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데얀의 빈 자리는 컸다
. FC서울은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전남과의 개막전 패배에 이어 15일 성남FC와의 경기에서는 00 동점을 기록했다. 부산과의 홈경기에서도 0-1로 패배했다. 

 세 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지 못하자 많은 사람들이 데얀의 부재를 거론했다. 데얀 뿐 아니라 하대성, 아디가 떠난 FC서울이다. 일찍이 예견했던 성장통이지만 맞닥뜨린 현실에서 팀의 부진을 인내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감히 이번 시즌은 위기가 아닌 성장의 기회라고, 그러니 함께 즐겨보자고 권하고 싶다.

 
 일단 젊은 감독 최용수의 도전이 흥미롭다. 시즌 개막에 앞서 열린 K리그 미디어 데이 때 만난 그는 역시나 호인이었다. 이번 시즌을 기분 좋은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고, 팀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도 보였다. 그는 당장은 데얀의 공백을 느낄 수 있지만, 이제 스타 한 명보다는 조직력을 갖춘 공격력의 형태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또 오히려 주축 선수들이 떠났기 때문에 남은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얀-하대성-아디가 좋은 선수들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팀은 최적의 조합을 통해 안정감 있게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 감독이 저평가된 선수로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내는 감독을 언급했듯이 그의 역량이 이번 시즌 어떤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팀을 어떤 색깔로 변화시킬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최 감독의 도전을 보며 떠오르는 EPL팀의 감독이 있다. 리버풀FC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다. 두 감독들은 일단 모두 각 리그에서 촉망받는 젊은 감독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로저스 감독은 이미 리버풀이라는 팀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도전을 한 바 있다. 지난 시즌 초기에는 팬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뚝심 있게 팀을 이끈 결과 이번 시즌에서는 팀과 선수 모두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최 감독은 이번 시즌 비슷한 도전의 시작점에 서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도전의 핵심으로 내세운 키워드들이 리버풀 성장의 주원동력이었던 점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바로 조직력그리고 저평가된 선수들의 성장을 통한 팀의 발전이다.


                                                            

리버풀은 다른 빅
4팀에 비해 스타 선수도 부족했지만 경험 있는 선수층조차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로저스 감독은 조직력을 다지고 새로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팀을 만들었다. 타 팀에서 출전 기회가 부족했던 스터리지는 리버풀에 와서 EPL득점 2순위를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털링, 핸더슨, 조앨런, 플래너건 등 유망주였던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저평가 됐던 선수가 출전 기회와 감독 역량을 통해 성장한 좋은 예다.

  리버풀의 성장에서 흥미로운 점이 이런 새로운 선수들의 발굴과 성장이다.

 최 감독 역시 팀의 위기가 될 수 있는 현 시점을 기회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FC서울의 경우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 시즌은 기존의 선수들에게도 또한 새롭게 FC서울에 둥지를 튼 선수들에게도 개인과 팀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더불어 이제 막 케이리그에 입문하는 신인선수들에게도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미 이전 연도 우선 지명으로 뽑힌 최명훈은 전남과 치렀던 개막전 후보 명단에 얼굴을 내비췄고 드래프트에서 팀 1순위로 뽑힌 윤주태는 시미즈 S펄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골 맛을 보며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 외 지난 터키 U-20에서 활약한 심상민, 작년 전국체전에서 환상적인 코너킥 골이 인상 깊었던 김우현 등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들이 많다.

  데얀 덕분에 지난 시즌들이 안정적이었지만 뻔했다면, 앞으로의 성장은 조금 더딜 수는 있지만 의미 있고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매 경기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멀리 보고 지금의 기회를 즐겼으면 한다. 최용수 감독의 도전을 응원하고 FC서울 선수들을 믿는다.

 

팀의 성적이 오르락내리락 할지언정 FC서울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FC서울 명예기자 정소영(ojsy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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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4.03.24 11:26

 프로스포츠구단이 사람들에게 ‘명문 팀‘ 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팀의 퍼포먼스, 오랜 역사, 많은 우승 트로피, 두터운 팬 층, 구단 서비스 및 경기장 시설 등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문 팀’이라고 불리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전 세계에 수많은 프로 축구팀이 저마다 명문임을 자처하는 작금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앞에서 말한 여러 조건들은 명문 팀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듯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만 제시해 보자면 첫째로 팀의 역사 속에서 팀과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레전드 플레이어의 존재, 그리고 구단-선수-팬 사이의 신뢰와 따듯한 관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아디의 은퇴식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3월 8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FC서울과 전남의 K리그 개막전에 앞 서, 8년 동안 FC서울에 몸담으며 주축 수비수로 활약한 브라질 출신 아디 ( Adilson Dos Santos ) 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출저=FC서울명예기자



 2006년 FC서울에 입단한 아디는 남미 출신의 수비수는 한국 무대에서 성공적인 사례를 남기지 못한다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한국 선수보다 더 FC서울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포지션은 본래 레프트 풀백이지만 팀의 상황에 따라 중앙수비수, 유사시에는 미드필더로 경기를 나서며 헌신적인 플레이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8년 동안 모든 대회를 통틀어 305 경기를 소화했고 (K리그 통산 264경기-FC서울 역대 2위 기록),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무려 5회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수비수 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8년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의 헤딩 선제골, 2010년 제주와의 챔피언결정전 결승 헤딩골은 그의 커리어 중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불혹에 가까워지고, 결국 2013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러한 레전드 아디의 은퇴식을 위해 FC서울 구단과 팬들은 이 날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선보였다. 보이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 진심을 담았다는 것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은 FC서울 구단과 팬이 아디를 단지 외국인 용병 선수로서가 아닌, 진정한 서울의 역사로서 대우한 것이었고 꽃샘추위로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출저=FC서울명예기자

 

 아디의 은퇴식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 한 진정한 레전드 플레이어의 탄생의 공식화와 더불어 구단-선수-팬 사이의 유대관계가 돋보였다는 점이다. 아디의 공식 출전 횟수를 기념하기 위한 305명의 팬들이 그라운드를 채웠고, 가족과 함께 나타난 아디는 서포터즈 석으로 올라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305명의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구단과 팬들에게 유니폼을 전달받았으며 기념사진도 남겼다. 또한 전광판에는 최용수 감독을 비롯해 귀네슈 감독, 이장수 감독, 데얀, 이청용, 기성용 등 아디와 함께 했던 감독 및 선수들의 영상편지가 상영되었고 아디는 만감이 교차한 듯 뭉클한 표정을 지었다. 아디를 위한 이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305명의 팬들은 그의 백넘버인 8이 그려진 클래퍼를 들고 숫자 8 대형을 갖추는 카드섹션을 펼쳤다. 그라운드 안에 만들어진 숫자 8과 팬들의 헌정 영상 그리고 경기장 상단의 대형 통천까지... 이 모든 것에 감격한 아디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디의 은퇴식은 그 어떤 은퇴식보다 성대했고 감동적 이였으며 아름다웠다. 이는 한 클럽의 레전드를 넘어 K리그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그에 대한 모두의 예우였다. 팀에서 오랫동안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선수의 마지막을 소홀하게 하여 선수와 팬들의 마음을 돌리게 했던 많은 경우들이 존재하는 것이 세계 프로축구계의 현실이기 때문에, 아디의 은퇴식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출저=FC서울명예기자



 우리는 선수로서의 아디를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아디가 코치로 FC서울과 동행을 계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은 시 ‘알 수 없어요’ 에서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 고 했다. 선수로서의 아디는 ‘타고남은 재‘ 이지만 코치로서의 아디는 ’기름‘ 이 되어 FC서울 선수들과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글=FC서울명예기자 한충혁(salmosa0127@nate.com)
/사진=FC서울명예기자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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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4.03.10 22:42

 

 

FC서울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은 아디의 은퇴식으로 시작됐다. 8년간 FC서울의 수비를 이끌었던 아디는 이제 코치로 새롭게 출발한다. 오랫동안 활약했던만큼 아디는 다양한 기록과 스토리들을 남겼다.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기록과 다양한 이야기들 이제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
아디 그가 K리그에 남긴 기록들

 


아디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으로 30경기 이상 출전했다. (201031경기, 201130경기, 201238경기, 201333경기)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최초의 기록이다. 라돈치치(200832경기, 200932경기, 201031경기) 샤샤(200134경기, 200237경기, 200339경기)등이 3년 연속으로 30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지만 4년 연속은 아디가 처음이다. 물론 신의손이 과거 사리체프 시절 4년 연속 30경기에 출전한 적 있지만 현재 귀화한 선수이니 예외로 둔다. 게다가 신의손은 골키퍼였으니 필드플레이어로서 세운 아디의 기록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아디는 K리그 통산 264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샤샤의 271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이다. 역대 2위 기록이지만 아디는 한 팀에서만 200경기 이상 출전한 유일한 외국인 선수다. 264경기 출전은 FC서울 통산 2위에 해당하는 출전 기록이다. (1위는 윤상철의 300경기) 또 아디는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서 무려 5회나 수상했다. 아디는 2007, 2008, 2010, 2012, 2013K리그 베스트일레븐 수비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중에 최다 수상이다.

 


2.
아디가 첫 번째 외국 생활에서 겪은 것은 전쟁?

 

아디는 21세이던 1997년 세르비아의 크르베나 즈베즈다에 입단하며 첫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디는 축구에 전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당시 세르비아 지역은 내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르비아 지역이 반미감정으로 들끓었기 때문에 아디는 외출할 때마다 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브라질 국기를 두르고 나는 브라질인이다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한 지역에선 생활할 수 없었고, 결국 아디는 6개월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3.
아디가 홈팬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모습은?

 


2006
년에 입단한 아디. 수원과의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뒤 전북과의 홈 개막전에서도 변함없이 선발 출장 했다. 그렇다면 아디는 홈 개막전에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불행하게도 퇴장이다. 아디는 이 경기에서 후반 30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팀은 수적 열세에 놓이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아디는 그해 45일에 열린 대구와의 경기에선 치명적인 헤딩 미스를 범하며 역전골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한 아디는 이후 FC서울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4. 아디 2007 시즌이 끝나고 서울을 떠날 뻔 했다?

 

아디를 데려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이장수 감독이다. 이장수 감독은 다렌스더에서 맹활약한 아디를 눈여겨봤고 결국 2년 계약으로 입단 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장수 감독은 포포투 20092월호에서 아디 에이전트가 자신에게 한 말을 들려줬다. 2008년 베이징 궈안의 수장이었던 이장수 감독은 아디 에이전트가 서울과 계약도 만료되니 원한다면 베이징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장수 감독은 아디를 위해선 중국보단 한국에 뛰는 것이 더 좋을 것 다고 하여 사양했다고 한다. 결국 아디는 FC서울과 재계약하며 잔류했다.

 





5. 아디가 8번을 달게 된 이유는 두두 때문?

 

아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8번이다. 아디는 오랜 기간 FC서울의 8번으로 활약했기에 팬들에게도 ‘8번은 아디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아디는 어떤 계기로 8번을 달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을 필자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2012년 필자와의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아디는 “2006 시즌이 끝나고 두두가 자신이 달았던 8번을 나에게 추천하고 자신은 11번을 달았다. 등번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터라 그 제안을 받아 들여 8번을 달게 되었는데 이후 플레이가 좋아져 8번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번을 유지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아디에게 행운을 내준(?) 두두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20076골로 평범한 모습을 보인 두두는 2008년 성남으로 돌아갔고 그해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리빌딩을 원한 신태용 감독에 의해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오미야 아르디쟈에 입단했지만 18경기 1골 이라는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설상가상 무면허 음주운전사고까지 일으켜 퇴출되기에 이른다. 이후 두두는 브라질의 작은 클럽인 두케 드 캬샤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현재 근황은 전해지지 않는다.

 

6. 아디가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외국인 레전드는?

 


특유의 유쾌한 성격 덕에
FC서울 내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아디. 국내 선수들 뿐 외국인 선수도 아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친한 선수를 꼽으려면 단연 히칼도다. FC서울의 또 다른 외국인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는 히칼도는 아디의 가족을 자신의 포르투갈 집으로 초대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그는 재작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디는 여전히 나에게 FC서울의 소식을 전달해준다라며 밝혔고 2012년 우승 당시에는 아디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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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3.10 00:18


2014 K리그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의 개막전 상대는 전남 드래곤즈입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임에도 북측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습니다.  



바로 FC서울의 레전드 아디 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선발된 305요원들이었습니다.



305요원은 FC서울 페이스북을 통해 신청한 많은 사람들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추첨을 통해 선발된 305명의 주인공들입니다.

305요원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아디선수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 레전드의 은퇴식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의 찬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아디 은퇴식 참가권을 얻고 305요원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처음 들어와본 그라운드!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를 직접 밟아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1시부터는 아디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간단한 연습을 했습니다.
하프라인에 아디선수의 8번을 표현한 305요원들
 



3시반 아디 선수 은퇴식을 앞두고
임무 수행을 위해 대기 중인 305요원들



그라운드에 입장해 아디선수를 위한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갑니다. 




N석을 가득 메운 수호신들 앞에서니 감동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드네요.



아디선수의 가족들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아디 선수
N석에서 리프트를 타고 팬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라운드로 내려와 305 요원들 한명 한명 악수를 해주는 친절한 아디 선수




아디 선수를 눈앞에서 직접보다니 영광이었습니다.




은퇴기념 영상을 보는 아디 선수
이미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305요원들도 대부분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장기주 FC서울 사장님에게 기념 감사패와 유니폼 액자를 받는 아디선수 




경기장 지붕에 미리 준비된 아디선수의 은퇴기념 현수막이 펼쳐집니다.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디선수



수호신과 경기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아디선수는 은퇴를 하고
우리 305요원들의 임무도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8년간 FC서울과 함께한 영원한 레전드 아디선수의 은퇴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코치라는 지도자의 직책으로 다시 만나게될 아디 선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글,사진 = FC서울 명예기자 이정훈, 홍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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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4.03.08 17:25


2014 K리그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의 개막전 상대는 전남 드래곤즈입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임에도 북측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습니다.  



