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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가 만난 사람

-      축구는 중독이다”, FC서울을 사랑한 영국남자 폴카버씨를 만나다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FC서울 열혈 팬으로 출현하며 화재가 된 인물이 있다. 유창한 한국말로 FC서울 응원가를 직접 소개하며 FC서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영국 남자, 폴카버씨다. 울산과의 홈경기가 있던 날, 비가 오는 굳은 날임에도 폴카버씨는 여느 때처럼 응원을 위해 N석으로 향했다. 축구는 중독이라고 말하는, FC서울을 사랑한 영국남자 폴카버씨를 FC서울 명예기자가 직접 만나보았다.

       

FC서울 명예기자(이하 명기) 안녕하세요 폴카버씨! 먼저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폴카버 안녕하세요, 저는 폴카버 입니다. 90년 중반에 한국에 처음 왔고, 2007년부터 한국에서 계속 살기 시작했습니다

명기 반갑습니다 폴카버씨!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FC서울 열혈 팬으로 출현하셨는데, 방송 이후 사람들이 경기장에서나 혹은 밖에서 폴카버씨를 알아 보던가요?

폴카버 네 경기장에서 많이 알아봐주시기 시작했어요. SNS에서도 친구신청이 많이 왔고요. 월드컵 휴식기가 끝나고 처음 있었던 FC서울의 전남 원정경기에 가던 도중 들렀던 휴게소에서는 FC서울 팬이 아닌 분들도 알아봐주시더라고요. “

명기 많은 분들이 알아보는군요! 폴카버씨도 방송 보셨을 텐데, 아쉽게 방송에는 편집된 내용이 있었나요?

폴카버 네 있어요. 방송 녹화 당시에 함께 출현했던 에네스카야(FC서울 감독 세뇰 귀네슈 (Senol Gunes) 의 통역관)가 귀네슈 감독과의 친분으로 전화연결을 해주었었는데 실제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 부분이 아쉬워요

명기 귀네슈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폴카버 “ FC서울에 대한 얘기를 나눴죠. 귀네슈 감독이 우리 FC서울 팬들이 지금처럼 최용수감독과 선수들을 믿고 응원해준다면, 앞으로 FC서울은 더욱더 상승세를 탈것이라고 말했어요. “

명기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잘하시는데, 따로 배우신 건가요?

폴카버 . 한국에 와서 어학당을 10주 동안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학당에서는 간단하게 기본적인 것들만 학습했고 이후 회사를 다니고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배웠다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 같아요. “

명기 그렇다면 한국어 비속어들 중에도 아는 단어 있으신가요?

폴카버 “ (하하)그럼요 꽤 알죠, 그런데 욕을 하고 싶은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아무래도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먼저 나오는 것 같아요. ”

명기 폴카버씨는 언제부터 FC서울 팬이었나요?

폴카버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2007, 아들에게 축구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어 처음 축구장에 함께 왔어요. 영국에 제가 오래 전부터 응원해오던 팀이 있거든요. ‘셰필드 웬즈데이 FC’ 라는 팀입니다. 그래서 훗날 아들과 셰필드 웬즈데이 FC를 응원하면서 함께 경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그래서 처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와서 FC서울 경기를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팬이 된 것 같아요. FC서울의 경기가 재미있고 신났었거든요. 그 후 2007년까지는 조용히 보다가 2008년부터는 적극적으로 FC서울을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

명기 FC서울이라는 팀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폴카버 사실 영국축구만 보다가 K리그 경기를 본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었어요. K리그 경기는 재미없지 않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FC서울 경기를 직관해보니, 직관이 주는 재미가 상당해요. FC서울이라는 팀에 대한 첫인상을 생각해보면 제게 직관의 재미를 알게 해줄 만큼 박진감 넘치는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것 같아요. 2008년 눈이 내리던 날, 어느 때 보다 박진감 넘쳤던 수원과의 결승전은 아직도 생생해요. ”

명기 현재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라는 소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작년에는 회장직을 맡기도 하셨는데 소모임 활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폴카버 “ 2009년에 처음으로 시즌 권을 구입해서 계속 혼자 경기를 보러 왔었어요. 그러던 중 2011, 한번은 원정경기를 광주, 창원, 강원으로 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어떤 외국인 두 명을 원정 갔던 세 경기 모두에서 연속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세 번째 봤을 땐 서로 인사했고, 친해지게 됐어요. 그때부터 함께 경기를 보게 되었고 이것이 소모임의 시작이에요.“

명기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는 어떤 소모임인지 소개 부탁 드려요

폴카버 3년 전부터 FC서울도 외국인 팬들을 위한 많은 이벤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저희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FC서울을 사랑하는 외국인 팬 또는 외국인과 함께 응원하고 싶은 FC서울 팬 모두를 환영하는 소모임입니다. “

명기 꼭 외국인이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한 것인가요?

폴카버 그럼요. 지금도 우리 소모임에 몇 분 있어요. 올해에도 FC서울에서 외국인의 날 행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디아블로 노매드(Diablos Nomads) 소모임을 소개하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

명기 지금까지 직관했던 FC서울 경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요?

폴카버 작년에 광저우에서 있었던 ACL 결승전이 생각나네요, 결승전이기도 했고 멀리 갔던 원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2, 성남 원정경기(2012 8 11, K리그 27R)에요. 그때 FC서울이 1-0으로 앞서다가 동점이 되고 이후 1-2로 역전을 당했는데, 경기 막판 몰리나와 데얀이 두골을 몰아 넣으며 결국 3-2로 이겼어요. 작년 인천원정에서(2013 8 10, K리그 클래식 22R) 2-2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적으로 데얀이 골을 성공시키며 3-2로 역전승했던 경기도 기억에 많이 남고요

명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폴카버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어요. 출장이나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원정 경기에 가고 있어요. 홈경기는 전 경기 오려고 하고요. 그래도 이제는 회사에서도 제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줍니다. “

명기 경기가 끝나고는 바로 귀가 하시나요?

폴카버 주중에는 경기장 앞 편의점(GS25)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면서 그날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지는데 주말에는 경기가 끝나면 홍대, 상수 쪽으로 가서 모이곤 합니다. “

명기 자주 가는 곳이 있으신가요? FC서울 팬들에게도 알려주세요!

