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적 시장은 시즌 중에 외부 영입을 통해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그래서 각팀 들은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팀에 플러스가 되줄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FC서울은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공격력 강화를 위해 세르히오 에스쿠데로를 영입했다. 그는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이중국적자였지만 2007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선수라 아시아쿼터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우라와 레즈에서만 뛰며 J리그 통산 93경기 출전 11골 28도움을 기록한 에스쿠데로. J리그에서 남긴 기록들을 바탕으로 그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자.




에스쿠데로의 고향은 스페인 그라나다로 아르헨티나 국적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4살때인 1992년. 그의 아버지가 우라와 레즈에 입단하면서 일본과 첫 인연을 맺는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와 삼촌도 축구선수고, 한때 아르헨티나의 미래라고 불렸던 다미안 에스쿠데로와는 사촌 지간이다. 일본에서 5년간 거주한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에스쿠데로는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1년 아버지가 가시와 레이솔의 유소년 코치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역시 가시와 레이솔 유스에 입단했고, 이후 아버지가 뛰었던 우라와 레즈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자가 대를 이어 우라와 레즈에서 뛰게 되었다.
 



15세 이하 아르헨티나 청소년 대표팀 상비군에 뽑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에스쿠데로는 16세였던 2005년 드디어 일본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그해 5월 21일 알비렉스 니가타와의 나비스코컵 세 번째 경기에서 후반27분 다나카 타츠야와 교체 투입된 에스쿠데로는16세 8개월 21일에 데뷔전을 치르며 일본의 호나우도라 불리는 모리모토 다카유키(15세10개월 6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데뷔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7월 23일 시미즈 S펄스와의 원정 경기에선 J리그 데뷔전을 치르기도 한 에스쿠데로는 그 해 리그에서 5경기, 나비스코컵 2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우라와 레즈 시절 활약 모습 (사진출처 - 우라와 레즈)






2006년엔 기다리던 데뷔골마저 쏘아올렸다. FC도쿄와의 나비스코컵 첫 경기에 선발 출장한 에스쿠데로는 후반 17분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2007년 아버지와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하며 귀화에 성공한 에스쿠데로는 일본 올림픽대표팀에도 발탁되어 5경기 출전에 1골을 기록했고, 베이징 올림픽 대표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부상 여파로 출전하진 못했다.
 



2008년 리그에선 예년보다 더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3월 20일 빗셀 고베와의 나비스코컵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른 에스쿠데로는 4월 29일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리그 첫 경기를 가졌고 이후 8경기 연속으로 교체 출장하여 조커 역할을 수행했다. 시즌 막바지엔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선발출장해 89분을 소화했고, 시즌 마지막 경기인 요코하마 마리노스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52분을 뛰었지만, 아쉽게도 그 해 리그에선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일왕배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5회전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 시즌 중반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 경기에서 66분을 소화하며, 강팀과의 경기 경험을 쌓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우라와 레즈 시절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오른쪽은 현재 독일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필립 람 (사진출처-우라와 레즈)






2009년엔 J리그 데뷔 후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3월7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시즌 개막전에 출격한 에스쿠데로는 리그와 나비스코컵에서 모두 꾸준히 출장했고, 그해 5월5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경기에선 후반 23분 교체 투입되어 J리그 첫 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이후 팀이 7월18일 오이타 트리니타전부터 8월 29일 빗셀 고베전까지 연패를 당해 당시 우라와레즈 감독이던 풀커 핑케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에스쿠데로는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 전반 4분 선제골을 성공시켰고, 팀의 4-1 대승을 이끌며, 연패를 끊는데 앞장 서는 모습으로 자신을 비난한 핑케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2009년 30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에스쿠데로는 2010년에도 20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2011년엔 나비스코컵에서의 활약이 빛난 한해였다. 첫 경기를 제외하고 나비스코컵 전경기에 출장한 에스쿠데로는 몬테디오 야마가타전, 세레소 오사카와의 8강전, 감바오사카와의 4강전등 중요한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고, 특히 감바오사카 와의 4강전에선 전반 38분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비록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0-1로 패했지만, 에스쿠데로는 연장 포함 120분을 소화하며,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2012년엔 부상으로 인해 1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 사이 에스쿠데로는 뽀뽀(예전 부산과 경남에서 활약했던 선수), 데스포토비치, 다나카 타츠야등과 힘겨운 주전경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그는 우라와 레즈를 떠나 FC서울에서 새로운 축구인생을 펼치게 되었다.




에스쿠데로의 장점은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스피드가 좋다는 것이다. 또 슈팅 역시 정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전형적인 스코어러 타입이라기보단, 전방 공격수에게 도움을 주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에 어울리는 선수다. 따라서 데얀, 정조국이 최전방에 포진되고, 에스쿠데로가 그 뒤를 받치며, 몰리나가 왼쪽 측면 공격에 전념하는 공격 전술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에스쿠데로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서울은 이전과는 다른 공격 형태를 선보이며, 상대팀을 교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에스쿠데로 본인에게도 명예 회복을 위해선 FC서울에서의 활약이 중요하다.




과거 서울은 시즌 도중 영입된 용병들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2009 시즌 중반 영입됐던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안데르손은 13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고 2010 시즌 중반 영입된 우즈벡 특급 제파로프는 정확한 패스를 앞세워 1골 7도움을 올리며 서울 우승에 일조한 바 있다. 에스쿠데로 역시 이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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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7.18 03:19






잉글랜드 최고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는 ‘꿈의 극장’(The Theatre of Dreams) 이란 별칭이 붙어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인물인 바비 찰튼이 이곳을 ‘꿈의 극장’ 이라고 부른 것을 시초로 하지만 그만큼 이곳에서 극적인 명승부가 많이 연출 되었기에 이런 영광스런 별칭이 아직까지도 불리워 지고 있다.


하지만 극장은 잉글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K리그에도 극장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울 극장’. FC서울은 그간 여러 경기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에게 ‘서울 극장’ 이라고 불리고 있다. 뛰어난 경기력 외에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며, 많은 팬들을 즐겁게 했던 서울. 축구에서 극적인 순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개최한다면 아마 FC서울은 대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지금부터 많은 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역대 최고의 ‘서울 극장’ 경기를 알아보자.



1. 2009년 9월12일 vs 전북 2-1 승

부제 : 팬들의 사랑은 귀네슈도 춤추게 한다.

주연 : 수호신, 귀네슈







2009년 하반기에도 FC서울은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이청용이 7월에 볼튼 원더러스로 떠나긴 했지만 데얀, 정조국, 기성용, 김진규, 김치곤 등으로 구성된 스쿼드는 여전히 화려했다. 순위 역시 8월말 기준으로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서울이지만 포항과의 컵대회 4강전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서울은 심판의 판정 논란 속에 2-5로 패하며 탈락했고, 김치우는 상대 선수의 머리를 받는 행위로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귀네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말을 했고, 이로 인해 연맹으로부터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받는 등 악재가 겹쳤다. 결국 서울은 뒤이어 열린 리그 경기에서 울산과 성남에게 연패를 당하며 3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다음으로 맞딱 뜨린 상대는 전북. 당시 전북은 이동국, 김상식 등을 앞세워 리그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팀이었다. 게다가 서울은 3연패를 당하고 있던 반면 전북은 2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서울로선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었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당시 7위인 포항과도 승점이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또 다시 패배한다면 리그 순위가 급격히 추락할 수 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승리는 절대조건이었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차출되었다가 전날 복귀한 데얀 까지 선발 출전시키며 필승의지를 불태운 서울이었지만, 전북은 막강했고, 오히려 전반 막판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게 된다. 전반 40분 루이스가 강력한 슈팅으로 첫 골을 터트린 것이다. 김한윤이 몸을 날려 루이스의 슈팅을 막아내긴 했지만 공은 이미 골라인을 넘어간 후였다. 하지만 서울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고명진이 빠지고 김승용이 투입되며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은 서울은 후반 초반 데얀과 기성용이 강력한 슈팅으로 전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은 후반 8분 드디어 전북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기성용의 코너킥이 수비 맞고 흘러나오자 공격에 가담했던 김치곤이 골망을 찢을 듯한 강력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승부가 원점이 되자 양 팀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공격적인 팀 컬러는 경기를 치열한 접전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후반 30분 승부를 가르는 골이 터진다. 기성용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키퍼를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결국 서울은 전북을 2-1로 물리치며 경기장을 찾은 36764명을 열광시켰다.


