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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가 만난 사람

-      축구는 중독이다”, FC서울을 사랑한 영국남자 폴카버씨를 만나다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FC서울 열혈 팬으로 출현하며 화재가 된 인물이 있다. 유창한 한국말로 FC서울 응원가를 직접 소개하며 FC서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영국 남자, 폴카버씨다. 울산과의 홈경기가 있던 날, 비가 오는 굳은 날임에도 폴카버씨는 여느 때처럼 응원을 위해 N석으로 향했다. 축구는 중독이라고 말하는, FC서울을 사랑한 영국남자 폴카버씨를 FC서울 명예기자가 직접 만나보았다.

       

FC서울 명예기자(이하 명기) 안녕하세요 폴카버씨! 먼저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폴카버 안녕하세요, 저는 폴카버 입니다. 90년 중반에 한국에 처음 왔고, 2007년부터 한국에서 계속 살기 시작했습니다

명기 반갑습니다 폴카버씨!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FC서울 열혈 팬으로 출현하셨는데, 방송 이후 사람들이 경기장에서나 혹은 밖에서 폴카버씨를 알아 보던가요?

폴카버 네 경기장에서 많이 알아봐주시기 시작했어요. SNS에서도 친구신청이 많이 왔고요. 월드컵 휴식기가 끝나고 처음 있었던 FC서울의 전남 원정경기에 가던 도중 들렀던 휴게소에서는 FC서울 팬이 아닌 분들도 알아봐주시더라고요. “

명기 많은 분들이 알아보는군요! 폴카버씨도 방송 보셨을 텐데, 아쉽게 방송에는 편집된 내용이 있었나요?

폴카버 네 있어요. 방송 녹화 당시에 함께 출현했던 에네스카야(FC서울 감독 세뇰 귀네슈 (Senol Gunes) 의 통역관)가 귀네슈 감독과의 친분으로 전화연결을 해주었었는데 실제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 부분이 아쉬워요

명기 귀네슈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폴카버 “ FC서울에 대한 얘기를 나눴죠. 귀네슈 감독이 우리 FC서울 팬들이 지금처럼 최용수감독과 선수들을 믿고 응원해준다면, 앞으로 FC서울은 더욱더 상승세를 탈것이라고 말했어요. “

명기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잘하시는데, 따로 배우신 건가요?

폴카버 . 한국에 와서 어학당을 10주 동안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학당에서는 간단하게 기본적인 것들만 학습했고 이후 회사를 다니고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배웠다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 같아요. “

명기 그렇다면 한국어 비속어들 중에도 아는 단어 있으신가요?

폴카버 “ (하하)그럼요 꽤 알죠, 그런데 욕을 하고 싶은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아무래도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먼저 나오는 것 같아요. ”

명기 폴카버씨는 언제부터 FC서울 팬이었나요?

폴카버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2007, 아들에게 축구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어 처음 축구장에 함께 왔어요. 영국에 제가 오래 전부터 응원해오던 팀이 있거든요. ‘셰필드 웬즈데이 FC’ 라는 팀입니다. 그래서 훗날 아들과 셰필드 웬즈데이 FC를 응원하면서 함께 경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그래서 처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와서 FC서울 경기를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팬이 된 것 같아요. FC서울의 경기가 재미있고 신났었거든요. 그 후 2007년까지는 조용히 보다가 2008년부터는 적극적으로 FC서울을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

명기 FC서울이라는 팀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폴카버 사실 영국축구만 보다가 K리그 경기를 본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었어요. K리그 경기는 재미없지 않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FC서울 경기를 직관해보니, 직관이 주는 재미가 상당해요. FC서울이라는 팀에 대한 첫인상을 생각해보면 제게 직관의 재미를 알게 해줄 만큼 박진감 넘치는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것 같아요. 2008년 눈이 내리던 날, 어느 때 보다 박진감 넘쳤던 수원과의 결승전은 아직도 생생해요. ”