폴카버 , 자주 가는 술집도 있고 치킨집도 있어요. 제일 많이 가는 곳은 상수역에 있는 웨스턴 바 스타일의 술집이에요. 그런데 보통 경기시작 전이나 경기가 끝나고 99%는 경기장 앞 GS25에서 모여요. GS25에서 가볍게 한잔 하고 자리를 옮겨요. 저를 포함한 우리 소모임을 만나고 싶다면 경기전과 후에 편의점으로 오시면 됩니다.“
 

명기 가족과 함께 경기를 보러 온 적도 있으신가요?

폴카버 , 아이들과는 자주 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사정이 있어 아이들과 많이 오지 못했어요. “

명기 만약 아들이 축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하면, 시킬 의향이 있으신가요?

폴카버 아들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해요. 제가 보기에 실력도 괜찮은 것 같고요(웃음). 그런데 아직 축구선수로서의 욕심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욕심이 없다면 프로선수가 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요. “

명기 FC서울 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 있으신가요?

폴카버 모든 선수 좋아하지만, 최효진 선수를 좋아합니다. “   

명기 최효진 선수의 어떤 면에 팬이 되신 건가요?

폴카버 항상 기복 없는 플레이를 하는, 안정감을 주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간혹 다른 수비수가 실수하더라도 든든하게 커버해 주는 모습이 훌륭하다고 느꼈어요. “

명기 FC서울 팬으로서 FC서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폴카버 제가 FC서울 응원하는 동안 리그우승도 하고 컵 대회 우승컵도 들어올렸어요. 그런데 작년 ACL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했기 때문에 ACL 우승을 이뤄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제 작은 바램이지만, 레버쿠젠과의 친선경기처럼 언젠가 제가 응원하는 영국 팀 셰필드 웬즈데이 FC’ FC서울의 친선경기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

명기 오늘 인천과의 홈경기가 있는데, 스코어 어떻게 예상하세요?

폴카버 우리가 3-0으로 이길 겁니다. 지난 인천원정경기에서의 아쉬움을 오늘 홈에서 시원하게 날려버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

 
길지 않은 인터뷰였음에도 FC서울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외국인 폴카버씨, 축구팬 폴카버씨가 아니라 유니폼 왼쪽가슴에 새겨진 엠블럼에 대한 자부심부터 FC서울에 대한 그의 의리까지, 인간 폴카버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폴카버씨에게 오래도록 자랑스러운 FC서울이 되길 바란다.

                           

/=FC서울 명예기자 김해리(nsharry@hanmail.net)

/촬영=FC서울 명예기자 이대수(unfade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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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4.08.17 01:11







중원의 미래 이상협, 이 남자 정말 잘생겼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속담은 누군가 이상협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구리에 위치한 한 훈련장을 찾은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백 번 듣느니 한 번이라도 경기장을 찾아와서 이상협의 실물을 봐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엔트리에 본인의 자리를 구축하면서 데뷔골까지 터트린 이상협. 서울의 외로운 그 여자들이 꼭 주목해야할 실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한 팔방미인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좌절과 행운이 반복되었던 소년 이상협의 파란만장 히스토리

 

미친 왼발상주 이상협과 부산의 골미남임상협. K리그의 여러 상협들 중에서도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상협이 있었다. 바로 2013년 서울에 새로 입단하게 된 신인 미드필더 이상협이 그 주인공이다. 입단과 동시에 팬들에게 잘생긴 외모로 주목을 받았던 이상협은 최근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며 든든한 중원의 미래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는 화려했던 지난 경기의 활약과는 달리 소년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이런 형식의 인터뷰라는 처음이라며 낯설어하던 그를 보며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지난 행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상협이라는 신인선수의 히스토리를 최초로 물어보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사실 축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형을 따라 축구를 하러 갔지만 형은 그 곳에 없었고 소년 이상협도 더 이상 그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될 성 부를 나무의 떡잎을 알아 본 코치님과 감독님의 열렬한 구애 끝에 그는 결국 그 곳에 남게 되었다. 축구의 자도 모르던 소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뛴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꼈다. 상대편을 한 명, 두 명 제칠 때마다 와닿는 희열이 그 자그마한 소년을 계속해서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스위퍼로 뛰면서 더욱 더 전진을 갈망하던 소년은 제 몸에 맞는 미드필더라는 옷을 찾았고, 이후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가 졸업한 학교는 용인에 위치한 백암고등학교. 축구부로 유명한 백암고는 사실 이상협을 선택하지 않았었다. 입학할 당시에는 테스트에서 떨어져 결국 다른 팀에서 생활했다가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소년에게 뒤늦게 연락을 한 것이다. ‘될 놈은 된다는 말이 그 소년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딱 할 몫만큼은 했다.”라고 말하는 이상협의 말은 모순이 있었다. 주어진 만큼 해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할 만큼 했다는 소년은 결국 노력의 대가로 명문대 축구부를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소년에게 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대학교 형들과 축구를 할 때면 항상 딜레마에 빠졌다. 체격조건도 실력도 거친 경기도 모두 벅찼다. “내가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항상 머리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축구를 관두고 싶기도 했다. 당시의 팀이 6개월이라는 장기간의 징계를 받아서 이상협은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을 견뎌내고 나서야 잡힌 첫 대회 일정. 그러나 축구를 갈망하던 그 소년은 하필이면 대회 전 날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절망을 겪고 만다. 부모님 또한 그의 길을 반대하셨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는 대학교 시절 부상을 입고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자꾸만 그를 말리셨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도 4학년이 되도록 벤치에서 교체로 많이 뛰어봤다는 이상협. 그렇게 수많은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그 소년의 모습이 마치 푸른 잔디와도 같았다.

 

청년이 된 소년, 프로의 세계로 발을 내딛다

 

어디든 오라는 곳만 있으면 가고 싶었다.”. 이상협은 프로 무대를 향해 끝없이 갈망했다. 그리고 청년이 된 소년은 그 꿈을 이뤘다. 서울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이다. 그에게 꿈만 같았던 지난 몇 달 간의 소감을 물었다. 먼저 그는 훈련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에는 추축인 형(주전 선수)들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악물고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형들이 돌아오고 본 훈련이 시작되니까 정말 너무 힘이 들더라. 공을 한 번 한 번 찰 때마다 집중을 해야 하고, 그만큼 또 피로가 쌓였다. 너무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하는 생각을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형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적응할 수 있었다는 이상협의 어투 속에는 아직도 서울의 새내기로서 배워가는 청년의 풋풋함이 묻어났다.

