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은 국가 간의 대결이다

 

FC서울 감독 대행 시절부터 ACL에서 2613103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는 최용수 감독은 ACL에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그는 국가 간의 대결이기 때문에 의지가 남다르게 작용하는 것 같다.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만큼 선수들에게도 이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리그보다 ACL이 재밌고 즐기고 있다. 편안하게 접근하면서도 아시아의 최고 권위 있는 대회에서 결과를 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남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최용수 감독은 2014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위한 중요한 일전을 내일 14일 다시 한 번 치른다. FC서울은 가와사키와 치른 161차전에서 극적으로 서울극장을 만들며 3-2로 승리해 8강 진출에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2차전을 하루 앞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공식기자 회견에는 최용수 감독과 함께 김치우 선수가 참석했다. 최용수 감독은 “1차전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ACL의 경우 2차전에서 승부가 바뀐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선수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김치우 선수 역시 “1차전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단판승부로 생각하고 사력을 다하겠다.”8강행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1차전 원정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김치우는, 리그에서 시즌 초반 성적은 좋지 않지만 ACL에서의 성적이 좋다며 작년 준우승 경험이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ACL에 경험 있는 선수들이 많은 만큼, 이런 큰 대회에서 보여줄 수 있는 면에서는 자신감이 있다고 대답했다. “시즌 초반에 비해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고, 노력 중이라고 본인의 상태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최 감독은 가와사키의 공격축구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서 상대는 다양한 방향의 공격 시도와 전진 패스 공격의 움직임이 다양하고 포지션별로 위협적인 선수들이 많다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홈에서 공격차단과 함께 우리 선수들의 장점을 살려 1차전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계획이다.
 

월드컵 휴식기를 앞두고 다른 팀들은 이미 리그를 마무리했지만, FC서울은 가와사키 전에 이어 18일에 치러지는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 성남과의 경기가 남아 있다. 최 감독은 비록 지금 순위는 낮지만 남은 두 경기가 후반기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두 경기를 잘 치르고 재충전하고 재정비해서 후반기에는 반드시 분위기를 전환하겠다.” 고 2연승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ACL에 강한 FC서울이 또 한 번 비상의 날개를 펼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비기기만 해도 문제없다. 이미 1차전에서 원정 승리를 거둔 FC서울은 두 골 이내로 허용하고 한 골 차로 패해도 원정 다 득점 원칙으로 8강에 올라갈 수 있다.

 

1419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FC서울과 가와사키의 일전은 한·일전인 만큼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뜨거운 한판 승부가 기대된다.
 

/= FC서울 명예기자 정소영(ojsy2001@hanmail.net)
사진/= FC서울 명예기자 이명수(leems777@naver.com)

 

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4.05.13 14:34









서울이 깨어나고 있다. 지난 베이징 궈안전부터 인천전까지 3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서울은 시즌 초반에 부진했어도 5월을 기점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서울은 4월말에 있는 경기를 잡으며 5월 대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서울은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초반 행보는 부진했다. 신생팀 강원에게 1-2로 패했고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경기 에서도 2-4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1-0으로 꺾으며 살아나나 싶었지만 산둥 루넝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했고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경남과 대구에게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과의 홈 경기에서도 1-1로 비기는 등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했던 서울은 4월 마지막 경기였던 울산과의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5, 서울은 폭발했고 성남, 스리위자야를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전북에게 0-2로 패했지만 서울은 FA컵과 AFC 챔피언스리그 포함 7연승을 질주하며 본모습을 되찾았다.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은 서울은 리그 개막전 상대인 수원에게 0-2로 패하더니 대전과도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항저우 그린타운을 3-0으로 꺾었지만 전남에게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했다. 전북을 3-1로 이겼지만 나고야 그램퍼스전, 부산전, 울산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나고야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0-2로 패했고 신생팀 광주에게 마저 0-1로 덜미를 잡히며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최용수가 감독 대행 자격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4월 마지막 경기에서 제주를 만났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서울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5월부터 서울은 약속이라 한 듯 폭발했다. 알 아인을 3-0으로 꺾더니 상주도 4-3으로 꺾으며 연승을 달렸다. 항저우와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경남, 용인시청을 잇달아 제압했다. 대구에게 0-2로 패하며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전년도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3-0 완승을 거두며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2013년도 우승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2-2로 비긴 서울은 인천과의 홈 경기에서 예상 못한 2-3 패배를 당했다. 이후 부리람과 0-0으로 비긴 서울은 부산에게도 0-1로 패했다. 경남과 2-2로 비긴 서울은 센다이를 2-1로 제압했지만 울산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2실점하며 2-2로 비겼다. 이후 서울은 센다이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수원과도 1-1로 비겼으며 성남에겐 1-2로 패하는 등 서울은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커녕 리그에서 1승도 못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4월 중순 대구를 4-0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수 세인티와의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둔 서울은 강원과의 경기에서 먼저 두 골을 내주고도 후반 고요한의 활약으로 세 골을 넣으며 3-2 역전승을 거두며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서울이 반격에 나서는 5. 서울은 부리람과 무승부를 거두고 전북에게 0-1로 패했지만 연세대와 대전을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 11무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고 제주와의 경기에선 패배가 예상되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끝에 4-4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서울은 전남을 3-0으로 꺾으며 팀 통산 40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014
년 서울의 초반도 부진했다. 리그 11위까지 처진 모습은 서울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서울은 베이징 궈안을 2-1로 물리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선 무려 55개월만에 원정 승리를 거뒀다. 인천과의 FA32강전에서도 3-2로 승리하는 등 서울은 기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전조
(前兆) 어떤 일이 생길 기미라는 뜻이다. FC서울의 ‘5DNA’가 깨어날 전조는 충분히 나타났다. 이제 올해도 ‘5DNA’를 보여줄 차례다. 앞서 열거한 2009, 2011, 2013년의 5월 성적만 놓고 보면 1553패로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의 FC서울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초반 부진을 딛고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4.05.01 01:42







K리그 클래식 최고의 라이벌전 슈퍼매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수많은 화제를 낳으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 슈퍼매치. 이제부터 그와 관련된 기록을 알아보겠다. 제목대로 관점은 지극히 FC서울 적이다.

 



서울은 얼마 전 수원에게 리그에서만
6연패를 당했고, 2007년에도 5연패를 당했다. 과거 슈퍼매치에서 연패를 당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서울도 수원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적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의 슈퍼매치 연승은 언제였을까? LG치타스 시절 20005212-1 승리를 시작으로 200148일 아디다스컵 1-0 승리까지 4연승을 달린적 있다. 20016171-0 승리를 시작으로 20028182-1 승리까지 5연승을 내달렸다. 2002818일 경기 당시 수원은 연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카드섹션을 펼쳤고 38245명의 관중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며 수원의 승리를 염원했지만 오히려 서울이 2-1 승리를 거두며 아픔을 줬다. 참고로 서울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매치에서 913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서울이 수원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섰던 연도도 알아보겠다. 서울은 2000년 수원을 상대로 5번의 맞대결에서 311패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42도움을 올리며 수원을 떨게 했다. 2001년에도 서울은 5번의 맞대결에서 32패를 거두었다. 2002년에는 3번의 맞대결에서 21패를 거두며 3년 연속으로 슈퍼매치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갔다. 이후 2005년 서울은 또 한번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간다. 서울은 이 해에 21무를 기록했다. 특히 10월에 거둔 수원 원정에서 3-0 승리는 원정팀이 거둔 첫 세 골차 승리다. 이후 서울이 슈퍼매치에서 우위를 가져간 해는 2010(21), 2013(211)이다.










역대 슈퍼매치에서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를 알아보자. 수원의 골망을 가장 많이 흔든 선수는 데얀과 정조국이다. 데얀은 슈퍼매치에서만 6골을 넣으며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위용을 보여줬다. 현재 경찰청에서 복무중인 정조국도 역대 슈퍼매치에서 6골을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5골을 넣으며 그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로 총 4골을 넣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진기록이 있다. 박주영의 유일한 슈퍼매치 해트트릭이다. 박주영은 2007321일 컵대회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해트트릭은 역대 슈퍼매치에서 나온 유일한 해트트릭이다. 서울 선수는 물론 수원 선수도 박주영을 제외하곤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없다. 도움 해트트릭 역시 서울 선수가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201044일 경기에서 데얀이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1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이 역시 데얀을 제외하고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2014
년 첫 슈퍼매치가 시작되려 한다. 서울은 연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난 시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며 자존심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올해부터 어떤 역사와 기록이 쓰여질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4.04.26 10:12








1984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FC서울.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감독들이 FC서울을 지휘했다. 초대 감독 박세학 부터 현재 최용수까지 FC서울을 지휘한 인물은 총 10. 역대 FC서울 감독들 중 부문별로 최고의 인물을 꼽아보자.

 

 

1. 최초의 우승을 거둔 감독은?

 

FC서울의 첫 우승은 1985.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 당시 박세학 감독이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피아퐁, 조영증, 김현태 등 우수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던 럭키금성은 1074패로 창단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최초의 리그 우승이자 FC서울이 차지한 최초의 타이틀이다.

 

 

2. 가장 오랜 기간 FC서울을 이끈 감독은?

 

가장 오랜 기간 FC서울을 이끈 감독은 두 명이다. 그 주인공은 고재욱 감독과, 조광래 감독. 고재욱 감독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간 팀을 이끌었고 조광래 감독 역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팀을 맡았다. 경기 수로 따져보면 고재욱 감독이 약간 앞선다. 고재욱 감독은 리그에서 209 경기를 치렀고 조광래 감독은 193 경기를 치렀다. 이들의 뒤를 잇는 감독으론 박세학 감독이 있다. 초대 감독인 박세학 감독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간 팀을 이끌었으며 총 117경기를 치렀다. 뒤를 이어 최용수 감독이 박세학 감독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현재 FC서울 4년 차 감독인 최용수가 이번 시즌을 무사히 마친다면 박세학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3. 가장 많은 승수를 기록한 거둔 감독은?

 



가장 많은 승수를 기록한 감독은 조광래 감독이다
. 조광래 감독은 FC서울 재임기간동안 88승을 거두었다. 뒤를 잇는 감독은 고재욱 감독이다. 고재욱 감독은 총 66승을 거뒀다. 두 감독은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용수 감독은 이 기록에도 근접해 있다. 현재 62승을 거두고 있는 최용수는 5승만 더하면 고재욱 감독을 넘어 역대 2위로 올라서게 된다.

 



4.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감독은?

 



FC
서울 감독으로 가장 많은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은 고재욱 감독과 조광래 감독, 빙가다 감독이다. 세 감독은 모두 두 개의 트로피를 FC서울에 안겼다. 고재욱 감독은 감독 부임 첫해인 1988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FA컵이 창설되기 이전 비슷한 유형으로 운영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엔 팀을 리그 두 번째 우승으로 이끌었다. 조광래 감독은 2000년 리그 우승 트로피, 2001년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FC서울 트로피 진열장에 진열했다. 빙가다 감독은 2010년 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 외에 박세학 감독 (1985년 리그 우승), 박병주 감독 (1998FA컵 우승), 이장수 감독 (2006년 리그컵 우승), 최용수 감독 (2012년 리그 우승) 이 한 차례씩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5. FC서울을 지휘한 외국인 감독은?

 

FC서울은 총 2명의 외국인 감독을 받아들였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은 2007년 부임한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 감독. 2002 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에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킨 귀네슈 감독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감독이다. 2007년엔 7위에 그쳤지만 2008년엔 리그 준우승을 거두었고, 2009년에도 5위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귀네슈 감독은 재임기간 동안 짧은 패스 워크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으며 이청용, 기성용, 고명진, 고요한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 해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비록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축구를 보여주며 아직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귀네슈 감독이 물러난 뒤 부임한 감독도 외국인이었다. 그 주인공은 포르투갈 출신의 넬로 빙가다 감독. 포르투갈 청소년 대표 코치 시절. 루이스 피구, 후앙 핀투, 아벨 샤비에르 등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라 불린 이들을 발굴한 빙가다 감독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요르단 대표팀,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등을 맡으며 아시아 축구를 경험했다. 2010년 첫 두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홈 개막전에서 전북에게 0-1로 패하며 다소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홈에서 18연승을 기록하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리그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제패하며 팀 역사상 최초의 더블을 기록했다. 또 그는 25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역대 K리그 감독들 중 데뷔년도 최다승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한 시즌 만에 감독에서 물러났는데 1991년 부산의 비츠케이 감독 이후로 우승 후 사령탑에서 물러난 두 번째 감독이 됐다.

 

 

 




6.
현재 감독, 최용수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은?

 

지난 2011년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어 FC서울을 이끌고 있는 최용수 감독. 최용수 감독은 FC서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올해로 4년 차를 맞이하는 감독이다. 활동 연도로만 보면 아직 초보지만 최용수는 각종 기록들을 남기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최용수는 현재 리그에서 112경기 622525패를 기록 중이다. (4/2 현재) 승률은 66.51%로 역대 K리그 감독들 중 최고 승률을 자랑한다.




또 그는 201229승을 거두며 단일 시즌 최다승을 거두었고, 최다 승점(96) 역시 함께 기록했다. 또 최용수는 2011년 부임 이후로 3년 차인 2013년까지 61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역대 FC서울 감독 중 3년 간 최다승 기록이다. 귀네슈 감독 역시 3년 간 팀을 이끌었지만 51승을 거두었고 1990년 우승을 거둔 고재욱 감독은 1989, 1990, 1991년 동안 38승을 거두었다. 2000년 우승 2001년 준우승을 거둔 조광래 감독도 2000, 2001, 2002년 동안 51승을 거두었다. 물론 최용수가 스플릿 리그를 치르며 그 어느해보다 많은 경기를 소화했지만 많은 경기가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같은 성과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최용수가 모조리 갈아치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4.04.02 02:09

 


K리그 클래식 개막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클래식에 참가하는 팀들 역시 각자의 목표를 위해 전훈지에서 뜨거운 담금질에 들어갔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괌과 일본 가고시마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fc서울은 14시즌 리그와 아챔 우승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성적을 예상하는 언론의 평가는 곱지 못하다.

2007년부터 서울의 공격을 이끈 데얀이 중국의 장수 세인티로 이적했으며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하대성도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또한 이번 시즌을 끝으로 아디는 은퇴. 서울코치로써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데몰리션 콤비의 몰리나도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

팀의 주축선수의 절반을 떠나보낸 서울이다. 이웅희와 김동석을 영입하긴 했지만 떠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부족 하다는 게 사실이다. 새로이 영입한 스페인과 브라질출신의 오스마르와 하파엘 코스타 역시 아직 국내리그에서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도 불안 요소이다. 하지만 정작 최용수 감독은 덤덤하다. 며칠 전 기자회견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겠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도전이다. 내 속에 감춰진 본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저평가된 좋은 선수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다"고 비장함을 드러냈다.

최용수 감독에게 위기란 단어는 익숙하다. 2011, 우승 휴우증을 겪고 추락 중이던 FC서울을 중도에 맡아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2012년엔 전북에 빼앗긴 우승트로피를 2년 만에 되찾아 오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2013년에도 최감독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빛이 났다. 리그 초반 승리가 없었지만 초조해하지 않고 묵묵히 선수단을 지도했다. 결과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창단 이래 아시아대회 최고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제 선수들과 팬들을 믿으며 묵묵히 팀을 이끌어온 최용수 감독이 지휘봉을 맡은 이래 위대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팬들이 그동안 팀을 잘 이끈 최용수 감독을 믿고 묵묵히 응원할 차례이다.