바로 FC서울의 레전드 아디 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선발된 305요원들이었습니다.



305요원은 FC서울 페이스북을 통해 신청한 많은 사람들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추첨을 통해 선발된 305명의 주인공들입니다.

305요원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아디선수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 레전드의 은퇴식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의 찬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아디 은퇴식 참가권을 얻고 305요원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처음 들어와본 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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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부터는 아디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간단한 연습을 했습니다.
하프라인에 아디선수의 8번을 표현한 305요원들
 



3시반 아디 선수 은퇴식을 앞두고
임무 수행을 위해 대기 중인 305요원들



그라운드에 입장해 아디선수를 위한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갑니다. 




N석을 가득 메운 수호신들 앞에서니 감동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드네요.



아디선수의 가족들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아디 선수
N석에서 리프트를 타고 팬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라운드로 내려와 305 요원들 한명 한명 악수를 해주는 친절한 아디 선수




아디 선수를 눈앞에서 직접보다니 영광이었습니다.




은퇴기념 영상을 보는 아디 선수
이미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305요원들도 대부분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장기주 FC서울 사장님에게 기념 감사패와 유니폼 액자를 받는 아디선수 




경기장 지붕에 미리 준비된 아디선수의 은퇴기념 현수막이 펼쳐집니다.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디선수



수호신과 경기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아디선수는 은퇴를 하고
우리 305요원들의 임무도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8년간 FC서울과 함께한 영원한 레전드 아디선수의 은퇴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코치라는 지도자의 직책으로 다시 만나게될 아디 선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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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4.03.08 17:25


2014 K리그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의 개막전 상대는 전남 드래곤즈입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임에도 북측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습니다.  



바로 FC서울의 레전드 아디 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선발된 305요원들이었습니다.



305요원은 FC서울 페이스북을 통해 신청한 많은 사람들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추첨을 통해 선발된 305명의 주인공들입니다.

305요원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아디선수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 레전드의 은퇴식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의 찬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아디 은퇴식 참가권을 얻고 305요원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처음 들어와본 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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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부터는 아디선수 은퇴식 세레머니를 위해 간단한 연습을 했습니다.
하프라인에 아디선수의 8번을 표현한 305요원들
 



3시반 아디 선수 은퇴식을 앞두고
임무 수행을 위해 대기 중인 305요원들



그라운드에 입장해 아디선수를 위한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갑니다. 




N석을 가득 메운 수호신들 앞에서니 감동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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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등장한 아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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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 선수를 눈앞에서 직접보다니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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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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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디선수



수호신과 경기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아디선수는 은퇴를 하고
우리 305요원들의 임무도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8년간 FC서울과 함께한 영원한 레전드 아디선수의 은퇴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코치라는 지도자의 직책으로 다시 만나게될 아디 선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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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4.03.08 17:25







지난 2006FC서울에 입단하여 무려 8년간 FC서울 수비의 중심이었던 아디. 이제 그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올해부터 FC서울 코치라는 직함을 달게 된다. ‘선수 아디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몇몇 팬들에게 섭섭함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아디는 올해도 변함없이 FC서울에서 팬들과 함께 숨쉬게 됐다. 선수 시절 성실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믿음직스런 선수였던 아디. 수비수이기에 그가 데얀이나 몰리나처럼 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도 K리그에 남긴 여러 기록들이 있다. 그리고 FC서울의 영광엔 아디가 여러 차례 주인공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아디를 쉽게 잊을 수 없게끔 해줄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아디가 남긴 기록과 영광스런 모습들을 알아보자.

 










아디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으로 30경기 이상 출전했다. (201031경기, 201130경기, 201238경기, 201333경기)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최초의 기록이다. 라돈치치(200832경기, 200932경기, 201031경기) 샤샤(200134경기, 200237경기, 200339경기)등이 3년 연속으로 30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지만 4년 연속은 아디가 처음이다. 물론 신의손이 과거 사리체프 시절 4년 연속 30경기에 출전한 적 있지만 현재 귀화한 선수이니 예외로 둔다. 게다가 신의손은 골키퍼였으니 필드플레이어로서 세운 아디의 기록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특히 2010년엔 광대뼈가 함몰당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30경기 이상 출전했다. 이는 아디의 성실함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 아디는 K리그 통산 264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샤샤의 271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이다. 역대 2위 기록이지만 아디는 한 팀에서만 200경기 이상 출전한 유일한 외국인 선수다. 264경기 출전은 FC서울 통산 2위에 해당하는 출전 기록이다. (1위는 윤상철의 300경기)






또 아디는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서 무려 5회나 수상했다. 아디는 2007, 2008, 2010, 2012, 2013K리그 베스트일레븐 수비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K리그 외국인 선수 중에 최다 수상이다. 2002 월드컵 당시 귀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마시엘(4), 수원의 통곡의 벽이던 마토(3) 등 다른 외국인 수비수들도 아디의 아성에 미치지 못했다. K리그 전체로 눈을 돌려봐도 신태용(6)에 이은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꾸준한 활약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기록이다.









아디는 수비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 일전에서 아디는 정확한 크로스로 김은중의 헤딩 슈팅을 도왔고,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선 헤딩슛으로 팀의 선제골을 기록했다. 2010년 제주와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선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 헤딩골로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2013년에도 아디의 골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왔다.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동점골. 지난 8월 수원과의 경기에선 수원전 8경기 연속 무승 징크스를 날려버리는 헤딩 선제골 등 아디는 공격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였다.






이제 아디는 코치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 타 팀에도 외국인 코치는 있지만 외국인 선수가 은퇴 후 바로 코치로 합류하는 건 K리그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수비와 외국인 선수 쪽을 맡게 될 아디는 지난 8년간 FC서울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코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경험과 특유의 유쾌함은 이제 막 합류한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FC
서울에선 아디를 비롯해 안드레, 히카르도 등 다양한 브라질 선수들이 활약했지만 공격수 쪽에선 브라질 선수들이 활약한 적이 없다. 2005년에 뛰었던 노나또는 11경기에서 2골만을 기록했고 2010년에 영입한 리마는 R리그에서 단 두 경기만을 소화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 합류한 하파엘 코스타는 기대해볼만 하다. 하파엘 코스타의 기본 실력도 있지만 아디의 존재는 하파엘 코스타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제 아디 코치의 첫 시즌이 시작됐다. 선수로서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코치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길 바라며 앞으로 아디로 인해 FC서울이 브라질 선수들의 천국으로 알려질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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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2.14 23:34








오스마르에 이어 두 번째로 영입된 외국인 선수. 바로 하파엘 코스타다. 하파엘 코스타는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로 중국으로 떠난 데얀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다. 다부진 체격이 돋보이는 선수 하파엘 코스타에 대해 알아보자




하파엘 코스타는 1987년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마라냥주 주도의 상 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2006년 포르사 유소년 클럽에 입단했고 이듬해 프로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브라질 전국 2부리그인 세리에B의 아바이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하파엘 코스타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20084골을 넣었고, 이후 이툼비아라, 모지 미림, 산 호세 등에서 임대 생활을 했지만 3년간 그가 넣은 골수는 두 골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1년 브라질 세리에D의 메트로폴리타노에 입단하면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해 전국 리그에서 8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은 하파엘 코스타는 2012년 주 리그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게 된다. 브라질 카타리네제주 리그에서 메트로폴리타노는 초반 두 경기에서 연패를 당하지만 마마르시릴로 디아스와의 경기에서 하파엘 코스타가 두 골을 폭발시키는 활약으로 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이후 조인빌레와의 경기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4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이후 본격적으로 메트로폴리타노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게 된다.


               하파엘 코스타는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진출처-메트로폴리타노 홈페이지)






다음 경기인 에르만 아이칭거와의 경기에서도 두 골을 넣으며
3-2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샤페코엔세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의 1-1 무승부에 일조하는 등 세 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이후 브루스케전에서 멀티골. 캄보리우전 멀티골 등 맹활약한 하파엘 코스타는 카타리네제주 리그에서 팀 내 공격수들 중 최다인 18경기에 출전해 14골을 폭발시켰다. 활약은 전국 리그에서도 이어졌다. 후벤투드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미라솔전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아라폰가스전, 모지 미림전에서 골을 터트렸고 총 10경기 출전 4골을 기록했다. 10경기 출전은 공격파트너인 레난과 더불어 팀 내 최다 출전 기록. 4골은 팀 내 최다골 이었다. 2012년을 계기로 팀 내 확고한 주전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하파엘 코스타는 2013년 주 리그에서도 활약을 이어간다. 유벤투스SC와의 카타리네제주 리그 개막전에서 첫 골을 신고한 하파엘 코스타는 과라니 데 팔호카전에서도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두 경기 연속골로 쾌조의 골감각을 보인 하파엘 코스타는 이후 에르만 아이칭거전에서 한 골을 기록했고 아바이전에선 팀의 두 골을 모두 책임지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과라니 데 팔호카, 피게이렌세, 크리시우마 등이 하파엘 코스타 골의 희생양이 됐고, 캄보리우는 멀티골의 희생양이 됐다.





2013
년 그의 주 리그 기록은 17경기 출전에 12. 역시 팀 내 최다골이었다. 팀 내 2위 기록이 하피냐, 펠리페 핀토 등이 기록한 2골이었으니 하파엘 코스타가 공격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타노는 더 이상 하파엘 코스타를 잡아둘 수 없었다.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러브콜이 쏟아지는건 당연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파엘 코스타는 2012 주 리그 우승, 2013 주 리그 2위를 차지한 피게이렌세로 이적하며 전국 리그에 나갔다. 하파엘 코스타는 피게이렌세 데뷔전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메리카RN과의 세리에B 개막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끈 것이다. 이후 아메리카 미네이로전에서 한 골을 터트렸고, 스포르트 레시페전에서 또 한번 멀티골을 기록하며 3경기 5골로 새 팀에서도 변함없는 골 감각을 보여줬다. 이후 팔메이라스, 상 카에타노, 오에스테 등이 하파엘 코스타에게 골을 허용했다.



                                       피게이렌세 시절 하파엘 코스타 (사진출처 - 피게이렌세 홈페이지)









당시 피게이렌세는 하파엘 코스타를 비롯해
, 보타보고와 샬케04에서 활약한 제 호베르투(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던 제 호베르투와 동명이인), 레알 베티스에서 정확한 프리킥으로 정평이 나 있던 마르코스 아순상 등을 앞세운 강팀이었다. 결국 피게이렌세는 브라질 세리에B에서 4위를 차지하며 세리에A로 승격됐고, 하파엘 코스타는 30경기 출전 14골을 기록했다. 30경기 출전은 팀 내 최다 출전 기록. 당시 골키퍼였던 티아고 볼피가 27경기에 출전했으니 하파엘 코스타의 팀 내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4골 역시 마일슨(11), 히카르도 부에노(7) 등을 따돌린 팀 내 최다골 기록이다. 이러한 브라질에서 맹활약은 서울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결국 하파엘 코스타는 2014FC서울의 공격을 이끌 선수로 낙점됐다.






하파엘 코스타의 장점은 단단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플레이다
. 키는 작은편이지만(178cm) 외모에서 알 수 있듯 매우 강한 체격을 지녔다. 따라서 몸싸움과 슈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고 에스쿠데로와 함께 저돌적인 플레이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또 현재 그는 절정의 골 감각을 지니고 있다. 2012년 주 리그와 전국 리그에서 기록한 골이 18, 2013년엔 26골을 기록했다. 지금의 골 감각만 유지한다면 서울에서도 골 폭풍을 몰아칠 수 있을 것이다.






FC
서울엔 아디를 비롯해 안드레, 히카르도 등 여러 브라질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공격수 쪽은 아니다. 2005년에 뛰었던 노나또는 11경기에서 2골만을 기록하며 기대에 못미쳤고 2010년에 영입한 리마는 R리그에서 두 경기만을 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공격수 외국인 선수 쪽은 데얀을 비롯, 드라간 스토이치사블레비치, 스카첸코 등 동유럽권 선수들이 활약했다. 따라서 하파엘 코스타가 브라질 출신 공격수로서 성공을 거둘 지도 관심요소다. 지난 6년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데얀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 역시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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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2.04 13:28






K리그 시즌이 휴식기인 요즘 스토브리그는 한창이다. 각 구단마다 예산을 줄여 스토브리그가 꽁꽁 얼어붙을거란 예상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이적 시장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FC서울은 데얀과 하대성이 떠났지만 그 공백을 메울 선수들이 속속 영입되고 있다. 첫 번째 영입된 선수는 스페인 출신의 수비수 오스마르 이바네즈다. 부리람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지난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FC서울과 맞붙었던 터라 서울팬들에게도 친숙한 오스마르는 이제 서울 수비진의 한축이 되었다. FC서울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오스마르. 그에 대해 알아보자.




오스마르는 1988년 스페인 칸타브리아주에 위치한 산토냐 에서 태어났다. 칸타브리아주의 주도는 산탄데르였기에 오스마르는 산탄데르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프로로 데뷔한 연도는 2007. 당시 그는 라싱 산탄데르 B팀에 입단했지만 바로 UD 살라망카 B팀으로 임대됐다. 그는 살라망카에서 35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인 뒤 라싱 산탄데르 B팀에 복귀했다. 복귀한 라싱 B팀에서도 그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자모라와의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B 개막전에 선발 출전한 오스마르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두 번째 경기인 레모나전 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다. 3라운드인 세스타오 리베르 전에선 시즌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한 오스마르는 팀 동료인 난도와 함께 팀의 중앙 수비를 책임지며 총 30경기에 출전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수비수임에도 팀내 최다인 6골을 터트렸다는 점. 오스마르는 페롤전에선 멀티골을 넣기도 했고, 데포르티보B, 시우다드 데 산티아고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당시 라싱 산탄데르 B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우리가 31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스마르의 득점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팀 역시 오스마르가 골을 기록한 경기에서 311패를 기록하며 오스마르 골 효과를 톡톡히 봤다.



