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5. 16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전남 드래곤즈

3 : 0































/사진 = FC서울 명예기자 김창현(riders1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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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5.05.1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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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16

서울월드컵경기장

FC 서울 VS 전남 드래곤즈

3 : 0

 

드디어 폭발!

모처럼 나온 시원시원한 공격!

FC서울의 무공해 축구를 완성시킨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

과연 어떤 선수들이 활약을 하였을지

사진과 함께 만나보시죠!

공격 또 공격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이는 FC서울 선수들!


믿음직한 김현성 선수

오늘 공격의 선봉장도 역시 김현성입니다!

2cm쯤 아쉬웠던 패스!

하지만 서울의 매서운 공격이 돋보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부산전에서 골을 기록한 고명진 선수

주장 완장을 내려 놓고 한결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상대편 진영을 사정없이 흔들어놓는데요!

공격에 내가 빠질 수 없다!

이마까지 드러내며 광속 드리블을 선보이는

김치우 선수!

강력한 왼발 크로스가

날카롭게 골대를 위협합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기회를 살피는 고명진 선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있을지?

결국 골대로 쇄도하여 골을 성공시키는

FC서울의 고명진 선수!

전남의 자책골로 기록되었지만

고명진 선수의 멋진 쇄도가 없었다면

자책골도 나오지 않았겠죠?

FC서울의 선봉장으로서

훌륭하게 공격을 이끈 김현성 선수!

오늘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다음 경기가 기대되는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필드에 들어옵니다

FC서울의 영웅

박주영 선수입니다!

'주영이 형에게 공을 줘야해!'

'이 공을 받아 주영이형!'

'주영이에게 패스하러 형이 간다!'

모든 선수들의 염원을 담은 패스가

박주영 선수에게 전달되고

번개같은 움직임으로

수비라인을 단번에 무력화 시킨 박주영 선수!

골대를 향해 돌진합니다!

수비수를 앞에두고 슛!

튕겨나온 공을 다시 슛!

결국 득점에 성공하는 박주영 선수!

오늘 경기에 쐐기를 박는 골이자

K리그 복귀 후 자신의 첫 필드골을 성공시킵니다

유감없이 해결사 본능을 뽐낸 박주영 선수!

FC서울은 오늘 경기를 완승하며

순위 역시 4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박주영 선수의 부활 신호탄과 함께

FC서울 역시 홈에서 대승을 거두며

오랜만에 무공해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요

오늘 경기가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

강팀의 면모를 되찾는 FC서울이 되길 바랍니다!


/구성,사진 = FC서울명예기자 김창현(riders1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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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5.05.17 00:15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가 있었던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평소와는 다른 기대감으로 부풀어있었는데요.

돌아온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가 오늘 경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FC서울의 팬분들께서 돌아온 박주영 선수를 환영하는 의미의 현수막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연 팬들의 바람대로 박주영 선수가 오늘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요?



벤치에 앉아있는 박주영 선수.

팬들의 따뜻한 환대에 박주영 선수의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가득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반전을 0:0으로 마무리하고, 

드디어 팬 분들이 고대하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박주영 선수가 출격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박주영 선수이지만 실력은 여전합니다.

박주영 선수가 들어오니 상대팀 선수들의 집중 견제가 시작되네요.



박주영 선수를 막기 위한 수비수들의 긴장된 몸짓이 느껴집니다.

박주영 선수를 지켜보는 팬들도 응원의 소리를 한층 높여갑니다.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박주영 선수.

박주영 선수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상대팀 선수들도 긴장하는 모습인데요.



공수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박주영 선수.

박주영 선수의 투입과 함께 FC서울의 공격도 더욱 활기를 띄며

경기가 끝나기 직전 에벨톤 선수의 선제 결승골로 FC서울이 시즌 첫 승을 수확했습니다.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박주영 선수!

 박주영 선수는 복귀와 함께 FC서울에도 승리라는 귀한 선물을 가져왔는데요.

아직 컨디션이 완벽하게 올라오지 않은 박주영 선수가 100%의 몸상태로 올라왔을 때 

K리그에 다시 한 번 박주영 신드롬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다시 돌아온 우리의 영웅, 박주영 선수의 내일을 더욱 기대해봅니다!


글, 사진=FC서울 명예기자 김창현(riders1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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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5.04.05 16:43



2015 K리그 개막 후 첫 홈 경기가 있었던 FC 서울

첫 홈 경기의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입니다.

첫 홈경기부터 강력한 라이벌과 붙게 된 FC 서울

과연 이길 수 있을지

그 기대감 때문인지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요.



북측 광장에는 위아래를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있습니다.

그런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서 

뭔가 첫 홈경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대감이 느껴집니다.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이 북측광장

바로 돌아온 축구 천재 박주영 선수의 팬 사인회와 입단식이 오늘 진행되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박주영 선수의 유니폼을 맞추며 박주영 선수를 환영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약 1시간 반 전부터 박주영 선수의 팬 사인회가 진행되었는데요.

250명으로 한정된 팬 사인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구름 같은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려 참가권 배부처에서 팬사인회에 참여할 수 있는 참가권을 받고

팬 사인회가 얼른 시작되길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측광장은 꽉 채워졌습니다.


북측광장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박주영 선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 보입니다.

모두 박주영 선수를 만날 생각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팬 사인회가 열리는 12시 30분

장내 아나운서의 진행과 함께 박주영 선수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기다렸던 순간이 오고 드디어 박주영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박주영 선수!

아직은 긴장한 듯 굳은 표정입니다.

 

비록 사인회 참가권은 없지만

 박주영 선수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인회 장소 주변을 가득 채웠습니다.

 

 

 

수 많은 팬들과 함께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사인하고 있는 박주영 선수

팬들과의 오랜만에 만남에 많이 긴장을 하셨나 봅니다.

사인을 하다가 잠깐 멈칫거리기도 하셨지만,

결국 멋지게 마무리를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사인을 받기 위해 입장하신 여성 팬!

아직도 박주영 선수는 긴장해서 표정이 굳어있습니다.



과연 누가 박주영 선수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을까?

주인공은 바로

박주영 선수에게 팔찌를 선물로 주신 한 여성팬

박주영 선수의 손목에 직접 채워주셨는데요.

잔뜩 굳어있던 박주영 선수의 표정도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듯 환한 미소가 피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팔찌를 차고 열심히 사인회에 응하고 있는 박주영 선수

사인회에 참여한 팬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박주영 선수의 귀환이 드디어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아빠 손을 꼭 잡고 박주영 선수를 보러 온 꼬마 팬도

박주영 선수의 사인을 받고 너무나 좋아했는데요.

이 아이의 얼굴에 핀 웃음이

박주영 선수의 멋진 활약으로 쭉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팬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팬의 축하를 받으며

하프타임에 진행된 박주영 선수의 입단식

 

수 많은 관중들 앞에 서니 다시금 긴장한 듯한 박주영 선수

짧은 인사말과 함께 홈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습니다.



돌아온 박주영 선수가 감사의 뜻으로

친필 사인볼을 팬 분들께 선물로 나누어 주는 작은 이벤트도 진행됐습니다.

 

사인회에서 선물 받은 팔찌가 눈길을 끄는데,

소중히 착용하고 계시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유니폼 바지와 축구화는 아니지만 엣지있게 공을 차주는 박주영 선수

공을 차는 모습을 보니 올 시즌,

그의 활약을 기대해도 되겠습니다!

 

차 준 공이 잘 갔는지 확인까지 하는 세심한 박주영 선수

팬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납니다.


먼 길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친정팀 FC서울에 돌아온 박주영 선수

이제 힘든 날은 모두 잊고 앞으로 있을 즐거운 일만 생각하며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집에 돌아온 박주영 선수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글, 사진=FC서울 명예기자 김창현(riders1518@naver.com)

FC서울 명예기자 이정훈(h3n_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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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5.03.15 01:50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사진출처-KFA PHOTO)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킬 브라질 월드컵이 코앞이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에서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축구 강국들 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세운 대한민국. 얼핏 보면 대한민국의 월드컵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탈락 위기를 겪기도 하며 치열한 승부 끝에 세운 대기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FC서울 선수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FC서울 선수들의 활약상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최용수는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 (사진출처-KFA)







1997년 당시 차범근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현 FC서울 감독인 최용수였다. 당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최용수는 카자흐스탄과의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 우즈베키스탄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선제골, 한국 축구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 도쿄 대첩에서 2 어시스트로 맹활약한다. 덕분에 대표팀은 4연승을 달리며 프랑스행 티켓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반환점을 돈 이후 첫 경기를 불안하게 출발한다. 카자흐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다음 상대는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보단 한 수 위로 평가받는 팀이었다. 게다가 홈에서 2-1로 진땀승을 거두었고 원정 경기라는 점도 대표팀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최용수의 활약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최용수는 전반 18분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41분엔 하석주의 코너킥을 가슴으로 받은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기록 했다. 덕분에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을 5-1로 대파하며 프랑스 월드컵 출전을 사실상 확정했고 이후 일본이 UAE1-1로 비기면서 프랑스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두 골을 기록했다 (사진출처-KFA PHOTO)






2006 독일 월드컵 진출 당시에도 FC서울 선수의 활약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박주영. 당시 박주영은 청소년대표시절 보여준 엄청난 활약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고 FC서울에서도 변함 없는 활약을 이어가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자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당시 대표팀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 감독은 훅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활약이 이어지자 결국 박주영은 대표팀에 뽑혔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경기에서 후반 18분 막심 샤츠키흐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어렵게 흘러가자 박주영은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막판까지 동점골을 넣지 못하며 패배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주영이 구세주가 되었다. 후반 45분 혼전 상황에서 정경호의 패스를 받은 박주영이 다이렉트 슈팅을 날렸고 이것이 그대로 골망을 가른 것이다. 대표팀은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후 쿠웨이트전에서 박주영은 팀 동료인 김동진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결국 4-0으로 쿠웨이트를 꺾은 대표팀은 독일 월드컵 출전을 확정했다.