이상협이 데뷔 후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경기는 역시 58일에 열린 연세대와의 FA컵 경기가 아닐까 싶었다. 주장완장에 데뷔골까지 터트린 이상협의 활약이 무궁무진한 경기였다. 이상협은 혹시 언젠가라도 주장완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는 질문에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인터뷰에서 그러했듯 그에게 다시 한 번 그 순간의 소감을 묻자,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차고 교체된 최현태 선수가 나올 때 그 앞에 김현성 선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상협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최현태 선수에게 현성이 형 주세요, 현성이 형 주세요하고 애절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직도 그 당황스러운 기억이 생생한 듯 이상협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듣지 못하곤 완장을 풀면서 나오더라. 완장을 차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걸 내가 가지고 가서 현성이 형한테 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왕 차게 된 거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라면서 중간 중간 한숨을 쉬며 귀엽게 웃던 이상협은 그야말로 평범한 옆집 청년 같았다.

 

상대가 대학시절 라이벌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골이 넣고 싶었다는 이상협은 슛팅 기회를 많이 놓쳐서 속상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결국 찬스를 얻어 데뷔골을 성공하게 된다. 당시 세레모니는 그가 오래전부터 해왔던 팔벌리기세레모니. 이제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는 없는 것 같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인상 깊게 본 것도 없냐는 질문에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승용이가 부리람전에서 했던 슬라이딩 세레모니가 생각난다. 굉장히 멋있더라. 무릎으로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다칠까봐 염려가 돼서.”라고 말하던 이상협은 본인도 민망한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시아 최고의 더비인 수원과의 슈퍼매치는 매우 설렐 것이라며 눈을 반짝이던 이 청년은 보면 볼수록 참 잘생겼고, 알면 알수록 더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스물 넷 인간 이상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상협은 11일생이다. 결코 잊기 쉽지 않은 그의 생일이지만 묻다보니 더욱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태어난 시각조차 ‘000였던 것. 본인 스스로도 믿기 힘들다는 그는 태어나서 생일을 딱 2번 챙겨봤다고 답했다. “생일을 챙길 시간도 없고 명절이라 다들 놀러가기 바빠서 내 생일을 다 까먹는다.”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 이상협. 그를 보며 여성 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앞으로는 매년 행복한 생일을 보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빠른 년생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호칭 정리가 아닌가. 그가 09학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 나이에 학교를 갔느냐고 묻자 처음에 입학할 때는 빠른 년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를 입학하기 이전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대학은 1년이 지체되어 제 나이에 들어갔다.”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호칭에 대해서는 원래 89년생이든 90년생이든 모두 친구였지만 대학을 제 때 들어간 뒤로는 89년생들에게 형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답변에 의아함을 느끼고 그렇다면 김남춘 선수와는 말을 놓던데 이전부터 아는 사이냐고 묻자, 득의양양하게 아니다. 경기도 같이 뛰고 그러니까 당연히 친구로 대한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사실 그것 때문에 이택기 선수와 김남춘 선수가 같이 있을 때는 일부러 호칭을 쓰지 않는다.(두 선수 모두 1989년생)”이라고 답하더니 그 상황이 굉장히 민망하다며 인터뷰실을 폭소에 빠트렸다.

 

이상협은 누나가 한 명 있다. 그의 얼굴만 봐도 짐작되는 미모의 여인을 떠올리며 혹시 서울 선수들 중에 남자친구로 소개해주고 싶은 선수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상협은 여태껏 가장 오랜 시간을 침묵하더니 얘기(꼭 해야 하나).”라며 시선을 피해 또 한 번 웃음을 주었다. 결국 질문의 선로를 변경했다. 딸이나 조카가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선수도 없느냐고 하자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몰리나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경기나 평상시에 딸을 자주 데려오는데 딸에게 굉장히 잘한다. 몰리나를 보면 축구, 가족, 축구, 가족의 반복인 것 같다. 실제로 몰리나의 모든 면모를 보지는 못했지만 딸이나 부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굉장히 가정적인 것 같다.”며 존경의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친구인 박희성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대학시절 환상의 콤비로 뛰다가 같은 팀까지 입단하게 된 박희성 선수는 현재 이상협의 숙소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박희성 선수가 먼저 데뷔골을 넣은 밤에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고 묻자 그는 친구라서 더욱 민망한지 말을 조금 더듬었다. “축하한다고. 고맙다고 하고 잤다. 그 날 배가 좀 아프더라. 어떻게 넣었냐고 하니까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본인의 데뷔골도 축하를 받았냐는 질문에 굉장히 놀라더라.”며 드디어 다시 미소를 찾는 이상협이었다.

 

오랜 친구이지만 박희성 선수와 이상협은 상당히 다른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희성이는 시간이 남으면 항상, 정말 항상 축구를 본다.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냥 침대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하루 종일 누워서 축구만 본다.”라며 폭로 아닌 폭로를 이어가던 이상협은 본인은 축구는 보지 않는 편이지만 컴퓨터도 하고 TV도 보고 외출도 한다며 문화인임을 주장했다. 박희성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그는 굉장히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부끄러워하며 수없이 거절하는 그를 계속해서 설득한 끝에 결국 얻어낸 말은 환기 좀 잘하자라는 것이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감동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으나 지면 상 영상에 담기로 했다. 박희성 선수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대학시절부터 특히 소녀팬이 많이 따르는 것 같은 이상협에게 그에 대한 말을 꺼내자 본인은 소녀팬도 별로 없고 선물도 많이 못 받았다고 대답했다. 매력 포인트를 하나 꼽아달라는 질문에도 역시 진짜로 모르겠다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결국 그렇다면 얼굴인걸로?”라는 말을 건네고 나서야 웃음보가 터진 이상협에게 라는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참고로 소녀팬이 없다던 그 이상협은 인터뷰가 끝난 뒤 훈련소까지 찾아온 소녀팬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얼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상협이 생각하는 서울 미남 TOP3’를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그는 겨우 입술을 떼었다. 선배들이 관련된 질문에는 상당히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대성이 형도 멋있으신 것 같고 명진이 형도 멋있으신 것 같고.”. 본인이 들어가냐는 질문에 재빨리 아니라고 답한 이상협은 마지막으로 두리 형을 꼽았다. 생존을 위한 대답이 감사하다는 농담을 건네자 그는 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시시콜콜한 농담들은 여기서 끝내고, 마지막으로 그의 최종목표를 물었다. 이제껏 딱 스물 네 살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보이던 이상협은 그 질문에 다시금 여느 든든한 축구선수가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축구선수라면 국가대표를 한 번 하는 것이 목표이지 않을까. 꼭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선수. 꼭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야무진 답변을 하는 이상협이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러자 이상협은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시고, 조언해주시고, 때로는 부족한 점에 대해 약이 될 수 있는 쓴 충고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되고 서울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기 위한 걸음을 하겠다. 그 걸음걸음 많이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시고 지켜봐주시면 좋겠다.”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와 함께한 인터뷰는 여기까지이지만 그가 나아갈 화려한 축구 인생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것이다. 당찬 패기와 20대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상협의 앞날을 함께 지켜보자.

