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일반인들이라면 사회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며, 한창 일할 나이다. 하지만 운동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운동선수의 30대는 베테랑으로 불리고, 심지어는 ‘노인’ 취급을 받을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베테랑 선수들은 젊은 20대 선수들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몸 관리를 잘하는 선수는 30대에도 주전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신체능력은 25세를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기 때문에, 젊은 시절 몸상태를 유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회 분위기도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베테랑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FC서울의 베테랑 선수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생존법으로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비록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고 출장 시간 역시 줄었지만, 이들의 존재는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서울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FC서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 이들이 사는 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용병 3인방인 데얀, 아디, 몰리나 역시 베테랑 이지만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는 데다, 용병 특성상 거액을 들여 데려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출전시간이 보장되는 만큼, 이번엔 논외로 한다.




1. 팀을 위해선 조연도 마다하지 않는 최태욱












최태욱의 축구인생은 주연에 가까웠다. 부평고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청소년대표팀에도 발탁되었으며 2002 월드컵,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004 아테네 올림픽등 굵직한 국제대회에도 출전했다. 이후 J리그와 포항에선 잠시 주춤했지만, 2009년 전북에서 부활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0년 중반 FC서울에 복귀해서도 6골 2도움을 올리며 서울이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2011년 또 다시 시련이 찾아 왔다. 무릎부상을 당하며 전반기를 날린 것이다. 그 사이 김태환, 고광민등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메우며 최태욱의 자리를 위협하는듯 했다. 하지만 최태욱은 팀을 위한 조연 역할을 맡으며 보탬이 되고 있다. 2011년 7월에 열린 인천과의 R리그를 통해 컨디션을 조절하며 1군 복귀를 준비하던 최태욱은 당시 동북고에 재학중이던 김학승(現동국대)에게 정확한 땅볼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8월 13일 전남과의 홈 경기에선 후반 막판 질풍같은 돌파로 상대 수비수진을 무너뜨린 뒤 정확한 패스로 몰리나가 버저비터골을 성공시키는데 간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경남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하대성의 해트트릭에 도움을 준 최태욱은 2011년 리그에선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3도움으로 팀에 숨은 공신이 되었다. 올해도 최태욱의 특급 조연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김태환과 라이트윙으로 번갈아가며 출전하고 있는 최태욱은 중앙으로 직접 돌파하는 플레이보단 측면으로 넓게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고 때에 따라선 정확한 크로스로 도움을 주는 플레이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최태욱의 헌신 속에 최용수 감독 역시 “최태욱이 있으면 팀에 안정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말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올해 최태욱은 단 한경기도 풀타임을 소화 한적이 없지만 경기 투입때 마다 보여주는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여전히 팀에 커다란 자산이다.




2. 언제나 성실한 모습으로 귀감이 되는 현영민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현영민은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1년에도 현영민은 변함없는 주전이었다. 하지만 올해 김주영의 영입으로 중앙수비가 한층 강화되자, 아디가 본연의 포지션인 레프트백으로 돌아왔고, 결국 현영민은 주전에서 로테이션 멤버가 되며 출전 기회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마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현성실’이라는 별명답게 현영민은 언제나 성실한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현영민의 성실함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프로 데뷔년도인 2002년을 제외하고 2003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30경기 안팎의 출전 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까지 유니버시아드 대표 경력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무명선수였지만, 올림픽대표팀 상비군 시절, 국가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특유의 성실한 모습으로 히딩크 감독에 눈에 띄며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기도 했다.




또 그는 팀을 위한 희생을 할 줄 아는 선수다. 주전 라이트백인 고요한이 부상을 당하거나 경고누적으로 나오지 못할 시엔 현영민이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며 공백을 메웠고, 지난 광주전에선 교체 투입 되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이 성실한 플레이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현영민의 이러한 모습은 다른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언제나 성실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팀을 지탱해주는 든든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영민의 성실함이 앞으로도 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해 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3. 풍부한 경험으로 변함없이 서울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김용대











2010년부터 FC서울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용대는 올해도 변함없이 주전 자리를 유지하며 서울의 골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작년 제주와의 경기에선 신영록과 충돌하며 코뼈 골절로 약 한달 정도 결장하기도 했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고 서울의 주전 골키퍼는 늘 김용대의 몫이었다.



사실 후보 골키퍼인 한일구와 조수혁도 경험만 쌓인다면 충분히 주전 골키퍼를 해낼 능력이 있는 선수다. 한일구는 김용대가 부상으로 결장했을때 그 공백을 잘 메웠고, 조수혁 역시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순발력이 돋보이는 골키퍼다. 하지만 아직은 김용대가 가지고 있는 안정감과 풍부한 경험을 넘기엔 아직은 부족하다는 평이다.




지난 199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 이동국, 김은중등과 함께 출전하며 국제대회에 첫 발을 내딛은 김용대는 이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안컵, 월드컵등 굵직한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K리그에서도 김용대는 데뷔시즌인 2002년을 제외하고 작년까지 매 시즌 30경기 안팎의 출전 수를 기록했고, 2004년 FA컵 우승, 2006년 리그컵 우승, 2010년엔 리그와 리그컵을 동시에 들어올리며, 베스트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김용대의 화려한 경력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는 FC서울의 주전 수문장 자리를 유지하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선방으로 그의 손은 성한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은 가장 예쁘진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손임엔 틀림없다.





중국 춘추 시대 다섯 패자중 한 사람인 제나라 환공은 고죽국 정벌 후 귀국 도중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자 재상 환공은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보자고 했고,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아 그의 뒤를 따르자, 곧 큰길이 나오며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사자성어 노마지지(老馬之智 -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다)의 유래가 되는 이야기이다. FC서울의 베테랑 선수들 역시 그간 쌓아온 경험과 연륜으로 서울이 우승을 향해 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베테랑 선수들의 헌신과 희생. FC서울의 우승을 향한 발걸음이 든든할 수 있는 이유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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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7.10 02:01




현재 FC서울 감독인 최용수는 2002 월드컵 당시 멤버였다. 사진은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플레이 하는 최용수의 모습 (사진출처-photoro)





온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2002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당초 목표였던 16강 을 뛰어넘어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명장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등 만만찮은 상대를 차례로 물리치고, 세계 4강에 자리한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인해 전국은 축구 열기로 넘쳐났으며, 국민 대다수가 붉은 옷을 입고 거리응원을 펼치는 등 2002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전설로 남아 있다.



현재 FC서울에서 활약하는 스타 중에도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스타가 있다. 바로 최용수, 최태욱, 현영민이 그들이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시 대표팀 공격수였던 최용수는 감독으로, 신예였던 최태욱과 현영민은 베테랑 선수로 여전히 한국축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실 최용수, 최태욱, 현영민 모두 2002 월드컵 경기에서 많은 경기를 뛰진 못했다. 최용수는 미국과의 조별예선 2차전에 출전해 21분을 뛰었고, 최태욱은 터키와의 3~4위전에서 11분을 뛰는데 그쳤다. 현영민은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2002 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그들이 보여준 2002 월드컵 준비과정과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 또 2002 월드컵 후 한국축구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최용수

2002 월드컵 미국과의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에 나선 최용수







선수 최용수는 그 누구보다도 2002 월드컵을 벼르고 있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에서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선에선 두 경기 출전에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쓸쓸히 귀국길에 올라야 했던 탓이다. 따라서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2002 월드컵은 최용수에게 중요한 무대였다.



1999년 K리그에서 14골 4도움. 2000년 K리그에선 14골 10도움으로 소속팀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최용수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일본 제프 이치하라로 이적했고, 2001년 부임한 히딩크 감독 역시 그의 기량과 상승세를 인정해 1월 자신의 데뷔전인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전에 선발 출장 시켰다. 그 후 파라과이와의 칼스버그컵 경기에서도 후반 교체 출전해 승부차기에서 한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6-5 승리에 기여한 최용수는 J리그 적응을 위해 2월에 열린 LG컵엔 참여하지 않았고, 9월에 열린 나이지리아 평가전에 다시 한번 부름을 받는다.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로 열린 이날 경기에서 최용수는 1골 1도움을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11월에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선 전반 42분 김남일에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첫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이동국, 김도훈, 설기현, 황선홍 등과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최용수는 이듬해 열린 북중미 골드컵에선 쿠바전 한경기 출전에 그쳤고, 3월 독일에서 열린 터키와의 평가전에서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가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최용수의 경험과 강인한 투혼을 인정해 중국과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출장 기회를 부여하며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불운이 찾아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수원에서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 후반 교체 투입된 최용수는 오른쪽 골반과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결국 후반 25분 차두리와 교체 되어야 했던 최용수는 이후 열린 대표팀 훈련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고,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폴란드를 2-0으로 꺾으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에 동참하지 못한 최용수는 다음 경기인 미국전에 드디어 출장 기회를 잡았다.



