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하대성, FC서울에서의 그의 활약을 돌아본다.

‘K리그 200경기 출전까지 1경기’

 

고등학교 졸업 후 2004년 울산 현대의 유니폼과 함께 K리그에 입문한 하대성은 대구FC, 전북FC를 거쳐 2009년 12월 FC서울로 이적했다. 그는 FC서울로 이적하기 전까지 여러 팀을 전전하며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FC서울에 입단한 이후 19골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든든한 주장으로써 팀에 두 번의 우승을 안겨주었다. 그런 하대성이 오는 3월30일 경남과 그의 K리그 200번째 경기를 펼치게 된다(FA컵, ACL제외). FC서울의 유니폼을 입게 된지도 어언 4년차. 그의 200경기를 기념하며, 그동안 FC서울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눈부신 활약들을 돌아본다.

 



하캡틴의 BEST MATCH TOP 3.

 

3위. 2010년 4월 11일. 대구FC에 맞서 첫 골☆을 쏘다

두 팀 모두에게 특별한 경기였다. 대구 이영진 감독과 서울과의 인연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두 팀 모두 2연승을 달리고 있었던 터라 그 어떤 경기 보다 승리의 의미가 컸다. FC서울은 두 골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기선제압에 성공했으나 이에 질세라 대구도 두 골을 따라잡으며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동점골 세리모니로 인한 경고 누적으로 대구FC의 레오가 퇴장 당하면서 경기의 판도는 FC서울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후반 23분 FC서울의 새내기 선수 하대성은 FC서울에서의 본인의 첫 골을 성공시키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2위. 2011년 10월 30일. 경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다.

여러모로 FC서울에게는 값진 승리였다. 이 날 경기 결과에 따라 승점이 같은 수원에게 3위를 내주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수원 역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제주와 경기를 벌이고 있었기에 누구도 3위 전쟁의 승자를 예측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전하게 3위를 차지하려면 최대한 많은 골을 넣어야 했다는 것.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좀처럼 경남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전반전은 득점 없이 끝나버렸다. 반면 당시 수원은 제주에 1골 차로 앞서고 있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 자칫 잘못하면 오랜 라이벌 수원에게 3위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하대성이 나타났다. 후반 14분부터 40분까지 26분이란 시간동안 무려 3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에 힘입어 FC서울은 3-0 승리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한편 수원 또한 제주를 상대로 한 골을 추가하며 3위 자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으나 해트트릭까지 성공시키며 상승세를 탄 하대성에 의해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히고 말았다. 이로써 FC서울은 득점에서 수원에게 5골을 앞서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극적인 3위, 그 뒤에는 부상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하대성이 있었다.


 

1위. 2012년 11월 4일. 수원전 7연패의 늪에서 FC서울을 구하다!

2012년 FC서울은 2년 만에 리그 정상을 재탈환하면서 K리그 최고의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시즌 내내 서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랜 라이벌 수원의 존재였다. 리그 우승과는 별개로 수원전 7연패라는 오명을 씻어야 했기에 우승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더라도 심적인 부담이 큰 경기였다. 하지만 이 날도 선제골을 뽑은 후 단단히 골문을 걸어 잠근 수원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 40분, 모두가 단념했던 바로 그 순간. 캡틴 하대성의 발끝에서 동점골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센터서클 뒤쪽에서 볼을 받은 하대성은 환상적인 스루패스를 선보였고 이 패스는 정조국의 발끝으로 이어져 극적인 동점골로 연결 되었다. 이로써 FC서울은 수원전 7연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홈팬들 앞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세운 캡틴 하대성의 결정적 한방이었다.

 



ACL에서 우승하는 것이 올해 목표라는 하대성 선수. 어려운 순간마다 팀을 구하며 빛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던 그의 모습에서 FC서울의 듬직한 미래를 예견해봄직 하다. 2013년에도 여전히 빛날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글= FC서울명예기자 권다정(dajung422@naver.com)
/사진=FC서울 온라인사진관(
http://www.fcseoul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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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3.03.25 23:12

 

 

 

 

이지스(aegis), 아디神 등으로 불린 아디가 드디어 강원과의 원정경기를 통해 200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역대 FC서울을 거쳐간 용병중엔 최초의 기록이고, 아디를 제외하고 20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는 윤상철(300경기), 이영진(220경기), 정조국(209경기), 김성재(203경기) 뿐이다.

 

 

지난 2006년 FC서울 입단 이후, 매 시즌 30경기 안팎의 출전 수를 기록한 아디는 올해도 변함없이,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7번째 시즌만에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1976년생으로 선수단 내 최고령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아디는 이제 한경기 한경기 출전자체가 역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아디의 200경기 출전을 기념해서 아디가 FC서울에서 치른 경기 중 베스트3 경기를 꼽아봤다.