이청용은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대한민국의 남아공행에 큰 힘을 보탰다. (사진출처-KFA PHOTO)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선 FC서울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인 이청용과 기성용의 활약이 눈부셨다. 이청용은 요르단과의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했고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성용은 요르단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당시 대표팀은 요르단과의 3차 예선 홈경기에서 2-2로 비겼고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홈, 원정 모두 0-0으로 비기며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서도 홍영조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지만 기성용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경기 이후로 대표팀은 확 바뀌었다.




주장 완장은 박지성이 찼고 이청용, 기성용 등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 것이다. 효과는 UAE와의 홈 경기에서 바로 나타났다. 이청용은 정확한 패스로 이근호의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기성용은 골대를 맞추는 슈팅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다. 결국 대표팀은 UAE4-1로 물리치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고 이청용과 기성용은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대표팀은 사우디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뒀고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선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만난 상대는 북한. 늘 북한의 탄탄한 수비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우리나라였지만 남아공행의 8부 능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이 날 경기에서도 우리나라는 북한의 수비에 막혀 고전했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공격 강화 카드로 후반 33분 이근호 대신 김치우를 투입했다. 김치우는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쾌조의 골 감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치우가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 42분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김치우가 절묘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북한의 골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1-0 승리를 거두며 남아공 월드컵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김치우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대표팀을 구했다.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45,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든 것이다. 만약 이 골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자력 진출이 아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진출을 노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치우의 왼발 프리킥이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 이어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북한전에서 멋진 프리킥골을 성공시킨 김치우 (사진출처-KFA PHOTO)





현재 FC서울에 소속되어 있는 차두리 역시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던 차두리는 레바논과의 독일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 3차전 홈경기에선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해당 경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FC서울 소속 선수는 참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월드컵 예선에서 보였던 모습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도 보여준다면 러시아 월드컵엔 FC서울 소속 선수가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어떤 선수가 될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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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5.23 01:06







K리그 클래식 최고의 라이벌전 슈퍼매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수많은 화제를 낳으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 슈퍼매치. 이제부터 그와 관련된 기록을 알아보겠다. 제목대로 관점은 지극히 FC서울 적이다.

 



서울은 얼마 전 수원에게 리그에서만
6연패를 당했고, 2007년에도 5연패를 당했다. 과거 슈퍼매치에서 연패를 당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서울도 수원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적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의 슈퍼매치 연승은 언제였을까? LG치타스 시절 20005212-1 승리를 시작으로 200148일 아디다스컵 1-0 승리까지 4연승을 달린적 있다. 20016171-0 승리를 시작으로 20028182-1 승리까지 5연승을 내달렸다. 2002818일 경기 당시 수원은 연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카드섹션을 펼쳤고 38245명의 관중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며 수원의 승리를 염원했지만 오히려 서울이 2-1 승리를 거두며 아픔을 줬다. 참고로 서울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매치에서 913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서울이 수원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섰던 연도도 알아보겠다. 서울은 2000년 수원을 상대로 5번의 맞대결에서 311패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42도움을 올리며 수원을 떨게 했다. 2001년에도 서울은 5번의 맞대결에서 32패를 거두었다. 2002년에는 3번의 맞대결에서 21패를 거두며 3년 연속으로 슈퍼매치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갔다. 이후 2005년 서울은 또 한번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간다. 서울은 이 해에 21무를 기록했다. 특히 10월에 거둔 수원 원정에서 3-0 승리는 원정팀이 거둔 첫 세 골차 승리다. 이후 서울이 슈퍼매치에서 우위를 가져간 해는 2010(21), 2013(211)이다.










역대 슈퍼매치에서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를 알아보자. 수원의 골망을 가장 많이 흔든 선수는 데얀과 정조국이다. 데얀은 슈퍼매치에서만 6골을 넣으며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위용을 보여줬다. 현재 경찰청에서 복무중인 정조국도 역대 슈퍼매치에서 6골을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5골을 넣으며 그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로 총 4골을 넣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진기록이 있다. 박주영의 유일한 슈퍼매치 해트트릭이다. 박주영은 2007321일 컵대회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해트트릭은 역대 슈퍼매치에서 나온 유일한 해트트릭이다. 서울 선수는 물론 수원 선수도 박주영을 제외하곤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없다. 도움 해트트릭 역시 서울 선수가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201044일 경기에서 데얀이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1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이 역시 데얀을 제외하고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2014
년 첫 슈퍼매치가 시작되려 한다. 서울은 연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난 시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며 자존심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올해부터 어떤 역사와 기록이 쓰여질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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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4.26 10:12







FC서울의 공격은 전통적으로 콤비 플레이가 강했다. 2005년 박주영과 히칼도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서울 공격의 핵으로 활약했고 2011년엔 고명진과 데얀이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고-데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또 데얀과 몰리나가 보여준 데몰리션 듀오의 위력은 모든 팀을 떨게 만들었다. 데얀이 떠나면서 데몰리션 듀오는 해체됐지만 새로운 듀오가 탄생하여 서울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그 주인공은 고요한과 윤일록의 고-윤 듀오. 두 선수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여 팀의 세 골을 합작하며 FC서울의 새로운 듀오로 떠오르고 있다.

 


고요한과 윤일록의 콤비 플레이가 처음으로 빛을 발한 것은 지난
AFC 챔피언스리그 베이징 궈안과의 원정 경기. 이날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유타카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공격마저 잘 풀리지 않자 최용수 감독은 후반에 고요한을 교체 투입했고 후반 26분 두 선수의 환상적인 호흡이 나왔다. 윤일록의 정확한 로빙 패스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공간 침투에 고요한에게 연결됐고 고요한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윤일록과 고요한의 절묘한 콤비 플레이로 서울은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리그 첫 승을 거둔 제주전에서도 두 선수의 활약은 빛이 났다
. 전반 고요한의 슈팅이 골대를 맞는 등 운이 따르지 않은 서울은 후반 12분 윤일록이 교체 투입되며 공격에 활기를 띄었다. 결국 윤일록과 고요한이 첫 골을 만들었다. 후반 23분 수비의 클리어링을 가로챈 윤일록이 왼발 슈팅을 날렸고 슈팅은 김호준의 선방에 막혔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은 고요한이 달려 들어 머리로 밀어넣었다. 윤일록이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윤일록이 돌파 하자 고요한이 반대쪽에서 동시에 돌파하며 공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골 이었다. 이후 윤일록은 자신이 직접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키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히로시마전에선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가 동점골을 만들었다. 후반 8분 시오타니 츠카사의 어설픈 패스를 고요한이 침투하는 윤일록에게 전진패스를 내줬고, 윤일록은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침착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상대의 어설픈 패스를 가로채 침투하는 동료의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도록 공간에 패스해준 고요한의 플레이와 윤일록의 침착한 마무리가 골을 만들어냈다.





전북전에서도 고요한과 윤일록의 콤비 플레이가 전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 후반 인저리 타임 고요한이 프리 상태에 놓여있는 윤일록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줬고 윤일록이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대를 살짝 빗나가며 아쉬움을 삼켰다. 빈 공간을 파고 든 윤일록과 그것을 놓치지 않은 고요한의 정확한 크로스가 역전골을 만들 뻔 했다.













윤일록과 고요한은 현재 FC서울의 좌 우 측면 공격을 이끌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가 돋보이며 마무리 능력까지 갖췄다.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보이는 두 선수가 좌측과 우측을 돌파하며 짧은 패스워크로 공격을 전개하는 플레이는 현재 서울 공격의 중심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 서울의 공격을 보면 위협적인 공격은 고요한과 윤일록이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이다. 또 고요한과 윤일록의 플레이 스타일은 최용수가 추구하는 공격 스타일과도 맞기 때문에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앞으로 더욱 날카로워 질 것이다.





일본 만화 환타지스타의 주인공 사카모토 테뻬이는 자신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오키다 카오루와 콤비 플레이를 펼치자
마치 나 자신과 플레이하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읊조렸다. 현재 윤일록과 고요한 역시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 더욱 진화될 고-윤 듀오의 활약이 기대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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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4.06 22:56


 






K리그가 휴식기를 갖고 있는 요즘. 팬들은 다가올 시즌을 기다리며 이 추운 날을 보내고 있다. FC서울 팬들을 포함한 다른 팀들의 팬들도, 빨리 시즌이 개막해 축구장이 열기로 가득차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프시즌인 지금, FC서울의 인상적이었던 시즌을 알아보기로 했다. 분명 팬들에겐 2010, 2012 시즌처럼 우승을 거둔 시즌이 제일 인상 깊고 기억에 남아있겠지만, 그 외에도 FC서울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시즌은 있었다. FC서울의 인상적이었던 시즌. 그 첫 번째로 2005년 FC서울을 꼽아봤다.