 

/=FC서울 명예기자 한원주(hwj1210@naver.com)
/영상=FC서울 명예기자원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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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3.05.19 19:12



2013 FC서울 별들과의 대화, 신인선수 4인방 ‘이상협, 김남춘, 문동주, 노영균’



‘시작’이란 어떤 일의 처음 단계를 뜻한다.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가능성과 희망을 동반하는 밝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 FC서울에서 프로선수로써의 축구인생을 ‘시작’하는 선수들이 있다. 치열한 드래프트 경쟁을 뚫고 FC서울에 입단한 이상협, 문동주, 노영균과 자유선발로 입단한 김남춘이 바로 그들이다. FC서울의 밝은 미래가 될 신인선수 4인방을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나보았다.

인터뷰 전 이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진행 될수록 이들의 표정에는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묻어났다. 2013년 FC서울 새내기 선수들에게 가장먼저 입단 소감을 물었다.


Q. FC서울에 입단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 이상협: 최고 좋은 것 같아요. 좋다는 말 이외에는 더 좋은 표현이 없는 것 같아요. 
 

- 김남춘: 슈퍼매치를 볼 때마다 ‘아 저기에 속해서 뛰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두 팀 중에 한 팀에 입단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동주: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고인 팀에 들어와서 다른 팀 선수들보다 더 큰 자부심을 느껴요. 
             FC서울은 다른 팀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 노영균: 고등학교 졸업하고 예상치 못했는데 FC서울에 입단하게 되어 너무 좋고 형들 하고 같이 있으면서
             여러 가지로 배우고 싶어요.

계속해서 이들에게 FC서울에서 어떠한 선수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Q. FC서울에서 어떠한 선수가 되고 싶으세요?
 

- 이상협: 저 말고 다른 이상협 선수 있잖아요 그 분도 계시지만 ‘이상협’하면 저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 김남춘: 제 포지션인 중앙수비수로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문동주: 저는 FC서울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고 싶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팀인 FC서울 에서 롱런(long run) 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노영균: 중요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경기를 뛰는 11명 중에서도 중요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축구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선수들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20대의 남자 선수들 여러 명의 화두거리는 당연히 걸 그룹과 여자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정 반대인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선수들 사이의 화두거리는 축구게임인 ‘위닝’ 이라는 답변이었다.


Q. 위닝 최강자는 누구에요?


김남춘: 저에요. 주영이 형이 위닝을 잘하는데 저한테 크게 졌어요. 지금은 제 적이 없어 요(웃음).
 

문동주: 남춘이가 메이저리그면 저희는 마이너리그에요. 마이너리그에서는 제가 제일 잘해요(웃음).


게임에서마저 축구와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시절과는 다르게 프로라는 이름으로 한 번에 큰돈을 받았을 이들. 계약금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어보았다.

 

Q. 계약금으로 무엇을 했어요?
 

이상협: 옷샀어요. 동주랑 희성이랑 셋이 압구정에 가서 옷샀어요. (좋은 옷 샀어요?) 비 싼게 좋더라고요(웃음).


김남춘: 의미있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부모님 다 드렸어요. 
 

- 문동주: 저는 첫 월급이니까 부모님 건강검진 시켜드렸어요. 이렇게 하면 상협이가 이미 지가 무너지겠죠?(웃음) 
 

- 노영균: 이제 막 성인이 돼서 나온 돈은 모두 부모님 갖다드렸어요.

게임, 쇼핑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의 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밝고 순수한 20대 초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도 몰랐지만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1문 1답을 요청했다. 신인 4인방은 짓궂은 질문에도 명쾌하게 답을 해주었다.

‘원조이상협’ MF 이상협

Q. 같은 이름에 부산에 미모선수 임상협 선수가 있어요. 본인과 임상협 선수 중 누가 더 잘 생긴 것 같아요?

A. 임상협 선수 정말 잘생기시고 인기도 엄청 많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제 자신만큼은 제가 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해요(웃음).

(‘상협’이란 이름의 선수들은 다들 잘생겼나봉가!)

‘프로김남춘’ DF 김남춘

Q. 주장으로써 하대성 선수와 김남춘 선수를 비교하자면?

A. 대성이 형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요. 저랑은 전혀 스타일이 달라요. 묵묵히 잘하는 스타일! 고참과 어린선수들의 중간 역할을 아주 잘해주세요.

 

‘결국엔될놈’ FW 문동주

Q. 데뷔 후 생각해 둔 골 세레머니가 있으시다면요?

A. 팬들한테 총을 쏠 거에요. 바주카포로 한 번 쏠려고요(웃음).

‘이제스무살’ MF 노영균

Q. 올해 스무살이 되었는데 스무살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요?

A. 학생 때는 염색이나 파마가 안되니까 (스무 살이 되면) 머리스타일을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수줍은 듯 대답을 하는 노영균의 모습은 너무나도 순수한 20살의 모습이었다)

1문 1답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다.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신인선수 4인방은 무척 유쾌한 선수들 이었다.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당차게 자신을 이야기 했다. 축구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들의 눈빛부터 진지함이 느껴졌다. 또한 FC서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FC서울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신인의 포부를 엿 볼 수 있는 4인방. 그 누구보다도 선수생활을 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갓 FC서울에서 프로로 첫 발을 내딛는 신인별 4인방을 지켜보자.

