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사진출처-KFA PHOTO)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킬 브라질 월드컵이 코앞이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에서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축구 강국들 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세운 대한민국. 얼핏 보면 대한민국의 월드컵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탈락 위기를 겪기도 하며 치열한 승부 끝에 세운 대기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FC서울 선수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FC서울 선수들의 활약상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최용수는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 (사진출처-KFA)







1997년 당시 차범근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현 FC서울 감독인 최용수였다. 당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최용수는 카자흐스탄과의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 우즈베키스탄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선제골, 한국 축구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 도쿄 대첩에서 2 어시스트로 맹활약한다. 덕분에 대표팀은 4연승을 달리며 프랑스행 티켓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반환점을 돈 이후 첫 경기를 불안하게 출발한다. 카자흐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다음 상대는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보단 한 수 위로 평가받는 팀이었다. 게다가 홈에서 2-1로 진땀승을 거두었고 원정 경기라는 점도 대표팀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최용수의 활약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최용수는 전반 18분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41분엔 하석주의 코너킥을 가슴으로 받은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기록 했다. 덕분에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을 5-1로 대파하며 프랑스 월드컵 출전을 사실상 확정했고 이후 일본이 UAE1-1로 비기면서 프랑스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두 골을 기록했다 (사진출처-KFA PHOTO)






2006 독일 월드컵 진출 당시에도 FC서울 선수의 활약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박주영. 당시 박주영은 청소년대표시절 보여준 엄청난 활약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고 FC서울에서도 변함 없는 활약을 이어가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자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당시 대표팀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 감독은 훅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활약이 이어지자 결국 박주영은 대표팀에 뽑혔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경기에서 후반 18분 막심 샤츠키흐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어렵게 흘러가자 박주영은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막판까지 동점골을 넣지 못하며 패배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주영이 구세주가 되었다. 후반 45분 혼전 상황에서 정경호의 패스를 받은 박주영이 다이렉트 슈팅을 날렸고 이것이 그대로 골망을 가른 것이다. 대표팀은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후 쿠웨이트전에서 박주영은 팀 동료인 김동진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결국 4-0으로 쿠웨이트를 꺾은 대표팀은 독일 월드컵 출전을 확정했다.



이청용은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대한민국의 남아공행에 큰 힘을 보탰다. (사진출처-KFA PHOTO)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선 FC서울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인 이청용과 기성용의 활약이 눈부셨다. 이청용은 요르단과의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했고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성용은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당시 대표팀은 요르단과의 3차 예선 홈경기에서 2-2로 비겼고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홈, 원정 모두 0-0으로 비기며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서도 홍영조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지만 기성용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경기 이후로 대표팀은 확 바뀌었다.




주장 완장은 박지성이 찼고 이청용, 기성용 등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 것이다. 효과는 UAE와의 홈 경기에서 바로 나타났다. 이청용은 정확한 패스로 이근호의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기성용은 골대를 맞추는 슈팅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다. 결국 대표팀은 UAE4-1로 물리치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고 이청용과 기성용은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대표팀은 사우디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뒀고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선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만난 상대는 북한. 늘 북한의 탄탄한 수비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우리나라였지만 남아공행의 8부 능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이 날 경기에서도 우리나라는 북한의 수비에 막혀 고전했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공격 강화 카드로 후반 33분 이근호 대신 김치우를 투입했다. 김치우는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쾌조의 골 감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치우가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 42분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김치우가 절묘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북한의 골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1-0 승리를 거두며 남아공 월드컵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김치우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대표팀을 구했다.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45,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든 것이다. 만약 이 골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자력 진출이 아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진출을 노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치우의 왼발 프리킥이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 이어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북한전에서 멋진 프리킥골을 성공시킨 김치우 (사진출처-KFA PHOTO)





현재 FC서울에 소속되어 있는 차두리 역시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던 차두리는 레바논과의 독일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 3차전 홈경기에선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해당 경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FC서울 소속 선수는 참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월드컵 예선에서 보였던 모습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도 보여준다면 러시아 월드컵엔 FC서울 소속 선수가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어떤 선수가 될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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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5.23 01:06









서울이 깨어나고 있다. 지난 베이징 궈안전부터 인천전까지 3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서울은 시즌 초반에 부진했어도 5월을 기점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서울은 4월말에 있는 경기를 잡으며 5월 대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서울은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초반 행보는 부진했다. 신생팀 강원에게 1-2로 패했고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경기 에서도 2-4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1-0으로 꺾으며 살아나나 싶었지만 산둥 루넝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했고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경남과 대구에게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과의 홈 경기에서도 1-1로 비기는 등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했던 서울은 4월 마지막 경기였던 울산과의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5, 서울은 폭발했고 성남, 스리위자야를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전북에게 0-2로 패했지만 서울은 FA컵과 AFC 챔피언스리그 포함 7연승을 질주하며 본모습을 되찾았다.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은 서울은 리그 개막전 상대인 수원에게 0-2로 패하더니 대전과도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항저우 그린타운을 3-0으로 꺾었지만 전남에게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했다. 전북을 3-1로 이겼지만 나고야 그램퍼스전, 부산전, 울산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나고야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0-2로 패했고 신생팀 광주에게 마저 0-1로 덜미를 잡히며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최용수가 감독 대행 자격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4월 마지막 경기에서 제주를 만났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서울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5월부터 서울은 약속이라 한 듯 폭발했다. 알 아인을 3-0으로 꺾더니 상주도 4-3으로 꺾으며 연승을 달렸다. 항저우와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경남, 용인시청을 잇달아 제압했다. 대구에게 0-2로 패하며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전년도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3-0 완승을 거두며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2013년도 우승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2-2로 비긴 서울은 인천과의 홈 경기에서 예상 못한 2-3 패배를 당했다. 이후 부리람과 0-0으로 비긴 서울은 부산에게도 0-1로 패했다. 경남과 2-2로 비긴 서울은 센다이를 2-1로 제압했지만 울산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2실점하며 2-2로 비겼다. 이후 서울은 센다이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수원과도 1-1로 비겼으며 성남에겐 1-2로 패하는 등 서울은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커녕 리그에서 1승도 못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4월 중순 대구를 4-0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수 세인티와의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둔 서울은 강원과의 경기에서 먼저 두 골을 내주고도 후반 고요한의 활약으로 세 골을 넣으며 3-2 역전승을 거두며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서울이 반격에 나서는 5. 서울은 부리람과 무승부를 거두고 전북에게 0-1로 패했지만 연세대와 대전을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 11무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고 제주와의 경기에선 패배가 예상되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끝에 4-4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서울은 전남을 3-0으로 꺾으며 팀 통산 40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014
년 서울의 초반도 부진했다. 리그 11위까지 처진 모습은 서울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서울은 베이징 궈안을 2-1로 물리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선 무려 55개월만에 원정 승리를 거뒀다. 인천과의 FA32강전에서도 3-2로 승리하는 등 서울은 기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전조
(前兆) 어떤 일이 생길 기미라는 뜻이다. FC서울의 ‘5DNA’가 깨어날 전조는 충분히 나타났다. 이제 올해도 ‘5DNA’를 보여줄 차례다. 앞서 열거한 2009, 2011, 2013년의 5월 성적만 놓고 보면 1553패로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의 FC서울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초반 부진을 딛고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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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5.01 01:42



 