FC서울 명예기자 정용우 (mjgs6539@naver.com)

 

 

 


 

by FC서울명예기자 블로그지기 2014.02.17 09:22








오스마르에 이어 두 번째로 영입된 외국인 선수. 바로 하파엘 코스타다. 하파엘 코스타는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로 중국으로 떠난 데얀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다. 다부진 체격이 돋보이는 선수 하파엘 코스타에 대해 알아보자




하파엘 코스타는 1987년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마라냥주 주도의 상 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2006년 포르사 유소년 클럽에 입단했고 이듬해 프로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브라질 전국 2부리그인 세리에B의 아바이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하파엘 코스타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20084골을 넣었고, 이후 이툼비아라, 모지 미림, 산 호세 등에서 임대 생활을 했지만 3년간 그가 넣은 골수는 두 골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1년 브라질 세리에D의 메트로폴리타노에 입단하면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해 전국 리그에서 8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은 하파엘 코스타는 2012년 주 리그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게 된다. 브라질 카타리네제주 리그에서 메트로폴리타노는 초반 두 경기에서 연패를 당하지만 마마르시릴로 디아스와의 경기에서 하파엘 코스타가 두 골을 폭발시키는 활약으로 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이후 조인빌레와의 경기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4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이후 본격적으로 메트로폴리타노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게 된다.


               하파엘 코스타는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진출처-메트로폴리타노 홈페이지)






다음 경기인 에르만 아이칭거와의 경기에서도 두 골을 넣으며
3-2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샤페코엔세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의 1-1 무승부에 일조하는 등 세 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이후 브루스케전에서 멀티골. 캄보리우전 멀티골 등 맹활약한 하파엘 코스타는 카타리네제주 리그에서 팀 내 공격수들 중 최다인 18경기에 출전해 14골을 폭발시켰다. 활약은 전국 리그에서도 이어졌다. 후벤투드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끈 하파엘 코스타는 미라솔전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아라폰가스전, 모지 미림전에서 골을 터트렸고 총 10경기 출전 4골을 기록했다. 10경기 출전은 공격파트너인 레난과 더불어 팀 내 최다 출전 기록. 4골은 팀 내 최다골 이었다. 2012년을 계기로 팀 내 확고한 주전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하파엘 코스타는 2013년 주 리그에서도 활약을 이어간다. 유벤투스SC와의 카타리네제주 리그 개막전에서 첫 골을 신고한 하파엘 코스타는 과라니 데 팔호카전에서도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두 경기 연속골로 쾌조의 골감각을 보인 하파엘 코스타는 이후 에르만 아이칭거전에서 한 골을 기록했고 아바이전에선 팀의 두 골을 모두 책임지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과라니 데 팔호카, 피게이렌세, 크리시우마 등이 하파엘 코스타 골의 희생양이 됐고, 캄보리우는 멀티골의 희생양이 됐다.





2013
년 그의 주 리그 기록은 17경기 출전에 12. 역시 팀 내 최다골이었다. 팀 내 2위 기록이 하피냐, 펠리페 핀토 등이 기록한 2골이었으니 하파엘 코스타가 공격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타노는 더 이상 하파엘 코스타를 잡아둘 수 없었다.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러브콜이 쏟아지는건 당연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파엘 코스타는 2012 주 리그 우승, 2013 주 리그 2위를 차지한 피게이렌세로 이적하며 전국 리그에 나갔다. 하파엘 코스타는 피게이렌세 데뷔전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메리카RN과의 세리에B 개막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끈 것이다. 이후 아메리카 미네이로전에서 한 골을 터트렸고, 스포르트 레시페전에서 또 한번 멀티골을 기록하며 3경기 5골로 새 팀에서도 변함없는 골 감각을 보여줬다. 이후 팔메이라스, 상 카에타노, 오에스테 등이 하파엘 코스타에게 골을 허용했다.



                                       피게이렌세 시절 하파엘 코스타 (사진출처 - 피게이렌세 홈페이지)









당시 피게이렌세는 하파엘 코스타를 비롯해
, 보타보고와 샬케04에서 활약한 제 호베르투(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던 제 호베르투와 동명이인), 레알 베티스에서 정확한 프리킥으로 정평이 나 있던 마르코스 아순상 등을 앞세운 강팀이었다. 결국 피게이렌세는 브라질 세리에B에서 4위를 차지하며 세리에A로 승격됐고, 하파엘 코스타는 30경기 출전 14골을 기록했다. 30경기 출전은 팀 내 최다 출전 기록. 당시 골키퍼였던 티아고 볼피가 27경기에 출전했으니 하파엘 코스타의 팀 내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4골 역시 마일슨(11), 히카르도 부에노(7) 등을 따돌린 팀 내 최다골 기록이다. 이러한 브라질에서 맹활약은 서울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결국 하파엘 코스타는 2014FC서울의 공격을 이끌 선수로 낙점됐다.






하파엘 코스타의 장점은 단단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플레이다
. 키는 작은편이지만(178cm) 외모에서 알 수 있듯 매우 강한 체격을 지녔다. 따라서 몸싸움과 슈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고 에스쿠데로와 함께 저돌적인 플레이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또 현재 그는 절정의 골 감각을 지니고 있다. 2012년 주 리그와 전국 리그에서 기록한 골이 18, 2013년엔 26골을 기록했다. 지금의 골 감각만 유지한다면 서울에서도 골 폭풍을 몰아칠 수 있을 것이다.






FC
서울엔 아디를 비롯해 안드레, 히카르도 등 여러 브라질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공격수 쪽은 아니다. 2005년에 뛰었던 노나또는 11경기에서 2골만을 기록하며 기대에 못미쳤고 2010년에 영입한 리마는 R리그에서 두 경기만을 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공격수 외국인 선수 쪽은 데얀을 비롯, 드라간 스토이치사블레비치, 스카첸코 등 동유럽권 선수들이 활약했다. 따라서 하파엘 코스타가 브라질 출신 공격수로서 성공을 거둘 지도 관심요소다. 지난 6년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데얀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 역시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4.02.04 13:28






K리그 시즌이 휴식기인 요즘 스토브리그는 한창이다. 각 구단마다 예산을 줄여 스토브리그가 꽁꽁 얼어붙을거란 예상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이적 시장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FC서울은 데얀과 하대성이 떠났지만 그 공백을 메울 선수들이 속속 영입되고 있다. 첫 번째 영입된 선수는 스페인 출신의 수비수 오스마르 이바네즈다. 부리람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지난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FC서울과 맞붙었던 터라 서울팬들에게도 친숙한 오스마르는 이제 서울 수비진의 한축이 되었다. FC서울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오스마르. 그에 대해 알아보자.




오스마르는 1988년 스페인 칸타브리아주에 위치한 산토냐 에서 태어났다. 칸타브리아주의 주도는 산탄데르였기에 오스마르는 산탄데르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프로로 데뷔한 연도는 2007. 당시 그는 라싱 산탄데르 B팀에 입단했지만 바로 UD 살라망카 B팀으로 임대됐다. 그는 살라망카에서 35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인 뒤 라싱 산탄데르 B팀에 복귀했다. 복귀한 라싱 B팀에서도 그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자모라와의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B 개막전에 선발 출전한 오스마르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두 번째 경기인 레모나전 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다. 3라운드인 세스타오 리베르 전에선 시즌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한 오스마르는 팀 동료인 난도와 함께 팀의 중앙 수비를 책임지며 총 30경기에 출전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수비수임에도 팀내 최다인 6골을 터트렸다는 점. 오스마르는 페롤전에선 멀티골을 넣기도 했고, 데포르티보B, 시우다드 데 산티아고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당시 라싱 산탄데르 B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우리가 31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스마르의 득점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팀 역시 오스마르가 골을 기록한 경기에서 311패를 기록하며 오스마르 골 효과를 톡톡히 봤다.



                                           라싱 산탄데르 시절 오스마르 (사진출처 - 라싱 산탄데르 홈페이지)






2009~2010 시즌에도 오스마르는 34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 시즌엔 한골에 그쳤지만 오스마르의 활약은 A팀에도 알려져 시즌 도중에 A팀에 올라 애틀래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프리메라리가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2009~2010 시즌 라싱 산탄데르 B팀은 강등되었지만 오스마르는 A팀으로 자리를 옮겨 프리메라리거가 되었다. 하지만 A팀에서 오스마르는 좀처럼 자리잡기가 힘들었다. 자국 선수인 토레혼과 브라질 출신의 엔리케가 굳건히 자리를 지킨 수비진은 오스마르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었고 결국 오스마르는 4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1~2012 시즌에도 오스마르는 고작 8경기 밖에 출장기회를 얻지 못했고 팀마저 2부 리그로 강등당하자 이적을 모색했다.




오스마르는 새 팀은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 비록 프리메라리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3부 리그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태국행은 뜻밖의 결정이었다. 오스마르는 부리람 유나이티드와 26개월 계약을 맺고 촌부리와의 태국 FA컵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오스마르는 팀을 3-2 승리로 이끌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부리람이 태국 FA컵을 제패하며 2013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부리람은 플레이오프에서 호주의 브리즈번 로어를 만났고 오스마르는 안정된 수비로 팀의 무실점을 이끌었다. 0-0으로 승부가 승부차기로 넘어가자 오스마르는 팀의 첫 번째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성공시켰고 팀이 3-0으로 승리해 2013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게 됐다.


              부리람 시절 그는 FC서울과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기도 했다 (사진 출처-foxsports)



2013 시즌을 앞두고 부리람 선수단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공격을 이끌었던 아체암퐁과 오한드자가 타 팀으로 임대를 떠났고 고란 예르코비치도 자유계약으로 방콕 글래스로 떠났지만 스포르팅 히혼에서 카르멜로를 영입했고 포워드 카이 히라노도 영입했다. 또 한국 선수 이상민과 스페인 국적의 후안 케로, 체코 국적의 하비에르 파르티뇨 등이 합류했다.





이 선수들을 이끌 선수로는 오스마르가 선정됐다
. 오스마르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 부리람을 이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오스마르는 주장답게 방콕 글라스와의 태국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며 2-0 승리를 이끌었고,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무실점 수비로 0-0 무승부에 한몫했다. 골 넣는 수비수의 시즌 첫 골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나왔다. 오스마르는 베갈타 센다이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31분 동점골을 터트리며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오스마르는 팀의 주전 수비수로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일정 속에 오스마르는 4월부터 6월까지 무려 19경기에 출전한 것이다. 고비때마다 터트리는 골도 있었다. 베갈타 센다이와의 홈경기에서도 팀내 유일한 골을 성공시킨 오스마르는 아미 유나이티드전, 방콕 유나이티드전에서도 골을 터트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오스마르의 활약 속에 부리람 역시 장수 슌텐전 0-2 패배를 제외하고 단 한경기도 패하지 않았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분요드코르도 제압하며 8강에 진출했으며 오스마르는 1 2차전 모두 출전해 수비라인을 이끌었다. 이후 부리람은 리그에서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순항했다. 오스마르 역시 변함없이 선발 출장하며 또 다른 명문인 무앙통 유나이티드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후 재개된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에스테그랄에게 0-1로 패했지만 리그에선 4연승을 달리며 우승 굳히기에 들어갔다.





오스마르는 오스토피아, 체인엣전에서 연속골을 성공시켰다. 최고의 분위기 속에 에스테그랄을 홈으로 불러들여 역사에 도전했지만 1-2로 패하며 아쉽게 8강에서 탈락해야했다. 하지만 오스마르는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리그에만 집중하게 된 부리람은 큰 위기없이 순항했고 결국 2013 시즌 무패 우승에 성공한다. 그리고 FA컵과 리그컵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고 오스마르는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최고의 2013년을 보낸 오스마르는 시즌 종료 후 잉글랜드의 레스터 시티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지만 FC서울의 입단 제의를 받아들여 2014년부터 FC서울의 수비수로 활약하게 됐다.

오스마르는 2013년 태국에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사진은 도요타 리그컵 우승 후 (사진출처-부리람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오스마르의 장점은 큰 체격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다. 오스마르는 192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선수다. FC서울 중앙 수비진 선수들이 모두 180cm 초중반(김주영 185cm, 김진규 183cm, 아디 183cm)임을 감안하면 오스마르의 합류는 하늘길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수비수임에도 득점력까지 갖췄다. 2008~2009 시즌 라싱 산탄데르 B팀에서 팀 내 최다인 6골을 기록했고 지난해 부리람 에서는 무려 13골을 기록했다. 페널티킥 능력도 갖추고 있어 키커로 나서기도 했다. 따라서 지난해 수트라이커들의 효과를 톡톡히 본 서울은 오스마르의 합류로 더욱 강력한 수트라이커진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단점이 있다면 카드를 받는 횟수가 다소 많은 걸 꼽을 수 있겠다
. 오스마르는 2008~2009 시즌엔 팀 내 두 번째인 9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고 레드 카드는 팀 내 최다인 3장을 받았다.그 다음 시즌에도 8장의 옐로우 카드, 1장의 레드 카드를 받으며 여전히 많은 카드를 받았다. 프리메라리거였던 2011~2012 시즌에도 8경기에 출전해 무려 4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꽤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부리람 시절엔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해 4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지만 2013 태국 리그는 부리람이 강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지배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적게 받을 수 있었다. FC서울 선수들의 최근 3년간 옐로우 카드를 받은 것을 보면 아디는 20115, 20124, 20135. 김진규는 20103, 20126, 20133. 김주영은 20104, (2011년은 부상으로 4경기 밖에 출전하기 않았기에 제외) 20124, 20134개를 받았다. 따라서 오스마르가 옐로우 카드를 받는 횟수는 많다고 볼 수 있다. 옐로우 카드를 많이 받게 되면 경고 누적 등으로 최용수 감독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만큼 카드 받는 것을 줄일 필요가 있다.





FC
서울에 스페인 선수가 입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리람에서 아시아 축구를 경험하고 온 선수인 만큼 오스마르에게 좋은 활약을 기대해 볼 만 하다. 이미 그는 SNS를 통해 기존 선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부리람에서 맹활약했던 오스마르가 FC서울에서도 빼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4.01.27 22:06




레츠고 데얀, 어디 가.. 데얀..

데얀과의 이별소식은 FC서울 팬들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모두의 마블을 하며 서울에 랜드마크를 세워놨는데 홀라당 날린 느낌이랄까. 허탈하기도 하면서 막막하기도 한 데얀의 이적 소식이다. FC서울 뿐만 아니라 K리그에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겨둔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미 도장은 찍었고 그는 장수로 넘어간다. 이제 그를 볼 수 있는 건 ACL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어찌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건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내주어야 한다.
감성적인 태도는 얼른 정리하는 것이 좋다. 상실감이라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도 동반한다. FC서울은 데얀을 잃은 상실감을 얼른 떨쳐내고 새로운 FC서울 리빌딩이라는 설레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데얀의 팀'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FC서울은 데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데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던 만큼 데얀이 없는 FC서울의 전략은 데얀이 없이는 그려내지 못했다. 이제 그 그림을 그려낼 때이고 FC서울만의 색채를 다시 한 번 잡는데 기회라고 토닥여보지만 역시 힘들다...






꼭 데얀만한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가?