명기 현재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라는 소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작년에는 회장직을 맡기도 하셨는데 소모임 활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폴카버 “ 2009년에 처음으로 시즌 권을 구입해서 계속 혼자 경기를 보러 왔었어요. 그러던 중 2011, 한번은 원정경기를 광주, 창원, 강원으로 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어떤 외국인 두 명을 원정 갔던 세 경기 모두에서 연속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세 번째 봤을 땐 서로 인사했고, 친해지게 됐어요. 그때부터 함께 경기를 보게 되었고 이것이 소모임의 시작이에요.“

명기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는 어떤 소모임인지 소개 부탁 드려요

폴카버 3년 전부터 FC서울도 외국인 팬들을 위한 많은 이벤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저희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FC서울을 사랑하는 외국인 팬 또는 외국인과 함께 응원하고 싶은 FC서울 팬 모두를 환영하는 소모임입니다. “

명기 꼭 외국인이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한 것인가요?

폴카버 그럼요. 지금도 우리 소모임에 몇 분 있어요. 올해에도 FC서울에서 외국인의 날 행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 소모임을 소개하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

명기 지금까지 직관했던 FC서울 경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요?

폴카버 작년에 광저우에서 있었던 ACL 결승전이 생각나네요, 결승전이기도 했고 멀리 갔던 원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2, 성남 원정경기(2012 8 11, K리그 27R)에요. 그때 FC서울이 1-0으로 앞서다가 동점이 되고 이후 1-2로 역전을 당했는데, 경기 막판 몰리나와 데얀이 두골을 몰아 넣으며 결국 3-2로 이겼어요. 작년 인천원정에서(2013 8 10, K리그 클래식 22R) 2-2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적으로 데얀이 골을 성공시키며 3-2로 역전승했던 경기도 기억에 많이 남고요

명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폴카버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어요. 출장이나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원정 경기에 가고 있어요. 홈경기는 전 경기 오려고 하고요. 그래도 이제는 회사에서도 제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줍니다. “

명기 경기가 끝나고는 바로 귀가 하시나요?

폴카버 주중에는 경기장 앞 편의점(GS25)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면서 그날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지는데 주말에는 경기가 끝나면 홍대, 상수 쪽으로 가서 모이곤 합니다. “

명기 자주 가는 곳이 있으신가요? FC서울 팬들에게도 알려주세요!

폴카버 , 자주 가는 술집도 있고 치킨집도 있어요. 제일 많이 가는 곳은 상수역에 있는 웨스턴 바 스타일의 술집이에요. 그런데 보통 경기시작 전이나 경기가 끝나고 99%는 경기장 앞 GS25에서 모여요. GS25에서 가볍게 한잔 하고 자리를 옮겨요. 저를 포함한 우리 소모임을 만나고 싶다면 경기전과 후에 편의점으로 오시면 됩니다.“
 

명기 가족과 함께 경기를 보러 온 적도 있으신가요?

폴카버 , 아이들과는 자주 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사정이 있어 아이들과 많이 오지 못했어요. “

명기 만약 아들이 축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하면, 시킬 의향이 있으신가요?

폴카버 아들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해요. 제가 보기에 실력도 괜찮은 것 같고요(웃음). 그런데 아직 축구선수로서의 욕심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욕심이 없다면 프로선수가 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요. “

명기 FC서울 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 있으신가요?

폴카버 모든 선수 좋아하지만, 최효진 선수를 좋아합니다. “   

명기 최효진 선수의 어떤 면에 팬이 되신 건가요?

폴카버 항상 기복 없는 플레이를 하는, 안정감을 주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간혹 다른 수비수가 실수하더라도 든든하게 커버해 주는 모습이 훌륭하다고 느꼈어요. “

명기 FC서울 팬으로서 FC서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폴카버 제가 FC서울 응원하는 동안 리그우승도 하고 컵 대회 우승컵도 들어올렸어요. 그런데 작년 ACL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했기 때문에 ACL 우승을 이뤄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제 작은 바램이지만, 레버쿠젠과의 친선경기처럼 언젠가 제가 응원하는 영국 팀 셰필드 웬즈데이 FC’ FC서울의 친선경기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

명기 오늘 인천과의 홈경기가 있는데, 스코어 어떻게 예상하세요?