강원을 제물 삼아 리그 2연승을 노렸던 FC서울. 하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30분까지 만회골을 넣지 못하며 패색이 짙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34분 고요한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흐름을 탄 서울은 후반 39분 고요한이 또 한번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42분엔 데얀이 역전골마저 성공시키며,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8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터진 폭발력은 75분 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서울이 이런 폭발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서울은 그간 한번 골을 넣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골을 몰아 넣으며 경기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곤 했다. 짧은 시간에 골을 넣으며 막강한 폭발력을 과시한 서울. 그래서 이번엔 과거에 보여준 폭발적인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전남과 2009 시즌 개막전을 치른 서울은 전반에만 세 골을 넣으며 3-0으로 넉넉하게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10분 환상적인 골이 터진다.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김치우가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네 번째 골을 뽑아낸 것이다. 다섯 번째 골을 보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반 12분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기성용이 수비수 한명을 제친 뒤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성공 시켰다. 화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고 후반 16분 김치우의 크로스를 이청용이 살짝 내주자 이승렬이 달려들어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겨우 6분 만에 나온 세 골. 그 덕에 서울은 전남을 6-1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그 해 어린이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데얀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스리위자야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결국 서울의 폭발력이 다시 불을 뿜었다. 후반 27분 데얀이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키자, 3분 만에 심우연이 또 다시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흐름은 이어졌고, 4분 후인 후반 34분. 심우연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4-1로 벌리는데 성공했다. 7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승기를 잡은 서울은 결국 추가시간에 터진 데얀의 골까지 묶어 5-1로 승리했다.














라이벌 수원도 서울의 폭발력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2010년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두 팀은 초반 상위권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을 벌였다. 경기 초반엔 수원이 흐름을 가져갔지만, 중반부터 서울의 폭발력이 서서히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전반 24분 데얀의 힐패스를 받은 에스테베즈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슈팅을 날리며 선제골을 뽑아 냈고, 3분 뒤엔 정조국이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2-0으로 벌렸다. 서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5분 뒤인 전반 32분에 최효진의 골까지 묶으며 3-0으로 앞서나갔다. 8분 만에 세 골을 넣은 서울은 결국 후반에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3-1로 꺾고 라이벌전에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서울의 폭발력은 강원전처럼 역전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0년 10월 경남과 홈에서 맞붙은 서울은 전반 2분만에 실점하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고, 설상가상 아디가 전반 10분에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특유의 폭발력이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정조국이 후반 31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이어 4분 뒤 하대성에게 연결된 정조국의 정확한 패스는 역전골로 이어졌고, 또 4분 뒤엔 정조국이 최효진의 패스를 받아 또 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후반 막판 경남에게 추가 실점을 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어려운 경기를 펼쳤음에도 8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2012년 8월. 성남과 원정경기를 치른 서울은 전반 고요한의 패스를 받은 데얀의 발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하밀과 윤빛가람에게 연속골을 내줘 1-2로 역전 당했다. 다급해진 서울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후반 34분에 터진 데얀의 골이 반칙으로 무효처리 되면서 찬물이 끼얹어졌다. 설상가상 데얀은 거칠게 항의하다 경고까지 받는 등 역전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맹공을 퍼부은 결과 후반 43분 아디의 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골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곧바로 이어진 추가 시간. 서울의 폭발 본능은 살아있었고 결국 데얀이 추가 시간에 골을 터트리며 3-2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고, 서울은 5분 만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내며, 패배할 뻔한 경기를 승리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이 이러한 폭발력을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공격 본능과 집중력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은 팬들을 매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막강한 폭발력으로 패배할 듯한 경기를 승리로 뒤집어 버리는 서울의 모습. 앞으로도 서울의 폭발력이 계속해서 살아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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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5.04 23:11
 


FC서울이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났다.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9라운 드 강원과의 경기에서 고요한의 2골과 데얀의 결승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후반 8분동안 3골을 몰아넣으며 영화와도 같은 경기내용을 선사했다. 경기 후 각 스포츠기사에는 ‘FC서울 극장’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짜릿한 역전승이나 추가시간에 터진 골 등은 축구팬들에게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준다. FC서울의 경기도 여러 번 극장을 연출해내며 팬들에게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영화와도 같았던 FC서울의 경기에 대해 알아보자.
 

2008.09.06. vs 부산

 




2008년 9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컵대회 마지막경기. FC서울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탓인지 초반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전반 46분과 후반12분 정성훈에게 2골을 허용. 이대로 허무하게 경기에서 패배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서울극장’의 막이 올랐다. 후반 16분 이승협의 패스에 이은 김은중의 헤딩슛이 골라인을 통과하며 골로 인정되었고 후반 42분 이청용의 크로스에 이은 이상협의 다이렉트 왼발 슛으로 그림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정조국이 역전골을 넣으며 3-2로 부산을 제압했다. 비록 다음 라운드 진출은 실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일구어내며 팬들에게 영화같은 승리를 선사해주었다.


2008.10.29. vs 수원





서울 팬이라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다. 당시 K리그는 서울, 수원, 성남의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수원과 경기가 있기 전, 홈에서 성남을 1:0으로 제압한 서울이 수원마저 이기게 된다면 리그 1위는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어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또한 수원과의 슈퍼매치인 만큼 경기인 만큼 경기 또한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치열한 공방 끝에 양 팀 모두 득점을 하지 못하였고 후반 추가시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후반 47분. 경기를 끝마칠 찰나 기성용의 천금 같은 골이 터져 나왔다.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골키퍼를 넘기는 재치있는 골이었다. 적지에서 수원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으니 그 짜릿함이 배가 되어 팬들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경기였다.



2011년 5월 8일 vs 상주상무



최용수 감독 대행으로서 제주전 승리를 마친 FC서울은 다음 라운드 상대인 상주상무와의 경기세서도 또 한 번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루어 냈다. 당시 상주상무는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 군입대한 서울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김정우, 김치곤 등 역대 최강의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경기내용도 팽팽했다. 전반 9분 방승환의 패스를 이어 받은 데얀이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키며 손쉽게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의 자책골로 1-1 동점. 다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에 이은 데얀의 헤딩슛으로 다시 역전했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최효진에게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다시 동률을 이루었다. 그리고 후반 28분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경기를 재역전 시켰다. 하지만 상주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1분 뒤 김정우가 다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고 모두들 무승부를 예상하고 있을 무렵. 상주의 페널트에어라인 근처에서 얻은 프리킥을 현영민이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켜 무려 7골이나 나왔던 경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로서는 11시즌 첫 연승이자 최용수 감독대행의 연이은 승리 행진 이었다.


2011.07.09 vs 상주상무

상주와는 극적인 경기가 자주 발생했던 해였다. 전반기에 4-3이라는 극적인 경기 결과를 만들어 내더니 이번엔 축구 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펠레스코어가 나왔다. 이 경기는 경기내용 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은 경기였다. 2011년 승부조작으로 인해 상주의 골키퍼 3명의 모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전 골키퍼인 권순태 마저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비수였던 이윤의가 골키퍼로써 선발경기를 치루며 매스컴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주는 전반 33분 김정우가 선취득점을 성공하였으나 후반 9분, 20분 데얀에게 2골을 헌납하여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39분 김민수의 골이 터지며 경기는 다시 원점. 흥미진진한경기가 계속 됬다. 그리고 얻어낸 후반 48분 서울의 마지막 코너킥 찬스. 서울 팬들은 모두 ‘골’을 외쳤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현영민의 크로스를 받아 방승환이 헤딩으로 연결하며 이날 결기 마지막 골을 기록한 것. 그날 상암을 찾은 3만여 관중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2011.08.13 vs 전남전


