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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이야기/명예기자의시각

[폭격기칼럼]FC서울, 약팀을 상대하는 법을 배워라.


 



오늘 경기를 보면서 문득 1999 3월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친선경기가 떠올랐다. 당시 후반 끝날 무렵 김도훈 선수의 논스톱 슈팅으로 1-0 승리를 거두었는데, 경기를 보았건 안 보았건 당시 우리나라가 어떻게 경기를 이끌어 갔을지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이 수비에 가담하였다가 실수를 틈 타 역습을 노리는, 전형적인 약팀의 경기 방식을 취하고 있었고, 그 작전이 성공한 경기였다. 오늘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가 흡사 그 꼴이었다. 대구FC는 골키퍼를 제외한 10명 전원이 하프라인 안쪽에 위치하다가 공을 뺏으면 전진하는 전형적인 역습 형태를 취하였고, FC서울은 이를 막지 못해 0-2로 패배하였다.

 

대구의 경기력을 욕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구는 칭찬받아야 한다. 이영진 감독은 FC서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감독이고, 지금의 대구 스쿼드에서 FC서울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는 전술은 단 한가지, 역습 뿐이다. 몇 번 찾아오지 않을 세트 피스 상황을 잘 살리는 법과 병행해서 말이다. 대구는 오늘 이 점을 적극 활용했고, FC서울은 이에 대처하지 못했다. 경기력을 FC서울이 80% 이상을 지배했다지만, 20%를 지배한 대구가 승리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이토록 절묘하다. 골망을 흔들고 스코어 보드에 득점이 기록되어 최종적으로 이겨야만 한다. 오늘 경기는 본질적으로 스포츠는 이겨야 재미있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권투 경기를 예로 든다면, 아무리 잽을 많이 때렸더라도 카운터 펀치 한 방에 쓰러지고 만다면 경기는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대구FC 원정 팬들은 대구까지 돌아가는 먼 길이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겼으니깐 말이다. (FC서울 팬들도 너무 낙담하진 말자. FC서울 우먼 한지은 리포터의 시축이 현재 네이트 순위 상위권을 싹쓸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평소 좋아했는데 시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 경기에서 최용수 수석코치는 느낀 점이 많을 것이다. 그 수많은 느낌들 중 최용수 수석코치가 꼭 알아두고 새겨두어야 할 것이 있다. 특히, FC서울처럼 공격력이 좋은 팀을 이끌 감독으로 성장하려면 필수적으로 새겨두어야 한다. 바로 약팀을 상대하는 법이다.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 하지 마라



90
분 내내 경기력에서 FC서울은 밀리지 않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력은 역시 K리그 최강다웠다. 오늘 대구는 작정이라도 한 듯 데얀을 밀착 방어했고 데얀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몰리나와 제파로프가 상대를 뒤 흔들었지만 아쉽게도 골대를 빗나가는 상황이 많이 펼쳐졌다.

오늘 아쉬웠던 점은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경기력이었다. 몰리나, 제파로프의 인상적인 슈팅 장면이나 돌파 장면에서도 그들은 완벽한 슈팅을 하려고 했다. 오늘처럼 마음 먹고(?) 수비를 하는 팀에게 완벽한 슈팅이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런 팀이 선취 득점을 하는 경우 이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진다. 이럴 때는 무작정 때리는 수밖에 없다.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최종 수비 라인을 좀 더 끌어낼 필요가 있었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계속해서 공을 찔러 넣어주어 상대의 수비 실수를 유도했어야 했다. 특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후반 초반에 이러한 공격이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중거리 슈팅 능력이 있는 제파로프 선수나 고명진 선수가 좀 더 적극적인 슈팅을 했다면 경기력은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물론 후반에 최용수 수석 코치의 주문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느껴지는 하대성과 최태욱의 공백



수비라인이 견고한 팀을 상대할수록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의 역할은 극대화된다. 일반 팀에 비해 생기는 공간이 적을 뿐더러 중앙으로 침투되는 공격 빈도보다 측면에서 침투하는 공격 빈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FC서울의 경우 필드 플레이에서 이루어졌던 대부분의 크로스는 허탕치는 경우가 많았다. 크로스의 정확성이 아쉬웠던 경기였는데, 오늘 경기에서 최태욱 선수가 생각이 나는 건 바로 최현태 선수의 기가 막히는 패스 때문이었다. 측면 돌파 후 패널티 에어리어 안 쪽으로 침투하는 데얀에게 땅볼로 전달하는 패스가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이 패스 전매 특허가 누구인가. 최태욱 선수 아니던가. 오늘 이러한 기회에 최태욱 선수가 그 위치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물론 스포츠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금기어지만 오늘의 아쉬움은 컸다.

하대성 선수의 공백 또한 컸는데, 이렇게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대성 선수였다면 돌파구를 찾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비축구에서 데얀을 보호하라



FC
서울이 올 시즌 침체기에 만났던 팀들 대부분이 3백으로 FC서울을 상대했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전북만이 4백으로 상대하다가 일격을 당했다. 3백을 구사하게 되었을 때 데얀이라는 1등급 공격수가 고립이 되기 때문인데, 오늘같이 수비만을 일삼는 팀을 만나게 되면 3백 팀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데얀이 고전하게 된다.

오늘도 데얀은 다른 경기에 비해 고전했다. 그를 받춰줄 방승환 선수가 이렇다 할 활약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오늘 경기에서 일단 드러난 문제점은 중앙 미드필더에서 데얀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너무나 적었다는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데얀이 중앙선까지 나와서 공을 받았을까. 확실히 수비만 하는 대구 진영에 공간은 적었다. 공이 데얀까지 가기 전에 몇 번의 잔 패스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데얀에게 한 번에 찔러주는 패스가 이렇게 부족해서야 데얀이 제대로 된 슈팅이나 할 수 있을까. 적은 기회에도 골을 뽑아내는 것이 진짜 공격수라지만 기회가 너무 적다면 특급 공격수도 힘들지 않을까.

데얀이 집중 견제를 당하더라도 데얀에게 일단은 연결이 되어야만 한다. 집중 견제를 당하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스트라이커에게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도 된다. 데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은 데얀에게 공을 많이 주는 것이다. 작년 데얀의 기록을 보자. 골 못지 않게(19득점) 무시무시한 어시스트 기록(10 어시스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정답은 데얀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위기 극복은 언제나 숙제



FC
서울은 오늘까지 정말 쉴새 없이 달려왔다. 게다가 고요한, 하대성, 최태욱의 결장, 무패행진에 의한 집중력 저하, 체력적인 문제 등은 오늘 경기에서 FC서울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FC서울의 숙제이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위기는 지속적으로 FC서울을 괴롭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패배가 그다지 씁쓸하지만은 않다. 경기를 져서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잘 치르고 보약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확실히 예전의 패배와는 느낌이 다르다. 비록 패배했더라도 경기를 지배했다. 앞서 축구는 이겨야 재밌다고는 말했지만 크게 날개짓을 펼치기 위해서 이렇게 한 번쯤은 쓰디 쓴 패배를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현재 K리그 상위권에 속해있는 제주, 상주, 경남을 차례대로 무찌르며 자칫 자만심에 빠져있을 수 있던 FC서울이었다. 리그 14위에서 단박에 7위까지 뛰어올랐기에 오늘의 패배는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해 질 수 있는 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오늘 경기를 발판 삼아 좀 더 성숙해진 FC서울이 되어서 AFC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글=김진웅 FC서울 명예기자(akakjin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