폴카버 우리가 3-0으로 이길 겁니다. 지난 인천원정경기에서의 아쉬움을 오늘 홈에서 시원하게 날려버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

 
길지 않은 인터뷰였음에도 FC서울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외국인 폴카버씨, 축구팬 폴카버씨가 아니라 유니폼 왼쪽가슴에 새겨진 엠블럼에 대한 자부심부터 FC서울에 대한 그의 의리까지, 인간 폴카버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폴카버씨에게 오래도록 자랑스러운 FC서울이 되길 바란다.

                           

/=FC서울 명예기자 김해리(nsharry@hanmail.net)

/촬영=FC서울 명예기자 이대수(unfade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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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4.08.17 01:11








1984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FC서울.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감독들이 FC서울을 지휘했다. 초대 감독 박세학 부터 현재 최용수까지 FC서울을 지휘한 인물은 총 10. 역대 FC서울 감독들 중 부문별로 최고의 인물을 꼽아보자.

 

 

1. 최초의 우승을 거둔 감독은?

 

FC서울의 첫 우승은 1985.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 당시 박세학 감독이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피아퐁, 조영증, 김현태 등 우수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던 럭키금성은 1074패로 창단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최초의 리그 우승이자 FC서울이 차지한 최초의 타이틀이다.

 

 

2. 가장 오랜 기간 FC서울을 이끈 감독은?

 

가장 오랜 기간 FC서울을 이끈 감독은 두 명이다. 그 주인공은 고재욱 감독과, 조광래 감독. 고재욱 감독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간 팀을 이끌었고 조광래 감독 역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팀을 맡았다. 경기 수로 따져보면 고재욱 감독이 약간 앞선다. 고재욱 감독은 리그에서 209 경기를 치렀고 조광래 감독은 193 경기를 치렀다. 이들의 뒤를 잇는 감독으론 박세학 감독이 있다.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간 팀을 이끌었으며 총 117경기를 치렀다. 뒤를 이어 최용수 감독이 박세학 감독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현재 FC서울 4년 차 감독인 최용수가 이번 시즌을 무사히 마친다면 박세학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3. 가장 많은 승수를 기록한 거둔 감독은?

 



가장 많은 승수를 기록한 감독은 조광래 감독이다
. 조광래 감독은 FC서울 재임기간동안 88승을 거두었다. 뒤를 잇는 감독은 고재욱 감독이다. 고재욱 감독은 총 66승을 거뒀다. 두 감독은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용수 감독은 이 기록에도 근접해 있다. 현재 62승을 거두고 있는 최용수는 5승만 더하면 고재욱 감독을 넘어 역대 2위로 올라서게 된다.

 



4.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감독은?

 



FC
서울 감독으로 가장 많은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은 고재욱 감독과 조광래 감독, 빙가다 감독이다. 세 감독은 모두 두 개의 트로피를 FC서울에 안겼다. 고재욱 감독은 감독 부임 첫해인 1988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FA컵이 창설되기 이전 비슷한 유형으로 운영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엔 팀을 리그 두 번째 우승으로 이끌었다. 조광래 감독은 2000년 리그 우승 트로피, 2001년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FC서울 트로피 진열장에 진열했다. 빙가다 감독은 2010년 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 외에 박세학 감독 (1985년 리그 우승), 박병주 감독 (1998FA컵 우승), 이장수 감독 (2006년 리그컵 우승), 최용수 감독 (2012년 리그 우승) 이 한 차례씩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5. FC서울을 지휘한 외국인 감독은?

 

FC서울은 총 2명의 외국인 감독을 받아들였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은 2007년 부임한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 감독. 2002 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에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킨 귀네슈 감독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감독이다. 2007년엔 7위에 그쳤지만 2008년엔 리그 준우승을 거두었고, 2009년에도 5위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귀네슈 감독은 재임기간 동안 짧은 패스 워크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으며 이청용, 기성용, 고명진, 고요한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 해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비록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축구를 보여주며 아직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귀네슈 감독이 물러난 뒤 부임한 감독도 외국인이었다. 그 주인공은 포르투갈 출신의 넬로 빙가다 감독. 포르투갈 청소년 대표 코치 시절. 루이스 피구, 후앙 핀투, 아벨 샤비에르 등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라 불린 이들을 발굴한 빙가다 감독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요르단 대표팀,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등을 맡으며 아시아 축구를 경험했다. 2010년 첫 두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홈 개막전에서 전북에게 0-1로 패하며 다소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홈에서 18연승을 기록하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리그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제패하며 팀 역사상 최초의 더블을 기록했다. 또 그는 25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역대 K리그 감독들 중 데뷔년도 최다승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한 시즌 만에 감독에서 물러났는데 1991년 부산의 비츠케이 감독 이후로 우승 후 사령탑에서 물러난 두 번째 감독이 됐다.

