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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이야기/명예기자의시각

[FC서울]FC서울 스트라이커 계보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골을 넣지 않고 승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보유다.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FC서울 역시 능력 있는 수많은 스트라이커가 팀을 거쳐 갔다. 그럼 이제부터 어떤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이 FC서울에 몸담았는지 알아보자.


1. 태국산 코브라 피아퐁 푸에온

활동연도 : 1984~1986

통산기록 : 43경기 18골 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85

K-리그 준우승 1회 : 1986

K-리그 득점상 : 1985 (21경기 12골)

K-리그 도움상 : 1985 (21경기 6도움)

K-리그 베스트 11 : 1985



1984년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에 입단한 피아퐁은 K리그 최초의 동남아시아 출신 용병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진가는 1985년부터 빛을 발한다. 21경기에 나와 12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 그는 도움도 6개나 기록하며 도움왕 까지 거머쥐며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의 순도 높은 활약은 팀의 큰 보탬이 되었고 럭키금성은 그해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준족에 스피드가 뛰어나고 특히 문전에서 남다른 순발력을 보인 피아퐁은 ‘태국산 코브라’라는 별칭으로 유명했으며 태국 국가대표 로도 129경기에 나와 103골을 터트리는 등 태국에서도 축구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3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피아퐁은 파항FA와 왕립 태국 공군FC에서 뛰었으며 1997년 은퇴하게 된다.
그 후 2007년 K리그 득점왕들의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스페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현재 태국 공군 대위의 신분으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왕립 태국 공군 FC의 코치와 태국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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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윤상철

활동연도 : 1988~1997

통산기록 : 300경기 101골 31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90

K-리그 준우승 2회 : 1989, 1993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2, 1994

K-리그 득점상 (2회): 1990(30경기 12골), 1994(34경기 21골)

K-리그 도움상 : 1993(32경기 8도움)

K-리그 베스트 11 (4회) : 1989, 1990, 1993, 1994



1988년 드래프트 1순위로 럭키금성(현FC서울)에 입단한 윤상철은 K리그에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1989년 31경기에 나와 17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 윤상철은 이듬해인 1990년엔 30경기에 나와 12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자신은 득점왕에 오른다.
그 후 윤상철은 1993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해 32경기에 나온 윤상철은 8도움을 기록. 도움왕에 오르며 피아퐁에 이어 두 번째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차지했고 그 해 9월 28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선 K리그 통산 6번째로 20득점 2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1994년엔 34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득점왕에 올라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 한다.
이후 1997년 4월6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서 통산 6번째 30득점 30도움 클럽 가입, 그 해 8월 13일 전북현대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100골 기록, 또 9월 27일 전남과의 경기에서 역시 K리그 최초로 300경기에 출장하는 등 K리그 사 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윤상철은 비록 신체조건이나 스피드, 활동량등 스트라이커로서 외적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골 에어리어 에서의 득점감각과 슈팅 타이밍, 슈팅센스 같은 내적조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현역시절 ‘얼룩치타’라는 별명이 있었던 그는 현재 경신고등하교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3.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활동연도 : 1994~1998, 1997~1998, 2004~2006

통산기록 : 148경기 54골 2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200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4, 1999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 1999년

K-리그 신인왕 : 1994

K-리그 인기상 : 1995

K-리그 베스트 11 : 2000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 : 2000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최용수는 입단 첫해부터 그 비범함을 뽐낸다.
1994년에 입단한 최용수는 그 해 35경기에 출전해 10골 7도움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2년간 상무에서 복무한 그는 2000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34경기에 나와 14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MVP에 오른다.
또 그해 5월 24일 대전시티즌 과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5번째 20득점-20도움을 기록했다.
2001년 한국 선수 최고 금액으로 일본 J리그 제프 이치하라에 입단한 최용수는 일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이적 첫해부터 J리그 득점랭킹 2위에 오른 그는 2001년, 2003년에는 J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2003년 4월에는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으로 AFC 4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교토상가와 주빌로 이와타를 거친 그는 J리그에서 121경기 75골이란 기록을 남긴 뒤 2006년 FC서울로 복귀해 그 해 8월5일 FC도쿄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날카로운 눈매와 투지넘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인해 독수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98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활약은 눈부셨는데 당시 그는 대회 최다 득점인 7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일조한다. 현재 그는 FC서울의 코치로 재직하며 제2의 최용수를 발굴하는데 힘쓰고 있다.