이 날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은 데얀은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돌아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해 역전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고, 미드필더로 출전한 고요한은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엄청난 활동량으로 팀의 승리에 숨은 영웅이 됐다.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극적인 경기에 클라이막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같은 모습은 경기에서만 나왔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팬들은 ‘귀네슈 감독 특별 티셔츠’ 판매를 통해 귀네슈 감독이 부과받은 제재금 모금 운동을 벌였고, 경기 전엔 귀네슈 감독의 대형 응원걸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에 그 동안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던 귀네슈는 “월드컵에서 3위를 했을 때보다 감동적이다.” 라는 소감을 밝히며 차가웠던 마음을 녹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네슈의 대형응원걸개가 올라오는 장면. Don't leave us! (우리 곁을 떠나지 마세요!)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2. 2010년 10월9일 vs 경남 3-2 승

부제 : 분유캄프. 아버지의 이름으로

주연 : 정조국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10월. FC서울은 경남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경남은 승점 46점으로 2위, 서울은 승점 42점으로 3위였다. 순위를 지키려는 팀과, 끌어내리는 팀 간의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다. 경기 전 예상은 서울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다. 우선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서울이 앞서는 데다 당시 서울은 홈에서 14연승을 기록할 정도로 안방불패의 면모를 보였기에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 대부분은 서울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초반부터 경기는 서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전반 2분 만에 경남 서상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선제골을 내준 서울은 설상가상 전반 8분엔 아디가 광대뼈 함몰 부상을 당하는 불운까지 맛봐야 했다. 그 뒤 아디 대신 투입된 김동우는 몸이 덜 풀렸는지 전반 12분엔 백패스 미스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 뻔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서울에게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이 후 공격수들이 힘을 내며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되었던 데얀, 제파로프, 이승렬등은 줄기차게 슈팅을 때리며 골을 노렸지만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병지가 지키고 있는 골문이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후반 22분 최태욱 대신 정조국이 투입되며 골문이 열릴 조짐이 보였다. 당시 정조국은 아들을 얻은 후로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고, 팬들에게 ‘분유캄프’ 라고 불리고 있을 때였다.


결국 정조국이 일을 냈다. 후반 30분 정조국이 날린 호쾌한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 아랫 부분을 때리고 골문에 꽂힌 것이다. 동점골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서울의 공격은 무서웠다. 동점골이 터진 지 5분 만에 하대성이 정조국의 패스를 받아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하지만 서울은 아직 만족하지 않은 듯 4분 후엔 최효진의 패스를 받은 정조국이 팀의 세 번째 골이자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겨우 9분 동안 세 골을 폭발 시킨 서울의 공격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했으며, 불안한 출발을 딛고 역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은 후반 43분 경남 김인한 에게 한 골을 더 허용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허용하지 않은 채 3-2로 경기를 마쳤다. 이 날 승리로 서울은 리그 2위로 도약하며 홈 15연승까지 달성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3. 2010년 12월1일 vs 제주 2-2 무 (챔피언결정전 1차전)

부제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주연 : 제파로프, 김치우










2010년 리그 1위에 성공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FC서울은 통산 4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선착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상대팀인 제주에게도 시즌 전적에서 2승1무로 앞서 있었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서울의 우세를 점쳤다. 게다가 아디 역시 광대뼈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는 등 선수들도 우승에 대한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제주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치르며 서울은 우승을 향한 첫 걸음을 뗐지만 당시 구자철, 김은중, 박현범 등이 소속된 제주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기에서도 오랜 시간 실전 경기를 치르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 듯 서울 선수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모습이었고, 결국 전반 26분 배기종에게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일격을 당하며 선제골을 내주게 된다. 순식간에 흐름은 제주로 넘어갔고, 제주는 후반 6분 구자철의 패스를 받은 산토스가 왼발 슈팅으로 추가골까지 성공하며 0-2까지 달아났다.


다급해진 서울은 후반 10분 이승렬과 김동우를 빼고 김치우와 정조국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결국 이 교체 투입이 주효해 서울은 만회골에 성공했다. 김치우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왼발 슛을 김호준이 간신히 선방했지만, 흘러나온 볼을 데얀이 골대로 밀어 넣으며 스코어를 1-2로 만든 것이다. 경기 내내 무거운 몸놀림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데얀은 이 한골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려면 한 골이 더 필요했다. 서울은 그 후로도 줄기차게 공격을 시도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주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결국 후반 추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패색이 짙었던 후반 47분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제파로프가 선수들이 몰려 있는 페널티 에이리어로 크로스를 올리는 대신, 빈 공간에 있었던 김치우에게 정확한 패스를 내줬고, 김치우가 이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제주의 골망을 흔든 것이다. 극적인 동점골에 서울 벤치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제주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결국 경기를 2-2로 마치며 서울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숨겨진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아보자면 동점골을 합작한 제파로프와 김치우 모두 왼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두 선수 모두 오른발을 사용해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팀이 가장 가장 필요로 할 때 평소 잘 사용하지 않았던 오른발로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한 제파로프와 김치우의 모습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패배할 뻔한 경기를 극적인 무승부로 바꾼 서울은 결국 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통산 4번째 우승트로피를 자신들의 진열장에 진열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4. 2011년 5월8일 vs 상주 4-3 승

부제 : 군인정신도 막지 못한 서울의 공격본능.

주연 : 데얀, 현영민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맞이한 2011 시즌. 당연히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FC서울의 시즌 초 행보는 높은 기대만큼이나 실망을 안겨주었다. 초반 부진에 대해선 서울 팬들에겐 안좋은 기억인 만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최용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 이후 서울은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최용수의 데뷔 전인 제주전에서 2-1로 승리한 서울은 주중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UAE의 알 아인을 3-0으로 제압하며 상승세를 탔다. 이어서 만난 상대는 상주. 당시 상주는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김정우가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하고 있었고, 서울 출신의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팀이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 분명 했으나 서울은 초반부터 강력한 공격으로 상주를 압박했다. 결국 전반 8분 방승환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가 자책골을 넣으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서울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2-1로 다시 앞서나갔다.


이 후 경기는 골 공방전이 펼쳐지며 농구 경기를 연상케 했다. 후반 1분 만에 상주 최효진이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반격에 나선 서울이 후반 28분 김영삼의 헤딩 미스를 틈 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다시 앞서갔다. 그 후 김정우가 1분 만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양 팀은 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3-3 으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후반 43분. 서울은 아크 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로 나선 선수는 교체 투입된 현영민. 현영민의 발을 떠난 공은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서울은 4-3으로 다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결국 현영민의 프리킥 한방은 승부에 마침표를 되었고, 서울은 3연승에 성공하며 좋은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상주에 끈질긴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강력한 공격본능으로 상주의 추격을 잠재우며 극적인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덤으로 화끈한 골 잔치를 벌이며 예전의 공격력까지 회복한 서울은 대반격의 신호탄을 쏘며, 5월에만 6승1무2패라는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5. 2011년 8월13일 vs 전남 1-0승

부제 : 한여름밤의 환상적인 버저비터.

주연 : 몰리나, 최용수










뜨거운 여름. FC서울의 2011년 여름 역시 뜨거웠다. 초반 부진했던 모습은 훌훌 털어버리고, 4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순위도 리그 4위로 끌어올렸다. 경기 내용 역시 화끈했다. 연승 기간 동안 무려 11골을 기록, 경기당 평균 2.75골을 넣으며 내용과 결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기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5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상대는 전남. 당시 전남도 리그 5위를 달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임엔 분명했으나, 서울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또 전반기에 당한 0-3 패배를 설욕해야 했기에 동기 부여도 충분했다.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데얀, 몰리나, 고명진 등을 앞세워 강력한 공격으로 전남을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전남의 저항 역시 거셌다. 당시 리그 최소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수비진과 전 국가대표 수문장 이운재가 버티고 있는 골문은 서울에 쉽사리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서울은 최태욱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지만, 이운재는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진리를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의 소나기 슈팅을 연달아 선방하며 경기를 0의 행진으로 몰고 갔다.


결국 스코어가 0-0 으로 유지된 채 경기는 추가 시간을 맞이했다. 후반 48분 전남이 코너킥을 얻어내며 서울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도리어 이것이 서울에 기회로 작용했다. 코너킥이 서울의 역습으로 이어지며 최태욱이 특유의 빠른 돌파로 전남의 우측면을 파고 들었고, 중앙으로 찔러 준 낮은 크로스를 데얀이 이어받아 정지시킨 볼을 몰리나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왼발 슈팅을 날리며 골을 기록한 것이다.


