 카드로 후반 33분 이근호 대신 김치우를 투입했다. 김치우는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쾌조의 골 감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치우가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 42분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김치우가 절묘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북한의 골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1-0 승리를 거두며 남아공 월드컵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김치우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대표팀을 구했다.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45,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든 것이다. 만약 이 골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자력 진출이 아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진출을 노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치우의 왼발 프리킥이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 이어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북한전에서 멋진 프리킥골을 성공시킨 김치우 (사진출처-KFA PHOTO)





현재 FC서울에 소속되어 있는 차두리 역시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던 차두리는 레바논과의 독일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 3차전 홈경기에선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해당 경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FC서울 소속 선수는 참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월드컵 예선에서 보였던 모습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도 보여준다면 러시아 월드컵엔 FC서울 소속 선수가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어떤 선수가 될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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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5.23 01:06









서울이 깨어나고 있다. 지난 베이징 궈안전부터 인천전까지 3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서울은 시즌 초반에 부진했어도 5월을 기점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서울은 4월말에 있는 경기를 잡으며 5월 대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서울은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초반 행보는 부진했다. 신생팀 강원에게 1-2로 패했고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경기 에서도 2-4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1-0으로 꺾으며 살아나나 싶었지만 산둥 루넝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했고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경남과 대구에게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과의 홈 경기에서도 1-1로 비기는 등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했던 서울은 4월 마지막 경기였던 울산과의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5, 서울은 폭발했고 성남, 스리위자야를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전북에게 0-2로 패했지만 서울은 FA컵과 AFC 챔피언스리그 포함 7연승을 질주하며 본모습을 되찾았다.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은 서울은 리그 개막전 상대인 수원에게 0-2로 패하더니 대전과도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항저우 그린타운을 3-0으로 꺾었지만 전남에게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했다. 전북을 3-1로 이겼지만 나고야 그램퍼스전, 부산전, 울산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나고야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0-2로 패했고 신생팀 광주에게 마저 0-1로 덜미를 잡히며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최용수가 감독 대행 자격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4월 마지막 경기에서 제주를 만났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서울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5월부터 서울은 약속이라 한 듯 폭발했다. 알 아인을 3-0으로 꺾더니 상주도 4-3으로 꺾으며 연승을 달렸다. 항저우와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경남, 용인시청을 잇달아 제압했다. 대구에게 0-2로 패하며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전년도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3-0 완승을 거두며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2013년도 우승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2-2로 비긴 서울은 인천과의 홈 경기에서 예상 못한 2-3 패배를 당했다. 이후 부리람과 0-0으로 비긴 서울은 부산에게도 0-1로 패했다. 경남과 2-2로 비긴 서울은 센다이를 2-1로 제압했지만 울산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2실점하며 2-2로 비겼다. 이후 서울은 센다이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수원과도 1-1로 비겼으며 성남에겐 1-2로 패하는 등 서울은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커녕 리그에서 1승도 못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4월 중순 대구를 4-0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수 세인티와의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둔 서울은 강원과의 경기에서 먼저 두 골을 내주고도 후반 고요한의 활약으로 세 골을 넣으며 3-2 역전승을 거두며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서울이 반격에 나서는 5. 서울은 부리람과 무승부를 거두고 전북에게 0-1로 패했지만 연세대와 대전을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 11무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고 제주와의 경기에선 패배가 예상되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끝에 4-4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서울은 전남을 3-0으로 꺾으며 팀 통산 40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014
년 서울의 초반도 부진했다. 리그 11위까지 처진 모습은 서울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서울은 베이징 궈안을 2-1로 물리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선 무려 55개월만에 원정 승리를 거뒀다. 인천과의 FA32강전에서도 3-2로 승리하는 등 서울은 기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전조
(前兆) 어떤 일이 생길 기미라는 뜻이다. FC서울의 ‘5DNA’가 깨어날 전조는 충분히 나타났다. 이제 올해도 ‘5DNA’를 보여줄 차례다. 앞서 열거한 2009, 2011, 2013년의 5월 성적만 놓고 보면 1553패로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의 FC서울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초반 부진을 딛고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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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5.01 01:42



 