 

 

 




6.
현재 감독, 최용수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은?

 

지난 2011년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어 FC서울을 이끌고 있는 최용수 감독. 최용수 감독은 FC서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올해로 4년 차를 맞이하는 감독이다. 활동 연도로만 보면 아직 초보지만 최용수는 각종 기록들을 남기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최용수는 현재 리그에서 112경기 622525패를 기록 중이다. (4/2 현재) 승률은 66.51%로 역대 K리그 감독들 중 최고 승률을 자랑한다.




또 그는 201229승을 거두며 단일 시즌 최다승을 거두었고, 최다 승점(96) 역시 함께 기록했다. 또 최용수는 2011년 부임 이후로 3년 차인 2013년까지 61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역대 FC서울 감독 중 3년 간 최다승 기록이다. 귀네슈 감독 역시 3년 간 팀을 이끌었지만 51승을 거두었고 1990년 우승을 거둔 고재욱 감독은 1989, 1990, 1991년 동안 38승을 거두었다. 2000년 우승 2001년 준우승을 거둔 조광래 감독도 2000, 2001, 2002년 동안 51승을 거두었다. 물론 최용수가 스플릿 리그를 치르며 그 어느해보다 많은 경기를 소화했지만 많은 경기가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같은 성과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최용수가 모조리 갈아치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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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4.02 02:09




 





2013년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답게 많은 기대를 모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인 장수 슌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을땐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모습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포항과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인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선 2-3으로 패했다. 이후 서울은 부리람과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첫 승에 실패했다. 현재 FC서울의 성적은 1무2패. 순위도 11위에 처져있다. 여러모로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2009년에 보여줬던 모습이 좋은 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준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009년 우승후보로 꼽혔다. 2009년에도 올해처럼 선수단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 등을 줄줄이 떠나보냈지만, 서울은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데얀, 아디, 정조국, 김치우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완벽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FC서울은 우승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출발 역시 좋았다. 전남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서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도 4-2로 승리하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서울은 1-2 충격패를 당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해 1.5군을 내세웠지만, 당시 강원은 신생팀이었고, 주전 대부분이 지난 시즌에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의 모습은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한 서울은 이어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1-0으로 잡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고, 이어서 경남, 대구 등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상대와 맞섰지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서울은 FA컵 김해시청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포항, 감바오사카, 대전, 광주상무, 제주를 연파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스리위자야가 산둥 루넝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극적인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서울은 6월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2009년 초반과 지금의 모습인 2013년 초반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은 스쿼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시즌을 시작했다는 점.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위기설이 나왔다는 점 등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FC서울은 지금의 난관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용수(당시 코치), 데얀, 아디, 고명진, 고요한, 김진규, 김치우 등 현재 FC서울 구성원 대부분이 2009년에도 FC서울의 일원이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서울이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금 강력한 축구를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멋진 축구를 보여줄 FC서울을 기대해보자.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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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3.24 11:03


 

 










The memorable season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2008년 FC서울이다. 2008년 FC서울은 귀네슈 감독의 화끈한 공격축구, 기성용, 이청용 이라는 스타 탄생,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 인상적인 모습이 많이 나왔던 시즌이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FC서울의 2008년.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의 2008년을 돌아보도록 하자.



2008년 최대의 화두. 공격진 강화!



 FC서울은 2007년 세계적인 명장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7위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무엇보다 공격력 부족이 큰 문제였다. 팀 내 최다 득점을 넣은 선수가 6골(두두, 이상협)을 넣을 정도로 골 기근에 시달렸다. 시즌을 앞두고 서울은 공격진에 메스를 들이댔다. 두두를 내보내는 대신 인천에서 19골을 기록한 공격수 데얀을 영입한 것이다. 또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갈고 출신의 이승렬을 데려오며 공격진을 한층 강화했다.