전반 24분에 미국의 메티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전반 43분엔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는등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히딩크 감독은 공격 강화를 위해 최용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후반 24분 유상철과 교체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은 최용수는 투입되자마자 설기현의 크로스를 받아 왼발 슈팅을 날렸지만, 프리델의 선방에 막히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에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대한민국의 공격에 일조한 최용수는 후반 33분 안정환의 헤딩 동점골이 터지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오노 세리머니에 동참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안정환의 동점골 세리머니 장면. 최용수 역시 그 기쁨을 함께 했다.






동점골이 터지자 대한민국의 공격에도 활기를 띠었고, 후반 43분 최용수가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다. 설기현의 패스를 받은 이을용이 좌측면을 돌파한 뒤 최용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지만, 최용수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땅을 쳐야 했다. 설상가상 골반을 또 다시 다친 최용수는 더 이상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독일과의 4강전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지만, 최용수는 당시 국가대표 물리치료사인 아노 필립과 함께 개인 훈련을 진행하며 터키와의 3,4위전 경기에 출전 의지를 보였지만, 아쉽게도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최용수의 월드컵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는 소속팀에서 맹활약으로 월드컵에서 아쉬움을 풀었다.



8월 도쿄베르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 복귀 후 첫 골을 터트린 최용수는 다음 경기인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멀티골을 폭발 시키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뒤이어 열린 가시와 레이솔전에서도 선제골을 터트리며 세 경기 연속골로 절정의 감각을 과시했다. 결국 총 16골로 J리그 득점 랭킹 5위에 오른 최용수는 일왕배에서도 미토 홀리호크전 1골. 베갈타 센다이전 멀티골 기록등으로 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월드컵의 한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도 17골을 기록한 최용수는 2004년엔 1년에 2억엔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로 교토 퍼플상가로 임대 이적했고, 당시 교토엔 최용수를 위한 특별 관중석이 설치 되는 등 최용수는 일본에서 자신의 날개를 활짝 폈다.





2. 최태욱



 

2002 월드컵 당시 최태욱의 훈련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현재 FC서울의 베테랑 플레이어로 팀에 안정감을 심어주고 있는 최태욱은 2002 월드컵 당시엔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젊은 선수들을 중시했던 히딩크 감독도 최태욱의 빠른 스피드와, 시원스런 돌파 능력에 주목. 2001년 9월에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 선발 출장 시켰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됐던 최태욱은 풀타임을 소화했고, 3일 후 부산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2차 평가전에선 후반 교체 투입되어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펼쳤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드는데 성공한 최태욱은 11월에 열린 세네갈과의 전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도 75분을 소화했고 이틀 후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선 후반 18분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개장 1호골을 쏘아올렸다. 이후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인 크로아티아전, 한달 후 제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인 미국전까지 모두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대표팀에서 점차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지만, 골드컵 이후로 위기가 찾아온다.




이듬해 열린 골드컵에서 대표팀은 4위를 차지했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력으로 우려를 샀고, 다음에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도 1-2로 패배하며 비난을 받은 것이다. 최태욱 역시 골드컵에서 3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한번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었는데, 여론은 너무 지나치게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표팀이 운용된다며 비판을 가했고, 최태욱 역시 이러한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왼쪽 아킬레스건에 부상까지 있었던 최태욱은 3월에 열린 튀니지, 핀란드, 터키와의 평가전에 모두 결장하며, 월드컵행에 먹구름이 끼는 듯 했지만, 4월에 열린 국내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받게 된다. 대구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장한 최태욱은 대표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고 후반 38분엔 차두리의 패스를 받아 침착하게 골키퍼까지 제친 뒤 추가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전 동점골 직후 최태욱의 세리머니 장면 (사진출처-연합뉴스)








차두리, 최태욱등 젊은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2-0 승리를 거둔 이 날 경기로 인해 젊은 선수들을 향한 시선은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했고, 최태욱 역시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등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드는데 성공했다. 월드컵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최태욱이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선 최태욱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측면 공격수로 이천수와 차두리를 좀 더 선호하면서, 최태욱에게 출장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결국 터키와의 3,4위전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후반 34분 설기현과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은 최태욱은 그간 출전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씻으려는듯 시종일관 가벼운 몸놀림으로 터키 수비진을 흔들었다. 투입되자마자 빠른 돌파 후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후반 36분엔 수비수 두명을 앞에두고도 현란한 개인기로 따돌리며, 차두리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주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후반 38분엔 차두리의 크로스를 안정환에게 다이렉트 패스로 연결하며 첫 도움을 기록하는가 했지만 안정환의 슈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가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최태욱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후반 48분 송종국이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치며, 2-3 패배를 당해야 했다.



자신의 첫 번째 월드컵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한 최태욱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태욱은 한층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최태욱은 대표팀의 6경기 중 5경기에 나서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일조했고, 이듬해엔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며 코스타리카,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었고,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도 8경기에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올림픽대표팀의 아테네행을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3. 현영민



 

2002 월드컵 당시 현영민의 프로필 사진 (사진출처-연합뉴스)





현재 현영민은 K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중 하나지만, 그는 유년시절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뽑히긴 했지만,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에는 단 한번도 뽑힌 적이 없었던 무명선수 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01년 10월 6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대표팀과 올림픽팀 간의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올림픽 상비군이었던 현영민이 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이다. 당시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던 현영민은 대표팀의 오른쪽 날개였던 최성용을 잘 막아냄과 동시에 날카로운 돌파력과 정확한 프리킥을 선보이며, 히딩크 감독의 시선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 덕에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게 된 현영민은 그해 11월에 열린 세네갈과의 전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후반 30분 최태욱과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크로아티아와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도 모습을 보인 현영민은, 이듬해 열린 골드컵 쿠바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A매치 풀타임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후 코스타리카와의 골드컵 4강전, 우루과이,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모두 교체로 투입되었기에 그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확률은 다소 낮아보였지만, 히딩크 감독은 “현영민은 국제 수준의 법칙들을 매우 빨리 터득하고 담대하며, 요구하는 것을 빨리 익히고 적용할줄 아는 능력이 있는 선수다” 라고 칭찬하며 현영민을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그 역시 월드컵에서 출전을 원했겠지만, 당시 현영민의 포지션인 레프트백엔 이영표, 이을용이란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고, 결국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며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현영민에게 소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벤치에 앉아 있던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라며 월드컵에서 큰 수확이 있었음을 언급했고,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 출전등 국가대표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K리그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당시 울산 소속이던 현영민은 이천수, 유상철과 삼각편대를 이뤘고 그해 10월에 열린 부천과의 리그 경기에선 날카로운 프리킥과 크로스로 유상철의 골을 두 번이나 어시스트 했고, 부산과의 경기에선 자신의 장기인 롱스로인으로 유상철의 헤딩골을 돕는 등 1골 4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본프레레 감독 체재였던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표로 뽑히기도 했던 현영민은 2006년엔 제니트에 입단하며 국내 선수론 최초로 러시아 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니트에서 활약할 당시 현영민의 모습 (사진출처-쿠키뉴스)








당시 케르자코프, 데니소프등 유명선수와 한솥밥을 먹었던 현영민은 UEFA컵(現유로파리그)에도 출전해 로젠보리, 마르세유등 강호들과도 맞붙으며, 유럽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니트에서 1년여 동안 선수생활을 보낸 뒤, 2007년 울산에 복귀한 현영민은 2010년에 서울에 입단하며 팀의 통산 4번째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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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25 01:57

 

 

 

 

 

 

며칠 후면 어린이들의 축제인 어린이날이다.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지정된 이날은 어린이들이 따뜻한 사랑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며, 어린이들을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그 동안 일에 치이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 아버지들도 이 날 만큼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어린이날에 마련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나들이를 나가는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스포츠가 열리는 경기장 역시 어린이날에 가족들이 많이 찾는 장소중 하나다. K리그도 어린이날은 특별한 날로 지정하며 어린이날에 항상 경기를 배정하고, 어린이날에 홈경기를 갖는 팀은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를 준비하여, 경기장을 찾는 가족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특히 올해 어린이날은 토요일이어서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어린이날 다른 가족들의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이 그들이다. FC서울 선수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어린이날엔 포항과 홈경기를 가지기 때문에, 올해도 이들이 어린이날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건 꿈같은 일이다. 스쿼드 대부분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아직 미혼인 선수들이 많지만, 용병 3인방인 데얀, 아디, 몰리나. 그리고 현영민, 최태욱은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어엿한 가장이다.