데얀에 대한 추억, 그의 업적을 다루는 기사들은 질리도록 보셨을테니 쓰지 않겠지만 데얀에 대해서 한 마디는 해야 이 뒤의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듯 하다. 데얀이라는 선수를 '최고의 공격수'라고 칭하기엔 참 칭호자체가 부적절하다. 그는 적어도 K리그 안에서는 '최고의 선수'였음이 분명하다. 공격수를 넘어서 선수 그 자체로서의 영향력이 무지막지 했기 때문이다.
한때 인천의 유병수가 각광을 받았었다. 당시 유병수가 데얀보다 나은 선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전적으로 반대했었다. 유병수는 골을 잘 넣는 선수였고 데얀은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였다. 내가 FC서울 팬이라서가 아니라 클래스가 다른 문제였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데얀은 '팀의 색깔을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이자 위험한 선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즉, 데얀이 빠진 '공격수 자리'에 다른 '공격수'를 넣는다고 해서 대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데얀'이 빠지면 '데얀'이 들어가야 한다. 즉,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데얀을 대체할 선수는 현재 K리그 클래식에서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데얀이 빠진 FC서울에서 현재의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다른 포지션까지의 보강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얀을 대체할 선수를 찾기보단 팀을 리빌딩 해야한다고 본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중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면 '한 선수의 부재'로 인해 팀의 색이 변하기 보다 팀이 빌딩이 된 후 각 요소에 맞는 선수들을 배치, 좋은 선수가 들어오면 그 선수가 팀을 바꾸기 보단 팀의 패턴과 플레이 스타일을 '강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미드필더를 탄탄히 하여 데얀없는 곳을 채워야

팀을 리빌딩함에 있어 현재 FC서울의 자원들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방향은 바로 '미드필더가 확실한 팀'이라 할 수 있다. 강한 미드필더의 압박과 패스웍으로 상대를 조는 스타일이 구축되는 쪽이 가장 빠르고 그것이 서울의 스타일이다. 귀네슈 감독 시절, FC서울은 특유의 젊음과 빠른 패스웍으로 '재미있는 축구'를 구현해냈다. K리그의 수준을 올려놓았다는 평을 들으며 서울은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거듭났다. 당시 터졌던 선수들이 바로 기성용, 이청용 아니었던가. 전통적으로 FC서울은 미드필더가 강했으며 현재도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수진이 탄탄하다. 하대성, 고명진, 고요한 등 인정받는 선수들과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현태 등의 선수들은 FC서울의 미드필더를 이끌고 나갈 귀중한 인재들이다.
다만, 현재의 미드필더진에 2진을 두어야 앞으로 FC서울의 팀색깔을 잡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진에 있는 선수들의 부재상황 또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하대성, 고명진의 경우 폼이 점점 올라오고 있어 해외로의 이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현재 FC서울의 미드필더 후보군 선수들이 아직까지는 특별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1진에 배치된 선수들의 부재시 메워주기 힘든 위치에 있어 이를 더욱 견고히 하여 스쿼드에 흔들림이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미드필더 강화에 있어서 역시 가장 떠오르는 선수는 제파로프다. 황보 관 감독 시절 제파로프가 황당하게(?) 떠난 기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다시 K리그로 돌아왔고 그의 예전 FC서울에서의 플레이나 서울에 대한 애정도를 보았을 때 그의 영입은 FC서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제파로프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다시 FC서울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공격수, 골을 확실히 터뜨려줄 묵직한 선수로

그렇다고 공격수를 소홀히 해야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결국 미드필더의 강화는 '골'로 이어지는 과정을 탄탄하게 할 뿐이지 결국엔 골은 공격수가 성공시킨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팀이 리빌딩 되는 과정에서 공격수는 골문 앞에서 침착하게 골을 완성시킬 수 있는, 묵직한 선수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롤 모델의 선수는 이동국이다. K리그 클래식에서 데얀만큼 팀을 지배하고 결정력을 보여주는 이동국 같은 선수를 영입하면 좋겠지만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팀을 지배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그러한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즉, 꾸준한 미드필더의 지원사격을 골로 성공시켜줄 그럴 선수가 필요하다. 화려한 도미보단 텁텁한 가자미 같은 채치수같은..그런 공격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숨고르고 장기적인 팀으로의 행보가 중요해

최용수 감독은 그 동안 쉴새없이 달려왔다. 리그를 우승하진 못했지만 ACL 준우승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그 지도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최용수 감독 또한 머리 속에서 감독이 그려낸 'FC서울'을 구축할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데얀이 빠졌다. 몰리나와 아디 역시 거취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장기적인 플랜으로 보았을 때 그들 또한 장기적인 플랜에서 과감히 제외를 한 채 리빌딩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FC서울의 스쿼드를 보면 선수들의 연령층이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유소년 축구 체제나 어린 선수들을 양성하는데에 있어서 K리그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FC서울이 앞으로의 플랜에서 어린 선수들을 적절히 활용한 팀 구성도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리빌딩을 잘 마친다면 FC서울은 앞으로 꾸준한 강팀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3.12.29 18:02


                                                                   최용수 장군이 잘 해내주리라 믿는다. (사진출처 : 코리안뉴스)



'살수대첩'이라 불릴 이 전쟁은 시작되었다


4세기 이래로 통합되지 않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하면서 수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이 대빵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동쪽으로 침범을 감행하였다. 수나라 양제는 자신들의 세력을 펼치는 노력을 펼치는 가운데 가장 거슬렸던 곳이 바로 고구려였던 모양이다. 고구려 침공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물적 물량도 엄청 쏟아 부었다. 동원된 병력만 113만여명. 총 움직인 인원만 35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는 공방을 거듭했지만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으로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결국 수나라는 철수를 결정, 퇴각을 하게 되는데....

FC서울 원정단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Facebook에 설렘을 감추지 않고 포스팅되는 FC서울 팬들의 광저우 원정 소식에 본인도 설레기는 마찬가지. 이들 중 "축구보러 중국까지 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걸로 알고 있다. 허나 이들은 당당하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역사를 보러 간다."고. 나도 그리 생각하고 중국 원정길에 오른 모든 이가 부러울 뿐이다.

그렇다. 지금 FC서울은 구단 창단 이래 가장 위대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광저우로 떠났다. 홈에서 잘 선방한 FC서울이 자신들의 홈으로 퇴각한 광저우를 치기 위해 떠났다. 막대한 물량과 군비를 쏟아부은 광저우의 공격은 생각보다 을지문덕 감독의 FC서울을 흔들어 놓지 못했다. 최용수 장군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잠시 막아두었던 데몰리션 강과 투고 강, 최근 준비해둔 데스쿠데로 강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 듯 하다. 광저우 홈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그들 중 2,700여명만을 남기고 우리의 강물로 쓸어버릴 준비 말이다. 


중국의 공한증은 그들의 사진마다 조금씩 드러난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중국과 FC서울의 대결구도

국가대항전 느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이상하게도, 클럽 대항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는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 분위기는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스포츠에서 유일하게나마 한국에 시달리는 중국의 축구 '공한증' 때문인지 그들은 이번 결승전을 마치 중국의 경기인냥 선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중국은 클럽대항전에서조차 '승점자판기' 수준이었고, 그 어떤 팀들도 중국 클럽 팀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생각치도 않았던 시절이 길었기 때문이다. 허나 어느샌가 치고 올라온 중국의 축구클럽팀, 그 중 대표적인 팀 광저우가 현재 결승전에서 으르렁대고 있다. EXO처럼.


광저우의 대표 선수 3인방 (출처 : MK 스포츠)



지금 이 순간, 광저우가 '돈으로 구단을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축구계를 부패시키는 팀이다' 등의 이야기는 접어두도록 하자. 현재 광저우(이번 시즌)는 아시아 최고의 팀 중 하나이고 클럽 팀들의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ACL 에 무서운 상승세로 올라와 있다. 중국 국민들은 그 동안 축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이번참에 모두 풀어낼 기세로 덤벼들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FC서울이 속한 한국은 잠잠하다. 아직도 스포츠 뉴스는 잠잠하다. 왜냐? 여태껏 한국 클럽은 많이 우승해왔으니깐 국가 자체가 덤덤할 것이라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중국의 분위기에 비하면 잔잔한 도나우 강의 잔물결 수준이다. 즉, 현재 분위기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FC서울이 대결을 펼치는 느낌이다. 그나마 모든 K리그 팬들이 FC서울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겠다.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 안에서 국가 대항전의 느낌. 좋으나 나쁘나 이 분위기 때문에 이 경기는 무언가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하다. 



(사진출처 : FC서울 두번째 이야기)



FC서울, 하던대로 하고 돌아오라


사실, 결승 1차전에서 보여준 광저우의 전력은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세트피스 상황이나 측면을 열어주는 경향으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FC서울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상대 문전에서 보여주었던 FC서울 특유의 패스 플레이는 광저우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다소 수비적으로 배치되었던 하대성을 비롯한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가 아쉬울 뿐이었다. 이로 인해 상대에게 중원 공간을 크게 주게 되었고 한 번 주도권을 잃으면 역습으로 빠르게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원래대로 조금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유지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렬하다. 이 경기가 보여준 것은 하나다. 원래 하던대로 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얘네랑 결승에서 붙는다고 하면 "좋은 경험 될 것." 이라는 말만 했을지 모른다.




광저우는 FC바르셀로나가 아니다. 절대적은 우위에 있는 팀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지만 그들 또한 3명의 외국인 용병의 활약으로 물들어진 중국 클럽 팀 중에 하나이다. FC서울 또한 데얀, 몰리나, 에스쿠데로 등 화려한 공격진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 수비진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현재 결승 2차전에서 부족한건 원정경기에서 오는 홈팬들의 압박과 선수들의 연봉 뿐이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고 FC서울 팬이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경기를 살수대첩이라고 부르는 건 그들의 막대한 홈팀 관중과 그들이 투자한 막대한 돈이 마치 우중문이 우둔하게 끌고 온 병사들과 군량과 같고 그들의 공세를 서울 홈에서 잘 막아낸 FC서울이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같아 말하게 되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FC서울은 지금의 훌륭한 선수들로 여태껏 잘 싸워왔고 이번 결승 2차전에서도 잘 이겨내리라 굳게 믿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FC서울의 ACL 우승 기원하는 글을 간단히 쓰려했는데 길게 써진 것 같다. 그래도 이왕 썼으니 마무리를 져야겠다. 광저우가 중국을 통일하고 아시아에 그 기세를 펼치러 나온 수나라 느낌이라면 FC서울은 오밀조밀 만들어 오며 주변 강국들의 견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용맹함을 유지한 채 아시아의 강호로 올라온 고구려 느낌일 것이다. 강이 봇물처럼 터져 수나라의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내린 것처럼, 그리고 이 결승전이 실제로 제 2의 살수대첩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 말이다.




/대전폭격기 (akakjin45@naver.com)

by FC서울 명예기자단 2013.11.08 16:33







8강에서 만난 알 아흘리를 꺾고 4강에 오른 서울. 서울이 4강에 오른 것은 AFC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로 처음이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만하지만 서울이 바라보는 곳은 더 높은 곳에 있는 우승이라는 곳이다. 그렇기에 서울은 우승을 위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나아가 200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K리그 팀들의 연속 결승진출을 위해서라도 4강전 승리는 절실하다. 4강전 상대는 이란의 에스테그랄. 에스테그랄은 조별리그 D조에서 1위를 차지했고 토너먼트에선 각각 알 샤밥 알 아라비(UAE) 부리람(태국)을 물리치고 4강에 안착했다. 이란 국가대표 대부분이 소속되어 있는만큼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평이다.

 

에스테그랄은 어떤 팀?

 


                                에스테그랄 선수들 (사진출처-에스테그랄 페이스북)


에스테그랄은 1945년에 창단된 팀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자국 리그에선 7회의 우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 시즌엔 3위로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에스테그랄은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선 2회 우승을 기록했지만, AFC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로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이번 대회를 우승의 적기로 보고 있다.




에스테그랄의 홈구장은 아자디 스타디움이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란 원정을 갈 때마다, 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정팀들에게 꽤나 악명높은 경기장으로 불린다. 고지대에 위치한데다 종교상의 이유로 여성들의 출입을 금지시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표팀도 아자디 스타디움에선 고전했다. 2009년에 열린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네쿠남의 프리킥 골로 끌려가다 종료 직전 박지성의 동점골로 간신히 무승부를 거두었고, 작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고전 끝에 0-1로 패했다. 따라서 서울은 원정 경기로 치러지는 2차전에 대비해 홈경기에서 대승을 거둘 필요가 있다.



                                      자바드 네쿠남(6번) (사진출처- 에스테그랄 페이스북)






주목할 선수로는 단연 자바드 네쿠남이다. 이란 대표팀에서 오랫 동안 중원을 책임진 선수로서 한국 팬들에게도 낯익은 선수다. 그는 프리메라리가에서 6년이나 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여전히 간판 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또 그의 발끝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프리킥은 경계대상 1호다.




공격수 파하디 마지디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 36세의 백전노장 마지디는 현재 팀의 주장을 맡고 있으며, 프로 13년차로 경험도 풍부하다. 한때 AFC 올해의 선수 후보에도 올랐을 만큼 아시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알 샤밥 알 아리비전에선 직접 골을 터트리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코스로 헤이다리 (사진출처- AFC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수비수 코스로 헤이다리는 수비수임에도 공격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측면 수비수를 맡고 있는 헤이다리는 빼어난 크로스 능력을 갖추고 있고, 간혹 심심찮게 득점을 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헤이다리는 알 샤밥 알 아리비전에서 골을 넣었고, 부리람과의 8강전 1차전에선 직접 결승골을 터트려 팀의 1-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밖에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바 있는 테이무리안. 특이한 이름으로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수비수 사데기도 요주의 인물이다.




앞서 소개한 선수들 모두 이란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 따라서 방심은 금물이지만, 주눅들 필요도 없겠다. 서울 역시 하대성, 고요한, 윤일록, 데얀 등 현직 국가대표 들이 즐비하고 몰리나, 김진규, 김용대, 최효진, 차두리 등도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K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싸울 FC서울. 지난 200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K리그의 연속 결승진출 기록을 위해 서울의 첫 걸음이 떼어지고 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9.24 13:51



베이징 궈안을 물리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오른 FC서울. 서울은 K리그 팀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K리그를 대표하여 싸우게 됐다. 8강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사우디의 알 아흘리. 서울은 822일 목요일 새벽 3(한국 시간) 알 아흘리의 홈인 킹 압둘 아지즈 스타디움에서 1차전을 치르게 된다. 지난 2009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선 움살랄에 밀리며 탈락한 서울은 2011년에도 알 이티하드에 패하며 8강에서 멈춰야만 했다. 두 번이나 중동 모래바람에 막혀 탈락의 아픔을 맛본 서울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알 아흘리를 제압하고 4강에 오른다는 각오다.




서울의 분위기는 좋다
. 현재 리그에서 8연승을 달리며 쾌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요소 또한 존재한다. 우선 아디가 베이징 궈안전 퇴장으로 이번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차두리 역시 근육통으로 대전전에 결장하는 등 정상 컨디션이 아니고, 하대성은 페루전에서 입은 발목 부상 탓에 출장이 불투명하다. 게다가 서울은 경기장과 거리가 먼 숙소를 배정받아 경기 당일 컨디션 유지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서울은 과거 움살랄, 알 이티하드 원정을 경험했기에, 이번 경기에선 적응이 한층 더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리고 주전 선수 일부가 컨디션이 안좋지만, 대체 자원 역시 충분하다. 과거 중동팀 과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데얀과 몰리나에게 다시 한번 활약을 기대해본다.





 

 


알 아흘리는 어떤 팀
?

 

                                                    알 아흘리 선수들 (사진출처-알 아흘리 페이스북)







알 아흘리는 사우디 제다를 연고로 하고 있고, 1937년에 창단하여 긴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프리미어리그에선 2회 우승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2010, 2011년 국왕컵을 연속으로 제패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작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선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울산에게 3-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따라서 알 아흘리 역시 작년에 아쉬움을 씻기 위해, 이번 승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또 작년 리그에서 5위에 그쳐 2014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좌절되었기에, 이번 경기가 절실하다. 사우디 프리미어리그가 유럽과 같이 추춘제로 열려 현재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는 점, 비토르 페레이라 감독이 부임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점이 변수로 꼽히고 있다.


 


                                            비토르 시모에스(오른쪽) (사진출처-AFC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주목해야 할 선수로는 빅토르 시모에스가 꼽힌다.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 시모에스는 작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7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프리시즌에 열린 알 파이살리(요르단)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팀의 주포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작년 울산 주장이었던 곽태휘 역시 결승전을 앞두고 시모에스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는 등 위협적인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20072008년 전남에서 시몬이라는 등록명으로 K리그를 경험한 적이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현재 다리부상으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것은 변수다.


