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은 해외 유명 클럽들과 친선 경기를 펼치며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박지성과 고요한이 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습






매년 이맘때쯤이면 FC서울은 해외 유명클럽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FC서울은 이 친선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선진축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외 유명클럽들이 무리한 일정을 짜며, K리그 일정에도 영향을 준 탓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FC서울이 친선경기를 열때 마다 구름관중이 몰려들며, 높은 열기를 보였다. K리그 경기 수가 많아지고 특히 올해엔 스플릿 시스템이 적용되어 강등팀을 정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친선경기를 치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또 다시 친선경기가 열릴 여지는 충분하다. 그럼 지금부터 FC서울은 어떤 팀들과 친선경기를 벌였고, 그 속엔 어떠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2005.07.26 vs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보카 주니어스. 프로리그 출범 이후 단 한번도 2부리그에 강등되지 않았고, 23번의 1부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컵 6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고로 두고 있어, 대한민국의 수도와 아르헨티나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클럽에 맞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경기에 앞서 양팀이 자매결연을 맺으며 상호 교류를 약속하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는 당시 간판스타였던 마르틴 팔레르모(한 경기에서 세 개의 페널티킥을 놓친 선수로도 유명하다.)가 결장했지만, 아르헨티나 청소년대표 출신의 네리 카르도소, 현재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등이 출전하며 막강 전력을 과시했다. FC서울 역시 노나또, 히칼도, 김은중 등을 앞세워 보카 주니어스에 맞섰지만, 선제골은 보카 주니어스의 몫이었다. 전반 17분 카르도소의 프리킥을 받은 팔라시오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을 돌파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기세가 오른 보카 주니어스는 시종일관 서울을 압박했고, 네리 카르도소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공격을 이끌었다. 결국 전반 44분 다니엘 빌로스가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전반은 0-2로 끝났다. 반격에 나선 서울은 정조국, 백지훈등을 투입해 공격을 강화했고, 결국 후반 7분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백지훈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그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청소년대회에서도 맹활약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백지훈은 이 날 경기에서도 골을 성공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흐름을 탄 서울은 공세를 취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후반 17분 기회를 잡는다. 페널티 지역을 돌파하던 노나또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노나또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서울은 이후에도 정조국을 앞세워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골은 넣지 못하고 1-2로 패했다. 족저근막염으로 출전하지 못한 박주영의 공백이 아쉬운 한판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최강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데엔 성공했다.




2. 2006.08.05 vsFC도쿄











아르헨티나 수도를 연고로 한팀과 경기를 벌이고 1년 뒤, 서울은 이번엔 일본의 수도를 연고로 하는 FC도쿄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FC서울과 서울시는 그간 성원해준 팬들에게 보답하고자, 각계각층의 서울시민들을 초청했고, 선착순 무료입장을 실시했다. 그 결과 6만여명의 대관중이 몰려들었고, 경기장은 뜨거운 여름날씨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해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에 있던 서울은 전반 초반부터 득점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전반 2분 최용수의 패스를 받은 두두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FC도쿄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 브라질 대표였던 루카스와 현재 대전시티즌에서 뛰고 있는 바바 유타등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당시 서울의 수문장이던 김병지를 뚫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전반을 1-0으로 마쳤다. 후반 들어 양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지만 서울이 추가골을 넣으며 앞서나갔다.



현재 FC서울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이 날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후반 39분 하프라인에서 패스를 이어받은 두두는 단독돌파 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특유의 개인기로 골키퍼까지 제친 뒤 두 번째 골을 넣은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44분 정조국의 골까지 보태며 도쿄를 3-0으로 완파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선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가 은퇴식을 가지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고,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3. 2007.07.20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많은 축구팬들을 흥분시킬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이었다. 과거 FC바르셀로나, 첼시등도 내한한적은 있었지만, 박지성이 소속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해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팀이 내한한다는 소식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하길 원했던 맨유라 당연히 상대팀은 FC서울이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리오 퍼디낸드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플레이 한다는 점, 경기를 앞두고 양팀의 메인 유니폼인 붉은색 유니폼 착용을 두고 신경전을 펼친 점(결국 붉은 유니폼은 서울이 입었고 맨유는 보조 유니폼인 흰색을 착용했다)등 다양한 이슈거리가 쏟아져 나왔고,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티켓은 11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비록 박지성이 무릎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호날두, 루니등 최고의 선수들의 플레이는 서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전반 5분 루니의 패스를 받은 호날두가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19분 호날두의 감각적인 힐패스는 이글스의 추가골로 이어졌다. 전반 20분 루니가 날린 강력한 슈팅이 김병지의 손을 맞고 골대안으로 빨려들어가며 전반에만 0-3으로 앞서간 맨유는 후반 15분 박지성의 절친인 에브라가 네 번째 골까지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서울 역시 정조국, 히칼도등이 공격 선봉에 섰지만, 아쉽게도 거함 맨유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고,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2008.03.01 vsLA갤럭시








2008 K리그 개막을 앞둔 FC서울은 미국의 명문클럽인 LA갤럭시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LA갤럭시는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이 날 경기에도 베컴이 출전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베컴은 경기외에도 어린이 축구교실, 팬 사인회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팬들과 소통했고, 태권도복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의 팬 사인회는 많은 팬들이 몰려들어 30분만에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베컴의 인기는 대한민국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LA갤럭시엔 베컴만 있는게 아니었다. 현재 미국의 에이스인 랜던 도노번,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아벨 사비에르등 빼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주전에 베스트 멤버들을 기용해 승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양 팀은 초반부터 치열한 경기를 보여줬다. 이청용은 베컴에게 거친 태클을 가하며, 친선경기 이상의 경기력이 펼쳐지는등 양 팀은 강한 승부욕을 보였고, 결국 전반 21분 베컴의 마법같은 오른발 킥이 선제골을 만들었다. 베컴이 오른발로 올려준 볼을 공격수 고든이 이어받아 선제골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전반 30분 서울이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정조국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양 팀은 후반들어서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지만, 결국 경기는 1-1로 끝이 났고, 꼭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주최측의 결정에 따라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선 김호준의 선방이 빛났다. 김호준은 1번 키커인 베컴을 제외하고 2,3,4,5번 키커의 슛을 모조리 막아냈다. 서울은 김은중과 이상협이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결국 2-1 승리를 거두었다. 승부차기에서 선방쇼를 펼친 김호준은 MVP를 수상했고, 당시 신인이었던 이승렬은 첫 공식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다. LA갤럭시전 승리로 쾌조의 출발을 알린 서울은 3월 한달 동안 2승2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5. 2008.06.15 vsFC도쿄









2006년 홈에서 FC도쿄를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고 2007년엔 도쿄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거두었던 서울은 2008년 FC도쿄를 다시 홈으로 불러들여 일전을 가졌다. 당시 서울은 K리그에서 4위, 도쿄는 J리그에서 3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강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어 이번 대결에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날 경기에선 인기가수 마야가 초청되어 공연을 펼쳤고, 양 팀 서포터즈들이 릴레이 달리기를 하는 등 축제분위기로 진행됐지만, 승부는 승부인 법. 양 팀은 치열한 경기를 펼치며 경기장을 찾은 42000여명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서울은 팀의 주축인 박주영과, 이청용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결장했지만 데얀, 이을용, 정조국등이 경기에 나서며 도쿄를 압박했다.
 



