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클래식 최고의 라이벌전 슈퍼매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수많은 화제를 낳으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 슈퍼매치. 이제부터 그와 관련된 기록을 알아보겠다. 제목대로 관점은 지극히 FC서울 적이다.

 



서울은 얼마 전 수원에게 리그에서만
6연패를 당했고, 2007년에도 5연패를 당했다. 과거 슈퍼매치에서 연패를 당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서울도 수원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적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의 슈퍼매치 연승은 언제였을까? LG치타스 시절 20005212-1 승리를 시작으로 200148일 아디다스컵 1-0 승리까지 4연승을 달린적 있다. 20016171-0 승리를 시작으로 20028182-1 승리까지 5연승을 내달렸다. 2002818일 경기 당시 수원은 연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카드섹션을 펼쳤고 38245명의 관중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며 수원의 승리를 염원했지만 오히려 서울이 2-1 승리를 거두며 아픔을 줬다. 참고로 서울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매치에서 913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서울이 수원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섰던 연도도 알아보겠다. 서울은 2000년 수원을 상대로 5번의 맞대결에서 311패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42도움을 올리며 수원을 떨게 했다. 2001년에도 서울은 5번의 맞대결에서 32패를 거두었다. 2002년에는 3번의 맞대결에서 21패를 거두며 3년 연속으로 슈퍼매치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갔다. 이후 2005년 서울은 또 한번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간다. 서울은 이 해에 21무를 기록했다. 특히 10월에 거둔 수원 원정에서 3-0 승리는 원정팀이 거둔 첫 세 골차 승리다. 이후 서울이 슈퍼매치에서 우위를 가져간 해는 2010(21), 2013(211)이다.










역대 슈퍼매치에서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를 알아보자. 수원의 골망을 가장 많이 흔든 선수는 데얀과 정조국이다. 데얀은 슈퍼매치에서만 6골을 넣으며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위용을 보여줬다. 현재 경찰청에서 복무중인 정조국도 역대 슈퍼매치에서 6골을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5골을 넣으며 그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로 총 4골을 넣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진기록이 있다. 박주영의 유일한 슈퍼매치 해트트릭이다. 박주영은 2007321일 컵대회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해트트릭은 역대 슈퍼매치에서 나온 유일한 해트트릭이다. 서울 선수는 물론 수원 선수도 박주영을 제외하곤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없다. 도움 해트트릭 역시 서울 선수가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201044일 경기에서 데얀이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1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이 역시 데얀을 제외하고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2014
년 첫 슈퍼매치가 시작되려 한다. 서울은 연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난 시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며 자존심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올해부터 어떤 역사와 기록이 쓰여질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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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4.26 10:12
 


FC서울이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났다.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9라운 드 강원과의 경기에서 고요한의 2골과 데얀의 결승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후반 8분동안 3골을 몰아넣으며 영화와도 같은 경기내용을 선사했다. 경기 후 각 스포츠기사에는 ‘FC서울 극장’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짜릿한 역전승이나 추가시간에 터진 골 등은 축구팬들에게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준다. FC서울의 경기도 여러 번 극장을 연출해내며 팬들에게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영화와도 같았던 FC서울의 경기에 대해 알아보자.
 

2008.09.06. vs 부산

 




2008년 9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컵대회 마지막경기. FC서울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탓인지 초반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전반 46분과 후반12분 정성훈에게 2골을 허용. 이대로 허무하게 경기에서 패배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서울극장’의 막이 올랐다. 후반 16분 이승협의 패스에 이은 김은중의 헤딩슛이 골라인을 통과하며 골로 인정되었고 후반 42분 이청용의 크로스에 이은 이상협의 다이렉트 왼발 슛으로 그림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정조국이 역전골을 넣으며 3-2로 부산을 제압했다. 비록 다음 라운드 진출은 실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일구어내며 팬들에게 영화같은 승리를 선사해주었다.


2008.10.29. vs 수원





서울 팬이라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다. 당시 K리그는 서울, 수원, 성남의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수원과 경기가 있기 전, 홈에서 성남을 1:0으로 제압한 서울이 수원마저 이기게 된다면 리그 1위는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어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또한 수원과의 슈퍼매치인 만큼 경기인 만큼 경기 또한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치열한 공방 끝에 양 팀 모두 득점을 하지 못하였고 후반 추가시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후반 47분. 경기를 끝마칠 찰나 기성용의 천금 같은 골이 터져 나왔다.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골키퍼를 넘기는 재치있는 골이었다. 적지에서 수원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으니 그 짜릿함이 배가 되어 팬들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경기였다.



2011년 5월 8일 vs 상주상무



최용수 감독 대행으로서 제주전 승리를 마친 FC서울은 다음 라운드 상대인 상주상무와의 경기세서도 또 한 번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루어 냈다. 당시 상주상무는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 군입대한 서울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김정우, 김치곤 등 역대 최강의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경기내용도 팽팽했다. 전반 9분 방승환의 패스를 이어 받은 데얀이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키며 손쉽게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의 자책골로 1-1 동점. 다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에 이은 데얀의 헤딩슛으로 다시 역전했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최효진에게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다시 동률을 이루었다. 그리고 후반 28분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경기를 재역전 시켰다. 하지만 상주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1분 뒤 김정우가 다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고 모두들 무승부를 예상하고 있을 무렵. 상주의 페널트에어라인 근처에서 얻은 프리킥을 현영민이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켜 무려 7골이나 나왔던 경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로서는 11시즌 첫 연승이자 최용수 감독대행의 연이은 승리 행진 이었다.


2011.07.09 vs 상주상무

상주와는 극적인 경기가 자주 발생했던 해였다. 전반기에 4-3이라는 극적인 경기 결과를 만들어 내더니 이번엔 축구 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펠레스코어가 나왔다. 이 경기는 경기내용 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은 경기였다. 2011년 승부조작으로 인해 상주의 골키퍼 3명의 모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전 골키퍼인 권순태 마저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비수였던 이윤의가 골키퍼로써 선발경기를 치루며 매스컴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주는 전반 33분 김정우가 선취득점을 성공하였으나 후반 9분, 20분 데얀에게 2골을 헌납하여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39분 김민수의 골이 터지며 경기는 다시 원점. 흥미진진한경기가 계속 됬다. 그리고 얻어낸 후반 48분 서울의 마지막 코너킥 찬스. 서울 팬들은 모두 ‘골’을 외쳤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현영민의 크로스를 받아 방승환이 헤딩으로 연결하며 이날 결기 마지막 골을 기록한 것. 그날 상암을 찾은 3만여 관중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2011.08.13 vs 전남전


2011년 여름에 서울 팬들은 극장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경기장 자체가 극장이었으니 말이다. 전남과의 경기에서도 극적인 장면이 연출됬다. 서울은 경기 초반부터 전남선수들을 압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골찬스에서 데얀의 슈팅은 번번히 빗나갔고 유효슈팅마저도 이운재의 선방에 막히며 0-0 스코어를 유지했다. 조급했던 서울은 무리하게 공격을 펼치다 오히려 역습상황에서 위기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패색이 짙던 후반 인저리타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골이 나왔다. 전남의 공격상황에서 상대의 패스를 가로챈 고명진이 최태욱에게 연결.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의 빠른 측면돌파 후 크로스. 데얀의 한 번의 터치 이후 몰리나의 슛. 역습의 정석을 보여주며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몰리나의 골 이후 최용수 감독이 N석 까지 달려와서 선수들과 같이 세리머니를 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기도 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정용우(mjgs65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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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3.05.01 00:07






지난 수원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근황과 FC서울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던 히칼도. 이번엔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FC서울의 우승이 확정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이 우승해서 행복하다’ 는 글을 남기며 FC서울 우승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 이제부터 히칼도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1. 한달 만에 다시 만나는 군요 히칼도.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하하 그렇군요. 수원전 이후 한달만이네요. 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요. 축구와 FC서울을 사랑하면서요. FC서울이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꼈고요.