극적인 골에 팬들은 환호했고, 최용수 감독은 골을 넣은 몰리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다 바지가 찢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울은 0-0으로 비길 뻔한 경기를 1-0 승리로 이끌며 5연승을 질주 했다. 이 후 에도 서울은 제주와 강원을 연파하며 총 7연승으로 2011 K리그 팀들 중 최다 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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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13 02:38








축구의 백미는 역시 골이다. 축구 경기에서 터지는 시원스런 골로 인해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열광한다. 이처럼 골은 실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 골이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골을 넣기 위해서는 패스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좋은 패스 없이는 좋은 골 역시 나올 수가 없다.


그렇기에 최고의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패스의 달인’을 보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FC서울 역시 훌륭한 패스의 달인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치 16년 동안 5만7천여회의 패스라도 한 듯 공격진 뒤에 배치되어 양질의 패스로 무수한 골들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 역대 최고의 ‘패스의 달인’들을 알아보자.



1. 안드레







풀네임 : Andre Luiz Alves Santos

생년월일 : 1972년 11월 16일

국적 : 브라질

FC서울 활동년도 : 2000~2002

FC서울 통산 기록 : 96경기 18골 27도움



FC서울의 전신인 LG치타스 시절에 활약했던 안드레는 2000년 팀의 세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로도 유명하다. 브라질 프로축구 2부리그 마릴리아클럽에서 뛰던 안드레는 키프로스 전지훈련에서 당시 감독이던 조광래의 눈에 띄어 한국땅을 밟는다. 브라질 외에 다른 나라에선 뛰어본 적이 없고 이적료 역시 50만 달러로 당시 유고에서 영입한 드라간의 이적료(12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그를 향한 주목도는 다소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팬들의 주목도를 조금씩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포항과의 대한화재컵 첫 경기에서 한국 무대 데뷔전을 치른 안드레는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대한화재컵 총 7경기에서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제몫을 다하게 된다. K리그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빼어난 개인기와, 날카롭고 정확한 킥을 장착한 안드레는 조광래 감독 축구의 핵으로 자리잡았고. 시즌 중반 10연승의 상승세를 이끌기도 했다.
 

또 8월5일 전북전과 8월19일 부산전에선 두 경기 연속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이 2-1, 5-0의 승리를 거두는데 앞장 서기도 했다. 이러한 안드레의 활약 속에 팀은 리그 1위를 달성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천(現제주)을 상대하게된 안드레는 1차전에서 왕정현에게 정확한 패스를 배달하며 팀의 선제골을 이끌어냈고, 자신도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4-1 승리를 견인했다.


2차전에서는 부천 곽경근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지만 후반 안드레의 정확한 프리킥이 동점골로 이어지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2000 K리그의 패권을 차지했다. 안드레의 활약상은 당시 공격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했던 최용수와 정광민은 안드레의 뛰어난 패스를 공급받으며 각각 14골과 13골을 기록했고 안드레 역시 14도움으로 전경준(13도움)과 마니치(9도움)을 제치고 도움왕에 올랐고 K리그 베스트 미드필더에 뽑히기도 했다.
 

또 우수한 플레이메이커 답게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한 안드레는 9골 중 무려 8골을 프리킥으로 성공시키며 정확한 킥 솜씨를 자랑했다. 2001년엔 허리부상으로 2골 4도움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2002년엔 7골 9도움을 올리며 오름세를 보였고 2003년엔 중국 칭다오로 이적하게 된다. 그 뒤 베이징 현대를 거치며 3년 간 중국에서 뛴 안드레는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안드레가 K리그에서 활약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간다. 하지만 절정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세 번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기에 올드팬들에겐 아직도 회자 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 히칼도









풀네임 : Ricardo Nuno Queiros Do Nascimento

생년월일 : 1974년 4월 19일

국적 : 포르투갈

FC서울 활동년도 : 2005~2007

FC서울 통산 기록 : 71경기 8골 23도움



2005년 이장수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FC서울은 대대적인 전력보강에 나선다. 당시 서울은 이기형, 박성배, 노나또등 수준급 선수들을 영입해 스쿼드를 살찌웠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박주영까지 데려오며 스쿼드에 강력함을 더했다. 서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포르투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히칼도를 영입했다.


당시 K리그 용병들은 대부분 브라질이나 동유럽 출신의 용병들이어서 서유럽 출신의 히칼도의 입단은 꽤 이색적이었다. 당시 이장수 감독은 포르투갈에서 히칼도의 경기를 직접 보고, FC서울 입단을 간청했고, 이장수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히칼도는 FC서울행을 결정했다. 포르투갈 청소년대표 출신에, 명문 보아비스타를 거쳤고, 포르투갈 리그 도움왕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했던 히칼도 였지만 입단 당시 그를 주목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팬들이 히칼도의 진가를 알아차리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남과의 2005년 첫 경기에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선발 출장한 히칼도는 2-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24분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노나또의 헤딩골을 도우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히칼도는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넣으며 맹활약 한다. 당시 수원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김남일, 송종국등 화려한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우고 있었지만 히칼도는 페널티킥 결승골 한방으로 수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한국무대에 완벽히 적응한 히칼도는 그 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다음 경기인 인천전에선 프랑코와 박주영의 골을 모두 어시스트 했고, 대전전 에선 1골과 백지훈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선 1골, 울산과의 경기에선 1도움을 기록하며 컵대회 에서만 3골 5도움을 기록한 히칼도는 단숨에 서울 미드필드의 핵으로 자리 잡는다. 날이 더워지면서 히칼도의 기량도 절정에 다다랐다.


특히 그의 활약이 가장 빛났을 때가 7월 6일 부산전과 7월 10일 포항전. 부산과의 경기에서 히칼도는 전반 28분 정확한 크로스로 박주영의 헤딩 골을 도왔고 후반 11분엔 미드필드 지역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또 한번 박주영의 골을 도우며 2도움을 기록.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7월 10일 포항전 에선 전반 15분과 32분 각각 박주영과 김은중의 골을 도우며 전반에만 2도움을 기록했고 후반 44분엔 정확한 코너킥으로 박주영의 헤딩골을 도우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박주영과 히칼도의 콤비가 절정의 기량을 뽐낸 이 두 경기에서 박주영은 5골, 히칼도는 5도움을 기록하며 서울 막강 화력의 중심이 되었다.



  히칼도의 코너킥 장면






그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스는 서울 공격의 출발점 노릇을 톡톡히 했고, 상대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그의 패스는 ‘손으로 던져주는 것 만큼 정확하다.’ 라는 평을 들을 정도 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 여기저기에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그의 모습은 많은 서울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2005시즌 그의 기록은 4골 14도움. 도움왕은 일찌감치 그의 몫이었고, 환상의 호흡을 보인 박주영은 무려 18골을 기록했다.


2006 시즌 초반엔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시즌 중반에 열린 컵대회에서 히칼도는 2골 4도움을 올리며 팀의 컵대회 우승에 기여했고, 총 3골 6도움으로 변함없이 서울의 중원사령관으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히칼도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장수 감독이 물러나고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년. 히칼도는 예전 만큼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히칼도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두어 히칼도를 공격에 전념시킨 이장수 감독과 달리 귀네슈 감독은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히칼도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설상가상 귀네슈 감독과 불화까지 겪으며 2007년엔 13경기 출전에 1골 3도움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히칼도는 2007 시즌 종료 후 CD트르펜스로 이적했고 CD 아베스를 거쳐 지금은 축구 선수 생활을 접었다. 히칼도가 서울을 떠난지도 5년이 다 되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에서의 선수 생활을 그리워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또 FC서울 팬들에겐 'My friend' 라는 친근한 표현을 써주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FC서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3. 기성용







풀네임 : Ki Sung Yueng

생년월일 : 1989년 1월 24일

국적 : 대한민국

FC서울 활동년도 : 2006~2009

FC서울 통산 기록 : 80경기 8골 12도움




2007시즌을 끝으로 히칼도는 떠났지만 FC서울엔 새로운 ‘패스의 달인’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기성용. 젊은 선수를 중시하는 귀네슈 감독의 신임을 받은 기성용은 2008년부터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기성용은 지난 2006년 FC서울에 입단했지만 그 해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해가 바뀐 2007년 그는 히칼도의 뒤를 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드디어 프로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한 기성용은 그 해 캐나다에서 열린 ‘FIFA U-20월드컵’에서 3경기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인다. 당시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한 기성용은 기본적인 수비력과 동시에 최후방에서 자신의 장기인 패싱력까지 뽐내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7년 22경기에 출전하며 프로무대 적응을 끝낸 기성용은 히칼도가 팀을 떠나자 좀 더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귀네슈 감독 역시 기성용의 날카로운 패싱력에 주목. 수비력이 좋은 김한윤을 중원의 파트너로 배치하면서 기성용의 수비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등번호도 40번에서 17번으로 바꾼 기성용은 2008년 한 해에만 4골 2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또 그는 그 해 10월 29일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선 이운재의 키를 살짝 넘기는 골을 터트렸고, 그 해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선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선제골을 돕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08년 10월 29일 수원전. 결승골을 넣은 뒤 보여준 아데바요르 세리머니는 화제가 되었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9월엔 요르단을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곧이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후반 23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등 빛보다 빠른 성장세로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중앙 미드필더로 손꼽혔다.