변화로 시작한 2005년



 
2005년 FC서울의 시작은 변화였다. 우선 사령탑부터 변화를 줬다. 조광래가 떠난 자리에 중국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이장수를 선임한 것이다. 스쿼드에도 강력함을 줬다. 노나또, 이기형, 박성배, 히칼도 등을 데려왔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박주영마저 FC서울의 유니폼을 입히면서,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했다. 유니폼도 기존의 빨간색에서 현재의 빨강과 검정이 섞인 유니폼으로 교체하는 등 FC서울은 많은 변화를 주면서 2005년을 준비했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표방하는 이장수 감독은 시즌 개막전이자 컵대회 첫 경기인 전남과의 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3-3 으로 비기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열린 대구와 성남과의 경기에서 잇달아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부산을 상대로 3-0 압승을 거두며 시즌 첫승을 거두긴 했지만 다음 경기인 부천전에서 0-1로 패하며 다소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서울은 히칼도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라이벌 수원을 1-0으로 이긴 뒤 인천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대전, 광주상무, 울산을 연달아 제압하며 시즌 첫 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북에게 0-4로 패하고, 포항과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5위로 컵대회를 마감했다. 18득점을 올리며, 수원에 이어 리그 득점 순위 2위에 오른 화력은 인상적이었지만, 18실점으로 최다 실점을 기록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당시 신예였던 박주영은 컵대회에서만 6골 1도움을 올리며,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K리그 개막, 그리고 박주영 신드롬



 
2005 K리그는 전 후기 분할리그로 치러졌고, 5월 중순에 전기리그가 개막했다. 하지만 서울의 출발은 불안했다. 울산을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 0-1로 패했고,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서도 3-5로 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 날 경기에서 박주영이 프로 데뷔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여전한 골 감각을 보여줬다. 서울 역시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인 전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리그 첫 승을 기록한 것이다. 좋은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대전과의 4라운드 경기부터 전북과의 10라운드 경기까지 7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한 것이다. (3승4무)




박주영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5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출전하지 못했지만, 노나또, 김은중 등이 잘 메우며 서울의 공격을 이끌었다. 성남과의 11라운드 경기는 1-4로 패했지만, 팀에 복귀한 박주영은 남은 전기리그 두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다.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끈 박주영은 포항과의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압승에 일조한 것이다. 히칼도는 이 기간 동안 5도움을 기록하며, 특급 도우미로 활약했고, 박주영은 월드컵 예선 활약에 이어, K리그에서도 골 폭풍을 몰아치며, 대한민국을 ‘박주영 신드롬’에 빠뜨렸다.
 



박주영의 활약속에 K리그 경기장도 관중으로 가득했고, 포항과의 경기에선 48375명의 대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다관중 기록은 2010년 FC서울이 새롭게 갱신했다) 전기리그를 마친 서울은 5승4무3패로 5위에 자리했다. 22골을 넣으며 팀 득점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실점 역시 19점으로 전북, 수원과 최다실점 3위에 오른 것은 아킬레스건이었다.  

 


 








후기리그 첫 경기에서 서울은 광주상무를 2-0으로 꺾으며, 쾌조의 출발을 보이는 듯 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울산과 1-1로 비긴 이후로 무려 7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라이벌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박주영, 정조국, 한태유의 골로 3-0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서 열린 부산전에서도 2-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가 했지만, 서울은 남은 두 경기인 대전전과 전남전에서 각각 0-0 무승부, 2-3 패배를 당하며 전기리그 5위, 후기리그 9위, 통합 6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FC서울의 2005년은 박주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서울은 박주영 효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주영은 데뷔 시즌에서 무려 18골을 터트리며 신인왕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로도 월드컵예선에서 2골을 터트리며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박주영 덕분에 관중 동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은 당해에 45만8605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역대 구단 별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고, 또 포항과의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48375명의 관중이 들어차며,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도 세웠다. 덕분에 K리그 관중 역시 2,777,441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그리고 데뷔 시즌을 치른 히칼도 역시 도움왕을 차지하며, 특급 미드필더로서 자존심을 세웠다. 

 



비록 성적은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다. 게다가 후기리그 초반 무승 행진을 기록한 것도 뼈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박주영, 히칼도를 주축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이며, 최다득점 4위에 오른 것, 그리고 수원 원정에서 무려 3골을 폭발시키며 승리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들이 많았기에, FC서울의 2005년은 기억에 남을 만한 시즌이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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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1.14 00:58


 

브라질과의 런던올림픽 4강전에 선발 출전한 김현성의 플레이 장면 (사진출처-MK스포츠) 








런던올림픽에 출전 중인 FC서울의 공격수 김현성이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70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한 채 팀의 0-3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김현성은 올림픽 4강전이라는 큰 경기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고,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최용수 감독에게 올림픽 전에 “올림픽에서 크게 사고 치면 여기서 나와 같이 앉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 격려를 들었던 김현성. 가봉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멋진 발리 슈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현성은 드디어 제대로 사고칠 기회를 잡았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것이다.




영국과의 8강전에서 김보경(카디프시티) 대신 지동원(선더랜드)을 투입한 용병술을 성공시켰던 홍명보 감독은 이번에도 박주영(아스날) 대신 김현성을 깜짝 선발 출전시키며 브라질에 맞섰고, 김현성은 지동원과 함께 공격진에서 호흡을 맞췄다. 경기 초반 대한민국 선수들은 오히려 공격을 지배하며 브라질을 압박했다. 김현성에게도 전반 11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좌측면에서 김보경이 올려준 볼을 헤딩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아쉽게도 수비에 걸리면서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전반 13분엔 지동원이 올려준 볼을 김현성이 솟구쳐 헤딩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키퍼와 몸싸움을 하면서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흘러나온 볼을 지동원이 밀어넣으려 했지만 또 다시 수비가 저지하며 기회를 놓쳤다.




이후에도 김현성은 제공권 장악과 지동원 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전반 38분 호물로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리드를 빼앗겼다. 하지만 공격 의지를 잃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전반 45분 또 다시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김현성이 가슴 트래핑 한 뒤 지동원에게 침투패스를 내어줬고, 지동원이 이어받아 강력한 하프발리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를 살짝 떠가며 아쉬움을 삼켰다.



김현성 특유의 제공권 장악능력은 브라질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사진출처-스포츠조선)







후반에도 출전한 김현성은 후반 2분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기성용(셀틱)이 올려준 프리킥을 특유의 제공권 장악 능력을 활용해, 지동원에게 헤딩 패스를 내어줬지만, 이어받은 지동원의 슈팅이 또 다시 골대를 넘어가며 김현성의 도움 기록 역시 날아갔다. 김현성은 자신의 또 다른 장점인 너른 활동 반경을 바탕으로 중앙과 좌측면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후반 4분엔 좌측면에서 낮은 크로스를 올리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후반 11분과 18분. 다미안에게 연속으로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0-3으로 벌어졌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후반 25분 김현성 대신 박주영을 투입했고, 김현성의 올림픽 첫 선발 경기는 이렇게 막을 내려야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김현성은 브라질을 상대로도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강팀을 상대로도 자신이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만큼 골 기회가 왔을때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과연 김현성은 최용수 감독의 바람대로 올림픽에서 크게 사고 칠 수 있을까?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이 주목된다. 일본을 꺾는다면 사상 첫 메달 획득과 함께 병역면제 혜택도 주어지는 만큼, 김현성도 한층 더 날카로운 집중력으로 일본전을 준비하고 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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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8.08 11:28



숫자는 우리 생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7은 행운의 숫자라고 좋아하지만 4는 널리 불길한 숫자라고 여긴다. 서양에서는 13을 꺼림칙해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선호하는 숫자나 꺼려하는 숫자가 있다. 물론, 굳이 애써 해묵은 징크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상대적인 차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축구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각자가 선호하는 등번호, 의도치 않게 그 선수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린 등번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등번호를 달던 개의치 않는 선수도 있다.

지금은 각종 의미가 들어간 등번호는 제쳐두고 단순히 FC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재미삼아 들여다봤다. 다른 세대에 같은 등번호를 달고 뛴 선수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다. SNS를 통해 약 300여명의 축구 팬들의 설문을 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역 선수들의 강세였다.


1번~10번

No.1의 자리는 수문장 대결이다. 대부분 팀의 1번은 골키퍼가 갖는다. FIFA 주관 메이저대회에서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1번은 반드시 골키퍼가 달도록 규정되어 있을 정도다. FC서울에는 수준급 골키퍼들이 다녀갔다. 그래서 후보군 2명을 고르는데도 꽤나 애먹었다. 현역 수문장인 김용대(76.7%)가 김병지(23.3%)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No.2의 후보는 현 국가대표 수비수이자 FC서울의 영광을 함께 했던 곽태휘와 최효진이다. 각각 타 팀 이적과 군입대로 팀을 떠나있지만 아무래도 곧 돌아올 최효진(74.8%)에게 표심이 향했다.

No.3 역시 수비수 대결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FC서울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했던 측면 수비수 안태은과 올 시즌 초 김진규의 짝으로 든든한 중앙수비를 구성했던 김동우의 매치다. 현역 강세의 흐름 속에 현재 등번호 3번인 김동우(85.5%)가 안태은(14.1%)에 비해 많은 지지를 얻었다.

No.4는 부득이하게 후보를 3명을 올렸다. 나름의 원칙상 현역 등번호 소지자는 포함해야 했고 나머지 후보 둘도 어느 하나 빼놓고 논하기 아쉬웠다. 대표팀 출신인 김동진(27.2%)과 지금은 팀을 떠난 전 주장 박용호(26.2%)의 표가 엇갈린 덕(?)에 이번 시즌 팀에 합류한 김주영(46.6%)이 베스트가 되었다. 합류하기 전부터 인기 가도를 달린데다 최근 경기력도 좋아졌기에 수긍할 만한 결과다.

