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공격은 전통적으로 콤비 플레이가 강했다. 2005년 박주영과 히칼도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서울 공격의 핵으로 활약했고 2011년엔 고명진과 데얀이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고-데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또 데얀과 몰리나가 보여준 데몰리션 듀오의 위력은 모든 팀을 떨게 만들었다. 데얀이 떠나면서 데몰리션 듀오는 해체됐지만 새로운 듀오가 탄생하여 서울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그 주인공은 고요한과 윤일록의 고-윤 듀오. 두 선수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여 팀의 세 골을 합작하며 FC서울의 새로운 듀오로 떠오르고 있다.

 


고요한과 윤일록의 콤비 플레이가 처음으로 빛을 발한 것은 지난
AFC 챔피언스리그 베이징 궈안과의 원정 경기. 이날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유타카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공격마저 잘 풀리지 않자 최용수 감독은 후반에 고요한을 교체 투입했고 후반 26분 두 선수의 환상적인 호흡이 나왔다. 윤일록의 정확한 로빙 패스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공간 침투에 고요한에게 연결됐고 고요한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윤일록과 고요한의 절묘한 콤비 플레이로 서울은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리그 첫 승을 거둔 제주전에서도 두 선수의 활약은 빛이 났다
. 전반 고요한의 슈팅이 골대를 맞는 등 운이 따르지 않은 서울은 후반 12분 윤일록이 교체 투입되며 공격에 활기를 띄었다. 결국 윤일록과 고요한이 첫 골을 만들었다. 후반 23분 수비의 클리어링을 가로챈 윤일록이 왼발 슈팅을 날렸고 슈팅은 김호준의 선방에 막혔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은 고요한이 달려 들어 머리로 밀어넣었다. 윤일록이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윤일록이 돌파 하자 고요한이 반대쪽에서 동시에 돌파하며 공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골 이었다. 이후 윤일록은 자신이 직접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키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히로시마전에선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가 동점골을 만들었다. 후반 8분 시오타니 츠카사의 어설픈 패스를 고요한이 침투하는 윤일록에게 전진패스를 내줬고, 윤일록은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침착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상대의 어설픈 패스를 가로채 침투하는 동료의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도록 공간에 패스해준 고요한의 플레이와 윤일록의 침착한 마무리가 골을 만들어냈다.





전북전에서도 고요한과 윤일록의 콤비 플레이가 전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 후반 인저리 타임 고요한이 프리 상태에 놓여있는 윤일록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줬고 윤일록이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대를 살짝 빗나가며 아쉬움을 삼켰다. 빈 공간을 파고 든 윤일록과 그것을 놓치지 않은 고요한의 정확한 크로스가 역전골을 만들 뻔 했다.













윤일록과 고요한은 현재 FC서울의 좌 우 측면 공격을 이끌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가 돋보이며 마무리 능력까지 갖췄다.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보이는 두 선수가 좌측과 우측을 돌파하며 짧은 패스워크로 공격을 전개하는 플레이는 현재 서울 공격의 중심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 서울의 공격을 보면 위협적인 공격은 고요한과 윤일록이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이다. 또 고요한과 윤일록의 플레이 스타일은 최용수가 추구하는 공격 스타일과도 맞기 때문에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앞으로 더욱 날카로워 질 것이다.





일본 만화 환타지스타의 주인공 사카모토 테뻬이는 자신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오키다 카오루와 콤비 플레이를 펼치자
마치 나 자신과 플레이하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읊조렸다. 현재 윤일록과 고요한 역시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 더욱 진화될 고-윤 듀오의 활약이 기대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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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4.06 22:56

 

 

FC서울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은 아디의 은퇴식으로 시작됐다. 8년간 FC서울의 수비를 이끌었던 아디는 이제 코치로 새롭게 출발한다. 오랫동안 활약했던만큼 아디는 다양한 기록과 스토리들을 남겼다.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기록과 다양한 이야기들 이제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
아디 그가 K리그에 남긴 기록들

 


아디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으로 30경기 이상 출전했다. (201031경기, 201130경기, 201238경기, 201333경기)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최초의 기록이다. 라돈치치(200832경기, 200932경기, 201031경기) 샤샤(200134경기, 200237경기, 200339경기)등이 3년 연속으로 30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지만 4년 연속은 아디가 처음이다. 물론 신의손이 과거 사리체프 시절 4년 연속 30경기에 출전한 적 있지만 현재 귀화한 선수이니 예외로 둔다. 게다가 신의손은 골키퍼였으니 필드플레이어로서 세운 아디의 기록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아디는 K리그 통산 264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샤샤의 271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이다. 역대 2위 기록이지만 아디는 한 팀에서만 200경기 이상 출전한 유일한 외국인 선수다. 264경기 출전은 FC서울 통산 2위에 해당하는 출전 기록이다. (1위는 윤상철의 300경기) 또 아디는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서 무려 5회나 수상했다. 아디는 2007, 2008, 2010, 2012, 2013K리그 베스트일레븐 수비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중에 최다 수상이다.

 


2.
아디가 첫 번째 외국 생활에서 겪은 것은 전쟁?

 

아디는 21세이던 1997년 세르비아의 크르베나 즈베즈다에 입단하며 첫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디는 축구에 전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당시 세르비아 지역은 내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르비아 지역이 반미감정으로 들끓었기 때문에 아디는 외출할 때마다 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브라질 국기를 두르고 나는 브라질인이다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한 지역에선 생활할 수 없었고, 결국 아디는 6개월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3.
아디가 홈팬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모습은?

 


2006
년에 입단한 아디. 수원과의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뒤 전북과의 홈 개막전에서도 변함없이 선발 출장 했다. 그렇다면 아디는 홈 개막전에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불행하게도 퇴장이다. 아디는 이 경기에서 후반 30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팀은 수적 열세에 놓이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아디는 그해 45일에 열린 대구와의 경기에선 치명적인 헤딩 미스를 범하며 역전골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한 아디는 이후 FC서울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4. 아디 2007 시즌이 끝나고 서울을 떠날 뻔 했다?

