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FC서울 감독인 최용수는 2002 월드컵 당시 멤버였다. 사진은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플레이 하는 최용수의 모습 (사진출처-photoro)





온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2002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당초 목표였던 16강 을 뛰어넘어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명장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등 만만찮은 상대를 차례로 물리치고, 세계 4강에 자리한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인해 전국은 축구 열기로 넘쳐났으며, 국민 대다수가 붉은 옷을 입고 거리응원을 펼치는 등 2002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전설로 남아 있다.



현재 FC서울에서 활약하는 스타 중에도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스타가 있다. 바로 최용수, 최태욱, 현영민이 그들이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시 대표팀 공격수였던 최용수는 감독으로, 신예였던 최태욱과 현영민은 베테랑 선수로 여전히 한국축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실 최용수, 최태욱, 현영민 모두 2002 월드컵 경기에서 많은 경기를 뛰진 못했다. 최용수는 미국과의 조별예선 2차전에 출전해 21분을 뛰었고, 최태욱은 터키와의 3~4위전에서 11분을 뛰는데 그쳤다. 현영민은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2002 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그들이 보여준 2002 월드컵 준비과정과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 또 2002 월드컵 후 한국축구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최용수

2002 월드컵 미국과의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에 나선 최용수







선수 최용수는 그 누구보다도 2002 월드컵을 벼르고 있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에서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선에선 두 경기 출전에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쓸쓸히 귀국길에 올라야 했던 탓이다. 따라서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2002 월드컵은 최용수에게 중요한 무대였다.



1999년 K리그에서 14골 4도움. 2000년 K리그에선 14골 10도움으로 소속팀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최용수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일본 제프 이치하라로 이적했고, 2001년 부임한 히딩크 감독 역시 그의 기량과 상승세를 인정해 1월 자신의 데뷔전인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전에 선발 출장 시켰다. 그 후 파라과이와의 칼스버그컵 경기에서도 후반 교체 출전해 승부차기에서 한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6-5 승리에 기여한 최용수는 J리그 적응을 위해 2월에 열린 LG컵엔 참여하지 않았고, 9월에 열린 나이지리아 평가전에 다시 한번 부름을 받는다.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로 열린 이날 경기에서 최용수는 1골 1도움을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11월에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선 전반 42분 김남일에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첫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이동국, 김도훈, 설기현, 황선홍 등과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최용수는 이듬해 열린 북중미 골드컵에선 쿠바전 한경기 출전에 그쳤고, 3월 독일에서 열린 터키와의 평가전에서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가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최용수의 경험과 강인한 투혼을 인정해 중국과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출장 기회를 부여하며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불운이 찾아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수원에서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 후반 교체 투입된 최용수는 오른쪽 골반과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결국 후반 25분 차두리와 교체 되어야 했던 최용수는 이후 열린 대표팀 훈련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고,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폴란드를 2-0으로 꺾으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에 동참하지 못한 최용수는 다음 경기인 미국전에 드디어 출장 기회를 잡았다.



전반 24분에 미국의 메티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전반 43분엔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는등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히딩크 감독은 공격 강화를 위해 최용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후반 24분 유상철과 교체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은 최용수는 투입되자마자 설기현의 크로스를 받아 왼발 슈팅을 날렸지만, 프리델의 선방에 막히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에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대한민국의 공격에 일조한 최용수는 후반 33분 안정환의 헤딩 동점골이 터지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오노 세리머니에 동참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안정환의 동점골 세리머니 장면. 최용수 역시 그 기쁨을 함께 했다.






동점골이 터지자 대한민국의 공격에도 활기를 띠었고, 후반 43분 최용수가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다. 설기현의 패스를 받은 이을용이 좌측면을 돌파한 뒤 최용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지만, 최용수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땅을 쳐야 했다. 설상가상 골반을 또 다시 다친 최용수는 더 이상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독일과의 4강전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지만, 최용수는 당시 국가대표 물리치료사인 아노 필립과 함께 개인 훈련을 진행하며 터키와의 3,4위전 경기에 출전 의지를 보였지만, 아쉽게도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최용수의 월드컵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는 소속팀에서 맹활약으로 월드컵에서 아쉬움을 풀었다.



8월 도쿄베르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 복귀 후 첫 골을 터트린 최용수는 다음 경기인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멀티골을 폭발 시키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뒤이어 열린 가시와 레이솔전에서도 선제골을 터트리며 세 경기 연속골로 절정의 감각을 과시했다. 결국 총 16골로 J리그 득점 랭킹 5위에 오른 최용수는 일왕배에서도 미토 홀리호크전 1골. 베갈타 센다이전 멀티골 기록등으로 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월드컵의 한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도 17골을 기록한 최용수는 2004년엔 1년에 2억엔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로 교토 퍼플상가로 임대 이적했고, 당시 교토엔 최용수를 위한 특별 관중석이 설치 되는 등 최용수는 일본에서 자신의 날개를 활짝 폈다.