2.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 부탁합니다.



 우승을 정말 축하합니다. FC서울은 최고의 팬,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이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한 팀입니다.



3.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최용수는 코치였죠. 그는 지금 FC서울의 감독 자리에 올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최용수 감독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최용수는 코치 시절부터 훌륭한 인물이었어요. 훗날 좋은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에 대해 축하의 말을 전하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제가 직접 최용수 감독에게 더 좋은 말을 전해주고 싶지만, 전 한국어를 못하고 최용수 감독은 포르투갈어를 못하니 좀 아쉽군요.



 









4. 당신과 주전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아디와 정조국은 올해 FC서울의 우승 멤버가 되었습니다. 과거 팀메이트였던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디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죠. 그 친구가 변함없이 FC서울의 선수로 남아있는 게 기쁘군요. 올해엔 FC서울에서 200경기 출장 기록을 넘었다고 하는데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정조국 역시 훌륭한 선수죠. 프랑스 리그에도 진출했다는 사실이 그의 능력을 증명하죠. 프랑스에선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알고 있지만, 그는 최고의 위치에 있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입니다.



5.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고명진과 고요한은 유망주였죠. 하지만 그들은 올해 당당히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FC서울에 있었을 때 두 선수 모두 어린 선수였지만, 전 그들이 잠재력이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FC서울의 주전으로 거듭나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나아가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그들은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많이 그립군요.  



6.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축하메시지 부탁합니다.



 예전부터 늘 말해왔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하고 싶군요. ‘FC서울 팬들은 세계 최고의 팬들입니다’ 최고의 응원을 보내는 여러분들은 FC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저에게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었던 팬들이 많이 그립군요. 팬들에게도 우승을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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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12.06 21:06

2012. 11.4. 일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수원 삼성
1 : 1 무승부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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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11.17 21:47

2012.8.18.토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수원
0 : 2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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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08.27 20:58

2012. 7. 21. 토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 서울 VS 부산 아이파크
6 : 0 승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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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07.23 19:25


FC서울은 해외 유명 클럽들과 친선 경기를 펼치며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박지성과 고요한이 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습






매년 이맘때쯤이면 FC서울은 해외 유명클럽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FC서울은 이 친선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선진축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외 유명클럽들이 무리한 일정을 짜며, K리그 일정에도 영향을 준 탓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FC서울이 친선경기를 열때 마다 구름관중이 몰려들며, 높은 열기를 보였다. K리그 경기 수가 많아지고 특히 올해엔 스플릿 시스템이 적용되어 강등팀을 정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친선경기를 치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또 다시 친선경기가 열릴 여지는 충분하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은 어떤 팀들과 친선경기를 벌였고, 그 속엔 어떠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2005.07.26 vs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보카 주니어스. 프로리그 출범 이후 단 한번도 2부리그에 강등되지 않았고, 23번의 1부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컵 6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고로 두고 있어, 대한민국의 수도와 아르헨티나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클럽에 맞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경기에 앞서 양팀이 자매결연을 맺으며 상호 교류를 약속하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는 당시 간판스타였던 마르틴 팔레르모(한 경기에서 세 개의 페널티킥을 놓친 선수로도 유명하다.)가 결장했지만, 아르헨티나 청소년대표 출신의 네리 카르도소, 현재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등이 출전하며 막강 전력을 과시했다. FC서울 역시 노나또, 히칼도, 김은중 등을 앞세워 보카 주니어스에 맞섰지만, 선제골은 보카 주니어스의 몫이었다. 전반 17분 카르도소의 프리킥을 받은 팔라시오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을 돌파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기세가 오른 보카 주니어스는 시종일관 서울을 압박했고, 네리 카르도소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공격을 이끌었다. 결국 전반 44분 다니엘 빌로스가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전반은 0-2로 끝났다. 반격에 나선 서울은 정조국, 백지훈등을 투입해 공격을 강화했고, 결국 후반 7분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백지훈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그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청소년대회에서도 맹활약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백지훈은 이 날 경기에서도 골을 성공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흐름을 탄 서울은 공세를 취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후반 17분 기회를 잡는다. 페널티 지역을 돌파하던 노나또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노나또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서울은 이후에도 정조국을 앞세워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골은 넣지 못하고 1-2로 패했다. 족저근막염으로 출전하지 못한 박주영의 공백이 아쉬운 한판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최강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데엔 성공했다.




2. 2006.08.05 vsFC도쿄











아르헨티나 수도를 연고로 한팀과 경기를 벌이고 1년 뒤, 서울은 이번엔 일본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FC도쿄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FC서울과 서울시는 그간 성원해준 팬들에게 보답하고자, 각계각층의 서울시민들을 초청했고, 선착순 무료입장을 실시했다. 그 결과 6만여명의 대관중이 몰려들었고, 경기장은 뜨거운 여름날씨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해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에 있던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득점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전반 2분 최용수의 패스를 받은 두두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FC도쿄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 브라질 대표였던 루카스와 현재 대전시티즌에서 뛰고 있는 바바 유타등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당시 서울의 수문장이던 김병지를 뚫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전반을 1-0으로 마쳤다. 후반 들어 양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지만 서울이 추가골을 넣으며 앞서나갔다.



현재 FC서울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이 날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후반 39분 하프라인에서 패스를 이어받은 두두는 단독돌파 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특유의 개인기로 골키퍼까지 제친 뒤 두 번째 골을 넣은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44분 정조국의 골까지 보태며 도쿄를 3-0으로 완파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선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가 은퇴식을 가지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고,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3. 2007.07.20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많은 축구팬들을 흥분시킬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이었다. 과거 FC바르셀로나, 첼시등도 내한한적은 있었지만, 박지성이 소속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해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팀이 내한한다는 소식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하길 원했던 맨유라 당연히 상대팀은 FC서울이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리오 퍼디낸드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플레이 한다는 점, 경기를 앞두고 양팀의 메인 유니폼인 붉은색 유니폼 착용을 두고 신경전을 펼친 점(결국 붉은 유니폼은 서울이 입었고 맨유는 보조 유니폼인 흰색을 착용했다)등 다양한 이슈거리가 쏟아져 나왔고,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티켓은 11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비록 박지성이 무릎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호날두, 루니등 최고의 선수들의 플레이는 서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전반 5분 루니의 패스를 받은 호날두가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19분 호날두의 감각적인 힐패스는 이글스의 추가골로 이어졌다. 전반 20분 루니가 날린 강력한 슈팅이 김병지의 손을 맞고 골대안으로 빨려들어가며 전반에만 0-3으로 앞서간 맨유는 후반 15분 박지성의 절친인 에브라가 네 번째 골까지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서울 역시 정조국, 히칼도등이 공격 선봉에 섰지만, 아쉽게도 거함 맨유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고,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2008.03.01 vsLA갤럭시