                                           라싱 산탄데르 시절 오스마르 (사진출처 - 라싱 산탄데르 홈페이지)






2009~2010 시즌에도 오스마르는 34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 시즌엔 한골에 그쳤지만 오스마르의 활약은 A팀에도 알려져 시즌 도중에 A팀에 올라 애틀래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프리메라리가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2009~2010 시즌 라싱 산탄데르 B팀은 강등되었지만 오스마르는 A팀으로 자리를 옮겨 프리메라리거가 되었다. 하지만 A팀에서 오스마르는 좀처럼 자리잡기가 힘들었다. 자국 선수인 토레혼과 브라질 출신의 엔리케가 굳건히 자리를 지킨 수비진은 오스마르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었고 결국 오스마르는 4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1~2012 시즌에도 오스마르는 고작 8경기 밖에 출장기회를 얻지 못했고 팀마저 2부 리그로 강등당하자 이적을 모색했다.




오스마르는 새 팀은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 비록 프리메라리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3부 리그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태국행은 뜻밖의 결정이었다. 오스마르는 부리람 유나이티드와 26개월 계약을 맺고 촌부리와의 태국 FA컵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오스마르는 팀을 3-2 승리로 이끌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부리람이 태국 FA컵을 제패하며 2013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부리람은 플레이오프에서 호주의 브리즈번 로어를 만났고 오스마르는 안정된 수비로 팀의 무실점을 이끌었다. 0-0으로 승부가 승부차기로 넘어가자 오스마르는 팀의 첫 번째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성공시켰고 팀이 3-0으로 승리해 2013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게 됐다.


              부리람 시절 그는 FC서울과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기도 했다 (사진 출처-foxsports)



2013 시즌을 앞두고 부리람 선수단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공격을 이끌었던 아체암퐁과 오한드자가 타 팀으로 임대를 떠났고 고란 예르코비치도 자유계약으로 방콕 글래스로 떠났지만 스포르팅 히혼에서 카르멜로를 영입했고 포워드 카이 히라노도 영입했다. 또 한국 선수 이상민과 스페인 국적의 후안 케로, 체코 국적의 하비에르 파르티뇨 등이 합류했다.





이 선수들을 이끌 선수로는 오스마르가 선정됐다
. 오스마르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 부리람을 이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오스마르는 주장답게 방콕 글라스와의 태국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며 2-0 승리를 이끌었고,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무실점 수비로 0-0 무승부에 한몫했다. 골 넣는 수비수의 시즌 첫 골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나왔다. 오스마르는 베갈타 센다이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31분 동점골을 터트리며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오스마르는 팀의 주전 수비수로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일정 속에 오스마르는 4월부터 6월까지 무려 19경기에 출전한 것이다. 고비때마다 터트리는 골도 있었다. 베갈타 센다이와의 홈경기에서도 팀내 유일한 골을 성공시킨 오스마르는 아미 유나이티드전, 방콕 유나이티드전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오스마르의 활약 속에 부리람 역시 장수 슌텐전 0-2 패배를 제외하고 단 한경기도 패하지 않았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분요드코르도 제압하며 8강에 진출했으며 오스마르는 1 2차전 모두 출전해 수비라인을 이끌었다. 이후 부리람은 리그에서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순항했다. 오스마르 역시 변함없이 선발 출장하며 또 다른 명문인 무앙통 유나이티드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후 재개된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에스테그랄에게 0-1로 패했지만 리그에선 4연승을 달리며 우승 굳히기에 들어갔다.





오스마르는 오스토피아, 체인엣전에서 연속골을 성공시켰다. 최고의 분위기 속에 에스테그랄을 홈으로 불러들여 역사에 도전했지만 1-2로 패하며 아쉽게 8강에서 탈락해야했다. 하지만 오스마르는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리그에만 집중하게 된 부리람은 큰 위기없이 순항했고 결국 2013 시즌 무패 우승에 성공한다. 그리고 FA컵과 리그컵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고 오스마르는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최고의 2013년을 보낸 오스마르는 시즌 종료 후 잉글랜드의 레스터 시티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지만 FC서울의 입단 제의를 받아들여 2014년부터 FC서울의 수비수로 활약하게 됐다.

오스마르는 2013년 태국에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사진은 도요타 리그컵 우승 후 (사진출처-부리람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오스마르의 장점은 큰 체격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다. 오스마르는 192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선수다. FC서울 중앙 수비진 선수들이 모두 180cm 초중반(김주영 185cm, 김진규 183cm, 아디 183cm)임을 감안하면 오스마르의 합류는 하늘길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수비수임에도 득점력까지 갖췄다. 2008~2009 시즌 라싱 산탄데르 B팀에서 팀 내 최다인 6골을 기록했고 지난해 부리람 에서는 무려 13골을 기록했다. 페널티킥 능력도 갖추고 있어 키커로 나서기도 했다. 따라서 지난해 수트라이커들의 효과를 톡톡히 본 서울은 오스마르의 합류로 더욱 강력한 수트라이커진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단점이 있다면 카드를 받는 횟수가 다소 많은 걸 꼽을 수 있겠다
. 오스마르는 2008~2009 시즌엔 팀 내 두 번째인 9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고 레드 카드는 팀 내 최다인 3장을 받았다.그 다음 시즌에도 8장의 옐로우 카드, 1장의 레드 카드를 받으며 여전히 많은 카드를 받았다. 프리메라리거였던 2011~2012 시즌에도 8경기에 출전해 무려 4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꽤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부리람 시절엔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해 4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지만 2013 태국 리그는 부리람이 강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지배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적게 받을 수 있었다. FC서울 선수들의 최근 3년간 옐로우 카드를 받은 것을 보면 아디는 20115, 20124, 20135. 김진규는 20103, 20126, 20133. 김주영은 20104, (2011년은 부상으로 4경기 밖에 출전하기 않았기에 제외) 20124, 20134개를 받았다. 따라서 오스마르가 옐로우 카드를 받는 횟수는 많다고 볼 수 있다. 옐로우 카드를 많이 받게 되면 경고 누적 등으로 최용수 감독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만큼 카드 받는 것을 줄일 필요가 있다.





FC
서울에 스페인 선수가 입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리람에서 아시아 축구를 경험하고 온 선수인 만큼 오스마르에게 좋은 활약을 기대해 볼 만 하다. 이미 그는 SNS를 통해 기존 선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부리람에서 맹활약했던 오스마르가 FC서울에서도 빼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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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4.01.27 22:06




레츠고 데얀, 어디 가.. 데얀..

데얀과의 이별소식은 FC서울 팬들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모두의 마블을 하며 서울에 랜드마크를 세워놨는데 홀라당 날린 느낌이랄까. 허탈하기도 하면서 막막하기도 한 데얀의 이적 소식이다. FC서울 뿐만 아니라 K리그에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겨둔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미 도장은 찍었고 그는 장수로 넘어간다. 이제 그를 볼 수 있는 건 ACL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어찌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건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내주어야 한다.
감성적인 태도는 얼른 정리하는 것이 좋다. 상실감이라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도 동반한다. FC서울은 데얀을 잃은 상실감을 얼른 떨쳐내고 새로운 FC서울 리빌딩이라는 설레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데얀의 팀'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FC서울은 데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데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던 만큼 데얀이 없는 FC서울의 전략은 데얀이 없이는 그려내지 못했다. 이제 그 그림을 그려낼 때이고 FC서울만의 색채를 다시 한 번 잡는데 기회라고 토닥여보지만 역시 힘들다...






꼭 데얀만한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가?

데얀에 대한 추억, 그의 업적을 다루는 기사들은 질리도록 보셨을테니 쓰지 않겠지만 데얀에 대해서 한 마디는 해야 이 뒤의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듯 하다. 데얀이라는 선수를 '최고의 공격수'라고 칭하기엔 참 칭호자체가 부적절하다. 그는 적어도 K리그 안에서는 '최고의 선수'였음이 분명하다. 공격수를 넘어서 선수 그 자체로서의 영향력이 무지막지 했기 때문이다.
한때 인천의 유병수가 각광을 받았었다. 당시 유병수가 데얀보다 나은 선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전적으로 반대했었다. 유병수는 골을 잘 넣는 선수였고 데얀은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였다. 내가 FC서울 팬이라서가 아니라 클래스가 다른 문제였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데얀은 '팀의 색깔을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이자 위험한 선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즉, 데얀이 빠진 '공격수 자리'에 다른 '공격수'를 넣는다고 해서 대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데얀'이 빠지면 '데얀'이 들어가야 한다. 즉,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데얀을 대체할 선수는 현재 K리그 클래식에서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데얀이 빠진 FC서울에서 현재의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다른 포지션까지의 보강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얀을 대체할 선수를 찾기보단 팀을 리빌딩 해야한다고 본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중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면 '한 선수의 부재'로 인해 팀의 색이 변하기 보다 팀이 빌딩이 된 후 각 요소에 맞는 선수들을 배치, 좋은 선수가 들어오면 그 선수가 팀을 바꾸기 보단 팀의 패턴과 플레이 스타일을 '강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미드필더를 탄탄히 하여 데얀없는 곳을 채워야

팀을 리빌딩함에 있어 현재 FC서울의 자원들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방향은 바로 '미드필더가 확실한 팀'이라 할 수 있다. 강한 미드필더의 압박과 패스웍으로 상대를 조는 스타일이 구축되는 쪽이 가장 빠르고 그것이 서울의 스타일이다. 귀네슈 감독 시절, FC서울은 특유의 젊음과 빠른 패스웍으로 '재미있는 축구'를 구현해냈다. K리그의 수준을 올려놓았다는 평을 들으며 서울은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거듭났다. 당시 터졌던 선수들이 바로 기성용, 이청용 아니었던가. 전통적으로 FC서울은 미드필더가 강했으며 현재도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수진이 탄탄하다. 하대성, 고명진, 고요한 등 인정받는 선수들과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현태 등의 선수들은 FC서울의 미드필더를 이끌고 나갈 귀중한 인재들이다.
다만, 현재의 미드필더진에 2진을 두어야 앞으로 FC서울의 팀색깔을 잡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진에 있는 선수들의 부재상황 또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하대성, 고명진의 경우 폼이 점점 올라오고 있어 해외로의 이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현재 FC서울의 미드필더 후보군 선수들이 아직까지는 특별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1진에 배치된 선수들의 부재시 메워주기 힘든 위치에 있어 이를 더욱 견고히 하여 스쿼드에 흔들림이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미드필더 강화에 있어서 역시 가장 떠오르는 선수는 제파로프다. 황보 관 감독 시절 제파로프가 황당하게(?) 떠난 기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다시 K리그로 돌아왔고 그의 예전 FC서울에서의 플레이나 서울에 대한 애정도를 보았을 때 그의 영입은 FC서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제파로프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다시 FC서울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공격수, 골을 확실히 터뜨려줄 묵직한 선수로

그렇다고 공격수를 소홀히 해야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결국 미드필더의 강화는 '골'로 이어지는 과정을 탄탄하게 할 뿐이지 결국엔 골은 공격수가 성공시킨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팀이 리빌딩 되는 과정에서 공격수는 골문 앞에서 침착하게 골을 완성시킬 수 있는, 묵직한 선수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롤 모델의 선수는 이동국이다. K리그 클래식에서 데얀만큼 팀을 지배하고 결정력을 보여주는 이동국 같은 선수를 영입하면 좋겠지만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팀을 지배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그러한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즉, 꾸준한 미드필더의 지원사격을 골로 성공시켜줄 그럴 선수가 필요하다. 화려한 도미보단 텁텁한 가자미 같은 채치수같은..그런 공격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숨고르고 장기적인 팀으로의 행보가 중요해

최용수 감독은 그 동안 쉴새없이 달려왔다. 리그를 우승하진 못했지만 ACL 준우승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그 지도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최용수 감독 또한 머리 속에서 감독이 그려낸 'FC서울'을 구축할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데얀이 빠졌다. 몰리나와 아디 역시 거취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장기적인 플랜으로 보았을 때 그들 또한 장기적인 플랜에서 과감히 제외를 한 채 리빌딩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FC서울의 스쿼드를 보면 선수들의 연령층이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유소년 축구 체제나 어린 선수들을 양성하는데에 있어서 K리그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FC서울이 앞으로의 플랜에서 어린 선수들을 적절히 활용한 팀 구성도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리빌딩을 잘 마친다면 FC서울은 앞으로 꾸준한 강팀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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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3.12.29 18:02


                                                                   최용수 장군이 잘 해내주리라 믿는다. (사진출처 : 코리안뉴스)



'살수대첩'이라 불릴 이 전쟁은 시작되었다


4세기 이래로 통합되지 않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하면서 수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이 대빵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동쪽으로 침범을 감행하였다. 수나라 양제는 자신들의 세력을 펼치는 노력을 펼치는 가운데 가장 거슬렸던 곳이 바로 고구려였던 모양이다. 고구려 침공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물적 물량도 엄청 쏟아 부었다. 동원된 병력만 113만여명. 총 움직인 인원만 35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는 공방을 거듭했지만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으로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결국 수나라는 철수를 결정, 퇴각을 하게 되는데....

FC서울 원정단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Facebook에 설렘을 감추지 않고 포스팅되는 FC서울 팬들의 광저우 원정 소식에 본인도 설레기는 마찬가지. 이들 중 "축구보러 중국까지 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걸로 알고 있다. 허나 이들은 당당하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역사를 보러 간다."고. 나도 그리 생각하고 중국 원정길에 오른 모든 이가 부러울 뿐이다.

그렇다. 지금 FC서울은 구단 창단 이래 가장 위대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광저우로 떠났다. 홈에서 잘 선방한 FC서울이 자신들의 홈으로 퇴각한 광저우를 치기 위해 떠났다. 막대한 물량과 군비를 쏟아부은 광저우의 공격은 생각보다 을지문덕 감독의 FC서울을 흔들어 놓지 못했다. 최용수 장군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잠시 막아두었던 데몰리션 강과 투고 강, 최근 준비해둔 데스쿠데로 강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 듯 하다. 광저우 홈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그들 중 2,700여명만을 남기고 우리의 강물로 쓸어버릴 준비 말이다. 