강원을 제물 삼아 리그 2연승을 노렸던 FC서울. 하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30분까지 만회골을 넣지 못하며 패색이 짙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34분 고요한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흐름을 탄 서울은 후반 39분 고요한이 또 한번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42분엔 데얀이 역전골마저 성공시키며,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8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터진 폭발력은 75분 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서울이 이런 폭발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서울은 그간 한번 골을 넣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골을 몰아 넣으며 경기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곤 했다. 짧은 시간에 골을 넣으며 막강한 폭발력을 과시한 서울. 그래서 이번엔 과거에 보여준 폭발적인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전남과 2009 시즌 개막전을 치른 서울은 전반에만 세 골을 넣으며 3-0으로 넉넉하게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10분 환상적인 골이 터진다.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김치우가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네 번째 골을 뽑아낸 것이다. 다섯 번째 골을 보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반 12분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기성용이 수비수 한명을 제친 뒤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성공 시켰다. 화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고 후반 16분 김치우의 크로스를 이청용이 살짝 내주자 이승렬이 달려들어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겨우 6분 만에 나온 세 골. 그 덕에 서울은 전남을 6-1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그 해 어린이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데얀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스리위자야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결국 서울의 폭발력이 다시 불을 뿜었다. 후반 27분 데얀이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키자, 3분 만에 심우연이 또 다시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흐름은 이어졌고, 4분 후인 후반 34분. 심우연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4-1로 벌리는데 성공했다. 7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승기를 잡은 서울은 결국 추가시간에 터진 데얀의 골까지 묶어 5-1로 승리했다.














라이벌 수원도 서울의 폭발력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2010년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두 팀은 초반 상위권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을 벌였다. 경기 초반엔 수원이 흐름을 가져갔지만, 중반부터 서울의 폭발력이 서서히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전반 24분 데얀의 힐패스를 받은 에스테베즈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슈팅을 날리며 선제골을 뽑아 냈고, 3분 뒤엔 정조국이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2-0으로 벌렸다. 서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5분 뒤인 전반 32분에 최효진의 골까지 묶으며 3-0으로 앞서나갔다. 8분 만에 세 골을 넣은 서울은 결국 후반에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3-1로 꺾고 라이벌전에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서울의 폭발력은 강원전처럼 역전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0년 10월 경남과 홈에서 맞붙은 서울은 전반 2분만에 실점하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고, 설상가상 아디가 전반 10분에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특유의 폭발력이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정조국이 후반 31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이어 4분 뒤 하대성에게 연결된 정조국의 정확한 패스는 역전골로 이어졌고, 또 4분 뒤엔 정조국이 최효진의 패스를 받아 또 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후반 막판 경남에게 추가 실점을 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어려운 경기를 펼쳤음에도 8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2012년 8월. 성남과 원정경기를 치른 서울은 전반 고요한의 패스를 받은 데얀의 발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하밀과 윤빛가람에게 연속골을 내줘 1-2로 역전 당했다. 다급해진 서울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후반 34분에 터진 데얀의 골이 반칙으로 무효처리 되면서 찬물이 끼얹어졌다. 설상가상 데얀은 거칠게 항의하다 경고까지 받는 등 역전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맹공을 퍼부은 결과 후반 43분 아디의 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골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곧바로 이어진 추가 시간. 서울의 폭발 본능은 살아있었고 결국 데얀이 추가 시간에 골을 터트리며 3-2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고, 서울은 5분 만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내며, 패배할 뻔한 경기를 승리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이 이러한 폭발력을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공격 본능과 집중력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은 팬들을 매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막강한 폭발력으로 패배할 듯한 경기를 승리로 뒤집어 버리는 서울의 모습. 앞으로도 서울의 폭발력이 계속해서 살아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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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5.04 23:11




 





2013년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답게 많은 기대를 모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인 장수 슌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을땐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모습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포항과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인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선 2-3으로 패했다. 이후 서울은 부리람과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첫 승에 실패했다. 현재 FC서울의 성적은 1무2패. 순위도 11위에 처져있다. 여러모로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2009년에 보여줬던 모습이 좋은 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준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009년 우승후보로 꼽혔다. 2009년에도 올해처럼 선수단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 등을 줄줄이 떠나보냈지만, 서울은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데얀, 아디, 정조국, 김치우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완벽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FC서울은 우승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출발 역시 좋았다. 전남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서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도 4-2로 승리하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서울은 1-2 충격패를 당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해 1.5군을 내세웠지만, 당시 강원은 신생팀이었고, 주전 대부분이 지난 시즌에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의 모습은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한 서울은 이어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1-0으로 잡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고, 이어서 경남, 대구 등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상대와 맞섰지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서울은 FA컵 김해시청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포항, 감바오사카, 대전, 광주상무, 제주를 연파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스리위자야가 산둥 루넝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극적인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서울은 6월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2009년 초반과 지금의 모습인 2013년 초반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은 스쿼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시즌을 시작했다는 점.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위기설이 나왔다는 점 등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FC서울은 지금의 난관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용수(당시 코치), 데얀, 아디, 고명진, 고요한, 김진규, 김치우 등 현재 FC서울 구성원 대부분이 2009년에도 FC서울의 일원이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서울이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금 강력한 축구를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멋진 축구를 보여줄 FC서울을 기대해보자.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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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3.24 11:03


 

 










The memorable season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2008년 FC서울이다. 2008년 FC서울은 귀네슈 감독의 화끈한 공격축구, 기성용, 이청용 이라는 스타 탄생,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 인상적인 모습이 많이 나왔던 시즌이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FC서울의 2008년.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의 2008년을 돌아보도록 하자.