2008 K리그 개막을 앞둔 FC서울은 미국의 명문클럽인 LA갤럭시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LA갤럭시는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이 날 경기에도 베컴이 출전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베컴은 경기외에도 어린이 축구교실, 팬 사인회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팬들과 소통했고, 태권도복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의 팬 사인회는 많은 팬들이 몰려들어 30분만에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베컴의 인기는 대한민국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LA갤럭시엔 베컴만 있는게 아니었다. 현재 미국의 에이스인 랜던 도노번,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아벨 사비에르등 빼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주전에 베스트 멤버들을 기용해 승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양 팀은 초반부터 치열한 경기를 보여줬다. 이청용은 베컴에게 거친 태클을 가하며, 친선경기 이상의 경기력이 펼쳐지는등 양 팀은 강한 승부욕을 보였고, 결국 전반 21분 베컴의 마법같은 오른발 킥이 선제골을 만들었다. 베컴이 오른발로 올려준 볼을 공격수 고든이 이어받아 선제골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전반 30분 서울이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정조국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양 팀은 후반들어서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지만, 결국 경기는 1-1로 끝이 났고, 꼭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주최측의 결정에 따라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선 김호준의 선방이 빛났다. 김호준은 1번 키커인 베컴을 제외하고 2,3,4,5번 키커의 슛을 모조리 막아냈다. 서울은 김은중과 이상협이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결국 2-1 승리를 거두었다. 승부차기에서 선방쇼를 펼친 김호준은 MVP를 수상했고, 당시 신인이었던 이승렬은 첫 공식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다. LA갤럭시전 승리로 쾌조의 출발을 알린 서울은 3월 한달 동안 2승2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5. 2008.06.15 vsFC도쿄









2006년 홈에서 FC도쿄를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고 2007년엔 도쿄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거두었던 서울은 2008년 FC도쿄를 다시 홈으로 불러들여 일전을 가졌다. 당시 서울은 K리그에서 4위, 도쿄는 J리그에서 3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강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어 이번 대결에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날 경기에선 인기가수 마야가 초청되어 공연을 펼쳤고, 양 팀 서포터즈들이 릴레이 달리기를 하는 등 축제분위기로 진행됐지만, 승부는 승부인 법. 양 팀은 치열한 경기를 펼치며 경기장을 찾은 42000여명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서울은 팀의 주축인 박주영과, 이청용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결장했지만 데얀, 이을용, 정조국등이 경기에 나서며 도쿄를 압박했다.
 



하지만 선제골은 도쿄의 몫이었다. 전반 40분 최원권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도쿄는 까보레의 침착한 슈팅으로 0-1을 만든 것이다. 2007 시즌 경남 소속으로 K리그 득점왕(18골)에 오르며 도쿄로 이적한 까보레는 페널티킥 성공으로 서울에 비수를 꽂았다. 전반을 0-1로 마친 서울은 데얀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고, 마침내 후반 28분 그 결실을 맺었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36분엔 심우연을 투입하며 또 하나의 공격 옵션을 장착했고, 역전골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 1-1 무승부를 기록한 서울이었지만 도쿄와의 역대 전적에서 1승2무로 대한민국 수도 연고팀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6. 2009.07.24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내한해 많은 화제를 뿌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9년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도 역시 상대는 FC서울. 하지만 당시 맨체스터 유니이티드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잡는 바람에 서울이 일정을 변경해 7월에 예정되었던 광주상무전을 5월에 치러야만 했고, 이같은 결정은 몇몇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값은 국내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이번에도 티켓이 매진되는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당시 맨유는 2007~200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잇달아 제패했고, 2008~2009 시즌엔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비록 간판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내한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리오 퍼디낸드등 여전히 스쿼드는 화려했다.
 



그리고 박지성 역시 2년전과는 달리 건강한 모습으로 국내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유는 이번에도 루니, 긱스, 에브라, 퍼디낸드등 주축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며, 서울을 압박했지만, 귀네슈 감독은 그간 즐겨쓰던 포백 대신 김치곤, 김진규, 박용호를 스리백으로 세워 수비를 두텁게 하며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 의지가 통했는지, 초반 경기 흐름은 서울이 잡았다.




공격진에 포진된 데얀과 이승렬은 활발한 모습으로 수비진을 흔들었고, 전반 8분에 나온 고명진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맨유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맨유는 여독이 풀리지 않은듯 다소 무거운 몸놀림을 보였다.
 



결국 선제골마저 서울이 터트렸다. 전반 23분 우측에서 김승용의 크로스를 받은 데얀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더욱더 활발한 모습으로 맨유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맨유는 역시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맨유는 전반 31분 오셔의 크로스를 루니가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데얀이 선제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이후 양팀은 친선경기임을 잊은 듯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결국 김승용이 전반 막판 부상으로 교체 아웃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방전 속에 추가골의 주인공은 서울이었다. 전반 추가 시간 이승렬의 침투 패스를 이어받은 데얀이 쿠쉬착을 살짝 넘기는 재치 있는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이다. 2-1로 전반을 마친 서울은 슈팅수 8-4, 유효 슈팅수 6-3등의 기록을 보이며 세계 최강 맨유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은 후반에 맨유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후반 12분 루니의 전진 패스를 이어받은 마케다가 골키퍼까지 제치며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20분엔 대런 깁슨의 크로스를 베르바토프가 헤딩슈팅으로 마무리하며 2-3으로 재역전 시켰다.




서울은 기성용의 프리킥 등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골은 성공시키지 못했고, 결국 2-3 패배를 기록했다. 관심을 모은 박지성은 후반 29분 마이클 캐릭과 교체 투입됐고, 특유의 부지런한 플레이로 파울을 유도하고, 후반 44분엔 스콜스에게 결정적인 침투 패스를 찔러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년만에 만난 맨유를 상대로 또다시 패하긴 했지만, 서울은 2년전과는 다른 경기력으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또 이날 두골을 기록한 데얀은 퍼거슨 감독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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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7.22 14:01









여름 이적 시장은 시즌 중에 외부 영입을 통해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그래서 각팀 들은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팀에 플러스가 되줄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FC서울은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공격력 강화를 위해 세르히오 에스쿠데로를 영입했다. 그는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이중국적자였지만 2007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선수라 아시아쿼터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우라와 레즈에서만 뛰며 J리그 통산 93경기 출전 11골 28도움을 기록한 에스쿠데로. J리그에서 남긴 기록들을 바탕으로 그는 어떤 선수인지 알아보자.




에스쿠데로의 고향은 스페인 그라나다로 아르헨티나 국적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4살때인 1992년. 그의 아버지가 우라와 레즈에 입단하면서 일본과 첫 인연을 맺는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와 삼촌도 축구선수고, 한때 아르헨티나의 미래라고 불렸던 다미안 에스쿠데로와는 사촌 지간이다. 일본에서 5년간 거주한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에스쿠데로는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1년 아버지가 가시와 레이솔의 유소년 코치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역시 가시와 레이솔 유스에 입단했고, 이후 아버지가 뛰었던 우라와 레즈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자가 대를 이어 우라와 레즈에서 뛰게 되었다.
 