No.5 ‘도쿄대첩’의 이민성 현 용인시청 코치와 FC서울 중원의 핵 최현태가 경합했다. 중앙미드필더부터 여차하면 수비수로 변신까지 가능한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선수다. 그래도 현역인 최현태(66%)가 형님 이민성(34%)보다 끌렸나보다.

No.6도 마찬가지였다. 은퇴 후 지도자 변신을 꾀하다 FC서울의 2군 코치를 맡고 있는 이기형(5.9%)과 현 FC서울 수비의 중심 김진규(94.1%). 등번호 6번은 대를 이어 강력한 캐논슈터들의 번호인가. 팬들은 현역 캐논슈터의 손을 들어줬다.

No.7도 후보가 3명이다. 때문에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던 번호였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싱거웠다. 강원의 코치로 몸담고 있지만 지금도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전 캡틴 이을용(15.4%), 2010 시즌 팀에 우승을 안기고 상무로 입대한 김치우(65.4%), 이번 시즌 포지션 이동 후 K리그 가장 핫한 오른쪽 풀백으로 떠오른 고요한(19.2%). 팬들이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 달콤한 우승의 기억이다.

No.8은 다른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비교대상이 없었다. 범접할 수 없는 8번의 존재, 아디다.



No.9는 보통 팀의 최전방 공격수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지금 FC서울의 9번은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이적했던 선수가 베스트에 선정된 몇 안 되는 등번호다. FC서울에서 선발 출장할 때나 서브로 출전할 때도 적재적소에서 시원한 골을 터뜨려 주던 정조국(92.1%)이 프랑스로 떠난 후 그 자리는 강정훈(7.9%)이 물려받았다. 선배의 아성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였다. 헌데 그 시간은 더 미뤄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정조국이 FC서울로 복귀했다. 본인의 등번호였던 9번도 다시 정조국에게 돌아갔다. 등번호에 대한 정조국의 애착이 묻어난다. 시즌 중 등번호 이동이 있는 흔치 않은 경우가 됐다. 이에 따라 강정훈은 공번이었던 15번을 받았다.

No.10은 이번 Part.1 뿐만 아니라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흥미 있는 매치업이다. 다소 안타까운 등번호 9번을 달고 아스날 시절을 보내기 전, FC서울과 대표팀, 프랑스로 이적해 모나코에서 까지 10번은 박주영의 고정 등번호였다. 처음 FC서울에 들어왔을 때 11번을 받았던 데얀은 박주영이 모나코로 이적한 뒤 10번으로 옮겼다. 그리고 K리그 최단경기 100호 골을 달성했다. 최근의 여론 탓인지, 데얀이 너무 잘해준 탓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데얀(66.3%)이 박주영(33.7%)에 생각보다 큰 표차이로 베스트 No.10으로 뽑혔다.




Part.2에서 계속.




/ 글 = FC서울 명예기자 유승민 (paul-fever@hanmail.net)
/ 사진 = FC서울 픽스닷컴 (http://www.fcseoul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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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7.07 16:11






- 김현성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최종 명단 선발



- 김태환은 최종 명단에서 아쉽게 제외...




 FC서울의 공격수 김현성이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최종 명단에 선발됐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29일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본선에 출전할 18인의 명단을 발표했다. 김현성은 이 명단에 와일드 카드로 선발된 FC서울 출신 박주영과 함께 스트라이커 두 자리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꿈에 그리던 런던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김현성이지만 그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그는 작년 대구FC에서 임대 신분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됐고,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극적인 동점골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후에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경쟁자인 광주FC의 김동섭을 제치고 대표팀 원톱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쉽게 김현성이 런던 행에 가까워지는 듯 보였지만 올 시즌 그 분위기가 반전됐다. 임대 만료로 올해 원 소속팀인 FC서울에 복귀한 그가, 팀에서 부동의 원톱인 데얀에 밀려 단 12경기(2경기 선발) 출전에 1득점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 때문에 경기력 저하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는 결국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전문가들은 사실상 그가 최종 명단에서 탈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숨어 있었다. 29일 홍명보 감독이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김현성을 최종 엔트리에 선발했기 때문. 김현성이 포함된 최종 명단을 발표한 홍명보 감독은 "장신(1m 86)으로 제공권이 좋아 상대에게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라며 김현성에 대한 발탁 배경을 설명하고 신뢰를 보냈다.










 이렇게 극적으로 최종 명단에 선발되며 런던 무대에 서게 된 김현성이지만 기뻐하기엔 넘어야할 산이 높아보인다. 4-2-3-1 포메이션을 쓰는 올림픽 대표팀의 원톱자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이자 그에게 FC서울 '선배'인 박주영이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또한 박주영과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지동원 역시 공격형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스트라이커로도 기용될 수 있어 김현성에게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경쟁자인 박주영과 지동원 모두 지난 시즌 소속 팀에서 주전 경쟁에 밀리며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프리미어리그가 비시즌이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떨어져있을 것이란 우려가 존재한다. 반면 김현성은 K리그 시즌이 진행 중이고 교체로 꾸준히 그라운드를 밟으며 컨디션을 조절했기에 경기 감각에선 이 둘을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홍명보 감독이 그의 제공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에 본선 무대에서 적어도 조커로서의 기용을 기대해 볼 만하다.


 올림픽 본선 무대라는 꿈에 그리던 목표를 이룬 김현성과는 반대로, FC서울의 또 다른 올림픽 대표팀 선수인 김태환은 아쉽게 최종 엔트리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올림픽 최종 예선 내내 수원삼성 소속 서정진과 경쟁하며 대표팀의 오른쪽 측면을 담당했던 김태환은 아쉽게도 해외파인 남태희와 백성동에게 밀려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록 올림픽 무대는 밟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올림픽 대표팀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는 희비가 엇갈린 두 선수 사이에서 아쉬움을 접고 김현성에게 응원을 보내야할 때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본선에 서게 된 김현성이 FC서울을 대표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할 수 있을까? FC서울 팬들의 관심이 런던으로 향하는 이유이다.


/글=FC서울 명예기자 김종호(fabrer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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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7.06 18:14

 

 

 

- 팀 창단 29년 만에 부산, 울산, 포항, 제주에 이어 K리그에서 5번째로 대기록 달성

 

 

 

-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키는 기회

 

 

 

 

 

FC서울(이하 서울)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9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창단(1983) 29년 만에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의 대기록을 달성한다.

 

서울은 국내 프로축구 제 5호 구단으로 창단해 그동안 K리그를 이끌어왔으며 지난 시즌 기록을 달성한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에 이어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팀 통산 1,000경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다른 기록들에 비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팀 득점이나 팀 최다 승 등의 다른 기록들은 팀과 선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록 달성까지의 기간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기록만큼은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 팀만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통산 1,000경기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29년간 서울은 전 대회 통산 371311317(정규리그 312230260)를 기록해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에 이어 K리그에서 세 번째로 통산 4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통산 1327득점과 1209실점(정규리그 1075득점 971실점)을 기록 중이다.

 

 

 

 

 

 

서울은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을 시작으로, 고재욱, 조영증, 박병주, 조광래, 이장수, 귀네슈, 빙가다, 황보관 그리고 현재의 최용수 감독의 지도하에 리그 우승 4(준우승 5), 컵 대회 우승 2(준우승 4), FA컵 우승 1회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재작년인 2010 시즌에는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팬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울은 선진 마케팅 도입을 통해 그동안 한국 프로스포츠와 K리그에서의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는데 LED(발광다이오드)전광판 도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모바일 티켓 예매 시스템, 소셜커머스를 통한 티켓북 판매, 외국인의 날, 팬들이 제작한 립덥 뮤비그리고 통합 시즌권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서울의 축구 철학은 고스란히 관중 기록으로 이어져 한국 프로스포츠 한 경기 최다 관중(6747)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정규리그 평균 관중 3만 명 돌파 그리고 K리그 두 시즌 연속 시즌 누적 50만 관중 달성 등의 자랑스러운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길러내며 한국축구의 중심축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온 서울은 이번 K리그 통산 1,000경기 달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명문 팀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 더 확고히 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서울은 앞으로도 존재하고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다가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 시작의 축제를 다함께 즐겨보자.

 

/ =FC서울명예기자 김종호(fabrer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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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4.20 16:48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해에 대한 설렘으로 신년 계획을 세우며 부푼 희망을 품는 그런 달이지만 K리그와 FC서울을 사랑하는 팬들에겐 슬픈 달이다. 이유는 K리그의 1월은 휴식을 갖는 달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축구의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고 열광적인 모습을 보길 원하는 팬들을 충족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국방부 시계가 거꾸로 놓아도 돌아가듯 FC서울 팬들의 시계 역시 K리그 개막을 향해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K리그 개막을 향한 기다림의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기 위해 과거 영광스러웠던 FC서울의 모습을 들춰보려 한다. 이번에 다뤄 볼 내용은 해트트릭이다. 해트트릭은 영국의 국기(國技)인 크리켓에서 3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아웃 시킨 투수에게 새로운 모자를 증정한 것을 시초로 하며, 축구나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3득점을 올렸을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또 한 팀이 3년 연속으로 대회 타이틀을 석권했을때도 사용된다.


FC서울 역시 여러 훌륭한 선수들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럼 지금부터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위대한 해트트릭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 2005년 7월10일 vs포항전 박주영의 해트트릭




 




 2005년 한국축구에서 이 선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선수는 다름 아닌 박주영이다. 2004년 청소년축구를 평정한 박주영은 그 다음해인 2005년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무대로 뛰어들었다.