하지만 선제골은 도쿄의 몫이었다. 전반 40분 최원권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도쿄는 까보레의 침착한 슈팅으로 0-1을 만든 것이다. 2007 시즌 경남 소속으로 K리그 득점왕(18골)에 오르며 도쿄로 이적한 까보레는 페널티킥 성공으로 서울에 비수를 꽂았다. 전반을 0-1로 마친 서울은 데얀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고, 마침내 후반 28분 그 결실을 맺었다.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36분엔 심우연을 투입하며 또 하나의 공격 옵션을 장착했고, 역전골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 1-1 무승부를 기록한 서울이었지만 도쿄와의 역대 전적에서 1승2무로 대한민국 수도 연고팀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6. 2009.07.24 vs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7년 내한해 많은 화제를 뿌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9년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도 역시 상대는 FC서울. 하지만 당시 맨체스터 유니이티드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잡는 바람에 서울이 일정을 변경해 7월에 예정되었던 광주상무전을 5월에 치러야만 했고, 이같은 결정은 몇몇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값은 국내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이번에도 티켓이 매진되는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당시 맨유는 2007~200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잇달아 제패했고, 2008~2009 시즌엔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비록 간판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내한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리오 퍼디낸드등 여전히 스쿼드는 화려했다.
 



그리고 박지성 역시 2년전과는 달리 건강한 모습으로 국내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유는 이번에도 루니, 긱스, 에브라, 퍼디낸드등 주축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며, 서울을 압박했지만, 귀네슈 감독은 그간 즐겨쓰던 포백 대신 김치곤, 김진규, 박용호를 스리백으로 세워 수비를 두텁게 하며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 의지가 통했는지, 초반 경기 흐름은 서울이 잡았다.




공격진에 포진된 데얀과 이승렬은 활발한 모습으로 수비진을 흔들었고, 전반 8분에 나온 고명진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맨유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맨유는 여독이 풀리지 않은듯 다소 무거운 몸놀림을 보였다.
 



결국 선제골마저 서울이 터트렸다. 전반 23분 우측에서 김승용의 크로스를 받은 데얀이 발리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더욱더 활발한 모습으로 맨유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맨유는 역시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맨유는 전반 31분 오셔의 크로스를 루니가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데얀이 선제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이후 양팀은 친선경기임을 잊은 듯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결국 김승용이 전반 막판 부상으로 교체 아웃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방전 속에 추가골의 주인공은 서울이었다. 전반 추가 시간 이승렬의 침투 패스를 이어받은 데얀이 쿠쉬착을 살짝 넘기는 재치 있는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이다. 2-1로 전반을 마친 서울은 슈팅수 8-4, 유효 슈팅수 6-3등의 기록을 보이며 세계 최강 맨유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은 후반에 맨유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후반 12분 루니의 전진 패스를 이어받은 마케다가 골키퍼까지 제치며 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20분엔 대런 깁슨의 크로스를 베르바토프가 헤딩슈팅으로 마무리하며 2-3으로 재역전 시켰다.




서울은 기성용의 프리킥 등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골은 성공시키지 못했고, 결국 2-3 패배를 기록했다. 관심을 모은 박지성은 후반 29분 마이클 캐릭과 교체 투입됐고, 특유의 부지런한 플레이로 파울을 유도하고, 후반 44분엔 스콜스에게 결정적인 침투 패스를 찔러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년만에 만난 맨유를 상대로 또다시 패하긴 했지만, 서울은 2년전과는 다른 경기력으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또 이날 두골을 기록한 데얀은 퍼거슨 감독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신고
by corazon de seul 2012.07.22 14:01

2008년 신인왕 수상자 이승렬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제 식민지 시절. 지식인이었던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시를 통해 조국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드러냈다. FC서울 역시 유망주 육성 정책을 통해 많은 젊은 선수들을 육성함으로써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드러냈고, 그 기대에 부합하듯 정조국,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등이 배출됨으로써 FC서울은 명실상부한 유망주들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그 덕에 우수 젊은 선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인왕 역시 대거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FC서울의 역대 신인왕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단 한번밖에 수상할 수 없는 신인왕의 영광을 차지했던 선수들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1. 최용수 (1994년 신인왕 수상)

최용수 감독의 젊었을때 모습 (사진출처 - 베스트일레븐)




FC서울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최용수는 구단 최초 신인왕의 주인공이다. 현역 시절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용수는 1994년 드래프트를 통해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최용수는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지 못했다.


1994년엔 이임생(유공), 정재권(대우), 조진호(포항)등 쟁쟁한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린 해였고, 게다가 조진호는 그 해 열린 미국월드컵 대표팀에도 합류하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용수는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뽑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타 선수에 비해 떨어졌다.


여러모로 최용수가 신인왕을 수상하기엔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최용수는 그 해 4월2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다음 경기인 유공전에서 까지 골을 넣으며 두 경기 연속골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윤상철이란 당대 최고의 공격수와 호흡을 맞추며 시즌 내내 주득점원으로 활약한 최용수는 결국 그 해 9골 4도움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8월의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훗날 한국 축구의 계보를 잇는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렸다.


최용수의 신인왕 수상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신인왕은 대부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한 선수들이 차지했지만 최용수는 사상 두 번째로 드래프트 1순위가 아닌 선수로 신인왕에 등극했다. 또 그 해 최용수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얻어낸 신인왕이라 그 의미는 컸다. 신인 시절부터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최용수는 이후 애틀랜타 올림픽,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2. 정조국 (2003년 신인왕 수상)







2003년 대신고를 졸업하고 LG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로 뛰어든 정조국. 그는 프로 입단 이전부터 청소년대표팀 에서 맹활약하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2002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이종민(상주), 임유환(전북)등과 호흡을 맞춘 정조국은 3골을 넣으며 공격수로서 제몫을 다했고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이때의 활약으로 정조국은 히딩크 감독에 눈에 띄며 2002 월드컵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당시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는 등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프로에 뛰어든 정조국은 시즌 첫 경기부터 교체 출전하며 기대 받는 신인임을 증명했고 7번째 경기인 부천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후 광주전에선 멀티골, 라이벌 수원전에서도 한 골을 추가하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정조국은 그 해 올스타에도 선발되며 중부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고 캐논슛 컨테스트에선 135km/h 의 킥을 보여주며 이동국(129km/h), 이기형(128km/h) 등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2경기 출전에 12골 2도움이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한 정조국은 그 해 11월 UAE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런 정조국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신인왕 수상. 덕분에 정조국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2004, 2005년엔 슬럼프가 찾아왔고 김은중, 박주영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서울에 입단하면서 설자리가 좁아졌다.
 

2003년 두자릿수 득점 이후 2009년까지 단 한차례도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정조국은 2010년 결혼과 함께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활했고, 결국 13골을 넣으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운뒤 프랑스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현재 프랑스 1부리그 낭시에서 활약중인 정조국은 유럽에서 성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 박주영 (2005년 신인왕 수상)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가 열린 말레이시아. 대한민국의 시선은 당시 청소년대표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이 선수에게 쏠렸다. 그의 이름은 박주영. 당시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끔과 동시에 득점상과 MVP를 휩쓰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상까지 휩쓴 박주영은 2005년 초 카타르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러한 활약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했고, 결국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고 서울은 등번호 10번을 배정하며 기대를 보였다. 많은 팬들이 박주영의 골퍼레이드가 프로에서도 이어질까? 하는 관심속에 박주영은 두 번째 경기인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 뒤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 했다. 그 후 박주영의 행보엔 거침 없었다. 컵대회에서만 무려 5골을 추가한 박주영은 광주상무와의 리그 홈경기에선 해트트릭까지 달성하는 등 서울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그리고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선 2005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당시 이동국, 김병지란 최고의 공격수와 골키퍼가 소속되었던 포항을 맞아 박주영은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4-1 대승을 이끈 것이다. 당시 감기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출전한 박주영은 히칼도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48375명이라는 대관중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활약에 대한민국은 박주영 신드롬에 휩싸였다.
 