 

 

어린이날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선수’들의 자녀들은 섭섭함을 느끼겠지만, ‘아빠 선수’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의 섭섭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길은 결국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빠 선수’ 들이 어린이날 경기때 어떤 좋은 모습을 보였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빠 선수’ 들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선수는 단연 데얀이다. 2007년 인천 소속으로 K리그에 데뷔한 데얀은 그해 부산을 상대로 한 어린이날 경기에서 전반엔 방승환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터트렸고 후반엔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는 활약으로 팀의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서울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어린이날에서 데얀의 활약은 이어졌다. 스리위자야와의 AFC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던 2009년 어린이날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 데얀은 전반 16분에 드리블 돌파 후 왼발 슛으로 선제골, 후반 27분엔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두 번째골, 후반 추가 시간엔 세 번째골까지 성공시키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데얀의 활약에 힘입어 서울은 5-1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해가 바뀐 2010년 어린이날에도 데얀은 또 한번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했다. 60747명이라는 대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신기록을 작성한 성남과의 경기에서 데얀은 전반 20분 방승환의 헤딩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했고, 후반 24분엔 역습상황에서 박용호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두 번째 골, 후반 31분엔 김태환의 크로스를 멋진 발리 슈팅으로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어린이날에 2년 연속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데얀은 후반 추가 시간엔 이승렬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 2011년엔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 탓에 어린이날 하루전인 5월4일에 경기를 가졌지만 데얀은 이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했고, 팀의 3-0 승리를 이끌며, 어린이날 경기의 강자로 등극했다.

 

 

 

 

 

21살인 1997년에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아디는 2006년 FC서울 입단 이후 모든 어린이날 경기에 뛴 기록을 갖고 있다. 2006년 어린이날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하며 팀의 5-2 승리를 이끈 아디는 이듬해인 2007년 어린이날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도 수비수로 풀타임 출전하며 팀이 무실점을 기록하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2009년 어린이날에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수비수로 풀타임 출전한 아디는 2010년 성남과의 경기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날도 풀타임 출전을 기록한 아디는 중원을 장악하며 후반 24분엔 역습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공격을 전개하며 기회를 만들었고, 이것이 데얀의 두 번째 골로 연결되며, 공격에서도 보이지 않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몰리나는 어린이날 경기에서 그리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진 못하다. 2009년 7월 성남에 입단하며 K리그에 발을 들여놓은 몰리나는 2010년에 성남소속으로 첫 어린이날 경기를 치렀지만, 현재 소속되어 있는 서울에게 0-4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듬해인 2011년. 어린이날 하루전에 열린 알아인과의 경기에선 풀타임 출전했지만 아쉽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엔 쾌조의 컨디션을 달리고 있는 몰리나이기에 이번 어린이날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 예상된다.

 

 

 

 

 

 

 

2006년 12월 결혼해 슬하에 딸 1명과 5월에 출산 예정인 아이가 있는 현영민은 울산소속이던 2004년 어린이날부터 지금까지 어린이날 경기에 모두 출전하고 있다. 현영민 역시 수비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지금처럼 성실한 플레이로 제몫을 다했고, 지난 2010년.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이 모인 성남과의 어린이날 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올해엔 레프트백으로 복귀한 아디와 포지션 경쟁 탓에 그의 출전 여부는 다소 불투명하지만, 출전 기회가 온다면 변함없이 성실한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2003년 12월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최태욱 역시 어린이날 경기에서는 아직 공격 포인트가 없다. 2004년 어린이날. 인천 소속으로 어린이날 첫 경기를 치른 최태욱은 이후 포항과, 전북을 거치며 총 3번의 어린이날 경기를 치렀지만, 인상깊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 FC서울의 특급 조연 역할을 수행중인 최태욱은 후반 팀에 활력이 필요할 때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날 경기는 항상 화려한 볼거리와 멋진 승부로 채워진다. 올해 포항과 맞붙는 어린이날 경기 역시 경기장을 찾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비록 자녀가 있는 선수들은 올해도 자신의 자녀와 어린이날을 함께 보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떤 어린이 에겐 어린이날 잊지 못할 추억이 될지도 모를 이 날 경기를 위해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과연 올해 어린이날 경기에는 어떤 멋진 모습들이 어린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되며, 많은 어린이들이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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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04 00:14

 

 

 

 

과거 등번호는 선수들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이는 축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등번호는 그저 선수들의 포지션을 구분하기 위해 존재했고, 1958년 브라질 대표팀은 단순히 알파벳 순으로 선수들에게 등번호를 지급하는등, 등번호는 단순히 등 뒤에 달고 있는 번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등번호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등번호는 그 선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등번호를 얻기 위해 다른 선수와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벌어진다. FC서울 선수들 역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뛴다. 몇몇 선수들은 별 의미없이 번호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등번호를 동기 부여 삼아,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볼 수 있다. 작년 필자는 박용호, 최태욱, 문기한, 김동진의 등번호에 담긴 의미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엔 이들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등번호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등번호를 선택한 고명진의 22번

 

 

 

 

2009년까지 16번을 달고 뛰었던 고명진은 2010년을 앞두고 등번호를 22번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고명진이 좋아하는 선수가 카카인데 카카가 AC밀란 시절 달았던 등번호가 22번이라 자신도 22번을 선택한 것이다. 카카의 그라운드 안팎의 모습이 모두 완벽해 자신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고 밝힌 적 있는 고명진은, 이제 FC서울의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으며 서서히 카카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고명진이 22번을 다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선배이자 팀의 주장이었던 김치곤이 22번의 주인이어서 쉽게 22번을 희망하지 못했던 고명진은, 김치곤이 울산으로 떠나자 22번을 달 기회가 생겼지만, 2010년 팀에 입성한 하대성이 먼저 22번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하대성이 22번을 양보해서 고명진이 22번을 다는데 성공했다. AC밀란을 떠나 현재 레알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카카는 22번 대신 8번을 달고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고명진도 8번으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 FC서울 8번의 주인인 아디 역시 등번호에 사연이 있다.

 

 

 

2. 동료의 추천으로 달게 된 아디의 8번

 

 

 

 

 

2006년 FC서울에 입단한 아디는 30번을 배정받았다. 당시 8번은 백지훈(現상주)이 달았고, 백지훈이 시즌 중반 팀을 떠나자, 8번은 성남에서 이적해온 용병 공격수 두두의 차지가 되었다. 해가 바뀐 2007년. 두두는 최용수의 은퇴로 공번이 된 11번을 선택했고, 자신이 달았던 등번호 8번을 아디에게 추천했다.

 

 

등번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아디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아디는 많은 사람들이 잘알다시피 8번을 달고 펄펄 날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아디는 8번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지금까지 유지한다고 밝혔다.(이쯤 되면 고명진이 8번을 달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반면 아디에게 행운을 내준(?) 두두는 이와는 다른행보를 보인다. 2007년 평범한 모습을 보인 두두는 결국 2008년 성남으로 돌아갔고, 그해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리빌딩을 원한 신태용 감독에 의해 방출당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된다. 이후 일본 오미야 아르디쟈에 입단한 두두는 18경기 1골이라는 부진에 시달렸고, 설상가상 무면허 음주사고까지 저지르며 퇴출되기에 이른다. 현재 그는 브라질 2부리그 두케 드 카샤스라는 조그마한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3. 프로에 들어와서 계속 달았고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선택한 현영민의 13번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현영민은, 2004년 프로 데뷔 후 줄곧 달았던 13번을 FC서울에서도 계속 달고 뛰고 있다. 현영민은 13번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프로 입단 후 13번을 달고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13번을 유지한다고 밝혔고, 러시아 제니트에 진출했을 때도 그는 13번을 달고 뛰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유지만, 현영민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이 활약하던 시기에 달았던 등번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호를 계속 유지하면 팬들에게 쉽게 기억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청용 역시 27번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FC서울에서 27번을 달고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볼튼에서도 27번을 유지하고 있고, 최효진도 프로 데뷔 후 2번을 달고 좋은 모습을 보여서, 지금도 2번을 유지하고 있다.