유망주에서 FC서울의 에이스로 성장한 기성용으로 인해 2009년 FC서울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는 날이 갈 수록 무르익었고, 기성용을 비롯해 이청용, 김치우, 데얀, 정조국등이 포진한 스쿼드는 화려함을 더했다. 게다가 2008년 준우승까지 거두었기에 서울을 향한 기대는 그 어느때 보다 높았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서울은 개막전에서 전남을 6-1로 녹다운 시킨다. 이 경기에서 기성용은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 후 기성용은 정확한 킥을 앞세워 팀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했고, 그 해 5월 30일엔 골문 구석을 찌르는 절묘한 프리킥으로 팀의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여름이 되자 그의 장기인 패싱력도 뜨거워졌다. 7월 12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선 전반 37분 프리킥으로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전반 42분엔 정확한 전진패스로 다시 한번 데얀의 골을 도우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다음 경기인 강원전에서도 전반 9분과 44분. 각각 데얀과 이청용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두 경기 연속 2도움으로 맹활약했다.


이 후 9월 12일 전북과의 경기에선 데얀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고, 11월 21일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선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정조국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여전히 큰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기성용은 결국 그 해 4골 10도움을 올리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이런 기성용을 기다리고 있는건 유럽진출. 스코틀랜드 최강팀인 셀틱으로 이적하면서 유럽진출의 꿈을 이룬다.
 

초반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파워축구에 적응하지 못하며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듯 했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2도움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기성용은 그리스전에서 정확한 프리킥으로 이정수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나이지리아전에선 일명 ‘헤발슛’으로 일컬어지는 이정수의 골을 또 한번 어시스트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이 후 셀틱으로 돌아온 기성용은 주전 미드필더 스콧 브라운의 부상으로 다시 기회를 얻었고 이 기회를 잘 살려 셀틱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세인트미렌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기성용은 인버네스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시즌 1호 도움을 올렸고 그 해 10월 24일 레인저스와의 ‘올드펌 더비’에서도 도움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2010~2011 시즌에서 4골 4도움을 기록한 기성용은 다음 시즌인 2011~2012전에선 코너킥과 프리킥은 물론 팀의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게 되었고 지난 우디네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선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번 시즌 현재 6골 5도움을 기록중인 기성용은 셀틱에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표팀 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UAE와의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선 89번의 패스 중 81회를 성공시켜 무려 91%의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4. 제파로프








풀네임 : Server Resatovich Djeparov

생년월일 : 1982년 10월 3일

국적 : 우즈베키스탄

FC서울 활동년도 : 2010.07~2011.07

FC서울 통산 기록 : 33경기 1골 8도움



빙가다 감독 체제에서 우승에 도전했던 2010년. FC서울에 또 하나의 거물급 선수가 입단하게 된다. 그 선수는 바로 제파로프. 2008년 우즈베키스탄 득점왕 및 최우수 선수, 또 그해의 AFC 올해의 선수, 우즈베키스탄 주전 미드필더로 A매치 62경기 출전해 12골을 성공시킨 기록(2010년 7월 기준)을 보유한 특급선수를 6개월 단기 임대로 영입해 공격진을 강화했다.
 

172cm, 68kg의 작은 체구는 다소 염려되기도 했지만 제파로프는 그 해 7월 28일 데뷔전인 수원과의 컵대회 4강전 경기에서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정확한 왼발킥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결국 제파로프는 자신의 두 번째 경기인 7월 31일 데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하며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고 8월 25일 컵대회 결승전에선 데얀의 선제골 어시스트, 8월 28일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으로 데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짧은 시간에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 잡는다.


또 자신의 생일인 10월 3일엔 하대성의 패스를 받아 K리그 데뷔골을 쏘아올리기도 했고 제파로프는 특유의 덤블링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러한 제파로프의 활약 속에 서울은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 할 수 있었다.


제파로프의 멋진 덤블링 세리머니 장면






제파로프의 활약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계속 되었다. 제주와 맞붙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 후반 45분까지 1-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던 서울. 이때 제파로프의 정확한 패스가 빛났다. 추가 시간인 후반 47분 우측면에서 볼을 잡은 제파로프는 많은 선수들이 몰려있는 페널티 에이리어 대신 빈 공간에 서있던 김치우에게 정확하게 연결했고 김치우가 이를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김치우의 이러한 극적인 골은 제파로프의 재치 있는 패스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골이었다.


12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제파로프는 후반 27분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헤딩 역전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챔피언결정전 2도움으로 팀 우승의 주역이 됐다. 2010년 그의 기록은 1골 7도움. 제파로프의 맹활약으로 인해 K리그 역시 우즈베키스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해 열린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졌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제파로프는 2골 2도움을 올리며 조국을 아시안컵 4위에 올리기도 했다. 제파로프의 맹활약에 그의 주가는 치솟았지만 제파로프는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3년 계약을 맺었다. 제파로프의 이러한 활약은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며 카파제(인천), 게인리히(수원)등 다른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K리그 입성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1 K리그에서 제파로프는 부상과 몰리나와의 포지션이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결국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으로 이적을 결정한다. 알 샤밥 이적 후에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11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통산 두 번째로 수상했고, 우즈베키스탄 대표로도 일본전과 키르키스스탄전에서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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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02 00:51


2011.7.0 8:00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상주
3:2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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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7.11 18:41

FC서울이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17라운드에서 상주 상무를 3-2로 꺾고 6위로 올라섰다. 50여일만의 홈 승리였다. 극적인 승리로 홈 팬들을 즐겁게 했지만, 경기력만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최근 리그 5경기에서 2승 3무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FC서울. 리그 무패 행진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요소들을 짚어본다.


◆ 고질적인 수비불안

지난 시즌 28경기 26실점으로 리그를 마친 FC서울. 하지만 올 해는 리그 17라운드를 마친 현재 벌써 25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주전 수비수 김진규의 이적과 최효진, 김치우의 군 입대로 수비력 약화가 불가피했지만 거의 매 경기 실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철옹성' 아디의 파트너로 여효진, 박용호, 김동우가 중용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하며 중앙수비 조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측면수비는 더욱 문제다. 왼쪽에서 현영민이 건재하지만 발빠른 공격수를 만났을 때는 다소 고전하는 모습이고, 오른쪽의 이규로도 수비력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인천, 전북 전에서 내준 3골 모두 상대공격수에게 측면 돌파를 허용하며 내준 골이었다. 이번 상주와의 경기 또한 측면을 지배하지 못했다. 최용수 감독대행마저 상주와의 경기 종료 후 인터뷰 룸에서 "수비불안이 우리 팀의 고질적 문제" 라고 인정한 만큼 향후 수비 조직력 강화를 통해 전력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


◆ 단조로운 공격패턴



최근 데얀의 활약이 인상적인 가운데 FC서울 공격진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는 데얀 외의 다른 공격 옵션들이 너무나 부진하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에는 13골을 기록하며 팀 최다득점을 기록한 데얀 외에도 정조국(12골), 이승렬(7골), 최태욱(6골)의 활약이 더해지며 상대 팀 수비를 괴롭혔다. 하지만 올 시즌 제 2의 공격옵션들의 침묵이 오래 이어지고 있다. 이승렬과 이재안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서울이 야심차게 영입한 몰리나는 리그에서 2골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고요한이 3골로 데얀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다. 더욱 큰 문제는 측면 공격수들의 부진으로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좌우 측면을 흔들어야 할 최태욱과 김태환이 각각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고, 이는 팀 기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렇듯 측면의 날카로움이 떨어지다 보니 데얀을 향한 스루패스와 현영민의 측면 크로스에 의한 공격 외에 특별한 옵션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FC서울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선 측면이 살아나야 한다. 또한 데얀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격파트너의 등장이 절실하다.


◆ 제파로프의 빈자리는 누가?