2008년 최대의 화두. 공격진 강화!



 FC서울은 2007년 세계적인 명장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7위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무엇보다 공격력 부족이 큰 문제였다. 팀 내 최다 득점을 넣은 선수가 6골(두두, 이상협)을 넣을 정도로 골 기근에 시달렸다. 시즌을 앞두고 서울은 공격진에 메스를 들이댔다. 두두를 내보내는 대신 인천에서 19골을 기록한 공격수 데얀을 영입한 것이다. 또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갈고 출신의 이승렬을 데려오며 공격진을 한층 강화했다.



시즌 시작 전 열린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서울은 울산과의 K리그 개막전에선 1-1로 비겼지만 두 번째 경기인 전북 원정 경기에서 데얀과 박주영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열린 경남과의 컵대회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대구와의 리그 경기를 3-1 승리로 장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서울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 줄 만한 영입이 성사된다. 맨체스터 시티, AZ 알크마르 등 유럽 굴지의 팀에서 뛰었던 무삼파가 FC서울에 합류한 것이다. 4월 16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무삼파는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강력한 슈팅력을 선보이며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날개가 되어줄 듯한 무삼파는 이후 부진에 시달리며 3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6월에 팀을 떠나게 된다. 
 


기성용, 이청용의 급성장! 그리고 마지막 퍼즐조각이 된 김치우



서울은 4월 13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제주를 3-1로 물리쳤다. 이후 서울은 리그 4경기에서 1승3무를 기록하며 A매치 휴식기를 맞았다. 패한 경기는 없었지만 무승부가 많은 탓에 강팀의 면모를 보였어도 리그 4위에 머문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 리그에서도 서울의 흐름은 큰 변화가 없었다. 부산과 포항을 잇달아 잡았지만 울산과 전북과는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비중을 적게 두었던 컵대회에서 수원을 1-0 으로 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변함없이 선두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서울로선 약간 아쉬운 일. 그래서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전력보강을 한다.
 


 







서울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전남에서 김치우를 데려와 측면을 강화했다. 김치우는 데뷔전인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서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1월2일 부산에 0-2로 패하기 전까지 서울은 7승2무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새로 합류한 김치우와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기량이 급성장한 기성용과 이청용. 외인 공격수 데얀의 변함없는 활약은 서울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또 조커로 활약한 이상협과 이승렬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렬은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고, 그 해에 넣은 5골 중 3골이 결승골이었다. 이상협 역시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42분 환상적인 왼발 발리 슈팅으로 1-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승리로 서울은 시즌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이상협은 2008년에 출장한 17경기 중 15경기를 교체 출장하며 귀네슈 감독의 히든 카드로 활약했다. 서울은 부산에 0-2로 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15승 9무 2패 승점 54점으로 수원(17승 3무 6패)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수원 +22, 서울 +19) 2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 했다.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서울의 상대는 울산. 서울은 광대뼈 부상을 당한 정조국을 선발 출장 시키며,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고, 결국 정조국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후반 염기훈에게 실점하긴 했지만 서울은 연장전에서 골 폭풍을 몰아쳤다. 데얀, 김은중이 연속골을 터트렸고, 그 해 군에서 전역한 김승용마저 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4-2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수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서울은 아디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곽희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선 에두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정조국의 페널티킥으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수원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김호준이 송종국의 슛을 선방했지만, 송종국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며 2-1을 만들었다. 결국 서울은 스코어를 뒤집지 못했고,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장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기성용은 팀의 우승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지만, 아쉽게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서울의 2008년은 많은 것을 얻은 해였다. 우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귀네슈 감독의 총애 아래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이어졌다. 기성용은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구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선 이청용의 정확한 크로스를 기성용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또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이청용이 골의 단초가 되는 전진 패스를 내줬고, 기성용이 상대 실수를 틈 타 골을 성공시키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FC서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가 꽃을 피운 것도 고무적이다. 2007년 고작 23골이었던 팀 득점은 1년 만에 50골로 늘었다.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 이청용의 창조적인 드리블, 데얀의 치명적인 마무리, 이상협의 특급 조커 역할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울의 공격은 불을 뿜었다. 귀네슈 감독 특유의 공격 성향도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울산전에서 1-1로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하자 귀네슈 감독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공격수 김은중, 이상협을 투입하며 공격 성향을 잃지 않았고, 결국 이는 대량 득점으로 이어져 4-2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플레이오프 라는 중요한 대회에서도 귀네슈 감독은 특유의 ‘공격 본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이 강해도 수비가 약하다면,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수비라인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레프트백 아디는 귀네슈 감독이 가장 믿는 수비수 중 하나였고, 김치곤과 김진규는 든든한 센터백 듀오였다. 또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한윤의 활약은 기성용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였다. 수비진의 활약덕에 서울은 30실점으로 최소 실점 공동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2001년 준우승 이후 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서울은 준우승을 거두며 다시금 ‘강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 우수한 젊은 선수들의 출현과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했기에 2008년 FC서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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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2.01 22:41