 

아디를 데려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이장수 감독이다. 이장수 감독은 다렌스더에서 맹활약한 아디를 눈여겨봤고 결국 2년 계약으로 입단 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장수 감독은 포포투 20092월호에서 아디 에이전트가 자신에게 한 말을 들려줬다. 2008년 베이징 궈안의 수장이었던 이장수 감독은 아디 에이전트가 서울과 계약도 만료되니 원한다면 베이징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장수 감독은 아디를 위해선 중국보단 한국에 뛰는 것이 더 좋을 것 다고 하여 사양했다고 한다. 결국 아디는 FC서울과 재계약하며 잔류했다.

 





5. 아디가 8번을 달게 된 이유는 두두 때문?

 

아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8번이다. 아디는 오랜 기간 FC서울의 8번으로 활약했기에 팬들에게도 ‘8번은 아디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아디는 어떤 계기로 8번을 달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을 필자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2012년 필자와의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아디는 “2006 시즌이 끝나고 두두가 자신이 달았던 8번을 나에게 추천하고 자신은 11번을 달았다. 등번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터라 그 제안을 받아 들여 8번을 달게 되었는데 이후 플레이가 좋아져 8번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번을 유지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아디에게 행운을 내준(?) 두두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20076골로 평범한 모습을 보인 두두는 2008년 성남으로 돌아갔고 그해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리빌딩을 원한 신태용 감독에 의해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오미야 아르디쟈에 입단했지만 18경기 1골 이라는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설상가상 무면허 음주운전사고까지 일으켜 퇴출되기에 이른다. 이후 두두는 브라질의 작은 클럽인 두케 드 캬샤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현재 근황은 전해지지 않는다.

 

6. 아디가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외국인 레전드는?

 


특유의 유쾌한 성격 덕에
FC서울 내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아디. 국내 선수들 뿐 외국인 선수도 아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친한 선수를 꼽으려면 단연 히칼도다. FC서울의 또 다른 외국인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는 히칼도는 아디의 가족을 자신의 포르투갈 집으로 초대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그는 재작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디는 여전히 나에게 FC서울의 소식을 전달해준다라며 밝혔고 2012년 우승 당시에는 아디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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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3.10 00:18

 

 

 

2006년 리그컵 우승은 여러모로 의미를 갖는다. 우선 FC서울 이름으로 거둔 첫 우승이고, 2000년 우승 이후 6년 만에 추가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이 우승으로 인해 그 동안 잃었던 강팀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2006 리그컵 우승의 주역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히칼도다. 히칼도는 2006 리그컵에서 부산과의 첫 경기부터 도움을 기록했고, 전북전에선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24도움을 올리며 팀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우승컵을 높이 들어올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히칼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긍정적인 기운을 받기 위해 그가 전하는 2006 리그컵 우승 이야기를 들어보자.

 

 

1. 히칼도 선수는 2006 리그컵 우승의 주역이었죠. 당시 우승을 차지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말 최고였어요
. 우리들의 팀워크와 서포터들의 응원이 트로피를 차지하게 된 원동력이 되엇습니다. 특히 서포터들의 한결같은 응원은 정말 큰 힘이었어요.

 


2.
사실 2006 시즌 초반 FC서울은 다소 부진했었죠. 그래도 리그컵 우승을 예상하셨나요?

 



물론 그 당시 시즌 초반엔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죠
. 하지만 서울은 최고의 팀이고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서포터들이 존재하기에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죠. 당시 경기를 뛸 때 팀을 위해 경기를 하면 언제나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죠. 그 덕분에 리그컵 우승까지 이르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3.
당시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상대가 수원이었습니다. 최고의 라이벌이 상대였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수원은 최고의 라이벌이었죠
. 늘 수원과 어려운 경기를 펼쳤고요. 그래서 이번 경기도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지만 우승을 확정지어서 다행이었죠. 수원 역시 최고의 팀이지만..... 그래도 서울이 더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4. 리그컵을 우승한지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시나요?

 



물론이죠
. 저는 그 순간을 저의 프로 선수 생활 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당시 입고 있었던 우승 기념 티셔츠를 아직도 갖고 있죠.

 

 

 

5. 당시 응원해 준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최고의 서포터인 FC서울 서포터들. 저는 FC서울 서포터들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도 FC서울이 챔피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두 ‘FIGTHING’입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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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11.06 23:10


 






K리그가 휴식기를 갖고 있는 요즘. 팬들은 다가올 시즌을 기다리며 이 추운 날을 보내고 있다. FC서울 팬들을 포함한 다른 팀들의 팬들도, 빨리 시즌이 개막해 축구장이 열기로 가득차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프시즌인 지금, FC서울의 인상적이었던 시즌을 알아보기로 했다. 분명 팬들에겐 2010, 2012 시즌처럼 우승을 거둔 시즌이 제일 인상 깊고 기억에 남아있겠지만, 그 외에도 FC서울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시즌은 있었다. FC서울의 인상적이었던 시즌. 그 첫 번째로 2005년 FC서울을 꼽아봤다.




변화로 시작한 2005년



 
2005년 FC서울의 시작은 변화였다. 우선 사령탑부터 변화를 줬다. 조광래가 떠난 자리에 중국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이장수를 선임한 것이다. 스쿼드에도 강력함을 줬다. 노나또, 이기형, 박성배, 히칼도 등을 데려왔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박주영마저 FC서울의 유니폼을 입히면서,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했다. 유니폼도 기존의 빨간색에서 현재의 빨강과 검정이 섞인 유니폼으로 교체하는 등 FC서울은 많은 변화를 주면서 2005년을 준비했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표방하는 이장수 감독은 시즌 개막전이자 컵대회 첫 경기인 전남과의 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3-3 으로 비기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열린 대구와 성남과의 경기에서 잇달아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부산을 상대로 3-0 압승을 거두며 시즌 첫승을 거두긴 했지만 다음 경기인 부천전에서 0-1로 패하며 다소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서울은 히칼도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라이벌 수원을 1-0으로 이긴 뒤 인천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대전, 광주상무, 울산을 연달아 제압하며 시즌 첫 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북에게 0-4로 패하고, 포항과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5위로 컵대회를 마감했다. 18득점을 올리며, 수원에 이어 리그 득점 순위 2위에 오른 화력은 인상적이었지만, 18실점으로 최다 실점을 기록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당시 신예였던 박주영은 컵대회에서만 6골 1도움을 올리며,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K리그 개막, 그리고 박주영 신드롬