 

 

 

4. 팀이 1등을 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각오가 담긴 김용대의 1번

 

 

 

골키퍼가 1번을 선택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FC서울의 수문장 김용대의 1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성남을 떠나 2010년 FC서울에 입단한 김용대는 1번을 선택하면서, “K리그 최고의 팀에서 1번이라는 상징적인 번호를 달게 된 만큼 올해는 팀이 1등을 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용대의 이러한 각오는 2010년 0점대 방어율(0.94)을 기록하며 K리그 베스트일레븐 골키퍼 부문에서 수상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며, 팀 역시 그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와 컵대회를 동시에 들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K리그 대회 요강에 따르면 ‘골키퍼는 반드시 1번을 달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필드플레이어가 1번을 다는 것도 가능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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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4.03 23:56






잉글랜드 최고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는 ‘꿈의 극장’(The Theatre of Dreams) 이란 별칭이 붙어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인물인 바비 찰튼이 이곳을 ‘꿈의 극장’ 이라고 부른 것을 시초로 하지만 그만큼 이곳에서 극적인 명승부가 많이 연출 되었기에 이런 영광스런 별칭이 아직까지도 불리워 지고 있다.


하지만 극장은 잉글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K리그에도 극장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울 극장’. FC서울은 그간 여러 경기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에게 ‘서울 극장’ 이라고 불리고 있다. 뛰어난 경기력 외에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며, 많은 팬들을 즐겁게 했던 서울. 축구에서 극적인 순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개최한다면 아마 FC서울은 대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지금부터 많은 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역대 최고의 ‘서울 극장’ 경기를 알아보자.



1. 2009년 9월12일 vs 전북 2-1 승

부제 : 팬들의 사랑은 귀네슈도 춤추게 한다.

주연 : 수호신, 귀네슈







2009년 하반기에도 FC서울은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이청용이 7월에 볼튼 원더러스로 떠나긴 했지만 데얀, 정조국, 기성용, 김진규, 김치곤 등으로 구성된 스쿼드는 여전히 화려했다. 순위 역시 8월말 기준으로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서울이지만 포항과의 컵대회 4강전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서울은 심판의 판정 논란 속에 2-5로 패하며 탈락했고, 김치우는 상대 선수의 머리를 받는 행위로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귀네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말을 했고, 이로 인해 연맹으로부터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받는 등 악재가 겹쳤다. 결국 서울은 뒤이어 열린 리그 경기에서 울산과 성남에게 연패를 당하며 3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다음으로 맞딱 뜨린 상대는 전북. 당시 전북은 이동국, 김상식 등을 앞세워 리그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팀이었다. 게다가 서울은 3연패를 당하고 있던 반면 전북은 2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서울로선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었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당시 7위인 포항과도 승점이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또 다시 패배한다면 리그 순위가 급격히 추락할 수 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승리는 절대조건이었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차출되었다가 전날 복귀한 데얀 까지 선발 출전시키며 필승의지를 불태운 서울이었지만, 전북은 막강했고, 오히려 전반 막판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게 된다. 전반 40분 루이스가 강력한 슈팅으로 첫 골을 터트린 것이다. 김한윤이 몸을 날려 루이스의 슈팅을 막아내긴 했지만 공은 이미 골라인을 넘어간 후였다. 하지만 서울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고명진이 빠지고 김승용이 투입되며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은 서울은 후반 초반 데얀과 기성용이 강력한 슈팅으로 전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은 후반 8분 드디어 전북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기성용의 코너킥이 수비 맞고 흘러나오자 공격에 가담했던 김치곤이 골망을 찢을 듯한 강력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승부가 원점이 되자 양 팀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공격적인 팀 컬러는 경기를 치열한 접전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후반 30분 승부를 가르는 골이 터진다. 기성용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키퍼를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결국 서울은 전북을 2-1로 물리치며 경기장을 찾은 36764명을 열광시켰다.


이 날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은 데얀은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돌아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해 역전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고, 미드필더로 출전한 고요한은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엄청난 활동량으로 팀의 승리에 숨은 영웅이 됐다.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극적인 경기에 클라이막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같은 모습은 경기에서만 나왔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팬들은 ‘귀네슈 감독 특별 티셔츠’ 판매를 통해 귀네슈 감독이 부과받은 제재금 모금 운동을 벌였고, 경기 전엔 귀네슈 감독의 대형 응원걸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에 그 동안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던 귀네슈는 “월드컵에서 3위를 했을 때보다 감동적이다.” 라는 소감을 밝히며 차가웠던 마음을 녹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네슈의 대형응원걸개가 올라오는 장면. Don't leave us! (우리 곁을 떠나지 마세요!)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2. 2010년 10월9일 vs 경남 3-2 승

부제 : 분유캄프. 아버지의 이름으로

주연 : 정조국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10월. FC서울은 경남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경남은 승점 46점으로 2위, 서울은 승점 42점으로 3위였다. 순위를 지키려는 팀과, 끌어내리는 팀 간의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다. 경기 전 예상은 서울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다. 우선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서울이 앞서는 데다 당시 서울은 홈에서 14연승을 기록할 정도로 안방불패의 면모를 보였기에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 대부분은 서울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초반부터 경기는 서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전반 2분 만에 경남 서상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선제골을 내준 서울은 설상가상 전반 8분엔 아디가 광대뼈 함몰 부상을 당하는 불운까지 맛봐야 했다. 그 뒤 아디 대신 투입된 김동우는 몸이 덜 풀렸는지 전반 12분엔 백패스 미스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 뻔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서울에게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이 후 공격수들이 힘을 내며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되었던 데얀, 제파로프, 이승렬등은 줄기차게 슈팅을 때리며 골을 노렸지만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병지가 지키고 있는 골문이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후반 22분 최태욱 대신 정조국이 투입되며 골문이 열릴 조짐이 보였다. 당시 정조국은 아들을 얻은 후로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고, 팬들에게 ‘분유캄프’ 라고 불리고 있을 때였다.


결국 정조국이 일을 냈다. 후반 30분 정조국이 날린 호쾌한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 아랫 부분을 때리고 골문에 꽂힌 것이다. 동점골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서울의 공격은 무서웠다. 동점골이 터진 지 5분 만에 하대성이 정조국의 패스를 받아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하지만 서울은 아직 만족하지 않은 듯 4분 후엔 최효진의 패스를 받은 정조국이 팀의 세 번째 골이자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겨우 9분 동안 세 골을 폭발 시킨 서울의 공격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했으며, 불안한 출발을 딛고 역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은 후반 43분 경남 김인한 에게 한 골을 더 허용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허용하지 않은 채 3-2로 경기를 마쳤다. 이 날 승리로 서울은 리그 2위로 도약하며 홈 15연승까지 달성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3. 2010년 12월1일 vs 제주 2-2 무 (챔피언결정전 1차전)

부제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주연 : 제파로프, 김치우










2010년 리그 1위에 성공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FC서울은 통산 4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선착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상대팀인 제주에게도 시즌 전적에서 2승1무로 앞서 있었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서울의 우세를 점쳤다. 게다가 아디 역시 광대뼈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는 등 선수들도 우승에 대한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제주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치르며 서울은 우승을 향한 첫 걸음을 뗐지만 당시 구자철, 김은중, 박현범 등이 소속된 제주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기에서도 오랜 시간 실전 경기를 치르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 듯 서울 선수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모습이었고, 결국 전반 26분 배기종에게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일격을 당하며 선제골을 내주게 된다. 순식간에 흐름은 제주로 넘어갔고, 제주는 후반 6분 구자철의 패스를 받은 산토스가 왼발 슈팅으로 추가골까지 성공하며 0-2까지 달아났다.


다급해진 서울은 후반 10분 이승렬과 김동우를 빼고 김치우와 정조국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결국 이 교체 투입이 주효해 서울은 만회골에 성공했다. 김치우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왼발 슛을 김호준이 간신히 선방했지만, 흘러나온 볼을 데얀이 골대로 밀어 넣으며 스코어를 1-2로 만든 것이다. 경기 내내 무거운 몸놀림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데얀은 이 한골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려면 한 골이 더 필요했다. 서울은 그 후로도 줄기차게 공격을 시도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주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결국 후반 추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패색이 짙었던 후반 47분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제파로프가 선수들이 몰려 있는 페널티 에이리어로 크로스를 올리는 대신, 빈 공간에 있었던 김치우에게 정확한 패스를 내줬고, 김치우가 이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제주의 골망을 흔든 것이다. 극적인 동점골에 서울 벤치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제주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결국 경기를 2-2로 마치며 서울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숨겨진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아보자면 동점골을 합작한 제파로프와 김치우 모두 왼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두 선수 모두 오른발을 사용해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팀이 가장 가장 필요로 할 때 평소 잘 사용하지 않았던 오른발로 어시스트와 득점에 성공한 제파로프와 김치우의 모습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패배할 뻔한 경기를 극적인 무승부로 바꾼 서울은 결국 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통산 4번째 우승트로피를 자신들의 진열장에 진열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4. 2011년 5월8일 vs 상주 4-3 승

부제 : 군인정신도 막지 못한 서울의 공격본능.