                                                     브루노 세자르 (사진출처- AFC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미드필더 브루노 세자르 역시 요주의 인물이다. 코린티안스, 벤피카 등 명문클럽에서 활약한 세자르는 올해 팀에 합류한 선수다.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코린티안스 시절 31경기에 출전해 13골을 터트리는 등 득점력도 갖추고 있고, 지난 2011년에는 마누 메네제스 감독의 부름으로 A매치에도 출전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엘 자이시와의 16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터트리는 등 알 아흘리 공격의 핵으로 활약중이다. 이 밖에 여름 이적 시장에 알 아흘리로 이적한 석현준의 출전 여부도 관심이 모아진다. 당초 석현준은 중동행에 관심이 없었지만, 비토르 페레이라 감독의 설득으로 알 아흘리에 합류했다. 챔피언스리그 선수 등록을 앞두고 입단했기에, 기회가 된다면 출전이 예상된다. 현재 사우디 국가대표 수비수인 오사마 하우사위도 요주의 인물이다.

 




                              최용수(위), 비토르 페레이라(아래) (사진출처-AFC 홈페이지)





최용수vs비토르 페리이라 두 젊은 감독의 지략대결!




양 팀 모두 젊은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 그 주인공은 최용수와 비토르 페레이라. 젊은 감독이지만 두 감독 모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용수는 2011년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하위권에 처져 있던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이듬해인 2012년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비토르 페레이라 감독은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 후임으로 FC 포르투에 부임해 2년 연속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2~2013 시즌엔 무패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모예스 감독 후임으로 에버튼 감독 부임설이 돌았지만, 알 아흘리의 지휘봉을 잡아 이번 시즌부터 팀을 이끌게 됐다.




젊은 감독 답게 두 감독 모두 시원스런 공격축구를 선호한다. FC서울은 무공해 축구를 앞세워 최근 리그 3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고 있다. 알 아흘리는 AFC 챔피언스리그 그룹 라운드에서 16골을 터트리며 참가 팀중 최다 골을 기록했다. 두 젊은 감독의 지략대결.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를 지을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8.20 18:38







서울 팬들은 이번 승리에 정말 큰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라이벌을 상대로 자존심을 세운 것은 물론, 지긋지긋했던 수원전 8경기 연속 무승 기록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FC서울은 이번 승리는 여러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 승리가 특별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1.
선제 득점 아디. 2008년 챔피언결정전 득점과 닮았다?

 



전반
29분 아디는 몰리나의 코너킥이 날아오자 높이 솟아올라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골문 구석에 꽂아넣었다. 2008년 챔피언결정전 이후로 5년 만에 터진 아디의 수원전 득점. 근데 이 골. 당시 기록한 골하고 흡사한 부분이 있다. 2008년 당시에도 아디는 코너킥이 날아오자 돌고래처럼 솟아올라 날린 헤딩 슈팅이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골을 기록했다. 심지어 시간대마저도 전반 20분대로 같고, (2008년 전반 21, 2013년 전반 29) 선제골이라는 것도 같다. 다른점이 있다면 코너키커. 2008년엔 기성용이 코너킥을 올려줬지만, 2013년 코너키커는 몰리나였다. 2008년 당시엔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번엔 2-1로 승리하며, 아디는 승리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2. ‘
수트라이커김진규의 공격포인트 행진은 계속된다!

 






수원전 이전까지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31도움)를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뽐낸 김진규. 그는 후반 8분 몰리나의 프리킥을 멋진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팀의 두 번째 골을 뽑아냈고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을 5경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5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는 라데, 윤상철, 이천수 등 K리그 전 현직 특급 공격수들이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고, 김진규는 수비수임에도 이런 놀라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지션을 수비수로만 한정하면 김진규는 역대 2위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1위는 1984년 조영증이 기록한 6경기. 만약 김진규가 다음 경기에서도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다면, 역대 수비수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김진규가 다음 경기에서 타이 기록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3. 이번에 깨진 징크스는 무승 징크스뿐이 아니다!

 







서울은 이번 경기 승리로 인해 수원전 무승 징크스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깨진 것은 무승 징크스 뿐만이 아니다. 서울은 수원전 8월 맞대결 패배 징크스도 함께 날려버렸다. 서울이 8월에 수원을 꺾은 것은 2007FA컵이 마지막. 당시 FA16강전에서 서울은 수원을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론 8월에 승리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 해 8월에 리그에서 수원을 다시 만났지만 1-2로 패했고, 200981일에도 0-2로 패했다. 2010828일엔 2-4로 패했고, 작년 818일에도 0-2로 패하는 등 서울은 8월의 슈퍼매치에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번 승리로 인해 8월 무승 징크스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8.04 01:16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현역 시절 자타공인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K리그에서 통산 148경기 출전 5426도움을 기록했고, 2000년엔 1410도움을 올리며 MVP 수상 및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대활약을 펼쳤다. 국가대표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A매치 67경기 출전 27골을 기록했고, 월드컵에도 두 번이나 나가는 등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다. 이런 실력 때문인지 최용수는 수원을 떨게 만든 적도 있다. 바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2000년이다. 최용수는 2000년에 벌어진 5번의 수원과 맞대결에서 42도움을 기록했고, 덕분에 팀도 라이벌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수원전을 맞아, 최용수가 수원전에서 맹활약했던 추억을 돌아보고자 한다.




2000년 수원과의 첫 맞대결은 329일 대한화재컵에서 이루어졌다. 최용수는 선발 출장하여 두 개의 슈팅을 기록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였지만, 골은 넣지 못했고, 경기는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부를 가려야 하는 컵대회 특성상 승부는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최용수는 실축을 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날 경기는 남아있는 경기에서 엄청난 반전스토리의 전초전일 뿐이었다.




다음 맞대결은 49. 이 날 경기는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서울이 정광민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수원은 이경우가 동점골을 넣었고, 이후 안드레가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지만, 비탈리에게 또 다시 동점골을 허용했다. 안드레가 프리킥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달아나자, 수원은 양종후, 비탈리, 이경우가 연속 골을 성공시키며 3-5로 달아났다. 패색이 짙던 상황, 드디어 최용수가 일어섰다. 최용수는 후반 42분 안드레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으로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최용수의 골로 인해 팀은 흐름을 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4-5 패배를 당했다.




이후 양 팀이 다시 만난 건 K리그. 521일 리그에서 첫 대결이자 시즌 세 번째 대결이 펼쳐졌다. 이 날 경기 전 양 팀은 리그에서 나란히 11패를 거두고 있었기에, 선두권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한판이었다. 수원이 이경우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이 경기의 주인공은 최용수였다. 최용수는 전반 37분 안드레의 프리킥을 백헤딩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뽑았고, 후반 8분엔 정확한 패스로 정광민의 발리 슈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은 이후 김성재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지만, 최용수가 직 간접적으로 만들어낸 두 골을 끝까지 잘 지켜 결국 2-1 승리를 거두었다. 서울은 이 날 승리로 21패를 기록하며 단숨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최용수의 현역 시절 수원과 맞대결을 벌이는 모습 (사진출처-KFA PHOTO)







네 번째 맞대결은
625일에 열렸다. 당시 서울은 리그 1위를 달릴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수원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어 치열한 대결이 예상 되었다. 이 경기에서도 최용수는 변함없이 선발 출장했다. 지난 두 경기에서 골을 터트리며 주전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던 최용수는 이번엔 도움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전반 19분 오른쪽 코너를 파고들던 최용수의 정확한 패스가 정광민의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 된 것이다. 결국 이 한골을 끝까지 지킨 서울이 1-0 승리를 거두며 단독 선두를 지킴은 물론, 승점 22점으로 K리그 팀들 중 가장 먼저 승점 20점대에 자리했다. 최용수 역시 4호 도움을 기록하며, 도움 1위 신진원(5)을 바짝 추격했다.





마지막 맞대결은
930일에 열렸다. 그해 서울은 리그 중반 10연승을 달리는 등 리그에서 선두를 고수했지만, 수원전을 앞두고 3연패를 당하며 잠시 주춤했다. 게다가 당시 주전 골키퍼였던 신의손 마저 무릎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워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부동의 스트라이커 최용수의 존재는 이 모든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전반 20분 수원의 류웅렬에게 선제골을 내주긴 했지만, 최용수는 전반 30분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상승세를 탄 최용수는 결국 역전골까지 뽑아낸다. 전반 40분 이영표의 패스를 받아 다시 한번 왼발 슈팅으로 골을 터트리며 스코어를 2-1로 만든 것이다. 이후 후반 12분 데니스가 동점골을 넣긴 했지만 후반 36분 최태욱의 패스를 받은 쿠벡이 다시 골을 터트리며 3-2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는 꽤 거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당시 수원의 김호 감독은 거친 항의 끝에 퇴장 당하기도 했고, 최용수는 수원의 집중 견제 속에 공중볼을 따내던 중 류웅렬에게 무릎으로 등을 가격당하는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용수는 결국 두 골을 성공시키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고, 팀은 177패 승점 47점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경사를 누렸다.



 





과거 스승은 현역 시절 수원전에서 맹활약을 보이며, 라이벌 앞에서 자존심을 세운 적이 있다. 이젠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보여줄 차례다. 이번 슈퍼매치에선 과연 어떤 선수가 靑出於藍(청출어람)을 보이며 스승을 미소 짓게 할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8.02 01:31







지난 716일 강원과의 원정 경기. 후반 13분 코너킥 상황에서 키커로 나선 몰리나는 문전으로 정확한 킥을 날렸고, 이는 김진규의 헤딩골로 연결됐다. 이번 시즌 10호 도움. 이로써 몰리나는 K리그 최초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도움을 기록했다.(2011 시즌 12도움, 2012 시즌 19도움) 사실 도움은 굉장히 어려운 기록이다. 정확한 패스가 필요하거니와 그 패스를 이어받은 동료가 반드시 골로 연결해야 인정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리나가 기록한 3년 연속 두 자릿수 도움은 더욱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러 기록을 남기며 K리그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몰리나. 그의 도움 기록이 특별한 이유를 알아보자.

 






성남 시절 몰리나는 두 자릿수 도움을 기록한 적은 없다. 직접 본인이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서울에는 데얀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도움에 더 치중할 수 있었다. 몰리나가 입단한 2011년 이후 데얀이 기록한 67골 중 무려 19골이 몰리나의 도움을 받아 기록된 것이다. 그 덕에 이 둘은 데몰리션 듀오라고 불리면서 K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다.




몰리나의 도움을 시간대별로 분석해보면
, 그의 도움은 전반 초반(0~10) 그리고 후반 초반(0~10)과 후반 중 후반(20~30, 30~40, 40~45)에 각각 5개씩의 도움을 기록했다. 이는 몰리나의 도움으로 인해 서울이 경기 초반에 유리한 흐름을 가져갔거나, 경기 후반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상대를 긴장시켰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서울은 지난 2011515일 경남과의 홈경기에선 몰리나가 전반 9분 기록한 도움으로 인해 3-1 압승을 거두었고, 작년 홈 개막전 전남과의 경기에선 전반 4분에 나온 몰리나의 도움이 2-0 승리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강원과의 원정경기, 경남과의 원정경기,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선 모두 인저리 타임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서울 극장에 단단히 한몫했다.




몰리나의 도움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빛을 발했다
. 201142. 첫승이 간절했던 전북전에서 전반 20분 데얀의 선제골을 도왔고, 최용수 감독의 데뷔전인 430일 제주전에서도 멋진 프리킥으로 박용호의 헤딩골을 도왔다. 2012310일 전남전에서는 이른 시간에 나온 도움으로 인해 팀이 홈 개막전 징크스를 터는데 한몫했고, 88일 경남전, 811일 성남전에선 연속 경기 도움으로 우승으로 가는 승부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몰리나는 몰아치기에 능하다
. 몰리나는 연속 경기 도움을 무려 9번이나 기록했다. 게다가 2012429일 강원전부터 2012528일 인천전까지 기록한 5경기 연속 도움은 K리그 연속 경기 도움 2위에 올라 있다. 올해도 2경기 연속 도움, 3경기 연속 도움을 각각 한번씩 기록하는 등 몰리나는 한번 불붙으면 멈출 줄 모르는 도움 능력을 보이고 있다.









몰리나는 도움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몰리나는 득점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몰리나는 데뷔시즌 10골을 시작으로, 201012, 201110, 201218골을 넣으며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직접 골을 넣으며 해결사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2011813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몰리나는 후반 인저리타임에 극적인 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덕분에 최용수 감독은 격렬한 세리머니로 바지가 찟어지기도 했다. 또 작년 강원과의 경기에선 해트트릭과 함께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골 도움 동시 해트트릭이라는 진기록을 남겼고, 전북과의 홈경기에선 멋진 시저스킥으로 팀의 우승을 자축하는 골을 터트렸다. 올해 첫 승을 거둔 대구전 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4-0 대승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
2년 연속으로 10-10을 달성한 몰리나는 올해 5골만 더 기록할 경우 3년 연속 10-10 달성도 가능하다. 만약 20경기 이내에 10-10을 달성할 경우 2011년 이동국이 세운 최단 기간 10-10 기록도 경신이 가능하다. 몰리나의 도움은 팀의 승리 확률을 높혀주기도 한다. 몰리나가 도움을 기록했을 때 FC서울 은 3041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서울을 상대하는 팀은 몰리나의 발끝을 막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몰리나의 축구 인생을 보면 탄탄대로를 달린 것처럼 보인다
. K리그에서는 늘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3년 멕시코의 모렐리아에 입단하며 첫 해외 생활을 시작한 몰리나는 지독한 외로움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고, 결국 반년 만에 고국으로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몰리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K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련을 겪은 탓인지 몰리나는 완벽한 마인드와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UAE 알 아인에서 뛸 당시 콜롬비아에 머물던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몰리나는 팀에 남아 축구에 열중했다. 몰리나 본인도 당시엔 아내가 힘들지 않을지, 아이는 어떻게 태어났을지 등 많은 걱정에 신경이 쓰여서 축구에 전념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그는 변함없이 팀을 지켰다.




지금까지 세운 기록만으로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기록을 보유중인 몰리나
. 그가 남긴 기록만으로도 그는 K리그의 전설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 그가 도전할 기록은 남아있다. 바로 에닝요가 세운 최단경기 60-60 기록 도전과 K리그 최초 3년 연속 10-10 달성 이다. 현재 137경기에 출전해 5552도움을 기록중인 몰리나는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207경기만에 달성한 에닝요의 60-60 달성을 쉽게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5골만 더 기록하면 10-10 달성이 가능하기에 이 기록 역시 무난하게 성공할 전망이다.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몰리나. 앞으로 어떤 기록으로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지 주목된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8.01 00:36


지난 한일전 득점에 성공한 후 환호하는 윤일록의 모습 (사진출처-KFA PHOTO)






얼마 전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윤일록은
A매치에서 멋진 슈팅으로 골을 터트렸다. 자신의 A매치 첫 번째 득점. 윤일록의 골은 자신의 A매치 첫 번째 득점이라는 것 외에도 특별함을 갖고 있다. 대표팀은 비록 1-2로 패했지만, 윤일록은 10년 넘게 이어졌던 국내에서 열린 한일전 무득점 사슬을 끊어버렸다. (마지막 득점 2000426일 잠실에서 기록한 하석주) 또 윤일록은 홍명보호 출범 후 첫 번째 득점자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며, 동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기록한 유일한 득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 골 외에도 FC서울 선수들은 A매치에서 여러 의미 있는 골들을 남겼고, 덕분에 한국 축구 역사에 한 부분을 장식할 수 있었다. FC서울 선수들이 기록한 특별했던 A매치 득점. 윤일록의 득점외에 어떤 득점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1. 1997
1018일 우즈베키스탄전 최용수의 골

 


 

                                          90년대 대표팀에서 활약한 최용수 (사진출처-KFA PHOTO)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에 나선 최용수는 카자흐스탄전 해트트릭, 우즈베키스탄전 선제골 등 제몫을 다했고, 한국 축구 최고의 명승부라 불리는 도쿄대첩에선 2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최용수의 활약 덕에 대표팀은 초반 4연승을 거두며, 본선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다음 경기는 중앙아시아 원정 2연전. 카자흐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대표팀은 전반 4분 최용수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6분 예브테에프에게 중거리 슈팅 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연승 행진에 제동이 걸린 대표팀의 다음 상대는 우즈베키스탄.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홈경기에서도 2-1 진땀승을 거두었기에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됐다. 우즈베키스탄전 이후엔 도쿄대첩 복수를 노리는 일본, UAE 원정이 예정되어 있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이 경기에서 최용수의 발끝에서 선제골이 터졌다.
 