입단 초부터 많은 팬들의 관심 속에 있었던 박주영은 프로무대 두 번째 경기인 성남전에서 교체 투입 뒤 첫 골을 신고했고, 컵대회 에서만 무려 5골을 기록하며 빠르게 프로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갔다. 게다가 그 해 6월 열린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출전한 박주영은 우즈베키스탄전에선 동점골, 쿠웨이트전 에선 선취골마저 터트리며 K리그와 A매치를 넘나드는 활약으로 대한민국을 ‘박주영 신드롬’에 빠지게 했다.
 

그 덕에 많은 팬들이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고 서울이 원정을 떠나면 해당 지역 팬들이 박주영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의 플레이가 절정에 올랐음을 보여줬던 경기가 그 해 7월 10일 열린 포항과의 리그 홈경기. 당시 포항은 최고 스트라이커 이동국과 최고 골키퍼 김병지가 소속되어 있어, 한창 떠오르는 신예인 박주영과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팬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했고 결국 48375명이란 대관중이 몰려들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질 거란 예상과 달리 서울은 박주영이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터트리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는다. 전반 15분 히칼도의 롱패스를 받은 박주영은 신인 답지 않은 침착함을 보이며 김병지의 움직임을 읽은 뒤 첫 골을 터트린 것이다. 전반 32분 김은중의 추가골까지 더한 서울은 전반을 2-0으로 앞서나갔다.
 

이어진 후반전은 박주영의 독무대였다. 후반 16분 히칼도가 살짝 띄워준 볼을 이어받은 박주영은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수비수가 시야를 가리고 있음에도 정확한 땅볼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터트렸다. 골이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끝끝내 골을 성공시킨 박주영의 모습으로 인해 관중들은 열광했고 후반 44분엔 히칼도의 코너킥을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자신의 생일이기도 했던 박주영은 해트트릭으로 생일을 자축하며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더군다나 박주영은 감기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달성한 해트트릭이라 그 의미는 컸고, 많은 관중들 역시 박주영의 진가를 제대로 보게 되며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2. 2007년 3월 21일 vs수원전 박주영의 해트트릭


 





2005년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사상 첫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박주영이지만 2006년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18골을 넣었던 2005년과 달리 2006년엔 8골에 그쳤고 그 해 열렸던 독일월드컵에서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부진에 빠진 것이다.
 

해가 바뀐 2007년. FC서울은 터키 최고의 명장 셰놀 귀네슈를 영입하며 큰 이슈를 일으킨다.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귀네슈 감독의 신임을 받은 박주영은 제주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터트리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다음 상대는 라이벌 수원. 당시 수원엔 안정환이 소속되어 있어, 박주영과 최고 공격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신문 헤드라인엔 ‘반지의 제왕’ 이라는 안정환의 별명과 ‘축구 천재’ 라는 박주영의 별명을 이용해 ‘제왕vs천재’ 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했다. 여기에 라이벌 수원과의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이라는 점도 겹치며 평일에 열린 컵대회 경기임에도 35993명의 관중이 몰리며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전반 6분 서울은 마토에게 헤딩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박주영의 발 끝은 수원의 리드를 장시간 허용하지 않았다. 전반 13분 김은중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이청용이 빠르게 파고들었고 이청용이 골키퍼까지 제친 뒤 박주영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고, 박주영이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든 것이다.


기세가 오른 박주영은 후반 6분 최성환의 어설픈 클리어링을 가로채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후반 7분엔 이청용의 패스를 이어받아 세 번째 골까지 작렬시키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순식간에 3-1로 앞서나간 서울은 후반 42분 정조국의 골까지 보태며 라이벌 수원을 4-1로 완파했다.


이 날 박주영은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골 감각이 회복된 모습을 보였고 귀네슈식 공격축구가 FC서울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또 당시 신예였던 이청용은 이 날 경기에서 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3. 2010년 4월 4일 vs수원전 데얀의 도움 해트트릭







이 날 경기에서 데얀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하지만 골을 넣은 것 만큼이나 가치 있는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늘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몰고다니는 서울과 수원의 2010 시즌 첫 맞대결이 4월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날도 48558명의 관중들이 들어차며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초반 리그에서 수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양 팀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기에 경기 초반부터 양 팀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반 중반 서울이 8분 동안 세 골을 터트리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고 그 중심엔 데얀이 있었다. 전반 24분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데얀은 수비가 자신에게 몰려들자 절묘한 힐패스로 에스테베즈 에게 내줬고, 에스테베즈가 이를 이어 받아 빈공간을 파고 든 뒤 반대편 골포스트를 보고 정확하게 슈팅을 때려 첫 골을 성공시켰다.


3분 뒤엔 상대의 실책을 틈 타 추가골에 성공한다. 이운재의 골킥이 정조국의 머리를 맞고 나오자 이를 이어받은 데얀은 자신이 직접 슈팅을 때리는 대신 침착하게 정조국에게 연결했고, 정조국이 이를 골로 연결하며 팀에 두 번째 골을 선사했다. 서울의 공세는 그치지 않고 전반 32분에 세 번째 골을 추가 했다. 데얀이 공간을 침투해 들어가는 최효진에게 절묘한 패스를 내줬고 이를 이어받은 최효진이 수비수 한명을 제치고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날린 강력한 슈팅이 이운재를 맞고 골로 연결된 것이다.


순식간에 스코어를 3-0으로 벌린 서울은 한층 더 여유로운 경기운영을 펼칠 수 있었고, 결국 후반에 강민수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3-1로 꺾으며 라이벌전에서 자존심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MOM에 선정된 데얀도 지난 2008년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진했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었고, 득점외에도 도움 역시 능하다는걸 보여주었다. 결국 데얀은 2010년에 10도움을 기록했고 이는 데얀이 기록한 역대 한 시즌 최다 도움으로 남아있다.





4. 2010년 5월 5일 vs성남전 데얀의 해트트릭


 







수원을 상대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두고 한달 뒤 서울은 또 다른 수도권의 강호인 성남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 날은 어린이날을 맞아 60747명이라는 대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한달 전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얀은 이 날은 자신이 직접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 팬들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했다.



 초반 탐색전을 펼친 서울은 전반 20분 데얀에 발 끝에서 선제골을 얻는다. 김치우의 코너킥을 방승환이 머리로 살짝 돌려놓자 데얀이 왼발로 골대에 밀어넣으며 첫 골을 기록한 것이다. 데얀의 골로 인해 서울은 전반을 1-0으로 마칠 수 있었다. 후반 초반 성남에 공세에 고전하기도 했지만 후반 24분 데얀이 다시 한번 골을 터트렸다. 역습상황에서 박용호의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 슛으로 연결하며 추가골을 터트린 것이다.
 

기세가 오른 데얀은 후반 31분엔 김태환의 크로스를 논스톱 발리슈팅으로 연결하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이로 인해 흐름은 완벽하게 서울로 넘어왔고 데얀은 후반 47분 이승렬의 골까지 어시스트 하며 3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서울 역시 데얀의 해트트릭과 이승렬의 골로 4-0의 압승을 거두었고, 2연패의 고리를 끊은것은 물론, 리그 1위로 등극하는 기쁨까지 맛 볼 수 있었다.






5. 2011년 5월 8일 vs상주전 데얀의 해트트릭








2011년 FC서울은 시즌 초반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부진에 빠졌다. 하지만 최용수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하면서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고, 데뷔전인 제주전과 알아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다음상대는 상주. 당시 상주는 공격수로 변신한 김정우를 앞세워, 리그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고, 서울출신의 김치우, 최효진, 이종민 등이 포진해 있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은 승리가 꼭 필요했다. 연승 기록을 이어가야 상승세를 타면서 상위권 도약을 노릴 수 있었고, 5월은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FA컵을 포함해 3~4일에 한번씩 경기를 치러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쥴로 구성되어 있어, 5월 초 경기부터 패배했다간 모처럼 살아난 분위기가 떨어질 우려가 있어, 상주전 승리는 정말 중요했다.
 

서울 선수들 역시 이를 아는듯 초반부터 강한 공격으로 상주를 압박했고 결국 전반 8분 방승환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박용호가 전반 18분 자책골을 넣으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반격에 나선 서울은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다시 앞서나가는데 성공했고 서울은 2-1로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


후반 양 팀은 치열한 골 공방전을 벌이며 승부의 향방을 안갯속으로 몰고 갔다. 후반1분 최효진의 골로 다시 동점이 되었지만 서울은 후반28분 데얀이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재차 앞서나갔다. 김영삼의 헤딩 미스를 저지르자 이를 골대로 밀어넣으며 스코어를 3-2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1분 만에 김정우가 다시 동점골을 터트리며 끝까지 저항했고, 결국 승부는 후반 43분 현영민의 극적인 프리킥 결승골이 터지며 서울이 4-3으로 상주를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이 날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얀은 시즌 초 부진을 씻어내며 골 감각을 완벽하게 회복했고 5월 한달에만 8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데얀의 활약속에 FC서울 역시 5월 한달 간 6승1무2패의 호성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6. 2011년 8월27일 vs강원전 몰리나의 골 도움 동시 해트트릭






 해트트릭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골이든 도움이든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에겐 찬사가 쏟아진다. 근데 만약 한 선수가 골과 도움 해트트릭을 한 경기에서 동시에 기록한다면 믿겠는가?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을 달성한 선수가 있다. 그 선수는 다름 아닌 몰리나. 몰리나는 지난 8월27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3골3도움을 기록하며 믿기 힘든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시 리그에서 6연승을 달리며 순항중이었던 서울. 상대는 최하위를 달리고 있던 강원이라 서울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는 한판이었고, 서울의 막강 화력이 과연 몇 골이나 뽑아낼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예상대로 서울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터트리며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9분 아디의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수비가 간신히 막아냈지만 공이 골대 부근에 서있던 몰리나 앞으로 흘러갔고 몰리나가 이를 강력한 왼발슛으로 선제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전반 18분 ‘데몰리션 듀오’가 두 번째 골을 뽑아냈다. 수비진에서 빼앗은 볼이 몰리나에게 연결되었고, 몰리나가 이를 이어받아 중앙 돌파 뒤 살짝 내어준 볼을 데얀이 골키퍼를 살짝 넘기는 로빙 슈팅으로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덕분에 여유있게 앞서나가게 된 서울은 경기를 지배하며 전반을 2-0으로 마쳤다.
 