 

★비하인드 스토리★

영상의 비하인드 스토리의 전말은 이렇다. 인터뷰 중, 노영균을 제외한 나이 또래가 비슷한 세 선수와 이야기 하다보니 자연스레 U리그 이야기가 나왔다. 세 선수에게 프로 입단 전 서로 맞붙은 경험에 대해 물었다. 대학 이야기가 나오자 고려대 이상협, 광운대 김남춘, 대구대 문동주의 묘한 기싸움이 흘렀다. 먼저 이상협이 “저희는 동주네(대구대)랑 결승 때 한 번 만났어요. 물론 저희가 이겼습니다” 라며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대구대 출신 문동주는 “하지만 그 때 경기력은 저희가 더 좋았어요. 그 당시 저희는 8강, 4강 연장까지 해서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고려대는 쌩쌩한 상태였어요. 저희는 후회 없이 경기했습니다” 라며 대구대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가만히 둘의 자존심 대결을 지켜보던 김남춘은 “작년에 광운대가 두 번 다 고려대를 이겼어요” 라는 한 마디로 먹이사슬의 최강자에 오르는 듯 했다. 궁지에 몰린 이상협이 “광운대가 잘하더라고요” 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U리그에서의 패배를 인정하며 세 선수의 먹이사슬이 정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먹이사슬의 꼭대기는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으로 대학선수들을 이긴 막내 노영균이 차지했다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취재=FC서울명예기자 유승은(yse0220@naver.com)

/영상=FC서울명예기자 최근몽(choigm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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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3.05.04 03:28
by FC서울명예기자★ 2013.04.03 21:08








FC서울의 중심에서 고요한을 외치다.

최근 서울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그 중심에는 바로 고요한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이 어려울 때 한층 더 빛나는 선수로 성장한 그는 그라운드에서 헌신적인 플레이로 팬들은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사로잡고 있다. 조금은 더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 5월 중순,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고 팀의 핵심선수로 우뚝 성장한 고요한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나보았다.




고요한, 비상(飛上)하다

화려했던 2009시즌과 달리 2010 시즌은 고요한에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시즌이었다. 물론 팀이 K리그 우승과 리그 컵 우승을 하며 좋은 성적을 냈지만, 2009시즌에 고요한의 플레이를 보고 기대감을 가진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2010시즌 고요한의 활약은 다소 아쉽기만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듯이 고요한 역시 팀이 어려울 때 팬과 팀을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4일 알 아인전(3대0 승)에서 결승골을 비롯하여 15일 경남전(3대1 승)에서 생애 첫 멀티 골을 넣는 등 팀이 어려울 때 자기 몫을 하는 선수로 성장하였다. 그렇다면 저번 시즌과 비교해서 이번 시즌 이렇게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아무래도 저번 시즌과 비교해서 준비를 잘했다고 할 수 있죠. 남해 전지훈련, 일본 전지훈련에서 개인적으로 몸 상태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렸다고 생각해요” 라고 대답한 그는 프리 시즌 중에 훈련을 통해서 준비를 잘한 것이 지금 이렇게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요한은 이번 시즌 자신의 활약에는 코칭스태프의 믿음이 있었다면서, 코칭스태프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 제 몸 상태를 믿어주고 저에게 기회를 주신 코칭스태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팀에 보탬이 되지 못 했겠죠(웃음). 무엇보다 저를 믿어주고 경기에 내보내 주신 코칭스태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듯 고요한 선수가 비상(飛上)하는 이유에는 고요한 개인의 노력 외에도 그의 곁에서 믿음을 주는 코칭스태프가 있었다.



쌍용에 이은 투고

08시즌 FC서울에 쌍용( 기성용과 이청용의 애칭)이 있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바로 쌍고( 고요한와 고명진의 애칭)가 있다. 최근 황보관 감독이 사퇴한 후 최용수 감독 대행에 의해서 중용되고 있는 이 두 선수는 FC서울이 K리그 7위로 도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고요한과 고명진에게 투고라는 애칭을 붙이고 이 두 선수를 열렬히 응원하였다. 이러한 애칭에 대해서 고요한은 “일단 팬들이 너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투고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팬들이 이러한 애칭을 붙여주신 만큼 고명진 선수와 호흡을 잘 맞춰서 쌍용에 버금가는 그런 활약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고요한은 고명진과 같이 경기를 뛰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해보았다. “고명진 선수와는 아무래도 10년 이상 같이 뛰어왔기 때문에 같이 경기장에 나가면 굉장히 편안해요. 그리고 고명진 선수 스타일이 주로 패싱게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저 역시 비슷해서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죠.” 고요한의 말대로 최근 이 두 선수의 호흡과 플레이는 서울의 상승세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팬들에게는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다

최근 팀의 핵심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고요한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 팀의 핵심선수라는 평가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제가 부족한 점이나 보완해야할 점이 많기 때문에 그런 평가는 좀 부담스럽네요.(웃음)”

빠른 순발력과 기본기가 풍부하다는 고요한에게 보완해야할 점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해보았다. “일단은 제가 키가 작기 때문에 공중볼과 몸싸움에 약해요. 그래서 틈틈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데요, 아무래도 피지컬적으로 강해져야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겸손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고요한. 그렇기 때문에 고요한은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이다.



올 시즌 목표를 5골에서 10골로

사실 고요한은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다. 이번 시즌을 제외하면 작년 전남전에서 K리그 데뷔골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 골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요한은 이번 시즌 5골을 넣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경남전 멀티골을 기록하기 전까지는 시즌 중에 5골을 넣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경남전 이후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고요한의 숨겨졌던 득점 본능이 살아났고, 이에 따라 고요한의 자신감 역시 다시 되살아났다. “ 경남전 이후에 시즌 5골에서 10골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더 넣을 수도 있고 더 못 넣을 수도 있는데,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라도 목표를 더 상향 조정했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하는 고요한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골에 대한 각오가 묻어나왔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

올 시즌을 치루면서 특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고요한에게 질문을 하였다.