2011년 여름에 서울 팬들은 극장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경기장 자체가 극장이었으니 말이다. 전남과의 경기에서도 극적인 장면이 연출됬다. 서울은 경기 초반부터 전남선수들을 압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골찬스에서 데얀의 슈팅은 번번히 빗나갔고 유효슈팅마저도 이운재의 선방에 막히며 0-0 스코어를 유지했다. 조급했던 서울은 무리하게 공격을 펼치다 오히려 역습상황에서 위기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패색이 짙던 후반 인저리타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골이 나왔다. 전남의 공격상황에서 상대의 패스를 가로챈 고명진이 최태욱에게 연결.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의 빠른 측면돌파 후 크로스. 데얀의 한 번의 터치 이후 몰리나의 슛. 역습의 정석을 보여주며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몰리나의 골 이후 최용수 감독이 N석 까지 달려와서 선수들과 같이 세리머니를 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기도 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정용우(mjgs65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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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3.05.01 00:07




 





2013년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답게 많은 기대를 모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인 장수 슌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을땐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모습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포항과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인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선 2-3으로 패했다. 이후 서울은 부리람과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첫 승에 실패했다. 현재 FC서울의 성적은 1무2패. 순위도 11위에 처져있다. 여러모로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2009년에 보여줬던 모습이 좋은 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준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009년 우승후보로 꼽혔다. 2009년에도 올해처럼 선수단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 등을 줄줄이 떠나보냈지만, 서울은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데얀, 아디, 정조국, 김치우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완벽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FC서울은 우승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출발 역시 좋았다. 전남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서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도 4-2로 승리하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서울은 1-2 충격패를 당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해 1.5군을 내세웠지만, 당시 강원은 신생팀이었고, 주전 대부분이 지난 시즌에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의 모습은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한 서울은 이어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1-0으로 잡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고, 이어서 경남, 대구 등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상대와 맞섰지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서울은 FA컵 김해시청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포항, 감바오사카, 대전, 광주상무, 제주를 연파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스리위자야가 산둥 루넝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극적인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서울은 6월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2009년 초반과 지금의 모습인 2013년 초반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은 스쿼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시즌을 시작했다는 점.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위기설이 나왔다는 점 등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FC서울은 지금의 난관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용수(당시 코치), 데얀, 아디, 고명진, 고요한, 김진규, 김치우 등 현재 FC서울 구성원 대부분이 2009년에도 FC서울의 일원이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서울이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금 강력한 축구를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멋진 축구를 보여줄 FC서울을 기대해보자.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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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3.24 11:03


 

 










The memorable season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2008년 FC서울이다. 2008년 FC서울은 귀네슈 감독의 화끈한 공격축구, 기성용, 이청용 이라는 스타 탄생,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 인상적인 모습이 많이 나왔던 시즌이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FC서울의 2008년.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의 2008년을 돌아보도록 하자.



2008년 최대의 화두. 공격진 강화!



 FC서울은 2007년 세계적인 명장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7위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무엇보다 공격력 부족이 큰 문제였다. 팀 내 최다 득점을 넣은 선수가 6골(두두, 이상협)을 넣을 정도로 골 기근에 시달렸다. 시즌을 앞두고 서울은 공격진에 메스를 들이댔다. 두두를 내보내는 대신 인천에서 19골을 기록한 공격수 데얀을 영입한 것이다. 또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갈고 출신의 이승렬을 데려오며 공격진을 한층 강화했다.



시즌 시작 전 열린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서울은 울산과의 K리그 개막전에선 1-1로 비겼지만 두 번째 경기인 전북 원정 경기에서 데얀과 박주영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열린 경남과의 컵대회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대구와의 리그 경기를 3-1 승리로 장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서울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 줄 만한 영입이 성사된다. 맨체스터 시티, AZ 알크마르 등 유럽 굴지의 팀에서 뛰었던 무삼파가 FC서울에 합류한 것이다. 4월 16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무삼파는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강력한 슈팅력을 선보이며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날개가 되어줄 듯한 무삼파는 이후 부진에 시달리며 3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6월에 팀을 떠나게 된다. 
 


기성용, 이청용의 급성장! 그리고 마지막 퍼즐조각이 된 김치우



서울은 4월 13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제주를 3-1로 물리쳤다. 이후 서울은 리그 4경기에서 1승3무를 기록하며 A매치 휴식기를 맞았다. 패한 경기는 없었지만 무승부가 많은 탓에 강팀의 면모를 보였어도 리그 4위에 머문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 리그에서도 서울의 흐름은 큰 변화가 없었다. 부산과 포항을 잇달아 잡았지만 울산과 전북과는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비중을 적게 두었던 컵대회에서 수원을 1-0 으로 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변함없이 선두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서울로선 약간 아쉬운 일. 그래서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전력보강을 한다.
 


 







서울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전남에서 김치우를 데려와 측면을 강화했다. 김치우는 데뷔전인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서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1월2일 부산에 0-2로 패하기 전까지 서울은 7승2무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새로 합류한 김치우와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기량이 급성장한 기성용과 이청용. 외인 공격수 데얀의 변함없는 활약은 서울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또 조커로 활약한 이상협과 이승렬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렬은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고, 그 해에 넣은 5골 중 3골이 결승골이었다. 이상협 역시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42분 환상적인 왼발 발리 슈팅으로 1-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승리로 서울은 시즌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이상협은 2008년에 출장한 17경기 중 15경기를 교체 출장하며 귀네슈 감독의 히든 카드로 활약했다. 서울은 부산에 0-2로 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15승 9무 2패 승점 54점으로 수원(17승 3무 6패)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수원 +22, 서울 +19) 2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 했다.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서울의 상대는 울산. 서울은 광대뼈 부상을 당한 정조국을 선발 출장 시키며,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고, 결국 정조국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후반 염기훈에게 실점하긴 했지만 서울은 연장전에서 골 폭풍을 몰아쳤다. 데얀, 김은중이 연속골을 터트렸고, 그 해 군에서 전역한 김승용마저 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4-2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수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서울은 아디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곽희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선 에두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정조국의 페널티킥으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수원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김호준이 송종국의 슛을 선방했지만, 송종국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며 2-1을 만들었다. 결국 서울은 스코어를 뒤집지 못했고,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장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기성용은 팀의 우승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지만, 아쉽게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서울의 2008년은 많은 것을 얻은 해였다. 우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귀네슈 감독의 총애 아래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이어졌다. 기성용은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구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선 이청용의 정확한 크로스를 기성용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또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이청용이 골의 단초가 되는 전진 패스를 내줬고, 기성용이 상대 실수를 틈 타 골을 성공시키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FC서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가 꽃을 피운 것도 고무적이다. 2007년 고작 23골이었던 팀 득점은 1년 만에 50골로 늘었다.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 이청용의 창조적인 드리블, 데얀의 치명적인 마무리, 이상협의 특급 조커 역할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울의 공격은 불을 뿜었다. 귀네슈 감독 특유의 공격 성향도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울산전에서 1-1로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하자 귀네슈 감독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공격수 김은중, 이상협을 투입하며 공격 성향을 잃지 않았고, 결국 이는 대량 득점으로 이어져 4-2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플레이오프 라는 중요한 대회에서도 귀네슈 감독은 특유의 ‘공격 본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이 강해도 수비가 약하다면,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수비라인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레프트백 아디는 귀네슈 감독이 가장 믿는 수비수 중 하나였고, 김치곤과 김진규는 든든한 센터백 듀오였다. 또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한윤의 활약은 기성용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였다. 수비진의 활약덕에 서울은 30실점으로 최소 실점 공동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2001년 준우승 이후 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서울은 준우승을 거두며 다시금 ‘강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 우수한 젊은 선수들의 출현과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했기에 2008년 FC서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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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2.01 22:41

2012.8.18.토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수원
0 : 2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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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08.27 20:58


 

브라질과의 런던올림픽 4강전에 선발 출전한 김현성의 플레이 장면 (사진출처-MK스포츠) 








런던올림픽에 출전 중인 FC서울의 공격수 김현성이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70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한 채 팀의 0-3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김현성은 올림픽 4강전이라는 큰 경기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고,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최용수 감독에게 올림픽 전에 “올림픽에서 크게 사고 치면 여기서 나와 같이 앉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 격려를 들었던 김현성. 가봉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멋진 발리 슈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현성은 드디어 제대로 사고칠 기회를 잡았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것이다.