후반에도 서울의 성난 공격은 계속되었다. 세 번째 골 역시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후반 2분 몰리나가 센터서클에서 내어준 패스를 이어받은 데얀이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침착하게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네 번째 골은 몰리나의 전매특허 기술이 만들어 냈다. 탁월한 왼발킥을 자랑하는 몰리나는 후반 13분 아크 정면에서 자신이 얻어 낸 프리킥을 직접 왼발 슈팅으로 처리하며 스코어를 4-0으로 만든 것이다.


후반 23분엔 교체 투입된 이승렬에게 몰리나가 왼쪽 측면에서 정확한 패스로 골을 도우며 어시스트 하나를 추가했다. 후반 27분 강원 윤준하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몰리나는 후반 36분 팀의 여섯 번째 골이자 자신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킨다. 아디가 한 번에 길게 내어준 패스를 이어받은 몰리나는 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키퍼를 살짝 넘기는 재치 있는 슈팅으로 3골 3도움이란 대기록을 완성했다.
 

이 후 강원 서동현과 김진용에게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6-3까지 좁혀졌지만, 몰리나의 활약 속에 서울은 7연승에 성공했다. 당시 몰리나가 기록한 3골 3도움은 K리그 최초의 기록이기도 했으며 6개의 공격포인트 기록으로 종전 5개였던 한 경기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까지 갈아치우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시즌 초 서울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몰리나는 전남전 버저비터 골과 강원전 ‘더블 해트트릭’을 포함. 7연승 기간동안 5골 7도움을 올리며 완벽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즌 종료까지 10골 12도움을 올리며 FC서울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7. 2011년 10월30일 vs경남전 하대성의 해트트릭







하대성하면 제일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 헌신, 팀플레이, 살림꾼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팬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골을 떠올리는 팬들은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하대성이 일을 냈다. 그것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누구도 예상 못한 해트트릭을 달성한 것이다.


당시 4위를 달리고 있던 서울은 3위인 수원과 골득실에서 1골 차 뒤져있었고, 3위를 탈환하기 위해선 시즌 마지막 경기인 경남전 승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서울은 경남을 반드시 잡은 뒤 같은 시각 수원에서 열리는 수원vs제주의 경기를 지켜본다는 입장이었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서울은 후반 14분 코너킥으로 기회를 잡는다. 몰리나의 코너킥이 수비를 맞고 흐르자 뒤에 있던 하대성이 그대로 왼발 슈팅을 날렸고 이 공이 경남의 수비진을 맞고 골대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행운의 선제골로 기선을 잡은 서울은 후반 23분 경남 수비수 정다훤의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공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대성 역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고 결국 후반 32분 자신이 팀에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다. 고명진의 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우측면에서 올려준 볼을 하대성이 가슴트래핑 뒤 침착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넣은 것이다.


물오른 골 감각을 보인 하대성은 결국 후반 40분 해트트릭을 완성하게 된다. 중앙에서 몰리나가 최태욱에게 밀어줬고, 최태욱이 살짝 내어준 볼을 하대성이 다이렉트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하대성의 이러한 활약속에 서울은 경남을 3-0으로 완파했고, 같은 시각 제주를 2-0으로 이긴 수원과 골득실에서 동률을 이뤘지만 다득점에서 앞서며 극적으로 3위 탈환에 성공했다.


이 날 경기로 인해 하대성은 그간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면서 부진했던 모습을 훌훌 털어버리는데 성공했다. 팬들 역시 하대성의 해트트릭이라 하여 ‘하트트릭’이라 부르기도 했고 시즌 종료 후엔 K리그 베스트 일레븐 미드필드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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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1.20 23:57

2008년 신인왕 수상자 이승렬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제 식민지 시절. 지식인이었던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시를 통해 조국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드러냈다. FC서울 역시 유망주 육성 정책을 통해 많은 젊은 선수들을 육성함으로써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드러냈고, 그 기대에 부합하듯 정조국,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등이 배출됨으로써 FC서울은 명실상부한 유망주들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그 덕에 우수 젊은 선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인왕 역시 대거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FC서울의 역대 신인왕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단 한번밖에 수상할 수 없는 신인왕의 영광을 차지했던 선수들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1. 최용수 (1994년 신인왕 수상)

최용수 감독의 젊었을때 모습 (사진출처 - 베스트일레븐)




FC서울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구단 최초 신인왕의 주인공이다. 현역 시절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용수는 1994년 드래프트를 통해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최용수는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지 못했다.


1994년엔 이임생(유공), 정재권(대우), 조진호(포항)등 쟁쟁한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린 해였고, 게다가 조진호는 그 해 열린 미국월드컵 대표팀에도 합류하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용수는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뽑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타 선수에 비해 떨어졌다.


여러모로 최용수가 신인왕을 수상하기엔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최용수는 그 해 4월2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다음 경기인 유공전에서 까지 골을 넣으며 두 경기 연속골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윤상철이란 당대 최고의 공격수와 호흡을 맞추며 시즌 내내 주득점원으로 활약한 최용수는 결국 그 해 9골 4도움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8월의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훗날 한국 축구의 계보를 잇는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렸다.


최용수의 신인왕 수상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신인왕은 대부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한 선수들이 차지했지만 최용수는 사상 두 번째로 드래프트 1순위가 아닌 선수로 신인왕에 등극했다. 또 그 해 최용수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얻어낸 신인왕이라 그 의미는 컸다. 신인 시절부터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최용수는 이후 애틀랜타 올림픽,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2. 정조국 (2003년 신인왕 수상)







2003년 대신고를 졸업하고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로 뛰어든 정조국. 그는 프로 입단 이전부터 청소년대표팀 에서 맹활약하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2002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이종민(상주), 임유환(전북)등과 호흡을 맞춘 정조국은 3골을 넣으며 공격수로서 제몫을 다했고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이때의 활약으로 정조국은 히딩크 감독에 눈에 띄며 2002 월드컵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당시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는 등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프로에 뛰어든 정조국은 시즌 첫 경기부터 교체 출전하며 기대 받는 신인임을 증명했고 7번째 경기인 부천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후 광주전에선 멀티골, 라이벌 수원전에서도 한 골을 추가하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정조국은 그 해 올스타에도 선발되며 중부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고 캐논슛 컨테스트에선 135km/h 의 킥을 보여주며 이동국(129km/h), 이기형(128km/h) 등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2경기 출전에 12골 2도움이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한 정조국은 그 해 11월 UAE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런 정조국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신인왕 수상. 덕분에 정조국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2004, 2005년엔 슬럼프가 찾아왔고 김은중, 박주영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서울에 입단하면서 설자리가 좁아졌다.
 

2003년 두자릿수 득점 이후 2009년까지 단 한차례도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정조국은 2010년 결혼과 함께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활했고, 결국 13골을 넣으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운뒤 프랑스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현재 프랑스 1부리그 낭시에서 활약중인 정조국은 유럽에서 성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 박주영 (2005년 신인왕 수상)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가 열린 말레이시아. 대한민국의 시선은 당시 청소년대표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이 선수에게 쏠렸다. 그의 이름은 박주영. 당시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끔과 동시에 득점상과 MVP를 휩쓰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상까지 휩쓴 박주영은 2005년 초 카타르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러한 활약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했고, 결국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고 서울은 등번호 10번을 배정하며 기대를 보였다. 많은 팬들이 박주영의 골퍼레이드가 프로에서도 이어질까? 하는 관심속에 박주영은 두 번째 경기인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 뒤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 했다. 그 후 박주영의 행보엔 거침 없었다. 컵대회에서만 무려 5골을 추가한 박주영은 광주상무와의 리그 홈경기에선 해트트릭까지 달성하는 등 서울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그리고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선 2005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당시 이동국, 김병지란 최고의 공격수와 골키퍼가 소속되었던 포항을 맞아 박주영은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4-1 대승을 이끈 것이다. 당시 감기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출전한 박주영은 히칼도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48375명이라는 대관중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활약에 대한민국은 박주영 신드롬에 휩싸였다.
 

 2005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의 기도세리머니를 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연일 관중으로 가득찼고 서울이 원정을 떠나면 해당 지역 관중들 역시 박주영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K리그에서 연일 골 폭풍을 몰아치는 박주영이다 보니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 는 말로 그의 발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박주영은 정경호의 패스를 받아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쏘아올리는 활약을 했고 뒤이어 열린 쿠웨이트전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으로 본프레레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시즌 후반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30경기 출전 18골 4도움이라는 성적으로 사상 첫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6년엔 2년차 징크스로 많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 후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며 2008년 여름 프랑스의 AS모나코에 입단하며 유럽진출에 성공했다.