중국의 공한증은 그들의 사진마다 조금씩 드러난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중국과 FC서울의 대결구도

국가대항전 느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이상하게도, 클럽 대항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는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 분위기는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스포츠에서 유일하게나마 한국에 시달리는 중국의 축구 '공한증' 때문인지 그들은 이번 결승전을 마치 중국의 경기인냥 선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중국은 클럽대항전에서조차 '승점자판기' 수준이었고, 그 어떤 팀들도 중국 클럽 팀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생각치도 않았던 시절이 길었기 때문이다. 허나 어느샌가 치고 올라온 중국의 축구클럽팀, 그 중 대표적인 팀 광저우가 현재 결승전에서 으르렁대고 있다. EXO처럼.


광저우의 대표 선수 3인방 (출처 : MK 스포츠)



지금 이 순간, 광저우가 '돈으로 구단을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축구계를 부패시키는 팀이다' 등의 이야기는 접어두도록 하자. 현재 광저우(이번 시즌)는 아시아 최고의 팀 중 하나이고 클럽 팀들의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ACL 에 무서운 상승세로 올라와 있다. 중국 국민들은 그 동안 축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이번참에 모두 풀어낼 기세로 덤벼들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FC서울이 속한 한국은 잠잠하다. 아직도 스포츠 뉴스는 잠잠하다. 왜냐? 여태껏 한국 클럽은 많이 우승해왔으니깐 국가 자체가 덤덤할 것이라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중국의 분위기에 비하면 잔잔한 도나우 강의 잔물결 수준이다. 즉, 현재 분위기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FC서울이 대결을 펼치는 느낌이다. 그나마 모든 K리그 팬들이 FC서울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겠다.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 안에서 국가 대항전의 느낌. 좋으나 나쁘나 이 분위기 때문에 이 경기는 무언가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하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FC서울, 하던대로 하고 돌아오라


사실, 결승 1차전에서 보여준 광저우의 전력은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세트피스 상황이나 측면을 열어주는 경향으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FC서울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상대 문전에서 보여주었던 FC서울 특유의 패스 플레이는 광저우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다소 수비적으로 배치되었던 하대성을 비롯한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가 아쉬울 뿐이었다. 이로 인해 상대에게 중원 공간을 크게 주게 되었고 한 번 주도권을 잃으면 역습으로 빠르게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원래대로 조금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유지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렬하다. 이 경기가 보여준 것은 하나다. 원래 하던대로 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얘네랑 결승에서 붙는다고 하면 "좋은 경험 될 것." 이라는 말만 했을지 모른다.




광저우는 FC바르셀로나가 아니다. 절대적은 우위에 있는 팀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지만 그들 또한 3명의 외국인 용병의 활약으로 물들어진 중국 클럽 팀 중에 하나이다. FC서울 또한 데얀, 몰리나, 에스쿠데로 등 화려한 공격진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 수비진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현재 결승 2차전에서 부족한건 원정경기에서 오는 홈팬들의 압박과 선수들의 연봉 뿐이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고 FC서울 팬이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경기를 살수대첩이라고 부르는 건 그들의 막대한 홈팀 관중과 그들이 투자한 막대한 돈이 마치 우중문이 우둔하게 끌고 온 병사들과 군량과 같고 그들의 공세를 서울 홈에서 잘 막아낸 FC서울이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같아 말하게 되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FC서울은 지금의 훌륭한 선수들로 여태껏 잘 싸워왔고 이번 결승 2차전에서도 잘 이겨내리라 굳게 믿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FC서울의 ACL 우승 기원하는 글을 간단히 쓰려했는데 길게 써진 것 같다. 그래도 이왕 썼으니 마무리를 져야겠다. 광저우가 중국을 통일하고 아시아에 그 기세를 펼치러 나온 수나라 느낌이라면 FC서울은 오밀조밀 만들어 오며 주변 강국들의 견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용맹함을 유지한 채 아시아의 강호로 올라온 고구려 느낌일 것이다. 강이 봇물처럼 터져 수나라의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내린 것처럼, 그리고 이 결승전이 실제로 제 2의 살수대첩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 말이다.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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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3.11.08 16:33







서울 팬들은 이번 승리에 정말 큰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라이벌을 상대로 자존심을 세운 것은 물론, 지긋지긋했던 수원전 8경기 연속 무승 기록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FC서울은 이번 승리는 여러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 승리가 특별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1.
선제 득점 아디. 2008년 챔피언결정전 득점과 닮았다?

 



전반
29분 아디는 몰리나의 코너킥이 날아오자 높이 솟아올라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골문 구석에 꽂아넣었다. 2008년 챔피언결정전 이후로 5년 만에 터진 아디의 수원전 득점. 근데 이 골. 당시 기록한 골하고 흡사한 부분이 있다. 2008년 당시에도 아디는 코너킥이 날아오자 돌고래처럼 솟아올라 날린 헤딩 슈팅이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골을 기록했다. 심지어 시간대마저도 전반 20분대로 같고, (2008년 전반 21, 2013년 전반 29) 선제골이라는 것도 같다. 다른점이 있다면 코너키커. 2008년엔 기성용이 코너킥을 올려줬지만, 2013년 코너키커는 몰리나였다. 2008년 당시엔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번엔 2-1로 승리하며, 아디는 승리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2. ‘
수트라이커김진규의 공격포인트 행진은 계속된다!

 






수원전 이전까지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31도움)를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뽐낸 김진규. 그는 후반 8분 몰리나의 프리킥을 멋진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팀의 두 번째 골을 뽑아냈고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을 5경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5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는 라데, 윤상철, 이천수 등 K리그 전 현직 특급 공격수들이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고, 김진규는 수비수임에도 이런 놀라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지션을 수비수로만 한정하면 김진규는 역대 2위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1위는 1984년 조영증이 기록한 6경기. 만약 김진규가 다음 경기에서도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다면, 역대 수비수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김진규가 다음 경기에서 타이 기록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3. 이번에 깨진 징크스는 무승 징크스뿐이 아니다!

 







서울은 이번 경기 승리로 인해 수원전 무승 징크스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깨진 것은 무승 징크스 뿐만이 아니다. 서울은 수원전 8월 맞대결 패배 징크스도 함께 날려버렸다. 서울이 8월에 수원을 꺾은 것은 2007FA컵이 마지막. 당시 FA16강전에서 서울은 수원을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론 8월에 승리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 해 8월에 리그에서 수원을 다시 만났지만 1-2로 패했고, 200981일에도 0-2로 패했다. 2010828일엔 2-4로 패했고, 작년 818일에도 0-2로 패하는 등 서울은 8월의 슈퍼매치에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번 승리로 인해 8월 무승 징크스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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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8.04 01:16



 






강원을 제물 삼아 리그 2연승을 노렸던 FC서울. 하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30분까지 만회골을 넣지 못하며 패색이 짙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34분 고요한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흐름을 탄 서울은 후반 39분 고요한이 또 한번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42분엔 데얀이 역전골마저 성공시키며,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8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터진 폭발력은 75분 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서울이 이런 폭발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서울은 그간 한번 골을 넣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골을 몰아 넣으며 경기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곤 했다. 짧은 시간에 골을 넣으며 막강한 폭발력을 과시한 서울. 그래서 이번엔 과거에 보여준 폭발적인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전남과 2009 시즌 개막전을 치른 서울은 전반에만 세 골을 넣으며 3-0으로 넉넉하게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10분 환상적인 골이 터진다.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김치우가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네 번째 골을 뽑아낸 것이다. 다섯 번째 골을 보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반 12분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기성용이 수비수 한명을 제친 뒤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성공 시켰다. 화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고 후반 16분 김치우의 크로스를 이청용이 살짝 내주자 이승렬이 달려들어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겨우 6분 만에 나온 세 골. 그 덕에 서울은 전남을 6-1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그 해 어린이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데얀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스리위자야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결국 서울의 폭발력이 다시 불을 뿜었다. 후반 27분 데얀이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키자, 3분 만에 심우연이 또 다시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흐름은 이어졌고, 4분 후인 후반 34분. 심우연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4-1로 벌리는데 성공했다. 7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승기를 잡은 서울은 결국 추가시간에 터진 데얀의 골까지 묶어 5-1로 승리했다.














라이벌 수원도 서울의 폭발력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2010년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두 팀은 초반 상위권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을 벌였다. 경기 초반엔 수원이 흐름을 가져갔지만, 중반부터 서울의 폭발력이 서서히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전반 24분 데얀의 힐패스를 받은 에스테베즈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한 슈팅을 날리며 선제골을 뽑아 냈고, 3분 뒤엔 정조국이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2-0으로 벌렸다. 서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5분 뒤인 전반 32분에 최효진의 골까지 묶으며 3-0으로 앞서나갔다. 8분 만에 세 골을 넣은 서울은 결국 후반에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수원을 3-1로 꺾고 라이벌전에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서울의 폭발력은 강원전처럼 역전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0년 10월 경남과 홈에서 맞붙은 서울은 전반 2분만에 실점하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고, 설상가상 아디가 전반 10분에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특유의 폭발력이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정조국이 후반 31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이어 4분 뒤 하대성에게 연결된 정조국의 정확한 패스는 역전골로 이어졌고, 또 4분 뒤엔 정조국이 최효진의 패스를 받아 또 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3-1로 벌렸다. 후반 막판 경남에게 추가 실점을 하기도 했지만, 서울은 어려운 경기를 펼쳤음에도 8분 만에 세 골을 넣으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2012년 8월. 성남과 원정경기를 치른 서울은 전반 고요한의 패스를 받은 데얀의 발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하밀과 윤빛가람에게 연속골을 내줘 1-2로 역전 당했다. 다급해진 서울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후반 34분에 터진 데얀의 골이 반칙으로 무효처리 되면서 찬물이 끼얹어졌다. 설상가상 데얀은 거칠게 항의하다 경고까지 받는 등 역전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맹공을 퍼부은 결과 후반 43분 아디의 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골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곧바로 이어진 추가 시간. 서울의 폭발 본능은 살아있었고 결국 데얀이 추가 시간에 골을 터트리며 3-2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고, 서울은 5분 만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내며, 패배할 뻔한 경기를 승리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이 이러한 폭발력을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공격 본능과 집중력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은 팬들을 매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막강한 폭발력으로 패배할 듯한 경기를 승리로 뒤집어 버리는 서울의 모습. 앞으로도 서울의 폭발력이 계속해서 살아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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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5.04 23:11

올 해 2-2 무승부가 유난히 많은 FC서울. 오늘도 안타깝게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2-2를 기록하며 승점 1점을 보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전반 활발한 공격축구를 구사하며 2-0으로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는 듯 했으나 마스다의 중거리 슛에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의 엉덩이 슛을 연상시키는 김승용의 무릎슛에 어이없이 한 골을 내주고 철퇴축구의 주무기인 헤딩으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두 골 모두 FC서울에서 활약을 하던 김승용, 김치곤 선수에게서 비롯된 골이라는 것이 더욱 더 아쉬움을 더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FC서울은 그 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특유의 공격축구를 되살리며 희망의 빛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경기를 펼치고도 비겼다는 사실은 너무나 아쉽지만, 사실 오늘 경기에서 FC서울의 문제점이라고 하기보단 FC서울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경기였는데, 그 점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에스쿠데로가 상대 수비의 집중력을 흐리는 키워드다.(사진출처=FC서울 두번째 이야기)

 

 

 

에스쿠데로의 중요한 역할

 

 

오늘 나온 FC서울의 두 골 중에 두번째 골은 데몰리션의 부활을 알리는 좋은 신호탄이 될 골이었다. 시즌 초반 상대 팀들의 집중적인 견제로 인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던 데몰리션 콤비가 오늘은 그야말로 꽃을 피웠다. 중앙선 부근에서 시작된 데얀과 몰리나의 2:1 패스는 울산 수비의 틈을 제대로 휘져었고 데얀의 감각적인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데몰리션의 부활은 서울 특유의 공격이 부활했음을 알리는 골이며, 반대로 상대팀에서는 더 이상 데몰리션의 콤비를 완벽 방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골이었다.

 

이 이면에서 우리는 이 데몰리션이 다시 수면위로 오르기까지 상대를 긴장시켰던 선수를 알아야만 하는데 바로 그가 에스쿠데로다. 최근 몇 경기에서 에스쿠데로는 의외의 골을 기록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응?"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용수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 듯 에스쿠데로 선수는 그다지 골을 많이 기록하는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에스쿠데로 특유의 묵직한 드리블과 침투로서 상대를 위협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데몰리션에 대한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늘도 에스쿠데로의 활약은 알게 모르게 빛이 났다. 그의 플레이는 단순히 "FC서울에서 데몰리션만 잡아라."라는 수비 방법을 격파하는 효과를 낳았고 오늘 몰리나의 1어시스트 1도움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어야만 하는 현상을 낳았다. 이는 왼쪽 측면에서 묵묵히 상대를 뒤흔들었던 에스쿠데로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포지션으로 복귀한 고요한, 오늘 활약은 최고였다.(사진출처=FC서울 두번째 이야기)

 

 

 

고요한, 한 번 더 부활을 꿈꾸다

 

 

고요한은 원래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서 활약했던 선수다. 하지만 최효진 선수의 군입대 관련하여 FC서울의 오른쪽 윙백에 공백이 생기자 갑자기 포지션 변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오른쪽 측면 윙백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그지만 차츰 적응하게 되었고 이제 FC서울 팬들 머리 속에 그는 '오른쪽 측면 윙백'으로 각인이 되고 있던 찰나였다. 포지션 변경 이후 대표팀 차출도 되며 성장하는 듯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윙백으로서 한계점에 부딪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유의 빠른 발이 수비진 쪽에 묶이고 FC서울 중앙 수비수들이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점을 틈타 상대가 뒷공간 역습을 감행하기 시작하자 고요한은 발이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군입대를 마치고 대한민국 대표 윙백 최효진이 돌아오자 그는 다시 미드필더로 복귀하게 되었다.