 

 

 

- 팀 창단 29년 만에 부산, 울산, 포항, 제주에 이어 K리그에서 5번째로 대기록 달성

 

 

 

-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키는 기회

 

 

 

 

 

FC서울(이하 서울)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9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창단(1983) 29년 만에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의 대기록을 달성한다.

 

서울은 국내 프로축구 제 5호 구단으로 창단해 그동안 K리그를 이끌어왔으며 지난 시즌 기록을 달성한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에 이어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팀 통산 1,000경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다른 기록들에 비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팀 득점이나 팀 최다 승 등의 다른 기록들은 팀과 선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록 달성까지의 기간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기록만큼은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 팀만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통산 1,000경기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29년간 서울은 전 대회 통산 371311317(정규리그 312230260)를 기록해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에 이어 K리그에서 세 번째로 통산 4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통산 1327득점과 1209실점(정규리그 1075득점 971실점)을 기록 중이다.

 

 

 

 

 

 

서울은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을 시작으로, 고재욱, 조영증, 박병주, 조광래, 이장수, 귀네슈, 빙가다, 황보관 그리고 현재의 최용수 감독의 지도하에 리그 우승 4(준우승 5), 컵 대회 우승 2(준우승 4), FA컵 우승 1회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재작년인 2010 시즌에는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팬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울은 선진 마케팅 도입을 통해 그동안 한국 프로스포츠와 K리그에서의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는데 LED(발광다이오드)전광판 도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모바일 티켓 예매 시스템, 소셜커머스를 통한 티켓북 판매, 외국인의 날, 팬들이 제작한 립덥 뮤비그리고 통합 시즌권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서울의 축구 철학은 고스란히 관중 기록으로 이어져 한국 프로스포츠 한 경기 최다 관중(6747)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정규리그 평균 관중 3만 명 돌파 그리고 K리그 두 시즌 연속 시즌 누적 50만 관중 달성 등의 자랑스러운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길러내며 한국축구의 중심축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온 서울은 이번 K리그 통산 1,000경기 달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명문 팀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 더 확고히 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서울은 앞으로도 존재하고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다가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 시작의 축제를 다함께 즐겨보자.

 

/ =FC서울명예기자 김종호(fabrer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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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4.20 16:48




FC서울이 홈 개막전 징크스를 보란듯이 깨며 1승을 기록했다. '역시 데몰리션!'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던 경기였다. 데얀은 논란을 잠식시키는 절묘한 헤딩으로 이운재를 무너뜨리고, 몰리나는 훌륭한 몸놀림으로 이운재를 무너뜨렸다. 이 둘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오랜만에 FC서울만의 오밀조밀한 패스 플레이와 빠른 공격 전개를 보여주면서 올 시즌 'FC서울 축구'의 귀환을 알리는 서막을 알렸다.






어제 경기의 MOM(Man of The Match)는 결승골을 넣으며 멋진 활약을 보여준 데얀에게 돌아갔지만 데얀 못지 않게 완벽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고요한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제 경기에선 데얀과 함께 핫 이슈가 되고 있는 몰리나의 그늘에 가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어제 경기에서 공격과 수비에서 가장 활발했던 선수는 고요한이었다. 오늘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투고화투 패가 쫙쫙 안 붙던 시절엔...