첫 시즌부터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박주영은 5골5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이 후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남아공 월드컵에서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 소속으로 아직 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있지만, 곧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이승렬 (2008년 신인왕 수상)







신갈고를 졸업하고 2008년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을 맡고 있던 귀네슈에게 "K리그를 뒤흔들 재목"이라며 극찬을 받았다. 실제 그는 FC서울의 2008년 첫 경기인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도 출전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고 그 후 귀네슈의 총애 아래 꾸준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자신감 넘치고 저돌적인 플레이는 신인 특유의 패기를 느끼게 해주었고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 능력까지 보이며 전술적 활용도 역시 높았다. 2008년 최종 성적은 31경기 출전 5골 1도움. FC서울 역대 신인왕중 가장 낮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그가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일 정도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라이벌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거함 수원을 격침시키는데 단단히 한몫하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서상민, 조동건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수상한 이승렬은 이듬해인 2009년엔 7골 1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고 2010년엔 팀 내에서 유일하게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합류한 것과 동시에 10골 6도움을 올리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2011년엔 19경기 출전, 1골에 그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팬은 없다. 기성용, 이청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이승렬인 만큼 정상 컨디션을 찾는다면 2012년 이승렬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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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12.27 22:07

2011.6.11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포항
1:1 무승부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박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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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12 14:40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후,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애칭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정환이 아내에게 보내는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직까지 서울에서 안정환처럼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을 얻은 선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기억 남는 세리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많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



박주영의 대표 세리머니는 사실 기도 세리머니다. 박주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상 깊은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는 최근 그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하트 세리머니를 보이거나 키스 세리머니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는 배가 불러왔다는 동작을 통해 부인들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기도 한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그 해 4월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유니폼 안의 티셔츠에 여자친구의 애칭인 ‘굼벵이’와 ‘하트’를 그려 넣어 여자친구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이 세리머니로 인해 박주영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알려졌고 많은 여성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고. 2005년부터 이어져온 박주영의 사랑은 오는 6월 12일 결실을 맺는다. 그는 축구천재이기도 했지만 한 여자를 위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김승용의 ‘댄스 세리머니’



김승용은 현재 서울 선수는 아니지만 매번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승용은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이 생긴 경우다. 당시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리마리오 춤을 김승용이 세리머니로 똑같이 춘 것. 이 때문에 김승용에게는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서울에 다시 돌아온 김승용은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리마리오 댄스를 췄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은“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라는 반응과 “군대에서 2년동안 리마리오만 연습했나보다”라며 새로운 세리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본 김승용은 새로운 댄스 세리머니를 추게 된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이미 2007년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화제에 올랐던 김승용은 2009년 5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에게 ‘쏘리쏘리’춤을 췄다. 김승용은 "그동안 골을 못 넣은 것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쏘리쏘리 춤으로 대신했다"라며 골 세리머니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김승용. 그는 당시 유행하는 춤들로 팬들에게 재밌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다.



이청용의 ‘엠블럼 키스’



이청용은 한결같은 세리머니를 보여준 선수다.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로 대표된다면 이청용은 골을 넣은 뒤 엠블럼에 키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팬들과 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청용만의 세리머니였다. 많은 팬들은 그의 ‘엠블럼 키스’를 좋아했고 이는 볼턴에서도 이어졌다. 볼턴에서 골을 넣으면 서울 팬들에게 ‘엠블럼 키스’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첫 골을 성공시킨 이청용은 당시에 “정신없어 하지 못했다”며 후에 2009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청용의 또 다른 약속은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것. 그가 나중에라도 서울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엠블럼 키스’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용의 ‘캥거루 세리머니’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캥거루 세리머니’로 대표된다. 그가‘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다, 기성용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았다. 그리고는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는 듯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0-0이었던 후반 인저리타임에 한솥밥을 먹는 차두리와 극적인 연속골을 뽑아냈을 때도 ‘캥거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기성용이 2008년 수원전에서 ‘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였을 때, 그 이유에 대해 “평소에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보고 아데바요르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선수가 인상깊은 세리머니를 해서 그냥 따라해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세리머니가 펼쳐졌을 때, 논란이 일었다. 기성용의 세리머니가 ‘새 모이쪼기’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이 ‘빅버드’였던만큼 새를 떠올리게 하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승렬의 ‘배트맨과 기타 세리머니’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이승렬. 그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승렬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경기장 한 쪽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의 재치있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이승렬의 현재 별명은 피터팬이다. 그러나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별명 중에는 ‘배트맨’도 있었다.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았던 그는 당시 소감에서 "2년차 징크스 없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배트맨 세리머니를 보이며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데얀의 ‘위험한 세리머니’



데얀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첫 시작은 2009년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벌어졌다. 골을 성공시킨 데얀은 매우 흥분한 나머지 전남 벤치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졌다. 순간 전남 벤치에 있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분노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왔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졌다. 그리고 당시 주심은 도발에 대한 행위로 데얀에게 경고를 선언했다. 이미 1장의 경고를 받은 데얀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를 향한 조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았다. 포항의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를 향해 활을 쏜 것과 같은 이유로 경고를 받은 것. 이후,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얀에게 “팬들은 이런 세리머니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이런 세리머니를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알지만 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은 이런 위험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조국의 ‘아빠 세리머니’



정조국은 결혼 후에 패트리어트라는 별명 대신에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조국은 2010년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13골 중 10골은 아들이 세상에 나온 후 기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그에게 아들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은퇴한 네덜란드산 폭격기 베르캄프로 변신했다는 의미에서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골을 성공시킨 뒤 엄지를 손에 문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 그는‘분유캄프’라는 별명답게 젖병 세리머니,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등을 펼쳤다. 현재는 프랑스로 떠난 그이지만 멋진 활약을 보여준 ‘분유캄프’정조국을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최태욱의 ‘수화 세리머니’



최태욱의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다. 동작도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세리머니를 했다. 최태욱은 지난 2010 쏘나타 K리그 대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달려가면서 한 손 위에 엄지를 치켜세운 다른 손을 올린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최태욱을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그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의 수화를 세리머니로 보여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렸다. 최태욱은 현재 부상 중이다. 얼른 회복하여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수화’세리머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명진의 ‘광고판 세리머니’



고명진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16강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최근 최용수 감독 대행 하에서 고요한과 함께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은 1997년 최 감독 대행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이 1997년 카자흐스탄과의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선제골 후 넘어진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고명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너무 많이 달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골을 넣어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고명진은 최근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고명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고명진의 세리머니는 최 감독 대행의 예전 세리머니와 겹쳐보였다.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아기 독수리’고명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세리머니에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경우도 있다. 골을 성공시킨 뒤 단순하게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색다른 세리머니를 통해 선수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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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06 20:41






유럽으로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FC서울은 K리그에서 해외파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한 등용문으로 FC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최근에는 정조국까지. FC서울은 계속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의 이적을 허용해왔다.




얼마 전 오세르에서 뛰고 있는 정조국의 2호골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데얀과 함께 서울의 공격 라인을 이끌며 많은 골을 넣었던 그였지만 프랑스로 이적한 뒤, 골 소식은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정조국의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정조국은 2호골을 성공시키면서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들으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유럽으로 떠난 FC서울의 전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나코의 보배 박주영



최근에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온 박주영부터 살펴보자.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 입단 당시부터 이슈였다. 입단 전부터 이미 스타였던 박주영은 ‘축구 천재’라고 불리며 서울 팬들 앞에 나타났다. 박주영은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FC서울이 K리그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해주었다. 박주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들었고 박주영은 그에 보답하듯 멋진 골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박주영이 2008년 프랑스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도 그랬듯 AS 모나코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박주영은 골을 넣는 역할 뿐만 아니라 팀 내 다른 공격수의 슈팅 찬스까지 만들어주는 등 팀에서 그의 비중은 크다. 2009/2010 시즌에는 9골(컵대회 포함) 3도움을 기록했다.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긴 했지만 프랑스컵(Coupe de France) 결승 무대에도 나섰다. 2010/2011 시즌에는 모나코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31경기 12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현재 강등권에 놓여있다. 박주영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그와‘빅클럽’들이 연관된 이적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많은 팬들은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를 떠나 더 큰 무대에서 뛰기를 바란다. 박주영은 지난 5월에 ‘골닷컴’에서 선정한 ‘빅리그에 갈 재능 TOP 5’에도 선정되었다. 박주영 본인도 이를 원하는 듯하다. 결혼과 함께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는 박주영의 소식을 듣길 바란다.



여전히 그리운 쌍용



귀네슈 감독 부임과 함께 FC서울 축구에 ‘빅재미’를 선사했던 쌍용은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쌍용’은 박주영 다음으로 FC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FC서울에서 뛰며 실력을 다져온 그들은 귀네슈 전 감독의 신임 아래서 무럭무럭 성장해 FC서울의 기둥이 되었다.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쌍용’은 국가대표에서도 주축 선수로 성장하며 서울과 국가대표에서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후, ‘쌍용’은 유럽으로 떠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한다.