 2005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의 기도세리머니를 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연일 관중으로 가득찼고 서울이 원정을 떠나면 해당 지역 관중들 역시 박주영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K리그에서 연일 골 폭풍을 몰아치는 박주영이다 보니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 는 말로 그의 발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박주영은 정경호의 패스를 받아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쏘아올리는 활약을 했고 뒤이어 열린 쿠웨이트전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으로 본프레레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시즌 후반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30경기 출전 18골 4도움이라는 성적으로 사상 첫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6년엔 2년차 징크스로 많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 후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며 2008년 여름 프랑스의 AS모나코에 입단하며 유럽진출에 성공했다.



첫 시즌부터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박주영은 5골5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이 후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남아공 월드컵에서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 소속으로 아직 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있지만, 곧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이승렬 (2008년 신인왕 수상)







신갈고를 졸업하고 2008년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을 맡고 있던 귀네슈에게 "K리그를 뒤흔들 재목"이라며 극찬을 받았다. 실제 그는 FC서울의 2008년 첫 경기인 LA갤럭시와의 친선 경기에도 출전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고 그 후 귀네슈의 총애 아래 꾸준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자신감 넘치고 저돌적인 플레이는 신인 특유의 패기를 느끼게 해주었고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 능력까지 보이며 전술적 활용도 역시 높았다. 2008년 최종 성적은 31경기 출전 5골 1도움. FC서울 역대 신인왕중 가장 낮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그가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일 정도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라이벌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거함 수원을 격침시키는데 단단히 한몫하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서상민, 조동건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수상한 이승렬은 이듬해인 2009년엔 7골 1도움을 올리며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고 2010년엔 팀 내에서 유일하게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합류한 것과 동시에 10골 6도움을 올리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2011년엔 19경기 출전, 1골에 그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팬은 없다. 기성용, 이청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이승렬인 만큼 정상 컨디션을 찾는다면 2012년 이승렬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신고
by corazon de seul 2011.12.27 22:07

2011.8.27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 VS 강원
6:3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김검수



신고

'FC서울 갤러리 > 인사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K리그25R] FC서울 VS 부산  (7) 2011.09.19
[K리그24R] FC서울 VS 대구  (2) 2011.09.13
[K리그23라운드] FC서울 VS 강원  (4) 2011.08.31
[K리그22R] FC서울 VS 제주  (10) 2011.08.22
[K리그21R] FC서울 VS 전남  (17) 2011.08.14
by Limpid 2011.08.31 22:38






FC서울의 쾌속 질주는 계속 되었다. FC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과의 K리그 23R 경기에서 2골을 넣은 데얀과 3골 3도움이라는 믿을 수 없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몰리나의 활약속에 강원을 6-3으로 꺾었다. 2위 포항 역시 승리를 거두면서 2위 도약은 아쉽게 미뤄졌지만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이 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시원한 골 선물을 선사했다.



초반부터 불어 닥친 서울의 거센 공격



최종환 대신 최태욱이 들어온 것 외엔 서울의 베스트일레븐은 제주전과 변화가 없었다. 전반 6분 서동현에게 찬스를 내주긴 했지만 서울은 이내 흐름을 찾아왔다. 전반 8분 최태욱이 왼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데얀이 헤딩슛으로 연결한 장면은 서울의 맹공을 암시했다.


결국 1분 후 선제골이 터진다. 최태욱이 오버래핑해 들어온 아디에게 패스 했고 아디가 페널티 박스내에서 치열한 몸싸움 뒤 흐른 볼이 몰리나 앞으로 흘러갔고 몰리나가 이를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전반 18분 추가골까지 성공시켰다. 몰리나가 중앙 돌파 뒤 데얀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고 데얀이 키퍼와 1대1 상황에서 키퍼를 살짝 넘기는 침착한 로빙 슛으로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이 후 데몰리션 듀오의 플레이는 더욱 불을 뿜었다. 전반 31분 고명진의 크로스를 데얀이 머리로 살짝 떨어뜨려줬고 몰리나가 이를 지체없이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골대를 살짝 빗나갔고, 전반 40분 몰리나의 롱패스를 받아 데얀이 헤딩 슈팅으로 마무리 지었으나 이번에도 아쉽게 골대를 빗나갔다. 데얀과 몰리나의 활약속에 서울은 경기를 지배하며 전반을 2-0으로 마쳤다.








몰리나 이 날 경기에서 역사를 쓰다



후반전에서도 서울의 거센 공격은 계속 되었다. 결국 후반 2분 세 번째 골이 터진다. 몰리나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수비수 2명을 앞에 두고 침착하게 날린 왼발 슈팅이 골문을 가르며 3-0으로 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에 성이 안차는 듯 서울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고 후반 13분 네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몰리나가 아크 정면에서 자신이 얻은 프리킥을 직접 차 넣으며 스코어를 4-0으로 만든 것이다.


4골이나 앞서 나갔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은 후반 16분 최현태를 빼고 이승렬을 투입하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결국 이승렬마저 골퍼레이드에 합류했다 후반 23분 좌측에서 몰리나가 내준 볼을 이어 받은 이승렬이 날린 강력한 왼발 터닝슈팅은 골키퍼 유현의 발을 맞고 골대 상단에 꽂히면서 5-0까지 앞서 나가는데 성공했다.


그 후 반격에 나선 강원이 후반 27분 윤준하의 중거리 슈팅으로 한 골을 추격했다. 하지만 후반 36분 아디의 롱패스를 받은 몰리나가 유현을 살짝 넘기는 재치있는 슈팅으로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성공 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 후 대량득점에 서울의 집중력이 흔들려서 인지 후반 38분 서동현에게 페널티킥 골을, 후반 45분엔 김진용에게 골을 허용하며 6-3까지 추격당했지만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고 경기는 6-3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 3골 3도움을 기록하며 골과 도움 모두를 해트트릭을 기록한 몰리나의 기록은 K리그 최초며, 한 경기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으로 남았다.



승부처



이 날 승부는 초반에 일찌 감치 갈렸다.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는 데얀과,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던 몰리나를 강원이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전반 9분과 전반 18분, 몰리나와 데얀이 한 골씩 기록하며 승부의 추는 급격하게 서울로 기울었다.
 

이 두 골이 대량득점의 신호탄이 되어 서울은 이 날 경기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는 막강 화력을 과시했다. 강원으로선 전반 6분 서동현에게 찾아온 찬스가 아쉬웠다. 서동현은 김용대와 일대일 찬스를 잡았으나 김용대가 침착하게 각도를 줄이며 나와 찬스를 무산 시켰다.


만약 여기에서 강원이 골을 성공시켰다면 좀 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후반 27분 윤준하가 골을 성공 시키며 4경기 연속 무득점의 빈공에선 벗어났지만 그 땐 이미 5골을 잃은 후 였다.









HOT PLAYER 몰리나


 
 이젠 몰리나가 서울의 중심이 된 듯 하다. 부진했던 전반기를 딛고 후반기 6경기에서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부활의 조짐을 보인 몰리나는 이 날 경기에서 데얀과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맹활약 했다. 몰리나는 이 날 골과 도움 모두 해트트릭(3골 3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또 시즌 10도움으로 염기훈을 제치고 도움 랭킹 2위로 올라서며 1위 이동국(12도움)을 2개 차로 추격했다. 후반기 맹활약으로 서울의 7연승을 이끈 몰리나. 앞으로 그의 활약에 많은 관심이 모아진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신고
by corazon de seul 2011.08.28 16:15

슬램덩크 소장판 21권 장면. 산왕공고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자 체육관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장면.

