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팀에 융화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토레스도 예외는 아니었다.(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gooo&logNo=121703913)
개인적으로 축구를 제일 좋아하지만 농구도 매우 좋아한다. 어렸을 적엔 길거리 농구 대회는 매 해 빠지지 않고 나갔고, 나름대로의 농구 동아리도 만들어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공 좀 만져봤다는(?) 친구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에서 항상 공을 만지던 4명이서 팀을 만들었다. 사실 서로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어떤 자리를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움직임이 겹치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1명, 2명 섭외를 하고 기존 원년 멤버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친구들도 섭외를 했다. 어떤 친구는 슈팅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3점 라인에서 노마크 찬스에서 슛을 쏘면 대부분 들어갔다. 우린 대단한 팀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 동안 슈팅에 있어서 약한 면이 있었는데 슈팅이 좋은 친구를 섭외했으니 말이다. 원년 멤버에 확실한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를 영입했고 식스맨들도 주전멤버와 다를 바 없는 친구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회를 나갔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했던 친구들과 고3이 되어서 섭외한 친구들의 조화가 어느 정도였을까. 상대 팀과 실력 차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수는 대패였다. 우리는 상대 팀에게 진 기분보다 ‘우리끼리 서로 진’ 기분이었다. 파워 포워드였던 내가 아무리 스크린을 걸어주러 돌아다녀도 손발이 맞지 않았고 피벗을 하며 돌면 상대 수비에 막히는 게 아니라 우리 팀 동료의 동선에 막혔다. 우린 결국 1회전 탈락이라는 쓴 맛을 마신 후 조용히 수능공부 체제에 돌입했다.
몰리나 영입 당시 '대박영입'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제공 : 유승철 FC서울 명예기자)
단체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듣고 “아~”하며 수긍을 할 수 있다. 단체 스포츠는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역시 ‘팀워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 손발을 맞추던 팀 내에 새로운 선수가 들어온 경우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에서도 이적이 잦은 선수는 참 안타까운 선수로 분류된다. ‘능력은 좋지만 팀 융화가 어려운 선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 확실한 선수의 경우 팀에 융화될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잠재되어있는 능력(이른바 포텐)이 터지기 시작하면 모두가 그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제 그런 사나이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바로 몰리나다.
몰리나, 어떤 선수였는지 생각해보자
올 시즌 몰리나의 플레이를 보며 다소 몰리나에게 실망을 했거나 혹은 몰리나라는 선수의 대단함을 잊었던 사람들은 다시금 몰리나가 ‘대단한 선수’라는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이젠 찾아도 된다) 이는 포털 사이트에서 ‘몰리나’라는 이름을 치기만 해도 검증된다. 우리 모두 해보자.
그는 작년 K리그 미드필더 베스트 11 수상자이다. (출처 : 네이버)
‘몰리나’를 검색하면 이런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역시 수상 내역인데 ‘2010년 쏘나타 K리그 대상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 11’에 올라있다. 그렇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뛰는 미드필더 중에 한 명이다. 작년에 2010년 베스트 11에 속해 있는 선수들을 보면 쟁쟁하다 못해 쨍쨍하다. 더군다나 미드필더진은 보면 살벌하다. 에닝요(전북), 윤빛가람(경남), 구자철(제주)이 그들인데, 이 사이에 몰리나가 있다. 이쯤되면 여태껏 한국에서 몰리나의 활약이 어땠나를 봐야할 타이밍인 듯 하다. (원래 이런건 몰리나 영입할 때 올라와야 하는 부분인데..)
우리는 몰리나의 2010년 슈팅수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출처 : 네이버)
2009년 여름시장에 K리그를 찾아온 몰리나는 비록 17경기밖에 뛰지 않았지만 공격포인트 13개를 기록하며 뛰어난 용병임을 과시했고, 2010년에는 이를 증명이나 하듯 맹렬한 활약을 펼쳤다.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공격 포인트가 높은 것도 볼만하지만 사실 난 슈팅숫자에 주목하고 싶다. 29경기 동안 총 슈팅 118개. 경기당 최소 4개의 슈팅을 쏜 셈이다. 이 슈팅 기록만으로도 얼마나 경기에서 활발한 운동량을 보여주었나를 알 수 있다. 이게 몰리나다. 몰리나가 대단한 선수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몰리나가 살아나고 있다
난 글을 쓸 때 항상 몰리나의 활용에 대해서 써왔다. 특히 제파로프와의 조화는 시즌 개막 이전부터 많은 팬들이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본인이 생각했던 스쿼드에서 그들의 위치는 LM(몰리나)과 CM(제파로프)였다. 하지만 점점 경기가 흐르면 흐를수록 몰리나를 최전방 공격수로 제파로프를 LM(왼쪽 미드필더)로 놓으면서 그들의 능력치를 반감시키는 동시에 동선을 겹치게 하여 효율적인 팀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다. 이는 제파로프 이적 시 썼던 칼럼에서도 분명하게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폭격기칼럼] 공격수가 부족한 FC서울, 링크 : http://v.daum.net/link/17554956)
난 이 때도 몰리나를 2선, 즉 왼쪽 측면 미드필더나 공격형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을 한다면 좋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사실 내가 혼자 생각한 내용이기보단 모든 FC서울 팬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는 점차 현실화가 되어가고 있다. 몰리나가 살아나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어제의 기가 막힌 골을 기록한 것 때문이 아니다. 몰리나의 움직임이 살아난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흥분해도 된다. 나도 막 흥분이 된다. 그가 살아나고 있다.