“ 리그 컵, K리그 우승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이 탐나는데요, 이 두 가지는 작년 시즌에 해보지 못한 것들이라 더 욕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그의 바람대로 서울은 AFC 챔피언리그 16강에 진출하였고, FA컵에서도 용인시청을 꺾고 16강에 진출하는 등 AFC 챔피언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의 교두보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이에 대해서 고요한은 “ 물론 서울이 잘 해나가고 있지만 아직 많은 경기 수가 남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보면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팀에게 큰 보탬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AFC 챔피언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그의 바람대로 이번 시즌 서울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고, 나아가서 FC서울 우승의 중심에 고요한이 우뚝 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    = FC서울 명예기자 김민석 mandoll529@hanmail.net
/영상 = FC서울 명예기자 이현욱 discann@gmail.com
           FC서울 명예기자 조희진 ttakpu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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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5.26 22:03



FC서울의 수문장 김용대. 그는 지난 시즌 팀 우승의 주역이었다. 피치 위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최후방에서 '안방마님' 처럼 팀을 듬직하게 이끌었다. 제주 전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빠르게 회복하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결혼 1년차의 신혼이자 디펜딩 챔피언의 수문장으로써의 그의 2011 각오와 그의 삶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들어보았다.



코 골절 괜찮은 가요?

지난 30일 제주전에서 김용대 선수는 상대 공격수 신영록 선수와의 충돌로 코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는다. 그의 부상 정도와 몸 상태가 궁금했다. "직접적인 충격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간혹 다이빙 할 때 울림이 있기도 하지만, 코를 너무 신경 쓰면 경기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의지력으로 훈련과 경기에 임하려 해요. 연세대 시절에는 광대뼈 부상으로 8주 진단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그리 큰 부상은 아니죠" 공교롭게도 김용대 선수의 코를 다치게 한 신영록 선수는 지금 의식 불명 상태이다. 그의 기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코가 많이 아파서 영록이 많이 원망했는데(웃음)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록이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도리어 위로 해줘야겠어요. 아무래도 축구계에서 자주보고 잘 아는 사이거든요."



결혼 그리고 새로운 시즌

김용대 선수는 작년 말 2년여의 교제 끝에 염세희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금 한참 신혼생활에 즐거울 그의 모습과 새로운 시즌에 대한 각오가 남달랐을 것이다. " 사실 선수 생활하면서 잘 챙겨주지 못해 부인한테 미안해요. 아시안 컵으로 신혼여행 못 갔어요. 그래서 집에 가면 힘들게 느껴질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설거지, 청소, 빨래 같은 거요(웃음). 훈련과 시합이 없으면 성수동 신혼집에서 보내려 해요. 이제는 총각이 아니라 결혼을 해서 한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느껴져 경기장에서의 마음가짐도 남다른 것 같아요."



골키퍼란 것

김용대 선수는 골키퍼이다. 최후방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플레이어이다. "아무래도 몸 전체를 역동적으로 상요하다보니 여기저기 부상이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상대 공격수와 자주 부딪치면 다음번 맞 부딪힐 때 어느정도 위축되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의식하다 보면 경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 골키퍼의 운명같아요. 제 부인은 아들을 낳으면 공격수를 시키고 싶대요. 골키퍼는 한 골만 먹혀도 욕먹는데 공격수는 한 골만 넣어도 영웅이 되는 것 같대요.(웃음)" 그가 빠진 보름간 후배 한일구가 골키퍼를 잘 매워 주었다. 그가 보는 후배 골키퍼들도 궁금했다. "아무래도 여러 후배들 중에 골키퍼 후배를 더 많이 챙겨주고 싶어요. 제가 없는 동안 일구가 잘 맡아줬어요. 긴장도 많이 했을텐데 큰 실수 없이 경기를 잘 이끌었어요. 반면에 수혁이를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제 바로 다음 골키퍼로 작년 내내 저를 따라다니면서 한 번도 못 뛰었는데, 막상 제가 부상당해 기회가 왔을 때 수혁이도 부상을 당해 있었거든요."



오랜 선수로 남고 싶다

골키퍼는 30세 이후로 흔히 전성기가 도래한다고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데사르' '아스날'의 '옌스 레만'은 불혹을 훌쩍 넘겼고 '카시야스' '세자르'등 세계 탑 클래스의 골키퍼들도 서른을 넘은 지 오래다. "옛날이면 나이가 많은 축이지만 최근에는 선수 수명도 많이 길어졌고, 병지 형이나 운재 형이 오래 뛰어주어서 매우 고마워요. 두 분 모두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롤 모델이죠.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부상도 조심해야하고, 꾸준히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유지해야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트레이닝은 꾸준히 해요. 살이 올라오지 않도록 말이죠. 아무래도 서른 대에 들어서다보니 여러 가지 보약도 자주 챙겨먹곤 해요.(웃음)



우리의 목표는 우승

김용대 선수는 지난해 팀 우승의 주역이었다. 그의 별명인 '용대사르'처럼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 데 사르'처럼 피치 위 최후방에서 듬직하게 팀을 이끌었다. 다소 어수선한 초반 분위기를 벗어나 최근 상승세에서도 고참 그리고 김용대 선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 주장 용호를 비롯해서 영민이등 고참급 선수들이 따로 모여 얘기도 많이 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가 되야 한다고 강조하며 분위기를 다잡곤 해요. 또 작년에 우승했기 때문에 또 우승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실점을 하더라도 또 골 넣을 능력이 충분히 있고, 그런 능력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많은 서울 관중을 등에 지고 더 집중하고 더 의지를 발현해서 경기에 임하려 합니다.





/글    전훈 FC서울 명예기자
/영상 안석일 FC서울 명예기자
        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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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5.22 21:55

 





FC서울의 중원 사령관 하대성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따뜻한 날씨였다. 햇빛이 따사로운 날, FC서울의 중원사령관이자 ‘짐승남’으로 불리는 하대성을 푸르른 잔디 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제부터 그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보자.


어릴 적 축구를 그만둘 뻔하다?


