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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이야기/명예기자의시각

FC서울 선수들 등번호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세번째 이야기)









등번호엔 정말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선수들의 등번호는 그저 등 뒤에 달려 있는 번호가 아닌, 그 선수의 또 다른 상징물로 자리 잡으면서 선수들은 이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동기 부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FC서울 역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과거 FC서울 선수들의 등번호에 숨겨진 의미를 소개했던 필자는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선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가로 과거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팬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의 등번호에 숨어 있는 의미도 알아봤다.




1.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을 때 달았던 번호라 애정이 있다는 김진규의 6번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카를로스 바빙턴은 국가대표로 발탁된 게 너무 기뻐서 경기 후 상대팀 선수와 유니폼 교환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잘때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잠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선수들에겐 영예로운 자리다. 김진규 역시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을때 영예로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바빙턴과는 다르게 등번호를 통해 그때 당시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규는 지난 2007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전남으로 복귀할 당시 “6번은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을때 달았던 번호라 애정이 있다” 고 밝혔다. 지난 2003년 카디프에서 열린 웨일즈 U-20 청소년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선 김진규는 6번을 달고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2005년 U-20 청소년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도 6번을 달고 뛰었다.
 








2007년 7월. FC서울에 합류한 김진규는 당시 이민성이 6번을 달고 있어, 6번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그는 배번으로 6이 두 개가 들어간 66번을 선택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6번에 대한 애정이 많은지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20번을 거쳐 지난 2009년에 6번을 다는데 성공한 김진규는 올해도 변함없이 6번을 달고 뛰며 팬들에게 ‘철인 6호’ 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 9번을 좋아하는, 그리고 20번대를 원해 선택한 김태환의 29번










김태환이 좋아하는 등번호는 9번이다. 실제로 그는 금호고, 울산대 재학 시절 9번을 달고 뛰었다. 하지만 FC서울에 입단 하며 프로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2010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9번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시 9번은 대선배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정조국이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태환은 20번대 번호라도 받길 원했지만, 새파란 신인에겐 그것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39번을 배정받았다. 데뷔 시즌 19경기에 출전해 3도움을 기록하며 무난한 모습을 보인 김태환은 이듬해인 2011년.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된다.
 


29번을 배정받으며 드디어 20번대 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29번을 달고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렸고,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요르단전 동점골, 우즈베키스탄전 선제골을 터트리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12년에도 29번을 유지하고 있는 김태환은 지난 포항과의 어린이날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는 등 11경기 출전 1골로 FC서울의 주전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FC서울에선 아직까지 9번을 달고 있지는 못하지만, 김태환은 올림픽대표팀에서 한차례 9번을 단 적이 있다. 지난 2011년 11월 사우디와의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선발 출장한 김태환은 9번을 달고 오른쪽 측면 공격을 책임지며, 풀타임 활약으로 팀의 1-0 승리를 이끈 적 있다. 신인 시절엔 39번을 달았고 현재 29번을 달며 등번호 끝자리를 9번으로 유지하는 것을 보면, 그가 9번에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훗날 김태환이 FC서울의 9번으로 활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Bouns Tip  히칼도의 50번에 숨어 있는 의미는?










서두에서 언급한 팬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선수. 그 선수는 바로 히칼도다. 포르투갈 국적의 히칼도는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고, 정확한 킥력과 날카로운 프리킥, 패싱력등을 앞세워 서울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한 선수다. FC서울에 머문 세 시즌동안 71경기에 출전해 8골 23도움을 기록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히칼도는 FC서울에서 50번을 달고 뛰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에이스 미드필더를 상징하는 5번부터 9번사이에 번호를 충분히 달 수 있었지만, 그는 50번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의 50번에 특별한 의미가 숨어있는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필자가 직접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을 던졌보았는데, 다행히 히칼도의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히칼도는 등번호 50번이 두 아들의 생년월일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입단 당시 슬하에 두 아들이 있었던 히칼도는 첫째 아들의 생일이 7월 27일이고 둘째 아들의 생일이 5월 23일인데, 생년월일에 일인 27과 23을 합한 수가 50이라 50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서울에 있을 때도 가정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칼도. 등번호에서도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이 강하게 느껴진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