시즌 시작 전 열린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서울은 울산과의 K리그 개막전에선 1-1로 비겼지만 두 번째 경기인 전북 원정 경기에서 데얀과 박주영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열린 경남과의 컵대회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대구와의 리그 경기를 3-1 승리로 장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서울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 줄 만한 영입이 성사된다. 맨체스터 시티, AZ 알크마르 등 유럽 굴지의 팀에서 뛰었던 무삼파가 FC서울에 합류한 것이다. 4월 16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무삼파는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강력한 슈팅력을 선보이며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날개가 되어줄 듯한 무삼파는 이후 부진에 시달리며 3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6월에 팀을 떠나게 된다. 
 


기성용, 이청용의 급성장! 그리고 마지막 퍼즐조각이 된 김치우



서울은 4월 13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제주를 3-1로 물리쳤다. 이후 서울은 리그 4경기에서 1승3무를 기록하며 A매치 휴식기를 맞았다. 패한 경기는 없었지만 무승부가 많은 탓에 강팀의 면모를 보였어도 리그 4위에 머문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 리그에서도 서울의 흐름은 큰 변화가 없었다. 부산과 포항을 잇달아 잡았지만 울산과 전북과는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비중을 적게 두었던 컵대회에서 수원을 1-0 으로 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변함없이 선두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서울로선 약간 아쉬운 일. 그래서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전력보강을 한다.
 


 







서울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전남에서 김치우를 데려와 측면을 강화했다. 김치우는 데뷔전인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서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1월2일 부산에 0-2로 패하기 전까지 서울은 7승2무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새로 합류한 김치우와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기량이 급성장한 기성용과 이청용. 외인 공격수 데얀의 변함없는 활약은 서울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또 조커로 활약한 이상협과 이승렬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렬은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고, 그 해에 넣은 5골 중 3골이 결승골이었다. 이상협 역시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42분 환상적인 왼발 발리 슈팅으로 1-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승리로 서울은 시즌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이상협은 2008년에 출장한 17경기 중 15경기를 교체 출장하며 귀네슈 감독의 히든 카드로 활약했다. 서울은 부산에 0-2로 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15승 9무 2패 승점 54점으로 수원(17승 3무 6패)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수원 +22, 서울 +19) 2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 했다.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서울의 상대는 울산. 서울은 광대뼈 부상을 당한 정조국을 선발 출장 시키며,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고, 결국 정조국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후반 염기훈에게 실점하긴 했지만 서울은 연장전에서 골 폭풍을 몰아쳤다. 데얀, 김은중이 연속골을 터트렸고, 그 해 군에서 전역한 김승용마저 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4-2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수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서울은 아디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곽희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선 에두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정조국의 페널티킥으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수원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김호준이 송종국의 슛을 선방했지만, 송종국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며 2-1을 만들었다. 결국 서울은 스코어를 뒤집지 못했고,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장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기성용은 팀의 우승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지만, 아쉽게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서울의 2008년은 많은 것을 얻은 해였다. 우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귀네슈 감독의 총애 아래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이어졌다. 기성용은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구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선 이청용의 정확한 크로스를 기성용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또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이청용이 골의 단초가 되는 전진 패스를 내줬고, 기성용이 상대 실수를 틈 타 골을 성공시키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FC서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가 꽃을 피운 것도 고무적이다. 2007년 고작 23골이었던 팀 득점은 1년 만에 50골로 늘었다.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 이청용의 창조적인 드리블, 데얀의 치명적인 마무리, 이상협의 특급 조커 역할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울의 공격은 불을 뿜었다. 귀네슈 감독 특유의 공격 성향도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울산전에서 1-1로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하자 귀네슈 감독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공격수 김은중, 이상협을 투입하며 공격 성향을 잃지 않았고, 결국 이는 대량 득점으로 이어져 4-2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플레이오프 라는 중요한 대회에서도 귀네슈 감독은 특유의 ‘공격 본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이 강해도 수비가 약하다면,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수비라인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레프트백 아디는 귀네슈 감독이 가장 믿는 수비수 중 하나였고, 김치곤과 김진규는 든든한 센터백 듀오였다. 또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한윤의 활약은 기성용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였다. 수비진의 활약덕에 서울은 30실점으로 최소 실점 공동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2001년 준우승 이후 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서울은 준우승을 거두며 다시금 ‘강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 우수한 젊은 선수들의 출현과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했기에 2008년 FC서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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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2.01 22:41