 
2005 K리그는 전 후기 분할리그로 치러졌고, 5월 중순에 전기리그가 개막했다. 하지만 서울의 출발은 불안했다. 울산을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 0-1로 패했고,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서도 3-5로 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 날 경기에서 박주영이 프로 데뷔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여전한 골 감각을 보여줬다. 서울 역시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인 전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리그 첫 승을 기록한 것이다. 좋은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대전과의 4라운드 경기부터 전북과의 10라운드 경기까지 7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한 것이다. (3승4무)




박주영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5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출전하지 못했지만, 노나또, 김은중 등이 잘 메우며 서울의 공격을 이끌었다. 성남과의 11라운드 경기는 1-4로 패했지만, 팀에 복귀한 박주영은 남은 전기리그 두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다.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끈 박주영은 포항과의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압승에 일조한 것이다. 히칼도는 이 기간 동안 5도움을 기록하며, 특급 도우미로 활약했고, 박주영은 월드컵 예선 활약에 이어, K리그에서도 골 폭풍을 몰아치며, 대한민국을 ‘박주영 신드롬’에 빠뜨렸다.
 



박주영의 활약속에 K리그 경기장도 관중으로 가득했고, 포항과의 경기에선 48375명의 대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다관중 기록은 2010년 FC서울이 새롭게 갱신했다) 전기리그를 마친 서울은 5승4무3패로 5위에 자리했다. 22골을 넣으며 팀 득점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실점 역시 19점으로 전북, 수원과 최다실점 3위에 오른 것은 아킬레스건이었다.  

 


 








후기리그 첫 경기에서 서울은 광주상무를 2-0으로 꺾으며, 쾌조의 출발을 보이는 듯 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울산과 1-1로 비긴 이후로 무려 7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라이벌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박주영, 정조국, 한태유의 골로 3-0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서 열린 부산전에서도 2-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가 했지만, 서울은 남은 두 경기인 대전전과 전남전에서 각각 0-0 무승부, 2-3 패배를 당하며 전기리그 5위, 후기리그 9위, 통합 6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FC서울의 2005년은 박주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서울은 박주영 효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주영은 데뷔 시즌에서 무려 18골을 터트리며 신인왕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로도 월드컵예선에서 2골을 터트리며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박주영 덕분에 관중 동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은 당해에 45만8605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역대 구단 별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고, 또 포항과의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48375명의 관중이 들어차며,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도 세웠다. 덕분에 K리그 관중 역시 2,777,441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그리고 데뷔 시즌을 치른 히칼도 역시 도움왕을 차지하며, 특급 미드필더로서 자존심을 세웠다. 

 



비록 성적은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다. 게다가 후기리그 초반 무승 행진을 기록한 것도 뼈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박주영, 히칼도를 주축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이며, 최다득점 4위에 오른 것, 그리고 수원 원정에서 무려 3골을 폭발시키며 승리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들이 많았기에, FC서울의 2005년은 기억에 남을 만한 시즌이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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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1.14 00:58






지난 수원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근황과 FC서울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던 히칼도. 이번엔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FC서울의 우승이 확정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이 우승해서 행복하다’ 는 글을 남기며 FC서울 우승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 이제부터 히칼도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1. 한달 만에 다시 만나는 군요 히칼도.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하하 그렇군요. 수원전 이후 한달만이네요. 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요. 축구와 FC서울을 사랑하면서요. FC서울이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꼈고요.



2.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 부탁합니다.



 우승을 정말 축하합니다. FC서울은 최고의 팬,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이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한 팀입니다.



3.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최용수는 코치였죠. 그는 지금 FC서울의 감독 자리에 올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최용수 감독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최용수는 코치 시절부터 훌륭한 인물이었어요. 훗날 좋은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에 대해 축하의 말을 전하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제가 직접 최용수 감독에게 더 좋은 말을 전해주고 싶지만, 전 한국어를 못하고 최용수 감독은 포르투갈어를 못하니 좀 아쉽군요.



 









4. 당신과 주전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아디와 정조국은 올해 FC서울의 우승 멤버가 되었습니다. 과거 팀메이트였던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디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죠. 그 친구가 변함없이 FC서울의 선수로 남아있는 게 기쁘군요. 올해엔 FC서울에서 200경기 출장 기록을 넘었다고 하는데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정조국 역시 훌륭한 선수죠. 프랑스 리그에도 진출했다는 사실이 그의 능력을 증명하죠. 프랑스에선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알고 있지만, 그는 최고의 위치에 있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입니다.



5.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고명진과 고요한은 유망주였죠. 하지만 그들은 올해 당당히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FC서울에 있었을 때 두 선수 모두 어린 선수였지만, 전 그들이 잠재력이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FC서울의 주전으로 거듭나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나아가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그들은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많이 그립군요.  



6.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축하메시지 부탁합니다.



 예전부터 늘 말해왔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하고 싶군요. ‘FC서울 팬들은 세계 최고의 팬들입니다’ 최고의 응원을 보내는 여러분들은 FC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저에게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었던 팬들이 많이 그립군요. 팬들에게도 우승을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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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12.06 21:06






2005년 FC서울에 입단하여 2007년 까지 활약했던 히칼도. FC서울에서 뛰는 3년 동안 그는 71경기에 출전하여 8골 23도움을 기록했다. FC서울의 플레이메이커로 자로 잰 듯한 패스, 강력한 중거리 슈팅 등을 선보이며 서울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히칼도. 그는 첫 출전한 슈퍼매치에서 페널티킥 결승골 성공, 2007년 FA컵 맞대결에선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승리를 결정짓는 슛을 성공시키는 등, 슈퍼매치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이번엔 슈퍼매치를 맞아 히칼도에게 현재 근황, 기억에 남는 슈퍼매치, FC서울 팬들을 위한 메시지 등을 들어보기 위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전히 많은 팬들이 그리워 하는 선수 히칼도.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보자. 




1. 정말 오랜만입니다. 히칼도.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도 오랜만입니다. FC서울에서 아직도 절 생각하고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저는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FC서울에 대한 그리움도 여전합니다. 제가 서울을 떠날 때 제 심장의 일부분을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인지 마음 한 구석이 좀 허전해요.(웃음) 




2. 포르투갈에서도 FC서울 소식은 자주 접하고 계신가요?