2. 최태욱



 

2002 월드컵 당시 최태욱의 훈련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현재 FC서울의 베테랑 플레이어로 팀에 안정감을 심어주고 있는 최태욱은 2002 월드컵 당시엔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젊은 선수들을 중시했던 히딩크 감독도 최태욱의 빠른 스피드와, 시원스런 돌파 능력에 주목. 2001년 9월에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 선발 출장 시켰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됐던 최태욱은 풀타임을 소화했고, 3일 후 부산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2차 평가전에선 후반 교체 투입되어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펼쳤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드는데 성공한 최태욱은 11월에 열린 세네갈과의 전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도 75분을 소화했고 이틀 후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선 후반 18분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개장 1호골을 쏘아올렸다. 이후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인 크로아티아전, 한달 후 제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인 미국전까지 모두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대표팀에서 점차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지만, 골드컵 이후로 위기가 찾아온다.




이듬해 열린 골드컵에서 대표팀은 4위를 차지했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력으로 우려를 샀고, 다음에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도 1-2로 패배하며 비난을 받은 것이다. 최태욱 역시 골드컵에서 3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한번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었는데, 여론은 너무 지나치게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표팀이 운용된다며 비판을 가했고, 최태욱 역시 이러한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왼쪽 아킬레스건에 부상까지 있었던 최태욱은 3월에 열린 튀니지, 핀란드, 터키와의 평가전에 모두 결장하며, 월드컵행에 먹구름이 끼는 듯 했지만, 4월에 열린 국내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받게 된다. 대구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장한 최태욱은 대표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고 후반 38분엔 차두리의 패스를 받아 침착하게 골키퍼까지 제친 뒤 추가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전 동점골 직후 최태욱의 세리머니 장면 (사진출처-연합뉴스)








차두리, 최태욱등 젊은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2-0 승리를 거둔 이 날 경기로 인해 젊은 선수들을 향한 시선은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했고, 최태욱 역시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등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드는데 성공했다. 월드컵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최태욱이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선 최태욱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측면 공격수로 이천수와 차두리를 좀 더 선호하면서, 최태욱에게 출장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결국 터키와의 3,4위전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후반 34분 설기현과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은 최태욱은 그간 출전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씻으려는듯 시종일관 가벼운 몸놀림으로 터키 수비진을 흔들었다. 투입되자마자 빠른 돌파 후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후반 36분엔 수비수 두명을 앞에두고도 현란한 개인기로 따돌리며, 차두리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주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후반 38분엔 차두리의 크로스를 안정환에게 다이렉트 패스로 연결하며 첫 도움을 기록하는가 했지만 안정환의 슈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가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최태욱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후반 48분 송종국이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치며, 2-3 패배를 당해야 했다.



자신의 첫 번째 월드컵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한 최태욱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태욱은 한층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최태욱은 대표팀의 6경기 중 5경기에 나서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일조했고, 이듬해엔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며 코스타리카,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었고,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도 8경기에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올림픽대표팀의 아테네행을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3. 현영민



 

2002 월드컵 당시 현영민의 프로필 사진 (사진출처-연합뉴스)





현재 현영민은 K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중 하나지만, 그는 유년시절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뽑히긴 했지만,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에는 단 한번도 뽑힌 적이 없었던 무명선수 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01년 10월 6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대표팀과 올림픽팀 간의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올림픽 상비군이었던 현영민이 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이다. 당시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던 현영민은 대표팀의 오른쪽 날개였던 최성용을 잘 막아냄과 동시에 날카로운 돌파력과 정확한 프리킥을 선보이며, 히딩크 감독의 시선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 덕에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게 된 현영민은 그해 11월에 열린 세네갈과의 전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후반 30분 최태욱과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크로아티아와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도 모습을 보인 현영민은, 이듬해 열린 골드컵 쿠바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A매치 풀타임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후 코스타리카와의 골드컵 4강전, 우루과이,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모두 교체로 투입되었기에 그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확률은 다소 낮아보였지만, 히딩크 감독은 “현영민은 국제 수준의 법칙들을 매우 빨리 터득하고 담대하며, 요구하는 것을 빨리 익히고 적용할줄 아는 능력이 있는 선수다” 라고 칭찬하며 현영민을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그 역시 월드컵에서 출전을 원했겠지만, 당시 현영민의 포지션인 레프트백엔 이영표, 이을용이란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고, 결국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며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현영민에게 소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벤치에 앉아 있던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라며 월드컵에서 큰 수확이 있었음을 언급했고,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 출전등 국가대표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K리그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당시 울산 소속이던 현영민은 이천수, 유상철과 삼각편대를 이뤘고 그해 10월에 열린 부천과의 리그 경기에선 날카로운 프리킥과 크로스로 유상철의 골을 두 번이나 어시스트 했고, 부산과의 경기에선 자신의 장기인 롱스로인으로 유상철의 헤딩골을 돕는 등 1골 4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본프레레 감독 체재였던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표로 뽑히기도 했던 현영민은 2006년엔 제니트에 입단하며 국내 선수론 최초로 러시아 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니트에서 활약할 당시 현영민의 모습 (사진출처-쿠키뉴스)








당시 케르자코프, 데니소프등 유명선수와 한솥밥을 먹었던 현영민은 UEFA컵(現유로파리그)에도 출전해 로젠보리, 마르세유등 강호들과도 맞붙으며, 유럽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니트에서 1년여 동안 선수생활을 보낸 뒤, 2007년 울산에 복귀한 현영민은 2010년에 서울에 입단하며 팀의 통산 4번째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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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2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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