화투판에서 투고는 참 애매하다. 쓰리고는 꽉 찬 느낌이고 원고는 이제 시작한 느낌이다. 투고를 외칠 정도면 '왠지 쓰리고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있을 때다. 투고를 외치고 화투패가 제대로만 붙어준다면 쓰리고는 시간문제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건 당연지사다. FC서울도 투고를 외쳤다. 급하게 외친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딱 맞는 패가 없어서였는지...아무튼 그 동안 FC서울의 투고는 매우 애매하게 팀에서 머무른 건 사실이다. 특히 투고 중 고요한이 맞는 패가 없어보였다. 딱히 떨어지는 능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능력도 없어 보였다. 빠른 발이 주특기라면 주특기였다.






그가 본격적인 출전 기회를 잡게 된 것은 당시 포지션 경쟁자(?) 였던 이청용이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한 뒤부터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게 된 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009년에는 국가대표까지 승선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 딱 맞는 듯한 위치를 찾기 힘들어보였다. 빠른 발과 더불어 다부진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킥의 부정확성 등으로 인하여 가끔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될 때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패스가 끊기기 일쑤였고 공격의 흐름을 끊어놓는 역할이었다. 아마도 본인을 비롯한 많은 팬들이 고요한에게 걸었던 기대감을 거두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쓰리고로 가겠다는 타짜 최용수 감독의 한 수


투고에 대한 최용수 감독의 믿음은 확실하다. 아무래도 함께 해 온 시간이나 지낸 시간이 길어 그들의 잠재적인 능력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고광민이 등장, 어감상 '쓰리고'는 완성이 되었다. 우연의 일치지만 시기상 작년 시즌부터 고명진과 고요한은 최용수 감독의 믿음 하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여지껏 쓰였던 '유망주'라는 딱지를 드디어 뗄 타이밍이 온 것이다.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을 오른쪽 미드필더보단 오른쪽 윙백 자리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마치 타짜가 패를 바꾸는 듯한 한 수였다. 사실 처음 최용수 감독이 고요한을 윙백으로 출전을 시켰을 땐 '아, 최효진의 공백이 정말 크구나.'라는 걸 느꼈다. 최효진의 빈자리를 메워줄 선수가 정녕 없기에, 고요한을 저 위치에 기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선택은 '땜빵'용이 아닌 고요한의 잠재력(이른바 포텐)을 터뜨리는 한 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바로 어제인 3월 10일 전남전이었다.



그의 전남전 활약 Key Point였던 이유


2라운드 전남전에서 그의 플레이를 치켜 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데얀과 몰리나의 공격에 윤활유가 될 플레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간간히 보여주었던 오버래핑으로 인해 전남 수비진은 쉽게 무너졌다. 그리고 수비에 있어서도 측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전남의 플레이를 번번히 차단하면서 전남의 맥을 빼놓았다. 진정한 '윙백 교과서'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가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어제 오른쪽 윙어들의 부진일 수도 있다. 선발로 출장했던 최태욱은 그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교체되었고 교체되어서 들어온 김태환은 빠른 발로 드리블은 이어졌지만 그렇다 할 크로스나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그들의 뒤를 받춰주는 고요한은 윙백으로서 모든 걸 보여주었다. 그의 오버래핑은 데얀과 몰리나, 고명진을 도왔고 그의 수비는 김진규, 김동우를 도왔다. 플레이 무게 중심의 축을 오른쪽으로 이끌고 오면서 경기를 전체적으로 지배를 했다. 윙백 고요한이 숨은 곳에서 지배했던 경기였다.



맞는 옷을 입고 비상하라 고요한


사실 오른쪽 윙백으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고요한은 아직 최효진에 비해선 '아기'일 수 있다. 체격면에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최효진 특유의 태클이나 몸놀림은 아직 고요한이 배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지금의 고요한 모습이 지속된다면 K리그를 대표하는 윙백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아보인다. 물론 최효진이 FC서울로 복귀를 하게 된다면 고요하는 다시 오른쪽 미드필더로 복귀할지 모른다. 하지만 고요한은 이번 기회를 다시금 잘 잡았으면 좋겠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의 자리는 항상 대기자들이 즐비하던 FC서울이다. 오히려 오른쪽 윙백의 자리는 FC서울의 오랜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좋은 자원이 있던 때에도 부상으로 시달렸다. 지금도 역시 전문적인 오른쪽 윙백의 부재가 아니던가. 이럴 때가 오히려 고요한에겐 전환의 기회고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가 가진 능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포지션은 어찌보면 측면 미드필더보다 윙백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지만 전남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최고의 윙백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그나저나 글과는 관계 없지만 우리 김동우 선수. 왜 그렇게 실력이 늘었나요??^^ 정말 믿음직스러워졌음 !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akakjin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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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2.03.11 17:40


앞으로 하루가 남았다. 18일, 서울은 강원과의 리그 14번째 경기를 치른다. 서울은 과거 2년을 포함하여 3번째 강릉 원정을 떠난다. 매번 춘천도 아니고 강릉이었다. 매 경기마다 우리는 강릉에서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다.