 그럼요. FC서울 관련된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모두 찾아보고 있습니다. FC서울 홈페이지도 자주 방문하고요. 또 아디가 저에게 FC서울의 현재 상황 등을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FC서울은 여전히 멋진 경기와 특별한 팬들로 가득한 것 같아요.




3. 아쉽게도 현재 FC서울은 수원에게 연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만약 알고 계셨다면 이번에 연패를 끊을 방법으론 어떤 게 있을까요?



 알고 있습니다. 참 불행한 일이죠. 연패를 끊을 방법이라면........ FC서울에서 저를 초청해서 제가 직접 수원전을 관전한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FC서울에서 뛸 때 수원에게 패배한 기억은 거의 없거든요.(웃음) (실제 히칼도는 통산 8회의 슈퍼매치에 출전했는데 패한 적은 딱 한번이다.)

 











4. 당신은 FC서울에 머물 당시 수원전 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나요?



 수원과의 경기는 저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서포터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경기때 마다 서울 서포터, 수원 서포터 모두 각자의 스타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죠. 그것이 저의 플레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5.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슈퍼매치는 언제였나요?



 2006년 여름에 수원에서 했던 컵대회 경기입니다. 당시 우리는 1-1로 비겼지만, 그 경기로 인해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죠. 수원 원정경기는 늘 어려움이 따랐지만, 적지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해서 인지 기억에 남는군요. 또 그 우승은 제가 한국에서 경험한 유일한 우승이기도 하고요.



6. 당신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제가 FC서울에서 뛸 당시, 팬들은 제가 프리킥을 찰 때 언제나 저의 이름을 불러줬죠. 또 제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의 명소들을 다닐 때 알아봐준 팬들도 있고요. 저에겐 특별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팬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또 슈퍼매치 당시 경기장을 열광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던 서울 서포터, 수원 서포터 모두 그립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말로 밖에 할 수 없어서 좀 슬프네요. 약간의 향수(鄕愁)도 느껴지고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엔 FC서울이 꼭 승리할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히칼도는 인터뷰에 유독 miss(그리움)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이는 여전히 히칼도에게 FC서울은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음을 증명한다.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 준 히칼도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하며, 히칼도의 메시지가 FC서울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줄지 기대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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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11.04 21:14


FC서울은 해외 유명 클럽들과 친선 경기를 펼치며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박지성과 고요한이 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습






매년 이맘때쯤이면 FC서울은 해외 유명클럽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FC서울은 이 친선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선진축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외 유명클럽들이 무리한 일정을 짜며, K리그 일정에도 영향을 준 탓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FC서울이 친선경기를 열때 마다 구름관중이 몰려들며, 높은 열기를 보였다. K리그 경기 수가 많아지고 특히 올해엔 스플릿 시스템이 적용되어 강등팀을 정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친선경기를 치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또 다시 친선경기가 열릴 여지는 충분하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은 어떤 팀들과 친선경기를 벌였고, 그 속엔 어떠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2005.07.26 vs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보카 주니어스. 프로리그 출범 이후 단 한번도 2부리그에 강등되지 않았고, 23번의 1부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컵 6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고로 두고 있어, 대한민국의 수도와 아르헨티나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클럽에 맞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경기에 앞서 양팀이 자매결연을 맺으며 상호 교류를 약속하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는 당시 간판스타였던 마르틴 팔레르모(한 경기에서 세 개의 페널티킥을 놓친 선수로도 유명하다.)가 결장했지만, 아르헨티나 청소년대표 출신의 네리 카르도소, 현재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등이 출전하며 막강 전력을 과시했다. FC서울 역시 노나또, 히칼도, 김은중 등을 앞세워 보카 주니어스에 맞섰지만, 선제골은 보카 주니어스의 몫이었다. 전반 17분 카르도소의 프리킥을 받은 팔라시오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을 돌파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기세가 오른 보카 주니어스는 시종일관 서울을 압박했고, 네리 카르도소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공격을 이끌었다. 결국 전반 44분 다니엘 빌로스가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전반은 0-2로 끝났다. 반격에 나선 서울은 정조국, 백지훈등을 투입해 공격을 강화했고, 결국 후반 7분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백지훈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그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청소년대회에서도 맹활약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백지훈은 이 날 경기에서도 골을 성공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흐름을 탄 서울은 공세를 취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후반 17분 기회를 잡는다. 페널티 지역을 돌파하던 노나또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노나또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서울은 이후에도 정조국을 앞세워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골은 넣지 못하고 1-2로 패했다. 족저근막염으로 출전하지 못한 박주영의 공백이 아쉬운 한판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최강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데엔 성공했다.




2. 2006.08.05 vsFC도쿄











아르헨티나 수도를 연고로 한팀과 경기를 벌이고 1년 뒤, 서울은 이번엔 일본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FC도쿄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FC서울과 서울시는 그간 성원해준 팬들에게 보답하고자, 각계각층의 서울시민들을 초청했고, 선착순 무료입장을 실시했다. 그 결과 6만여명의 대관중이 몰려들었고, 경기장은 뜨거운 여름날씨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해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에 있던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득점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전반 2분 최용수의 패스를 받은 두두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FC도쿄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 브라질 대표였던 루카스와 현재 대전시티즌에서 뛰고 있는 바바 유타등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당시 서울의 수문장이던 김병지를 뚫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전반을 1-0으로 마쳤다. 후반 들어 양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지만 서울이 추가골을 넣으며 앞서나갔다.