 

오늘 경기에서 고요한은 수비적인 부담감을 버리고 공격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활발한 오른쪽 측면 돌파를 시도하였다. 그 동안 상대적으로 측면 돌파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롱-볼에 의존한 단순한 공격패턴이 이어졌다면 오늘은 측면에서 에스쿠데로 선수와 함께 고요한 선수가 흔들어 줌으로써 상대적으로 뚫리지 않았던 중앙 미드필더에서의 패스웍이 좀 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고명진과 하대성의 활발한 침투와 슈팅으로 이어졌고 예전의 활발한 상대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패스웍이 되살아 났다. 이는 그 동안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른쪽 측면 돌파에 의한 성과이며 이 중심에는 또 다시 포지션 변경을 감행한 고요한이 있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오늘 실점에 대한 '토닥토닥'

 

오늘 2-0을 기록했을 상황만 하더라도 "오늘 잡는구나."라고 생각했던 팬분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 초반 특유의 상대를 몰아치는 공격패턴과 데몰리션의 부활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다 선수의 중거리 슛이 어이없게 굴절되어 들어가면서 상황적으로 맥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 실점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김치곤 선수의 저돌적인 헤딩에 먹힌 골인데, 수비 상황에서 김치곤을 놓쳤다라고 보기보단 수비수들이 다소 겹쳐지면서 김치곤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생겨난 결과였다. 물론 실수라면 실수고 수비수들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실점 상황만 놓고 본다라면 '수비수들의 집중력 문제'등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보이는 실점 상황들이었다.

 

상대의 역습 흐름도 나름대로 잘 차단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울산의 무서운 신인 박용지의 저돌적인 돌파에 적잖이 당황했던 FC서울이지만 나름 파울로 잘 차단하며 시즌 초반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 상대의 핵심 공격수였던 김신욱을 잘 묶었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최효진의 활약은 본 사람들이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 할 것이다. 실점은 2점으로 적지않은 실점이었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희망을 보여주었기에 이 부분에 있어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측면 인원을 적극 활용하며 중앙을 강화하라

 

 

사실 FC서울의 그 동안 축구를 보면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약 5년간의 FC서울 행보를 보자면 기성용을 앞세운 중앙 미드필더와 이청용과 김치우가 이끌던 측면 미드필더의 활약에 이은 데얀, 정조국 등의 공격수들의 활약으로 FC서울의 강팀의 명성은 이어졌다. 기성용이 떠나고 이청용이 떠난 후에도 제파로프, 하대성, 고명진 등의 수준급 미드필더들의 조율로 중앙은 탄탄해졌고 몰리나, 최태욱, 김태환 등의 측면 미드필더들이 이를 뒷받침 해주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질 것 없는 스쿼드임에도 불구하고 측면 공격, 특히 오른쪽 측면에서 부실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에 따라 상대 수비는 중앙에 밀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함께 묶여버리는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즉, 들어올 곳을 알고 있으니 막아볼 수 있겠다라는 상대편의 진심이 깊게 깔려있는 축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최용수 감독은 찾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오른쪽 측면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인해 상대 수비진의 데몰리션에 대한 수비 집중을 완화하고 이로 인하여 원래 강했던 중앙 미드필더진과 전방 공격진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금 현재 FC서울은 알게 모르게 측면 자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히 오른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에스쿠데로를 비롯한 고요한, 치우천왕 김치우가 있고, 노장 최태욱 그리고 차두리가 합류시 최효진까지 측면 미드필더까지 올릴 수 있어 4-4-2 포메이션 구사에 있어 훨씬 선택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데얀과 몰리나가 조금 더 편안하게 플레이 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앞으로의 전망이 좀 더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쉬운 첫 승은 불발되었지만 그 동안의 경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 FC서울. 조금씩 드러나는 강 팀의 면모를 앞세워 앞으로 있을 경기에서 명승부를 펼치며 상위권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대전폭격기(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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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3.04.06 18:53




 





2013년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답게 많은 기대를 모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인 장수 슌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을땐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모습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포항과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인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선 2-3으로 패했다. 이후 서울은 부리람과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첫 승에 실패했다. 현재 FC서울의 성적은 1무2패. 순위도 11위에 처져있다. 여러모로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2009년에 보여줬던 모습이 좋은 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준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009년 우승후보로 꼽혔다. 2009년에도 올해처럼 선수단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 등을 줄줄이 떠나보냈지만, 서울은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데얀, 아디, 정조국, 김치우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완벽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FC서울은 우승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출발 역시 좋았다. 전남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서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도 4-2로 승리하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서울은 1-2 충격패를 당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해 1.5군을 내세웠지만, 당시 강원은 신생팀이었고, 주전 대부분이 지난 시즌에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의 모습은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한 서울은 이어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1-0으로 잡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고, 이어서 경남, 대구 등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상대와 맞섰지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서울은 FA컵 김해시청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포항, 감바오사카, 대전, 광주상무, 제주를 연파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스리위자야가 산둥 루넝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극적인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서울은 6월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2009년 초반과 지금의 모습인 2013년 초반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은 스쿼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시즌을 시작했다는 점.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위기설이 나왔다는 점 등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FC서울은 지금의 난관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용수(당시 코치), 데얀, 아디, 고명진, 고요한, 김진규, 김치우 등 현재 FC서울 구성원 대부분이 2009년에도 FC서울의 일원이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서울이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금 강력한 축구를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멋진 축구를 보여줄 FC서울을 기대해보자.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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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3.03.24 11:03

2013 .3 . 2. 토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포항 스틸러스
 2 : 2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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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3.03.08 17:07






지난 수원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근황과 FC서울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던 히칼도. 이번엔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FC서울의 우승이 확정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FC서울이 우승해서 행복하다’ 는 글을 남기며 FC서울 우승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 이제부터 히칼도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1. 한달 만에 다시 만나는 군요 히칼도.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하하 그렇군요. 수원전 이후 한달만이네요. 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요. 축구와 FC서울을 사랑하면서요. FC서울이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꼈고요.



2. FC서울에게 우승 축하 메시지 부탁합니다.



 우승을 정말 축하합니다. FC서울은 최고의 팬,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이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한 팀입니다.



3.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최용수는 코치였죠. 그는 지금 FC서울의 감독 자리에 올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최용수 감독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최용수는 코치 시절부터 훌륭한 인물이었어요. 훗날 좋은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에 대해 축하의 말을 전하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제가 직접 최용수 감독에게 더 좋은 말을 전해주고 싶지만, 전 한국어를 못하고 최용수 감독은 포르투갈어를 못하니 좀 아쉽군요.



 









4. 당신과 주전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아디와 정조국은 올해 FC서울의 우승 멤버가 되었습니다. 과거 팀메이트였던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디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죠. 그 친구가 변함없이 FC서울의 선수로 남아있는 게 기쁘군요. 올해엔 FC서울에서 200경기 출장 기록을 넘었다고 하는데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정조국 역시 훌륭한 선수죠. 프랑스 리그에도 진출했다는 사실이 그의 능력을 증명하죠. 프랑스에선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알고 있지만, 그는 최고의 위치에 있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입니다.



5. 당신이 FC서울에 있을 때 당시 고명진과 고요한은 유망주였죠. 하지만 그들은 올해 당당히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FC서울에 있었을 때 두 선수 모두 어린 선수였지만, 전 그들이 잠재력이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FC서울의 주전으로 거듭나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나아가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그들은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많이 그립군요.  



6.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축하메시지 부탁합니다.



 예전부터 늘 말해왔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하고 싶군요. ‘FC서울 팬들은 세계 최고의 팬들입니다’ 최고의 응원을 보내는 여러분들은 FC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저에게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었던 팬들이 많이 그립군요. 팬들에게도 우승을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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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12.06 21:06

2012 . 8 . 4 . 토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강원 FC

3 : 2 서울 승

PHOTO BY FC서울 명예기자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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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08.10 00:57



숫자는 우리 생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7은 행운의 숫자라고 좋아하지만 4는 널리 불길한 숫자라고 여긴다. 서양에서는 13을 꺼림칙해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선호하는 숫자나 꺼려하는 숫자가 있다. 물론, 굳이 애써 해묵은 징크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상대적인 차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축구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각자가 선호하는 등번호, 의도치 않게 그 선수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린 등번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등번호를 달던 개의치 않는 선수도 있다.

지금은 각종 의미가 들어간 등번호는 제쳐두고 단순히 FC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재미삼아 들여다봤다. 다른 세대에 같은 등번호를 달고 뛴 선수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다. SNS를 통해 약 300여명의 축구 팬들의 설문을 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역 선수들의 강세였다.


1번~10번

No.1의 자리는 수문장 대결이다. 대부분 팀의 1번은 골키퍼가 갖는다. FIFA 주관 메이저대회에서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1번은 반드시 골키퍼가 달도록 규정되어 있을 정도다. FC서울에는 수준급 골키퍼들이 다녀갔다. 그래서 후보군 2명을 고르는데도 꽤나 애먹었다. 현역 수문장인 김용대(76.7%)가 김병지(23.3%)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No.2의 후보는 현 국가대표 수비수이자 FC서울의 영광을 함께 했던 곽태휘와 최효진이다. 각각 타 팀 이적과 군입대로 팀을 떠나있지만 아무래도 곧 돌아올 최효진(74.8%)에게 표심이 향했다.

No.3 역시 수비수 대결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FC서울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했던 측면 수비수 안태은과 올 시즌 초 김진규의 짝으로 든든한 중앙수비를 구성했던 김동우의 매치다. 현역 강세의 흐름 속에 현재 등번호 3번인 김동우(85.5%)가 안태은(14.1%)에 비해 많은 지지를 얻었다.

No.4는 부득이하게 후보를 3명을 올렸다. 나름의 원칙상 현역 등번호 소지자는 포함해야 했고 나머지 후보 둘도 어느 하나 빼놓고 논하기 아쉬웠다. 대표팀 출신인 김동진(27.2%)과 지금은 팀을 떠난 전 주장 박용호(26.2%)의 표가 엇갈린 덕(?)에 이번 시즌 팀에 합류한 김주영(46.6%)이 베스트가 되었다. 합류하기 전부터 인기 가도를 달린데다 최근 경기력도 좋아졌기에 수긍할 만한 결과다.

No.5 ‘도쿄대첩’의 이민성 현 용인시청 코치와 FC서울 중원의 핵 최현태가 경합했다. 중앙미드필더부터 여차하면 수비수로 변신까지 가능한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선수다. 그래도 현역인 최현태(66%)가 형님 이민성(34%)보다 끌렸나보다.

No.6도 마찬가지였다. 은퇴 후 지도자 변신을 꾀하다 FC서울의 2군 코치를 맡고 있는 이기형(5.9%)과 현 FC서울 수비의 중심 김진규(94.1%). 등번호 6번은 대를 이어 강력한 캐논슈터들의 번호인가. 팬들은 현역 캐논슈터의 손을 들어줬다.

No.7도 후보가 3명이다. 때문에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던 번호였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싱거웠다. 강원의 코치로 몸담고 있지만 지금도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전 캡틴 이을용(15.4%), 2010 시즌 팀에 우승을 안기고 상무로 입대한 김치우(65.4%), 이번 시즌 포지션 이동 후 K리그 가장 핫한 오른쪽 풀백으로 떠오른 고요한(19.2%). 팬들이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 달콤한 우승의 기억이다.

No.8은 다른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비교대상이 없었다. 범접할 수 없는 8번의 존재, 아디다.



No.9는 보통 팀의 최전방 공격수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지금 FC서울의 9번은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이적했던 선수가 베스트에 선정된 몇 안 되는 등번호다. FC서울에서 선발 출장할 때나 서브로 출전할 때도 적재적소에서 시원한 골을 터뜨려 주던 정조국(92.1%)이 프랑스로 떠난 후 그 자리는 강정훈(7.9%)이 물려받았다. 선배의 아성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였다. 헌데 그 시간은 더 미뤄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정조국이 FC서울로 복귀했다. 본인의 등번호였던 9번도 다시 정조국에게 돌아갔다. 등번호에 대한 정조국의 애착이 묻어난다. 시즌 중 등번호 이동이 있는 흔치 않은 경우가 됐다. 이에 따라 강정훈은 공번이었던 15번을 받았다.

No.10은 이번 Part.1 뿐만 아니라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흥미 있는 매치업이다. 다소 안타까운 등번호 9번을 달고 아스날 시절을 보내기 전, FC서울과 대표팀, 프랑스로 이적해 모나코에서 까지 10번은 박주영의 고정 등번호였다. 처음 FC서울에 들어왔을 때 11번을 받았던 데얀은 박주영이 모나코로 이적한 뒤 10번으로 옮겼다. 그리고 K리그 최단경기 100호 골을 달성했다. 최근의 여론 탓인지, 데얀이 너무 잘해준 탓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데얀(66.3%)이 박주영(33.7%)에 생각보다 큰 표차이로 베스트 No.10으로 뽑혔다.




Part.2에서 계속.




/ 글 = FC서울 명예기자 유승민 (paul-fever@hanmail.net)
/ 사진 = FC서울 픽스닷컴 (http://www.fcseoul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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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명예기자★ 2012.07.07 16:11

2012.6.14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성남 일화

1:0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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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pid 2012.06.20 01:15

 

 

 

 

 

 

며칠 후면 어린이들의 축제인 어린이날이다.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지정된 이날은 어린이들이 따뜻한 사랑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며, 어린이들을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그 동안 일에 치이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 아버지들도 이 날 만큼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어린이날에 마련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나들이를 나가는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스포츠가 열리는 경기장 역시 어린이날에 가족들이 많이 찾는 장소중 하나다. K리그도 어린이날은 특별한 날로 지정하며 어린이날에 항상 경기를 배정하고, 어린이날에 홈경기를 갖는 팀은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를 준비하여, 경기장을 찾는 가족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특히 올해 어린이날은 토요일이어서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어린이날 다른 가족들의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이 그들이다. FC서울 선수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어린이날엔 포항과 홈경기를 가지기 때문에, 올해도 이들이 어린이날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건 꿈같은 일이다. 스쿼드 대부분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아직 미혼인 선수들이 많지만, 용병 3인방인 데얀, 아디, 몰리나. 그리고 현영민, 최태욱은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어엿한 가장이다.