영국과의 8강전에서 김보경(카디프시티) 대신 지동원(선더랜드)을 투입한 용병술을 성공시켰던 홍명보 감독은 이번에도 박주영(아스날) 대신 김현성을 깜짝 선발 출전시키며 브라질에 맞섰고, 김현성은 지동원과 함께 공격진에서 호흡을 맞췄다. 경기 초반 대한민국 선수들은 오히려 공격을 지배하며 브라질을 압박했다. 김현성에게도 전반 11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좌측면에서 김보경이 올려준 볼을 헤딩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아쉽게도 수비에 걸리면서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전반 13분엔 지동원이 올려준 볼을 김현성이 솟구쳐 헤딩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키퍼와 몸싸움을 하면서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흘러나온 볼을 지동원이 밀어넣으려 했지만 또 다시 수비가 저지하며 기회를 놓쳤다.




이후에도 김현성은 제공권 장악과 지동원 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전반 38분 호물로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리드를 빼앗겼다. 하지만 공격 의지를 잃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전반 45분 또 다시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김현성이 가슴 트래핑 한 뒤 지동원에게 침투패스를 내어줬고, 지동원이 이어받아 강력한 하프발리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를 살짝 떠가며 아쉬움을 삼켰다.



김현성 특유의 제공권 장악능력은 브라질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사진출처-스포츠조선)







후반에도 출전한 김현성은 후반 2분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기성용(셀틱)이 올려준 프리킥을 특유의 제공권 장악 능력을 활용해, 지동원에게 헤딩 패스를 내어줬지만, 이어받은 지동원의 슈팅이 또 다시 골대를 넘어가며 김현성의 도움 기록 역시 날아갔다. 김현성은 자신의 또 다른 장점인 너른 활동 반경을 바탕으로 중앙과 좌측면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후반 4분엔 좌측면에서 낮은 크로스를 올리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후반 11분과 18분. 다미안에게 연속으로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0-3으로 벌어졌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후반 25분 김현성 대신 박주영을 투입했고, 김현성의 올림픽 첫 선발 경기는 이렇게 막을 내려야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김현성은 브라질을 상대로도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강팀을 상대로도 자신이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만큼 골 기회가 왔을때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과연 김현성은 최용수 감독의 바람대로 올림픽에서 크게 사고 칠 수 있을까?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이 주목된다. 일본을 꺾는다면 사상 첫 메달 획득과 함께 병역면제 혜택도 주어지는 만큼, 김현성도 한층 더 날카로운 집중력으로 일본전을 준비하고 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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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8.08 11:28

 

 

 

- 팀 창단 29년 만에 부산, 울산, 포항, 제주에 이어 K리그에서 5번째로 대기록 달성

 

 

 

-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키는 기회

 

 

 

 

 

FC서울(이하 서울)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9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창단(1983) 29년 만에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의 대기록을 달성한다.

 

서울은 국내 프로축구 제 5호 구단으로 창단해 그동안 K리그를 이끌어왔으며 지난 시즌 기록을 달성한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에 이어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팀 통산 1,000경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다른 기록들에 비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팀 득점이나 팀 최다 승 등의 다른 기록들은 팀과 선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록 달성까지의 기간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기록만큼은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 팀만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통산 1,000경기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29년간 서울은 전 대회 통산 371311317(정규리그 312230260)를 기록해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에 이어 K리그에서 세 번째로 통산 4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통산 1327득점과 1209실점(정규리그 1075득점 971실점)을 기록 중이다.

 

 

 

 

 

 

서울은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을 시작으로, 고재욱, 조영증, 박병주, 조광래, 이장수, 귀네슈, 빙가다, 황보관 그리고 현재의 최용수 감독의 지도하에 리그 우승 4(준우승 5), 컵 대회 우승 2(준우승 4), FA컵 우승 1회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재작년인 2010 시즌에는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팬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울은 선진 마케팅 도입을 통해 그동안 한국 프로스포츠와 K리그에서의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는데 LED(발광다이오드)전광판 도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모바일 티켓 예매 시스템, 소셜커머스를 통한 티켓북 판매, 외국인의 날, 팬들이 제작한 립덥 뮤비그리고 통합 시즌권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서울의 축구 철학은 고스란히 관중 기록으로 이어져 한국 프로스포츠 한 경기 최다 관중(6747)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정규리그 평균 관중 3만 명 돌파 그리고 K리그 두 시즌 연속 시즌 누적 50만 관중 달성 등의 자랑스러운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길러내며 한국축구의 중심축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온 서울은 이번 K리그 통산 1,000경기 달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명문 팀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 더 확고히 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서울은 앞으로도 존재하고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다가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 시작의 축제를 다함께 즐겨보자.

 

/ =FC서울명예기자 김종호(fabrer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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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4.20 16:48

 

 

 

 

이번 주말. K리그 팬들을 흥분시킬 FC서울과 수원의 맞대결이 펼쳐진다. 2007년부터 작년까지 서울과 수원의 맞대결은 서울의 홈에서 먼저 펼쳐졌지만, 올해는 수원의 홈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첫 번째 대결이 열릴 예정이다. 현재 서울은 3승1무를 기록하며 K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초반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수원과의 맞대결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수원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 역시 3승1패로 리그 3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3년간 서울이 수원 원정에서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는 점은 서울의 불안요소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공은 둥글듯, 승부는 쉽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서울인 만큼, 지금의 기세를 잘 살린다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래서 이번엔 FC서울이 수원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기억들을 다시 한번 꺼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기억들을 되살려 서울이 수원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길 기원하며, 수원에선 어떠한 승리의 기억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1. 2005년 10월23일 K리그 3-0 승

 

 

 

 

2005년 하반기 FC서울은 다소 주춤했다. 그해 8월24일 광주상무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둔 이후 무려 7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서울은 이 기간 동안 3무4패를 기록하며 강팀의 체면을 세우지 못했다. 이어서 맞닥뜨린 상대가 바로 수원. 수원은 전년도 우승을 차지했지만, 김남일, 송종국, 나드손등 주전 대부분이 부상에 시달리며, 디펜딩 챔피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따라서 양팀은 부진을 탈출하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선 승리가 절실했다. 양팀이 가지고 있는 절실함은 경기를 치열하게 만들었고, 각팀 공격의 핵인 서울의 박주영과 수원의 이따마르는 공격을 주도하며, 골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골문은 박주영이 먼저 열어 젖혔다. 정조국의 헤딩 패스를 이어받은 박주영은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서울에 리드를 안겼다. 이 한방으로 기세가 오른 서울은 경기 주도권을 가져왔고, 정조국, 백지훈도 공격에 나서며 수원을 압박했다.