15세 이하 아르헨티나 청소년 대표팀 상비군에 뽑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에스쿠데로는 16세였던 2005년 드디어 일본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그해 5월 21일 알비렉스 니가타와의 나비스코컵 세 번째 경기에서 후반27분 다나카 타츠야와 교체 투입된 에스쿠데로는16세 8개월 21일에 데뷔전을 치르며 일본의 호나우도라 불리는 모리모토 다카유키(15세10개월 6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데뷔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7월 23일 시미즈 S펄스와의 원정 경기에선 J리그 데뷔전을 치르기도 한 에스쿠데로는 그 해 리그에서 5경기, 나비스코컵 2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우라와 레즈 시절 활약 모습 (사진출처 - 우라와 레즈)






2006년엔 기다리던 데뷔골마저 쏘아올렸다. FC도쿄와의 나비스코컵 첫 경기에 선발 출장한 에스쿠데로는 후반 17분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2007년 아버지와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하며 귀화에 성공한 에스쿠데로는 일본 올림픽대표팀에도 발탁되어 5경기 출전에 1골을 기록했고, 베이징 올림픽 대표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부상 여파로 출전하진 못했다.
 



2008년 리그에선 예년보다 더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3월 20일 빗셀 고베와의 나비스코컵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른 에스쿠데로는 4월 29일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리그 첫 경기를 가졌고 이후 8경기 연속으로 교체 출장하여 조커 역할을 수행했다. 시즌 막바지엔 콘사도레 삿포로전에서 선발출장해 89분을 소화했고, 시즌 마지막 경기인 요코하마 마리노스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52분을 뛰었지만, 아쉽게도 그 해 리그에선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일왕배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5회전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 시즌 중반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 경기에서 66분을 소화하며, 강팀과의 경기 경험을 쌓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우라와 레즈 시절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오른쪽은 현재 독일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필립 람 (사진출처-우라와 레즈)






2009년엔 J리그 데뷔 후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3월7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시즌 개막전에 출격한 에스쿠데로는 리그와 나비스코컵에서 모두 꾸준히 출장했고, 그해 5월5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경기에선 후반 23분 교체 투입되어 J리그 첫 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이후 팀이 7월18일 오이타 트리니타전부터 8월 29일 빗셀 고베전까지 연패를 당해 당시 우라와레즈 감독이던 풀커 핑케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에스쿠데로는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 전반 4분 선제골을 성공시켰고, 팀의 4-1 대승을 이끌며, 연패를 끊는데 앞장 서는 모습으로 자신을 비난한 핑케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2009년 30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에스쿠데로는 2010년에도 20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2011년엔 나비스코컵에서의 활약이 빛난 한해였다. 첫 경기를 제외하고 나비스코컵 전경기에 출장한 에스쿠데로는 몬테디오 야마가타전, 세레소 오사카와의 8강전, 감바오사카와의 4강전등 중요한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고, 특히 감바오사카 와의 4강전에선 전반 38분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비록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0-1로 패했지만, 에스쿠데로는 연장 포함 120분을 소화하며,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2012년엔 부상으로 인해 1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 사이 에스쿠데로는 뽀뽀(예전 부산과 경남에서 활약했던 선수), 데스포토비치, 다나카 타츠야등과 힘겨운 주전경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그는 우라와 레즈를 떠나 FC서울에서 새로운 축구인생을 펼치게 되었다.




에스쿠데로의 장점은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스피드가 좋다는 것이다. 또 슈팅 역시 정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전형적인 스코어러 타입이라기보단, 전방 공격수에게 도움을 주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에 어울리는 선수다. 따라서 데얀, 정조국이 최전방에 포진되고, 에스쿠데로가 그 뒤를 받치며, 몰리나가 왼쪽 측면 공격에 전념하는 공격 전술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에스쿠데로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서울은 이전과는 다른 공격 형태를 선보이며, 상대팀을 교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에스쿠데로 본인에게도 명예 회복을 위해선 FC서울에서의 활약이 중요하다.




과거 서울은 시즌 도중 영입된 용병들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2009 시즌 중반 영입됐던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안데르손은 13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고 2010 시즌 중반 영입된 우즈벡 특급 제파로프는 정확한 패스를 앞세워 1골 7도움을 올리며 서울 우승에 일조한 바 있다. 에스쿠데로 역시 이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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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7.18 03:19



숫자는 우리 생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7은 행운의 숫자라고 좋아하지만 4는 널리 불길한 숫자라고 여긴다. 서양에서는 13을 꺼림칙해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선호하는 숫자나 꺼려하는 숫자가 있다. 물론, 굳이 애써 해묵은 징크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상대적인 차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축구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각자가 선호하는 등번호, 의도치 않게 그 선수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린 등번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등번호를 달던 개의치 않는 선수도 있다.

지금은 각종 의미가 들어간 등번호는 제쳐두고 단순히 FC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재미삼아 들여다봤다. 다른 세대에 같은 등번호를 달고 뛴 선수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다. SNS를 통해 약 300여명의 축구 팬들의 설문을 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역 선수들의 강세였다.


1번~10번

No.1의 자리는 수문장 대결이다. 대부분 팀의 1번은 골키퍼가 갖는다. FIFA 주관 메이저대회에서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1번은 반드시 골키퍼가 달도록 규정되어 있을 정도다. FC서울에는 수준급 골키퍼들이 다녀갔다. 그래서 후보군 2명을 고르는데도 꽤나 애먹었다. 현역 수문장인 김용대(76.7%)가 김병지(23.3%)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No.2의 후보는 현 국가대표 수비수이자 FC서울의 영광을 함께 했던 곽태휘와 최효진이다. 각각 타 팀 이적과 군입대로 팀을 떠나있지만 아무래도 곧 돌아올 최효진(74.8%)에게 표심이 향했다.

No.3 역시 수비수 대결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FC서울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했던 측면 수비수 안태은과 올 시즌 초 김진규의 짝으로 든든한 중앙수비를 구성했던 김동우의 매치다. 현역 강세의 흐름 속에 현재 등번호 3번인 김동우(85.5%)가 안태은(14.1%)에 비해 많은 지지를 얻었다.

No.4는 부득이하게 후보를 3명을 올렸다. 나름의 원칙상 현역 등번호 소지자는 포함해야 했고 나머지 후보 둘도 어느 하나 빼놓고 논하기 아쉬웠다. 대표팀 출신인 김동진(27.2%)과 지금은 팀을 떠난 전 주장 박용호(26.2%)의 표가 엇갈린 덕(?)에 이번 시즌 팀에 합류한 김주영(46.6%)이 베스트가 되었다. 합류하기 전부터 인기 가도를 달린데다 최근 경기력도 좋아졌기에 수긍할 만한 결과다.

No.5 ‘도쿄대첩’의 이민성 현 용인시청 코치와 FC서울 중원의 핵 최현태가 경합했다. 중앙미드필더부터 여차하면 수비수로 변신까지 가능한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선수다. 그래도 현역인 최현태(66%)가 형님 이민성(34%)보다 끌렸나보다.

No.6도 마찬가지였다. 은퇴 후 지도자 변신을 꾀하다 FC서울의 2군 코치를 맡고 있는 이기형(5.9%)과 현 FC서울 수비의 중심 김진규(94.1%). 등번호 6번은 대를 이어 강력한 캐논슈터들의 번호인가. 팬들은 현역 캐논슈터의 손을 들어줬다.