주연 : 데얀, 현영민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맞이한 2011 시즌. 당연히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FC서울의 시즌 초 행보는 높은 기대만큼이나 실망을 안겨주었다. 초반 부진에 대해선 서울 팬들에겐 안좋은 기억인 만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최용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 이후 서울은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최용수의 데뷔 전인 제주전에서 2-1로 승리한 서울은 주중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UAE의 알 아인을 3-0으로 제압하며 상승세를 탔다. 이어서 만난 상대는 상주. 당시 상주는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김정우가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하고 있었고, 서울 출신의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팀이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 분명 했으나 서울은 초반부터 강력한 공격으로 상주를 압박했다. 결국 전반 8분 방승환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가 자책골을 넣으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서울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2-1로 다시 앞서나갔다.


이 후 경기는 골 공방전이 펼쳐지며 농구 경기를 연상케 했다. 후반 1분 만에 상주 최효진이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반격에 나선 서울이 후반 28분 김영삼의 헤딩 미스를 틈 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다시 앞서갔다. 그 후 김정우가 1분 만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양 팀은 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3-3 으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후반 43분. 서울은 아크 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로 나선 선수는 교체 투입된 현영민. 현영민의 발을 떠난 공은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서울은 4-3으로 다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결국 현영민의 프리킥 한방은 승부에 마침표를 되었고, 서울은 3연승에 성공하며 좋은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상주에 끈질긴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강력한 공격본능으로 상주의 추격을 잠재우며 극적인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덤으로 화끈한 골 잔치를 벌이며 예전의 공격력까지 회복한 서울은 대반격의 신호탄을 쏘며, 5월에만 6승1무2패라는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5. 2011년 8월13일 vs 전남 1-0승

부제 : 한여름밤의 환상적인 버저비터.

주연 : 몰리나, 최용수










뜨거운 여름. FC서울의 2011년 여름 역시 뜨거웠다. 초반 부진했던 모습은 훌훌 털어버리고, 4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순위도 리그 4위로 끌어올렸다. 경기 내용 역시 화끈했다. 연승 기간 동안 무려 11골을 기록, 경기당 평균 2.75골을 넣으며 내용과 결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기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5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상대는 전남. 당시 전남도 리그 5위를 달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임엔 분명했으나, 서울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또 전반기에 당한 0-3 패배를 설욕해야 했기에 동기 부여도 충분했다.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데얀, 몰리나, 고명진 등을 앞세워 강력한 공격으로 전남을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전남의 저항 역시 거셌다. 당시 리그 최소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수비진과 전 국가대표 수문장 이운재가 버티고 있는 골문은 서울에 쉽사리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서울은 최태욱을 투입 하며 공격을 강화했지만, 이운재는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진리를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의 소나기 슈팅을 연달아 선방하며 경기를 0의 행진으로 몰고 갔다.


결국 스코어가 0-0 으로 유지된 채 경기는 추가 시간을 맞이했다. 후반 48분 전남이 코너킥을 얻어내며 서울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도리어 이것이 서울에 기회로 작용했다. 코너킥이 서울의 역습으로 이어지며 최태욱이 특유의 빠른 돌파로 전남의 우측면을 파고 들었고, 중앙으로 찔러 준 낮은 크로스를 데얀이 이어받아 정지시킨 볼을 몰리나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왼발 슈팅을 날리며 골을 기록한 것이다.


극적인 골에 팬들은 환호했고, 최용수 감독은 골을 넣은 몰리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다 바지가 찢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울은 0-0으로 비길 뻔한 경기를 1-0 승리로 이끌며 5연승을 질주 했다. 이 후 에도 서울은 제주와 강원을 연파하며 총 7연승으로 2011 K리그 팀들 중 최다 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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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13 02:38
by 도란도란도란 2011.09.28 18:01







FC서울이 1차전 패배를 되갚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알이티하드에 4강 진출권을 내주었다.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알이티하드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후반 몰리나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지만 1차전 1-3 패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합계 2-3으로 뒤지며 8강에서 또 한번 주저 앉았다. 이 날 패배로 서울은 올해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마무리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오늘의 선발진



1차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 선발진에 변화를 주었던 최용수 감독대행은 실패로 돌아가자 2차전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선발진을 구성해 알이티하드에 맞섰다. 대전전과 비교해 보았을때 고광민 대신 최태욱이 스타팅 멤버가 된 것을 제외하곤 같은 멤버가 출전했다.



하지만 전반 초반엔 알이티하드가 하자지를 중심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전반 2분 우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헤딩 슛으로 연결했지만 김용대가 막았고 전반 12분엔 웬델의 패스를 받은 하자지가 공을 띄운 뒤 자신의 장기인 하프 발리 슈팅으로 골을 노렸지만 김용대가 간신히 쳐냈다.


전반 17분엔 알누마레의 돌파를 아디가 태클로 저지했고 전반 21분엔 웬델에게 중거리 슈팅을 허용하는 등 서울은 전반 초반에 주도권을 내주었지만 이후 점유율을 높임과 동시에 측면에서 몇 차례 좋은 돌파를 보이면서 흐름을 찾아오는듯 했다. 전반 26분 데얀이 날린 왼발 슈팅은 키퍼 정면으로 날아갔고 전반 42분엔 몰리나가 수비진을 뚫고 데얀에게 침투패스를 내줬지만 패스가 약간 길어 골키퍼가 차단했다. 결국 양 팀은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승리를 향한 의지를 보인 서울. 하지만 다소 늦게 터진 골



최용수 감독대행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현영민을 빼고 고광민을 투입하며 공격진을 강화했다. 서울은 후반 초반부터 맹렬한 공격을 펼치며 반드시 역전극을 펼쳐보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후반 1분 김동진의 크로스를 받은 데얀의 헤딩 슈팅은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갔고, 후반 5분 데얀이 얻은 프리킥을 몰리나가 반대편 포스트를 보고 슛을 날렸지만 골대를 살짝 넘어갔다. 후반 21분 웬델의 파울로 다시 한번 프리킥을 얻은 서울은 몰리나가 강한 왼발 인프런트킥 으로 골을 노렸으나 골키퍼가 간신히 쳐내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후반 29분엔 최태욱을 빼고 김태환을 투입해 스피드를 강화한 서울은 후반 37분엔 수비형 미드필더 최현태를 빼고 공격수 강정훈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결국 고대하던 첫 골은 후반 39분에 터졌다.


김태환의 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굳게 닫혀있던 알이티하드의 골문을 열어젖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골세레머니 할 틈 도 없이 진영으로 복귀한 서울은 추가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중동 특유의 시간 끌기 방법인 이른 바 ‘침대 축구’ 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후반 45분 코너킥 찬스에서 나온 강정훈의 헤딩 슛은 골대를 외면하며 아쉬움을 삼키키도 했다. 결국 더 이상 골은 터지지 않았고 경기는 1-0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시아 챔피언의 꿈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 서울은 이제 주말 K리그에서 수원과 슈퍼 매치를 갖게 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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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9.28 02:44





리그 연승은 아쉽게도 깨졌다. 하지만 아쉬워하고 있을 틈이 없다. 바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전 1차전 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15일 오전 2시 35분(한국시간) 사우디 제다에 위치한 프린스 압둘라 알 페이샬 스타디움에서 알이티하드를 상대로 원정 경기를 치르게 된다. 2009년 움살랄 에게 패배하며 8강에서 좌절했던 서울은 이번엔 반드시 8강의 벽을 넘겠다는 각오다.


7연승의 상승세를 달리던 서울은 대구에게 덜미를 잡히며 연승 행진을 마감 했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은 인터뷰에서 ‘7연승을 달리다가 1경기 패배했다고 알 이티하드에게 마저 패배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 여전히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대성과 현영민이 각각 경고누적과 발목부상으로 이번 경기엔 결장하게 되었지만 데얀, 몰리나, 고명진, 김용대등 주축 선수들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원정 경기인 만큼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을에 접어들며 선선한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중동은 아직도 40도를 오르내리며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다. 또 중동특유의 심한 텃세도 걱정거리다. 이기고 있을 땐 경기 막판에 고의로 시간을 끄는 이른 바 ‘침대축구’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관중들은 홈팀에게 일방적인 응원을 퍼붓는 것은 물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원정팀을 방해하기도 한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사우디와의 원정경기에서 이운재(전남)가 레이저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얼마 전 열렸던 쿠웨이트전에서도 코너킥을 차러 가려는 기성용(셀틱)에게 레이저가 발사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들을 서울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 내가 아닌 팀을 위해 헌신하는 축구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지금의 분위기만 유지한다면 1차전에서 승전보를 울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리그는 이제 막 개막했기에 알이티하드의 경기력이 정상 수준이 아닌 것도 서울에겐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알이티하드 선수들 (사진출처- AFC 홈페이지)



알이티하드는 어떤 팀?