잉글랜드 최고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는 ‘꿈의 극장’(The Theatre of Dreams) 이란 별칭이 붙어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인물인 바비 찰튼이 이곳을 ‘꿈의 극장’ 이라고 부른 것을 시초로 하지만 그만큼 이곳에서 극적인 명승부가 많이 연출 되었기에 이런 영광스런 별칭이 아직까지도 불리워 지고 있다.


하지만 극장은 잉글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K리그에도 극장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울 극장’. FC서울은 그간 여러 경기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에게 ‘서울 극장’ 이라고 불리고 있다. 뛰어난 경기력 외에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며, 많은 팬들을 즐겁게 했던 서울. 축구에서 극적인 순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개최한다면 아마 FC서울은 대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지금부터 많은 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역대 최고의 ‘서울 극장’ 경기를 알아보자.



1. 2009년 9월12일 vs 전북 2-1 승

부제 : 팬들의 사랑은 귀네슈도 춤추게 한다.

주연 : 수호신, 귀네슈







2009년 하반기에도 FC서울은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이청용이 7월에 볼튼 원더러스로 떠나긴 했지만 데얀, 정조국, 기성용, 김진규, 김치곤 등으로 구성된 스쿼드는 여전히 화려했다. 순위 역시 8월말 기준으로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서울이지만 포항과의 컵대회 4강전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서울은 심판의 판정 논란 속에 2-5로 패하며 탈락했고, 김치우는 상대 선수의 머리를 받는 행위로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귀네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말을 했고, 이로 인해 연맹으로부터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받는 등 악재가 겹쳤다. 결국 서울은 뒤이어 열린 리그 경기에서 울산과 성남에게 연패를 당하며 3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다음으로 맞딱 뜨린 상대는 전북. 당시 전북은 이동국, 김상식 등을 앞세워 리그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팀이었다. 게다가 서울은 3연패를 당하고 있던 반면 전북은 2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서울로선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었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당시 7위인 포항과도 승점이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또 다시 패배한다면 리그 순위가 급격히 추락할 수 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승리는 절대조건이었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차출되었다가 전날 복귀한 데얀 까지 선발 출전시키며 필승의지를 불태운 서울이었지만, 전북은 막강했고, 오히려 전반 막판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게 된다. 전반 40분 루이스가 강력한 슈팅으로 첫 골을 터트린 것이다. 김한윤이 몸을 날려 루이스의 슈팅을 막아내긴 했지만 공은 이미 골라인을 넘어간 후였다. 하지만 서울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고명진이 빠지고 김승용이 투입되며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은 서울은 후반 초반 데얀과 기성용이 강력한 슈팅으로 전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은 후반 8분 드디어 전북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기성용의 코너킥이 수비 맞고 흘러나오자 공격에 가담했던 김치곤이 골망을 찢을 듯한 강력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승부가 원점이 되자 양 팀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공격적인 팀 컬러는 경기를 치열한 접전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후반 30분 승부를 가르는 골이 터진다. 기성용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키퍼를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결국 서울은 전북을 2-1로 물리치며 경기장을 찾은 36764명을 열광시켰다.


이 날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은 데얀은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돌아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해 역전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고, 미드필더로 출전한 고요한은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엄청난 활동량으로 팀의 승리에 숨은 영웅이 됐다.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극적인 경기에 클라이막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같은 모습은 경기에서만 나왔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팬들은 ‘귀네슈 감독 특별 티셔츠’ 판매를 통해 귀네슈 감독이 부과받은 제재금 모금 운동을 벌였고, 경기 전엔 귀네슈 감독의 대형 응원걸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에 그 동안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던 귀네슈는 “월드컵에서 3위를 했을 때보다 감동적이다.” 라는 소감을 밝히며 차가웠던 마음을 녹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네슈의 대형응원걸개가 올라오는 장면. Don't leave us! (우리 곁을 떠나지 마세요!)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2. 2010년 10월9일 vs 경남 3-2 승