강원FC는 2008년에 창단된 K리그의 15번째 구단이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강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강릉에서의 특별한 추억, 지금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 추억(2009.7.19) - 이청용의 고별전



2009년의 강원은 현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홈에서 1승을 겨우 거두는 지금과는 달리 2009년에는 신생팀 돌풍을 일으키며 '원정팀의 무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 서울은 데얀 2골, 이청용 1골로 3-1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인해 서울은 다시 선두를 탈환했다. 이 날 승리도 값진 것이었지만 팬들의 마음속에는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강원과의 이 날 경기는 이청용이 볼턴으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청용의 골과 팀의 승리는 그가 팬에게 주는 고별 선물이었던 셈. 언제나 그렇듯,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은 서포터즈석으로 걸어와 인사를 했다. 선수들이 뒤로 돌아 가는 순간, 팬들은 이청용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가 뒤를 돌아봐주기를 바라면서. 이청용은 그런 팬들의 요구에 답하듯 다시 서포터즈석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한 팬으로부터 확성기를 건네받아 팬들에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팬들에게 사랑한다고. 그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 팬들에게 인사했다. 이청용은 왼쪽 가슴의 엠블럼에 손을 갖다 대고 팬들에게 영국 신사처럼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장면은 팬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이청용의 마지막을 잊지 못하게 했다.






두 번째 추억(2010.3.7) - 설원 위의 축구



2010년에도 서울은 어김없이 강릉으로 원정을 떠났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3월. 조금 쌀쌀했지만 햇볕만은 따뜻했다. 팬들도 추운 겨울 내내 기다려왔던 리그 개막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강원도에 가까워져갈수록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 눈발은 함박눈으로 변했고 눈은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강릉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눈은 꽤 높이 쌓여있었다. 경기가 과연 열릴 수 있을까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을 치운 덕분에 경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날씨는 추웠고 눈이 쌓여 경기장 내 선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계속되었다. 추웠던 날씨와 굵은 눈보라도 서포터즈의 응원을 막을 수 없었다. 이 날 경기에서 서울은 3-0으로 승리했다. 방승환의 2골과 아디의 1골, 총 3골을 넣으면서 승점 3점을 챙겼다. 2010년 3월 7일, 이 날은 K리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눈밭 축구', '설원축구'가 열렸다. 이런 축구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그 날 경기에 왔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세 번째 추억(2011.6.18) - ?



이번에도 서울은 강릉으로 원정을 떠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서울 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  이번 경기의 날씨는 어떨까. 구름이 많다고는 하지만 강수확률은 20%. 비가 올 확률은 낮지만 만약 비가 온다면 비와 관련한 또 다른 멋진 추억이 생길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원정을 떠나는 것 자체가 원정을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강원FC와의 강릉에서의 3번째 경기, 어떤 새로운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해보자.



/글= 이슬희 FC서울 명예기자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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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17 12:47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후,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애칭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정환이 아내에게 보내는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직까지 서울에서 안정환처럼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을 얻은 선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기억 남는 세리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많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



박주영의 대표 세리머니는 사실 기도 세리머니다. 박주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상 깊은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는 최근 그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하트 세리머니를 보이거나 키스 세리머니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는 배가 불러왔다는 동작을 통해 부인들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기도 한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그 해 4월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유니폼 안의 티셔츠에 여자친구의 애칭인 ‘굼벵이’와 ‘하트’를 그려 넣어 여자친구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이 세리머니로 인해 박주영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알려졌고 많은 여성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고. 2005년부터 이어져온 박주영의 사랑은 오는 6월 12일 결실을 맺는다. 그는 축구천재이기도 했지만 한 여자를 위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김승용의 ‘댄스 세리머니’



김승용은 현재 서울 선수는 아니지만 매번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승용은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이 생긴 경우다. 당시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리마리오 춤을 김승용이 세리머니로 똑같이 춘 것. 이 때문에 김승용에게는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서울에 다시 돌아온 김승용은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리마리오 댄스를 췄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은“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라는 반응과 “군대에서 2년동안 리마리오만 연습했나보다”라며 새로운 세리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본 김승용은 새로운 댄스 세리머니를 추게 된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이미 2007년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화제에 올랐던 김승용은 2009년 5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에게 ‘쏘리쏘리’춤을 췄다. 김승용은 "그동안 골을 못 넣은 것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쏘리쏘리 춤으로 대신했다"라며 골 세리머니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김승용. 그는 당시 유행하는 춤들로 팬들에게 재밌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다.