192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를 연고로 창단한 알이티하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알이티하드는 리그에서 8회 우승을 기록했고 2000년대 이후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선 3번 결승에 올라 2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사우디를 넘어 아시아의 강호로 인정받는 팀이다.

K리그와의 인연도 남다른데 지난 2004년 성남과 맞붙은 결승전에선 홈에서 1-3으로 경기를 내줬지만 성남 원정에선 무려 5-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당시 결승전은 홈앤드어웨이 방식이었다.)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루이스 피구가 잠시 몸 담기도 했던 알이티하드는 지난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알 타원을 상대로 5-3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이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선수로는 미드필더 모하메드 누르가 제일 눈에 띈다. 1996년 알이티하드에서 데뷔해 지금까지 뛰고 있는 베테랑인 누르는 저돌적인 돌파와 다부진 체격이 돋보이는 선수로 지금까지 6번의 리그우승, 2번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선수이다. 지난 2009년에는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사우디 국가대표로 2002, 2006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실력파다.


데얀 역시 인터뷰에서 누르가 가장 눈에 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 2005년 AFC 올해의 선수 수상자인 수비수 알 몬타샤리, 쿠웨이트 출신의 측면 공격수 파하드 알 에네지, 사우디의 보물이라 불리는 공격수 나예프 하자지등도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박용호(위) 하마드 알 몬타샤리(아래)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박용호vs알 몬탸사리 팀의 두 주축 수비수들의 맞대결



1차전 승리가 중요한 만큼 양 팀 모두 경기 초반엔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탐색전 위주의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양 팀의 주전 수비수로 출전이 유력시 되는 박용호와 알 몬탸사리에게 시선이 쏠린다.


각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두 선수는 팀의 명예를 걸고 후방을 든든히 지킬 것이다. 이들의 단단한 수비는 양 팀의 승패의 향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선수가 더 강력한 수비로 팀의 승리에 기여할지 주목 된다.



Bonus tip FC 서울 선수 중 중동을 경험해 본 선수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역시 중동을 경험해 본 선수가 중동에 적응하는데 한층 더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FC서울 선수 중에서 중동리그를 경험해 본 선수가 있을까? 답은 ‘그렇다’ 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데얀과 몰리나. 데얀은 K리그 입성 이전인 지난 2006년 임대 신분으로 사우디 알 알리에서 6개월간 활약한 바 있다. 당시 알이티하드를 상대했던 데얀은 원정 경기에서 한 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당시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데얀은 이번 경기에서도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골을 노릴 것이다. 참고로 지난 알아인과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원정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것도 데얀이었다. 몰리나 역시 중동에서 활약한 바 있다. 몰리나는 지난 2004년 또 다른 중동 국가인 UAE 알아인에서 1년간 활동한 바 있다.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데얀과 몰리나. 이번 경기에서도 팬들은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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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9.14 03:02
 





월드컵 예선으로 한 주 휴식을 가졌던 K리그가 드디어 재개 된다. FC서울은 9월 첫 경기로 대구를 상대로 경기를 갖는다. 다음 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 진행되는 관계로 원정 경기를 떠나는 팀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리그 일정이 조정되었다. 따라서 사우디로 원정을 떠나는 서울과 일본으로 원정을 떠나는 전북이 주말이 아닌 금요일에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서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현재 7연승을 구가하며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데얀(19골 6도움), 몰리나(7골 10도움)의 공격 콤비는 날이 갈 수록 파괴력을 더하고 있고 수비진에서도 현영민이 라이트백에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서울의 마지막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내친 김에 K리그 최다 연승인 9연승(2003년 울산, 성남)에도 도전 하겠다는 기세다. 전반기 홈에서 0-2 패배를 당했던 서울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겨 전반기 패배의 빚을 갚겠다는 각오로 경기를 준비 하고 있다.


고춧가루 부대로 유명한 대구지만 현재 악재가 겹치고 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일부 주축 선수들이 방출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전반기 승리의 주역인 윤시호(윤홍창) 마저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아 출전이 불투명하다. 하지만 대구를 무시할 순 없다. 이번 시즌 포항에 1승 2무로 우위를 점하고 있고 전북 원정에서도 2-2 무승부를 거둔 적 있다.


따라서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그리고 6강에 들기 위해선 9월 성적이 정말 중요한 만큼 9월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할 것이다.


                                데얀(위), 김현성(아래) (사진출처 - 대구FC)

 



데얀vs김현성 팀의 두 주축 공격수들의 맞대결



현재 K리그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를 꼽으라면 단연 데얀일 것이다. 현재 데얀은 K리그에서 19골을 터트리며 득점랭킹 1위에 올라있다. 이러한 활약은 몬테네그로 대표팀 재승선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며 지난 유로2012 예선전 웨일즈와의 경기에선 요베티치(피오렌티나)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에도 데얀의 발 끝에 시선이 모이는건 당연하다.


김현성 역시 올 시즌 5골 2도움을 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올림픽 대표에도 뽑혀 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할 예정이다. 현재 팀을 이끄는 두 공격수. 과연 어떤 공격수가 팀의 승리를 부르는 골을 터트릴 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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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9.08 02:27





파죽지세(破竹之勢) 현재 FC서울의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아닐까? 그 만큼 현재 서울의 행보는 거침 없다. 서울은 7월9일 상주전부터 8월27일 강원전까지 경기를 모조리 승리로 장식하며 7연승을 구가중이다. 덕분에 리그 순위 역시 3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2위 포항을 승점 1점차로 추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울의 상승세의 요인은 무엇일까? 월드컵 예선으로 K리그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지금, 어떤 요인들이 서울을 7연승으로 이끌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4-2-3-1 전술 정상 궤도에 오르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올해 4-4-2 전술과 4-2-3-1 전술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착이 된 4-4-2와 달리 4-2-3-1 전술은 당초 서울엔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지난 5월 21일 대구전에서 4-2-3-1 전술을 처음으로 사용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자 결국 후반엔 4-4-2로 회귀 했고, 경기마저 0-2로 패하자 4-2-3-1 전술은 다시 쓰이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 되었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은 간혹 4-2-3-1 전술을 사용하며 팀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전남전 승리로 가능성을 보였다.


당시 서울은 데얀을 원톱에, 최종환과 몰리나를 좌 우 측면에 세우고, 고명진을 공격형 미드필더에, 하대성과 최현태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배치하는 4-2-3-1 전술을 사용했는데, 몰리나가 결승골을 터트리며 1-0승리를 거둔 것이다.


제주와의 원정경기에서 역시 같은 전술을 사용했던 서울은 제주를 3-0으로 대파했고, 강원 마저 6-3으로 꺾으며 4-2-3-1 전술이 팀에 정착 되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두 개 전술의 완벽소화로 인해 FC서울은 좀 더 전술적 다양성을 구사 할 수 있게 되었다.








2. 멈출 줄 모르는 데얀의 골 퍼레이드



데얀은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현재 리그 성적은 19골 6도움으로 K리그 득점랭킹 1위에 올라 있다. 이 추세라면 생애 첫 K리그 득점왕은 물론 작년 시즌 기록했던 한시즌 최다 공격포인트(19골 10도움)는 무난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데얀이지만 날씨가 무더워지는 5월 이후 득점력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현재도 기복 없는 골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7연승 기간에도 데얀의 득점은 멈출 줄 몰랐다. 상주전 2골을 시작으로 포항전 역시 2골, 광주전 2골 1도움, 전남전 1도움, 강원전 2골 1도움을 올리며 연승 기간동안 8골 3도움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데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기복 없는 꾸준함에 있다. 그의 득점은 강팀, 약팀을 가리지 않는다. 또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며 다양한 각도, 위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위력적인 슈팅은 상대 수비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서울의 주축공격수인 데얀은 이제 서울 승리의 절대적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3. 몰리나 ‘몰느님의 귀환’



시즌 초 서울의 전술에 녹아 들지 못하면서 계륵 취급을 받기도 했던 몰리나. 하지만 이제 그를 계륵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몰리나는 연승 기간 동안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광주전 1골 1도움을 올린것을 시작으로 울산전엔 1도움, 전남전엔 극적인 버저비터골로 무승부로 갈 뻔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제주전엔 2도움, 강원전엔 K리그 한 경기 최다 공격 포인트(3골 3도움) 및 득점, 도움 동시 해트트릭 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가 연승 기간 동안 기록한 공격 포인트는 5골 7도움, 연승 기록 이전까지 그가 기록한 공격포인트가 2골 3도움 이라는걸 감안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 ‘데몰리션 듀오’ 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데얀과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공격에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용수 감독대행 역시 ‘앞으로 몰리나는 더욱 폭발적인 경기가 가능하다’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참고로 데얀과 몰리나가 함께 공격포인트를 기록할 시 서울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다.