 

 

결국 후반 6분 승부를 결정짓는 서울의 추가골이 터졌다. 박주영이 얻어낸 프리킥을 정조국이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골네트를 가르며 2-0을 만든 것이다. 공세를 이어간 서울은 후반 24분 코너킥을 이어 받은 한태유가 왼발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까지 만들어내며 3-0 압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선제골을 넣은 박주영은 무려 56일 만에 골맛을 보며 시즌 10호골로 리그 득점 공동 선두로 올라서기도 했다. 반면 수원은 부상에서 갓 회복한 김남일 까지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완패를 당했고, 경기 후 일부 수원팬들은 당시 수원의 수장이던 차범근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2. 2006년 7월26일 컵대회 1-1 무

 

 

 

 

무승부 경기를 소개하는 것에 다소 의아스러운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서울이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2006년 서울은 컵대회에서 8승2무1패 승점26점으로 순항하고 있었다.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무승부만 기록해도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기에, 서울은 남다른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수원 역시 자신들의 안방을 서울의 우승 세리머니 현장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는 듯,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였고, 그해 여름에 영입한 이관우와 올리베라를 앞세워 서울을 압박했다. 서울 역시 김은중, 정조국등을 앞세워 공격했지만, 득점에는 실패하며 결국 전반을 0-0으로 마쳐야 했다.

 

 

후반에도 양 팀은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팽팽한 균형을 이어갔지만, 후반 26분 올리베라의 발끝에서 균형이 무너졌다. 서울 수비진의 혼전을 틈탄 올리베라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간 뒤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찌른 것이다. 다급해진 서울은 총공세에 나섰지만 후반 40분이 다가올 무렵에도 스코어는 1-0이 유지되며 서울은 우승 확정을 다음 기회로 미루는 듯 했다.

 

 

하지만 기적은 서울의 편이었다. 후반 39분 김동석의 패스를 받은 천제훈이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트린 것이다. 결국 경기는 1-1로 마무리 되었고, 서울은 2000년 우승 이후, 6년 만에 트로피를 추가 하는데 성공했다.

 

 

3. 2008년 7월2일 컵대회 1-0 승

 

 

 

 

 

2007년 4월 8일 수원에게 0-1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은 이후 수원에게 5연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그해 열린 수원과의 첫 번째 맞대결에서도 서울은 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신영록에게 두골을 허용하며 0-2로 패했다. 이후 수원과 컵대회에서 만나게 된 서울. 하지만 당시 서울은 리그에서 6승5무1패로 3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컵대회에서 2무4패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수원은 컵대회에서 4승2무를 기록하며 순항중이었다. 게다가 리그에선 11승1무로 무려 18경기 연속으로 무패를 기록하며 K리그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경기는 여러모로 수원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서울 역시 컵대회 부진을 털고, 수원전 5연패 사슬을 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에두, 신영록, 이현진, 서동현등 막강한 공격라인을 앞세워 수원은 공세를 취했지만, 서울 역시 이청용, 이승렬등 신예 공격수와 최원권의 정확한 프리킥을 앞세워 반격했다. 경기 내내 쏟아지는 장대비로 양팀은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지만, 서울이 선제골을 잡아내며 기선을 제압한다.

 

 

전반 48분 최원권의 패스를 받은 이승렬의 슈팅이 수원 수비수인 최창용을 맞고 흐르자 이승렬이 이를 재차 왼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한 것이다. 결국 이 한골로 서울은 전반을 1-0으로 마칠 수 있었다. 후반 들어 수원의 김대의, 서동현등이 연속으로 슈팅을 날리며 동점골 사냥에 나섰지만, 서울 수비진은 철벽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고 골키퍼 김호준 역시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수한 슈팅을 막아내며,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골을 끝까지 지킨 서울은 무패 행진을 달리던 수원을 1-0으로 격침시키며, 컵대회 첫승에 성공했다. 반면 수원은 “더 이상 서울은 라이벌이 아니다.” 라며 승리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시즌 첫 패를 당하며 무패 행진을 마감해야 했다.

 

 

4. 2008년 10월29일 K리그 1-0 승

 

 

 

 

시즌 첫 패를 안긴 서울을 다시 안방으로 불러들인 수원은 내심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즌 내내 1위를 고수하던 수원은 시즌 후반엔 울산, 제주, 전북에게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그 틈을 노려 서울이 16경기 연속 무패행진(12승 4무)을 바탕으로 1위를 빼앗은 터라, 수원의 투지는 그 어느때보다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 역시 연고 복귀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이란 목표가 있었고,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불을 뿜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터였다.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양팀은 초반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으로 상대의 허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경기 초반부터 아디와 곽희주가 서로에게 신경전을 벌이는 등, 경기는 점점 과열양상으로 치달았고, 양팀 통틀어 전반에만 경고가 4장이나 나오며, 라이벌전임을 재확인 시켰다. 치열한 경기에 비해 양팀은 이렇다할 소득을 올리지 못하며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후반 들어 양팀의 용병공격수인 데얀과 에두가 중심이 되어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지루한 0의 행진은 계속되었고 결국 시계는 후반 추가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두가 0-0을 의심치 않고 있던 순간, 당시 FC서울 최고의 듀오이던 쌍용이 일을 냈다.

 

 

후반 47분 이청용이 전방을 향해 길게 내준 롱패스를 양상민이 머리로 걷어내려 했지만, 클리어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기성용이 이운재의 키를 넘기는 슛으로 선제골을 뽑아낸 것이다. 이 골로 인해 서울팬들은 환호했고, 기성용은 2006월드컵 토고전 당시 토고 선수들이 보여줬던 캥거루 세리머니를 펼치며 자신의 골을 자축했다. 결국 서울이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1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나갔고, 1위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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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3.28 14:30








축구의 백미는 역시 골이다. 축구 경기에서 터지는 시원스런 골로 인해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열광한다. 이처럼 골은 실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 골이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골을 넣기 위해서는 패스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좋은 패스 없이는 좋은 골 역시 나올 수가 없다.


그렇기에 최고의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패스의 달인’을 보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FC서울 역시 훌륭한 패스의 달인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치 16년 동안 5만7천여회의 패스라도 한 듯 공격진 뒤에 배치되어 양질의 패스로 무수한 골들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 역대 최고의 ‘패스의 달인’들을 알아보자.



1. 안드레







풀네임 : Andre Luiz Alves Santos

생년월일 : 1972년 11월 16일

국적 : 브라질

FC서울 활동년도 : 2000~2002

FC서울 통산 기록 : 96경기 18골 27도움



FC서울의 전신인 LG치타스 시절에 활약했던 안드레는 2000년 팀의 세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로도 유명하다. 브라질 프로축구 2부리그 마릴리아클럽에서 뛰던 안드레는 키프로스 전지훈련에서 당시 감독이던 조광래의 눈에 띄어 한국땅을 밟는다. 브라질 외에 다른 나라에선 뛰어본 적이 없고 이적료 역시 50만 달러로 당시 유고에서 영입한 드라간의 이적료(12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그를 향한 주목도는 다소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팬들의 주목도를 조금씩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포항과의 대한화재컵 첫 경기에서 한국 무대 데뷔전을 치른 안드레는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대한화재컵 총 7경기에서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제몫을 다하게 된다. K리그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빼어난 개인기와, 날카롭고 정확한 킥을 장착한 안드레는 조광래 감독 축구의 핵으로 자리잡았고. 시즌 중반 10연승의 상승세를 이끌기도 했다.
 