No.7도 후보가 3명이다. 때문에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던 번호였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싱거웠다. 강원의 코치로 몸담고 있지만 지금도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전 캡틴 이을용(15.4%), 2010 시즌 팀에 우승을 안기고 상무로 입대한 김치우(65.4%), 이번 시즌 포지션 이동 후 K리그 가장 핫한 오른쪽 풀백으로 떠오른 고요한(19.2%). 팬들이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 달콤한 우승의 기억이다.

No.8은 다른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비교대상이 없었다. 범접할 수 없는 8번의 존재, 아디다.



No.9는 보통 팀의 최전방 공격수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지금 FC서울의 9번은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이적했던 선수가 베스트에 선정된 몇 안 되는 등번호다. FC서울에서 선발 출장할 때나 서브로 출전할 때도 적재적소에서 시원한 골을 터뜨려 주던 정조국(92.1%)이 프랑스로 떠난 후 그 자리는 강정훈(7.9%)이 물려받았다. 선배의 아성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였다. 헌데 그 시간은 더 미뤄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정조국이 FC서울로 복귀했다. 본인의 등번호였던 9번도 다시 정조국에게 돌아갔다. 등번호에 대한 정조국의 애착이 묻어난다. 시즌 중 등번호 이동이 있는 흔치 않은 경우가 됐다. 이에 따라 강정훈은 공번이었던 15번을 받았다.

No.10은 이번 Part.1 뿐만 아니라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흥미 있는 매치업이다. 다소 안타까운 등번호 9번을 달고 아스날 시절을 보내기 전, FC서울과 대표팀, 프랑스로 이적해 모나코에서 까지 10번은 박주영의 고정 등번호였다. 처음 FC서울에 들어왔을 때 11번을 받았던 데얀은 박주영이 모나코로 이적한 뒤 10번으로 옮겼다. 그리고 K리그 최단경기 100호 골을 달성했다. 최근의 여론 탓인지, 데얀이 너무 잘해준 탓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데얀(66.3%)이 박주영(33.7%)에 생각보다 큰 표차이로 베스트 No.10으로 뽑혔다.




Part.2에서 계속.




/ 글 = FC서울 명예기자 유승민 (paul-fever@hanmail.net)
/ 사진 = FC서울 픽스닷컴 (http://www.fcseoul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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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7.07 16:11

 

 

 

- 팀 창단 29년 만에 부산, 울산, 포항, 제주에 이어 K리그에서 5번째로 대기록 달성

 

 

 

-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키는 기회

 

 

 

 

 

FC서울(이하 서울)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9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창단(1983) 29년 만에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의 대기록을 달성한다.

 

서울은 국내 프로축구 제 5호 구단으로 창단해 그동안 K리그를 이끌어왔으며 지난 시즌 기록을 달성한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에 이어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팀 통산 1,000경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다른 기록들에 비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팀 득점이나 팀 최다 승 등의 다른 기록들은 팀과 선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록 달성까지의 기간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기록만큼은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 팀만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통산 1,000경기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29년간 서울은 전 대회 통산 371311317(정규리그 312230260)를 기록해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에 이어 K리그에서 세 번째로 통산 4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통산 1327득점과 1209실점(정규리그 1075득점 971실점)을 기록 중이다.

 

 

 

 

 

 

서울은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을 시작으로, 고재욱, 조영증, 박병주, 조광래, 이장수, 귀네슈, 빙가다, 황보관 그리고 현재의 최용수 감독의 지도하에 리그 우승 4(준우승 5), 컵 대회 우승 2(준우승 4), FA컵 우승 1회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재작년인 2010 시즌에는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팬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울은 선진 마케팅 도입을 통해 그동안 한국 프로스포츠와 K리그에서의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는데 LED(발광다이오드)전광판 도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모바일 티켓 예매 시스템, 소셜커머스를 통한 티켓북 판매, 외국인의 날, 팬들이 제작한 립덥 뮤비그리고 통합 시즌권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서울의 축구 철학은 고스란히 관중 기록으로 이어져 한국 프로스포츠 한 경기 최다 관중(6747)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정규리그 평균 관중 3만 명 돌파 그리고 K리그 두 시즌 연속 시즌 누적 50만 관중 달성 등의 자랑스러운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길러내며 한국축구의 중심축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온 서울은 이번 K리그 통산 1,000경기 달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명문 팀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 더 확고히 하게 됐다.

 

서울의 이번 K리그 팀 통산 1,000경기 달성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서울은 앞으로도 존재하고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다가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 시작의 축제를 다함께 즐겨보자.

 

/ =FC서울명예기자 김종호(fabrer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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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4.20 16:48

2008년 신인왕 수상자 이승렬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제 식민지 시절. 지식인이었던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시를 통해 조국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드러냈다. FC서울 역시 유망주 육성 정책을 통해 많은 젊은 선수들을 육성함으로써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드러냈고, 그 기대에 부합하듯 정조국,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등이 배출됨으로써 FC서울은 명실상부한 유망주들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그 덕에 우수 젊은 선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인왕 역시 대거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FC서울의 역대 신인왕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단 한번밖에 수상할 수 없는 신인왕의 영광을 차지했던 선수들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1. 최용수 (1994년 신인왕 수상)

최용수 감독의 젊었을때 모습 (사진출처 - 베스트일레븐)




FC서울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구단 최초 신인왕의 주인공이다. 현역 시절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용수는 1994년 드래프트를 통해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최용수는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지 못했다.


1994년엔 이임생(유공), 정재권(대우), 조진호(포항)등 쟁쟁한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린 해였고, 게다가 조진호는 그 해 열린 미국월드컵 대표팀에도 합류하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용수는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뽑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타 선수에 비해 떨어졌다.


여러모로 최용수가 신인왕을 수상하기엔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최용수는 그 해 4월2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다음 경기인 유공전에서 까지 골을 넣으며 두 경기 연속골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윤상철이란 당대 최고의 공격수와 호흡을 맞추며 시즌 내내 주득점원으로 활약한 최용수는 결국 그 해 9골 4도움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8월의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훗날 한국 축구의 계보를 잇는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렸다.


최용수의 신인왕 수상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신인왕은 대부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한 선수들이 차지했지만 최용수는 사상 두 번째로 드래프트 1순위가 아닌 선수로 신인왕에 등극했다. 또 그 해 최용수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얻어낸 신인왕이라 그 의미는 컸다. 신인 시절부터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최용수는 이후 애틀랜타 올림픽,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2. 정조국 (2003년 신인왕 수상)







2003년 대신고를 졸업하고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로 뛰어든 정조국. 그는 프로 입단 이전부터 청소년대표팀 에서 맹활약하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2002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이종민(상주), 임유환(전북)등과 호흡을 맞춘 정조국은 3골을 넣으며 공격수로서 제몫을 다했고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이때의 활약으로 정조국은 히딩크 감독에 눈에 띄며 2002 월드컵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당시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는 등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프로에 뛰어든 정조국은 시즌 첫 경기부터 교체 출전하며 기대 받는 신인임을 증명했고 7번째 경기인 부천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후 광주전에선 멀티골, 라이벌 수원전에서도 한 골을 추가하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정조국은 그 해 올스타에도 선발되며 중부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고 캐논슛 컨테스트에선 135km/h 의 킥을 보여주며 이동국(129km/h), 이기형(128km/h) 등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2경기 출전에 12골 2도움이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한 정조국은 그 해 11월 UAE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런 정조국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신인왕 수상. 덕분에 정조국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2004, 2005년엔 슬럼프가 찾아왔고 김은중, 박주영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서울에 입단하면서 설자리가 좁아졌다.
 