4. 라이트백 고민을 해결한 현영민



2010 시즌 종료 후 최효진, 이종민의 동반 입대와 최원권의 제주 이적으로 인해 서울의 라이트백은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그간 이규로, 최현태, 김태환등이 해당 포지션을 소화했지만 만족 스런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최용수 감독대행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현영민을 라이트백으로 세우고 아디를 원래 포지션인 레프트백에 포진시키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현영민은 이후 제주전, 강원전에서 연달아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며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또 오버래핑시엔 정확한 킥력을 무기로 적극적인 돌파가 돋보이는 아디와 함께 공격 루트의 다양성을 가져오기도 했다. 현영민의 이러한 활약은 FC서울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기에 충분했다.








5. 이름없는 영웅들의 활약



축구는 팀 스포츠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봤을때 서울의 연승 행진을 이끈건 데얀과 몰리나지만 이들이 빛 날수 있었던 이유도 이름없는 영웅들. 즉 언성 히어로(Unsung Hero)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선수로 고명진, 하대성, 최태욱을 꼽을 수 있다.


고명진은 상주전 2도움을 시작으로, 포항전 1도움, 광주전 1도움을 기록하며 서울의 특급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고, 데얀과 몰리나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던 울산전에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하대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포지션 특성상 그의 활약이 수치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1차 저지선 역할을 맡고 있는 그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번 시즌 3골 2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공격에도 재능이 있는 하대성이지만 그는 강원전을 앞두고 기자 회견에서 ‘몰리나에게 우리가 좀 더 수비에 신경쓸테니 공격에 힘을 쓰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고 밝히기도 했다. 하대성의 팀을 위한 헌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승청부사’ 최태욱의 복귀도 서울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비록 이번 시즌엔 아직 공격포인트는 커녕 풀타임 출전 기록조차 없지만, 베테랑 최태욱의 명품 조연 역할은 무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남전 몰리나의 골은 최태욱 특유의 빠른 돌파가 없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골이었다. 그리고 제주전 초반엔 다소 부진하자 최용수 감독대행은 최태욱을 전반 31분에 교체 투입했고 이 후 공격이 살아나며 3-0 승리를 가져 올 수 있었다.


작년 시즌 중반 팀에 합류해 6골 2도움을 올리며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최태욱. 정조국(옥세르)역시 ‘최태욱의 합류는 팀에 부족한 2%를 채워줬다.’ 며 그의 활약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엔 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반부터 합류하게 되었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이타적인 플레이로 팀에 보탬이 된다면 이번 시즌 서울의 부족한 2%를 매우는 일도 최태욱의 몫일 것이다.





서울이 현재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불안요소는 남아 있다. ‘데몰리션 듀오’가 막히면 이렇다 할 공격루트가 없다는 점, 그리고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 재개 되면 또 다시 K리그와 병행해야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우려가 된다. 하지만 현재 서울의 행진엔 거침이 없다. 지금의 흐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서울의 연승 기록 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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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09.05 03:55


2011.7.17
포항스틸야드
FC서울 VS 포항
2:1
FC서울 승리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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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7.18 11:02


 


 여러분이 트위터를 통해 보내주신 질문들을 모아모아 성실맨 현영민 선수에게 들어보았습니다. 톡톡 튀는 질문과 현영민 선수의 유쾌한 답변까지. '트위터로 말해요' 현영민 편.  매치데이매거진에 이어서 놓치면 안 되겠죠?

 많은 질문 중에 현영민 선수가 직접 선택한 인상 깊은 질문은 트위터 아이디 @hahabeak님으로 선정되셨습니다. 현영민 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매치데이매거진은 롱드로인으로 전해집니다.













Q1.


@HyunMyung2 영민이형만의 독특한 숏스타킹 스타일은 구단에서 준비해주나요 아님 영민이형 자체제작인가요? 그리고 숏스타킹에 어떤 사연이있나요?? 징크스라던가ㅎㅎ


 스타킹은 어렸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그렇게 신어왔어요. 따로 특별한 스타킹을 신는 것은 아니고 아대 안쪽으로 스타킹을 접어 넣어 신는 스타일이에요. 스타킹을 끝까지 올려 신으면 종아리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늘 그렇게 신다보니 경기사진을 보면 어렸을 적부터 항상 스타킹이 접혀있더라고요.




Q2.


@XD_ram 영민오빠...부인께서도 역시 곱디고운 미스코리아출신이신데 축구선수는 유독 예쁜부인을 많이 두고있는 것 같아요. 그쵸? 어떤 매력이 미녀들을 끄는걸까요~.~!!!....(에이 전 틀렸네요... 흑흑)


 음.. 먼저 미녀들이 스포츠 선수를 좋아해서 만나는 것 같아요.(웃음) 사실 스포츠 선수가 남자다운 매력을 많이 보일 수 있잖아요. 게다가 막상 스포츠 선수를 만나보면 굉장히 순진하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주변 커플들 얘기를 들어봤을 때 정말 의외로 순진하고 성실하단 얘기를 많이들 해요. 그러다가 경기장에서 볼 때는 데이트 할 때와 다르게 남자다움을 느낀다고요. 오래된 얘기이긴 하지만 제 아내도 연애할 적엔 그렇게 말했었어요.





Q3.


@sanghee61 처음 FC서울 입단했을때 나한테 제일 잘해준 선수랑 제일 못해준 선수!!ㅋ



 

 못해준 선수는 없어요. 제가 이미 나이가 들어 왔기 때문에 다들 잘해줬어요. 낯설어 할 겨를이 없이 모든 선수들이 친근하게 대해줬고 저 역시 고참이었기 때문에 어색함 없이 친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다가갔던 것 같아요. 사실 제 나이가 있는데 선수들이 저한테 못해줄 수는 없잖아요?(웃음)





Q4.


@MoonMiseon [팬들이준 선물중 가장 경악하게 만든 선물은??]ㅎ질문이요

 제가 어렸을 때는 대표팀도 하면서 팬클럽 같은 모임이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나름 귀염상이라(웃음) 4~50명 정도 모여서 생일파티도 해주고 CD플레이어 같은 고가의 선물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따로 경악할만한 선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선물이 돼요. 그리고 경기할 때 모임 '서울아빠'에서 해주신 걸개라든가 응원을 보면 힘이 납니다.





Q5.


@6002dodo 에프씨 서울에서 나의 얼굴순위는! 솔직하게요!!!!!!!


 

 저는 제 얼굴이 잘생겼다고 한번도 얘기해 본적이 없어요. 우리 팀에는 김용대, 박용호, 김동우 선수 등 잘생긴 선수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뭐 다 비슷비슷한 것 같고. 저는 중간정도랄까요? (기자 : 현영민 선수가 생각하는 못생긴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못생긴 선수는............ 팀 불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습니다.(웃음) 제 얼굴 순위는 중간정도로 해주세요.





Q6.


@hahabeak 골을 차기전에 공에 입맞추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ㅋㅋ



 

 예전에 공을 차기 전에 '원하는 방향으로 들어가 달라'는 심정을 담아 공에 입 맞추고 찼던 것이 어시스트로 이어진 경험이 있어요. 우리 팀에 득점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내다보니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Q7.


@ksylch1005 자기가 가장 자신있는 몸(?)부위는??


 

 제가 키는 180밖에 안되지만 다리는 굉장히 길어요. 아내가 연애할 적에 제 골반에 반했다고 했거든요. 벌써 그게 6,7년 전 이야기네요. 지금은 그 때보다 살이 많이 쪘지만, 그래도 골반이 가장 자신 있습니다.





Q8.