또 8월5일 전북전과 8월19일 부산전에선 두 경기 연속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이 2-1, 5-0의 승리를 거두는데 앞장 서기도 했다. 이러한 안드레의 활약 속에 팀은 리그 1위를 달성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천(現제주)을 상대하게된 안드레는 1차전에서 왕정현에게 정확한 패스를 배달하며 팀의 선제골을 이끌어냈고, 자신도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4-1 승리를 견인했다.


2차전에서는 부천 곽경근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지만 후반 안드레의 정확한 프리킥이 동점골로 이어지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2000 K리그의 패권을 차지했다. 안드레의 활약상은 당시 공격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했던 최용수와 정광민은 안드레의 뛰어난 패스를 공급받으며 각각 14골과 13골을 기록했고 안드레 역시 14도움으로 전경준(13도움)과 마니치(9도움)을 제치고 도움왕에 올랐고 K리그 베스트 미드필더에 뽑히기도 했다.
 

또 우수한 플레이메이커 답게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한 안드레는 9골 중 무려 8골을 프리킥으로 성공시키며 정확한 킥 솜씨를 자랑했다. 2001년엔 허리부상으로 2골 4도움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2002년엔 7골 9도움을 올리며 오름세를 보였고 2003년엔 중국 칭다오로 이적하게 된다. 그 뒤 베이징 현대를 거치며 3년 간 중국에서 뛴 안드레는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안드레가 K리그에서 활약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간다. 하지만 절정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세 번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기에 올드팬들에겐 아직도 회자 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 히칼도









풀네임 : Ricardo Nuno Queiros Do Nascimento

생년월일 : 1974년 4월 19일

국적 : 포르투갈

FC서울 활동년도 : 2005~2007

FC서울 통산 기록 : 71경기 8골 23도움



2005년 이장수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FC서울은 대대적인 전력보강에 나선다. 당시 서울은 이기형, 박성배, 노나또등 수준급 선수들을 영입해 스쿼드를 살찌웠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박주영까지 데려오며 스쿼드에 강력함을 더했다. 서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포르투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히칼도를 영입했다.


당시 K리그 용병들은 대부분 브라질이나 동유럽 출신의 용병들이어서 서유럽 출신의 히칼도의 입단은 꽤 이색적이었다. 당시 이장수 감독은 포르투갈에서 히칼도의 경기를 직접 보고, FC서울 입단을 간청했고, 이장수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히칼도는 FC서울행을 결정했다. 포르투갈 청소년대표 출신에, 명문 보아비스타를 거쳤고, 포르투갈 리그 도움왕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했던 히칼도 였지만 입단 당시 그를 주목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팬들이 히칼도의 진가를 알아차리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남과의 2005년 첫 경기에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선발 출장한 히칼도는 2-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24분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노나또의 헤딩골을 도우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히칼도는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넣으며 맹활약 한다. 당시 수원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김남일, 송종국등 화려한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우고 있었지만 히칼도는 페널티킥 결승골 한방으로 수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한국무대에 완벽히 적응한 히칼도는 그 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다음 경기인 인천전에선 프랑코와 박주영의 골을 모두 어시스트 했고, 대전전 에선 1골과 백지훈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선 1골, 울산과의 경기에선 1도움을 기록하며 컵대회 에서만 3골 5도움을 기록한 히칼도는 단숨에 서울 미드필드의 핵으로 자리 잡는다. 날이 더워지면서 히칼도의 기량도 절정에 다다랐다.


특히 그의 활약이 가장 빛났을 때가 7월 6일 부산전과 7월 10일 포항전. 부산과의 경기에서 히칼도는 전반 28분 정확한 크로스로 박주영의 헤딩 골을 도왔고 후반 11분엔 미드필드 지역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또 한번 박주영의 골을 도우며 2도움을 기록.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7월 10일 포항전 에선 전반 15분과 32분 각각 박주영과 김은중의 골을 도우며 전반에만 2도움을 기록했고 후반 44분엔 정확한 코너킥으로 박주영의 헤딩골을 도우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박주영과 히칼도의 콤비가 절정의 기량을 뽐낸 이 두 경기에서 박주영은 5골, 히칼도는 5도움을 기록하며 서울 막강 화력의 중심이 되었다.



  히칼도의 코너킥 장면






그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스는 서울 공격의 출발점 노릇을 톡톡히 했고, 상대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그의 패스는 ‘손으로 던져주는 것 만큼 정확하다.’ 라는 평을 들을 정도 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 여기저기에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그의 모습은 많은 서울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2005시즌 그의 기록은 4골 14도움. 도움왕은 일찌감치 그의 몫이었고, 환상의 호흡을 보인 박주영은 무려 18골을 기록했다.


2006 시즌 초반엔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시즌 중반에 열린 컵대회에서 히칼도는 2골 4도움을 올리며 팀의 컵대회 우승에 기여했고, 총 3골 6도움으로 변함없이 서울의 중원사령관으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히칼도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장수 감독이 물러나고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년. 히칼도는 예전 만큼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히칼도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두어 히칼도를 공격에 전념시킨 이장수 감독과 달리 귀네슈 감독은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히칼도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설상가상 귀네슈 감독과 불화까지 겪으며 2007년엔 13경기 출전에 1골 3도움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히칼도는 2007 시즌 종료 후 CD트르펜스로 이적했고 CD 아베스를 거쳐 지금은 축구 선수 생활을 접었다. 히칼도가 서울을 떠난지도 5년이 다 되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에서의 선수 생활을 그리워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또 FC서울 팬들에겐 'My friend' 라는 친근한 표현을 써주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FC서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3. 기성용







풀네임 : Ki Sung Yueng

생년월일 : 1989년 1월 24일

국적 : 대한민국

FC서울 활동년도 : 2006~2009

FC서울 통산 기록 : 80경기 8골 12도움




2007시즌을 끝으로 히칼도는 떠났지만 FC서울엔 새로운 ‘패스의 달인’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기성용. 젊은 선수를 중시하는 귀네슈 감독의 신임을 받은 기성용은 2008년부터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기성용은 지난 2006년 FC서울에 입단했지만 그 해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해가 바뀐 2007년 그는 히칼도의 뒤를 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드디어 프로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한 기성용은 그 해 캐나다에서 열린 ‘FIFA U-20월드컵’에서 3경기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인다. 당시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한 기성용은 기본적인 수비력과 동시에 최후방에서 자신의 장기인 패싱력까지 뽐내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7년 22경기에 출전하며 프로무대 적응을 끝낸 기성용은 히칼도가 팀을 떠나자 좀 더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귀네슈 감독 역시 기성용의 날카로운 패싱력에 주목. 수비력이 좋은 김한윤을 중원의 파트너로 배치하면서 기성용의 수비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등번호도 40번에서 17번으로 바꾼 기성용은 2008년 한 해에만 4골 2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또 그는 그 해 10월 29일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선 이운재의 키를 살짝 넘기는 골을 터트렸고, 그 해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선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선제골을 돕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08년 10월 29일 수원전. 결승골을 넣은 뒤 보여준 아데바요르 세리머니는 화제가 되었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9월엔 요르단을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곧이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후반 23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등 빛보다 빠른 성장세로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중앙 미드필더로 손꼽혔다.