하대성은 인천 만수북초교 시절부터 ‘한국의 호나우두’로 불리며 축구신동으로 인정받았다. 당시에 한 해에만 우승컵을 3개나 들어 올리고 중학교 팀과 겨뤄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13살이었던 그가 축구를 그만둘 뻔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하대성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 겨울은 중학교 진학 문제로 복잡할 시기에요. 부평동중으로 진학을 하려고 했는데 학교에서는 안 된다고 해서 전학을 가야하는 상황이 왔어요. 그래서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을 했다가 부평동중으로 진학했는데 축구를 그만둘 뻔했다는 기사가 나왔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팀이 초청으로 와서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운동도 못하던 상황에서 뛰게 되었던지라 ‘전보다 안 좋아졌다’란 이야기가 나왔어요”라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축구화를 벗을 뻔 했다고 나왔다고.



FC서울에서의 인상 깊었던 1년



하대성은 올해로 FC서울의 2년차 선수다. 그에게 서울에서의 첫 해에 대해서 물었다. “처음에 서울이라는 팀이 낯설었어요. 몇몇 아는 선수도 있었지만 서울이라는 팀이 개성이 강한 팀이라 처음에 왔을 때는 한, 두 달 동안은 말도 제대로 안 했죠”라며 FC서울에 대한 첫 느낌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하대성은 선수들과 금방 친해졌다. 특히 자신처럼 다른 팀에서 이적해 같이 살기도 했었던 최효진 선수와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달이 지난 이후부터는 감독님이랑도 대화가 되고 의도하는 바도 알겠더라고요. 초반 적응은 힘들었지만 점차 많은 선수들과 감독, 코치 선생님들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라며 초기의 낯섦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하대성의 FC서울 입단 첫 해의 기록은 매우 좋았다. 개인기록에서도 다른 해와 비교해 정점을 찍었다(33경기 8득점 3어시스트). 그에게 개인기록이 그토록 좋았던 이유를 물었다. “데얀, 이승렬과 같은 뛰어난 선수가 많아서 그 선수들에게 견제가 많이 갔어요. 그래서 골을 많이 넣을 수 있었고 그만큼 기회도 많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그는 전 소속팀인 전북에서도 2009년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FC서울로 이적 후에도 그는 또 한 번의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에게 전북에서의 우승과 서울에서의 우승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서울에서의 우승은 달라요. 다른 팀에서 했던 것과는. 전북 시절에는 경기를 뛴 횟수랑 시간을 보면 알듯이 비주전으로 활약하면서 기여도가 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기도 했고요”라며 서울에서의 우승이 더 특별하다고 말했다. 하대성은 지난 시즌 FC서울이 우승하는데 있어서 많은 기여를 했다. 그에게도 작년 FC서울에서의 1년은 특별한 해였던 것처럼 보였다.



22번이 아닌 16번을 단 이유



하대성은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22번을 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작년과 같은 16번을 달았다. 그에게 왜 22번을 달지 못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 팀에 합류를 했는데 나이순으로 등번호를 정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7번을 좋아하는데 22번이 비어있었어요. 그래서 22번을 적었는데 명진이가 22번을 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고)명진이가 어린 선수이기는 하지만 팀에 오래 있었고 그래서 양보했어요(웃음)”라고 답했다. 그러나 올해 하대성에게는 7번을 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작년 7번을 달았던 김치우가 상무에 갔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왜 7번을 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선수들이 사실 7번을 부담스러워해요. 게다가 (김)치우 형이 돌아오면 달아야할 번호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팀에서 한 번호로 계속 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냥 욕심 부리지 않고 올해도 16번을 달았어요”라고 했다. 하대성은 올해도 16번을 달고 뛴다.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16번을 달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왠지 모르게 16번이 잘 어울린다.



또 다시 시작된 새로운 시즌, 그리고 부상



3월 6일 수원과의 개막전. K리그가 시작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팬들이었지만 그라운드에서 하대성을 볼 수는 없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4월 16일까지 나오지 못했다. 당시의 심정을 물었다 “프로에 와서 시즌 시작 전에 다쳤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시즌 도중에 합류가 돼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라며 그 때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하대성은 울산전에 교체 투입되어 골을 성공시켰다. 그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는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몸도 아직 정상 컨디션은 아니에요. 팬 여러분들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아직 자신이 100%가 아니라고 했다.“시즌은 시작했지만 제 자신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몸과 정신력을 많이 가다듬으려고 해요”라며 더 완벽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대성, 그는 역시 프로선수다.



미드필더 조합에 대한 그의 생각



FC서울에는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많다. 하대성을 비롯하여 제파로프, 문기한 등이 미드필더로서 좋은 능력을 가졌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미드필더들의 조합이 좋은지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하대성의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같이 뛰는 선수 스타일에 맞춰서 변화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제파로프와 같이 뛰면 제파로프가 공격적이기 때문에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문)기한이같은 경우는 수비형이라 앞에서 공격적으로 하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또한“모든 선수들과 어려움은 없어요. 저는 호흡문제보다는 상대 팀 성향이나 같이 뛰는 선수에게 맞춰주려고 해요. 미드필더 중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어떤 조합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다 좋아요”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FC서울의 미드필드 진영은 K리그에서는 쉽게 지지 않는 중앙 미드필드 진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좋은 선수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라며 답했다. 하대성은 공수밸런스가 뛰어난 선수로 꼽힌다. 그런 평가답게 그는 어떤 선수와 뛰어도 괜찮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남전을 앞두고



하대성에게 경남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경남은 조직력이 뛰어난 팀이에요. 선수가 특출해서 경남이라는 팀이 잘한다는 것보다는 모든 선수 하나하나가 자기 위치에서 조직적인 부분을 보여줘요. 경남이라는 팀이 강팀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라며 경남을 강팀으로 분류했다. 경남전이 열리는 날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가 누구인지 물었다. 하대성은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그만둘 뻔했다고 한다. 그 때 도움을 주셨던 부평고 시절 임종헌 감독과 신호철 코치에게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를 표했다. 그는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현재 이 자리에 없었을겁니다”라며 자신의 은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올해 각오와 팬들에게 한 마디