전반 18분 장대일의 전진패스를 받은 이상윤의 슈팅이 골키퍼 손에 걸리자 최용수가 달려들어 골을 기록한 것이다. 흐름을 탄 대표팀은 유상철의 헤딩골까지 터지며 스코어를 2-0으로 벌렸다. 전반 41분엔 최용수가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까지 성공시켰다. 하석주의 코너킥을 가슴으로 트래핑 한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덕분에 대표팀은 전반을 3-0으로 마칠 수 있었고, 후반 고정운과 김도훈의 골을 보태,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우즈베키스탄을 5-1로 대파했다. 51무를 기록한 대표팀은 프랑스 월드컵 진출을 사실상 확정지었고, 두 골을 기록한 최용수는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또 최종예선에서만
7골을 터트리며 이란의 카림 바게리를 제치고 득점 랭킹 1위로 올라섰고, 대표팀이 기록한 14골에 절반을 책임지는 등 최용수는 최고의 골잡이로 아시아 전역을 호령했다.


 

 

2. 2005731일 중국전 김진규의 골

 

                                    

                            2005년 동아시안컵 김진규의 프리킥 득점 장면 (사진출처 - EAFF 홈페이지)



2005년 동아시안컵은 우리나라 전주, 대전, 대구에서 열렸다. 당시 대표팀 수비수였던 김진규는 약관의 나이임에도 수비라인의 한자리를 꿰차며,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리고 있었다. 동아시안컵에서도 주전 수비수 자리는 당연히 김진규의 것. 하지만 당시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 않았다.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표팀은 동아시안컵에서 좀 더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첫 상대는 중국. 경기 초반부터 중국의 가오린이 퇴장당하며, 한국은 유리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중국의 골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고, 오히려 후반 7분 순시앙에게 실점하며 0-1로 끌려갔다. 자칫하단 중국전 무패 행진이 끊길 위기의 순간, 김진규가 구세주가 되었다.



후반 27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키커로 나선 김진규의 강력한 슈팅이 골문 앞에서 한번 바운드가 되면서 키퍼의 손을 맞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중국은 이후 리웨이펑과 차오양이 퇴장당하며, 한국은 더욱더 공세를 취했지만 아쉽게도 역전골은 넣지 못하며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경기는 비록 무승부로 끝났지만 대표팀은 김진규의 골로 인해 중국전 무패 행진(1511)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진규는 2005년 초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린데 이어 자신의 A매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또 그간 강력한 킥력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번 프리킥골을 통해 날려버릴 수 있었다.


 


3. 2009
41일 북한전 김치우의 골

 

                              

                            북한전 득점에 성공한 김치우의 세리머니 장면 (사진출처-KFA PHOTO)





허정무 감독의 지휘 아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을 치르던 대표팀. 대표팀은 최종예선 첫 경기인 북한과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UAE, 사우디를 잇달아 잡으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고전 끝에 1-1로 비겼고, 대표팀은 아슬아슬한 조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남아공 월드컵 진출을 좀 더 수월하게 가져가려면 다음 경기인 북한전 승리가 필수인 상황. 당시 대표팀은 북한과 4연속 무승부를 거둔 탓에 쉽게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고, 정대세, 홍영조 등이 중심이 된 북한 대표팀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실제 경기에서도 양 팀은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경기 내내 0-0 스코어가 이어졌고, 허정무 감독은 공격 강화를 위해 후반 33분 이근호 대신 김치우를 투입했다.



당시 김치우는 북한전에 앞서 열린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쾌조의 몸상태를 보이고 있던 상황. 결국 김치우가 일을 냈다. 후반 42분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얻었고, 키커로 나선 김치우가 절묘한 감아차기로 북한의 골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이 한방으로 대표팀은 1-0 승리를 거두며, 남아공 월드컵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이 날 김치우의 골은 무려 16년간 이어졌던 북한전 무승 징크스를 깨는 골이었고, 남아공 월드컵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골이었다. 또 김치우 본인도 지난 북한 원정 경기에선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홈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명예 회복에 성공하는 기쁨도 맛봤다.

 



=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7.30 22:46






절기상 늦봄에 해당하는 5월.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에 ‘계절의 여왕’ 이라고 불린다. 또 5월은 장미가 피어나는 시기다. 따뜻한 봄 날씨와 아름다운 장미가 어우러진 멋진 5월처럼 FC서울 역시 5월의 기억은 멋지게 남아있다. 특히 올해처럼 초반 부진을 겪었어도 5월이 되면 대반전을 이뤄 다시금 강팀의 모습을 되찾았다.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4월 중순까지 4무3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둔 서울은 대구를 4-0으로 격파하며,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5월. 올해에도 또 한번의 반전스토리를 기대하며, 과거 5월엔 어떤 반전스토리가 있었는지 알아보자.


 







2005년 박주영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앞세워, 최고 인기 구단으로 등극한 FC서울. 팀 성적은 6위에 그쳤으나,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였던 박주영, 히칼도, 백지훈 등의 존재는 2006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초반엔 기대했던 것만큼 보여주지 못했다. 수원과의 개막전과 전북과의 홈 개막전에서 모두 1-1로 비긴 서울은 이후 포항과 제주에게 승리를 거뒀지만 인천전 무승부를 시작으로 7경기 동안 5무 2패를 기록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고작 1골에 그친 무딘 창끝이 뼈아팠다.




하지만 5월 5일. 부산을 5-2로 대파하며 분위기를 반전했고, 5월 14일부터 시작된 컵대회에선 무려 5연승을 내달리며, 선두로 나섰다. 결국 서울은 7월. 수원과의 경기에서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었다. 후기리그 개막전에서도 서울은 수원과 1-1로 비겼지만 전북, 포항, 제주를 잇달아 격파하며 상승세를 탔고, 결국 통합승점 순위에서 차 상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08년 귀네슈 감독의 공격 축구와 기성용, 이청용 등 젊은 피를 앞세워 준우승을 차지한 FC서울은 2009년엔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등 주전들을 대부분 떠나보낸 것과 달리 서울은 이청용, 기성용, 김진규, 김치우, 데얀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팀에 남은 것이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출발은 좋았다. K리그 개막전에서 전남을 상대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진 스리위자야와의 경기에서도 막강 화력을 앞세워 4-2 승리를 거두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충격적인 1-2 패배를 당한 것이다. 당시 귀네슈 감독이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 멤버를 1.5군으로 구성했지만, 신생팀이었던 강원에게 당한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은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했고, 이어서 열린 광주상무와의 경기에서도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1-0 으로 잡으며 다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0-2로 패했고,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받는 경남, 대구와도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갚아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5월을 맞이한 서울은 완연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성남과의 5월 첫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서울은 어린이날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전북에게 0-2로 패했지만 김해시청과의 FA 32강전을 2-0 승리로 장식했고, 난적 포항마저 1-0으로 잡았다.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선 2-1 승리를 거두며 홈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았고, 스리위자야가 산둥을 잡는 이변을 연출하며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이후 대전과 광주상무를 각각 2-0, 2-1 스코어로 제압하며 상위권 도약에 성공했다. 2009년 5월 FC서울 성적은 7승1패. 나무랄 때 없는 성적이었다. 5월을 계기로 상승세를 탄 서울은 6월에 이청용이 볼튼으로 이적하긴 했지만,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친 서울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1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2010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선 2011년 FC서울에게 쏟아지는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스쿼드 역시 보강했다. 성남에서 몰리나를 영입하고, 임대 신분이던 제파로프를 완전 이적시킨 것이다. 또 김동진이 복귀하는 등 FC서울의 2연패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였다. 알 아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에서 1-0 으로 이길 땐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K리그 개막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수원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한 것이다. 이후 대전과 1-1로 비겼고 항저우 그린타운을 3-0으로 꺾었지만, 전남에겐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했다. 전북을 3-1로 잡으며 리그 첫 승을 기록했지만 나고야 그램퍼스전, 부산전, 울산전 모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나고야 그램퍼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승리를 노렸지만 도리어 0-2 패배를 당했고, 신생팀 광주에게마저 0-1로 덜미를 잡히면서, 서울은 수렁에 빠졌다. 당시 리그 순위는 14위. 디펜딩 챔피언에 어울리는 성적은 아니었다.




결국 최용수가 팀의 구원투수로 나섰고, 4월의 마지막 날 제주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둔 서울은 5월부터 반격에 나섰다. 5월 4일 알 아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서울은 난타전 끝에 상주를 4-3으로 꺾었다. 이후 경남전에선 고요한의 멀티골을 앞세워 3-1로 승리했고, 용인시청과의 FA컵 32강전에서도 4-0 대승을 거뒀다. 비록 대구에게 0-2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3-0 으로 승리하며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성남전에서 0-2로 패했지만, 서울은 또 다시 5월에 반전 드라마를 쓰며,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당시 서울의 5월 성적은 5승1무2패. 부활을 알리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결국 서울은 리그를 3위로 마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붉은 장미의 꽃말은 아름다움과 열정, 기쁨을 상징한다. FC서울의 5월은 붉은 장미의 꽃말처럼, 열정으로 가득했으며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 비록 부리람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전북, 제주 등 강호들과 맞대결이 남아 있고, 베이징 궈안과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치러야 한다. 그간 5월에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FC서울이 이번에도 5월에 '행복한 기억' 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5.02 01:13
 


FC서울이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났다.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9라운 드 강원과의 경기에서 고요한의 2골과 데얀의 결승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후반 8분동안 3골을 몰아넣으며 영화와도 같은 경기내용을 선사했다. 경기 후 각 스포츠기사에는 ‘FC서울 극장’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짜릿한 역전승이나 추가시간에 터진 골 등은 축구팬들에게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준다. FC서울의 경기도 여러 번 극장을 연출해내며 팬들에게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영화와도 같았던 FC서울의 경기에 대해 알아보자.
 

2008.09.06. vs 부산

 




2008년 9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컵대회 마지막경기. FC서울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탓인지 초반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전반 46분과 후반12분 정성훈에게 2골을 허용. 이대로 허무하게 경기에서 패배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서울극장’의 막이 올랐다. 후반 16분 이승협의 패스에 이은 김은중의 헤딩슛이 골라인을 통과하며 골로 인정되었고 후반 42분 이청용의 크로스에 이은 이상협의 다이렉트 왼발 슛으로 그림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정조국이 역전골을 넣으며 3-2로 부산을 제압했다. 비록 다음 라운드 진출은 실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일구어내며 팬들에게 영화같은 승리를 선사해주었다.


2008.10.29. vs 수원





서울 팬이라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다. 당시 K리그는 서울, 수원, 성남의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수원과 경기가 있기 전, 홈에서 성남을 1:0으로 제압한 서울이 수원마저 이기게 된다면 리그 1위는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어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또한 수원과의 슈퍼매치인 만큼 경기인 만큼 경기 또한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치열한 공방 끝에 양 팀 모두 득점을 하지 못하였고 후반 추가시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후반 47분. 경기를 끝마칠 찰나 기성용의 천금 같은 골이 터져 나왔다.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골키퍼를 넘기는 재치있는 골이었다. 적지에서 수원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으니 그 짜릿함이 배가 되어 팬들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경기였다.



2011년 5월 8일 vs 상주상무



최용수 감독 대행으로서 제주전 승리를 마친 FC서울은 다음 라운드 상대인 상주상무와의 경기세서도 또 한 번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루어 냈다. 당시 상주상무는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 군입대한 서울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김정우, 김치곤 등 역대 최강의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경기내용도 팽팽했다. 전반 9분 방승환의 패스를 이어 받은 데얀이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키며 손쉽게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반 18분 박용호의 자책골로 1-1 동점. 다신 전반 35분 제파로프의 크로스에 이은 데얀의 헤딩슛으로 다시 역전했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최효진에게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다시 동률을 이루었다. 그리고 후반 28분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데얀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경기를 재역전 시켰다. 하지만 상주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1분 뒤 김정우가 다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고 모두들 무승부를 예상하고 있을 무렵. 상주의 페널트에어라인 근처에서 얻은 프리킥을 현영민이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켜 무려 7골이나 나왔던 경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로서는 11시즌 첫 연승이자 최용수 감독대행의 연이은 승리 행진 이었다.


2011.07.09 vs 상주상무

상주와는 극적인 경기가 자주 발생했던 해였다. 전반기에 4-3이라는 극적인 경기 결과를 만들어 내더니 이번엔 축구 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펠레스코어가 나왔다. 이 경기는 경기내용 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은 경기였다. 2011년 승부조작으로 인해 상주의 골키퍼 3명의 모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전 골키퍼인 권순태 마저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비수였던 이윤의가 골키퍼로써 선발경기를 치루며 매스컴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주는 전반 33분 김정우가 선취득점을 성공하였으나 후반 9분, 20분 데얀에게 2골을 헌납하여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39분 김민수의 골이 터지며 경기는 다시 원점. 흥미진진한경기가 계속 됬다. 그리고 얻어낸 후반 48분 서울의 마지막 코너킥 찬스. 서울 팬들은 모두 ‘골’을 외쳤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현영민의 크로스를 받아 방승환이 헤딩으로 연결하며 이날 결기 마지막 골을 기록한 것. 그날 상암을 찾은 3만여 관중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2011.08.13 vs 전남전


2011년 여름에 서울 팬들은 극장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경기장 자체가 극장이었으니 말이다. 전남과의 경기에서도 극적인 장면이 연출됬다. 서울은 경기 초반부터 전남선수들을 압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골찬스에서 데얀의 슈팅은 번번히 빗나갔고 유효슈팅마저도 이운재의 선방에 막히며 0-0 스코어를 유지했다. 조급했던 서울은 무리하게 공격을 펼치다 오히려 역습상황에서 위기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패색이 짙던 후반 인저리타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골이 나왔다. 전남의 공격상황에서 상대의 패스를 가로챈 고명진이 최태욱에게 연결.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의 빠른 측면돌파 후 크로스. 데얀의 한 번의 터치 이후 몰리나의 슛. 역습의 정석을 보여주며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몰리나의 골 이후 최용수 감독이 N석 까지 달려와서 선수들과 같이 세리머니를 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기도 했다.


/글=FC서울 명예기자 정용우(mjgs6539@naver.com)


by 비회원 2013.05.01 00:07








이름은 고요한 이지만, 플레이만큼은 절대 고요하지 않은 남자, 고요한이 드디어 FC서울에서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04년 입단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고요한은 25세의 어린나이에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FC서울의 소금 같은 존재로 활약한 고요한. 그의 100경기 출전을 기념하여, 베스트5 경기를 꼽아봤다. 




1. 2009년 9월12일 (vs전북) 







2009년 후반. 당시 전북과 맞붙은 서울은 승리가 필요했다. 줄곧 1위를 달리다 2연패를 당하며 3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귀네슈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하다 징계를 당하는 등 분위기 역시 좋지 않았다. 따라서 전북전을 승리로 이끌어야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FC서울의 영건으로 귀네슈 감독의 신임을 받은 고요한은 이 날 경기에서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고요한은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펼쳤고, 전반 33분엔 데얀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주기도 했다. 또 고요한은 3개의 슈팅으로 데얀(5개) 다음으로 많은 슈팅을 기록했고, 5개의 파울로 양 팀 통틀어 최다 파울을 기록하며 터프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러한 고요한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비록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팀에 큰 힘이 되었다. 그 덕에 서울은 전반 막판 루이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김치곤과 데얀의 연속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이번 경기에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2010년 7월17일 (vs전남)








2010년 고요한은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해에 자신의 데뷔골을 넣었다. 7월 17일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 선발출장한 고요한은 후반 20분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가 수비수를 맞고 흐르자 왼발로 밀어넣으며 골을 성공시켰다. 이 날도 비에 젖은 그라운드를 쉼 없이 달린 고요한은 그 때문인지 골을 넣은 직후 다리에 쥐가 나며 멋진 세리머니를 보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 날 경기에서 서울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전남에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며 우승 도전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되갚아주기 위해서 서울은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였고, 결국 고요한의 프로 데뷔골이 결승골이 되어 1-0 승리를 거두었다.
 