유망주에서 FC서울의 에이스로 성장한 기성용으로 인해 2009년 FC서울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는 날이 갈 수록 무르익었고, 기성용을 비롯해 이청용, 김치우, 데얀, 정조국등이 포진한 스쿼드는 화려함을 더했다. 게다가 2008년 준우승까지 거두었기에 서울을 향한 기대는 그 어느때 보다 높았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서울은 개막전에서 전남을 6-1로 녹다운 시킨다. 이 경기에서 기성용은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 후 기성용은 정확한 킥을 앞세워 팀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했고, 그 해 5월 30일엔 골문 구석을 찌르는 절묘한 프리킥으로 팀의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여름이 되자 그의 장기인 패싱력도 뜨거워졌다. 7월 12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선 전반 37분 프리킥으로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전반 42분엔 정확한 전진패스로 다시 한번 데얀의 골을 도우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다음 경기인 강원전에서도 전반 9분과 44분. 각각 데얀과 이청용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두 경기 연속 2도움으로 맹활약했다.


이 후 9월 12일 전북과의 경기에선 데얀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고, 11월 21일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선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정조국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여전히 큰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기성용은 결국 그 해 4골 10도움을 올리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이런 기성용을 기다리고 있는건 유럽진출. 스코틀랜드 최강팀인 셀틱으로 이적하면서 유럽진출의 꿈을 이룬다.
 

초반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파워축구에 적응하지 못하며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듯 했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2도움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기성용은 그리스전에서 정확한 프리킥으로 이정수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나이지리아전에선 일명 ‘헤발슛’으로 일컬어지는 이정수의 골을 또 한번 어시스트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이 후 셀틱으로 돌아온 기성용은 주전 미드필더 스콧 브라운의 부상으로 다시 기회를 얻었고 이 기회를 잘 살려 셀틱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세인트미렌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기성용은 인버네스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시즌 1호 도움을 올렸고 그 해 10월 24일 레인저스와의 ‘올드펌 더비’에서도 도움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2010~2011 시즌에서 4골 4도움을 기록한 기성용은 다음 시즌인 2011~2012전에선 코너킥과 프리킥은 물론 팀의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게 되었고 지난 우디네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선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번 시즌 현재 6골 5도움을 기록중인 기성용은 셀틱에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표팀 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UAE와의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선 89번의 패스 중 81회를 성공시켜 무려 91%의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4. 제파로프








풀네임 : Server Resatovich Djeparov

생년월일 : 1982년 10월 3일

국적 : 우즈베키스탄

FC서울 활동년도 : 2010.07~2011.07

FC서울 통산 기록 : 33경기 1골 8도움



빙가다 감독 체제에서 우승에 도전했던 2010년. FC서울에 또 하나의 거물급 선수가 입단하게 된다. 그 선수는 바로 제파로프. 2008년 우즈베키스탄 득점왕 및 최우수 선수, 또 그해의 AFC 올해의 선수, 우즈베키스탄 주전 미드필더로 A매치 62경기 출전해 12골을 성공시킨 기록(2010년 7월 기준)을 보유한 특급선수를 6개월 단기 임대로 영입해 공격진을 강화했다.
 

172cm, 68kg의 작은 체구는 다소 염려되기도 했지만 제파로프는 그 해 7월 28일 데뷔전인 수원과의 컵대회 4강전 경기에서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정확한 왼발킥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결국 제파로프는 자신의 두 번째 경기인 7월 31일 데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하며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고 8월 25일 컵대회 결승전에선 데얀의 선제골 어시스트, 8월 28일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으로 데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짧은 시간에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 잡는다.


또 자신의 생일인 10월 3일엔 하대성의 패스를 받아 K리그 데뷔골을 쏘아올리기도 했고 제파로프는 특유의 덤블링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러한 제파로프의 활약 속에 서울은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 할 수 있었다.


제파로프의 멋진 덤블링 세리머니 장면






제파로프의 활약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계속 되었다. 제주와 맞붙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 후반 45분까지 1-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던 서울. 이때 제파로프의 정확한 패스가 빛났다. 추가 시간인 후반 47분 우측면에서 볼을 잡은 제파로프는 많은 선수들이 몰려있는 페널티 에이리어 대신 빈 공간에 서있던 김치우에게 정확하게 연결했고 김치우가 이를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김치우의 이러한 극적인 골은 제파로프의 재치 있는 패스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골이었다.


12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제파로프는 후반 27분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헤딩 역전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챔피언결정전 2도움으로 팀 우승의 주역이 됐다. 2010년 그의 기록은 1골 7도움. 제파로프의 맹활약으로 인해 K리그 역시 우즈베키스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해 열린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졌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제파로프는 2골 2도움을 올리며 조국을 아시안컵 4위에 올리기도 했다. 제파로프의 맹활약에 그의 주가는 치솟았지만 제파로프는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3년 계약을 맺었다. 제파로프의 이러한 활약은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며 카파제(인천), 게인리히(수원)등 다른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K리그 입성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1 K리그에서 제파로프는 부상과 몰리나와의 포지션이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결국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으로 이적을 결정한다. 알 샤밥 이적 후에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11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통산 두 번째로 수상했고, 우즈베키스탄 대표로도 일본전과 키르키스스탄전에서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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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02 00:51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후,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애칭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정환이 아내에게 보내는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직까지 서울에서 안정환처럼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을 얻은 선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기억 남는 세리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많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



박주영의 대표 세리머니는 사실 기도 세리머니다. 박주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상 깊은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는 최근 그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하트 세리머니를 보이거나 키스 세리머니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는 배가 불러왔다는 동작을 통해 부인들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기도 한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그 해 4월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유니폼 안의 티셔츠에 여자친구의 애칭인 ‘굼벵이’와 ‘하트’를 그려 넣어 여자친구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이 세리머니로 인해 박주영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알려졌고 많은 여성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고. 2005년부터 이어져온 박주영의 사랑은 오는 6월 12일 결실을 맺는다. 그는 축구천재이기도 했지만 한 여자를 위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김승용의 ‘댄스 세리머니’



김승용은 현재 서울 선수는 아니지만 매번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승용은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이 생긴 경우다. 당시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리마리오 춤을 김승용이 세리머니로 똑같이 춘 것. 이 때문에 김승용에게는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서울에 다시 돌아온 김승용은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리마리오 댄스를 췄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은“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라는 반응과 “군대에서 2년동안 리마리오만 연습했나보다”라며 새로운 세리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본 김승용은 새로운 댄스 세리머니를 추게 된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이미 2007년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화제에 올랐던 김승용은 2009년 5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에게 ‘쏘리쏘리’춤을 췄다. 김승용은 "그동안 골을 못 넣은 것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쏘리쏘리 춤으로 대신했다"라며 골 세리머니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김승용. 그는 당시 유행하는 춤들로 팬들에게 재밌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다.



이청용의 ‘엠블럼 키스’



이청용은 한결같은 세리머니를 보여준 선수다.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로 대표된다면 이청용은 골을 넣은 뒤 엠블럼에 키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팬들과 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청용만의 세리머니였다. 많은 팬들은 그의 ‘엠블럼 키스’를 좋아했고 이는 볼턴에서도 이어졌다. 볼턴에서 골을 넣으면 서울 팬들에게 ‘엠블럼 키스’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첫 골을 성공시킨 이청용은 당시에 “정신없어 하지 못했다”며 후에 2009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청용의 또 다른 약속은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것. 그가 나중에라도 서울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엠블럼 키스’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용의 ‘캥거루 세리머니’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캥거루 세리머니’로 대표된다. 그가‘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다, 기성용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았다. 그리고는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는 듯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0-0이었던 후반 인저리타임에 한솥밥을 먹는 차두리와 극적인 연속골을 뽑아냈을 때도 ‘캥거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기성용이 2008년 수원전에서 ‘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였을 때, 그 이유에 대해 “평소에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보고 아데바요르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선수가 인상깊은 세리머니를 해서 그냥 따라해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세리머니가 펼쳐졌을 때, 논란이 일었다. 기성용의 세리머니가 ‘새 모이쪼기’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이 ‘빅버드’였던만큼 새를 떠올리게 하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승렬의 ‘배트맨과 기타 세리머니’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이승렬. 그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승렬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경기장 한 쪽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의 재치있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이승렬의 현재 별명은 피터팬이다. 그러나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별명 중에는 ‘배트맨’도 있었다.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았던 그는 당시 소감에서 "2년차 징크스 없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배트맨 세리머니를 보이며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데얀의 ‘위험한 세리머니’