 

9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 만화 슬램덩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슬램덩크 안에서의 명 경기라고 한다면 역시 마지막 경기였던 북산 VS 산왕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왕이라는 무시무시한 팀을 상대로 북산은 투지와 이길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덤빈다. 초반에는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가 중 후반에는 산왕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진다. 점수차도 크게 벌어지며 북산은 이길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북산은 되살아나고 결국 간발의 점수차로 승리를 거둔다.

이 만화에서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북산의 상황을 날씨에 비유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산왕에게 거세게 밀릴 때는 경기장 밖에서 폭우가 쏟아진다. 그러다가 북산이 되살아 나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비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더니 완벽히 살아났을 때는 태양이 떠오른다. 사소한 묘사였지만 매우 섬세하고 재치있는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오늘 ‘FC서울 VS 전북의 경기도 슬램덩크 만화처럼 날씨가 경기를 묘사해 주었다. 아마 밝은 달이라 떴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전북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질 땐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더니 흐름이 서울 쪽으로 오자 빗방울의 굵기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경기 막바지에는 비가 잠시 멈추었다. 경기 결과는 2-2. 누구의 달빛도 떠오르지 못한 채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전북은 선두를 고수하지만 한발 더 치고 나가야 하는 서울로서는 아쉬운 경기였다.

 


                    정말 장대비가 쏟아졌다. 장대비 속에 에닝요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매서웠다. (사진=스포츠조선)



비가 쏟아지다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올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폭우가 쏟아졌다. 전북은 이동국, 에닝요, 루이스, 이승현 선수를 앞세워 거세게 몰아부쳤다. 미드필더에서부터 압박이 이루어졌고, 서울에 대한 압박수비가 펼쳐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요한 선수가 부상으로 교체 당했다. 1실점 뒤에 에닝요 선수가 FC서울 서포터즈를 조롱하는 듯한 세리모니를 펼쳐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후에도 전북은 거세게 몰아부쳤다. 특히 이동국 선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은 서울 수비진들의 전진배치를 저지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동국 선수의 어시스트로 FC서울은 0-2로 뒤쳐지게 된다. 전반전 끝나는 순간까지 전북의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후반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FC서울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공격적인 축구를 보였다. 하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수적 열세인 전북은 공격부터 수비까지 간격 유지를 철저히 하며 공간을 쉽사리 주지 않았다. 이에 최용수 감독대행은 이승렬 선수를 빼고 김태환 선수를 투입하면서 오른쪽 측면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전북의 골문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수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동국 선수를 중심으로 역습 축구를 구사했다. 오히려 미드필더에서부터 압박을 하며 쉽게 공격선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섰다. 전북의 무서움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후반 15, 서울의 가능성을 보이다

서울의 플레이가 차츰 되 살아 나는 후반 15. 서울 특유의 패스 플레이가 이루어졌지만 하대성의 마지막 슈팅이 아쉽게 김민식 골키퍼에게 막히며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매우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순간 FC서울만의 플레이가 보였다. 이 것이 FC서울만의 플레이였고 FC서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었다. 문전에서의 빠르고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수들을 일 순간 멍하게 만드는 플레이.  순간 서울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비가 잦아드는 후반 33.

전북의 교체출장한 로브렉 선수. 크로아티아 선수로 최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전북의 공격력에 힘을 실어줄 선수다. FC서울로서 부담스러운 선수가 아닐 수 없었는데, 오늘은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무너지고 말았다. 후반 31. 최현태 선수와 헤딩 경합 상황에서 팔꿈치로 최현태 선수의 눈부위를 가격,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경고를 받았다.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이 로브렉의 과격한 플레이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로브렉 선수는 2분 뒤 고명진 선수의 돌파를 손으로 잡아 채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고 만다. 후반 33. 차츰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후반 35. 비는 멈췄다.

드디어 비가 멈추고 FC서울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수적으로 절대우세에 올라선 FC서울은 매섭게 전북을 몰아 세웠다. 그리고 후반 35분 코너킥 상황. 제파로프의 킥을 전북 수비측이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고 이 볼은 그대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강정훈 선수에게 날아갔다. 강정훈 선수는 이를 그대로 헤딩으로 꽂았고 전북 수비수의 몸에 맞았으나 골이 들어갔다. 전북 수비수들은 이를 막기 위해 손을 사용하면서까지 막았지만 소용 없었다. 1-2.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데얀은 역시 K리그 최고의 골 사냥꾼 다웠다.



후반
36. 우리에겐 데얀이 있었다.

FC서울은 골을 터뜨린 후 총 공격 태세로 접어들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킥 오프를 하는 순간 전북 진영으로 뛰어들어가 압박 축구를 보였다. 그리고 결국 골이 터졌다. 제파로프의 패스에 이은 논스톱 하대성의 패스, 그리고 데얀의 논스톱 슈팅.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이 된 것이다. 데얀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로 하여금 꼼짝 못하는 코스로 꽂혔고 동점을 만들어냈다. 제파로프의 적절한 패스, 하대성의 센스, 데얀의 골 감각이 만들어낸 완벽한 골이었다.

그 뒤로도 FC서울은 계속된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문을 벗어나며 경기는 2-2 무승부로 마감을 하고 말았다. 후반 막판은 다소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 VS 능남'의 경기에서 강백호는 공이 있는 곳에 어디든지있음으로 인해 능남 감독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놓는다. 같은 강씨인 강정훈 선수 역시 최강희 감독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찬스를 만들어냈고 골도 뽑아냈다.


공이 있는 곳에 본능적으로 그가 있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흔들어놓는 역할이다. 다져지진 않았지만 감각적으로 공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오늘 FC서울에선 그런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같은 강씨인 강정훈 선수가 바로 그이다. 올 시즌 정규리그 첫 출장의 기회를 가진 강정훈 선수.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교체되자마자 열심히 공간을 찾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전북은 강정훈 선수의 활발한 움직임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맞았다. 특히 후반 20, 골문이 비어있는 상태에서의 골 찬스는 너무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강정훈은 공간을 만들어내며 전북을 압박했고 결국 동점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골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데얀의 동반자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선수가 등장한 셈이다.

 


꼬집어보자. 우리 FC서울.

최소한의 승점은 챙겼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은 아니었다. 오늘의 경기에서 어김없이 지적이 되는 부분은 미드필더 자원의 활용에 있어 좀 더 효과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 수비의 안정성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미드필더에서 제파로프와 몰리나의 활용은 계속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개인적으로 제파로프 선수의 중앙 미드필더 기용, 몰리나 선수의 왼쪽 미드필더로의 기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자니 고명진 선수 카드가 아쉽다. 미드필더 지역에서의 조화가 시급한 현재. 우리 FC서울을 꼬집어보자면 난 미드필더를 꼬집고 싶다.

 

 

자칫 승점을 챙기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귀중한 승점 1점을 획득하며 10위 자리를 고수했다. 자칫 패배했더라면 이날 경기가 있던 울산과 경남에게 밀려 12위까지 내려갈 뻔 했다. 그렇기에 FC서울에게는 정말 중요한 경기였음은 틀림없다.

이제 상주다. 상주를 잡고 다른 경기의 운이 좋다면 5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전북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면 이제 진짜 중요한 고비 상주전이 남은 셈이다. 이번 상주와의 경기에서 꼭 승리를 거두어 중위권 도약의 날개를 한껏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FC서울 명예기자 김진웅(
akakjin45@naver.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1.07.04 15:08


별명(別名). 사전에는 ‘사람의 외모나 성격 따위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 부르는 이름’이라고 나와 있다. FC서울의 많은 선수들이 본인만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별명은 그 선수의 외모나 특징을 설명해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때때로 우리는 별명을 통해 선수들을 잘 기억하게 되며 선수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선수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별명들을 유형별로 살펴보자.