현재 FC서울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이 날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후반 39분 하프라인에서 패스를 이어받은 두두는 단독돌파 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특유의 개인기로 골키퍼까지 제친 뒤 두 번째 골을 넣은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44분 정조국의 골까지 보태며 도쿄를 3-0으로 완파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선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가 은퇴식을 가지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고,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3. 2007.07.20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많은 축구팬들을 흥분시킬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이었다. 과거 FC바르셀로나, 첼시등도 내한한적은 있었지만, 박지성이 소속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해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팀이 내한한다는 소식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하길 원했던 맨유라 당연히 상대팀은 FC서울이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리오 퍼디낸드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플레이 한다는 점, 경기를 앞두고 양팀의 메인 유니폼인 붉은색 유니폼 착용을 두고 신경전을 펼친 점(결국 붉은 유니폼은 서울이 입었고 맨유는 보조 유니폼인 흰색을 착용했다)등 다양한 이슈거리가 쏟아져 나왔고,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티켓은 11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비록 박지성이 무릎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호날두, 루니등 최고의 선수들의 플레이는 서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전반 5분 루니의 패스를 받은 호날두가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19분 호날두의 감각적인 힐패스는 이글스의 추가골로 이어졌다. 전반 20분 루니가 날린 강력한 슈팅이 김병지의 손을 맞고 골대안으로 빨려들어가며 전반에만 0-3으로 앞서간 맨유는 후반 15분 박지성의 절친인 에브라가 네 번째 골까지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서울 역시 정조국, 히칼도등이 공격 선봉에 섰지만, 아쉽게도 거함 맨유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고,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2008.03.01 vsLA갤럭시








2008 K리그 개막을 앞둔 FC서울은 미국의 명문클럽인 LA갤럭시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LA갤럭시는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이 날 경기에도 베컴이 출전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베컴은 경기외에도 어린이 축구교실, 팬 사인회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팬들과 소통했고, 태권도복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의 팬 사인회는 많은 팬들이 몰려들어 30분만에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베컴의 인기는 대한민국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LA갤럭시엔 베컴만 있는게 아니었다. 현재 미국의 에이스인 랜던 도노번,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아벨 사비에르등 빼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주전에 베스트 멤버들을 기용해 승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양 팀은 초반부터 치열한 경기를 보여줬다. 이청용은 베컴에게 거친 태클을 가하며, 친선경기 이상의 경기력이 펼쳐지는등 양 팀은 강한 승부욕을 보였고, 결국 전반 21분 베컴의 마법같은 오른발 킥이 선제골을 만들었다. 베컴이 오른발로 올려준 볼을 공격수 고든이 이어받아 선제골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전반 30분 서울이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정조국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양 팀은 후반들어서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지만, 결국 경기는 1-1로 끝이 났고, 꼭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주최측의 결정에 따라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선 김호준의 선방이 빛났다. 김호준은 1번 키커인 베컴을 제외하고 2,3,4,5번 키커의 슛을 모조리 막아냈다. 서울은 김은중과 이상협이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결국 2-1 승리를 거두었다. 승부차기에서 선방쇼를 펼친 김호준은 MVP를 수상했고, 당시 신인이었던 이승렬은 첫 공식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다. LA갤럭시전 승리로 쾌조의 출발을 알린 서울은 3월 한달 동안 2승2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5. 2008.06.15 vsFC도쿄









2006년 홈에서 FC도쿄를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고 2007년엔 도쿄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거두었던 서울은 2008년 FC도쿄를 다시 홈으로 불러들여 일전을 가졌다. 당시 서울은 K리그에서 4위, 도쿄는 J리그에서 3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강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어 이번 대결에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날 경기에선 인기가수 마야가 초청되어 공연을 펼쳤고, 양 팀 서포터즈들이 릴레이 달리기를 하는 등 축제분위기로 진행됐지만, 승부는 승부인 법. 양 팀은 치열한 경기를 펼치며 경기장을 찾은 42000여명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서울은 팀의 주축인 박주영과, 이청용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결장했지만 데얀, 이을용, 정조국등이 경기에 나서며 도쿄를 압박했다.
 



하지만 선제골은 도쿄의 몫이었다. 전반 40분 최원권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도쿄는 까보레의 침착한 슈팅으로 0-1을 만든 것이다. 2007 시즌 경남 소속으로 K리그 득점왕(18골)에 오르며 도쿄로 이적한 까보레는 페널티킥 성공으로 서울에 비수를 꽂았다. 전반을 0-1로 마친 서울은 데얀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고, 마침내 후반 28분 그 결실을 맺었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36분엔 심우연을 투입하며 또 하나의 공격 옵션을 장착했고, 역전골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 1-1 무승부를 기록한 서울이었지만 도쿄와의 역대 전적에서 1승2무로 대한민국 수도 연고팀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6. 2009.07.24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내한해 많은 화제를 뿌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9년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도 역시 상대는 FC서울. 하지만 당시 맨체스터 유니이티드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잡는 바람에 서울이 일정을 변경해 7월에 예정되었던 광주상무전을 5월에 치러야만 했고, 이같은 결정은 몇몇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값은 국내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이번에도 티켓이 매진되는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당시 맨유는 2007~200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잇달아 제패했고, 2008~2009 시즌엔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비록 간판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내한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리오 퍼디낸드등 여전히 스쿼드는 화려했다.
 



그리고 박지성 역시 2년전과는 달리 건강한 모습으로 국내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유는 이번에도 루니, 긱스, 에브라, 퍼디낸드등 주축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며, 서울을 압박했지만, 귀네슈 감독은 그간 즐겨쓰던 포백 대신 김치곤, 김진규, 박용호를 스리백으로 세워 수비를 두텁게 하며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 의지가 통했는지, 초반 경기 흐름은 서울이 잡았다.




공격진에 포진된 데얀과 이승렬은 활발한 모습으로 수비진을 흔들었고, 전반 8분에 나온 고명진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맨유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맨유는 여독이 풀리지 않은듯 다소 무거운 몸놀림을 보였다.
 



결국 선제골마저 서울이 터트렸다. 전반 23분 우측에서 김승용의 크로스를 받은 데얀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더욱더 활발한 모습으로 맨유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맨유는 역시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맨유는 전반 31분 오셔의 크로스를 루니가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데얀이 선제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이후 양팀은 친선경기임을 잊은 듯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결국 김승용이 전반 막판 부상으로 교체 아웃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방전 속에 추가골의 주인공은 서울이었다. 전반 추가 시간 이승렬의 침투 패스를 이어받은 데얀이 쿠쉬착을 살짝 넘기는 재치 있는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이다. 2-1로 전반을 마친 서울은 슈팅수 8-4, 유효 슈팅수 6-3등의 기록을 보이며 세계 최강 맨유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은 후반에 맨유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후반 12분 루니의 전진 패스를 이어받은 마케다가 골키퍼까지 제치며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20분엔 대런 깁슨의 크로스를 베르바토프가 헤딩슈팅으로 마무리하며 2-3으로 재역전 시켰다.