이청용의 ‘엠블럼 키스’



이청용은 한결같은 세리머니를 보여준 선수다.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로 대표된다면 이청용은 골을 넣은 뒤 엠블럼에 키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팬들과 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청용만의 세리머니였다. 많은 팬들은 그의 ‘엠블럼 키스’를 좋아했고 이는 볼턴에서도 이어졌다. 볼턴에서 골을 넣으면 서울 팬들에게 ‘엠블럼 키스’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첫 골을 성공시킨 이청용은 당시에 “정신없어 하지 못했다”며 후에 2009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청용의 또 다른 약속은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것. 그가 나중에라도 서울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엠블럼 키스’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용의 ‘캥거루 세리머니’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캥거루 세리머니’로 대표된다. 그가‘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다, 기성용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았다. 그리고는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는 듯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0-0이었던 후반 인저리타임에 한솥밥을 먹는 차두리와 극적인 연속골을 뽑아냈을 때도 ‘캥거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기성용이 2008년 수원전에서 ‘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였을 때, 그 이유에 대해 “평소에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보고 아데바요르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선수가 인상깊은 세리머니를 해서 그냥 따라해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세리머니가 펼쳐졌을 때, 논란이 일었다. 기성용의 세리머니가 ‘새 모이쪼기’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이 ‘빅버드’였던만큼 새를 떠올리게 하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승렬의 ‘배트맨과 기타 세리머니’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이승렬. 그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승렬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경기장 한 쪽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의 재치있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이승렬의 현재 별명은 피터팬이다. 그러나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별명 중에는 ‘배트맨’도 있었다.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았던 그는 당시 소감에서 "2년차 징크스 없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배트맨 세리머니를 보이며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데얀의 ‘위험한 세리머니’



데얀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첫 시작은 2009년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벌어졌다. 골을 성공시킨 데얀은 매우 흥분한 나머지 전남 벤치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졌다. 순간 전남 벤치에 있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분노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왔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졌다. 그리고 당시 주심은 도발에 대한 행위로 데얀에게 경고를 선언했다. 이미 1장의 경고를 받은 데얀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를 향한 조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았다. 포항의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를 향해 활을 쏜 것과 같은 이유로 경고를 받은 것. 이후,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얀에게 “팬들은 이런 세리머니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이런 세리머니를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알지만 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은 이런 위험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조국의 ‘아빠 세리머니’



정조국은 결혼 후에 패트리어트라는 별명 대신에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조국은 2010년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13골 중 10골은 아들이 세상에 나온 후 기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그에게 아들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은퇴한 네덜란드산 폭격기 베르캄프로 변신했다는 의미에서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골을 성공시킨 뒤 엄지를 손에 문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 그는‘분유캄프’라는 별명답게 젖병 세리머니,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등을 펼쳤다. 현재는 프랑스로 떠난 그이지만 멋진 활약을 보여준 ‘분유캄프’정조국을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최태욱의 ‘수화 세리머니’



최태욱의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다. 동작도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세리머니를 했다. 최태욱은 지난 2010 쏘나타 K리그 대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달려가면서 한 손 위에 엄지를 치켜세운 다른 손을 올린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최태욱을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그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의 수화를 세리머니로 보여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렸다. 최태욱은 현재 부상 중이다. 얼른 회복하여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수화’세리머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명진의 ‘광고판 세리머니’



고명진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16강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최근 최용수 감독 대행 하에서 고요한과 함께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은 1997년 최 감독 대행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이 1997년 카자흐스탄과의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선제골 후 넘어진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고명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너무 많이 달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골을 넣어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고명진은 최근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고명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고명진의 세리머니는 최 감독 대행의 예전 세리머니와 겹쳐보였다.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아기 독수리’고명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세리머니에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경우도 있다. 골을 성공시킨 뒤 단순하게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색다른 세리머니를 통해 선수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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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06 20:41






유럽으로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FC서울은 K리그에서 해외파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한 등용문으로 FC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최근에는 정조국까지. FC서울은 계속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의 이적을 허용해왔다.