‘쌍용’중 가장 먼저 이적한 것은 ‘블루 드래곤’이청용이었다. 27번이라는 번호가 서울팬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청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먼 타국의 축구팬들도 그의 가치를 알아본 것일까. 이청용은 잉글랜드 볼튼에서도 팬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청용은 입단 첫 시즌에 볼튼의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올해의 톱3상’, ‘선수가 뽑은 최우수 선수상’ 등을 휩쓸며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2010/2011 시즌에는‘올해의 톱3상’을 받으며 볼튼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올 시즌 그의 공격포인트는 4골 8도움으로 12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3개였던 작년과 비교하면 하나가 모자라지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다. 2009/2010 시즌이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면 2010/2011 시즌은 이청용이 팀 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청용은 시즌 초반 정규리그 17경기에 연속 출전하며 볼튼의 시즌 초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었다. 시즌 막판에는 14위로 시즌을 마감한 볼튼이지만 시즌 초에는 유로파 리그 티켓 확보 가능한 순위인 6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런 이청용의 활약에 해외 언론도 호평을 쏟아냈다. EPL 선수 랭킹에서 이청용은 최고 20위(2010.11)에, ‘유로스포츠’가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2회나 선정됐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골닷컴’ 이 선정한 ‘올 시즌 아시아 선수 베스트 10’에서 4위에 올랐다. 이처럼 이청용은 FC서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 볼튼의 에이스가 되었다.




‘쌍용’의 또 다른 주인공 ‘기라드’기성용은 얼마 전 팬들에게 기쁜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전반 32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에서도 들어 올리지 못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경기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올 시즌 성적으로‘80점’을 매겼다. 기성용은“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 20점을 뺐다”고 말하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 외에는 완벽에 가까운 시즌으로 평가했다. 기성용은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 4골 5도움을 기록했다. 그는“적응을 잘 했고 거친 리그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주영과 이청용에 비하면 늦게 유럽으로 진출한 그는 이제 갓 한 시즌을 마쳤다. 박주영, 이청용 모두 이적 후 첫 시즌보다 적응을 마친 다음 시즌에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것처럼 기성용도 첫 시즌보다는 더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까지. FC서울의 전사들은 FC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적한 프랑스 오세르의 정조국은 2호골을 기록하면서 점차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FC서울의 자랑과도 같다.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며 멀리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선수들도 이국에서 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멀리서도 서울의 승리를 기원하며 서울의 우승을 응원한다. 얼마 전 기성용은 귀국 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서울과 함께하는 서울의 전사들. 그들이 유럽 무대에서 멋진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서울의 선수들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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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27 12:34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골을 넣지 않고 승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보유다.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FC서울 역시 능력 있는 수많은 스트라이커가 팀을 거쳐 갔다. 그럼 이제부터 어떤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이 FC서울에 몸담았는지 알아보자.


1. 태국산 코브라 피아퐁 푸에온

활동연도 : 1984~1986

통산기록 : 43경기 18골 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85

K-리그 준우승 1회 : 1986

K-리그 득점상 : 1985 (21경기 12골)

K-리그 도움상 : 1985 (21경기 6도움)

K-리그 베스트 11 : 1985



1984년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에 입단한 피아퐁은 K리그 최초의 동남아시아 출신 용병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진가는 1985년부터 빛을 발한다. 21경기에 나와 12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 그는 도움도 6개나 기록하며 도움왕 까지 거머쥐며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의 순도 높은 활약은 팀의 큰 보탬이 되었고 럭키금성은 그해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준족에 스피드가 뛰어나고 특히 문전에서 남다른 순발력을 보인 피아퐁은 ‘태국산 코브라’라는 별칭으로 유명했으며 태국 국가대표 로도 129경기에 나와 103골을 터트리는 등 태국에서도 축구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3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피아퐁은 파항FA와 왕립 태국 공군FC에서 뛰었으며 1997년 은퇴하게 된다.
그 후 2007년 K리그 득점왕들의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스페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현재 태국 공군 대위의 신분으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왕립 태국 공군 FC의 코치와 태국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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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윤상철

활동연도 : 1988~1997

통산기록 : 300경기 101골 31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90

K-리그 준우승 2회 : 1989, 1993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2, 1994

K-리그 득점상 (2회): 1990(30경기 12골), 1994(34경기 21골)

K-리그 도움상 : 1993(32경기 8도움)

K-리그 베스트 11 (4회) : 1989, 1990, 1993, 1994



1988년 드래프트 1순위로 럭키금성(현FC서울)에 입단한 윤상철은 K리그에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1989년 31경기에 나와 17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 윤상철은 이듬해인 1990년엔 30경기에 나와 12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자신은 득점왕에 오른다.
그 후 윤상철은 1993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해 32경기에 나온 윤상철은 8도움을 기록. 도움왕에 오르며 피아퐁에 이어 두 번째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차지했고 그 해 9월 28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선 K리그 통산 6번째로 20득점 2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1994년엔 34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득점왕에 올라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 한다.
이후 1997년 4월6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서 통산 6번째 30득점 30도움 클럽 가입, 그 해 8월 13일 전북현대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100골 기록, 또 9월 27일 전남과의 경기에서 역시 K리그 최초로 300경기에 출장하는 등 K리그 사 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윤상철은 비록 신체조건이나 스피드, 활동량등 스트라이커로서 외적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골 에어리어 에서의 득점감각과 슈팅 타이밍, 슈팅센스 같은 내적조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현역시절 ‘얼룩치타’라는 별명이 있었던 그는 현재 경신고등하교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3.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활동연도 : 1994~1998, 1997~1998, 2004~2006

통산기록 : 148경기 54골 2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200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4, 1999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 1999년

K-리그 신인왕 : 1994

K-리그 인기상 : 1995

K-리그 베스트 11 : 2000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 : 2000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최용수는 입단 첫해부터 그 비범함을 뽐낸다.
1994년에 입단한 최용수는 그 해 35경기에 출전해 10골 7도움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2년간 상무에서 복무한 그는 2000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34경기에 나와 14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MVP에 오른다.
또 그해 5월 24일 대전시티즌 과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5번째 20득점-20도움을 기록했다.
2001년 한국 선수 최고 금액으로 일본 J리그 제프 이치하라에 입단한 최용수는 일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이적 첫해부터 J리그 득점랭킹 2위에 오른 그는 2001년, 2003년에는 J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2003년 4월에는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으로 AFC 4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교토상가와 주빌로 이와타를 거친 그는 J리그에서 121경기 75골이란 기록을 남긴 뒤 2006년 FC서울로 복귀해 그 해 8월5일 FC도쿄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날카로운 눈매와 투지넘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인해 독수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98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활약은 눈부셨는데 당시 그는 대회 최다 득점인 7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일조한다. 현재 그는 FC서울의 코치로 재직하며 제2의 최용수를 발굴하는데 힘쓰고 있다.



4. 패트리어트 정조국

활동연도 : 2003~2010

통산기록 : 203경기 59골 18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3

FA컵 득점왕 : 2004

K-리그 컵대회 우승 2회 : 2006, 201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우승 1회 : 2010



정조국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다.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정조국은 최성국(광주)과 함께 빅앤스몰 조합을 구성하며 대표팀 공격을 이끌었고, 2002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 2003 세계 청소년 대회 16강 진출등에 공헌했다.
2003년 LG치타스(현 FC서울)에 입단한 정조국은 32경기에 출전해 12골 2도움으로 신인왕에 오르며 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2004년엔 FA컵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정조국은 서울에서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출전하며 지난 2010년 9월25일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185cm의 좋은 신장과 튼튼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와 문전앞에서 침착함이 돋보이는 정조국은 현재 프랑스 AJ옥세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5. 불세출의 축구천재 박주영

활동연도 : 2005~2008

통산기록 : 91경기 33골 9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5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06,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청소년 대회. 우리나라는 이 대회 우승과 함께 박주영의 발굴로 흥분되었다.
당시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으로 우리나라 공격을 이끌며 우승과 함께 득점왕 및 MVP를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한 그는 2005년 초에 열린 카타르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로 자리를 옮긴 그의 득점력은 멈추질 않았다.
데뷔 시즌에서 18골 4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만장일치 신인왕을 기록했다.
또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 2005년 한국축구에 박주영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조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것 같다’며 그의 발탁을 꺼려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며 성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박주영은 다음해 2년차 징크스로 인해 득점이 줄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200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17경기에 나와 2골 4도움을 기록한 박주영은 그 해 여름이적시장 에서 이적료 200만 유로를 받고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했다.
프랑스 리그 데뷔 경기부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박주영은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5골 5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한 층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이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도 자리 매김한 박주영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5골을 터트렸고, 월드컵 본선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선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트리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일조했다. 대표팀 감독이 조광래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 없이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주영은 대한민국 최고 스트라이커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다.





6.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123경기 65골 20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컵대회 득점상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7년 인천에서 데뷔한 데얀은 36경기에 출전하여 19골 3도움으로 득점랭킹 3위에 오르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자리잡는다.
2008년 FC서울로 이적한 후에도 그의 득점포는 식을줄 몰랐는데 33경기에 출전해 15골 6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끈다.
2009년에는 25경기 출전 14골 1도움을 기록,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고 그해 7월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선 2골을 넣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19득점 10도움 이라는 기록을 보여주며 FC서울의 확실한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다.



7. 피터팬 이승렬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79경기 21골 8도움

수상기록 : K-리그 신인왕 : 2008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8년 드래프트를 통해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이던 귀네슈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된다.
시즌 초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그 해 31경기에 출전하여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승렬이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활약도 역시 순도 높았다.
2009년엔 중앙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겸하며 26경기에 출장해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진보한 모습을 보인 이승렬은 빙가다체제에서도 꾸준히 선발출장 하며 22경기에 나와 9골 6도움을 기록중이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2010년 잠비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승렬은 동아시아컵에도 출전해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고 한일전에선 결승골을 터트리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여세를 몰아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이승렬은 그리스전에서 교체투입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어린나이임에도 FC서울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승렬. 많은 전문가들은 이청용, 기성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로 이승렬을 꼽고 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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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4.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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