서울은 기성용의 프리킥 등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골은 성공시키지 못했고, 결국 2-3 패배를 기록했다. 관심을 모은 박지성은 후반 29분 마이클 캐릭과 교체 투입됐고, 특유의 부지런한 플레이로 파울을 유도하고, 후반 44분엔 스콜스에게 결정적인 침투 패스를 찔러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년만에 만난 맨유를 상대로 또다시 패하긴 했지만, 서울은 2년전과는 다른 경기력으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또 이날 두골을 기록한 데얀은 퍼거슨 감독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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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7.22 14:01









등번호엔 정말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선수들의 등번호는 그저 등 뒤에 달려 있는 번호가 아닌, 그 선수의 또 다른 상징물로 자리 잡으면서 선수들은 이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동기 부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FC서울 역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과거 FC서울 선수들의 등번호에 숨겨진 의미를 소개했던 필자는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선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가로 과거 FC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팬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의 등번호에 숨어 있는 의미도 알아봤다.




1.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을 때 달았던 번호라 애정이 있다는 김진규의 6번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카를로스 바빙턴은 국가대표로 발탁된 게 너무 기뻐서 경기 후 상대팀 선수와 유니폼 교환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잘때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잠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선수들에겐 영예로운 자리다. 김진규 역시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을때 영예로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바빙턴과는 다르게 등번호를 통해 그때 당시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규는 지난 2007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전남으로 복귀할 당시 “6번은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을때 달았던 번호라 애정이 있다” 고 밝혔다. 지난 2003년 카디프에서 열린 웨일즈 U-20 청소년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선 김진규는 6번을 달고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2005년 U-20 청소년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도 6번을 달고 뛰었다.
 








2007년 7월. FC서울에 합류한 김진규는 당시 이민성이 6번을 달고 있어, 6번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그는 배번으로 6이 두 개가 들어간 66번을 선택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6번에 대한 애정이 많은지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20번을 거쳐 지난 2009년에 6번을 다는데 성공한 김진규는 올해도 변함없이 6번을 달고 뛰며 팬들에게 ‘철인 6호’ 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 9번을 좋아하는, 그리고 20번대를 원해 선택한 김태환의 29번










김태환이 좋아하는 등번호는 9번이다. 실제로 그는 금호고, 울산대 재학 시절 9번을 달고 뛰었다. 하지만 FC서울에 입단 하며 프로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2010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9번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시 9번은 대선배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정조국이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태환은 20번대 번호라도 받길 원했지만, 새파란 신인에겐 그것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39번을 배정받았다. 데뷔 시즌 19경기에 출전해 3도움을 기록하며 무난한 모습을 보인 김태환은 이듬해인 2011년.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된다.
 


29번을 배정받으며 드디어 20번대 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29번을 달고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렸고,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요르단전 동점골, 우즈베키스탄전 선제골을 터트리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12년에도 29번을 유지하고 있는 김태환은 지난 포항과의 어린이날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는 등 11경기 출전 1골로 FC서울의 주전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FC서울에선 아직까지 9번을 달고 있지는 못하지만, 김태환은 올림픽대표팀에서 한차례 9번을 단 적이 있다. 지난 2011년 11월 사우디와의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선발 출장한 김태환은 9번을 달고 오른쪽 측면 공격을 책임지며, 풀타임 활약으로 팀의 1-0 승리를 이끈 적 있다. 신인 시절엔 39번을 달았고 현재 29번을 달며 등번호 끝자리를 9번으로 유지하는 것을 보면, 그가 9번에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훗날 김태환이 FC서울의 9번으로 활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Bouns Tip  히칼도의 50번에 숨어 있는 의미는?










서두에서 언급한 팬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선수. 그 선수는 바로 히칼도다. 포르투갈 국적의 히칼도는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고, 정확한 킥력과 날카로운 프리킥, 패싱력등을 앞세워 서울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한 선수다. FC서울에 머문 세 시즌동안 71경기에 출전해 8골 23도움을 기록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히칼도는 FC서울에서 50번을 달고 뛰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에이스 미드필더를 상징하는 5번부터 9번사이에 번호를 충분히 달 수 있었지만, 그는 50번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의 50번에 특별한 의미가 숨어있는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필자가 직접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을 던졌보았는데, 다행히 히칼도의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히칼도는 등번호 50번이 두 아들의 생년월일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입단 당시 슬하에 두 아들이 있었던 히칼도는 첫째 아들의 생일이 7월 27일이고 둘째 아들의 생일이 5월 23일인데, 생년월일에 일인 27과 23을 합한 수가 50이라 50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서울에 있을 때도 가정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칼도. 등번호에서도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이 강하게 느껴진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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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16 21:30








축구의 백미는 역시 골이다. 축구 경기에서 터지는 시원스런 골로 인해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열광한다. 이처럼 골은 실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 골이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골을 넣기 위해서는 패스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좋은 패스 없이는 좋은 골 역시 나올 수가 없다.


그렇기에 최고의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패스의 달인’을 보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FC서울 역시 훌륭한 패스의 달인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치 16년 동안 5만7천여회의 패스라도 한 듯 공격진 뒤에 배치되어 양질의 패스로 무수한 골들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 역대 최고의 ‘패스의 달인’들을 알아보자.



1. 안드레







풀네임 : Andre Luiz Alves Santos

생년월일 : 1972년 11월 16일

국적 : 브라질

FC서울 활동년도 : 2000~2002

FC서울 통산 기록 : 96경기 18골 27도움



FC서울의 전신인 LG치타스 시절에 활약했던 안드레는 2000년 팀의 세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로도 유명하다. 브라질 프로축구 2부리그 마릴리아클럽에서 뛰던 안드레는 키프로스 전지훈련에서 당시 감독이던 조광래의 눈에 띄어 한국땅을 밟는다. 브라질 외에 다른 나라에선 뛰어본 적이 없고 이적료 역시 50만 달러로 당시 유고에서 영입한 드라간의 이적료(12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그를 향한 주목도는 다소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팬들의 주목도를 조금씩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포항과의 대한화재컵 첫 경기에서 한국 무대 데뷔전을 치른 안드레는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대한화재컵 총 7경기에서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제몫을 다하게 된다. K리그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빼어난 개인기와, 날카롭고 정확한 킥을 장착한 안드레는 조광래 감독 축구의 핵으로 자리잡았고. 시즌 중반 10연승의 상승세를 이끌기도 했다.
 