얼마 전 오세르에서 뛰고 있는 정조국의 2호골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데얀과 함께 서울의 공격 라인을 이끌며 많은 골을 넣었던 그였지만 프랑스로 이적한 뒤, 골 소식은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정조국의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정조국은 2호골을 성공시키면서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들으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유럽으로 떠난 FC서울의 전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나코의 보배 박주영



최근에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온 박주영부터 살펴보자.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 입단 당시부터 이슈였다. 입단 전부터 이미 스타였던 박주영은 ‘축구 천재’라고 불리며 서울 팬들 앞에 나타났다. 박주영은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FC서울이 K리그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해주었다. 박주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들었고 박주영은 그에 보답하듯 멋진 골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박주영이 2008년 프랑스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도 그랬듯 AS 모나코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박주영은 골을 넣는 역할 뿐만 아니라 팀 내 다른 공격수의 슈팅 찬스까지 만들어주는 등 팀에서 그의 비중은 크다. 2009/2010 시즌에는 9골(컵대회 포함) 3도움을 기록했다.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긴 했지만 프랑스컵(Coupe de France) 결승 무대에도 나섰다. 2010/2011 시즌에는 모나코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31경기 12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현재 강등권에 놓여있다. 박주영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그와‘빅클럽’들이 연관된 이적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많은 팬들은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를 떠나 더 큰 무대에서 뛰기를 바란다. 박주영은 지난 5월에 ‘골닷컴’에서 선정한 ‘빅리그에 갈 재능 TOP 5’에도 선정되었다. 박주영 본인도 이를 원하는 듯하다. 결혼과 함께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는 박주영의 소식을 듣길 바란다.



여전히 그리운 쌍용



귀네슈 감독 부임과 함께 FC서울 축구에 ‘빅재미’를 선사했던 쌍용은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쌍용’은 박주영 다음으로 FC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FC서울에서 뛰며 실력을 다져온 그들은 귀네슈 전 감독의 신임 아래서 무럭무럭 성장해 FC서울의 기둥이 되었다.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쌍용’은 국가대표에서도 주축 선수로 성장하며 서울과 국가대표에서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후, ‘쌍용’은 유럽으로 떠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한다.






‘쌍용’중 가장 먼저 이적한 것은 ‘블루 드래곤’이청용이었다. 27번이라는 번호가 서울팬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청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먼 타국의 축구팬들도 그의 가치를 알아본 것일까. 이청용은 잉글랜드 볼튼에서도 팬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청용은 입단 첫 시즌에 볼튼의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올해의 톱3상’, ‘선수가 뽑은 최우수 선수상’ 등을 휩쓸며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2010/2011 시즌에는‘올해의 톱3상’을 받으며 볼튼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올 시즌 그의 공격포인트는 4골 8도움으로 12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3개였던 작년과 비교하면 하나가 모자라지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다. 2009/2010 시즌이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면 2010/2011 시즌은 이청용이 팀 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청용은 시즌 초반 정규리그 17경기에 연속 출전하며 볼튼의 시즌 초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었다. 시즌 막판에는 14위로 시즌을 마감한 볼튼이지만 시즌 초에는 유로파 리그 티켓 확보 가능한 순위인 6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런 이청용의 활약에 해외 언론도 호평을 쏟아냈다. EPL 선수 랭킹에서 이청용은 최고 20위(2010.11)에, ‘유로스포츠’가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2회나 선정됐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골닷컴’ 이 선정한 ‘올 시즌 아시아 선수 베스트 10’에서 4위에 올랐다. 이처럼 이청용은 FC서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 볼튼의 에이스가 되었다.




‘쌍용’의 또 다른 주인공 ‘기라드’기성용은 얼마 전 팬들에게 기쁜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전반 32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에서도 들어 올리지 못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경기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올 시즌 성적으로‘80점’을 매겼다. 기성용은“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 20점을 뺐다”고 말하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 외에는 완벽에 가까운 시즌으로 평가했다. 기성용은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 4골 5도움을 기록했다. 그는“적응을 잘 했고 거친 리그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주영과 이청용에 비하면 늦게 유럽으로 진출한 그는 이제 갓 한 시즌을 마쳤다. 박주영, 이청용 모두 이적 후 첫 시즌보다 적응을 마친 다음 시즌에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것처럼 기성용도 첫 시즌보다는 더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까지. FC서울의 전사들은 FC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적한 프랑스 오세르의 정조국은 2호골을 기록하면서 점차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FC서울의 자랑과도 같다.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며 멀리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선수들도 이국에서 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멀리서도 서울의 승리를 기원하며 서울의 우승을 응원한다. 얼마 전 기성용은 귀국 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서울과 함께하는 서울의 전사들. 그들이 유럽 무대에서 멋진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서울의 선수들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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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2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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