우즈벡키스탄 특급 제파로프의 이적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AFC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그의 클래스는 누구나 쉽게 메울 수 있는 공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왼발킥, 노련한 경기 운영, 창의적인 패스 등등 무결점 플레이로 FC서울 중원에 활력을 불어넣은 제파로프. 몰리나의 영입으로 존재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잠시, 제파로프는 하대성과 함께 팀이 어려울 때 중심을 잡아준 중요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떠났고, 최용수 감독대행은 팀 내부적으로 대체자 찾기에 여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이적시장이 얼어 있는 만큼 새로운 용병 물색과 동시에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의 복귀가 임박했음을 알리며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 최용수 감독대행. 하지만 구단이 올 시즌 궁극적목표로 잡고 있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서는 수준급의 미드필더 영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경기력에서 다소 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FC서울은 FA컵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라 있고 리그 순위도 어느새 6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아직 포지션별로 불안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선수들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합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선에는 강 팀 포항이 기다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오는 17일 포항 원정에서 “포항보다 나은 팀임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원정이 FC서울의 후반기를 점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전인 만큼 좋은 결과로 상승세를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글 = FC서울 명예기자 김한결 (k63677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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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1.07.11 13:35

제파로프 이적, FC서울 여름 이적 시장 행보는?

 

제파로프가 뛰었던 이 전북전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박지성세르베르 제파로프 선수가 이적한다. 2010 FC서울로 전격 이적되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제파로프는 송곳 같은 스루패스와 적절한 게임 조율로 인기를 끌어오던 FC서울의 떠오르는 용병 스타였다. 88번이라는 특이한 등 번호로 각인되어 이제는 FC서울의 완벽한 한 식구가 된 그가 떠난다는 소식에 팬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제파로프의 이적. 사실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제파로프는 어떤 선수?

제파로프가 처음 FC서울로 임대되어 오던 시절, 사실 제파로프라는 선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본인도 제파로프의 능력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던 터라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다던(?) FM 게임에서 제파로프를 바쁘게 영입해서 능력치를 체크해 보았다. 그리곤 생각보다 높은 능력치에 인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식은 좀 우습지만..) 그리고 실제로 게임 내에서 제파로프 선수 영입을 최용수 수석코치가 칭찬을 해주었다. 제파로프라는 선수에게 주목하게 되면서 우즈베키스탄에는 막심 등과 같은 좋은 선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파로프 임대 당시 모습.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색다르다.



AFC에서는 이미 스타였다. 2008년 올해의 선수상 수상을 수상했고, 우즈벡 내에서는 이미 최고의 선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우즈벡의 박지성이었다. FC서울 임대기간 그가 보여준 플레이들은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조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강력한 왼 발 슈팅은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으며 모든 포지션에서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포지션 적응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한 마디로 명석한 선수였다. 그 결과 작년 FC서울에게 우승컵을 안겨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데얀은 우승 이 후 인터뷰에서 제파로프와는 내년에도 같이 뛰어야 한다.”라고 제파로프를 치켜세웠다. 그만큼 제파로프는 팀 내에서나 팬들 사이에서나 최고의 선수였다.


작년 유난히 데얀과 잘 맞았던 제파로프. 가히 K리그 최고의 선수들 다웠다.



그리고 그의 이적으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은 K리그 스카우터들의 집중 관심 대상이 되었다. 올 해 수원으로 게인리히가 이적이 되었고, 인천도 카파제 선수를 영입하게 되었다. EPL로 따지면 박지성 선수를 필두로 EPL이 한국 선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만큼 제파로프는 대단한 선수다.

 


올 시즌 그의 모습

올 시즌 들어 팬들이 가장 걱정하던 것은 시즌 초반 대박 영입의 주인공인 몰리나와의 호흡이었다. 시즌 초반 자주 플레이 루트가 자주 겹치는 현상을 보여주었고, 급기야 황보관 전 감독은 용병 선수 중 한 명을 제하고 뛰는 방법도 택한 적이 있다. 우즈벡 최고의 미드필더 제파로프와 K리그 슈퍼 용병 몰리나 선수간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보다 낮게 창출된 것이다.

 

올시즌 자주 측면 미드필더로서 활약했던 제파로프.

 

최용수 감독대행이 시작되면서 제파로프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자주 기용이 되었고, 몰리나는 데얀과 투톱으로 기용이 되었다. 사실 제파로프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몰리나는 측면 미드필더로서 활약해 오던 선수이다. 제파로프가 공격적인 성향도 뛰어난 선수이지만 작년 임대시절 플레이를 보아도 제파로프는 중앙 미드필더가 어울린다.(적어도 FC서울에선) 하지만 현재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하대성, 고명진, 문기한 등의 선수가 포진되어 있고 이들 중 한 명을 빼고 제파로프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기엔 다른 선수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 최용수 감독대행으로서도 스쿼드에 있어 꽤 고민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선택은 모든 선수를 쓰되, 제파로프의 포지션 이동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파로프가 왼쪽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기에 가능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이 해결책에서 FC서울은 사실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파로프의 특기인 칼 같은 패스의 횟수는 작년에 비해 많이 줄었고, 돌파를 위주로 해야만 하는 왼쪽 측면에서 거친 K리그 수비에 돌파가 다소 어려운 감이 있었다. 제파로프 선수답지 않게 공을 끄는 현상도 자주 눈에 띄었다.

문제는 제파로프만이 아니었다. 몰리나도 제 실력을 못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FC서울의 공격수 부족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몰리나가 데얀에게 집중되는 수비수들을 분산시켜줄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몰리나의 공격 스타일은 이전까지(성남시절까지) 수비수를 앞에 공간을 두고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 1선에서 수비수를 등지고 하는 플레이보단 2선에서 침투하는 스타일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최전방 공격수보다 측면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CAM)이 어울렸던 선수라는 것이다. 몰리나에게 골 가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K리그 내 최고의 네임 벨류를 지니고 있는 두 선수의 현재 시즌은 어려웠다. 아쉬운 사실이지만 사실이다.

 

제파로프 자리보단 ‘FC서울의 자리를 채우자

가슴 아프지만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제파로프의 이적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FC서울 입장에서 바라 본다면 얼른 또 다른 영입을 시도해야 한다. 올 여름 이적시장, K리그가 뒤숭숭한 상태에서 모든 구단들이 조심스러워 하고 있지만 FC서울 입장에선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 제파로프는 3년 계약이었다. , 제파로프가 빠진 자리를 채울 선수는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올 시즌 그의 덤블링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 중에 하나다.



하지만 여기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제파로프가 빠졌다고 해서 제파로프 자리를 채울 필요가 없다. 우리는 FC서울의 빈자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현재 FC서울의 자원이 어디가 부족하고 어디가 문제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은 이를 중점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곳은 바로 공격수. 몰리나를 2선으로 이동시키려면 1선에서 데얀과 함께 포스팅이 가능한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패스 능력도 좋고 헤딩 능력도 갖추고 있는 선수가 오면 금상첨화다.(정말 FM이었다면 지동원 선수를 데려왔을 것이다.) 공격수 영입 효과는 단순 1선 공격 능력을 향상 시키는 효과도 있겠지만 몰리나를 2선으로 내리면서 몰리나의 활발한 활약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1 2가 되는 셈이다.

두 번째로 다소 불안한 수비수영입이다. 작년 26실점으로 K리그 방어율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수비력이 좋았지만, 김진규, 최효진, 이종민 선수의 대거 이적 및 군 입대로 수비력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수비수 영입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비수의 경우 팀 내에 단기간 내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며 올 시즌 적응 기간이 늦어지게 되면 측면 수비수의 경우 결국 1년용으로 전락하게 된다. 1년 반 뒤에 최효진, 이종민 선수의 복귀가 있기 때문에 수비수 영입을 한다 하더라도 측면 수비수보다는 중앙 수비수를 보완하는 편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그를 갑자기 보내려니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Xayr(하이르)! 제파로프!

우즈베키스탄 언어로 Xayr(하이르)는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제파로프와 함께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처음 왔을 때부터 매우 친근하게 생각했고, 지금은 우리에게 참 친근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뛰어난 선수였고 멋진 선수였다. 급작스러운 이별이기에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제파로프가 떠난다면 그 누가 잡겠는가. 짧은 기간 고생한 제파로프에게 박수를 쳐주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해보자. 하이르! 제파로프 !



/FC서울 명예기자 김진웅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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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1.07.09 19:00

슬램덩크 소장판 21권 장면. 산왕공고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자 체육관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장면.

 

9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 만화 슬램덩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슬램덩크 안에서의 명 경기라고 한다면 역시 마지막 경기였던 북산 VS 산왕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왕이라는 무시무시한 팀을 상대로 북산은 투지와 이길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덤빈다. 초반에는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가 중 후반에는 산왕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진다. 점수차도 크게 벌어지며 북산은 이길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북산은 되살아나고 결국 간발의 점수차로 승리를 거둔다.