3. 2011년 5월 15일 (vs경남)








2011 시즌 초반엔 부진했지만, 최용수 감독 대행 선임 이후로, 서서히 날갯짓을 시작한 서울. 경남과의 맞대결은 상위권으로 가는 분수령이었다. 시즌 초반 하대성, 고명진 등이 부상을당해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고요한은 최용수 감독 대행 이후로 측면 미드필더로 복귀했고, 이 날 경기에서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고요한은 전반부터 활발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크로스로 측면을 지배했고, 전반 22분엔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볼을 따내는 근성을 보였다. 덕분에 서울도 전반 이른 시간에 데얀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전반 막판 김인한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로 전반을 마쳤다. 하지만 후반에 고요한의 공격본능이 불을 뿜었다. 고요한은 후반 24분 고명진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두 번째 골을 뽑아냈고, 후반 44분엔 데얀의 크로스를 멋진 발리슈팅으로 연결하며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고요한은 이 날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멀티골 및 첫 헤딩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고, 서울 역시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4. 2012년 6월 28일 (vs상주)
 







본격적으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나선 2012년. 고요한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최용수 감독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그 해 6월 28일에 열린 상주전에선 골 까지 기록했다. 전반 37분 데얀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고요한이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첫 골을 뽑아낸 것이다. 무더운 여름으로 접어들며 선수들이 지쳐있었고, 수원과의 FA컵 포함 3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고 있던 서울에 고요한의 활약은 단비 같은 존재였다.
 



사실 고요한에게 마음의 짐이 있었다. 바로 전경기인 울산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날리며, 팀의 1-1 무승부를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주전에서 두 번의 실수는 없었고, 결국 고요한의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했다. 고요한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봐도 기특하다” 라는 말로 자신의 골에 만족함을 드러냈다. 




5. 2012년 9월 16일 (vs부산)










 2012년 측면 수비수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고요한은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고, 안양에서 열린 잠비아와의 A매치에서도 후반전을 소화하며, 최고의 모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9월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한 고요한은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미끄러운 그라운드에 적응하지 못하며 시종일관 부진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슬럼프에 빠질 우려도 있었지만, 최용수 감독은 이후 재개된 스플릿 리그 부산과의 첫 경기에서 고요한을 선발 출장 시키며, 변함없는 믿음을 보였다. 그 믿음이 통했는지 고요한의 플레이는 리그에서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였고, 후반 18분엔 이종원의 헤딩 슈팅을 골라인 앞에서 막아내기도 했다. 고요한의 활약 덕에 서울은 부산을 2-0으로 물리치며, 부산 원정 징크스를 깼고, 고요한은 이후에도 변함없이 서울의 측면 수비를 책임지며, 팀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BONUS. 2013년 4월 28일 (vs강원) 100번째 경기!








이 경기를 넣지 않을 수 없겠다. 자신의 100번째 경기에서 고요한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자축했다. 2013 시즌 내내 선발 출장만 했던 고요한은 이 날 경기에선 벤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내주며 0-2로 끌려가자 최용수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고요한을 투입했다. 고요한은 투입되자마자 활발한 플레이로 측면 공격을 이끌었고, 서울 역시 맹공을 퍼부었지만, 박호진의 선방에 막히며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고요한이 직접 나서서 강원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후반 33분 페널티 에이리어 내에서 날린 오른발 슈팅이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1-2로 추격한 서울의 공격은 불을 뿜었고, 결국 후반 40분 동점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또 고요한 이었다. 후반 40분 데얀이 살짝 내어준 볼을 이어받은 고요한의 아웃프런트 슈팅은 박호진이 손쓸 틈도 없이 날아가 골네트에 꽂혔다.




고요한의 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배효성의 클리어링이 멀리 가지 못하자, 고요한이 이어 받아 데얀에게 정확한 패스를 내줬고, 데얀이 다이렉트 슈팅을 날리며 세 번째 골을 기록한 것이다. 결국 서울은 0-2에서 3-2로 뒤집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고, 고요한은 자신의 100번째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올리며,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4.28 22:16


겸손한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챔피언 FC서울, 1승 신고합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펴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어느덧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꽃잎과 함께 흩날리는 4월이다. 순조로운 출발을 했던 작년 시즌과 달리 FC서울(이하 서울)은 꽃샘추위와 함께 유독 추운 4월을 보내고 있다. 서울의 K리그 2011시즌은 빙가다 감독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선장이 된 황보관 감독으로 야심차게 출발을 했다. 하지만 4월 26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 사퇴하였다. 그리고 클럽 레전드인 최용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되었다. 당시 위기에서 서울을 구해낸 최용수 감독이 현재는 위기를 맞고 있다. K리그 2011시즌의 초반 위기를 잘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감독이기에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아직 시즌의 초반에 불과하다. 서울은 벚꽃이 지기 전 1승을 거둘 수 있을까. 그 어느 때 보다 승리가 절실한 잔인한 4월이다.


“공격이 강한 팀은 승리하고 수비가 강한 팀은 우승한다.”라는 축구계의 정설을 곱씹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골이다. 만화 슬램덩크에 나온 천재가드 윤대협은 경기가 풀리지 않자 이렇게 말한다. "(승리 전에)먼저 한골.” 하지만 현재의 서울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수비 리바운드가 중요하다는 북산의 안감독님 말처럼 수비에 무게를 두고 실점을 줄여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현재 서울은 10득점 13실점을 하며 -2득실을 기록. 12위에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K리그 클래식 2013에서 4무 3패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골득실을 따져보면 10득점 13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골을 넣고 있지만 실점 또한 많다. 서울은 작년 챔피언이기 때문에 공공의 적으로 통한다. 때문에 서울을 대처하는 해법들이 올 시즌에는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전술이 수비대형을 유지하면서 후반 역습공격으로 느슨해진 서울의 후방공간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지난 경남FC와의 경기에서 보산치치에게 역습상황에서 로빙골을 실점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용수 감독도 공공연히 역습 상황 시 영리하게 대처할 수 있는 미드필드진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수비진 앞 선에 있는 미드필더들이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코칭스텝의 생각이 담겨 있는 인터뷰였다. 또한 작년 서울의 중앙수비 자원이었던 김동우 선수가 입대하면서 중앙수비진들이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피로축적은 수비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세월이 흘러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차두리 선수가 지난 14일 수원과의 원정경기에 깜짝 선발로 출전했다. 역시 차두리였다. 몇 달이나 경기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 날 경기에서 수원의 스테보를 상대로 일명 ‘아무것도 하지마’ 수비를 펼치며 서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든든한 수비로 차미네이터로 불리며 활약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세월이 흘러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다. 스피드는 다소 떨어졌지만 몸싸움과 제공권에서 건재함을 과시하며 전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던 고요한과는 또 다른 느낌의 수비를 펼쳤다. 수비의 짐을 덜은 고요한은 본업인 미드필더로 복귀하며 마음껏 필드를 누릴 수 있었다. 차두리의 가세로 오른쪽 풀백은 국가대표 출신의 차두리, 최효진으로 구성되었다. 서울은 상대의 특성에 따라 피지컬이 좋은 차두리와 스피드가 좋은 최효진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의 재능을 썩히고 싶지 않다며 미드필더로의 복귀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번 대구FC(이하 대구)와의 경기에서 홈팬들에게 첫 홈경기 신고를 하게 될 차두리와 미드필더로 복귀한 고요한의 앞으로의 호흡이 기대된다.




“서울의 투 고(GO) VS 대구의 투 송(SONG)”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고명진과 고요한이 투 고(GO)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올 시즌 대구에는 송한복과 송창호 투 송(SONG)가 있다. 공격력이 화려한 선수들은 아니지만 묵묵히 대구의 수비를 보호해 주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서울은 이 두 미드필더를 어떻게 공략할지가 이 날 경기의 승부에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은 아사모아 조형익, 황일수 등의 빠른 발을 이용한 역습에도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구는 3무 4패로 리그 13위를 달리고 있고 득점이 4점밖에 없는 등 극심한 골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2골은 자책골로 인정된 골이기 때문에 대구의 순수한 골은 2점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7경기 4득점은 강원에 이어 2번째로 낮은 수치이기 때문에 서울은 무실점으로 수비진의 견고함을 갖출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홈경기에서 겸손한 자세로 1승을 신고하며 승승장구 해나갈 우리 선수들의 저력을 기대해 본다.



/글= FC서울 명예기자 엄현성 (lastlibero@naver.com)
/사진 = FC서울 명예기자 홍성준


by 비회원 2013.04.18 22:52

 



5경기 째 승리가 없다. FC서울답지 않은 결과다. 경기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다. 울산과의 경기에서도 전반전에는 화려한 패스플레이와 데몰리션의 콤비의 활약 등 서울다운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문제는 후반전. 폭우와 함께 젖은 잔디는 미끄러웠고 수비수들의 집중은 떨어졌다. 부산전, 경남전에 이어 세트플레이에서의 실점을 반복했다.


FC서울의 리그 5경기 득점은 총 8득점. 부산전을 제외하곤 매 경기 2골씩 득점했다. 하지만 10번의 실점은 뼈저리다. 최용수 감독도 공격보다는 수비 쪽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맞다. 하지만 무조건 비난의 화살을 수비수들에게 돌릴 순 없다. 지난 해 김진규는 36경기 김주영은 33경기에 출전했다. 스플릿리그로 인하여 경기 수가 늘어난 탓이다. 그래도 지난해에는 김동우가 로테이션으로 출전을 하면서 주전 수비수들의 피로 회복과 함께 경쟁에 따른 높은 집중력으로 최소실점 2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다르다. 김동우가 경찰청에 입대했다. 하지만 중앙수비의 전력보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디가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당장 수원과의 경기에서는 김주영이 경고 누적에 따른 퇴장으로 나서지 못한다. 아디가 센터백을 보고 김치우가 왼쪽윙백으로 다음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까 예상한다. 하지만 아디는 전문 센터백이 아니다. 중앙 수비에서 많은 허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서야 서울은 차두리를 영입하며 수비수 보강을 했다. 하지만 차두리의 주된 포지션은 오른쪽이다. 이미 오른쪽은 고요한, 최효진 등 자원이 넘치지 않는가? 이종민선수가 수원으로 이적하게 된 이유 또한 서울의 포화된 오른쪽 윙백 속에서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서울이 보강했어야 할 수비수는 전문 센터백 이었다. 하지만 이적 시장은 마감됐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바로 서울의 신인선수를 키워야 한다.






FC서울이 어떤 팀이었던가? 스타플레이어는 많지 않지만 유망주를 발굴하여 뛰어난 선수를 만들어내는 팀이 아니었던가. 지금 ‘스완지시티’와 ‘볼튼’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과 이청용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2007년 등번호 40번과 27번의 선수가 이렇게 뛰어난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두 선수는 2008년 FC서울이 K리그에서 준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8년 입단하여 31경기 5득점으로 그해 신인왕을 수상한 이승렬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승렬은 2008년 3월 ‘LA갤럭시’와의 친선 평가전에서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며 귀네슈 감독 하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여 서울의 데얀, 정조국, 박주영에 이은 또 다른 공격옵션으로써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FC서울뿐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 포항은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과 주전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경기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포항이 리그3위와 FA컵을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인 이명주의 활약 때문이었다. 이명주는 작년에 5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올해에는 외국인 선수가 없는 가운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며 포항을 이끌고 있다.








서울도 이제 신인선수에게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공격자원 중 박희성 선수뿐만 아니라 당장 수비자원 중에 이택기, 김남춘, 장현우 같은 선수들을 과감히 경기에 투입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실점을 해도 괜찮다. 선수들은 경기를 뛰어야 발전할 수 있다. 또 혹시 모른다. 신인선수 중에 제2의 홍명보, 김태영이 나올지. 경기를 잘 이끌어 나가지 못하더라도 2가지의 이득이 있다. 하나는 주전 선수들의 휴식이다. 리그와 ACL 그리고 FA컵까지 병행해야하는 죽음의 레이스에서 신인 선수들의 출전은 곧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의미한다. 휴식시간 동안 충분히 회복을 한다면 다음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선수들 간의 경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주전 선수이더라도 자신이 경기에 나가지 못할 수 있다는 긴장감과 비(非)주전 선수이더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훈련과 경기에 임한다면 선수들의 집중력은 이전과 다르게 좋아질 것이다.


승리. 이제 리그에서도 보고 싶은 단어이다. 기존 선수들과 신인선수들의 활약으로 이루어 졌으면 한다. 당장 14일이 수원과의 더비 매치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적지에서 수원을 이기고 리그 첫 승의 기쁨을 두 배로 느꼈으면 한다.

 

 

글/ FC서울 명예기자 정용우(mjgs6539@naver.com)       



by 도란도란도란 2013.04.11 01:23


 






2013년 3월. FC서울은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랄 영입을 성사시켰다. 그 깜작 놀랄 영입의 주인공은 차두리. 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 선수 였으며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크 등 분데스리가 여러 팀과 스코틀랜드 최고 명문 셀틱에서 활약한 바 있는 거물급 선수가 FC서울의 일원이 된 것이다. 뒤셀도르프와 계약을 해지하며 무적 상태에 놓여 있었던 차두리는 FC서울 입단에 성공하며 지난 2002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이후로 11년 만에 국내 무대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인 차두리이기에 많은 팬들이 차두리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FC서울 입단 기념으로 차두리의 일대기를 알아보기로 했다.




차두리의 고향은 독일이다. 잘 알다시피 차두리는 아버지인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한창 맹위를 떨칠 당시에 태어났다. 차두리가 태어난 해인 1980년은 차범근이 UEFA컵 결승전에서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해라 차두리는 복덩이었다. 최고의 축구선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차두리 역시 어릴때부터 축구를 즐기면서 자랐다. 1998년에 출간된 차범근의 자전 에세이 ‘네 꿈을 펼쳐라’에 따르면 ‘아들 두리는 4살 때부터 축구를 했고, 멋지게 자책골을 넣고는 자신이 골을 넣었다며 좋아했다’ 라고 나와 있다. 차두리는 독일에 머물 당시 아버지의 소속팀이었던 바이에르 레버쿠젠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축구에 입문했고, 차범근이 선수 은퇴 후 울산현대의 지휘봉을 잡자 차두리는 울산 현대중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 무렵 차두리의 부모님은 차두리를 계속 축구 선수로 키울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차두리 속에 있는 축구DNA는 어찌하지 못했고, 중3때 서울 배재중학교로 전학하면서도 선수생활을 지속했다. 배재고에 진학한 차두리는 전국고교선수권대회에서 5골을 넣으며 공동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을 쌓아나갔다. 이후 고려대학교로 진학한 차두리는 올림픽대표팀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고, 거기서 히딩크 감독에 눈에 들어 국가대표팀에 입성하게 된다. 히딩크 감독은 대통령배 대회와 추계대학연맹전에서 뛴 차두리를 눈여겨 봤고, 빠른 스피드와 단단한 체격, 스태미너까지 갖춘 차두리를 높이 평가했다.