부제 : 분유캄프. 아버지의 이름으로

주연 : 정조국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10월. FC서울은 경남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경남은 승점 46점으로 2위, 서울은 승점 42점으로 3위였다. 순위를 지키려는 팀과, 끌어내리는 팀 간의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다. 경기 전 예상은 서울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다. 우선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서울이 앞서는 데다 당시 서울은 홈에서 14연승을 기록할 정도로 안방불패의 면모를 보였기에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 대부분은 서울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초반부터 경기는 서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전반 2분 만에 경남 서상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선제골을 내준 서울은 설상가상 전반 8분엔 아디가 광대뼈 함몰 부상을 당하는 불운까지 맛봐야 했다. 그 뒤 아디 대신 투입된 김동우는 몸이 덜 풀렸는지 전반 12분엔 백패스 미스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 뻔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서울에게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이 후 공격수들이 힘을 내며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되었던 데얀, 제파로프, 이승렬등은 줄기차게 슈팅을 때리며 골을 노렸지만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병지가 지키고 있는 골문이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후반 22분 최태욱 대신 정조국이 투입되며 골문이 열릴 조짐이 보였다. 당시 정조국은 아들을 얻은 후로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고, 팬들에게 ‘분유캄프’ 라고 불리고 있을 때였다.


결국 정조국이 일을 냈다. 후반 30분 정조국이 날린 호쾌한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 아랫 부분을 때리고 골문에 꽂힌 것이다. 동점골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서울의 공격은 무서웠다. 동점골이 터진 지 5분 만에 하대성이 정조국의 패스를 받아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하지만 서울은 아직 만족하지 않은 듯 4분 후엔 최효진의 패스를 받은 정조국이 팀의 세 번째 골이자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겨우 9분 동안 세 골을 폭발 시킨 서울의 공격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했으며, 불안한 출발을 딛고 역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은 후반 43분 경남 김인한 에게 한 골을 더 허용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허용하지 않은 채 3-2로 경기를 마쳤다. 이 날 승리로 서울은 리그 2위로 도약하며 홈 15연승까지 달성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3. 2010년 12월1일 vs 제주 2-2 무 (챔피언결정전 1차전)

부제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주연 : 제파로프, 김치우










2010년 리그 1위에 성공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FC서울은 통산 4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선착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상대팀인 제주에게도 시즌 전적에서 2승1무로 앞서 있었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서울의 우세를 점쳤다. 게다가 아디 역시 광대뼈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는 등 선수들도 우승에 대한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제주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치르며 서울은 우승을 향한 첫 걸음을 뗐지만 당시 구자철, 김은중, 박현범 등이 소속된 제주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기에서도 오랜 시간 실전 경기를 치르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 듯 서울 선수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모습이었고, 결국 전반 26분 배기종에게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일격을 당하며 선제골을 내주게 된다. 순식간에 흐름은 제주로 넘어갔고, 제주는 후반 6분 구자철의 패스를 받은 산토스가 왼발 슈팅으로 추가골까지 성공하며 0-2까지 달아났다.


다급해진 서울은 후반 10분 이승렬과 김동우를 빼고 김치우와 정조국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결국 이 교체 투입이 주효해 서울은 만회골에 성공했다. 김치우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왼발 슛을 김호준이 간신히 선방했지만, 흘러나온 볼을 데얀이 골대로 밀어 넣으며 스코어를 1-2로 만든 것이다. 경기 내내 무거운 몸놀림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데얀은 이 한골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려면 한 골이 더 필요했다. 서울은 그 후로도 줄기차게 공격을 시도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주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결국 후반 추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패색이 짙었던 후반 47분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제파로프가 선수들이 몰려 있는 페널티 에이리어로 크로스를 올리는 대신, 빈 공간에 있었던 김치우에게 정확한 패스를 내줬고, 김치우가 이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제주의 골망을 흔든 것이다. 극적인 동점골에 서울 벤치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제주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결국 경기를 2-2로 마치며 서울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숨겨진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아보자면 동점골을 합작한 제파로프와 김치우 모두 왼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두 선수 모두 오른발을 사용해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팀이 가장 가장 필요로 할 때 평소 잘 사용하지 않았던 오른발로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한 제파로프와 김치우의 모습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패배할 뻔한 경기를 극적인 무승부로 바꾼 서울은 결국 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통산 4번째 우승트로피를 자신들의 진열장에 진열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4. 2011년 5월8일 vs 상주 4-3 승

부제 : 군인정신도 막지 못한 서울의 공격본능.