세계적인 선수의 이름을 딴 별명



- 서울의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 용대사르



김용대 선수는 본인의 이름보다도 ‘용대사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네덜란드 대표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문장인 에드윈 반 판데 사르의 이름을 딴 이 별명은 경기장 곳곳에 김용대를 응원하는 걸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김용대는 “저는 그 별명에 대해 굉장히 만족합니다”라며 별명을 지어준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 서울의 미래를 책임질 프랜차이즈 스타, 문케렐레



문기한의 별명은 ‘문케렐레’이다. 이는 현재 파리 생제르맹에서 활약중인 클로드 마케렐레에서 따온 것이다. 문기한과 마케렐레의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여 발음이 어려운 한국어 이름 대신 외국인 선수들이 ‘문케렐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국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문기한을 ‘문케렐레’라고 부른다고. 지단 뒤에 마케렐레가 없었다면 프랑스 대표팀의 전성기도 없었을 것이다. 올 시즌‘문케렐레’ 문기한의 활약을 주목해보자.



성격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별명



- FC서울의 성실맨, 현성실



FC서울에는 ‘성실함’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현영민은 대학시절부터 스스로‘나는 성실하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별명도 ‘현성실’이 되었다고. 꾸준한 플레이와 성실한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영민. ‘부지런하면 천하의 어려움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성실한 삶을 산다는 현영민, 올해도 그의 ‘성실함’을 한 번 믿어보자.



-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FC서울의 치타 김태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서울월드컵경기장 한켠에는 항상 ‘미친존재감★치타 김태환’이라는 걸개를 볼 수 있다. 김태환의 강점은 스피드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빠른 스피드의 대명사인‘치타’라는 별명이 붙었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돌파와 수비력을 지닌 김태환은 지난 3월에 조광래 감독이 지휘하는 A대표팀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빠른 스피드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김태환,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신격 혹은 국격화된 별명



- FC서울을 지키는 몰느님과 아디신


FC서울의 F4 중 2명인 몰리나와 아디는 각각 ‘몰느님’과 ‘아디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성남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바탕으로 몰리나는 몰리나+하느님의 합성어인 ‘몰느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6년부터 FC서울에 몸 담아온 아디는 기복 없는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디는 수비도 수비지만 팀이 필요할 때에 공격에 가담하여 골을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많은 FC서울의 팬들은 아디의 활약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 그렇다보니 FC서울에서는 '아디신(神)'으로 불린다.





- 또 하나의 대한민국, 데얀민국


작년 FC서울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의 한 명인 데얀은 팬들에게 '데얀민국'으로 불린다. 2008년 서울의 한 팬이 걸어놓은 걸개에서 유래된 이 별명은 데얀을 대한민국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데얀에 대한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데얀은 조광래 감독이 국내 선수들이 본받아야할 스트라이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시즌 시작 전 이루어진 ‘K리그 감독들이 예상한 득점왕’1위에 랭크될 정도로 환상의 골감각을 자랑하는 선수다. 그가 데얀민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구단공모로 팬들이 지어준 별명




- 최고의 왼쪽 윙백, 금빛날개 김동진


2004년 9월, 구단에서는 김동진의 별명을 공모하였다. 그 결과, ‘금빛날개’로 결정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 별명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금빛 날개'는 김동진의 포지션과 최고의 자리로 상징되는 금색이 어우러진 것으로 당시 팬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의 활약이 반영된 것이다. 4년 반만에 FC서울로 다시 돌아온 ‘금빛날개' 김동진, 그의 금빛 날갯짓을 기대해보자.





- 어린아이의 모습을 간직한 피터팬 이승렬


2009년에는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이 진행되었다. 당시 어린왕자, 배트맨, 슈퍼소닉 등 다양한 별명들이 후보에 올랐지만 ‘피터팬’으로 결정되었다. 앳된 외모와 과감한 플레이로 모험심 가득한 피터팬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이유에서 그의 별명은 피터팬이 되었다. 지난 프로필 촬영 때, ‘피터팬’이라는 별명 때문에 기르던 수염을 밀었던 이승렬 선수, 올해도 그의 ‘피터팬’다운 플레이를 지켜보자.






별명을 지어주세요


FC서울의 많은 선수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별명을 갖지 못한 선수도 있다. ‘우즈벡 특급’으로 불리는 제파로프는 F4 중 유일하게 본인만의 별명이 없다. 2009년 분요드코르에서 임대를 통해 FC서울과 연을 맺게 된 제파로프는 2011년 FC서울로 완전 이적하였다. 지난해 보여준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아직 별명이 없다. 별명이 필요한 또 다른 선수는 하대성이다. 올 시즌 부상에서 복귀하며 멋진 골로 자신의 복귀를 알린 하대성에게도 그에 어울리는 별명이 필요하다. 중원에서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활약을 보이고 있는 하대성이지만 아직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별명이 없다.


이들에게 별명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팬들’이다. 앞에서 살펴 본 모든 유형의 별명은 팬들이 만들어주었다. 구단에서 공모한 별명도 결국엔 팬들이 만든 별명이나 다름없다. 아직 별명이 없는 선수들을 찾아 그들에게 걸맞는 별명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별명이 붙은 선수에게도, 별명을 붙여준 팬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6.28 13:45

2011.6.18
강릉종합운동장
FC서울 2:0 강원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임초롱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6.21 22:27

 

K리그를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로 경기장은 가득 찼다.


K리그는 죽지 않았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어수선했던 기운은 상암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이 날 4 4천여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 날 박주영과 정조국의 방문으로 한층 열기를 더했다. 독수리(최용수 수석코치)와 황새(황선홍 감독)의 대결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날 경기는 각각 한 골씩 주고 받으며 1-1로 마쳤다. 화끈한 공격 축구로 맞섰던 이 경기에서 전반전은 독수리의 판정승, 후반전은 황새의 판정승이었다. 전반전은 FC서울의 맹공이 이어졌던 경기였고, 후반전은 포항의 반격이 이어졌다.

 

경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FC서울의 판정승일지 모른다. 점유율면(51 : 49), 슈팅수(14 : 9) 등 경기 기록으로만 본다면 서울이 앞섰다. 하지만 후반전 포항의 공격은 무서울만큼 매서웠다. 특히 역습 찬스에서 김용대와 아디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 상황도 많이 찾아왔었다.

 

한편 이 날 경기에서 데얀을 주목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데얀의 기분이 전반전과 후반전이 많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전반전에 골을 기록하고 위협적인 슈팅을 했던 것에 비해 후반전에 데얀은 단 하나의 슈팅만을 기록하며 후반 45. 교체 아웃 되었다. 물론 포항의 풀백(신광훈)이 수비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날의 MOM(Man of the Match)은 데얀이었지만, 후반전 데얀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후반 막바지에는 지쳐 보이기까지 하였다. 왜 데얀은 후반전에 급격히 힘이 없어보였을까.

 

 

데얀은 하대성의 패스를 받아 멋진 골을 성공시켰다.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 !

FC서울에게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면, 타 구단 입장에서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K-리그에서 잘 나간다는 용병들은 다 데리고 있으면서, 그것도 조광래 감독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데얀을 데리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최근 FC서울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이 점을 가장 크게 느낀다.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데얀과 함께 투톱에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일 수 있다.

 

방승환의 활약에 따라 FC서울의 플레이는 달라진다.



예전 글에서 나는 방승환의 달라진 플레이가 FC서울의 공격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방승환의 움직임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상대 수비수가 데얀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데얀에게도, 방승환에게도 기회가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방승환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데얀을 제외한 다른 공격수들이 모두 유념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데얀을 골잡이로 두는 상황이라면, 데얀을 제외한 나머지 한 자리에 위치할 공격수는 셰도우 공격수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 자원에서 그만한 자원이 없다. 변화하고 있는 방승환 선수도, 회복 중인 이승렬 선수도 부족하다. 좀 더 잔인하게 작년과 비교를 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정조국만큼 데얀의 부담을 덜어줄 선수가 없다.