 

 

1. 2008년 11월30일 vs울산 (K리그 플레이오프)

 

 

 

 

 

아디의 2008년은 눈부셨다. 기복없는 플레이로 시즌 내내 귀네슈 감독의 총애를 받았고, 부지런한 오버래핑과, 빼어난 1대1 대인방어 능력을 앞세워 팀 내 선수들 중 최다인 34경기에 출전하며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디의 성실한 플레이는 팀이 2위를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울산. 당시 울산은 염기훈, 루이지뉴, 박동혁등을 앞세운 만만치 않은 팀이었지만, 전반 26분 정조국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아디 역시 왼쪽에서 활발한 플레이로 서울에 힘을 보탰다. 후반 34분 염기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연장으로 넘어간 경기. 귀네슈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을 것을 주문했고, 아디 역시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울산을 괴롭혔다.

 

 

 결국 연장 전반 7분 데얀의 골이 터졌고, 연장 후반 4분엔 아디가 직접 날카로운 크로스로 김은중의 헤딩골을 도우며, 폭풍같은 서울 공격에 일조했다. 김승용의 골까지 보탠 서울은 결국 울산을 4-2로 누르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레프트백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아디는 경기 내내 측면을 지배하며 부지런한 플레이를 펼쳤고, 1도움을 올리는 등 공격포인트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차전에서 헤딩 선제골을 터트리기도 했던 아디는 시즌 후엔 K리그 베스트11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 2010년 7월14일 vs대구 (컵대회 8강전)

 

 

 

 

2010년. 현영민, 최효진등 우수한 수비자원들의 영입으로 아디는 레프트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2006년부터 무려 4년간 한 포지션에서 뛰다가 갑자기 포지션을 변경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디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무난히 적응하며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뽐냈다.

 

 

그해 7월 14일 대구와의 컵대회 8강전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한 아디는 전반 22분 이승렬의 패스를 받아 날카로운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서울이 기선을 제압하는데 일조했다. 전반 28분 하대성의 추가골까지 터지며 전반을 2-0으로 마친 서울은 후반엔 김한윤을 투입하며 아디에게 중앙수비수 역할을 부여했다. 중앙수비수 위치에서도 적극적인 수비로, 견고한 수비벽을 쌓아올리는데 일조한 아디는 중앙수비수에서도 제몫을 해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덕에 서울은 대구와 2-2로 비겼지만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했고 아디는 이날 경기에서 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었다. 이후 박용호의 부상으로 중앙수비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서울은 그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아디를 선택했고, 아디는 부응이라도 하듯 안정적인 수비로 수비라인에 커다란 힘을 보탰다.

 

 

 

3. 2010년 12월4일 vs제주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2010년.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서울은 지난 10년의 한을 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아디는 10월에 열린 경남과의 리그 경기에서 광대뼈 함몰이라는 중상을 당했다. 시즌 내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아디는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챔피언결정전 출전을 강력하게 희망했고, 결국 보호 마스크를 착용한 채 제주와의 챔피언결정전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오랫동안 경기를 치르지 않아 실전감각이 떨어진 아디는 1차전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설상가상 근육경련까지 일으키며 후반 26분에 박용호와 교체되었다.

 

 

그래서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아디의 출전 여부를 장담하긴 어려웠지만, 빙가다 감독은 아디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며,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장 시켰다. 보호 마스크까지 벗어던지며 투혼을 불태운 아디는 견고한 수비로 제주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고, 후반엔 직접 공격에 가담하여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다. 1-1로 맞선 후반 27분. 김호준의 미스로 코너킥을 얻은 서울은 키커로 나선 제파로프가 문전으로 길게 올려주자 아디가 돌고래처럼 솟아올라 헤딩슈팅을 성공시키며 결승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제주를 2-1로 물리친 서울은 통산 4번째 우승에 성공했고, 아디는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2010 시즌 레프트백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등을 오가며 수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아디는 공격에서도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팀 역시 그의 공헌도를 감안. 시즌 후 MVP 후보로 아디를 추천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BONUS. 2010년 10월 31일 (vs부산)

 

 

 

 

 

이 날 경기에 아디는 출전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출전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디는 10월초 광대뼈 함몰이라는 중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그간 성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디를 위해 서울에선 작은 행사를 마련했다. 10월 31일 부산전을 앞두고 아디 쾌유 기원 퍼포먼스를 시행한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선 아디를 위한 특별응원도구와 마스크가 제작되어, 관중들에게 나뉘어졌고, 경기 전 전광판을 통해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는 팬들의 염원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는 등 아디를 향한 서울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부산전 당시 응원도구로 나눠줬던 클래퍼,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아디를 위하는 마음은 구단과 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 역시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며 자신들의 등번호 밑에 아디의 등번호인 8번을 써넣는 등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 줬다.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롯데의 4번타자 김용철은 주인공 최동원과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어깨통증을 참고 경기에 나서는 최동원을 보고 동료들을 향해 “나는 오늘 롯데의 4번타자가 아닌 최동원의 1루수로 뛰겠다.”고 얘기했다. FC서울 선수들 역시 적어도 이 날 경기에서 만큼은 ‘FC서울의 선수’가 아닌 ‘아디를 위한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날 경기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동료애와, 구단과 팬들의 아디를 향한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서울은 부산을 3-1로 완파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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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4.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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