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실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는 ‘젊은이라도 믿음을 얻게 되면 아무도 모르는 새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또 중국 후한 말의 무장 손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서 돌아오겠다” 던 태사자의 말을 믿어준 결과 세력 확장에 성공하며 오나라 건국에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FC서울에도 믿음의 힘으로 어엿한 주축 선수로 성장한 선수가 있다. 바로 ‘투고’라고 불리는 고명진과 고요한이 그들이다. 과거 초특급 유망주로 불리며 어린 나이에 FC서울에 입단한 두 선수는 불과 몇해 전 까지만 해도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FC서울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두 선수를 성장시켰을까? 그 속엔 최용수 감독의 믿음이 있었다.










석관중을 중퇴하고 지난 2003년 LG치타스(現FC서울)에 입단한 고명진. 입단 당시부터 그는 한국축구를 이끌어 갈 대형 유망주로 손꼽혔다. 귀네슈 감독 역시 그의 잠재력에 주목. 조금씩 출전 기회를 부여하며 프로 적응을 도왔다. 2009년엔 23경기에 출전하며 서서히 프로무대에 안착하는 듯 했지만 2010년 시련이 찾아온다. 그 해 부임한 빙가다 감독은 베테랑을 중시했고, 고명진은 그라운드 보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결국 고명진의 2010년 성적은 9경기 출전에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2011년에도 고명진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즌 초 무릎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시련이 길어지는가 했지만 그 해 4월 최용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며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최용수는 감독 대행 데뷔전인 제주전을 앞두고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고명진을 대동하며 선발 출전시킬 것을 암시했고, 결국 고명진은 선발 출장하여 후반 36분 역전골을 터트리는 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 이전까지 고명진은 교체 투입 1회가 전부였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은 자신의 데뷔전에 과감히 고명진을 선발로 투입하며 믿음을 보였고, 결국 고명진은 역전골로 믿음에 보답했다.




이후 고명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경남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도움을 기록한 고명진은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경기에선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고명진은 골 세리머니로 과거 최용수 감독이 현역 시절 보여줬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무더운 여름이 되자 고명진의 기량도 절정에 다다랐고, 작년 여름 7연승 기간 중엔 무려 5도움을 기록하며 팀 연승에 숨은 공신이 되기도 했다. 2011 시즌 그의 기록은 24경기 출전 2골 7도움. 모든 부문이 ‘커리어 하이’ 였다. 올해도 그는 작년보다 많은 29경기에 출전해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FC서울의 주축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고요한 역시 고명진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FC서울에 입단한 선수다. 토월중을 중퇴하고 지난 2004년 FC서울에 입단한 고요한은 체구는 작지만 빠르고 강한 체력을 앞세워 기대를 모으는 선수였다. 고요한 역시 귀네슈 감독에 의해 조금씩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2010년엔 7경기 출전에 1골에 그쳤다. 2011년 초반엔 하대성, 고명진 등 중앙 미드필더들의 부상으로 고요한이 그 자리를 메꿨지만 중앙 미드필더는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용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고 측면 미드필더로 돌아오면서 고요한 역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해 5월에 열린 알 아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한 고요한은 경남과의 홈경기에선 프로 데뷔 첫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시즌 중반엔 부상에서 돌아온 최태욱, 신예 고광민 등과 힘겨운 주전경쟁으로 출전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을 잊지 않았고, 결국 시즌 막판엔 서울의 고민거리였던 라이트백 위치에 서며 주전으로 복귀했다.





라이트백으로 가능성을 보인 고요한은 2012 시즌 개막전부터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전했고,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안정된 수비로 단숨에 부동의 라이트백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 맹활약으로 고요한은 국가대표팀에도 차출되었으며, 잠비아와의 평가전,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전은 잘나가던 고요한 에게 시련을 준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고요한은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미끄러운 그라운드에 적응하지 못하며 시종일관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고, 결국 고요한은 팬들에게 거센 질타를 받아야 했다.





보통 A매치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선수는 후유증으로 K리그에서 악영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후 열린 부산과의 스플릿 라운드 첫 경기에서 고요한의 출전을 예상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최효진과 이종민이 전역하면서 팀에 합류해 최용수 감독의 선택지는 예전보다 늘어났다. 하지만 최용수의 선택은 변함없이 고요한 이었다.