4. 패트리어트 정조국

활동연도 : 2003~2010

통산기록 : 203경기 59골 18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3

FA컵 득점왕 : 2004

K-리그 컵대회 우승 2회 : 2006, 201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우승 1회 : 2010



정조국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다.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정조국은 최성국(광주)과 함께 빅앤스몰 조합을 구성하며 대표팀 공격을 이끌었고, 2002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 2003 세계 청소년 대회 16강 진출등에 공헌했다.
2003년 LG치타스(현 FC서울)에 입단한 정조국은 32경기에 출전해 12골 2도움으로 신인왕에 오르며 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2004년엔 FA컵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정조국은 서울에서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출전하며 지난 2010년 9월25일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185cm의 좋은 신장과 튼튼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와 문전앞에서 침착함이 돋보이는 정조국은 현재 프랑스 AJ옥세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5. 불세출의 축구천재 박주영

활동연도 : 2005~2008

통산기록 : 91경기 33골 9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5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06,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청소년 대회. 우리나라는 이 대회 우승과 함께 박주영의 발굴로 흥분되었다.
당시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으로 우리나라 공격을 이끌며 우승과 함께 득점왕 및 MVP를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한 그는 2005년 초에 열린 카타르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로 자리를 옮긴 그의 득점력은 멈추질 않았다.
데뷔 시즌에서 18골 4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만장일치 신인왕을 기록했다.
또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 2005년 한국축구에 박주영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조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것 같다’며 그의 발탁을 꺼려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며 성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박주영은 다음해 2년차 징크스로 인해 득점이 줄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200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17경기에 나와 2골 4도움을 기록한 박주영은 그 해 여름이적시장 에서 이적료 200만 유로를 받고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했다.
프랑스 리그 데뷔 경기부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박주영은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5골 5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한 층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이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도 자리 매김한 박주영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5골을 터트렸고, 월드컵 본선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선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트리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일조했다. 대표팀 감독이 조광래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 없이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주영은 대한민국 최고 스트라이커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다.





6.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123경기 65골 20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컵대회 득점상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7년 인천에서 데뷔한 데얀은 36경기에 출전하여 19골 3도움으로 득점랭킹 3위에 오르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자리잡는다.
2008년 FC서울로 이적한 후에도 그의 득점포는 식을줄 몰랐는데 33경기에 출전해 15골 6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끈다.
2009년에는 25경기 출전 14골 1도움을 기록,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고 그해 7월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선 2골을 넣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19득점 10도움 이라는 기록을 보여주며 FC서울의 확실한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다.



7. 피터팬 이승렬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79경기 21골 8도움

수상기록 : K-리그 신인왕 : 2008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8년 드래프트를 통해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이던 귀네슈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된다.
시즌 초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그 해 31경기에 출전하여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승렬이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활약도 역시 순도 높았다.
2009년엔 중앙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겸하며 26경기에 출장해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진보한 모습을 보인 이승렬은 빙가다체제에서도 꾸준히 선발출장 하며 22경기에 나와 9골 6도움을 기록중이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2010년 잠비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승렬은 동아시아컵에도 출전해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고 한일전에선 결승골을 터트리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여세를 몰아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이승렬은 그리스전에서 교체투입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어린나이임에도 FC서울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승렬. 많은 전문가들은 이청용, 기성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로 이승렬을 꼽고 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