2003년 두자릿수 득점 이후 2009년까지 단 한차례도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정조국은 2010년 결혼과 함께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활했고, 결국 13골을 넣으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운뒤 프랑스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현재 프랑스 1부리그 낭시에서 활약중인 정조국은 유럽에서 성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 박주영 (2005년 신인왕 수상)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가 열린 말레이시아. 대한민국의 시선은 당시 청소년대표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이 선수에게 쏠렸다. 그의 이름은 박주영. 당시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끔과 동시에 득점상과 MVP를 휩쓰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상까지 휩쓴 박주영은 2005년 초 카타르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러한 활약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했고, 결국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고 서울은 등번호 10번을 배정하며 기대를 보였다. 많은 팬들이 박주영의 골퍼레이드가 프로에서도 이어질까? 하는 관심속에 박주영은 두 번째 경기인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 뒤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 했다. 그 후 박주영의 행보엔 거침 없었다. 컵대회에서만 무려 5골을 추가한 박주영은 광주상무와의 리그 홈경기에선 해트트릭까지 달성하는 등 서울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그리고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선 2005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당시 이동국, 김병지란 최고의 공격수와 골키퍼가 소속되었던 포항을 맞아 박주영은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4-1 대승을 이끈 것이다. 당시 감기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출전한 박주영은 히칼도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48375명이라는 대관중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활약에 대한민국은 박주영 신드롬에 휩싸였다.
 

 2005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의 기도세리머니를 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연일 관중으로 가득찼고 서울이 원정을 떠나면 해당 지역 관중들 역시 박주영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K리그에서 연일 골 폭풍을 몰아치는 박주영이다 보니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 는 말로 그의 발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박주영은 정경호의 패스를 받아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쏘아올리는 활약을 했고 뒤이어 열린 쿠웨이트전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으로 본프레레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시즌 후반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30경기 출전 18골 4도움이라는 성적으로 사상 첫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6년엔 2년차 징크스로 많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 후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며 2008년 여름 프랑스의 AS모나코에 입단하며 유럽진출에 성공했다.



첫 시즌부터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박주영은 5골5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이 후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남아공 월드컵에서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 소속으로 아직 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있지만, 곧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이승렬 (2008년 신인왕 수상)







신갈고를 졸업하고 2008년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을 맡고 있던 귀네슈에게 "K리그를 뒤흔들 재목"이라며 극찬을 받았다. 실제 그는 FC서울의 2008년 첫 경기인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도 출전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고 그 후 귀네슈의 총애 아래 꾸준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자신감 넘치고 저돌적인 플레이는 신인 특유의 패기를 느끼게 해주었고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 능력까지 보이며 전술적 활용도 역시 높았다. 2008년 최종 성적은 31경기 출전 5골 1도움. FC서울 역대 신인왕중 가장 낮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그가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일 정도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라이벌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거함 수원을 격침시키는데 단단히 한몫하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서상민, 조동건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수상한 이승렬은 이듬해인 2009년엔 7골 1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고 2010년엔 팀 내에서 유일하게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합류한 것과 동시에 10골 6도움을 올리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2011년엔 19경기 출전, 1골에 그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팬은 없다. 기성용, 이청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이승렬인 만큼 정상 컨디션을 찾는다면 2012년 이승렬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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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1.12.27 22:07

2011.6.11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포항
1:1 무승부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박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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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12 14:40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후,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애칭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정환이 아내에게 보내는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직까지 서울에서 안정환처럼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을 얻은 선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기억 남는 세리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많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



박주영의 대표 세리머니는 사실 기도 세리머니다. 박주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상 깊은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는 최근 그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하트 세리머니를 보이거나 키스 세리머니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는 배가 불러왔다는 동작을 통해 부인들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기도 한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그 해 4월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유니폼 안의 티셔츠에 여자친구의 애칭인 ‘굼벵이’와 ‘하트’를 그려 넣어 여자친구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이 세리머니로 인해 박주영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알려졌고 많은 여성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고. 2005년부터 이어져온 박주영의 사랑은 오는 6월 12일 결실을 맺는다. 그는 축구천재이기도 했지만 한 여자를 위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김승용의 ‘댄스 세리머니’



김승용은 현재 서울 선수는 아니지만 매번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승용은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이 생긴 경우다. 당시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리마리오 춤을 김승용이 세리머니로 똑같이 춘 것. 이 때문에 김승용에게는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서울에 다시 돌아온 김승용은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리마리오 댄스를 췄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은“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라는 반응과 “군대에서 2년동안 리마리오만 연습했나보다”라며 새로운 세리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본 김승용은 새로운 댄스 세리머니를 추게 된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이미 2007년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화제에 올랐던 김승용은 2009년 5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에게 ‘쏘리쏘리’춤을 췄다. 김승용은 "그동안 골을 못 넣은 것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쏘리쏘리 춤으로 대신했다"라며 골 세리머니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김승용. 그는 당시 유행하는 춤들로 팬들에게 재밌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다.



이청용의 ‘엠블럼 키스’



이청용은 한결같은 세리머니를 보여준 선수다.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로 대표된다면 이청용은 골을 넣은 뒤 엠블럼에 키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팬들과 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청용만의 세리머니였다. 많은 팬들은 그의 ‘엠블럼 키스’를 좋아했고 이는 볼턴에서도 이어졌다. 볼턴에서 골을 넣으면 서울 팬들에게 ‘엠블럼 키스’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첫 골을 성공시킨 이청용은 당시에 “정신없어 하지 못했다”며 후에 2009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청용의 또 다른 약속은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것. 그가 나중에라도 서울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엠블럼 키스’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용의 ‘캥거루 세리머니’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캥거루 세리머니’로 대표된다. 그가‘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다, 기성용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았다. 그리고는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는 듯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0-0이었던 후반 인저리타임에 한솥밥을 먹는 차두리와 극적인 연속골을 뽑아냈을 때도 ‘캥거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기성용이 2008년 수원전에서 ‘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였을 때, 그 이유에 대해 “평소에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보고 아데바요르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선수가 인상깊은 세리머니를 해서 그냥 따라해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세리머니가 펼쳐졌을 때, 논란이 일었다. 기성용의 세리머니가 ‘새 모이쪼기’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이 ‘빅버드’였던만큼 새를 떠올리게 하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승렬의 ‘배트맨과 기타 세리머니’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이승렬. 그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승렬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경기장 한 쪽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의 재치있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이승렬의 현재 별명은 피터팬이다. 그러나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별명 중에는 ‘배트맨’도 있었다.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았던 그는 당시 소감에서 "2년차 징크스 없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배트맨 세리머니를 보이며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데얀의 ‘위험한 세리머니’