 

 

어린이날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선수’들의 자녀들은 섭섭함을 느끼겠지만, ‘아빠 선수’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의 섭섭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길은 결국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빠 선수’ 들이 어린이날 경기때 어떤 좋은 모습을 보였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빠 선수’ 들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선수는 단연 데얀이다. 2007년 인천 소속으로 K리그에 데뷔한 데얀은 그해 부산을 상대로 한 어린이날 경기에서 전반엔 방승환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터트렸고 후반엔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는 활약으로 팀의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서울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어린이날에서 데얀의 활약은 이어졌다. 스리위자야와의 AFC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던 2009년 어린이날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 데얀은 전반 16분에 드리블 돌파 후 왼발 슛으로 선제골, 후반 27분엔 김승용의 패스를 받아 두 번째골, 후반 추가 시간엔 세 번째골까지 성공시키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데얀의 활약에 힘입어 서울은 5-1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해가 바뀐 2010년 어린이날에도 데얀은 또 한번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했다. 60747명이라는 대관중이 입장하며 K리그 신기록을 작성한 성남과의 경기에서 데얀은 전반 20분 방승환의 헤딩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했고, 후반 24분엔 역습상황에서 박용호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두 번째 골, 후반 31분엔 김태환의 크로스를 멋진 발리 슈팅으로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어린이날에 2년 연속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데얀은 후반 추가 시간엔 이승렬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 2011년엔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 탓에 어린이날 하루전인 5월4일에 경기를 가졌지만 데얀은 이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했고, 팀의 3-0 승리를 이끌며, 어린이날 경기의 강자로 등극했다.

 

 

 

 

 

21살인 1997년에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아디는 2006년 FC서울 입단 이후 모든 어린이날 경기에 뛴 기록을 갖고 있다. 2006년 어린이날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하며 팀의 5-2 승리를 이끈 아디는 이듬해인 2007년 어린이날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도 수비수로 풀타임 출전하며 팀이 무실점을 기록하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2009년 어린이날에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수비수로 풀타임 출전한 아디는 2010년 성남과의 경기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날도 풀타임 출전을 기록한 아디는 중원을 장악하며 후반 24분엔 역습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공격을 전개하며 기회를 만들었고, 이것이 데얀의 두 번째 골로 연결되며, 공격에서도 보이지 않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몰리나는 어린이날 경기에서 그리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진 못하다. 2009년 7월 성남에 입단하며 K리그에 발을 들여놓은 몰리나는 2010년에 성남소속으로 첫 어린이날 경기를 치렀지만, 현재 소속되어 있는 서울에게 0-4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듬해인 2011년. 어린이날 하루전에 열린 알아인과의 경기에선 풀타임 출전했지만 아쉽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엔 쾌조의 컨디션을 달리고 있는 몰리나이기에 이번 어린이날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 예상된다.

 

 

 

 

 

 

 

2006년 12월 결혼해 슬하에 딸 1명과 5월에 출산 예정인 아이가 있는 현영민은 울산소속이던 2004년 어린이날부터 지금까지 어린이날 경기에 모두 출전하고 있다. 현영민 역시 수비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지금처럼 성실한 플레이로 제몫을 다했고, 지난 2010년.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이 모인 성남과의 어린이날 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올해엔 레프트백으로 복귀한 아디와 포지션 경쟁 탓에 그의 출전 여부는 다소 불투명하지만, 출전 기회가 온다면 변함없이 성실한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2003년 12월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최태욱 역시 어린이날 경기에서는 아직 공격 포인트가 없다. 2004년 어린이날. 인천 소속으로 어린이날 첫 경기를 치른 최태욱은 이후 포항과, 전북을 거치며 총 3번의 어린이날 경기를 치렀지만, 인상깊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 FC서울의 특급 조연 역할을 수행중인 최태욱은 후반 팀에 활력이 필요할 때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날 경기는 항상 화려한 볼거리와 멋진 승부로 채워진다. 올해 포항과 맞붙는 어린이날 경기 역시 경기장을 찾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비록 자녀가 있는 선수들은 올해도 자신의 자녀와 어린이날을 함께 보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떤 어린이 에겐 어린이날 잊지 못할 추억이 될지도 모를 이 날 경기를 위해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과연 올해 어린이날 경기에는 어떤 멋진 모습들이 어린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되며, 많은 어린이들이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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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5.04 00:14

 

 

 

 

이지스(aegis), 아디神 등으로 불린 아디가 드디어 강원과의 원정경기를 통해 200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역대 FC서울을 거쳐간 용병중엔 최초의 기록이고, 아디를 제외하고 20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는 윤상철(300경기), 이영진(220경기), 정조국(209경기), 김성재(203경기) 뿐이다.

 

 

지난 2006년 FC서울 입단 이후, 매 시즌 30경기 안팎의 출전 수를 기록한 아디는 올해도 변함없이,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7번째 시즌만에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1976년생으로 선수단 내 최고령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아디는 이제 한경기 한경기 출전자체가 역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아디의 200경기 출전을 기념해서 아디가 FC서울에서 치른 경기 중 베스트3 경기를 꼽아봤다.

 

 

1. 2008년 11월30일 vs울산 (K리그 플레이오프)

 

 

 

 

 

아디의 2008년은 눈부셨다. 기복없는 플레이로 시즌 내내 귀네슈 감독의 총애를 받았고, 부지런한 오버래핑과, 빼어난 1대1 대인방어 능력을 앞세워 팀 내 선수들 중 최다인 34경기에 출전하며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디의 성실한 플레이는 팀이 2위를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울산. 당시 울산은 염기훈, 루이지뉴, 박동혁등을 앞세운 만만치 않은 팀이었지만, 전반 26분 정조국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아디 역시 왼쪽에서 활발한 플레이로 서울에 힘을 보탰다. 후반 34분 염기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연장으로 넘어간 경기. 귀네슈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을 것을 주문했고, 아디 역시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울산을 괴롭혔다.

 

 

 결국 연장 전반 7분 데얀의 골이 터졌고, 연장 후반 4분엔 아디가 직접 날카로운 크로스로 김은중의 헤딩골을 도우며, 폭풍같은 서울 공격에 일조했다. 김승용의 골까지 보탠 서울은 결국 울산을 4-2로 누르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레프트백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아디는 경기 내내 측면을 지배하며 부지런한 플레이를 펼쳤고, 1도움을 올리는 등 공격포인트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차전에서 헤딩 선제골을 터트리기도 했던 아디는 시즌 후엔 K리그 베스트11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 2010년 7월14일 vs대구 (컵대회 8강전)

 

 

 

 

2010년. 현영민, 최효진등 우수한 수비자원들의 영입으로 아디는 레프트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2006년부터 무려 4년간 한 포지션에서 뛰다가 갑자기 포지션을 변경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디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무난히 적응하며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뽐냈다.

 

 

그해 7월 14일 대구와의 컵대회 8강전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한 아디는 전반 22분 이승렬의 패스를 받아 날카로운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서울이 기선을 제압하는데 일조했다. 전반 28분 하대성의 추가골까지 터지며 전반을 2-0으로 마친 서울은 후반엔 김한윤을 투입하며 아디에게 중앙수비수 역할을 부여했다. 중앙수비수 위치에서도 적극적인 수비로, 견고한 수비벽을 쌓아올리는데 일조한 아디는 중앙수비수에서도 제몫을 해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덕에 서울은 대구와 2-2로 비겼지만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했고 아디는 이날 경기에서 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었다. 이후 박용호의 부상으로 중앙수비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서울은 그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아디를 선택했고, 아디는 부응이라도 하듯 안정적인 수비로 수비라인에 커다란 힘을 보탰다.

 

 

 

3. 2010년 12월4일 vs제주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2010년.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한 서울은 지난 10년의 한을 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아디는 10월에 열린 경남과의 리그 경기에서 광대뼈 함몰이라는 중상을 당했다. 시즌 내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아디는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챔피언결정전 출전을 강력하게 희망했고, 결국 보호 마스크를 착용한 채 제주와의 챔피언결정전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오랫동안 경기를 치르지 않아 실전감각이 떨어진 아디는 1차전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설상가상 근육경련까지 일으키며 후반 26분에 박용호와 교체되었다.

 

 

그래서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아디의 출전 여부를 장담하긴 어려웠지만, 빙가다 감독은 아디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며,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장 시켰다. 보호 마스크까지 벗어던지며 투혼을 불태운 아디는 견고한 수비로 제주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고, 후반엔 직접 공격에 가담하여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다. 1-1로 맞선 후반 27분. 김호준의 미스로 코너킥을 얻은 서울은 키커로 나선 제파로프가 문전으로 길게 올려주자 아디가 돌고래처럼 솟아올라 헤딩슈팅을 성공시키며 결승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제주를 2-1로 물리친 서울은 통산 4번째 우승에 성공했고, 아디는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2010 시즌 레프트백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등을 오가며 수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아디는 공격에서도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팀 역시 그의 공헌도를 감안. 시즌 후 MVP 후보로 아디를 추천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BONUS. 2010년 10월 31일 (vs부산)

 

 

 

 

 

이 날 경기에 아디는 출전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출전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디는 10월초 광대뼈 함몰이라는 중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그간 성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디를 위해 서울에선 작은 행사를 마련했다. 10월 31일 부산전을 앞두고 아디 쾌유 기원 퍼포먼스를 시행한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선 아디를 위한 특별응원도구와 마스크가 제작되어, 관중들에게 나뉘어졌고, 경기 전 전광판을 통해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는 팬들의 염원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는 등 아디를 향한 서울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부산전 당시 응원도구로 나눠줬던 클래퍼,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아디를 위하는 마음은 구단과 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 역시 아디의 쾌유를 기원하며 자신들의 등번호 밑에 아디의 등번호인 8번을 써넣는 등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 줬다.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롯데의 4번타자 김용철은 주인공 최동원과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어깨통증을 참고 경기에 나서는 최동원을 보고 동료들을 향해 “나는 오늘 롯데의 4번타자가 아닌 최동원의 1루수로 뛰겠다.”고 얘기했다. FC서울 선수들 역시 적어도 이 날 경기에서 만큼은 ‘FC서울의 선수’가 아닌 ‘아디를 위한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날 경기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동료애와, 구단과 팬들의 아디를 향한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서울은 부산을 3-1로 완파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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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4.29 17:54

 

 

 

 

과거 등번호는 선수들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이는 축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등번호는 그저 선수들의 포지션을 구분하기 위해 존재했고, 1958년 브라질 대표팀은 단순히 알파벳 순으로 선수들에게 등번호를 지급하는등, 등번호는 단순히 등 뒤에 달고 있는 번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등번호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등번호는 그 선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등번호를 얻기 위해 다른 선수와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벌어진다. FC서울 선수들 역시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뛴다. 몇몇 선수들은 별 의미없이 번호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등번호를 동기 부여 삼아,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볼 수 있다. 작년 필자는 박용호, 최태욱, 문기한, 김동진의 등번호에 담긴 의미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엔 이들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등번호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등번호를 선택한 고명진의 22번

 

 

 

 

2009년까지 16번을 달고 뛰었던 고명진은 2010년을 앞두고 등번호를 22번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고명진이 좋아하는 선수가 카카인데 카카가 AC밀란 시절 달았던 등번호가 22번이라 자신도 22번을 선택한 것이다. 카카의 그라운드 안팎의 모습이 모두 완벽해 자신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고 밝힌 적 있는 고명진은, 이제 FC서울의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으며 서서히 카카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고명진이 22번을 다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선배이자 팀의 주장이었던 김치곤이 22번의 주인이어서 쉽게 22번을 희망하지 못했던 고명진은, 김치곤이 울산으로 떠나자 22번을 달 기회가 생겼지만, 2010년 팀에 입성한 하대성이 먼저 22번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하대성이 22번을 양보해서 고명진이 22번을 다는데 성공했다. AC밀란을 떠나 현재 레알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카카는 22번 대신 8번을 달고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고명진도 8번으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 FC서울 8번의 주인인 아디 역시 등번호에 사연이 있다.

 

 

 

2. 동료의 추천으로 달게 된 아디의 8번

 

 

 

 

 

2006년 FC서울에 입단한 아디는 30번을 배정받았다. 당시 8번은 백지훈(現상주)이 달았고, 백지훈이 시즌 중반 팀을 떠나자, 8번은 성남에서 이적해온 용병 공격수 두두의 차지가 되었다. 해가 바뀐 2007년. 두두는 최용수의 은퇴로 공번이 된 11번을 선택했고, 자신이 달았던 등번호 8번을 아디에게 추천했다.

 

 

등번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아디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아디는 많은 사람들이 잘알다시피 8번을 달고 펄펄 날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아디는 8번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지금까지 유지한다고 밝혔다.(이쯤 되면 고명진이 8번을 달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반면 아디에게 행운을 내준(?) 두두는 이와는 다른행보를 보인다. 2007년 평범한 모습을 보인 두두는 결국 2008년 성남으로 돌아갔고, 그해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리빌딩을 원한 신태용 감독에 의해 방출당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된다. 이후 일본 오미야 아르디쟈에 입단한 두두는 18경기 1골이라는 부진에 시달렸고, 설상가상 무면허 음주사고까지 저지르며 퇴출되기에 이른다. 현재 그는 브라질 2부리그 두케 드 카샤스라는 조그마한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3. 프로에 들어와서 계속 달았고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선택한 현영민의 13번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현영민은, 2004년 프로 데뷔 후 줄곧 달았던 13번을 FC서울에서도 계속 달고 뛰고 있다. 현영민은 13번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프로 입단 후 13번을 달고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13번을 유지한다고 밝혔고, 러시아 제니트에 진출했을 때도 그는 13번을 달고 뛰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유지만, 현영민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이 활약하던 시기에 달았던 등번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호를 계속 유지하면 팬들에게 쉽게 기억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청용 역시 27번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FC서울에서 27번을 달고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볼튼에서도 27번을 유지하고 있고, 최효진도 프로 데뷔 후 2번을 달고 좋은 모습을 보여서, 지금도 2번을 유지하고 있다.