또 8월5일 전북전과 8월19일 부산전에선 두 경기 연속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이 2-1, 5-0의 승리를 거두는데 앞장 서기도 했다. 이러한 안드레의 활약 속에 팀은 리그 1위를 달성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천(現제주)을 상대하게된 안드레는 1차전에서 왕정현에게 정확한 패스를 배달하며 팀의 선제골을 이끌어냈고, 자신도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4-1 승리를 견인했다.


2차전에서는 부천 곽경근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지만 후반 안드레의 정확한 프리킥이 동점골로 이어지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2000 K리그의 패권을 차지했다. 안드레의 활약상은 당시 공격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공격진에 포진했던 최용수와 정광민은 안드레의 뛰어난 패스를 공급받으며 각각 14골과 13골을 기록했고 안드레 역시 14도움으로 전경준(13도움)과 마니치(9도움)을 제치고 도움왕에 올랐고 K리그 베스트 미드필더에 뽑히기도 했다.
 

또 우수한 플레이메이커 답게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한 안드레는 9골 중 무려 8골을 프리킥으로 성공시키며 정확한 킥 솜씨를 자랑했다. 2001년엔 허리부상으로 2골 4도움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2002년엔 7골 9도움을 올리며 오름세를 보였고 2003년엔 중국 칭다오로 이적하게 된다. 그 뒤 베이징 현대를 거치며 3년 간 중국에서 뛴 안드레는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안드레가 K리그에서 활약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간다. 하지만 절정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세 번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기에 올드팬들에겐 아직도 회자 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 히칼도









풀네임 : Ricardo Nuno Queiros Do Nascimento

생년월일 : 1974년 4월 19일

국적 : 포르투갈

FC서울 활동년도 : 2005~2007

FC서울 통산 기록 : 71경기 8골 23도움



2005년 이장수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FC서울은 대대적인 전력보강에 나선다. 당시 서울은 이기형, 박성배, 노나또등 수준급 선수들을 영입해 스쿼드를 살찌웠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박주영까지 데려오며 스쿼드에 강력함을 더했다. 서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포르투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히칼도를 영입했다.


당시 K리그 용병들은 대부분 브라질이나 동유럽 출신의 용병들이어서 서유럽 출신의 히칼도의 입단은 꽤 이색적이었다. 당시 이장수 감독은 포르투갈에서 히칼도의 경기를 직접 보고, FC서울 입단을 간청했고, 이장수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히칼도는 FC서울행을 결정했다. 포르투갈 청소년대표 출신에, 명문 보아비스타를 거쳤고, 포르투갈 리그 도움왕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했던 히칼도 였지만 입단 당시 그를 주목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팬들이 히칼도의 진가를 알아차리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남과의 2005년 첫 경기에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선발 출장한 히칼도는 2-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24분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노나또의 헤딩골을 도우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히칼도는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넣으며 맹활약 한다. 당시 수원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김남일, 송종국등 화려한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우고 있었지만 히칼도는 페널티킥 결승골 한방으로 수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한국무대에 완벽히 적응한 히칼도는 그 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다음 경기인 인천전에선 프랑코와 박주영의 골을 모두 어시스트 했고, 대전전 에선 1골과 백지훈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선 1골, 울산과의 경기에선 1도움을 기록하며 컵대회 에서만 3골 5도움을 기록한 히칼도는 단숨에 서울 미드필드의 핵으로 자리 잡는다. 날이 더워지면서 히칼도의 기량도 절정에 다다랐다.


특히 그의 활약이 가장 빛났을 때가 7월 6일 부산전과 7월 10일 포항전. 부산과의 경기에서 히칼도는 전반 28분 정확한 크로스로 박주영의 헤딩 골을 도왔고 후반 11분엔 미드필드 지역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또 한번 박주영의 골을 도우며 2도움을 기록.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7월 10일 포항전 에선 전반 15분과 32분 각각 박주영과 김은중의 골을 도우며 전반에만 2도움을 기록했고 후반 44분엔 정확한 코너킥으로 박주영의 헤딩골을 도우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박주영과 히칼도의 콤비가 절정의 기량을 뽐낸 이 두 경기에서 박주영은 5골, 히칼도는 5도움을 기록하며 서울 막강 화력의 중심이 되었다.



  히칼도의 코너킥 장면






그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스는 서울 공격의 출발점 노릇을 톡톡히 했고, 상대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그의 패스는 ‘손으로 던져주는 것 만큼 정확하다.’ 라는 평을 들을 정도 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 여기저기에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그의 모습은 많은 서울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2005시즌 그의 기록은 4골 14도움. 도움왕은 일찌감치 그의 몫이었고, 환상의 호흡을 보인 박주영은 무려 18골을 기록했다.


2006 시즌 초반엔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시즌 중반에 열린 컵대회에서 히칼도는 2골 4도움을 올리며 팀의 컵대회 우승에 기여했고, 총 3골 6도움으로 변함없이 서울의 중원사령관으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히칼도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장수 감독이 물러나고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년. 히칼도는 예전 만큼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히칼도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두어 히칼도를 공격에 전념시킨 이장수 감독과 달리 귀네슈 감독은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히칼도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설상가상 귀네슈 감독과 불화까지 겪으며 2007년엔 13경기 출전에 1골 3도움이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히칼도는 2007 시즌 종료 후 CD트르펜스로 이적했고 CD 아베스를 거쳐 지금은 축구 선수 생활을 접었다. 히칼도가 서울을 떠난지도 5년이 다 되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에서의 선수 생활을 그리워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또 FC서울 팬들에겐 'My friend' 라는 친근한 표현을 써주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FC서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3. 기성용