이 만화에서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북산의 상황을 날씨에 비유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산왕에게 거세게 밀릴 때는 경기장 밖에서 폭우가 쏟아진다. 그러다가 북산이 되살아 나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비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더니 완벽히 살아났을 때는 태양이 떠오른다. 사소한 묘사였지만 매우 섬세하고 재치있는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오늘 ‘FC서울 VS 전북의 경기도 슬램덩크 만화처럼 날씨가 경기를 묘사해 주었다. 아마 밝은 달이라 떴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전북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질 땐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더니 흐름이 서울 쪽으로 오자 빗방울의 굵기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경기 막바지에는 비가 잠시 멈추었다. 경기 결과는 2-2. 누구의 달빛도 떠오르지 못한 채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전북은 선두를 고수하지만 한발 더 치고 나가야 하는 서울로서는 아쉬운 경기였다.

 


                    정말 장대비가 쏟아졌다. 장대비 속에 에닝요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매서웠다. (사진=스포츠조선)



비가 쏟아지다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올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폭우가 쏟아졌다. 전북은 이동국, 에닝요, 루이스, 이승현 선수를 앞세워 거세게 몰아부쳤다. 미드필더에서부터 압박이 이루어졌고, 서울에 대한 압박수비가 펼쳐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요한 선수가 부상으로 교체 당했다. 1실점 뒤에 에닝요 선수가 FC서울 서포터즈를 조롱하는 듯한 세리모니를 펼쳐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후에도 전북은 거세게 몰아부쳤다. 특히 이동국 선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은 서울 수비진들의 전진배치를 저지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동국 선수의 어시스트로 FC서울은 0-2로 뒤쳐지게 된다. 전반전 끝나는 순간까지 전북의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후반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FC서울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공격적인 축구를 보였다. 하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수적 열세인 전북은 공격부터 수비까지 간격 유지를 철저히 하며 공간을 쉽사리 주지 않았다. 이에 최용수 감독대행은 이승렬 선수를 빼고 김태환 선수를 투입하면서 오른쪽 측면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전북의 골문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수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동국 선수를 중심으로 역습 축구를 구사했다. 오히려 미드필더에서부터 압박을 하며 쉽게 공격선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섰다. 전북의 무서움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후반 15, 서울의 가능성을 보이다

서울의 플레이가 차츰 되 살아 나는 후반 15. 서울 특유의 패스 플레이가 이루어졌지만 하대성의 마지막 슈팅이 아쉽게 김민식 골키퍼에게 막히며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매우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순간 FC서울만의 플레이가 보였다. 이 것이 FC서울만의 플레이였고 FC서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었다. 문전에서의 빠르고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수들을 일 순간 멍하게 만드는 플레이.  순간 서울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비가 잦아드는 후반 33.

전북의 교체출장한 로브렉 선수. 크로아티아 선수로 최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전북의 공격력에 힘을 실어줄 선수다. FC서울로서 부담스러운 선수가 아닐 수 없었는데, 오늘은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무너지고 말았다. 후반 31. 최현태 선수와 헤딩 경합 상황에서 팔꿈치로 최현태 선수의 눈부위를 가격,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경고를 받았다.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이 로브렉의 과격한 플레이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로브렉 선수는 2분 뒤 고명진 선수의 돌파를 손으로 잡아 채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고 만다. 후반 33. 차츰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후반 35. 비는 멈췄다.

드디어 비가 멈추고 FC서울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수적으로 절대우세에 올라선 FC서울은 매섭게 전북을 몰아 세웠다. 그리고 후반 35분 코너킥 상황. 제파로프의 킥을 전북 수비측이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고 이 볼은 그대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강정훈 선수에게 날아갔다. 강정훈 선수는 이를 그대로 헤딩으로 꽂았고 전북 수비수의 몸에 맞았으나 골이 들어갔다. 전북 수비수들은 이를 막기 위해 손을 사용하면서까지 막았지만 소용 없었다. 1-2.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데얀은 역시 K리그 최고의 골 사냥꾼 다웠다.



후반
36. 우리에겐 데얀이 있었다.

FC서울은 골을 터뜨린 후 총 공격 태세로 접어들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킥 오프를 하는 순간 전북 진영으로 뛰어들어가 압박 축구를 보였다. 그리고 결국 골이 터졌다. 제파로프의 패스에 이은 논스톱 하대성의 패스, 그리고 데얀의 논스톱 슈팅.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이 된 것이다. 데얀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로 하여금 꼼짝 못하는 코스로 꽂혔고 동점을 만들어냈다. 제파로프의 적절한 패스, 하대성의 센스, 데얀의 골 감각이 만들어낸 완벽한 골이었다.

그 뒤로도 FC서울은 계속된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문을 벗어나며 경기는 2-2 무승부로 마감을 하고 말았다. 후반 막판은 다소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 VS 능남'의 경기에서 강백호는 공이 있는 곳에 어디든지있음으로 인해 능남 감독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놓는다. 같은 강씨인 강정훈 선수 역시 최강희 감독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찬스를 만들어냈고 골도 뽑아냈다.


공이 있는 곳에 본능적으로 그가 있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흔들어놓는 역할이다. 다져지진 않았지만 감각적으로 공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오늘 FC서울에선 그런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같은 강씨인 강정훈 선수가 바로 그이다. 올 시즌 정규리그 첫 출장의 기회를 가진 강정훈 선수.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교체되자마자 열심히 공간을 찾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전북은 강정훈 선수의 활발한 움직임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맞았다. 특히 후반 20, 골문이 비어있는 상태에서의 골 찬스는 너무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강정훈은 공간을 만들어내며 전북을 압박했고 결국 동점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골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데얀의 동반자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선수가 등장한 셈이다.

 


꼬집어보자. 우리 FC서울.

최소한의 승점은 챙겼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은 아니었다. 오늘의 경기에서 어김없이 지적이 되는 부분은 미드필더 자원의 활용에 있어 좀 더 효과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 수비의 안정성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미드필더에서 제파로프와 몰리나의 활용은 계속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개인적으로 제파로프 선수의 중앙 미드필더 기용, 몰리나 선수의 왼쪽 미드필더로의 기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자니 고명진 선수 카드가 아쉽다. 미드필더 지역에서의 조화가 시급한 현재. 우리 FC서울을 꼬집어보자면 난 미드필더를 꼬집고 싶다.

 

 

자칫 승점을 챙기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귀중한 승점 1점을 획득하며 10위 자리를 고수했다. 자칫 패배했더라면 이날 경기가 있던 울산과 경남에게 밀려 12위까지 내려갈 뻔 했다. 그렇기에 FC서울에게는 정말 중요한 경기였음은 틀림없다.

이제 상주다. 상주를 잡고 다른 경기의 운이 좋다면 5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전북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면 이제 진짜 중요한 고비 상주전이 남은 셈이다. 이번 상주와의 경기에서 꼭 승리를 거두어 중위권 도약의 날개를 한껏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FC서울 명예기자 김진웅(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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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1.07.04 15:08

2011.6.25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인천
1:1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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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26 15:49



저번 홈경기에서 황새(황선홍 감독의 별명)와 대결을 펼친 독수리(최용수 감독대행의 별명)는 이젠 진돗개(허정무 감독의 별명)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이번에도 감독 대결은 흥미롭다. 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최용수 감독대행과 70~8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허정무감독이 올 시즌 첫 맞대결을 벌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강원과의 1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영민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지만 아디나 김동진으로 충분히 공백을 메울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서울은 인천을 상대로 홈에서 거둔 2연승은 서울의 자신감을 한층 더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될 것이다.


하지만 인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현재 리그 순위 6위에 올라 있는 인천은 최근 7경기 연속 무패(3승4무)를 기록중일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세밀한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부드러운 축구를 구사하는 서울과 강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터프한 축구를 구사하는 인천. 이 부드러움과 강함의 대결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파로프(위), 카파제(아래) (사진출처-스포츠조선)








제파로프vs카파제 두 우즈베키스탄 특급 용병의 맞대결


작년 시즌 중반 팀에 합류해 1골 7도움을 올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제파로프의 맹활약은 우즈베키스탄 용병들의 시각을 달라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로인해 카파제를 비롯 게인리히(수원)등 우즈베키스탄 용병들이 K리그에 입성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3년 계약을 맺으며 완전 이적에 성공한 제파로프는 이번 시즌에도 변함 없이 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분전하고 있다. 올 시즌 인천에 합류한 카파제 역시 15경기에서 3골 2도움을 올리며 인천의 주축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2011 아시안컵에서 우즈베키스탄을 4위로 이끈 주역인 두 선수가 벌이는 중원 맞대결도 큰 관심사다. 참고로 작년 시즌 제파로프가 터트린 유일한 골은 인천전에서 나왔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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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6.24 14:41

2011.6.18
강릉종합운동장
FC서울 2:0 강원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임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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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21 22:27

2011.6.15
FC서울 1:0 부산교통
제파로프의 시즌 첫골!!!이로서 FC서울은 FA컵 8강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FC서울이 FA컵과도 좋은인연을 만들수 있기를 바랍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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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16 18:14

 

K리그를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로 경기장은 가득 찼다.