 

데얀만 공격수인가?’라고 혹시 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이 자주 구사하는 4-4-2 전술에서 공격수는 분명 2명이다. 하지만 팀 내에서나, 경기장 안에서나 상대를 꾸준하게 위협할 수 있는 공격수는 현재 FC서울에서 데얀 뿐이다. 이는 이번 포항전 경기 기록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전반전 동안 FC서울의 총 슈팅 9(유효슈팅 6) 중 데얀의 총 슈팅은 5(유효슈팅 4). 팀 내 비중은 말할 수 없이 높다.

 

데얀과 몰리나. 투톱으로 과연 어울리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몰리나, 활용면에서 아쉬워

가장 데얀을 도와줄 수 있는 선수로 현재로선 몰리나가 최선이긴 하다. 모든 포지션에서 움직임이 가능한 선수이니만큼 몰리나는 상대를 휘저으며 데얀을 도와줄 수 있다. 몰리나가 공격수로 뛰었던 전반에 데얀의 슈팅은 총 5개이지만, 몰리나가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변경된 후반전에 데얀의 슈팅은 단 1개였다. 몰리나의 플레이가 데얀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반 몰리나의 슈팅은 단 1. 몰리나라는 선수의 공격 성향을 보았을 때, 슈팅 1개만 쏘아올릴 선수는 아니다. 더 활용할 것이 많은 선수다. 특히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을 때 몰리나의 능력은 배가 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작년까지 어찌보면 거의 2경기당 1골을 터뜨렸던 그의 폭발력은 현재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작년까지 총 50경기 출전 22, 11도움) 물론 어제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단연 데얀과 몰리나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슈팅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게다가 투톱으로 나선다는 것은 상대 수비의 눈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 어떤 선수가 슈팅을 때릴지, 어떤 선수가 주로 공격을 하는지 상대 수비 입장에서 혼동이 될 선수여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셰도우 스트라이커라는 말이 성립이 된다.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데얀이 골 사냥꾼이고, 나머지 한 명이 셰도우다. 이걸 누구나 아는 이상 셰도우는 셰도우가 아니다.

 


전술의 변화는 어떨까?

이럴 때 조심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전술의 변화이다. 4-4-2 에서 4-5-1로의 변화인데, 이는 다소 미드필더 자원이 공격 자원에 비해 탄탄한 서울에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FC서울은 하대성, 고명진, 문기한, 고요한, 제파로프, 몰리나, 김태환, 최현태 등 미드필더 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최태욱 선수가 돌아올 경우 더욱 더 탄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4-5-1 전술에서 중요한 것은 중원의 장악력인데, 하대성, 제파로프 등 패싱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아디 선수를 중앙 미드필더(CDM)로 기용할 경우, 중원에서의 장악력은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데얀을 원톱에 세운 후 미드필더에서의 2차 침투로 골을 만들어냄을 노리는 것이다.

 

FC서울도 어느 정도 이러한 팀 내 스쿼드 변화를 받아들어야 한다. 현재의 공격 자원은 최근 5년간의 FC서울 공격수들의 계보를 보면 가장 적은 수를 자랑(?)한다. 숫자보다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과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누가 FC서울의 공격을 책임졌던가.

 


2007년 박주영, 김은중, 두두, 정조국, 이상협

2008년 박주영(시즌 중 아웃), 김은중, 정조국, 데얀, 이상협

2009년 정조국, 데얀, 이승렬, 이상협, 안데르손(잠깐이지만)

2010년 정조국, 데얀, 방승환, 이승렬

2011(현재) 데얀, 방승환, 이승렬, 이재안

 


사실상 올해 최전방에 나서는 빈도로 본다면 데얀과 방승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방승환 선수는 10경기 무득점에 그치고 있다. 이재안 선수도 6경기 무득점, 이승렬 선수 또한 7경기 무득점. 현재 FC서울 공격수(FW) 중 제대로 골 맛을 본 선수는 데얀 뿐이다. 사실상 작년처럼 데얀을 돕는 정조국 같은 선수가 없는 실정이라면 전술을 바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데얀을 원 톱으로 내세우는 4-5-1 의 형태에서 측면에서 몰리나와 고요한 등의 전방 침투, 제파로프의 공격 가담으로 인한 전술 변형 등을 꾀하면서 중원에 무게를 두는 방향이 좀 더 FC서울의 현 스쿼드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중원의 인재들이 제대로 쓰이지 않음과 동시에 공격에 있어서 활발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술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13라운드다. 이제 FC서울도 어느 정도의 결단은 필요하다. 공격 자원에 있어서의 배분, 전술 모든 면에서의 점검기간을 지나 안정적인 스쿼드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 = 김진웅 FC서울 명예기자 (akakjin45@naver.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1.06.12 16:26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후,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애칭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정환이 아내에게 보내는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직까지 서울에서 안정환처럼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을 얻은 선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기억 남는 세리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많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



박주영의 대표 세리머니는 사실 기도 세리머니다. 박주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상 깊은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박주영의 굼벵이 세리머니는 최근 그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하트 세리머니를 보이거나 키스 세리머니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는 배가 불러왔다는 동작을 통해 부인들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기도 한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그 해 4월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유니폼 안의 티셔츠에 여자친구의 애칭인 ‘굼벵이’와 ‘하트’를 그려 넣어 여자친구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이 세리머니로 인해 박주영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알려졌고 많은 여성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고. 2005년부터 이어져온 박주영의 사랑은 오는 6월 12일 결실을 맺는다. 그는 축구천재이기도 했지만 한 여자를 위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김승용의 ‘댄스 세리머니’



김승용은 현재 서울 선수는 아니지만 매번 인상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승용은 세리머니를 통해 별명이 생긴 경우다. 당시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리마리오 춤을 김승용이 세리머니로 똑같이 춘 것. 이 때문에 김승용에게는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서울에 다시 돌아온 김승용은 200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리마리오 댄스를 췄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은“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라는 반응과 “군대에서 2년동안 리마리오만 연습했나보다”라며 새로운 세리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본 김승용은 새로운 댄스 세리머니를 추게 된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이미 2007년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화제에 올랐던 김승용은 2009년 5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에게 ‘쏘리쏘리’춤을 췄다. 김승용은 "그동안 골을 못 넣은 것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쏘리쏘리 춤으로 대신했다"라며 골 세리머니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김승용. 그는 당시 유행하는 춤들로 팬들에게 재밌는 세리머니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다.