 

 

 

4. 팀이 1등을 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각오가 담긴 김용대의 1번

 

 

 

골키퍼가 1번을 선택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FC서울의 수문장 김용대의 1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성남을 떠나 2010년 FC서울에 입단한 김용대는 1번을 선택하면서, “K리그 최고의 팀에서 1번이라는 상징적인 번호를 달게 된 만큼 올해는 팀이 1등을 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용대의 이러한 각오는 2010년 0점대 방어율(0.94)을 기록하며 K리그 베스트일레븐 골키퍼 부문에서 수상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며, 팀 역시 그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와 컵대회를 동시에 들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K리그 대회 요강에 따르면 ‘골키퍼는 반드시 1번을 달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필드플레이어가 1번을 다는 것도 가능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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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4.03 23:56

 

 

2012.4.1 만우절

안타깝고 기억 하기 싫은 경기 이지만 이 또한 FC서울의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기록으로 남겨 둡니다.

아직도 모든게 만우절 행사 였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날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사진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FC서울명예기자 이대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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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폭격기 2012.04.03 00:22

 

 

 

 

 

언제나 그래왔듯이 FC서울수원의 경기는 K리그 최대 화제다. '슈퍼매치' '지지대 더비' '수도권 더비' 등의 무수한 더비 이름이 쏟아져 나오고 축구 기사란은 그들의 더비 역사와 스토리가 가득 찬다.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주목하는 더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할만큼, 서울-수원 더비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지켜보는 경기다. 심지어 K리그나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경기를 챙겨보니 말이다. 어림잡아도 최소 4만관중이 들어차는 이 경기. (그 날 출근해야 하는 나는 정말 너무 속이 상하고 짜증나고 미칠 지경이다.)

 

그 동안 쏟아졌던, 그리고 앞으로 쏟아질 기사에 비해 나는 다소 담백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그 동안 있었던 스토리를 늘어놓기엔 이 칸이 부족할지 모른다. 난 오늘 FC서울의 시즌 초반 '스쿼드 다지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FC서울의 전력은 작년 황보관 감독 해임 이후 꾸준하게 성장을 했지만 사실 작년의 전술은 어거지로 이긴 듯한, 더 냉철하게 이야기 하면 전술이 없는 듯한 경기가 펼쳐졌다. 이겨도 이긴 경기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플레이 오프에서 울산의 철퇴축구에 말 그대로 꽂혀 즉사했다.(흙흙) 물론 시즌 중간에 감독이 교체되었고 팀 분위기 자체가 어수선했던 만큼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경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시작한 이번 시즌. FC서울은 마치 'Return Gunes'를 외치 듯 빠른 패스 축구젊은 축구로 화끈하게 돌아왔다. 3승 1무로 시즌 초반 선두도 거머쥐었다. 요 근래 시즌 초반에 리그 선두를 거머쥔 것은 오랜만이 아닌가 싶다. 최용수 감독 또한 확실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대구전 '데얀 태업 논란'을 통해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논란을 낳았지만 결국 달라진 경기력으로 "Wow ! Fantastic Baby !" 라는 빅뱅의 가사를 떠올리리게 하였다.

 

자, 일단 두 팀의 전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자.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http://ilovefcseoul.tistory.com)

 

 

현재 FC서울스쿼드 이야기

 

 

공격

 

본격적으로 FC서울의 스쿼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FC서울의 스쿼드는 늘 고수해오던 4-4-2 포메이션을 벗어나 데얀을 원톱으로 기용하고 중앙 미드필더를 강화하는 4-3-3 포메이션을 구사하고 있다. 늘 몰리나의 윙 활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드디어 몰리나를 윙 포워드로 배치를 하더니 몰리나가 터졌다. 현재 4경기 연속 골을 기록 중이며 총 5골로 득점 선두다. 상대적으로 데얀이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나 데얀은 원래 슬로우 스타터니 그냥 내비두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튼튼한 왼쪽 윙 포워드와 스트라이커를 둔 반면에 오른쪽 윙 포워드는 조금 빈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최태욱은 원래 기량이 좋지만 체력에 있어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고, 김태환은 센터링에 있어서 부정확하거나 타이밍이 늦어 자주 공격의 흐름을 끊고 있다. 하지만 둘 모두 스피드가 좋은 선수이기에 파괴력이 있어 상대 입장에선 쉬운 상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현성의 높이 또한 주목해봐야 할 점일 것이다.

 

 

미드필더

 

미드필더에서만 보자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드러난다. 한 때 기성용 이적 이후 중앙 미드필더의 부재에 대한 고뇌(?)가 심했던 FC서울. 지금은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충분하여 4-3-3 포메이션을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고명진하대성을 붙박이 미드필더 진으로 두고 한태유, 최현태 등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면서 한 층 두터움을 더했다. 한태유는 아직 제 기량을 내고 있진 못해 보이고 있지만, 최현태의 경우 'FC서울의 박지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며 우리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는 평가다.

 

중앙 미드필더에서 키 플레이어라면 역시 고명진과 하대성인데, 이 둘의 패스웍이 점차 발전해가고 있다는 것이 지켜봐야 할 주안점이다. 고명진의 경우 빠른 스피드를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측면 돌파를 하는 능력이 있는가 하면, 하대성은 순간적인 공격 가담이 상대에게 '필살기'가 되어 꽂히고 있다. 둘 다 패싱 능력이 좋아 4-3-3 포메이션을 소화하기에 적격이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http://ilovefcseoul.tistory.com)

 

수비

 

공격과 미드필더 지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현재 FC서울 수비진에게 큰 점수를 부여하고 싶다. 아디(현영민)-김진규-김동우-고요한 으로 이어지는 수비 틀은 날이 가면 갈수록 단단해진다. 아디는 사실 나이가 어느덧 37살이다. 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지만 아직 기량은 여전하다. 물론 전성기 때 비하여 폼이 많이 떨어지고 스피드가 많이 죽어보이지만, 그래도 아디는 아디다. 그가 있으면 왼쪽 측면은 든든하다. 예전보다 오버래핑이 위력이 살짝 떨어진 건 우리 모두 이해해보자. 37살이니 말이다.

 

수비에서 가장 핵심으로 봐야할 것은 김진규-김동우 라인이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김동우가 처음 프로에 데뷔했을 당시 김동우의 어설픔과 긴장감은 모든 팬들의 괄약근에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김진규를 무너뜨렸다. 함께 수비를 하는 김진규를 불안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진규가 중국에 여행을 다녀온 사이 김동우는 말도 못하게 성장했다. 이제 김진규와 수비력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김진규는 또 발전했다. 중앙 수비수의 '공격가담'이 바로 그것이다. 김동우도 이를 차근차근 배우는 것처럼 보이는데(김동우가 오버래핑 이후 슈팅을 때려봤으니 말이다), 김진규가 순간적으로 공격 가담이 되면 상대 미드필더 지형에서 우왕자왕하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비수가 미드필더까지 끌고 나와서 공격을 전개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김진규의 이러한 한 방은 상대 진영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다른 수비수들에 비해 볼 키핑이 뛰어난 김진규는 다시금 FC서울의 수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직 실점 상황으로 구단별 수비력을 가늠할 순 없지만 현재 삼성과 울산과 함께 2실점으로 방어력이 가장 뛰어난 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중심에는 김진규-김동우가 있다.

 

간과하고 지나가면 안되는 선수가 또 있다. 바로 오른쪽 측면 수비인 고요한이다. 원래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였던 그는 잦은 패스미스와 부정확한 크로스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과감히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전환 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상대의 패스를 미리 끊어먹는 플레이가 아주 돋보이고 있으며, 오버래핑 시 다른 윙백 선수들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특히 지난 전남전에서 그는 절정의 오른쪽 윙백 자리를 소화해냈다.

 

 

 

(사진 출처 : 수원 삼성 홈페이지)

 

 

현재 수원의 이야기

 

수원도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전에서 석패를 당해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레알 수원'이라고 불릴만큼 강력한 스쿼드를 자랑한다. 이름에 걸맞게 올 시즌 거물급 선수를 대거 영입했다. 라돈치치, 조동건, 서정진, 에벨턴 등 스쿼드의 절반을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입이다. 성남의 에이스 두 명을 데려왔고, 전북의 떠오르는 스타, 서정진을 데려왔다. 이 정도면 공격진은 K리그 올스타 급이다. 새로 영입한 브라질 선수 에벨턴도 심상치 않다. 윤성효 감독이 치켜 세우는 에벨턴은 개막전에서부터 결승골로 수원의 승리를 이끌며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 시켰다. 저돌적이고 빠른 발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직 조직력에 있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영입이 많았기 때문에 선수들간의 호흡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패스축구를 지향할 것'이라고 외쳤던 윤성효 감독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라돈치치의 머리를 노리는 플레이가 계속되는 듯한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사실 작년에도 윤성효 감독은 그다지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한 사람은 아니었다. 올 시즌 초특급 영입들을 보며 새로운 수원의 경기를 기대했지만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이러한 단조로움과 더불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수원의 수비진도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K리그 우승 후보로 거론될 팀은 분명한 듯 하다. 스쿼드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아무리 조직력이 좋지 않더라도 개인 기량으로 버틸 수 있는 팀이다. 또 지금 가지고 있는 풍부한 공격 자원(스테보, 라돈치치, 조동건, 하태균, 에벨턴, 서정진 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공격 파괴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에 무서운 팀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http://ilovefcseoul.tistory.com)

 

 

FC서울, 가장 어려운 중간고사 문제를 풀어내라

 

올 시즌 리그 우승만을 바라보는 두 팀이기에 이번 경기는 자존심 대결을 넘어서 초 시즌 초반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전북과 수원 중 일단 전북은 넘었다. 상위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승점 3점이 필요한 경기다. 스플릿 시스템은 이미 안중에 없다. 오로지 1위만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전북과 수원 중 일단 전북은 넘었다. 수비력이 다소 불안했던 전북이었기에 시험을 봤다고 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다. 수원은 다르다. 곽광선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전력의 누수는 없어보인다. 통곡의 벽 마토 대신 새로 영입한 보스나가 있고 측면에는 오범석과 양상민이 기다리고 있다. 시험 대상으로는 최적의 상태일지 모른다.

 

이번에 FC서울이 경기를 하면서 점검을 해봐야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수비진의 점검이다. 전북전을 통해 어느 정도 점검을 했던 FC서울로선 수원보다는 수비력에 있어서 안정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절대적인 스쿼드 차이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경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수비진에 점수를 더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 수원전에서 일어난 김동우의 살인적인 백패스 등의 요소들은 충분히 조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문전 앞에서의 패스웍이다. 전북전에서 보여준 그 화려한 패스웍이 지속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사실 전북은 수비진이 주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패스가 "이야 봤지? 통하지?" 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있다. 수원전이 바로 그 패스웍의 진정한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만약 수원전에서도 그러한 패스 플레이가 이어진다면 올 시즌 우승은 FC서울이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다시 한 번 전력을 재검토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장 주안점은 바로 FC서울의 패스 플레이가 수원전에서도 나오느냐이다. 이 점검은 수원전을 넘어 수비력이 높다는 울산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FC서울과 수원의 매치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빅 매치도 좋은 경기가 펼쳐져서 K리그가 한 층 발전된 모습을 전세계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성숙한 응원 문화도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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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2.03.31 20:00

오늘은 이 잘생긴 수비수에 대해서 조명해볼까 한다. 김동우. 내 후배도 이름이 김동우인데 그 놈도 잘생겼다.-_- (사진 : 임초롱 명예기자)




공격축구
팀에서 피어난 수비 유망주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팀에서 중앙 수비수는 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있기 마련이다. 화려한 공격수들에 비해 조명 받을 일이 적을 뿐더러 실수만이 집중 조명되는 탓에 칭찬보다는 욕을 더 먹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들 덕분에 중앙 수비수로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진짜 실력파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실수 한 번이면 그 동안 쌓았던 명성을 잃게 되는 아주 위험한(?) 포지션이기도 하다. 특히 나이가 어린 선수라면 그런 질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더 악재를 말해보자면, 중앙 수비수는 본래 '유망주'를 키워내기 힘든 자리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바탕이 되어야만 성장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경험이 누적이 되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 수비수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다. 주전 자리를 꿰차려면 그 정도의 경험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그런 선수들이 팀 내에 존재하고 있다면 어린 선수들은 더더욱 기회를 잡기 어려워지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성장 속도가 느린 건 당연하다. 실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포지션인데 어릴 때부터 쉽게 경험을 할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참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포지션이란 소린데, FC서울에선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실력이 팍팍 늘고있는 그런 유망주가 등장 했다. 88년생 김동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진 : 임초롱 명예기자)


김동우의 데뷔...