@SweetAdonis 현영민 선수에게 질문!! “영민선수와 현태선수가 롱드로잉을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ㅎㅎㅎ

 

 시합을 해본적은 없어요. 롱드로인이 장점이 돼서 많은 선수들이 던지면 팀에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롱드로인이 정말 잘만 던지면 코너킥과 효과가 비슷하잖아요. 저도 그 친구(최현태) 나이 때는 굉장히 멀리 던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친구도 어깨가 좋아서 그런지 잘 던지더라고요.(웃음)

 저는 어깨가 아직 롱드로인을 할 정도로 회복되지 않았지만 빨리 재활해서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상=FC서울 명예기자 박재욱 alfenhime@nate.com

/글=FC서울 명예기자 김도란 kdr05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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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도란 2011.07.13 02:49


2011.7.0 8:00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상주
3:2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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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7.11 18:41

2011.5.8 상주시민종합운동장
K리그9라운드
FC서울 VS 상주상무
4:3 FC서울 승리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임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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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10 00:44





2011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였다.

FC서울은 8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1 K리그’ 9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7골을 서로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이번 시즌 K리그 원정 첫 승과 함께 상주에게 이번 시즌 첫 패배를 안겼다.


경기 초반부터 열띤 경기 운영을 펼친 양 팀


이날 경기는 양 팀 모두에게 중요했다.
지난 달 30일 경기에서 수원 삼성에게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을 질주 중이던 상주는 1, 2위 팀인 전북과 포항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이날 경기가 중요했고 FC서울 역시 중위권 나아가 상위권 도약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질 수 없는 경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양 팀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열띤 양상을 보였다.


상주는 전반 5분 장남석이 왼쪽 측면에서 이어준 크로스를 윤여산이 슛을 날렸으나 공이 크로스바를 강타하며 선제골 사냥에 실패했다.




실점위기를 넘긴 FC서울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전반 9분 중원에서 아크 부근에 있는 방승환에게 공이 연결되었고 상주의 수비수들이 공간을 내주며 당황하는 사이 방승환은 아크 오른쪽에 있는 데얀에게 공을 연결하였다.


공을 받은 데얀은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 냈고 FC서울은 서서히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첫 득점 이후 FC서울은 공격 진영에서부터 상주의 선수들을 압박하며 상주 선수들을 흔들었고 이로 인해 상주 선수들은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던 상주 김정우는 이날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수비와 공격을 조율했고 오른쪽 측면 자원인 김영삼과 최효진은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FC서울의 김동진과 몰리나를 괴롭혔다.


잠잠하던 경기 분위기는 상주의 골로 다시 재점화 됐다.


상주는 전반 18분 페널티에어리어 부근에서 장남석이 크로스 한 공이 FC서울 박용호의 머리에 맞고 들어가며 FC서울의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고 골키퍼 한일구 역시 이미 크로스에 대비해 역동작에 걸린 상태라 어쩔 수 없이 골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FC서울이 아니었다.


FC서울은 전반 35분 제파로프가 왼쪽 측면에서 상주의 중앙수비수인 김치곤, 윤여산의 뒤쪽을 넘기는 크로스를 올렸고 골에어리어에서 대기하고 있던 데얀이 헤딩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2-1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데얀이 2골을 성공시키자 상주의 수비진들은 집중적으로 데얀을 대인방어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른 선수들에게 공격의 기회가 오는 계기가 되었다.


FC서울은 전반 종료 직전 상주 수비진들이 데얀의 관심이 집중된 틈을 타 아크 오른쪽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골대 왼쪽 포스트를 강타하며 아쉽게 득점에 실패했다.


꿈속을 거닐듯 축구의 모든 것을 보여준 후반전


전반전을 한 골 차로 뒤진 채 후반전을 맞이한 상무는 전반전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김정우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올리며 전술에 변화를 꾀했다.


전술의 변화는 후반 시작 1분 만에 골로 결실을 맺었다.


상주는 중원에서 김철호가 길게 연결한 공을 최효진이 잡았고 이를 그대로 오른발 슛으로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어 냈다.


김정우는 왼쪽과 중앙을 번갈아 뛰며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고 상주의 공격력 역시 전반전보다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상주는 후반 중반이 지나자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상주는 FC서울이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에서 FC서울 수비진들이 공격에 가담하는 것을 확인하고 FC서울의 공격을 재빨리 차단하는 다음 역습을 노리는 공격을 택했다. 하지만 상주 이수철 감독이 생각했던 것 보다 경기 조율이 한 템포 빠르거나 또는 한 템포 느리게 공격하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잠잠하던 양 팀의 경기는 후반 중반이 지나자 또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후반 28분 FC서울은 한일구가 한번에 상주 진영으로 길게 공을 연결했고 공을 잡은 상주 김영삼이 골키퍼 김지혁에게 헤딩으로 안전하게 연결한다는 것이 김지혁의 키를 그대로 넘겨버렸고 뒤에서 달려들던 데얀이 골라인 앞에서 발만 살짝 갖다 대며 팀의 세 번째 골을 만들어 냈다.


이 골로 데얀은 2011년 K리그에서 첫 해트트릭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FC서울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주는 실점을 허용하고 1분 뒤 김정우가 골에어리어 왼쪽에서 공을 컨트롤 한 후 박용호를 가볍게 제치고 골대 파 포스트를 바라보며 오른발 슛을 날렸고 금새 동점을 만들어 냈다.


후반 30분이 지나자 FC서울 최용수 감독대행은 김동진의 체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고 김동진을 빼고 현영민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양 팀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린 것은 후반 36분 이후부터였다.


후반 36분 FC서울 고요한이 오른쪽 측면 돌파과정에서 상주 김영삼이 파울을 하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그 이전에 김치곤의 부상으로 오른쪽 풀백이었던 김영삼을 중앙수비수로 돌릴 수밖에 없던 상주로서는 김영삼의 퇴장으로 인해 중앙수비진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상주는 최전방 공격수였던 ‘달구벌 비에리’ 김동현을 중앙수비수로 내리는 모험을 단행했다.




팽팽하던 양 팀의 승부는 현영민의 멋진 프리킥 한방으로 갈렸다.


현영민은 후반 42분 상주 고차원의 반칙으로 얻어낸 아크 왼쪽에서의 프리킥을 오른발로 상주의 수비벽을 피해 절묘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의 종지부를 찍었다.


현영민의 골로 FC서울 벤치와 응원단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고 FC서울 응원단을 제외한 나머지 관중석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현영민의 골을 끝까지 잘 지킨 FC서울은 이번 시즌 K리그 원정에서 첫 승을 거두며 3승3무3패 승점12점을 기록하며 대전, 부산과 승점은 똑같았으나 골득실(대전 +2, 부산 0, FC서울 -2)에서 밀리며 10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한편 아쉬운 패배를 당한 상주는 이번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며 4승4무1패 승점 16점으로 종전의 3위를 그대로 지켰다.


짜릿한 승리를 거둔 FC서울은 11일 항저우와의 ACL 6R경기를 통해 F조1위에 도전하며 상주는 11일 컵대회 5R 강원과의 홈경기를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둘 예정이다.


/글=김윤환 FC서울 명예기자(elecpi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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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09 15:29


2011.5.8 어버이날 FC서울과 상주상무의 K리그9라운드 경기가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최용수감독대행으로 3번째 열리는 경기.
양팀의 접전속에 데얀의 해트트릭!!!
그리고 경기종료직전 프리킥찬스에서 이루어진 영화같은 현명민의 결승골!!!
이날 FC서울은 상주상무를 4:3이라는 스코어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추가하며 리그10위에 안착 했습니다.
정말 축구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주는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 K리그9라운드 FC서울과 상주상무의 경기
그날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봤습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 선수입장

▲ 방승환. 이날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고명진. 이젠 유망주에서 벗어나 FC서울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김동진.

▲ 데얀의 첫골!!

▲ 데얀의 두번째골!!

▲ 고요한. 최근들어 자신감도 충만하고 움직임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 김치우,고명진. 김치우 선수..상주상무의 유니폼이 아직 어색 하네요 ㅠㅠ

▲ 후반투입!!이승렬.

▲ 데얀의 해트트릭!!사실 데얀이 안건드렸어도 들어가는 골이었지만 ㅋ 데얀의 헤트트릭 욕심을 부린거 같습니다 ㅎㅎ

▲ 현명민의 프리킥!!!바로 이것이 영화같은 결승골로 이어집니다!!

▲ 마치 우승을 한것 같은 골세리머니!!ㅋㅋ그동안 맘고생도 심했던거 만큼 기쁨도 컷던거 같습니다.

▲ 경기종료후 기쁜마음으로 상주까지 응원온 수호신에게 인사를 합니다.

▲ 상주까지 오셔서 FC서울을 응원해주신 수호신. 이날 최고의 경기를 직접본 영광의 얼굴 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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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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