이청용의 ‘엠블럼 키스’



이청용은 한결같은 세리머니를 보여준 선수다.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로 대표된다면 이청용은 골을 넣은 뒤 엠블럼에 키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팬들과 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청용만의 세리머니였다. 많은 팬들은 그의 ‘엠블럼 키스’를 좋아했고 이는 볼턴에서도 이어졌다. 볼턴에서 골을 넣으면 서울 팬들에게 ‘엠블럼 키스’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첫 골을 성공시킨 이청용은 당시에 “정신없어 하지 못했다”며 후에 2009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청용의 또 다른 약속은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것. 그가 나중에라도 서울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엠블럼 키스’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성용의 ‘캥거루 세리머니’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캥거루 세리머니’로 대표된다. 그가‘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수원삼성과의 경기다, 기성용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았다. 그리고는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는 듯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0-0이었던 후반 인저리타임에 한솥밥을 먹는 차두리와 극적인 연속골을 뽑아냈을 때도 ‘캥거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기성용이 2008년 수원전에서 ‘캥거루 세리머니’를 처음 선보였을 때, 그 이유에 대해 “평소에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보고 아데바요르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선수가 인상깊은 세리머니를 해서 그냥 따라해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세리머니가 펼쳐졌을 때, 논란이 일었다. 기성용의 세리머니가 ‘새 모이쪼기’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이 ‘빅버드’였던만큼 새를 떠올리게 하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승렬의 ‘배트맨과 기타 세리머니’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은 이승렬. 그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승렬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경기장 한 쪽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익살스러운 세리머니로 많은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의 재치있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이승렬의 현재 별명은 피터팬이다. 그러나 이승렬의 별명 공모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별명 중에는 ‘배트맨’도 있었다.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받았던 그는 당시 소감에서 "2년차 징크스 없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배트맨 세리머니를 보이며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데얀의 ‘위험한 세리머니’



데얀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첫 시작은 2009년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벌어졌다. 골을 성공시킨 데얀은 매우 흥분한 나머지 전남 벤치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졌다. 순간 전남 벤치에 있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분노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왔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졌다. 그리고 당시 주심은 도발에 대한 행위로 데얀에게 경고를 선언했다. 이미 1장의 경고를 받은 데얀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를 향한 조준 세리머니로 인해 경고를 받았다. 포항의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를 향해 활을 쏜 것과 같은 이유로 경고를 받은 것. 이후, 매치데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얀에게 “팬들은 이런 세리머니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이런 세리머니를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알지만 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은 이런 위험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조국의 ‘아빠 세리머니’



정조국은 결혼 후에 패트리어트라는 별명 대신에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조국은 2010년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13골 중 10골은 아들이 세상에 나온 후 기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에 팬들은 그에게 아들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은퇴한 네덜란드산 폭격기 베르캄프로 변신했다는 의미에서 '분유캄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골을 성공시킨 뒤 엄지를 손에 문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 그는‘분유캄프’라는 별명답게 젖병 세리머니,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등을 펼쳤다. 현재는 프랑스로 떠난 그이지만 멋진 활약을 보여준 ‘분유캄프’정조국을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최태욱의 ‘수화 세리머니’



최태욱의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다. 동작도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세리머니를 했다. 최태욱은 지난 2010 쏘나타 K리그 대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달려가면서 한 손 위에 엄지를 치켜세운 다른 손을 올린 듯한 손동작을 취했다. 최태욱을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그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의 수화를 세리머니로 보여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렸다. 최태욱은 현재 부상 중이다. 얼른 회복하여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수화’세리머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명진의 ‘광고판 세리머니’



고명진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16강 경기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의 ‘광고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최근 최용수 감독 대행 하에서 고요한과 함께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은 1997년 최 감독 대행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이 1997년 카자흐스탄과의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선제골 후 넘어진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고명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너무 많이 달려서 힘들었다. 그리고 골을 넣어서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고명진은 최근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고명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고명진의 세리머니는 최 감독 대행의 예전 세리머니와 겹쳐보였다.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아기 독수리’고명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세리머니에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경우도 있다. 골을 성공시킨 뒤 단순하게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색다른 세리머니를 통해 선수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자. 그 안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이슬희 (cantona77@naver.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6.06 20:41














지난 19일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올림픽 최종 예선에 대비한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서는 김태환, 문기한, 이승렬이 이름을 올리며 '홍명보호'에 승선했다. 셋은 평소에도 절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3인방이다. 이들은 6월 1일에 강릉에서 열리는 오만과의 평가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FC서울 뿐만 아니라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줄 올림픽 대표팀 3인방의 각오를 영상으로 만나보자.




/ 영상=FC서울 명예기자 이현욱 (discann@naver.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나쓰리 2011.05.31 17:08

2011.5.29 탄천종합운동장
K리그 12 라운드
FC서울 VS 성남일화
0 : 2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5.29 22:24


2011.5.8 어버이날 FC서울과 상주상무의 K리그9라운드 경기가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최용수감독대행으로 3번째 열리는 경기.
양팀의 접전속에 데얀의 해트트릭!!!
그리고 경기종료직전 프리킥찬스에서 이루어진 영화같은 현명민의 결승골!!!
이날 FC서울은 상주상무를 4:3이라는 스코어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추가하며 리그10위에 안착 했습니다.
정말 축구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주는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 K리그9라운드 FC서울과 상주상무의 경기
그날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봤습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 선수입장

▲ 방승환. 이날 데얀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고명진. 이젠 유망주에서 벗어나 FC서울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김동진.

▲ 데얀의 첫골!!

▲ 데얀의 두번째골!!

▲ 고요한. 최근들어 자신감도 충만하고 움직임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 김치우,고명진. 김치우 선수..상주상무의 유니폼이 아직 어색 하네요 ㅠㅠ

▲ 후반투입!!이승렬.

▲ 데얀의 해트트릭!!사실 데얀이 안건드렸어도 들어가는 골이었지만 ㅋ 데얀의 헤트트릭 욕심을 부린거 같습니다 ㅎㅎ

▲ 현명민의 프리킥!!!바로 이것이 영화같은 결승골로 이어집니다!!

▲ 마치 우승을 한것 같은 골세리머니!!ㅋㅋ그동안 맘고생도 심했던거 만큼 기쁨도 컷던거 같습니다.

▲ 경기종료후 기쁜마음으로 상주까지 응원온 수호신에게 인사를 합니다.

▲ 상주까지 오셔서 FC서울을 응원해주신 수호신. 이날 최고의 경기를 직접본 영광의 얼굴 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5.09 12:25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골을 넣지 않고 승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보유다.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FC서울 역시 능력 있는 수많은 스트라이커가 팀을 거쳐 갔다. 그럼 이제부터 어떤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이 FC서울에 몸담았는지 알아보자.


1. 태국산 코브라 피아퐁 푸에온

활동연도 : 1984~1986

통산기록 : 43경기 18골 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85

K-리그 준우승 1회 : 1986

K-리그 득점상 : 1985 (21경기 12골)

K-리그 도움상 : 1985 (21경기 6도움)

K-리그 베스트 11 : 1985



1984년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에 입단한 피아퐁은 K리그 최초의 동남아시아 출신 용병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진가는 1985년부터 빛을 발한다. 21경기에 나와 12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 그는 도움도 6개나 기록하며 도움왕 까지 거머쥐며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의 순도 높은 활약은 팀의 큰 보탬이 되었고 럭키금성은 그해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준족에 스피드가 뛰어나고 특히 문전에서 남다른 순발력을 보인 피아퐁은 ‘태국산 코브라’라는 별칭으로 유명했으며 태국 국가대표 로도 129경기에 나와 103골을 터트리는 등 태국에서도 축구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3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피아퐁은 파항FA와 왕립 태국 공군FC에서 뛰었으며 1997년 은퇴하게 된다.
그 후 2007년 K리그 득점왕들의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스페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현재 태국 공군 대위의 신분으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왕립 태국 공군 FC의 코치와 태국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고 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2.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윤상철

활동연도 : 1988~1997

통산기록 : 300경기 101골 31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1990

K-리그 준우승 2회 : 1989, 1993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2, 1994

K-리그 득점상 (2회): 1990(30경기 12골), 1994(34경기 21골)

K-리그 도움상 : 1993(32경기 8도움)