데얀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첫 시작은 2009년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벌어졌다. 골을 성공시킨 데얀은 매우 흥분한 나머지 전남 벤치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졌다. 순간 전남 벤치에 있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분노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왔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졌다. 그리고 당시 주심은 도발에 대한 행위로 데얀에게 경고를 선언했다. 이미 1장의 경고를 받은 데얀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를 향한 조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았다. 포항의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를 향해 활을 쏜 것과 같은 이유로 경고를 받은 것. 이후,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얀에게 “팬들은 이런 세리머니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이런 세리머니를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알지만 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은 이런 위험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조국의 ‘아빠 세리머니’



정조국은 결혼 후에 패트리어트라는 별명 대신에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조국은 2010년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13골 중 10골은 아들이 세상에 나온 후 기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그에게 아들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은퇴한 네덜란드산 폭격기 베르캄프로 변신했다는 의미에서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골을 성공시킨 뒤 엄지를 손에 문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 그는‘분유캄프’라는 별명답게 젖병 세리머니,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등을 펼쳤다. 현재는 프랑스로 떠난 그이지만 멋진 활약을 보여준 ‘분유캄프’정조국을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최태욱의 ‘수화 세리머니’



최태욱의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다. 동작도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세리머니를 했다. 최태욱은 지난 2010 쏘나타 K리그 대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달려가면서 한 손 위에 엄지를 치켜세운 다른 손을 올린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최태욱을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그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의 수화를 세리머니로 보여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렸다. 최태욱은 현재 부상 중이다. 얼른 회복하여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수화’세리머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명진의 ‘광고판 세리머니’



고명진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16강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최근 최용수 감독 대행 하에서 고요한과 함께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은 1997년 최 감독 대행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이 1997년 카자흐스탄과의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선제골 후 넘어진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고명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너무 많이 달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골을 넣어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고명진은 최근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고명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고명진의 세리머니는 최 감독 대행의 예전 세리머니와 겹쳐보였다.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아기 독수리’고명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세리머니에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경우도 있다. 골을 성공시킨 뒤 단순하게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색다른 세리머니를 통해 선수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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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06 20:41






유럽으로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FC서울은 K리그에서 해외파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한 등용문으로 FC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최근에는 정조국까지. FC서울은 계속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의 이적을 허용해왔다.




얼마 전 오세르에서 뛰고 있는 정조국의 2호골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데얀과 함께 서울의 공격 라인을 이끌며 많은 골을 넣었던 그였지만 프랑스로 이적한 뒤, 골 소식은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정조국의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정조국은 2호골을 성공시키면서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들으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유럽으로 떠난 FC서울의 전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나코의 보배 박주영



최근에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온 박주영부터 살펴보자.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 입단 당시부터 이슈였다. 입단 전부터 이미 스타였던 박주영은 ‘축구 천재’라고 불리며 서울 팬들 앞에 나타났다. 박주영은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FC서울이 K리그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해주었다. 박주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들었고 박주영은 그에 보답하듯 멋진 골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박주영이 2008년 프랑스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도 그랬듯 AS 모나코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박주영은 골을 넣는 역할 뿐만 아니라 팀 내 다른 공격수의 슈팅 찬스까지 만들어주는 등 팀에서 그의 비중은 크다. 2009/2010 시즌에는 9골(컵대회 포함) 3도움을 기록했다.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긴 했지만 프랑스컵(Coupe de France) 결승 무대에도 나섰다. 2010/2011 시즌에는 모나코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31경기 12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현재 강등권에 놓여있다. 박주영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그와‘빅클럽’들이 연관된 이적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많은 팬들은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를 떠나 더 큰 무대에서 뛰기를 바란다. 박주영은 지난 5월에 ‘골닷컴’에서 선정한 ‘빅리그에 갈 재능 TOP 5’에도 선정되었다. 박주영 본인도 이를 원하는 듯하다. 결혼과 함께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는 박주영의 소식을 듣길 바란다.



여전히 그리운 쌍용



귀네슈 감독 부임과 함께 FC서울 축구에 ‘빅재미’를 선사했던 쌍용은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쌍용’은 박주영 다음으로 FC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FC서울에서 뛰며 실력을 다져온 그들은 귀네슈 전 감독의 신임 아래서 무럭무럭 성장해 FC서울의 기둥이 되었다.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쌍용’은 국가대표에서도 주축 선수로 성장하며 서울과 국가대표에서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후, ‘쌍용’은 유럽으로 떠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한다.






‘쌍용’중 가장 먼저 이적한 것은 ‘블루 드래곤’이청용이었다. 27번이라는 번호가 서울팬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청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먼 타국의 축구팬들도 그의 가치를 알아본 것일까. 이청용은 잉글랜드 볼튼에서도 팬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청용은 입단 첫 시즌에 볼튼의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올해의 톱3상’, ‘선수가 뽑은 최우수 선수상’ 등을 휩쓸며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2010/2011 시즌에는‘올해의 톱3상’을 받으며 볼튼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올 시즌 그의 공격포인트는 4골 8도움으로 12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3개였던 작년과 비교하면 하나가 모자라지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다. 2009/2010 시즌이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면 2010/2011 시즌은 이청용이 팀 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청용은 시즌 초반 정규리그 17경기에 연속 출전하며 볼튼의 시즌 초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었다. 시즌 막판에는 14위로 시즌을 마감한 볼튼이지만 시즌 초에는 유로파 리그 티켓 확보 가능한 순위인 6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런 이청용의 활약에 해외 언론도 호평을 쏟아냈다. EPL 선수 랭킹에서 이청용은 최고 20위(2010.11)에, ‘유로스포츠’가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2회나 선정됐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골닷컴’ 이 선정한 ‘올 시즌 아시아 선수 베스트 10’에서 4위에 올랐다. 이처럼 이청용은 FC서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 볼튼의 에이스가 되었다.




‘쌍용’의 또 다른 주인공 ‘기라드’기성용은 얼마 전 팬들에게 기쁜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전반 32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에서도 들어 올리지 못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경기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올 시즌 성적으로‘80점’을 매겼다. 기성용은“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 20점을 뺐다”고 말하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 외에는 완벽에 가까운 시즌으로 평가했다. 기성용은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 4골 5도움을 기록했다. 그는“적응을 잘 했고 거친 리그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주영과 이청용에 비하면 늦게 유럽으로 진출한 그는 이제 갓 한 시즌을 마쳤다. 박주영, 이청용 모두 이적 후 첫 시즌보다 적응을 마친 다음 시즌에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것처럼 기성용도 첫 시즌보다는 더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까지. FC서울의 전사들은 FC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적한 프랑스 오세르의 정조국은 2호골을 기록하면서 점차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FC서울의 자랑과도 같다.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며 멀리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선수들도 이국에서 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멀리서도 서울의 승리를 기원하며 서울의 우승을 응원한다. 얼마 전 기성용은 귀국 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서울과 함께하는 서울의 전사들. 그들이 유럽 무대에서 멋진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서울의 선수들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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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2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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