차범근의 아들인 차두리가 대표팀에 뽑히니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건 당연지사. 그래서 당시 히딩크 감독은 미디어담당관에게 ‘차두리에게 몰려드는 인터뷰 횟수를 제한하라’ 라는 지시를 내리며 그를 관리했다. 차두리가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건 2001년 11월 8일. 당시 전주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차두리는 후반 40분 교체 투입되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차두리는 골드컵에도 출전하며 대표팀의 젊은 피로 주목을 받았지만, 당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 덕에 대표팀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고, 그 중 하나가 ‘너무 젊은 선수들만 쓴다’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차두리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차두리는 스스로 시련을 극복했다. 2002년 4월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26분 안정환의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발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A매치 12경기 만에 기록한 첫 골. 차두리는 후반 38분 최태욱의 추가골을 어시스트 까지 하며 펄펄 날았고, 이후 젊은 선수들을 향한 비판의 시선은 사라졌다. 차두리는 잉글랜드, 프랑스 등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잇달아 출전했고, 결국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던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월드컵에 출전하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차두리가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체격과 체력. 차두리는 ‘공포의 삑삑이’라고 불렸던 셔틀런 훈련에서 무려 151회를 소화 했다. 120회를 소화하면 A매치 90분을 소화할 수 있다고 하니 차두리의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차두리는 훈련 도중 정해성 코치와 부딪쳤는데 정해성 코치의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단단한 체격을 자랑했다.


2002 월드컵 폴란드전에 나선 차두리의 플레이 모습








차두리는 월드컵 첫 경기인 폴란드전부터 출전했다. 후반 43분 설기현과 교체 투입 된 차두리는 투입되자마자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안정환의 왼발 슈팅이 두덱에 손을 맞고 나오자 쇄도하여 골을 노렸지만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시키진 못했다. 차두리가 다시 출전기회를 잡은건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차두리는 후반 37분 홍명보와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았다. 차두리는 후반 45분 환상적인 슈팅으로 이탈리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동점골이 터진 직후 맞이한 코너킥에서 차두리는 유상철의 헤딩 패스를 감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연결한 것이다. 슛은 부폰의 선방에 막혔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멋진 슛이었다. 이후 연장전에서 활발하게 윙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한 차두리는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차두리는 독일과의 4강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투입된다. 라이트윙에 배치된 차두리는 전반 7분 이천수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내줬고, 전반 15분엔 우측면을 돌파하다 박지성의 슈팅을 이끌어내는 등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아쉽게 0-1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터키와의 3-4 위전에서도 후반 교체투입된 차두리는 월드컵에서 4경기에 출전 150분을 소화했다. 월드컵 직전 차두리는 ‘내가 못하면 아버지께서 해설하기 힘드실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부담을 가졌다고 했지만, 팀내 유일한 대학생 선수로서 그는 월드컵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런 그를 기다리는건 유럽진출. 차두리는 월드컵 직후 아버지가 뛰었던 바이에른 레버쿠젠과 입단 계약을 체결했으며, 바로 빌레펠트로 임대 이적하며 분데스리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등번호 7번을 받으며 기대를 모은 차두리는 자르브뤼켄과의 독일컵 1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16분 교체 투입 되었다. 열흘 후엔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73분을 소화했다. 이후 헤르타 베를린전에서도 후반 26분 교체 투입되며 두 경기 연속으로 출전한 차두리는 슈투트가르트전에서도 후반 17분에 교체 투입되었지만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차두리는 전반기에만 9경기에 출전했지만 특별한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연말에 열린 레알마드리드vs세계올스타 경기에 세계올스타 대표로 뽑혀 후반 15분 카푸와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누볐다. 후반기를 앞두고 가진 연습 경기에서 차두리는 엄청난 활약으로 전망을 밝게 했다. 차두리는 터키 팀인 데니즐리스포르, 코갤리스포르전에서 모두 골을 넣었고, 독일 2부리그 팀인 오쉬나 부르크전에서도 추가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를 이끈 것이다. 덕분에 베노 묄만 감독의 신임을 얻은 베르더 브레멘과의 후기리그 첫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고, 데뷔골을 넣으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차두리는 전반 40분 브링크만의 중거리슛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지만 달려들어 침착하게 차넣으며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독일 최고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해 67분을 소화한 차두리는 볼프스부르크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하는 등 서서히 주전으로 자리를 굳혀나갔다. 이후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경기에서는 분데스리가 진출 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아쉽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차두리는 장딴지 부상으로 3경기 결장하기도 했지만 시즌 막판인 보훔전과 한자 로스토크전에서 연속으로 풀타임 출전하기도 했다. 그의 분데스리가 데뷔 시즌 기록은 23경기 출전 1골 1도움. 하지만 소속팀인 빌레펠트가 2부리그로 강등되며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결국 차두리는 아버지가 뛰었던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다. 프리시즌 연습경기에서 5경기 출전 10골을 터트리며 엄청난 골감각을 자랑한 차두리는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주전 공격수로서 전망을 밝게 했다. 차두리는 시즌 두 번째 경기인 레버쿠젠전에도 선발 출장했고, 전반 42분 니코 프롬머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시즌 첫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두 번째 도움은 독일컵에서 나왔다. 키커스 오펜바흐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차두리는 후반 10분 정확한 헤딩 패스로 또 다시 니코 프롬머의 골을 도우며 시즌 두 번째 도움을 기록했다. 이후 차두리는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전에서 선발 출장하여 59분을 소화하며 팀의 리그 첫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후 차두리는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해 감각적인 힐패스로 시즌 세 번째 도움을 기록했고, 팀의 전반기 19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강등권을 맴도는 팀 성적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후반기가 되도 분데스리가에서 차두리의 골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대신 대표팀에서 그의 골 소식이 들렸다. 차두리는 레바논과의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경기에서 전반 35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팀의 첫골을 성공시켰다. 흐름을 탄 차두리는 분데스리가에서도 고대하던 골을 터트렸다.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전반 18분 헤딩골로 팀의 첫 골을 안기며 2-1 승리를 이끈 것이다. 이후 차두리는 소속팀에서 꾸준한 출장기회를 받았고,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았지만,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표팀은 약체 몰디브와도 비기며 자존심을 구겼고, 프랑크푸르트는 16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에 강등된 것이다. 차두리는 또 다시 거취가 불투명했지만 잔류를 선언했고, 2004 아시안컵 준비에 들어갔다. 차두리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7분 김태영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으며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본프레레에게 눈도장을 받았고, 차두리는 쿠웨이트와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전반 45분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8강전에서 이란에게 3-4로 패하며 탈락했다.




소속팀으로 돌아온 차두리는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DFB포칼컵 2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터트리며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차두리의 2부리그 첫골이 터진 것은 아흐렌전. 차두리는 이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전반 2분 팀의 첫골이자 동점골을 터트렸다. 차두리의 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반 39분 반 렌트의 골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차두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읜 2-3으로 패했다. 이후 부르그하우젠과의 경기에서 시즌 2호골을 기록한 차두리는 부산에서 열리는 독일과의 평가전을 위해 대표팀에 합류했고, 차두리는 이 경기에서 조재진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사상 최초로 독일을 꺾는데 일조했다. 당시 독일은 미하엘 발락, 필립 람, 올리버 칸 등 주전들을 풀가동 했지만, 차두리의 맹활약 속에 3-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절 차두리의 모습





전반기를 12경기 출전 2골 1도움으로 마감한 차두리는 아흐렌과의 후반기 첫 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덕분에 차두리는 쓰나미 자선 경기에 호나우딩요 11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고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차두리는 자르브르켄 전에서 2도움을 기록하며 물오른 모습을 보였고, 오베른하우젠 전에선 시즌 3호골을 터트렸다. 차두리는 그로이터 퓌르트 전에서도 시즌 여섯 번째 도움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도 후반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차두리는 이 경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아흐렌과의 경기에선 일곱 번째 도움. 운터하임과의 경기에선 결승골이자 시즌 4호골을 넣었다. 에지르비르게와의 경기에선 시즌 5호골을 터트리며 차두리는 주전 공격수로 우뚝 섰다.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전에선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처음으로 멀티골을 작렬한 차두리는 시즌 7골로 득점랭킹 20위 내에 들었고, 팀 역시 3위를 기록하며 1부리그 승격에 청신호를 켰다. 이어 열린 에어푸르트전에서도 8호골을 작렬 시킨 차두리는 4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고, 베켄바워의 극찬을 받으며, 2주 연속으로 주간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차두리의 이러한 활약에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은 차두리에게 메일을 보내며, 격려했다.




차두리는 부르크하우젠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전반 17분 베니 쾰러의 선제골을 도우며 3-0 승리를 이끌었고 팀은 19승4무11패 승점 61점으로 3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확정했다. 차두리 역시 그 시즌에 29경기 출전 8골8도움으로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후 대표팀에 합류한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와의 원정 2연전에 출전하며 우리나라의 독일월드컵 본선진출 확정에 힘을 보탰다. 소속팀으로 복귀 후 가진 연습 경기에서 세 경기 연속으로 골을 터트린 차두리는 레버쿠젠과의 개막전에서 풀타임 출전했고,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고, 팀의 2연패를 지켜봐야했다.




고대하던 첫 골은 5라운드에서 나왔다.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후반 45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했다. 하지만 차두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팀은 최하위로 처졌고, 차두리 역시 분데스리가 공격수 중 가장 낮은 평점을 기록한 것이다. 이후 차두리는 FC쾰른전에서 2호골을 성공시켰지만 교체 투입되는 일이 잦았다. 차두리의 포지션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경되었을때가 이 무렵. 차두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공격수가 아닌 윙백으로 출전하며 풀타임을 소화했고,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줄곧 윙백으로만 출전한 차두리는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DFB포칼컵에선 공격수로 잠시 복귀하기도 했지만, 차두리는 윙백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전 빈도가 들쭉날쭉하며 독일월드컵 출전에 위기를 맞았다. 베어벡 코치가 관전한 경기에서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차두리는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했고, 결국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낙마하는 아픔을 맛봤다.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 차두리의 합류는 유력해 보였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끝내 차두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게다가 팀 역시 2부리그로 재강등되며 차두리는 거취를 놓고 또 다시 고민해야 했고, 결국 1부리그로 승격한 마인츠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마인츠는 차두리에게 등번호 2번을 부여하며 오른쪽 윙백으로 쓸 것임을 드러냈다. 차두리는 독일월드컵 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뒤로하고 전반기에서 8경기에 출전했고, 가나와의 A매치에서도 오른쪽 윙백으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차두리의 앞날엔 먹구름이 끼었다. 가나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차두리는 분데스리가에서도 팀이 전반기 최하위에 머무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 사이 경쟁자인 크리스티안 데미르타스가 부상에서 회복했고 설상가상 차두리는 발등 부상을 당하며 경쟁에서 조금씩 밀렸다. 덕분에 이적설, K리그 입성설 등 다양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차두리는 마인츠에서 한 시즌만을 소화한 채 2부리그 팀인 코블렌츠로 이적했다.




코블렌츠에서 차두리는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18라운드에선 주간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윙백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그해에만 28경기에 출장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결혼을 하며 한 가정을 꾸린 차두리는 다음 시즌에서도 코블렌츠와 함께 했고, 34경기 출장에 2골 4도움을 기록. 나무랄 때 없는 시즌을 보냈다. 2부리그에서 활약한 탓에 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못한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맹활약을 펼친 선수를 가만히 둘 1부리그 구단은 없었다. 결국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하며 1부리그에 복귀했다. 차두리는 팀의 다섯 차례 프리시즌 경기에서 네 차례 출전하며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시즌 첫 경기인 DFB포칼컵 1라운드 엘버스베르크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2-0 승리를 도왔다. 독일 축구 전문지인 빌트와 키커는 차두리를 프라이부르크 주전 라이트백으로 예상하는 등 차두리는 주전확보에 청신호를 켰고, 결국 함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두 번째 경기인 슈투트가르트전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는 등 9경기 연속으로 풀타임을 소화했고 샬케04와의 경기에선 시즌 첫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주간 베스트 일레븐 선정, 2주연속 팀내 최고 평점 등 활약이 지속되자, 결국 대표팀에도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고, 차두리는 2009년 10월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통해 대표팀에 복귀했다.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장해 77분을 소화한 차두리는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고, 대표팀 라이트백 경쟁을 한층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후 차두리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1-2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프라이부르크의 신임은 변함없었다. 차두리는 13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장했고, 대표팀 유럽원정에도 포함되어 덴마크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후 2009년 마지막 A매치였던 세르비아전에서도 차두리는 후반 교체 출전하며,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소속팀 복귀 후 베르더 브레멘전에선 결장했지만 팀이 0-6으로 대패하면서 차두리는 다시 주전으로 복귀했다.




해가 바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차두리는 3월에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도 풀타임을 활약하며 팀의 2-0 승리를 도왔다. 프라이부르크에선 부상 탓에 8경기 연속 결장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차두리는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되며 독일월드컵 대표팀 탈락의 아픔을 씻었다. 차두리는 사이티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40분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본 수비수 세 명이 달려들었지만 차두리는 굴하지 않고,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저돌적인 돌파를 보여준 것이다. 당시 모습으로 팬들은 차두리에게 ‘로봇’,‘차미네이터’ 등의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차두리 (사진출처-KFA PHOTO)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차두리의 활약은 빛났다. 차두리는 대표팀이 펼친 4경기에서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고,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선 과감한 중거리슈팅으로 상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우루과이전 종료 후에도 차두리는 귀국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독일vs아르헨티나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고, 스코틀랜드 최고 명문인 셀틱과 입단 계약을 맺으며, 기성용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차두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경기인 SC브라가전에서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은 아쉽게도 0-3으로 패했다.




이후 차두리는 에미레이츠컵에 출전했고, 리옹전 선발 출장해 55분 소화, 아스날전 후반 16분 교체 투입 등 셀틱에서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이후 차두리는 SC브라가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2차전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하며 팀의 2-1 승리를 안겼지만, 팀은 골득실에서 밀리며 탈락했다. 차두리의 리그 데뷔전을 보는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버네스와의 개막전 경기에서 차두리는 오른쪽 수비수로 선발 출장해 단단한 수비와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활약하며 팀의 1-0 승리를 도왔다. 기성용과 함께 ‘기 차 듀오’라고 불리며, 셀틱의 주전 선수로 활약한 차두리는 19라운드 경기에선 셀틱 데뷔골도 터트렸다. 세인트존스턴과의 경기에서 후반 45분 차두리가 우측면에서 감아찬 슈팅이 그대로 골문을 가른 것이다. 이에 질세라 기성용이 후반 추가 시간에 추가골까지 터트리며 셀틱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대표팀에 합류한 차두리는 아시안컵에 출전했고, 바레인전에선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구자철 골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전경기에 출전하며 대표팀이 3위를 차지하는데 한몫한 차두리는 소속팀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잦은 대표팀 차출로 차두리는 지쳐있었고, 설상가상 부상까지 겹친 것이다. 팀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차두리와 같은 포지션인 미카엘 루스티를 영입하며, 차두리의 입지는 좁아졌다. 설상가상 감기 몸살로 2월에 열린터키와의 평가전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발목 부상까지 찾아오며 후반기에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차두리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 기록은 16경기 출전 1골 1도움.하지만 차두리는 시즌 종료 후 열린 세르비아,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연속으로 출전하며 대표팀이 세르비아와 가나를 모두 이기는데 기여했다.


차두리의 셀틱 시절 모습 (사진출처-데일리메일)





차두리는 프리시즌 울버햄튼전, 인터밀란과의 더블린 슈퍼컵 경기에 출전했지만, 마크 윌슨에 밀려 시즌 초반엔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마크 윌슨이 11월에 무릎 수술을 받으며 기회가 왔고, 시즌 34라운드인 마더웰 전에선 헤딩슛으로 시즌 첫 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신예 아담 매튜스의 급성장으로 시즌 내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차두리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두 번째 시즌 기록은 23경기 출전 1골 1도움. 셀틱은 네 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차두리는 프로 입성 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맛봤다. 셀틱과의 계약은 종료됐고, 차두리는 팀에 잔류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의 새로운 행선지는 분데스리가의 뒤셀도르프. 뒤셀도르프에선 감독의 방침에 따라 예전 포지션인 공격수로 전환했지만 차두리는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뒤셀도르프에서 남긴 그의 기록은 컵대회 포함 11경기 출전. 그나마 풀타임 출전은 한 번 뿐이었다. 결국 시즌 도중 뒤셀도르프와 계약을 해지한 차두리는 무적 선수로 한달여를 보내다, FC서울과 계약을 맺고 K리그 클래식 무대에 입성했다.