이 날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선발 출장한 고요한은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려는 듯 90분 내내 사력을 다해 뛰었고 후반 18분엔 상대의 헤딩 슈팅을 골대 앞에서 막아내는 수훈을 보였다. 결국 고요한은 팀의 2-0 승리에 일조했고, 최용수 감독은 자칫 슬럼프에 빠질 뻔했던 고요한을 과감히 선발 출장 시키며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줬다. 고요한은 여전히 FC서울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본인의 한 시즌 최다 출장인 29경기에 출장하고 있다.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이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고명진과 고요한 에게도 어울린다. 자신을 믿어주는 최용수 감독을 위해 두 선수는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펼쳤고, 결국 이러한 모습은 미완의 대기였던 두 선수가 FC서울의 주축 선수로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투고’를 성장시킨 최용수 감독의 믿음. 앞으로 어떤 선수가 최용수 감독의 믿음을 얻으며 FC서울의 주전으로 도약할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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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10.07 22:07

 




 2012년 임진년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만에 찾아 온 흑룡의 해로, 용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신적인 상상속의 동물로 상위층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띠해. 보통 자신의 띠해는 반갑기 마련인데 이는 용띠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용의 해를 맞이하여 활약이 기대되는 FC서울의 용띠 선수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아디




생년월일 : 1976년 5월 12일

신체조건 : 183cm, 81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다렌스더(중국)

입단년도 : 2006

FC서울 통산 기록 : 193경기 14골 7도움



1976년생인 아디는 선수단 내 최고령 선수다. 최용수 감독과도 3살밖에 차이가 안 나고 김성재 코치와는 동갑이다.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나이지만 아디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2011 시즌 30경기를 소화하며 데얀과 함께 팀 내 최다 출장을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06년 FC서울에 입성한 아디는 입단 초 부진한 모습과, 패배의 빌미가 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하며 미운오리로 보이기도 했지만, 미운오리가 백조임을 알아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매 시즌 30경기 안팎의 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자리잡았고, 통산 14골을 기록하며 득점력까지 갖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2010 시즌엔 원래 포지션인 레프트백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까지 소화하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러한 헌신에 팀은 시즌 종료후 아디를 MVP 후보에 올리기도 했다. 올해 36세가 되는 아디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것이다. 1년 재계약으로 2012 시즌에도 FC서울과 함께 하게 된 아디는 여전히 수비진의 중심축으로 활약할 것이 확실하다.



2. 고명진





생년월일 : 1988년 1월 9일

신체조건 : 185cm, 77kg

포지션 : MF

전소속팀 : 석관중

입단년도 : 2003

FC서울 통산 기록 : 107경기 7골 9도움



요한 볼프강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 에는 ‘젊은이라도 신임을 얻게 되면, 아무도 모르는 새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올해 최용수 감독의 신임을 얻은 고명진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당당히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2003년 석관중을 중퇴하고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한 고명진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대형 유망주로 손꼽혔다. 귀네슈 감독도 그의 잠재력에 주목해 조금씩 출장 기회를 부여했고, 서서히 프로에 적응해나가나 싶었지만 2010년 빙가다 감독 부임 이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베테랑을 중시했던 빙가다 감독은 고명진을 외면했고, 결국 그는 데뷔 후 최저인 9경기 출전에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다.


2011 시즌 초에도 무릎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시련이 길어지는가 했지만 최용수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8년동안 ‘선수-코치-감독’ 으로 함께한 최용수는 자신의 데뷔전인 제주전에서 과감히 선발 출전시키며 신뢰를 보였고, 고명진 역시 그 신뢰에 보답이라도 하듯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 고명진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한 패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FC서울의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도약한 고명진은 24경기 출전에 2골 7도움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데뷔 후 최다 출장 및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남기며 서울의 후반기 대반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FC서울이 7연승을 달렸던 지난 여름. 고명진은 이 기간 동안 4경기 연속 도움을 올렸고, 팀의 주포인 데얀과는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2012년 고명진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최용수 감독이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는 점이다. 자신을 잘 알고 신임해주는 지도자 아래 고명진은 더 큰 비상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이젠 FC서울의 유망주가 아닌, 즉시전력감 으로 거듭난 그의 활약을 지켜보자.



3. 고요한






생년월일 : 1988년 3월 10일

신체조건 : 170cm, 65kg

포지션 : MF

전소속팀 : 토월중

입단년도 : 2004

FC서울 통산 기록 : 53경기 4골



토월중을 중퇴하고 2004년 FC서울에 입단한 고요한은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중 하나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고명진과 함께 ‘투고’ 라는 애칭이 붙기도 한 고요한은 2009년부터 출장 수를 늘려가며 서서히 자신을 알려 나간다. 젊은 선수들을 중시하는 귀네슈 감독의 지도 아래 쉐도우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16경기에 출전하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고요한 역시 고명진처럼 빙가다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2010년 7경기 출전에 1골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해가 바뀐 2011년. 하대성, 고명진등 중앙 미드필더들이 시즌 초부터 부상에 시달리자 고요한이 자리를 옮겨 개막전부터 경기에 나섰지만, 중앙 미드필더는 고요한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측면 미드필더로 돌아온 후부터 고요한의 플레이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성공시킨 고요한은 5월 알아인 과의 AFC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에서도 골을 터트렸고 2주 후 열린 경남과의 홈 경기에선 프로 데뷔 후 첫 헤딩골 및 멀티골을 넣는 대활약으로 팀의 3-1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시즌 중반 부상에서 돌아온 최태욱과, 신예 고광민에게 자리를 내주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 싶었지만 시즌 막판부터 다시 경기에 나섰고, 라이트백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2011 시즌, 개인 최다인 19경기 출전 3골을 기록했다. 고요한의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더는 베테랑 최태욱, 올림픽대표 김태환, 신예 고광민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상되지만 작년 개인 최다 출장과 득점을 이룬 만큼 그 여세를 잘 몰아간다면 고요한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제 겨우 25세지만 FC서울에선 7번째 시즌을 맞이 하는 고요한. FC서울 유망주 육성 정책으로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이청용과 기성용은 유럽진출을 이루었고, 고명진도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젠 고요한이 보여줄 차례다.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좀 더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띠해인 2012년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4. 김동우