K리그는 죽지 않았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어수선했던 기운은 상암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이 날 4 4천여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 날 박주영과 정조국의 방문으로 한층 열기를 더했다. 독수리(최용수 수석코치)와 황새(황선홍 감독)의 대결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날 경기는 각각 한 골씩 주고 받으며 1-1로 마쳤다. 화끈한 공격 축구로 맞섰던 이 경기에서 전반전은 독수리의 판정승, 후반전은 황새의 판정승이었다. 전반전은 FC서울의 맹공이 이어졌던 경기였고, 후반전은 포항의 반격이 이어졌다.

 

경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FC서울의 판정승일지 모른다. 점유율면(51 : 49), 슈팅수(14 : 9) 등 경기 기록으로만 본다면 서울이 앞섰다. 하지만 후반전 포항의 공격은 무서울만큼 매서웠다. 특히 역습 찬스에서 김용대와 아디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 상황도 많이 찾아왔었다.

 

한편 이 날 경기에서 데얀을 주목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데얀의 기분이 전반전과 후반전이 많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전반전에 골을 기록하고 위협적인 슈팅을 했던 것에 비해 후반전에 데얀은 단 하나의 슈팅만을 기록하며 후반 45. 교체 아웃 되었다. 물론 포항의 풀백(신광훈)이 수비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날의 MOM(Man of the Match)은 데얀이었지만, 후반전 데얀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후반 막바지에는 지쳐 보이기까지 하였다. 왜 데얀은 후반전에 급격히 힘이 없어보였을까.

 

 

데얀은 하대성의 패스를 받아 멋진 골을 성공시켰다.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 !

FC서울에게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면, 타 구단 입장에서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K-리그에서 잘 나간다는 용병들은 다 데리고 있으면서, 그것도 조광래 감독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데얀을 데리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최근 FC서울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이 점을 가장 크게 느낀다.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데얀과 함께 투톱에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일 수 있다.

 

방승환의 활약에 따라 FC서울의 플레이는 달라진다.



예전 글에서 나는 방승환의 달라진 플레이가 FC서울의 공격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방승환의 움직임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상대 수비수가 데얀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데얀에게도, 방승환에게도 기회가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방승환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데얀을 제외한 다른 공격수들이 모두 유념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데얀을 골잡이로 두는 상황이라면, 데얀을 제외한 나머지 한 자리에 위치할 공격수는 셰도우 공격수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 자원에서 그만한 자원이 없다. 변화하고 있는 방승환 선수도, 회복 중인 이승렬 선수도 부족하다. 좀 더 잔인하게 작년과 비교를 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정조국만큼 데얀의 부담을 덜어줄 선수가 없다.

 

데얀만 공격수인가?’라고 혹시 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이 자주 구사하는 4-4-2 전술에서 공격수는 분명 2명이다. 하지만 팀 내에서나, 경기장 안에서나 상대를 꾸준하게 위협할 수 있는 공격수는 현재 FC서울에서 데얀 뿐이다. 이는 이번 포항전 경기 기록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전반전 동안 FC서울의 총 슈팅 9(유효슈팅 6) 중 데얀의 총 슈팅은 5(유효슈팅 4). 팀 내 비중은 말할 수 없이 높다.

 

데얀과 몰리나. 투톱으로 과연 어울리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몰리나, 활용면에서 아쉬워

가장 데얀을 도와줄 수 있는 선수로 현재로선 몰리나가 최선이긴 하다. 모든 포지션에서 움직임이 가능한 선수이니만큼 몰리나는 상대를 휘저으며 데얀을 도와줄 수 있다. 몰리나가 공격수로 뛰었던 전반에 데얀의 슈팅은 총 5개이지만, 몰리나가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변경된 후반전에 데얀의 슈팅은 단 1개였다. 몰리나의 플레이가 데얀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반 몰리나의 슈팅은 단 1. 몰리나라는 선수의 공격 성향을 보았을 때, 슈팅 1개만 쏘아올릴 선수는 아니다. 더 활용할 것이 많은 선수다. 특히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을 때 몰리나의 능력은 배가 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작년까지 어찌보면 거의 2경기당 1골을 터뜨렸던 그의 폭발력은 현재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작년까지 총 50경기 출전 22, 11도움) 물론 어제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단연 데얀과 몰리나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슈팅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게다가 투톱으로 나선다는 것은 상대 수비의 눈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 어떤 선수가 슈팅을 때릴지, 어떤 선수가 주로 공격을 하는지 상대 수비 입장에서 혼동이 될 선수여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셰도우 스트라이커라는 말이 성립이 된다.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데얀이 골 사냥꾼이고, 나머지 한 명이 셰도우다. 이걸 누구나 아는 이상 셰도우는 셰도우가 아니다.

 


전술의 변화는 어떨까?

이럴 때 조심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전술의 변화이다. 4-4-2 에서 4-5-1로의 변화인데, 이는 다소 미드필더 자원이 공격 자원에 비해 탄탄한 서울에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FC서울은 하대성, 고명진, 문기한, 고요한, 제파로프, 몰리나, 김태환, 최현태 등 미드필더 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최태욱 선수가 돌아올 경우 더욱 더 탄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4-5-1 전술에서 중요한 것은 중원의 장악력인데, 하대성, 제파로프 등 패싱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아디 선수를 중앙 미드필더(CDM)로 기용할 경우, 중원에서의 장악력은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데얀을 원톱에 세운 후 미드필더에서의 2차 침투로 골을 만들어냄을 노리는 것이다.

 

FC서울도 어느 정도 이러한 팀 내 스쿼드 변화를 받아들어야 한다. 현재의 공격 자원은 최근 5년간의 FC서울 공격수들의 계보를 보면 가장 적은 수를 자랑(?)한다. 숫자보다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과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누가 FC서울의 공격을 책임졌던가.

 


2007년 박주영, 김은중, 두두, 정조국, 이상협

2008년 박주영(시즌 중 아웃), 김은중, 정조국, 데얀, 이상협

2009년 정조국, 데얀, 이승렬, 이상협, 안데르손(잠깐이지만)

2010년 정조국, 데얀, 방승환, 이승렬

2011(현재) 데얀, 방승환, 이승렬, 이재안

 


사실상 올해 최전방에 나서는 빈도로 본다면 데얀과 방승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방승환 선수는 10경기 무득점에 그치고 있다. 이재안 선수도 6경기 무득점, 이승렬 선수 또한 7경기 무득점. 현재 FC서울 공격수(FW) 중 제대로 골 맛을 본 선수는 데얀 뿐이다. 사실상 작년처럼 데얀을 돕는 정조국 같은 선수가 없는 실정이라면 전술을 바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데얀을 원 톱으로 내세우는 4-5-1 의 형태에서 측면에서 몰리나와 고요한 등의 전방 침투, 제파로프의 공격 가담으로 인한 전술 변형 등을 꾀하면서 중원에 무게를 두는 방향이 좀 더 FC서울의 현 스쿼드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중원의 인재들이 제대로 쓰이지 않음과 동시에 공격에 있어서 활발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술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13라운드다. 이제 FC서울도 어느 정도의 결단은 필요하다. 공격 자원에 있어서의 배분, 전술 모든 면에서의 점검기간을 지나 안정적인 스쿼드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 = 김진웅 FC서울 명예기자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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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1.06.12 16:26





서울과 포항의 맞대결은 K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빅매치다. 양 팀의 유니폼이 검정색과 빨간색을 혼합한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에 착안하여 팬들은 검빨강 더비라 부를 정도로 관심도 역시 높다. 이번 경기에선 팬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또 하나의 요소가 추가 되었다. 바로 한국 축구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최용수와 황선홍이 감독으로 만나 첫 번째 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공격수 출신 답게 화려한 공격 축구로 K리그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감독은 각각 중위권 도약(서울)과 선두 탈환(포항)을 위해 이 경기를 반드시 승리로 이끈다는 각오다. 현재 서울은 대구와 성남에게 모두 0대2 패배를 당하며 리그에서 하향세를 타고 있는 터라 이 경기 승리를 통해 분위기 반전이 절실하고 포항 역시 리그 순위는 상위권이나 주전 풀백인 김정겸이 승부조작 사실이 적발되며 팀 분위기가 뒤숭숭한 터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번 경기 승리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양 팀은 A매치 휴식기를 통해 각각 양구(서울)와 가평(포항)에서 전지훈련을 치르며 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제파로프vs황진성 두 패스마스터의 대결


제파로프와 황진성은 K리그에서도 알아주는 패스의 달인이다. 두 선수 모두 화려한 기술을 지니고 있고 왼발잡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황선홍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황진성은 이번 시즌 5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포항 미드필드진의 중심축이 되어 있다.