데얀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첫 시작은 2009년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벌어졌다. 골을 성공시킨 데얀은 매우 흥분한 나머지 전남 벤치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졌다. 순간 전남 벤치에 있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분노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왔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졌다. 그리고 당시 주심은 도발에 대한 행위로 데얀에게 경고를 선언했다. 이미 1장의 경고를 받은 데얀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를 향한 조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았다. 포항의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를 향해 활을 쏜 것과 같은 이유로 경고를 받은 것. 이후,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얀에게 “팬들은 이런 세리머니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이런 세리머니를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알지만 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은 이런 위험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조국의 ‘아빠 세리머니’



정조국은 결혼 후에 패트리어트라는 별명 대신에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조국은 2010년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13골 중 10골은 아들이 세상에 나온 후 기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그에게 아들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은퇴한 네덜란드산 폭격기 베르캄프로 변신했다는 의미에서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골을 성공시킨 뒤 엄지를 손에 문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 그는‘분유캄프’라는 별명답게 젖병 세리머니,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등을 펼쳤다. 현재는 프랑스로 떠난 그이지만 멋진 활약을 보여준 ‘분유캄프’정조국을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최태욱의 ‘수화 세리머니’



최태욱의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다. 동작도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세리머니를 했다. 최태욱은 지난 2010 쏘나타 K리그 대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달려가면서 한 손 위에 엄지를 치켜세운 다른 손을 올린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최태욱을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그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의 수화를 세리머니로 보여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렸다. 최태욱은 현재 부상 중이다. 얼른 회복하여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수화’세리머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명진의 ‘광고판 세리머니’



고명진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16강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최근 최용수 감독 대행 하에서 고요한과 함께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은 1997년 최 감독 대행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이 1997년 카자흐스탄과의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선제골 후 넘어진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고명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너무 많이 달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골을 넣어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고명진은 최근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고명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고명진의 세리머니는 최 감독 대행의 예전 세리머니와 겹쳐보였다.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아기 독수리’고명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세리머니에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경우도 있다. 골을 성공시킨 뒤 단순하게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색다른 세리머니를 통해 선수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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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6.06 20:41






유럽으로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FC서울은 K리그에서 해외파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한 등용문으로 FC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최근에는 정조국까지. FC서울은 계속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의 이적을 허용해왔다.




얼마 전 오세르에서 뛰고 있는 정조국의 2호골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데얀과 함께 서울의 공격 라인을 이끌며 많은 골을 넣었던 그였지만 프랑스로 이적한 뒤, 골 소식은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정조국의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정조국은 2호골을 성공시키면서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들으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유럽으로 떠난 FC서울의 전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나코의 보배 박주영



최근에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온 박주영부터 살펴보자.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 입단 당시부터 이슈였다. 입단 전부터 이미 스타였던 박주영은 ‘축구 천재’라고 불리며 서울 팬들 앞에 나타났다. 박주영은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FC서울이 K리그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해주었다. 박주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들었고 박주영은 그에 보답하듯 멋진 골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박주영이 2008년 프랑스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FC서울에서도 그랬듯 AS 모나코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박주영은 골을 넣는 역할 뿐만 아니라 팀 내 다른 공격수의 슈팅 찬스까지 만들어주는 등 팀에서 그의 비중은 크다. 2009/2010 시즌에는 9골(컵대회 포함) 3도움을 기록했다.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긴 했지만 프랑스컵(Coupe de France) 결승 무대에도 나섰다. 2010/2011 시즌에는 모나코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31경기 12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현재 강등권에 놓여있다. 박주영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그와‘빅클럽’들이 연관된 이적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많은 팬들은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를 떠나 더 큰 무대에서 뛰기를 바란다. 박주영은 지난 5월에 ‘골닷컴’에서 선정한 ‘빅리그에 갈 재능 TOP 5’에도 선정되었다. 박주영 본인도 이를 원하는 듯하다. 결혼과 함께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는 박주영의 소식을 듣길 바란다.



여전히 그리운 쌍용



귀네슈 감독 부임과 함께 FC서울 축구에 ‘빅재미’를 선사했던 쌍용은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쌍용’은 박주영 다음으로 FC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FC서울에서 뛰며 실력을 다져온 그들은 귀네슈 전 감독의 신임 아래서 무럭무럭 성장해 FC서울의 기둥이 되었다.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쌍용’은 국가대표에서도 주축 선수로 성장하며 서울과 국가대표에서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후, ‘쌍용’은 유럽으로 떠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한다.






‘쌍용’중 가장 먼저 이적한 것은 ‘블루 드래곤’이청용이었다. 27번이라는 번호가 서울팬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청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먼 타국의 축구팬들도 그의 가치를 알아본 것일까. 이청용은 잉글랜드 볼튼에서도 팬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청용은 입단 첫 시즌에 볼튼의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올해의 톱3상’, ‘선수가 뽑은 최우수 선수상’ 등을 휩쓸며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2010/2011 시즌에는‘올해의 톱3상’을 받으며 볼튼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올 시즌 그의 공격포인트는 4골 8도움으로 12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3개였던 작년과 비교하면 하나가 모자라지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다. 2009/2010 시즌이 볼튼의 핵심 선수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면 2010/2011 시즌은 이청용이 팀 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청용은 시즌 초반 정규리그 17경기에 연속 출전하며 볼튼의 시즌 초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었다. 시즌 막판에는 14위로 시즌을 마감한 볼튼이지만 시즌 초에는 유로파 리그 티켓 확보 가능한 순위인 6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했었다. 이런 이청용의 활약에 해외 언론도 호평을 쏟아냈다. EPL 선수 랭킹에서 이청용은 최고 20위(2010.11)에, ‘유로스포츠’가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2회나 선정됐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골닷컴’ 이 선정한 ‘올 시즌 아시아 선수 베스트 10’에서 4위에 올랐다. 이처럼 이청용은 FC서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 볼튼의 에이스가 되었다.




‘쌍용’의 또 다른 주인공 ‘기라드’기성용은 얼마 전 팬들에게 기쁜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전반 32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에서도 들어 올리지 못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경기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올 시즌 성적으로‘80점’을 매겼다. 기성용은“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 20점을 뺐다”고 말하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 외에는 완벽에 가까운 시즌으로 평가했다. 기성용은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 4골 5도움을 기록했다. 그는“적응을 잘 했고 거친 리그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주영과 이청용에 비하면 늦게 유럽으로 진출한 그는 이제 갓 한 시즌을 마쳤다. 박주영, 이청용 모두 이적 후 첫 시즌보다 적응을 마친 다음 시즌에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것처럼 기성용도 첫 시즌보다는 더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정조국까지. FC서울의 전사들은 FC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적한 프랑스 오세르의 정조국은 2호골을 기록하면서 점차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FC서울의 자랑과도 같다.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며 멀리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선수들도 이국에서 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멀리서도 서울의 승리를 기원하며 서울의 우승을 응원한다. 얼마 전 기성용은 귀국 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서울과 함께하는 서울의 전사들. 그들이 유럽 무대에서 멋진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서울의 선수들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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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5.27 12:34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골을 넣지 않고 승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보유다.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FC서울 역시 능력 있는 수많은 스트라이커가 팀을 거쳐 갔다. 그럼 이제부터 어떤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이 FC서울에 몸담았는지 알아보자.