생년월일 : 1988년 2월5일

신체조건 : 189cm, 83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조선대

입단년도 : 2010

FC서울 통산 기록 : 26경기



2010 시즌 중반 FC서울에 위기가 찾아왔다. 수비라인의 중심이 아디와 박용호가 각각 광대뼈 골절과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택된 선수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동우. 그 해 5월 23일 리그컵을 통해 1군 데뷔전을 치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선수였지만 신인이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적잖았다.


하지만 김동우는 리그 후반에만 9경기 연속으로 경기에 출전하며 박용호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2011 시즌 초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7월부터 다시 경기에 출전하며 서울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고 작년보다 더 많은 16경기에 출전하며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큰 키를 바탕으로 한 공중전에 강한 김동우는 잘생긴 외모 덕에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다. 빼어난 수비력과 상품성까지 갖춘 김동우가 2012년에 더 나은 활약을 보인다면 그는 FC서울을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김동우의 비상을 기대해보자.



4. 고광민




생년월일 : 1988년 9월21일

신체조건 : 172cm, 63kg

포지션 : FW

전소속팀 : 아주대

입단년도 : 2011

FC서울 통산 기록 : 7경기 1도움



아주대를 졸업하고 2011년 드래프트 2순위로 FC서울에 입단한 고광민은 체구는 작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적극적인 돌파가 돋보이는 선수로 주목받았다. 시즌 시작을 2군에서 했지만 그는 바로 가능성을 보였다. R리그 첫 경기인 수원전에서 교체 투입된 고광민은 그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다음 경기인 경찰청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골을 넣는 등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고광민은 이 후 R리그에서 8경기 연속으로 출전했고 5월 18일에 열린 용인시청과의 FA컵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시즌 중반부터 K리그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고광민은 8월20일 제주와의 경기에서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10월 3일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선 팀의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 시즌 그의 기록은 7경기 출전 1도움. 하지만 그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최용수 감독 역시 고광민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작년보다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뛰어난 스피드로 경기 막판 팀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플레이가 가능한 만큼 조커로서 활약이 기대된다.


5. 이규로





생년월일 : 1988년 8월 20일

신체조건 : 180cm, 68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전남드래곤즈

입단년도 : 2010

FC서울 통산 기록 : 16경기 1도움



전남에서 보여준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이규로. 그 활약이 서울에서도 이어지는가 했지만 아쉽게도 이규로는 시련에 빠지며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입단하자마자 당한 오른쪽 발목 부상이 그의 전진을 가로막았고, 설상가상 최효진, 이종민등과의 포지션 경쟁에서도 밀리며 정규리그에서 고작 2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2011년 이규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0 시즌 종료 후 최효진, 이종민이 동반 입대했고, 상무에서 돌아온 최원권이 제주로 떠나면서 이규로는 팀 내 유일한 라이트백 자원으로 남은 것이다. 그 덕에 라이트백 자리에 무혈입성 하면서 개막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시즌 두 번째 경기인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헤딩 미스를 범하며 선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등 부진한 모습으로 다시 벤치로 밀려나야만 했다.
 

최용수 감독대행 부임 이후 다시금 기회를 얻는 가 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11년 서울의 라이트백 자리는 김태환, 최현태, 현영민, 고요한등 여러 선수들이 포진되면서 안정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규로의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여전히 그가 팀 내 유일한 전문 라이트백이란 점이다. 그가 라이트백 위치에서 제 몫을 해준다면 서울은 좀 더 안정된 전력을 갖출 수 있다. 또 그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장점으로 최용수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축구에 부합하는 선수다.


2009년 전남에서 28경기에 나와 5골을 넣었고, 국가대표팀에도 발탁 되 A매치에도 뛴 경력이 있는 만큼 제 컨디션을 찾는 다면 좋은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 2012년엔 최효진과 이종민이 복귀하는 해이지만 9월은 되야 돌아오는 만큼 이 기간 동안이라도 이규로의 활약은 절실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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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1.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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