풀네임 : Ki Sung Yueng

생년월일 : 1989년 1월 24일

국적 : 대한민국

FC서울 활동년도 : 2006~2009

FC서울 통산 기록 : 80경기 8골 12도움




2007시즌을 끝으로 히칼도는 떠났지만 FC서울엔 새로운 ‘패스의 달인’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기성용. 젊은 선수를 중시하는 귀네슈 감독의 신임을 받은 기성용은 2008년부터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기성용은 지난 2006년 FC서울에 입단했지만 그 해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해가 바뀐 2007년 그는 히칼도의 뒤를 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드디어 프로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한 기성용은 그 해 캐나다에서 열린 ‘FIFA U-20월드컵’에서 3경기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인다. 당시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한 기성용은 기본적인 수비력과 동시에 최후방에서 자신의 장기인 패싱력까지 뽐내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7년 22경기에 출전하며 프로무대 적응을 끝낸 기성용은 히칼도가 팀을 떠나자 좀 더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귀네슈 감독 역시 기성용의 날카로운 패싱력에 주목. 수비력이 좋은 김한윤을 중원의 파트너로 배치하면서 기성용의 수비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등번호도 40번에서 17번으로 바꾼 기성용은 2008년 한 해에만 4골 2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또 그는 그 해 10월 29일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선 이운재의 키를 살짝 넘기는 골을 터트렸고, 그 해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선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선제골을 돕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08년 10월 29일 수원전. 결승골을 넣은 뒤 보여준 아데바요르 세리머니는 화제가 되었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9월엔 요르단을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곧이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후반 23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등 빛보다 빠른 성장세로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중앙 미드필더로 손꼽혔다.


유망주에서 FC서울의 에이스로 성장한 기성용으로 인해 2009년 FC서울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는 날이 갈 수록 무르익었고, 기성용을 비롯해 이청용, 김치우, 데얀, 정조국등이 포진한 스쿼드는 화려함을 더했다. 게다가 2008년 준우승까지 거두었기에 서울을 향한 기대는 그 어느때 보다 높았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서울은 개막전에서 전남을 6-1로 녹다운 시킨다. 이 경기에서 기성용은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 후 기성용은 정확한 킥을 앞세워 팀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했고, 그 해 5월 30일엔 골문 구석을 찌르는 절묘한 프리킥으로 팀의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여름이 되자 그의 장기인 패싱력도 뜨거워졌다. 7월 12일 인천과의 컵대회에선 전반 37분 프리킥으로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전반 42분엔 정확한 전진패스로 다시 한번 데얀의 골을 도우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다음 경기인 강원전에서도 전반 9분과 44분. 각각 데얀과 이청용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두 경기 연속 2도움으로 맹활약했다.


이 후 9월 12일 전북과의 경기에선 데얀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고, 11월 21일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선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정조국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여전히 큰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기성용은 결국 그 해 4골 10도움을 올리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이런 기성용을 기다리고 있는건 유럽진출. 스코틀랜드 최강팀인 셀틱으로 이적하면서 유럽진출의 꿈을 이룬다.
 

초반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파워축구에 적응하지 못하며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듯 했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2도움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기성용은 그리스전에서 정확한 프리킥으로 이정수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나이지리아전에선 일명 ‘헤발슛’으로 일컬어지는 이정수의 골을 또 한번 어시스트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이 후 셀틱으로 돌아온 기성용은 주전 미드필더 스콧 브라운의 부상으로 다시 기회를 얻었고 이 기회를 잘 살려 셀틱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세인트미렌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기성용은 인버네스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시즌 1호 도움을 올렸고 그 해 10월 24일 레인저스와의 ‘올드펌 더비’에서도 도움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2010~2011 시즌에서 4골 4도움을 기록한 기성용은 다음 시즌인 2011~2012전에선 코너킥과 프리킥은 물론 팀의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게 되었고 지난 우디네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선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번 시즌 현재 6골 5도움을 기록중인 기성용은 셀틱에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표팀 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UAE와의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선 89번의 패스 중 81회를 성공시켜 무려 91%의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4. 제파로프








풀네임 : Server Resatovich Djeparov

생년월일 : 1982년 10월 3일

국적 : 우즈베키스탄

FC서울 활동년도 : 2010.07~2011.07

FC서울 통산 기록 : 33경기 1골 8도움



빙가다 감독 체제에서 우승에 도전했던 2010년. FC서울에 또 하나의 거물급 선수가 입단하게 된다. 그 선수는 바로 제파로프. 2008년 우즈베키스탄 득점왕 및 최우수 선수, 또 그해의 AFC 올해의 선수, 우즈베키스탄 주전 미드필더로 A매치 62경기 출전해 12골을 성공시킨 기록(2010년 7월 기준)을 보유한 특급선수를 6개월 단기 임대로 영입해 공격진을 강화했다.
 

172cm, 68kg의 작은 체구는 다소 염려되기도 했지만 제파로프는 그 해 7월 28일 데뷔전인 수원과의 컵대회 4강전 경기에서 비록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정확한 왼발킥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결국 제파로프는 자신의 두 번째 경기인 7월 31일 데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하며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고 8월 25일 컵대회 결승전에선 데얀의 선제골 어시스트, 8월 28일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선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으로 데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짧은 시간에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 잡는다.


또 자신의 생일인 10월 3일엔 하대성의 패스를 받아 K리그 데뷔골을 쏘아올리기도 했고 제파로프는 특유의 덤블링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러한 제파로프의 활약 속에 서울은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 할 수 있었다.


제파로프의 멋진 덤블링 세리머니 장면






제파로프의 활약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계속 되었다. 제주와 맞붙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 후반 45분까지 1-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던 서울. 이때 제파로프의 정확한 패스가 빛났다. 추가 시간인 후반 47분 우측면에서 볼을 잡은 제파로프는 많은 선수들이 몰려있는 페널티 에이리어 대신 빈 공간에 서있던 김치우에게 정확하게 연결했고 김치우가 이를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김치우의 이러한 극적인 골은 제파로프의 재치 있는 패스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골이었다.


12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제파로프는 후반 27분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디의 헤딩 역전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챔피언결정전 2도움으로 팀 우승의 주역이 됐다. 2010년 그의 기록은 1골 7도움. 제파로프의 맹활약으로 인해 K리그 역시 우즈베키스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해 열린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졌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제파로프는 2골 2도움을 올리며 조국을 아시안컵 4위에 올리기도 했다. 제파로프의 맹활약에 그의 주가는 치솟았지만 제파로프는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3년 계약을 맺었다. 제파로프의 이러한 활약은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며 카파제(인천), 게인리히(수원)등 다른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K리그 입성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1 K리그에서 제파로프는 부상과 몰리나와의 포지션이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결국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으로 이적을 결정한다. 알 샤밥 이적 후에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11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통산 두 번째로 수상했고, 우즈베키스탄 대표로도 일본전과 키르키스스탄전에서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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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2.0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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