K-리그 베스트 11 (4회) : 1989, 1990, 1993, 1994



1988년 드래프트 1순위로 럭키금성(현FC서울)에 입단한 윤상철은 K리그에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1989년 31경기에 나와 17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 윤상철은 이듬해인 1990년엔 30경기에 나와 12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자신은 득점왕에 오른다.
그 후 윤상철은 1993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해 32경기에 나온 윤상철은 8도움을 기록. 도움왕에 오르며 피아퐁에 이어 두 번째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차지했고 그 해 9월 28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선 K리그 통산 6번째로 20득점 2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1994년엔 34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득점왕에 올라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 한다.
이후 1997년 4월6일 부산대우와의 경기에서 통산 6번째 30득점 30도움 클럽 가입, 그 해 8월 13일 전북현대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100골 기록, 또 9월 27일 전남과의 경기에서 역시 K리그 최초로 300경기에 출장하는 등 K리그 사 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윤상철은 비록 신체조건이나 스피드, 활동량등 스트라이커로서 외적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골 에어리어 에서의 득점감각과 슈팅 타이밍, 슈팅센스 같은 내적조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현역시절 ‘얼룩치타’라는 별명이 있었던 그는 현재 경신고등하교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3.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활동연도 : 1994~1998, 1997~1998, 2004~2006

통산기록 : 148경기 54골 26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우승 1회 : 200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2회 : 1994, 1999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 1999년

K-리그 신인왕 : 1994

K-리그 인기상 : 1995

K-리그 베스트 11 : 2000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 : 2000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최용수는 입단 첫해부터 그 비범함을 뽐낸다.
1994년에 입단한 최용수는 그 해 35경기에 출전해 10골 7도움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2년간 상무에서 복무한 그는 2000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다. 34경기에 나와 14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MVP에 오른다.
또 그해 5월 24일 대전시티즌 과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5번째 20득점-20도움을 기록했다.
2001년 한국 선수 최고 금액으로 일본 J리그 제프 이치하라에 입단한 최용수는 일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이적 첫해부터 J리그 득점랭킹 2위에 오른 그는 2001년, 2003년에는 J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2003년 4월에는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으로 AFC 4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교토상가와 주빌로 이와타를 거친 그는 J리그에서 121경기 75골이란 기록을 남긴 뒤 2006년 FC서울로 복귀해 그 해 8월5일 FC도쿄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날카로운 눈매와 투지넘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인해 독수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98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활약은 눈부셨는데 당시 그는 대회 최다 득점인 7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일조한다. 현재 그는 FC서울의 코치로 재직하며 제2의 최용수를 발굴하는데 힘쓰고 있다.



4. 패트리어트 정조국

활동연도 : 2003~2010

통산기록 : 203경기 59골 18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3

FA컵 득점왕 : 2004

K-리그 컵대회 우승 2회 : 2006, 201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우승 1회 : 2010



정조국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대형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다.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정조국은 최성국(광주)과 함께 빅앤스몰 조합을 구성하며 대표팀 공격을 이끌었고, 2002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 2003 세계 청소년 대회 16강 진출등에 공헌했다.
2003년 LG치타스(현 FC서울)에 입단한 정조국은 32경기에 출전해 12골 2도움으로 신인왕에 오르며 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2004년엔 FA컵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정조국은 서울에서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출전하며 지난 2010년 9월25일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185cm의 좋은 신장과 튼튼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와 문전앞에서 침착함이 돋보이는 정조국은 현재 프랑스 AJ옥세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5. 불세출의 축구천재 박주영

활동연도 : 2005~2008

통산기록 : 91경기 33골 9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 : 2005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06,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회 : 2007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청소년 대회. 우리나라는 이 대회 우승과 함께 박주영의 발굴로 흥분되었다.
당시 박주영은 6경기에 출전해 6골 2도움으로 우리나라 공격을 이끌며 우승과 함께 득점왕 및 MVP를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 해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한 그는 2005년 초에 열린 카타르 국제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로 자리를 옮긴 그의 득점력은 멈추질 않았다.
데뷔 시즌에서 18골 4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만장일치 신인왕을 기록했다.
또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 2005년 한국축구에 박주영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조 본프레레는 ‘훅하고 불면 날아갈것 같다’며 그의 발탁을 꺼려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선제골을 기록하며 성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박주영은 다음해 2년차 징크스로 인해 득점이 줄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200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17경기에 나와 2골 4도움을 기록한 박주영은 그 해 여름이적시장 에서 이적료 200만 유로를 받고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했다.
프랑스 리그 데뷔 경기부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박주영은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5골 5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한 층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이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도 자리 매김한 박주영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5골을 터트렸고, 월드컵 본선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선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트리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일조했다. 대표팀 감독이 조광래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 없이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주영은 대한민국 최고 스트라이커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다.





6.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123경기 65골 20도움

수상경력 :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컵대회 득점상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7년 인천에서 데뷔한 데얀은 36경기에 출전하여 19골 3도움으로 득점랭킹 3위에 오르며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자리잡는다.
2008년 FC서울로 이적한 후에도 그의 득점포는 식을줄 몰랐는데 33경기에 출전해 15골 6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끈다.
2009년에는 25경기 출전 14골 1도움을 기록,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고 그해 7월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선 2골을 넣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19득점 10도움 이라는 기록을 보여주며 FC서울의 확실한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다.



7. 피터팬 이승렬

활동연도 : 2008~

통산기록 : 79경기 21골 8도움

수상기록 : K-리그 신인왕 : 2008

K-리그 준우승 1회 : 2008

K-리그 컵대회 우승 1회 : 2010
K-리그 우승 : 2010



2008년 드래프트를 통해 FC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당시 감독이던 귀네슈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된다.
시즌 초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그 해 31경기에 출전하여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승렬이 기록한 5골중 3골이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활약도 역시 순도 높았다.
2009년엔 중앙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겸하며 26경기에 출장해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진보한 모습을 보인 이승렬은 빙가다체제에서도 꾸준히 선발출장 하며 22경기에 나와 9골 6도움을 기록중이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2010년 잠비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승렬은 동아시아컵에도 출전해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고 한일전에선 결승골을 터트리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여세를 몰아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이승렬은 그리스전에서 교체투입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어린나이임에도 FC서울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승렬. 많은 전문가들은 이청용, 기성용의 뒤를 이어 유럽진출에 성공할 선수로 이승렬을 꼽고 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go16korea2002@yahoo.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4.30 10:24

2011.4월9일 서울월드컵 경기장

k리그 4라운드 FC서울과전북현대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K리그에서 승리가 없던 디펜딩챔피언 FC서울에게는 승리가 절실한 경기 였는데요

그 절실함이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느껴졌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승리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데얀의 멀티골 그리고 콜롬비아 특급 몰리나의 골로 전북현대를 3:1로 무너뜨렸습니다.

이날 인상적이었던건 데얀과 몰리나선수의 콤비플레이가 잘 맞았다는것과 제파로프의 움직임이 예전모습을 다시 찾았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문기한 선수의 발견!!!!하대성의 빈자리를 매꿔줄 문기한선수!!!앞으로 더욱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FC서울의 K리그 첫승리!!!그날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봤습니다.


PHOTO BY FC서울명예기자  유승철


 ▲데얀 선수의 골세리머니..정말 멋있지만 상대팀 서포터에게 향해서 결국 경고1장을 받았습니다 ㅠㅠ

▲제파로프 선수. 우즈백의 박지성이라 할만큼 우즈백에서의 그의 존재는 영향력이 크다 합니다
 

 ▲콜롬비아 특급 몰리나

▲김태환 선수. 대표팀에 부름을 받은 만큼 더욱 성장할 선수라 믿습니다
 


▲역시 FC서울의 대안은 데얀이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선수입니다

▲FC서울의 주장 박용호 선수.
 

▲현영민 선수.시즌초반 왠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성실'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선수임을 이날 보여주었습니다.
 

▲몰리나의 골이 들어가는순간!!!





▲문기한 선수.이날 문기한선수는 정말 대단 했습니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롱패스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 입니다
 


 



▲친정팀으로 복귀한 김동진 선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서울폭격기 2011.04.20 21:13
| 1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