제파로프는 이번 시즌 리그에선 1개의 도움밖에 없지만 팬들 중 그 누구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작년 시즌 7개의 도움을 올리며 팀 우승의 주역인 제파로프는 ACL 16강전 데얀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 하며 패싱 감각을 조율했다. 이 들의 플레이 메이킹에 팀 승리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어떤 선수가 팀을 승리로 이끌지 주목된다.



Bonus tip


최용수와 황선홍은 현역 시절 K리그에서의 활약도 좋았지만 일본 J리그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펼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황선홍은 1999년 세레소 오사카 시절 J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최용수는 2001년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에 입단하자마자 그해 득점랭킹 2위에 오르며 한국 선수의 위대함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J리그 맞대결은 어땠을까? 이 둘은 2001년부터 2002년 중반까지 함께 J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고 당시 가시와 레이솔에 소속되어있던 황선홍이 2002 월드컵 이후 가시와에서 방출되기까지 총 3번 맞붙은 적이 있다.


2001년 3월31일 이치하라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당시 최용수는 1골을 넣었지만 팀의 3대2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 해 10월17일 가시와 홈에서 열린 경기에선 최용수와 황선홍이 각각 1골씩을 기록했고 경기는 치열한 난타전 끝에 4대3으로 이치하라가 승리를 거두며 전반기 복수에 성공했다.


2002년 8월11일 가시와 홈에서 또 한번 붙은 이 경기에선 최용수가 완승을 거두 었다. 당시 선발 출전한 최용수는 전반 13분 팀의 선제골을 올리며 3대1 승리를 이끌었고 황선홍은 후반 교체 투입 되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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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6.10 13:57

2011.5.25 서울월드컵경기장
ACL 16R강전 FC서울 VS 가시마
3:0
방승환,데얀,고명진의 골로 가시마를 시원하게 눌러주고 ACL 8강진출!!!!
그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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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26 12:34

2011.5.15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경남
데얀의 한골과 고요한의 첫 멀티골로 상승세의 경남을 맞이해 3:1로 승리하여 K리그 정규리그순위가 7위로 올라갔습니다.
리그 3연승을 달리며 디펜딩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FC서울.
기분좋은 리그 3연승의 순간
그 순간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보았습니다.


PHORO BY FC서울명예기자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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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16 01:39


2011.5.8 어버이날 FC서울과 상주상무의 K리그9라운드 경기가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최용수감독대행으로 3번째 열리는 경기.
양팀의 접전속에 데얀의 해트트릭!!!
그리고 경기종료직전 프리킥찬스에서 이루어진 영화같은 현명민의 결승골!!!
이날 FC서울은 상주상무를 4:3이라는 스코어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추가하며 리그10위에 안착 했습니다.
정말 축구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주는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 K리그9라운드 FC서울과 상주상무의 경기
그날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봤습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 선수입장

▲ 방승환. 이날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고명진. 이젠 유망주에서 벗어나 FC서울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김동진.

▲ 데얀의 첫골!!

▲ 데얀의 두번째골!!

▲ 고요한. 최근들어 자신감도 충만하고 움직임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 김치우,고명진. 김치우 선수..상주상무의 유니폼이 아직 어색 하네요 ㅠㅠ

▲ 후반투입!!이승렬.

▲ 데얀의 해트트릭!!사실 데얀이 안건드렸어도 들어가는 골이었지만 ㅋ 데얀의 헤트트릭 욕심을 부린거 같습니다 ㅎㅎ

▲ 현명민의 프리킥!!!바로 이것이 영화같은 결승골로 이어집니다!!

▲ 마치 우승을 한것 같은 골세리머니!!ㅋㅋ그동안 맘고생도 심했던거 만큼 기쁨도 컷던거 같습니다.

▲ 경기종료후 기쁜마음으로 상주까지 응원온 수호신에게 인사를 합니다.

▲ 상주까지 오셔서 FC서울을 응원해주신 수호신. 이날 최고의 경기를 직접본 영광의 얼굴 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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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09 12:25

 



과연 용병이 없는 프로 스포츠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 해 용병 농사가 그 시즌의 성적을 좌우 할 정도로 용병들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우승을 목표로 하는 구단들은 그만큼 용병농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FC서울도 2000시즌 안드레, 드라간, 히카르도 라는 걸출한 용병들을 앞세워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 컵 대회에선 프리킥 마법사 히칼도와 지금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아디를 앞세워 우승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한 2010년 데얀과 제파로프의 좋은 활약으로 기다렸던 K리그 챔피언자리를 차지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FC서울에 등록됐던 용병들을 국가별로 나눠보면 총 23개국 55명이 지나갔다. 그 중 브라질 출신이 총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유럽 출신들이 뒤를 이었다. 특히 90년대 중반에는 유럽 중에서도 동유럽 출신의 용병들이 주를 이뤘었다. 그 밖에는 아프리카와 일본, 태국, 이라크 등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선수들이 왔다 갔다.

 

FC서울 용병 최다 골은?

 

FC서울 소속으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용병은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이다. 2008년 인천에서 서울로 이적 후 매 시즌 10골 이상을 넣으며 이름값을 해주고 있다. 특히 K리그에서의 활약 덕분에 그는 몬테네그로 대표팀까지 뽑혀 남아공월드컵 유럽예선까지 참여했다.

 

데얀 다음으로는 럭키금성 시절의 피아퐁이다. 두 시즌을 뛰면서 43경기에서 18(평균득점 0.42) 기록했으며 1985년에는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선수다. 특히 프로축구 초창기에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스카첸코, 히카르도, 뚜따 등이 걸출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공격을 이끌었다.


FC서울 용병 도움왕은?

 

FC서울 도움왕은 2000년 첫 우승을 이끌었던 안드레다. 안드레는 총 96경기 출장해 27개의 어시스트를 했다. 특히 2000시즌에 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이 우승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안드레는 도움뿐 아니라 18골을 넣으면서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득점에서 좋은 역할을 해주었다.

 

FC서울에는 안드레 못지 않은 특급 도우미가 또 있다. 바로 2006년 컵 대회 우승의 주역이자 프리킥의 마법사로 불렸던 히칼도다. 히칼도는 2005 FC서울에 입단해서 3시즌 동안 23개의 어시스틀 기록했다. 비록 수치상으로는 안드레에 밀리지만 평균 어시스트 0.32개를 기록하며 0.28개의 안드레를 앞선다.

 

두 선수 모두 코너킥과 프리킥을 전담하며 킥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고 우승컵을 한 번씩 들어올렸던 선수들이기에 그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리긴 힘들지만 이런 특급 도우미들이 많아야 우승에 가까워 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FC서울 최다 출전 용병

 

FC서울 소속으로 경기에 가장 많이 출전한 용병은 아디다. 아디는 기복 없는 플레이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디는 맡은 바 임무를 100% 소화 하며 FC서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아디 외에도 100경기 이상 소화한 선수는 히카르도(147경기), 신의손(127경기), 무탐바(109경기) 이상 3명의 선수가 더 있다.

 

가장 많은 경고를 받은 선수로는 히카르도로 옐로카드 22장과 레드카드 2장을 받았다. 그리고 파울을 가장 많이 범한 선수 역시 히카르도로 5시즌 동안 147경기를 소화한 선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 대표에 뽑힌 그라피테는 2003년 바티스타라는 이름으로 단 9경기만을 뛴 채 고국 브라질로 돌아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용병들이 FC서울을 거쳐갔다. 어떤 선수는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고 어떤 선수는 단 한 경기만 뛰고 돌아간 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데얀과 아디라는 기복 없이 자기 몫을 해주는 선수들이 있다. 거기다 제파로프와 몰리나를 새로 영입 F4라 불리면서 K리그사상 최고의 용병라인업을 자랑하게 되었다. 아직은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이기에 앞으로 분명히 제 몫을 해줄거라 생각한다.

FC서울 명예기자 안석일 / dkstjrdlf@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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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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