난 몰리나가 수비수 등지고 하는 플레이는 약하다고 본다. (출처 : FC서울 홈페이지)
몰리나, 왜 그가 시즌 초반과 달라진 플레이를 보이는가
어제 경기에서의 몰리나 활약을 보면 대부분 2선 침투다. 최태욱 선수가 투입되기 전까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서 움직였는데, 사실 포지션에 크게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홍길동 플레이어를 보여주었다. 4-2-3-1 이라는 포메이션으로 맞서긴 하였지만 몰리나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4-2-2-2 포메이션을 병행하게 되어 전남 수비수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즉, 2선 침투로 인하여 같은 2선의 선수들 또한 공격에 가담시킬 시간을 벌고 1선의 데얀 선수의 공간도 창출해냈다. 특히 최태욱이라는 ‘돌파형 미드필더’의 투입으로 몰리나는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되며 최태욱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휘젓고 다녔다. FC서울 이적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몰리나는 그간 이러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는가. 아쉽게도 이유엔 제파로프의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제파로프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은 팬들도 잘 알 것이다.(제파로프는 K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 중 한 명임은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난 그가 경기장에서 고별인사를 할 때 눈물을 흘렸던 광팬 중에 하나였기에 더욱 더 아쉽다.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제파로프와의 겹침 현상만을 두고 문제점이라 할 순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격 템포에 있었다.
이 사진이 몰리나 플레이의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가? (사진 출처 : FC서울 홈페이지)
(문전을 1선이라 하면 문전과 중앙선 사이를 2선이라 가정할 때) 누차 말하지만 몰리나는 2선에서 상대편 수비와 적당한 공간을 두고 침투하는 플레이를 주로 구사하는 선수 중에 하나다. 허나 제파로프가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할 땐 공격시 제파로프가 상대 진영 코너 부근까지 진출을 한 상태. 최전방 공격수였던 몰리나 입장에선 수비수가 밀집된 공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즉, 몰리나가 2선에 있을 때에는 몰리나에게 볼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1선까지 들어갔을 때 볼 배급이 이루어져 몰리나의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가장 답답할 사람은 몰리나 당사자. 그렇기에 공격수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2선으로 자주 내려왔고, 익숙한 왼쪽으로 자주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파로프와 동선이 겹칠 수 밖에 없었다. 헌데 최근 제파로프 이적 후 경기를 보면 왼쪽 윙어로 많이 활약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몸에 맞는 옷을 이제야 입게 된 것이다.
이제 날개를 펼쳐야 할 시간
이제 K리그도 후반부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년과 비교한다면 드라마틱한 시즌이다. 상위권에서 지켜내는 것도 재미있지만 마치 오락실에 있는 게임처럼 레벨이 높아져가는 시즌도 재미있다.(시즌 초반 속 탄 것을 생각하면…아…) 정말 다행스럽게도 시즌 중 후반인 지금 FC서울은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중요한 경기마다 꼬박꼬박 승점을 챙겼고 이젠 최상위권을 노리는 입장이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지도가 이렇지 않았을까. (출처 : FC서울 홈페이지)
하지만 아직 9경기가 남은 현재.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은 물론 아챔권, 4강권의 행방이 아직 묘연한 채 끝까지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시즌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전북의 독주가 예상되는 가운데 FC서울은 아챔권 획득을 위해서라도 최소 2위로 정규리그를 끝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즌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차근차근 올라온 만큼 점차 팀의 조직력도 맞아가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 몰리나의 융화, 최태욱의 부활 등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날개를 펼 시간이다. 벌써 알게 모르게 5연승이다. 이참에 K리그 최다연승인 9연승 기록(성남, 울산)을 깨보는 건 어떨까. 물론 최용수 감독대행의 말처럼 5연패가 될 수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글 = 김진웅 FC서울 명예기자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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