그의 올해 목표는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그는 “ 매년마다 최소 한 대회에서는 트로피를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라며 개인적 목표를 말했다. “올해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라며 아시아 챔피언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이어 팬들에게는 “올해 비록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초반부터 안 좋은 소식만 겹치는 것 같아 팬 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서울 팬 분들이라면 서울에 있는 선수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고 쉽게 다른 팀에도 지지 않는 팀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믿어주신다면 팬 분들이 만족하는 결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 중간에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경기장에 더 찾아와주시고 성원해주시고 선수들 더욱 더 열심히 할 테니 많이 응원해주세요” 라며 팬들의 응원이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하대성은 겉으로 보이는 거친 이미지와는 달리 말하면서도 계속 수줍어하는 부끄러움이 많은 선수였다. 많은 팬들이 하대성을 기다려왔고 하대성은 그에 보답하듯 골과 함께 복귀했다. 이제 그는 FC서울의 중원사령관으로 중원을 호령하는 일만 남았다. 경남전에서 그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보자.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영상=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 (ttakpu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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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5.15 22:34

 







FC서울의 팔방미인 데얀

FC서울 부동의 스트라이커 데얀. 지난 시즌 골과 도움 모두 팀 내 최고 기록을 세우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이번 시즌 역시 그라운드 위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축구선수로서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팔방미인 데얀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나봤다.


데얀,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


데얀 없는 그라운드는 상상할 수 없다. 지난 시즌 총 39경기 중 35경기에 출전하여 굳건히 자리를 지킨 그는 2011시즌 K리그 총 8라운드와 네 번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순간도 그라운드 밖을 나선 적이 없다.
특히 스트라이커뿐만 아니라 넓은 움직임으로 ‘도우미’ 역할까지 도맡고 있어 체력적인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90분간 열심히 뛰는 것이 힘들다고 말 할 수 없다”라며 재치를 보인 그는 “워낙 많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90분 동안 전력을 다해 뛰다보면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달리려 노력 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큰 기복 없이 매 경기 출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에 대해 “경기를 앞둔 준비기간 동안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의 지지가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라며 그 비결을 밝혔다.


대한민국 속의 데얀민국


데얀의 한국생활은 올해로 5년차다. 그의 원동력이 되는 가족들은 타지생활에 얼마나 적응하고 있는지 물었다.
“늘 훈련과 시합으로 바쁜 일정을 보낸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그러나 최근 제파로프, 몰리나, 아디 가족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며 프로 선수인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데얀은 5년 동안 한국생활을 하며 어떤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까? 그는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가장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서울 선수들 모두와 친하지만 그 중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고 말했다.
특히 절친한 외국인 선수와 통화할 때는 "형"이라고 부른다 하여 “피곤해, 배고파, 여기요” 등의 어설프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한 그의 한국어 실력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데몰리션 듀오’를 기대하라


선수들은 경기 중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호흡이 척척 맞는 동료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데얀과 그라운드 안에서 가장 친밀한 선수는 누구일까.
K리그 4라운드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데얀과 몰리나는 첫 골부터 콤비 플레이가 빛을 발해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였다.
몰리나의 절묘한 패스를 이어받은 데얀이 득점포를 터트리며 이른바 '데몰리션(데얀 몰리나 콤비네이션의 준말)듀오'가 선제골을 합작한 것이다.
이에 데얀은 “몰리나는 성남이라는 팀에서 크게 활약을 한 선수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선수다”며 “전북전 이후로 큰 파괴력을 보이지 못했으나 아직 보여드릴 것이 많이 있으므로 팬 여러분들이 시간을 갖고 기다려준다면 다시 ‘데몰리션 듀오’의 힘을 보여 주겠다”고 그 각오를 밝혔다.
‘데몰리션 듀오’ 그 폭발적인 모습을 알 아인 전에서 기대해 보도록 하자.


알 아인 홈에서 다시 만나다


2011 시즌의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던 알 아인을 이번엔 홈으로 불러들였다.
데얀은 알 아인과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회 첫 골이자 올 시즌 첫 골이었던 데얀의 골 결정력은 지난해보다 훨씬 위력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당시의 골에 대해 “골이 들어간 순간 행복했지만 항상 모든 골에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뛰어난 골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골키퍼 김용대가 후반 페널티킥을 선방해 골이 더 빛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데얀은 알 아인을 어떤 팀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알 아인은 생각보다 좋은 팀이었다”고 말했다.
중동지역 팀들의 수준을 높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부지런히 뛰고 터프한 플레이를 보여줬다며 이번 경기가 1차전 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은 지난 패배했던 경기보다 훨씬 나은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려 할 것이므로 전술적으로 압박이 심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번 알 아인 전에서도 멋진 골을 성공시켜 꼭 승리로 팬 여러분께 보답 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그의 세레머니엔 뭔가 특별한게 있다


데얀의 골 세레머니는 항상 특별하다.
알 아인 전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깜찍한 하트 세레머니는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 데얀은 “골을 성공시킨 기쁨에 문득 떠오른 것이 하트였다”며 다소 쑥스러운 듯이 그 의미를 밝혔다.
데얀의 시즌 두 번째 골이었던 전북전의 화살 세레머니 역시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골을 성공시킨 후 전북 팬을 향해 화살을 쏘는 듯한 세레머니를 하여 경고를 받은 것이다.
이에 데얀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NO MORE!!"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며 다시는 화살 세레머니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팬들을 향해 화살 세레머니를 보여주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그 세레머니로 경고를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혼났기 때문에 알 아인 전에서는 제파로프, 몰리나, 아디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멋진 세레머니를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데얀의 골 세레머니가 또 어떤 화제를 불러일으킬지 벌써부터 팬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 FC서울 이외의 다른 팀은 생각도 할 수 없다는 데얀. 그는 팬들의 열렬한 지지아래 서울에서 은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한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짧게 자른 그의 머리처럼 늘 팀을 향한 마음으로 한 발짝 더 멀리 뛰는 그가 있기에 FC서울의 내일은 밝다.


/글=김도란=FC서울 명예기자  (kdr0521@hanmail.net)
 영상=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 (ttakpu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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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5.06 14:47

 



 

 


 



 


/ 영상 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ttakpul@nate.com)      
 취재 이슬희 FC서울 명예기자(cantona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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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4.30 23:34





/영상 = 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
/취재 = 안석일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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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4.22 02:04

 




/ 영상 = 유승철, 조희진 FC서울 명예기자
/ 취재 = 김윤환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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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풀_ 2011.04.22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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