김동우는 88년생으로 중앙 수비수로선 어린 편에 속한다.(청용이는 그 나이에 볼턴에서 짱이니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그의 첫 데뷔는 2010년 23라운드 전남과의 대결에서였다. 당시 넬로 빙가다 감독은 "FC서울은 노장과 신예의 구분이 없다. 준비된 자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지고 김동우는 충분히 준비 하였다."라고 말하며 김동우의 가능성을 높게 산 바 있다. 하지만 빙가다 감독의 칭찬처럼 김동우는 잘 해주지 못했다. 난 개인적으로 당시 김동우의 수비력에 불만이 많았다. 당시 상황이 박용호의 부진, 김진규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그의 능력은 FC서울의 수비를 감당하기엔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신인이어서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실수도 잦아 중앙 수비수로서 자질이 의심스럽기도 했다. 체격이 좋은 반면에 몸싸움도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곱상하게 잘생겨서 더 싫었다. 그는 2010년 리그컵 경기를 포함하여 총 10경기를 뛰며 '프로 데뷔전'을 마쳤다. 여자 팬들이야 많이 늘었겠지만 나같은 남자 팬들에게는 엄청난 욕을 먹었던 한 해였다.(키도 크고 잘 생겨서)



잘 생긴 사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런 사진을 골라보았다...그래도 왜 좀 멋있어 보이는건지...짜증난다. (사진 : 명예기자)


김동우가 성장했던 2011년

2011년 시즌은 FC서울에게 참 다사다난한 해였지만 특히 김동우에게는 더 다사다난한 해였을 듯 하다. 최용수 감독대행 체제 하에 김동우는 간간히 기회를 잡았다. 총 16경기 출전. 불안한 수비력에 잘생기기까지한 김동우가 싫어 더욱 더 도끼눈을 뜨고 김동우를 지켜본 아련한 기억이 난다. 실수 하나만 하더라도 주변 명예기자들에게 "저거 봐 ! 저래선 안되는거라고 ! "라고 소리쳤다. 수많은 여성 명예기자분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가면서도 감행했던 발언이었다.



수원전 당시 김동우는 한껏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 : 명예기자)


그런 한 해를 다 보낼 때쯤 FC서울은 수원과의 더비를 맞이하였다. 당시 0-1 로 석패를 당하고 김동우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당시 수원 경기장을 방문하지 못하고 집에서 TV로 시청했는데, 경기에 진 건 아쉬웠지만 김동우의 성장한 모습이 더욱 더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김동우의 '어이없는 백패스'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내게 중요한 건 그 실수가 아니었다. 스테보의 큰 키를 이용한 수원의 공중볼 패스가 이어질 때 스테보 뒤에 자석처럼 붙어 뛰어난 수비를 하는 모습이 2010년의 김동우가 아니었다. 만약 그 '어이없는 백패스'가 없었더라면 김동우는 이 날 많은 팬들에게 확실하게 '기대감'을 심어주었을지 모른다. 그 때부터 김동우에 대한 시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성장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사진이 참 오묘하지 않은가? 데몰리션 뒤에 김동우의 모습이 아련한 것이 이젠 믿음직 스럽다. (사진 : 임초롱 명예기자)


성장이 눈에 보이는 몇 안되는 선수

올 시즌 벌써 두 경기를 치렀다. 대구와의 아쉬운 무승부 뒤에 전남에게 통쾌한 2 : 0 승리를 거두었다. 그 가운데 김동우는 묵묵히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다. 올 시즌이 시작하기 전 난 올 시즌 새로 영입한 김주영과 김동우를 곧잘 비교하곤 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김동우보단 김주영이 주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보기좋게 예상은 빗나갔고 김동우에 대한 내 예상도 빗나갔다.

일단 공중볼 경합에 있어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상대가 함부로 헤딩을 시도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차단한다. 김진규의 부담을 확실하게 덜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가능성을 보여준 공중볼 다툼에 있어서 올 해 더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힘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붙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몸싸움을 주저하거나 너무 힘을 주며 어이없는 파울을 저질렀던 것에 비해 올 해는 안정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긴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다소 긴장한 듯한 (그 모습에 귀엽다던 여자 팬들 덕분에 더 싫어했던) 표정이었는데 올 해는 긴장한 기색이 사라졌다. 오히려 더 침착해진 표정으로 경기에 임한다. 그 나이에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한껏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일련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하는 선수는 드물다. 제작년에 비해 성장한 작년, 작년에 비해 훌쩍 성장한 김동우. 그를 그 동안 지켜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처음엔 키크고 잘생겨서 싫었지만)


한국의 피케가 되어라

그 동안 한국에는 키가 크고 수비력이 좋은 수비수가 드물었다. 현재 능력있는 수비수로 분류되는 곽태휘, 이정수, 홍정호, 강민수 등의 선수들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장신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아주 조금) 모자라다. 김동우는 일단 그들보다 키가 크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189cm의 키는 앞으로 김동우가 성장을 함에 있어서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 물론 헤딩 능력이 좋은 선수들은 많지만 기본적인 피지컬이 좋은 선수가 헤딩 능력까지 지니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피케보다는 키가 작지만 피케처럼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앞으로 계속 FC서울에서 경험을 쌓아 노련미까지 어린 나이에 갖추게 된다면 내년 시즌, 김동우는 모든 K리그 공격수들이 무서워하는 수비수로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 지켜보자. 그가 폭풍성장하는 모습을.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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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2.03.14 21:36

 




 2012년 임진년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만에 찾아 온 흑룡의 해로, 용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신적인 상상속의 동물로 상위층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띠해. 보통 자신의 띠해는 반갑기 마련인데 이는 용띠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용의 해를 맞이하여 활약이 기대되는 FC서울의 용띠 선수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아디




생년월일 : 1976년 5월 12일

신체조건 : 183cm, 81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다렌스더(중국)

입단년도 : 2006

FC서울 통산 기록 : 193경기 14골 7도움



1976년생인 아디는 선수단 내 최고령 선수다. 최용수 감독과도 3살밖에 차이가 안 나고 김성재 코치와는 동갑이다.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나이지만 아디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2011 시즌 30경기를 소화하며 데얀과 함께 팀 내 최다 출장을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06년 FC서울에 입성한 아디는 입단 초 부진한 모습과, 패배의 빌미가 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하며 미운오리로 보이기도 했지만, 미운오리가 백조임을 알아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매 시즌 30경기 안팎의 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자리잡았고, 통산 14골을 기록하며 득점력까지 갖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2010 시즌엔 원래 포지션인 레프트백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까지 소화하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러한 헌신에 팀은 시즌 종료후 아디를 MVP 후보에 올리기도 했다. 올해 36세가 되는 아디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것이다. 1년 재계약으로 2012 시즌에도 FC서울과 함께 하게 된 아디는 여전히 수비진의 중심축으로 활약할 것이 확실하다.



2. 고명진





생년월일 : 1988년 1월 9일

신체조건 : 185cm, 77kg

포지션 : MF

전소속팀 : 석관중

입단년도 : 2003

FC서울 통산 기록 : 107경기 7골 9도움



요한 볼프강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 에는 ‘젊은이라도 신임을 얻게 되면, 아무도 모르는 새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올해 최용수 감독의 신임을 얻은 고명진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당당히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2003년 석관중을 중퇴하고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한 고명진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대형 유망주로 손꼽혔다. 귀네슈 감독도 그의 잠재력에 주목해 조금씩 출장 기회를 부여했고, 서서히 프로에 적응해나가나 싶었지만 2010년 빙가다 감독 부임 이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베테랑을 중시했던 빙가다 감독은 고명진을 외면했고, 결국 그는 데뷔 후 최저인 9경기 출전에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다.


2011 시즌 초에도 무릎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시련이 길어지는가 했지만 최용수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8년동안 ‘선수-코치-감독’ 으로 함께한 최용수는 자신의 데뷔전인 제주전에서 과감히 선발 출전시키며 신뢰를 보였고, 고명진 역시 그 신뢰에 보답이라도 하듯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 고명진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한 패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FC서울의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도약한 고명진은 24경기 출전에 2골 7도움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데뷔 후 최다 출장 및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남기며 서울의 후반기 대반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FC서울이 7연승을 달렸던 지난 여름. 고명진은 이 기간 동안 4경기 연속 도움을 올렸고, 팀의 주포인 데얀과는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2012년 고명진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최용수 감독이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는 점이다. 자신을 잘 알고 신임해주는 지도자 아래 고명진은 더 큰 비상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이젠 FC서울의 유망주가 아닌, 즉시전력감 으로 거듭난 그의 활약을 지켜보자.



3. 고요한






생년월일 : 1988년 3월 10일

신체조건 : 170cm, 65kg

포지션 : MF

전소속팀 : 토월중

입단년도 : 2004

FC서울 통산 기록 : 53경기 4골



토월중을 중퇴하고 2004년 FC서울에 입단한 고요한은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중 하나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고명진과 함께 ‘투고’ 라는 애칭이 붙기도 한 고요한은 2009년부터 출장 수를 늘려가며 서서히 자신을 알려 나간다. 젊은 선수들을 중시하는 귀네슈 감독의 지도 아래 쉐도우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16경기에 출전하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고요한 역시 고명진처럼 빙가다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2010년 7경기 출전에 1골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해가 바뀐 2011년. 하대성, 고명진등 중앙 미드필더들이 시즌 초부터 부상에 시달리자 고요한이 자리를 옮겨 개막전부터 경기에 나섰지만, 중앙 미드필더는 고요한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측면 미드필더로 돌아온 후부터 고요한의 플레이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성공시킨 고요한은 5월 알아인 과의 AFC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에서도 골을 터트렸고 2주 후 열린 경남과의 홈 경기에선 프로 데뷔 후 첫 헤딩골 및 멀티골을 넣는 대활약으로 팀의 3-1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시즌 중반 부상에서 돌아온 최태욱과, 신예 고광민에게 자리를 내주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 싶었지만 시즌 막판부터 다시 경기에 나섰고, 라이트백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2011 시즌, 개인 최다인 19경기 출전 3골을 기록했다. 고요한의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더는 베테랑 최태욱, 올림픽대표 김태환, 신예 고광민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상되지만 작년 개인 최다 출장과 득점을 이룬 만큼 그 여세를 잘 몰아간다면 고요한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제 겨우 25세지만 FC서울에선 7번째 시즌을 맞이 하는 고요한. FC서울 유망주 육성 정책으로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이청용과 기성용은 유럽진출을 이루었고, 고명진도 FC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젠 고요한이 보여줄 차례다.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좀 더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띠해인 2012년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4. 김동우




생년월일 : 1988년 2월5일

신체조건 : 189cm, 83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조선대

입단년도 : 2010

FC서울 통산 기록 : 26경기



2010 시즌 중반 FC서울에 위기가 찾아왔다. 수비라인의 중심이 아디와 박용호가 각각 광대뼈 골절과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택된 선수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동우. 그 해 5월 23일 리그컵을 통해 1군 데뷔전을 치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선수였지만 신인이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적잖았다.


하지만 김동우는 리그 후반에만 9경기 연속으로 경기에 출전하며 박용호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2011 시즌 초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7월부터 다시 경기에 출전하며 서울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고 작년보다 더 많은 16경기에 출전하며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큰 키를 바탕으로 한 공중전에 강한 김동우는 잘생긴 외모 덕에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다. 빼어난 수비력과 상품성까지 갖춘 김동우가 2012년에 더 나은 활약을 보인다면 그는 FC서울을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김동우의 비상을 기대해보자.



4. 고광민




생년월일 : 1988년 9월21일

신체조건 : 172cm, 63kg

포지션 : FW

전소속팀 : 아주대

입단년도 : 2011

FC서울 통산 기록 : 7경기 1도움



아주대를 졸업하고 2011년 드래프트 2순위로 FC서울에 입단한 고광민은 체구는 작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적극적인 돌파가 돋보이는 선수로 주목받았다. 시즌 시작을 2군에서 했지만 그는 바로 가능성을 보였다. R리그 첫 경기인 수원전에서 교체 투입된 고광민은 그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다음 경기인 경찰청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골을 넣는 등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고광민은 이 후 R리그에서 8경기 연속으로 출전했고 5월 18일에 열린 용인시청과의 FA컵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시즌 중반부터 K리그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고광민은 8월20일 제주와의 경기에서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10월 3일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선 팀의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 시즌 그의 기록은 7경기 출전 1도움. 하지만 그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최용수 감독 역시 고광민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작년보다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뛰어난 스피드로 경기 막판 팀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플레이가 가능한 만큼 조커로서 활약이 기대된다.


5. 이규로





생년월일 : 1988년 8월 20일

신체조건 : 180cm, 68kg

포지션 : DF

전소속팀 : 전남드래곤즈

입단년도 : 2010

FC서울 통산 기록 : 16경기 1도움



전남에서 보여준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이규로. 그 활약이 서울에서도 이어지는가 했지만 아쉽게도 이규로는 시련에 빠지며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입단하자마자 당한 오른쪽 발목 부상이 그의 전진을 가로막았고, 설상가상 최효진, 이종민등과의 포지션 경쟁에서도 밀리며 정규리그에서 고작 2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2011년 이규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0 시즌 종료 후 최효진, 이종민이 동반 입대했고, 상무에서 돌아온 최원권이 제주로 떠나면서 이규로는 팀 내 유일한 라이트백 자원으로 남은 것이다. 그 덕에 라이트백 자리에 무혈입성 하면서 개막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시즌 두 번째 경기인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헤딩 미스를 범하며 선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등 부진한 모습으로 다시 벤치로 밀려나야만 했다.
 

최용수 감독대행 부임 이후 다시금 기회를 얻는 가 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11년 서울의 라이트백 자리는 김태환, 최현태, 현영민, 고요한등 여러 선수들이 포진되면서 안정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규로의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여전히 그가 팀 내 유일한 전문 라이트백이란 점이다. 그가 라이트백 위치에서 제 몫을 해준다면 서울은 좀 더 안정된 전력을 갖출 수 있다. 또 그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장점으로 최용수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축구에 부합하는 선수다.


2009년 전남에서 28경기에 나와 5골을 넣었고, 국가대표팀에도 발탁 되 A매치에도 뛴 경력이 있는 만큼 제 컨디션을 찾는 다면 좋은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 2012년엔 최효진과 이종민이 복귀하는 해이지만 9월은 되야 돌아오는 만큼 이 기간 동안이라도 이규로의 활약은 절실하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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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azon de seul 2012.01.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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