주연 : 데얀, 현영민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맞이한 2011 시즌. 당연히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FC서울의 시즌 초 행보는 높은 기대만큼이나 실망을 안겨주었다. 초반 부진에 대해선 서울 팬들에겐 안좋은 기억인 만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최용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 이후 서울은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최용수의 데뷔 전인 제주전에서 2-1로 승리한 서울은 주중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UAE의 알 아인을 3-0으로 제압하며 상승세를 탔다. 이어서 만난 상대는 상주. 당시 상주는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김정우가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하고 있었고, 서울 출신의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팀이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 분명 했으나 서울은 초반부터 강력한 공격으로 상주를 압박했다. 결국 전반 8분 방승환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가 자책골을 넣으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서울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2-1로 다시 앞서나갔다.


이 후 경기는 골 공방전이 펼쳐지며 농구 경기를 연상케 했다. 후반 1분 만에 상주 최효진이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반격에 나선 서울이 후반 28분 김영삼의 헤딩 미스를 틈 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다시 앞서갔다. 그 후 김정우가 1분 만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양 팀은 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3-3 으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후반 43분. 서울은 아크 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로 나선 선수는 교체 투입된 현영민. 현영민의 발을 떠난 공은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서울은 4-3으로 다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결국 현영민의 프리킥 한방은 승부에 마침표를 되었고, 서울은 3연승에 성공하며 좋은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상주에 끈질긴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강력한 공격본능으로 상주의 추격을 잠재우며 극적인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덤으로 화끈한 골 잔치를 벌이며 예전의 공격력까지 회복한 서울은 대반격의 신호탄을 쏘며, 5월에만 6승1무2패라는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5. 2011년 8월13일 vs 전남 1-0승

부제 : 한여름밤의 환상적인 버저비터.

주연 : 몰리나, 최용수










뜨거운 여름. FC서울의 2011년 여름 역시 뜨거웠다. 초반 부진했던 모습은 훌훌 털어버리고, 4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순위도 리그 4위로 끌어올렸다. 경기 내용 역시 화끈했다. 연승 기간 동안 무려 11골을 기록, 경기당 평균 2.75골을 넣으며 내용과 결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기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5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상대는 전남. 당시 전남도 리그 5위를 달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임엔 분명했으나, 서울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또 전반기에 당한 0-3 패배를 설욕해야 했기에 동기 부여도 충분했다.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데얀, 몰리나, 고명진 등을 앞세워 강력한 공격으로 전남을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전남의 저항 역시 거셌다. 당시 리그 최소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수비진과 전 국가대표 수문장 이운재가 버티고 있는 골문은 서울에 쉽사리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서울은 최태욱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지만, 이운재는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진리를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의 소나기 슈팅을 연달아 선방하며 경기를 0의 행진으로 몰고 갔다.


결국 스코어가 0-0 으로 유지된 채 경기는 추가 시간을 맞이했다. 후반 48분 전남이 코너킥을 얻어내며 서울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도리어 이것이 서울에 기회로 작용했다. 코너킥이 서울의 역습으로 이어지며 최태욱이 특유의 빠른 돌파로 전남의 우측면을 파고 들었고, 중앙으로 찔러 준 낮은 크로스를 데얀이 이어받아 정지시킨 볼을 몰리나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왼발 슈팅을 날리며 골을 기록한 것이다.


극적인 골에 팬들은 환호했고, 최용수 감독은 골을 넣은 몰리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다 바지가 찢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울은 0-0으로 비길 뻔한 경기를 1-0 승리로 이끌며 5연승을 질주 했다. 이 후 에도 서울은 제주와 강원을 연파하며 총 7연승으로 2011 K리그 팀들 중 최다 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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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1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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