차두리의 합류로 FC서울은 두 가지를 노릴 수 있다. 우선 오른쪽 측면 수비 강화다. FC서울 우측 윙백엔 고요한과 최효진이라는 훌륭한 선수가 있지만 두 선수 모두 체격이 작다는 단점이 있다. 단단한 체격이 장점인 차두리는 이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줄 것이다. 또 차두리는 우유, 음료, 통신, 라면 등 다양한 CF에 출현했고, 최근에 나온 제약 광고에선 ‘간때문이야’ 라는 CM송을 히트 시키며,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차두리의 합류는 마케팅 측면에서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K리그 클래식이 개막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FC서울은 네 경기에서 2무2패를 기록하며 좀처럼 디펜딩챔피언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차두리의 합류는 FC서울 반전의 카드가 될 수 있을까? 많은 팬들은 차두리의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기대하고 있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3.30 19:47




 





2013년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답게 많은 기대를 모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인 장수 슌텐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었을땐 ‘역시 서울’ 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모습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포항과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인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선 2-3으로 패했다. 이후 서울은 부리람과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첫 승에 실패했다. 현재 FC서울의 성적은 1무2패. 순위도 11위에 처져있다. 여러모로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2009년에 보여줬던 모습이 좋은 예다.





 






시계추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준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009년 우승후보로 꼽혔다. 2009년에도 올해처럼 선수단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을 차지한 수원이 마토,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 등을 줄줄이 떠나보냈지만, 서울은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데얀, 아디, 정조국, 김치우 등 준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몇몇 선수들의 등번호 뿐이었다. (데얀 11번→10번, 김치우 26번→7번, 김진규 20번→6번, 기성용 17번→21번) 게다가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가 완벽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FC서울은 우승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출발 역시 좋았다. 전남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6-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어서 열린 스리위자야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도 4-2로 승리하며, ‘역시 서울’ 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강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서울은 1-2 충격패를 당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원정 2연전을 치르느라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해 1.5군을 내세웠지만, 당시 강원은 신생팀이었고, 주전 대부분이 지난 시즌에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이후 서울의 모습은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조재진에게 2도움을 허용하며 2-4로 패한 서울은 이어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후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1-0으로 잡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산둥 루넝 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고, 이어서 경남, 대구 등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상대와 맞섰지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산둥 루넝을 홈으로 불러들여 원정에서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의 리그 순위는 7위. 4월 초엔 한때 9위까지 떨어졌을 만큼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승1무2패 조 3위로 처지며,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호의적이지 못했고 득점력 부족, 부상 선수 속출 등 부진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됐다. 덕분에 홈 관중수 까지 감소하는 등 서울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4월말에 열린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후 서울은 FA컵 김해시청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포항, 감바오사카, 대전, 광주상무, 제주를 연파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스리위자야가 산둥 루넝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극적인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행운도 맛봤다. 서울은 6월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8월엔 리그 1위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2009년 초반과 지금의 모습인 2013년 초반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우선은 스쿼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시즌을 시작했다는 점.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위기설이 나왔다는 점 등은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FC서울은 지금의 난관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용수(당시 코치), 데얀, 아디, 고명진, 고요한, 김진규, 김치우 등 현재 FC서울 구성원 대부분이 2009년에도 FC서울의 일원이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서울이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금 강력한 축구를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멋진 축구를 보여줄 FC서울을 기대해보자.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3.24 11:03









지난 시즌 리그를 제패하며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 시즌을 맞이한 FC서울. 장수 슌텐과의 ACL 첫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뽐내는 가 했지만,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포항과 무승부, 인천과의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서울은 이번 부리람과의 ACL 원정경기를 통해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부리람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서울에 뒤진다는 평이지만, 작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광저우 헝다와 가시와 레이솔을 이긴 적이 있는 만큼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되는 상대다.

 





                             3관왕을 달성했던 지난 2011년 부리람의 모습 (사진출처-부리람)






부리람은 어떤 팀?



부리람은 태국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팀으로 1970년에 창단된 팀이다. 부리람은 탁신 전 총리의 정치적 양아들인 네윈 치트촙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강호로 급부상했다. 2011년 태국 프리미어리그 우승 및 3관왕을 달성하며 2012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섰던 부리람은 올해엔 태국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뒤 브리즈번 로어를 꺾고 2년 연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확보했다.



팀의 주장이자 수비진을 이끌고 있는 오스마르 이바네즈 (사진출처-부리람)




주요 선수들로는 역시 용병이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이 가는 선수는 수비를 맡고 있는 오스마르 이바네즈. 스페인 라싱 산탄데르에서 이적해온 오스마르는 팀의 주장을 맡고 있으며 192cm, 85kg의 단단한 체격을 자랑한다. 이 체격을 바탕으로 공격에도 적극 가담해 지난 베갈타 센다이전에서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공격에는 일본인 공격수 카이 히라노가 제1공격옵션이다. 카이 히라노는 170cm의 단신이지만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가 인상적인 공격수다. 태국 선수로는 공격수를 맡고 있는 데니스 부셰닝과 지난 브리즈번과의 경기에서 세 개의 승부차기를 막아낸 주전 골키퍼 시와락 테숭노엔, 공격형 미드필더 수차오 누츠눔이 요주의 인물이다.




약점이 있다면 공격이다. 작년 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오한드자와 아체암퐁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리람 전력의 50%라는 평을 받았던 이 둘의 공백은 부리람에게도 고민임에 틀림없다. 특히 오한드자는 2011 태국 프리미어리그에서 19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던 바 있기에 부리람으로선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대성(위) 수차오 누츠눔(아래) (사진출처-부리람)







하대성vs수차오 누츠눔 중원 맞대결의 승자는?



양 팀 모두 든든한 중앙 미드필더를 보유하고 있다. 그 선수는 하대성과 수차오 누츠눔. 지난 2010년 FC서울에 입성한 하대성은 지난 시즌부터 주장을 맡으며,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리더십을 인정받은 하대성은 올해도 변함없이 주장을 맡고 있고, 정확한 패스와 득점력, 때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으로 FC서울 중원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수차오 누츠눔 역시 부리람 미드필드진의 핵심 인물이다. 태국 국가대표 출신의 누츠눔은 2010년 부리람에 입단하여 최근 팀이 거둔 수준급 성적에에 큰 힘을 보탠 인물이다. 너른 활동량이 장점으로 꼽히며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수준급 태클실력을 자랑한다는 평이다. 지난 베갈타 센다이전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든든한 중원의 사령관을 보유하고 있는 양 팀. 과연 어떤 선수가 중원을 지배하여 팀을 유리하게 할지 주목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3.03.11 02:31






2012년 FC서울은 리그 우승으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한해를 보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찾아오는 공허함과 지루함은 어쩔 수 없는 법. 아마 대부분의 팬들은 빨리 내년 2월이 되길 바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필자가 그 지루함을 덜어보기 위해 재미있는 퀴즈를 한번 준비해봤다. 시계를 보채고 싶은 팬들이 조금이나마 재미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아쉽지만............... 다 맞춰도 상품은 없다.







 








1. FC서울은 전신인 럭키금성, LG치타스를 포함해 총 5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중 FC서울이 우승한 연도가 아닌 연도는?
 
    ⓵1985
    ⓶1990
    ⓷1994
    ⓸2000
    ⓹2010





2. FC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공중에서 바라봤을 때, ‘이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⓵거북선
   ⓶기와집
   ⓷고인돌
   ⓸자동차
   ⓹방패연





3. FC서울의 감독인 최용수의 별명은?

 
    ⓵독수리
    ⓶참수리
    ⓷물수리
    ⓸매
    ⓹송골매





4. 최용수 감독은 올해 슬로건으로 무공해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무공해의 본뜻은?
 
    ⓵무조건 공격해
    ⓶무조건 공부해
    ⓷무조건 공연해
    ⓸무조건 공간돌파해
    ⓹무조건 공중볼


 

사진출처-연합뉴스





5. 현역 시절 최용수는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맹활약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최용수가 당시 최종예선에서 터트린 골 수는?

 
    ⓵4골
    ⓶5골
    ⓷6골
    ⓸7골
    ⓹8골





6. 현재 FC서울의 주장 하대성은 대구 시절 환상적인 시저스킥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하대성에게 시저스킥을 허용한 상대 팀은?
 
   ⓵수원
   ⓶대전
   ⓷포항
   ⓸전남
   ⓹울산





7. 외국인 선수 최다골을 기록하며 역사를 쓰고 있는 데얀은 그 동안 해트트릭도 여러번 기록했다. 다음 팀들 중 데얀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한 팀은?

 

   ⓵인천, 수원
   ⓶포항, 대전
   ⓷전북, 울산
   ⓸대구, 경남
   ⓹성남, 부산





8. 다음 팀 중 몰리나가 거치지 않은 팀은?
 
   ⓵인디펜디엔테 메델린
   ⓶산토스FC
   ⓷크르베나 즈베즈다
   ⓸알 아인
   ⓹리버 플레이트








 











9. 아디가 세르비아 진출했을 때, 당시 세르비아는 내전중이었다. 이때 아디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취한 행동은?
 
   ⓵보디가드를 고용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⓶총격전에 대비하여 항상 총을 휴대하고 틈틈이 사격연습을 한다.
   ⓷외출할 때 브라질 국기를 두르고 ‘나는 브라질인이다’ 라고 외치며 위험을 벗어난다.
   ⓸집과 훈련장 외엔 절대 외출하지 않는다.
   ⓹항상 방탄복을 입고다니며 안전을 지킨다.







10. 미드필더 문기한은 자신의 롤모델의 등번호가 14번이라 자신도 14번을 선택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문기한의 14번에 영향을 끼친 이 선수는?

 
   ⓵사비 알론소
   ⓶요한 크루이프
   ⓷하비에르 마스체라노
   ⓸티에리 앙리
   ⓹구티







11. 김치우는 인천 시절 유럽에 잠시 임대를 다녀왔다. 당시 김치우가 갔던 유럽 팀은?

 
   ⓵디나모 키에프
   ⓶하이두크 스플리트
   ⓷바테 보리소프
   ⓸스파르타 프라하
   ⓹파르티잔 베오그라드






12. 최효진은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 답게 많은 우승 횟수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최효진이 프로 입단 후 거둔 우승 횟수는?

 
   ⓵5회
   ⓶6회
   ⓷7회
   ⓸8회
   ⓹9회






 













13. 김용대는 올해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K리그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됐다. 그렇다면 김용대가 K리그에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횟수는?

 
   ⓵2회
   ⓶3회
   ⓷4회
   ⓸5회
   ⓹6회






14.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1호골 기록은 FC서울 선수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1호골 주인공인 FC서울 선수는?

 
   ⓵한태유
   ⓶정조국
   ⓷최용수
   ⓸현영민
   ⓹최태욱

 






15. 다음 용병 중 FC서울에서 가장 적은 경기 수를 기록한 용병은?

 
   ⓵노나또
   ⓶무삼파
   ⓷제이훈
   ⓸케빈 하치
   ⓹리마







16. 다음 FC서울 선수 중 신인왕을 차지했던 선수가 아닌 선수는?

 
   ⓵최용수
   ⓶정조국
   ⓷박주영
   ⓸이청용
   ⓹이승렬

 

 








17. 다음 인물 중 FC서울에서 시축을 하지 않았던 인물은?
 
   ⓵김장훈
   ⓶박원순
   ⓷김연아
   ⓸박정아
   ⓹한지민

 

 


18. 다음 가수 중 FC서울의 클럽송을 부른 가수가 아닌 가수는?

 
   ⓵신해철
   ⓶싸이
   ⓷마야
   ⓸내 귀에 도청장치
   ⓹봄여름가을겨울

 





19. FC서울은 여러 해외클럽들과 친선경기 및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으로 많은 해외팀들과 경기를 가졌다. 다음 중 FC서울과 경기를 해보지 않은 팀은?

 
   ⓵맨체스터 유나이티드
   ⓶알 이티하드
   ⓷광저우 부리
   ⓸가시마 앤틀러스
   ⓹보카 주니어스







20. 다음 선수들 중 FC서울과 경기를 해보지 않은 선수는?
  
   ⓵크리스티아누 호날두
   ⓶아벨 사비에르
   ⓷데이비드 베컴
   ⓸로드리고 팔라시오
   ⓹루드 반 니스텔루이




  출제=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2.12.27 22:21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이벤트 매치에 출전한 최용수 감독 (사진출처-조이뉴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며 대표적인 자선행사로 자리 잡은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그 대회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추운 날씨를 고려해 지난해부터 풋살로 열린 이 대회는 올해도 풋살로 열렸고, 팬들은 잠실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우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뜻깊은 행사에 FC서울도 빠질 수 없었다. FC서울 감독인 최용수와, 주장 하대성, 골키퍼 김용대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최용수는 올해 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끈 공로로 K리그 올스타팀인 사랑팀의 감독으로 자리했고, 김용대와 하대성 역시 사랑팀의 선수로 출전했다.




 

사랑팀의 골키퍼로 출전한 김용대 (사진출처-조이뉴스)






김용대는 전반부터 사랑팀의 골키퍼로 출전했다. 김용대는 신광훈(포항), 송진형(제주), 정인환(인천), 권순형(제주)과 팀을 이뤄 경기에 나섰다. 사랑팀은 경기시작 47초만에 송진형의 골로 앞서나갔다. 송진형은 최용수 감독이 보여줬던 ‘용수텔리’ 세리머니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후 김용대의 선방이 눈부셨다. 선취골 직후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크로스를 저지한 김용대는 2분 후 김영권의 슛을 막아냈다. 20초 뒤 오재석(감바 오사카)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4분 50초에 김민우(사간도스)의 슛을 선방했고, 2분 후엔 박종우의 중거리 슈팅을 펀칭했고, 흘러나온 볼을 김민우가 재차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김용대가 다시 막아내며, K리그 베스트 골키퍼 다운 모습을 보였다. 전반 17분엔 김용대가 직접 골을 노리기도 했다. 정성룡의 골킥이 김용대를 향해 날아오자 김용대가 다이렉트로 슈팅을 날렸지만, 아쉽게도 빗나갔다. 사랑팀과 희망팀은 3-3으로 전반을 끝냈고, 하프타임 이벤트에서 사랑팀 김병지가 희망팀 김영권에게 승리를 거둬 추가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들어 김용대는 김병지와 교체됐고, 서울의 주장 하대성이 후반 24분에 투입되었다. 하대성은 이렇다 할 모습은 보이지 못했지만, 23초를 남기고 정확한 패스로 안정환의 결승골을 도왔다. 결국 사랑팀은 후반 안정환과 초청 선수인 김종국의 멀티골로 8-7 승리를 거두었다.




 

최용수 감독이 박건하 코치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사진출처-스타엔)





경기 후엔 이벤트 매치로 올림픽 선수팀과 코치팀의 경기가 열렸다. 최용수 감독은 코치팀의 일원으로 홍명보, 박건하, 김태영, 김봉수와 팀을 이뤄 경기에 나섰다. 공격수 출신 답게 최용수는 경기 초반부터 강력한 슈팅으로 선수팀을 압박했다. 홍명보의 패스를 받은 최용수의 강슛은 골대를 빗나갔고 1분 뒤엔 박건하가 흘려준 볼을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하지만 결국 최용수가 코치팀의 첫골을 만들어냈다. 4분24초 홍명보의 패스를 이어받아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5분 후 최용수는 절묘한 로빙슛으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멋진 골이었다. 이후 최용수는 김봉수의 골을 어시스트 했고, 결국 코치팀의 7-6 승리에 일조했다. 이 날 경기를 끝으로 선수들은 이제 휴식기를 가진 뒤, 내년 1월 리그 2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지훈련을 떠나게 된다.




글=김성수 FC서울 명예기자 sskim1227@gmail.com   

by corazon de seul 2012.12.1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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