1. 태국산 코브라 피아퐁 푸에온

활동연도 : 1984~1986

통산기록 : 43경기 18골 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85

K-리그 준우승 1회 : 1986

K-리그 득점상 : 1985 (21경기 12골)

K-리그 도움상 : 1985 (21경기 6도움)

K-리그 베스트 11 : 1985



1984년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에 입단한 피아퐁은 K리그 최초의 동남아시아 출신 용병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진가는 1985년부터 빛을 발한다. 21경기에 나와 12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 그는 도움도 6개나 기록하며 도움왕 까지 거머쥐며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의 순도 높은 활약은 팀의 큰 보탬이 되었고 럭키금성은 그해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준족에 스피드가 뛰어나고 특히 문전에서 남다른 순발력을 보인 피아퐁은 ‘태국산 코브라’라는 별칭으로 유명했으며 태국 국가대표 로도 129경기에 나와 103골을 터트리는 등 태국에서도 축구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3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피아퐁은 파항FA와 왕립 태국 공군FC에서 뛰었으며 1997년 은퇴하게 된다.
그 후 2007년 K리그 득점왕들의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스페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현재 태국 공군 대위의 신분으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왕립 태국 공군 FC의 코치와 태국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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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윤상철

활동연도 : 1988~1997

통산기록 : 300경기 101골 31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90

K-리그 준우승 2회 : 1989, 1993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2, 1994

K-리그 득점상 (2회): 1990(30경기 12골), 1994(34경기 21골)

K-리그 도움상 : 1993(32경기 8도움)

K-리그 베스트 11 (4회) : 1989, 1990, 1993, 1994



1988년 드래프트 1순위로 럭키금성(현FC서울)에 입단한 윤상철은 K리그에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1989년 31경기에 나와 17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 윤상철은 이듬해인 1990년엔 30경기에 나와 12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자신은 득점왕에 오른다.
그 후 윤상철은 1993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해 32경기에 나온 윤상철은 8도움을 기록. 도움왕에 오르며 피아퐁에 이어 두 번째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차지했고 그 해 9월 28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선 K리그 통산 6번째로 20득점 2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1994년엔 34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득점왕에 올라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 한다.
이후 1997년 4월6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서 통산 6번째 30득점 30도움 클럽 가입, 그 해 8월 13일 전북현대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100골 기록, 또 9월 27일 전남과의 경기에서 역시 K리그 최초로 300경기에 출장하는 등 K리그 사 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윤상철은 비록 신체조건이나 스피드, 활동량등 스트라이커로서 외적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골 에어리어 에서의 득점감각과 슈팅 타이밍, 슈팅센스 같은 내적조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현역시절 ‘얼룩치타’라는 별명이 있었던 그는 현재 경신고등하교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3.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활동연도 : 1994~1998, 1997~1998, 2004~2006

통산기록 : 148경기 54골 2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200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4, 1999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 1999년

K-리그 신인왕 : 1994

K-리그 인기상 : 1995

K-리그 베스트 11 : 2000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 : 2000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최용수는 입단 첫해부터 그 비범함을 뽐낸다.
1994년에 입단한 최용수는 그 해 35경기에 출전해 10골 7도움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2년간 상무에서 복무한 그는 2000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34경기에 나와 14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MVP에 오른다.
또 그해 5월 24일 대전시티즌 과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5번째 20득점-20도움을 기록했다.
2001년 한국 선수 최고 금액으로 일본 J리그 제프 이치하라에 입단한 최용수는 일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이적 첫해부터 J리그 득점랭킹 2위에 오른 그는 2001년, 2003년에는 J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2003년 4월에는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으로 AFC 4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교토상가와 주빌로 이와타를 거친 그는 J리그에서 121경기 75골이란 기록을 남긴 뒤 2006년 FC서울로 복귀해 그 해 8월5일 FC도쿄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날카로운 눈매와 투지넘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인해 독수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98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활약은 눈부셨는데 당시 그는 대회 최다 득점인 7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일조한다. 현재 그는 FC서울의 코치로 재직하며 제2의 최용수를 발굴하는데 힘쓰고 있다.



4. 패트리어트 정조국

활동연도 : 2003~2010

통산기록 : 203경기 59골 18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3

FA컵 득점왕 : 2004

K-리그 컵대회 우승 2회 : 2006, 201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우승 1회 : 2010



정조국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다.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정조국은 최성국(광주)과 함께 빅앤스몰 조합을 구성하며 대표팀 공격을 이끌었고, 2002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 2003 세계 청소년 대회 16강 진출등에 공헌했다.
2003년 LG치타스(현 FC서울)에 입단한 정조국은 32경기에 출전해 12골 2도움으로 신인왕에 오르며 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2004년엔 FA컵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정조국은 서울에서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출전하며 지난 2010년 9월25일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185cm의 좋은 신장과 튼튼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와 문전앞에서 침착함이 돋보이는 정조국은 현재 프랑스 AJ옥세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5. 불세출의 축구천재 박주영

활동연도 : 2005~2008

통산기록 : 91경기 33골 9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5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06,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청소년 대회. 우리나라는 이 대회 우승과 함께 박주영의 발굴로 흥분되었다.
당시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으로 우리나라 공격을 이끌며 우승과 함께 득점왕 및 MVP를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한 그는 2005년 초에 열린 카타르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로 자리를 옮긴 그의 득점력은 멈추질 않았다.
데뷔 시즌에서 18골 4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만장일치 신인왕을 기록했다.
또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 2005년 한국축구에 박주영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조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것 같다’며 그의 발탁을 꺼려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며 성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박주영은 다음해 2년차 징크스로 인해 득점이 줄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200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17경기에 나와 2골 4도움을 기록한 박주영은 그 해 여름이적시장 에서 이적료 200만 유로를 받고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했다.
프랑스 리그 데뷔 경기부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박주영은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5골 5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한 층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이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도 자리 매김한 박주영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5골을 터트렸고, 월드컵 본선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선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트리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일조했다. 대표팀 감독이 조광래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 없이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주영은 대한민국 최고 스트라이커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다.





6.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123경기 65골 20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컵대회 득점상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7년 인천에서 데뷔한 데얀은 36경기에 출전하여 19골 3도움으로 득점랭킹 3위에 오르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자리잡는다.
2008년 FC서울로 이적한 후에도 그의 득점포는 식을줄 몰랐는데 33경기에 출전해 15골 6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끈다.
2009년에는 25경기 출전 14골 1도움을 기록,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고 그해 7월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선 2골을 넣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19득점 10도움 이라는 기록을 보여주며 FC서울의 확실한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다.



7. 피터팬 이승렬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79경기 21골 8도움

수상기록 : K-리그 신인왕 : 2008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8년 드래프트를 통해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이던 귀네슈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된다.
시즌 초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그 해 31경기에 출전하여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승렬이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활약도 역시 순도 높았다.
2009년엔 중앙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겸하며 26경기에 출장해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진보한 모습을 보인 이승렬은 빙가다체제에서도 꾸준히 선발출장 하며 22경기에 나와 9골 6도움을 기록중이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2010년 잠비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승렬은 동아시아컵에도 출전해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고 한일전에선 결승골을 터트리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여세를 몰아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이승렬은 그리스전에서 교체투입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어린나이임에도 FC서울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승렬. 많은 전문가들은 이청용, 기성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로 이승렬을 꼽고 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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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1.04.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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